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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자식은 왜 나에게 반말을 할까?

* 이 글은 현근님의 [어랏....저 개념없는 놈....] 에 대한 트랙백 입니다. 

  대학 들어가고 얼마 안된 때의 일이었다. 10년도 더 된 날적이들을 보다보니 재수생 반말 문제에 대한 논쟁에 대해 두어 페이지 정도가 빽빽하게 적혀있는 부분을 우연히 발견했다. 상호간의 동의 없이 재수한 새내기가 제 때 들어온 (우스운 표현이지만) 1년 선배에게 반말을 쓰는 것은 반인륜적인 행위라는 것이 그 논란의 시발이자 종착이었다. 내가 학교에 들어왔을 때는 인간의 도에 많은 수정이 있어서 재수생에게는 같은 나이의 선배에게 반말을 쓸 수 있는 권리(?)가 있다고 하여 당시에는 세상이 많이 좋아졌구나...라고 생각했다.

 

  여튼 선배들에게 존대를 하며, 그 존대에 '걸맞는' 행동-말과 행동은 분리될 수 없는 모양인지-들을 하면서 불편없이 학교를 다녔다. 그렇게 1년 정도 지내다보니 다소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왜 나는 저 사람에게 말을 올려야 할까? 왜 저 양반은 초면에 반말일까? 뭔가 정치적으로 온당하지 못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문제를 공식적으로 제기한 것은 학회 합숙 때로 기억한다. 꽤나 격렬한 논쟁이 벌어졌던 것 같다. 사회 생활을 일찍 시작하여 경험이 많은 사람의 '권위'를 인정하는 것은 당연하다는 논리부터 (농경문화의 잔재일까) 사회적 '관습'이기 때문에 존중하는 것이 옳다던가 (절대반지 관습) 자매형제도 없냐느냐는 둥 (...없었다) 다양한 이야기가 나왔다. 결론적으로는 자신이 인정하지도 않은 권위를 관습이라는 이유로 강요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쪽으로 논쟁이 종결지어졌고 그날부터 난 학회를 중심으로 서서히 선배들한테 말을 놓아 나갔다.

 

  그러다보니 후배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처음보는 후배들에게 말을 놓으라고 하다보니까 애덜이 말을 놓는 경우가 거의 없었다. 그래서 당신네들이 놓을 때까지 나는 올리겠다고 하여 존대말을 서로 썼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가다보니 상당히 기괴한, 선배들에게는 말을 놓으면서 후배들한테는 말을 높이는 현상이 나타나더라는 것. 지금 생각해보면 선배들에게도 서로서로 말 높이는 편이 더 좋지 않았을까도 한다.

 

  일이 술술 풀렸으면 좋았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해서 언어 평등 운동(?)은 거대한 벽에 봉착하게 된다. 벽이란 바로 복학생 군단. 사람들에게 이런 이야기를 하면 수긍하지 않더라도 수긍하는 척은 이끌어낼 수 있었는데, 복돌이들에게는 이런 이야기가 이해의 문제를 떠나 심기를 건드리는 문제로 촉발되었고, 심하게는 그런 말을 꺼내는 것에 목숨을 걸어야-반쯤은 농담-하는 상황도 있었다. 더 놀라운 것은 말이 통하는 복학생으로부터 동의를 얻어냈는데 막상 내 입에서 반말이 나오지 않는, 말을 하려고 입을 벌려도 소리가 나지않는 엽기적인 일이 벌어진 것이다. (너무나 가슴이 아팠다. 내가 현재 남한 군대의 억압적 제도에 반대한다면 반 정도는 이때의 경험 때문일 것이다.)

 

  사상은 입에 담겨지기 위해 존재하고 말은 실현되기 위해 존재한다. 존대말을 하느냐 하지 않느냐는 대개의 경우 특정한 권력 관계의 가장 여실한 반영이었다. 가령 내가 문제를 제기할 수 있는 자와 없는 자, 부탁인지 명령인지 애매한 부탁과 그렇지 않은 부탁, 반격이 즉각적으로 가능하냐 그렇지 않느냐 ... 그것은 많은 경우 분류를 용이하게 해주는 잣대가 되었다.

 

  개인적으로 학원에서의 이러한 문제들은 '짬'이 쌓여감에 따라 자연스럽게 해결되어 갔다. 자연스럽게 자치 공간 내에서 금연 시간에 담배를 피는 복학생에게 학생회 규정이 어쩌니 저쩌니 이야기를 할 수 있게 된 것. 그러나 내 뒷줄들의 문제는 내가 새내기 때 봉착했던 상황에서 거의 나아가지 못하고 있었다. 더 무서운 것은 내 주먹에 힘이 실리기 시작하면서 존대말을 하는 것이나 존대말을 듣는 것에 대한 기괴하다는 느낌이 덜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

 

  (당연하지만) 아직도 문제는 해결되지 않고 있다. 해마다 수십만의 새내기들이 대학에 들어와 같은 상황에 놓여있다가 고학번으로 혹은 복학생으로 나아간다. 초중고에서 군대에서 사회에서 같은 현상이 끊임없이 재생산되고 있다. 그리고 좋건싫건 그 피라미드에서 나는 위로 올라가고 있다. 과연 내 주먹이 내 말을 배신하는 날이 빠를까, 마침내 내 말이 쥐었던 주먹들을 펴게 하는 날이 빠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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