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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크리(flcl), 상상력.

* 구구절절 쏟아지는 스토리 요약과 인물 해설을 위해 아까운 시간과 지면을 낭비하는 것은 과학 만능 시대에 올바른 삶의 양식은 아닐 것 같다. 검색 엔진과 블로그, 그보다는 만화를 직접 보는 편이 더 낫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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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의 분위기를 가장 잘 나타내주고 있다고 생각되는 그림

 

  애니메이션은 상대적으로 애들이 많이 본다. 반면 영화의 경우 상대적으로 어른들이 많이 보는 편이다. 특별히 애니메이션이 유치하고 영화가 고상하기 때문은 아닌 듯하다. 일본 애니메이션보다 헐리우드 영화가 더 고상하다고 주장할 근거는 어디에도 없다. 어차피 진지한 사회인이 가질법한 문제의식을 다룬 작품-쓸데없이 난해하다는 뜻은 아니다-이란 애니건 영화건 극히 드물다. 당연하게도 문제의식을 가져봤자 그것을 사회에 반영할 통로를 가지지 못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그것은 상품화되기 힘들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왜 애니메이션은 왜 아이들에게 타겟이 맞춰져 있을까? 나름대로의 가설을 내놓자면 나이가들수록 상상력이 감소하기 때문일 것이다. 아니, 감소라는 표현은 적당치 않다. 여자친구가 알고보니 입양된 할아버지의 숨겨둔 딸이었다는 상상력과 여자친구가 알고보니 가변형 전략병기였다는 상상력에 우열을 두기는 힘든 노릇 아닌가? 그래도 아이들이 선호하는 상상력과 어른들이 선호하는 상상력 사이에는 차이가 있어 보인다.

 

  여튼 아이들의 상상력을 찍어내기엔 애니메이션이 탁월하게 저렴하다. 그런저런 이유로 만화의 주된 고객은 아이들이 된다. 이야기가 길었는데 그 결과 애니메이션, 특히 필자가 주로 보는 일본 애니메이션의 경우 주된 시청자는 유소년층과 청소년층에 많은 편이다. 청소년이 주된 타겟이다보니 일본 애니의 경우 인기있는 소재가 바로 성장물이다.

 

  야구를 하고, 축구를 하다가, 연애를 하거나, 싸움질을 하면서, 때로는 거대 로봇을 조종하고, 전쟁에 휩쓸리면서, 고갯길에서 드리프트를 하기도 하며, 대마왕을 잡으러 떠나거나, 거대 마피아와 맞서면서, 발레를 하면서, 심지어 폭주족에 가담하면서, '무엇을 하건' 주인공은 성공하며 혹은 실패하며, 그것을 극복하며 혹은 끝내 극복하지 못하며, 성장하게되며 어른으로 나아가게 된다.

 

  성장이라는 주제를 표현하기 위해서 '무엇을 하건' 상관없다는 태도의 극단에 바로 개인적으로 가이낙스 최고의 애니메이션으로 꼽는 프리크리가 서 있다. (가이낙스, 이들의 만행은 원작자도 이해못하는 기묘한 설정으로 점철된 신세기 에반게리온에서도 유명하다) '무엇을 하냐'고? 어디선가 이태리제 오토바이를 타고 나타난 외계인이 배트를 휘둘러 소년의 머리에서 N.O.(좌뇌와 우뇌의 사고통로를 이용, 장거리의 물질 전송을 일으키는 현상-뭐야 이게?)를 일으켜 뇌와 해적왕의 해방을 위한 파츠를 꺼내고, 소년과 외계인은 해적왕의 해방을 막기 위해 거대 무인 공장에서 파견하며 소년(혹은 소녀)의 머리에서 튀어나오는 거대 로봇에 맞서 학교와 마을을 구하다가 어쩌다가 한다는 이야기이다. ... 이해가 안된다고? 필자도 그다지 이해하지 못했고 이해할 필요도 그다지 느끼지 못했다.

 

  프리크리의 설정은 골치아프며 정돈되어 있지 않고 스토리 진행과 주제의 이해에 많은 경우 불필요하다. 다만 놀라울 정도의 상상력으로 시청자를 즐겁게 해주고 말하고자 하는 바를 적실하게 상징하고 비유한다. 세상 알만큼 알았다는 둥 세상 별 거 있냐는 둥 어릴 때 가질 법한(어른이 되어서도 가질 법한) 유치한 생각들과 그것을 깨버리는 상상도 할 수 없는 기묘한 사건과 상황들. 실연과 질투, 동경과 좌절, 부모에 대한 불만과 실망, 타인에 대한 배려의 부재, 무력감과 자만 등의 정신적인 고통을 상징하는 두통과 머리에서 튀어나오는 거대 로봇. 그리고 그것을 극복해 나가면서 자신의 배트와 그것을 휘두를 용기를 가지게 된 소년. 다분히 내면적인 문제와 갈등을 창의적인 설정으로 유쾌하게 시각화해 낸다.

 

  프리크리는 상상력이 메말라버린 두뇌와 반드시 정돈되고 꽉 짜여진 구성만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다는 고정관념에 꽤나 괜찮은 충격을 줄 것이다. (반대의 극단도 존재한다. 질식할 정도의 자기 완결도를 지닌 세계관에 비해 너무도 약한 메시지의 작품) 물론 이 작품이 던져주는 메시지는 별 거 없다. 성장이란 진부한 소재의 진부한 해석에 불과하다. 하지만 그것을 이야기하는 방식은 실험적이고 파격적이다. 고골의 단편이 떠올랐을 정도로. 그렇기에 프리크리는 만화를 통해서만이 표현할 수 있는 상상력이 (적어도 영화화하기에 돈이 많이 들법한 상상력이) 존재한다는 것을 새삼느끼게 해주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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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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