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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물에서 찾기2006/01

9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06/01/27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더불어 함께
  2. 2006/01/24
    화가 났을때..
    더불어 함께
  3. 2006/01/23
    난 처음부터 혼자였어.
    더불어 함께
  4. 2006/01/21
    다 바람같은 거야~~!!
    더불어 함께
  5. 2006/01/20
    좋은 사람...
    더불어 함께
  6. 2006/01/19
    [퍼옴] 그냥..넋두리
    더불어 함께
  7. 2006/01/16
    흙과 마루
    더불어 함께
  8. 2006/01/07
    광석이형 보고싶습니다.
    더불어 함께
  9. 2006/01/06
    <김광석> 오늘따라 너무 그립습니다.
    더불어 함께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새해복많이 들 받으세요 건강하시구요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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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 났을때..

 

화가 났을 때



내가 누군가에게

몹시 화가 났을 때는

화가 나지 않은 척해서는 안 된다.

고통스럽지 않은 척해서도 안 된다.

그 사람이 나에게 소중한 사람이라면

더욱 그러하다. 내가 지금 화가 났으며

그래서 몹시 고통스러워하고 있다는 사실을

그에게 고백해야 한다. 그러나 말은

아주 차분하고 침착하게 해야 한다.


- 틱낫한의《화》중에서 -

............................................................................................

화가 나는 것, 그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화를 내는 것, 어쩔 수 없을 때가 많습니다.

문제는 그 다음입니다. 화를 다스리고 푸는 것입니다.

화를 다스릴 줄 모르면, 한 순간의 화가 자칫

돌이킬 수 없는 재앙(禍)으로 돌아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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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처음부터 혼자였어.

어젠 故김양무 선생님 6주기 추모식에 참석했었다.

 

새해를 맞고 결의를 다지는 시간을 가질겸 망월동을 찾곤했었는데..

어느새부턴가 김양무 선생님 기일에 맞춰 망월동을 찾았다.

 



난 참 부족한 사람인데..

어찌 이 힘든 길을 선택했을까?

 

아니 아직도 이길에서 빗겨 나가려고 발버둥 치고 있는 건 아닌가?

동지들이라고 매번 말하고 있지만 내 곁엔 진정한 동지는 없는 듯 느꼈던 몇날 며칠.

불면의 밤을 지새고 예전에 없던 눈물이 두 볼을 타고 흘러내리기를 참 많이도 경험했다.

 

외롭냐?

 

함께 가는 사람들과 웃고 떠들고 실천을 함께해도.. 한순간이다.

 

깜깜한 저녁이면

난 또 혼자가 된다.

 

어제 망월동을 다녀온 후 후배들과 함께한 술자리에서도 난 혼자라는 걸

뼈저리게 느꼈다.

 

오가는 술잔..서로의 말과 웃음 속에서도.. 난 하나가 되질 못했다.

겉돌고...흘러내리고..

난 후배들에게 몸이 아프다는 핑계를 대고(사실 좀 아프긴 했다.)자리를 떴다.

 

집에 오는 길에..

걸어오면서 하나 하나 생각을 해봤다.

 

깊은 한숨.. 그리고 내마음의 엉켜버린 타래들..

무엇이 문제였단 말인가?

 

내 마음.. 내 욕심..

 

비우자!! 마음을 비우자!!

 

난 처음부터 혼자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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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바람같은 거야~~!!



다 바람같은 거야.

뭘 그렇게 고민하는 거니?
만남의 기쁨이건
이별의 슬픔이 건 다 한 순간이야.
사랑이 아무리 깊어도 산들 바람이고
오해가 아무리 커도 비바람 이야.
외로움이 아무리 지독해도 눈보라일 뿐이야.
폭풍이 아무리 세도 지난뒤엔 고요하듯
아무리 지극한 사연도 지난뒤엔
쓸쓸한 바람만 맴돌지.
다 바람이야.

이 세상에 온 것도 바람처럼 온다고
이 육신을 버리는 것도 바람처럼
사라지는 거야.

가을 바람 불어 곱게 물든 잎들을 떨어 뜨리 듯
덧없는 바람 불어 모든 사연을 공허하게 하지.
어차피 바람일 뿐 인걸
굳이 무얼 아파하며 번민하리
결국 잡히지 않는게 삶인 걸
애써 무얼 집착하리

다 바람인거야.

그러나 바람 그 자체는 늘 신선하지
상큼하고 새큼한 새벽바람 맞으며
바람처럼 가벼운 걸음으로
바람처럼 살다 가는게 좋아.

                                              글/묵연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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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사람...

참 좋은 사람들과 술을 마셨습니다.

예전 직장에서 일할때 만났던 시청 공무원들인데..

너무나 인간적인 분들입니다.

 

실천연대 정기총회에 들렀다가

곧바로 약속장소로 향했습니다.

 

4개월만의 보는 사람들임에도 얼마나 반갑게 맞아주던지.^^

 

기분이 좋아서 얼큰하게  취했더랬습니다.

 

후배 은영이가 와서 더욱 흥을 돋구었고....

 

친한 친구녀석인 수철이를 만나서 늦은 저녁에서 새벽으로 시간은 흘러 갔고

마주치는 술잔에서 서로의 情을 확인했답니다.

 

좋은 사람...

좋은 시간...

 

나를 살게하고 나를 추동하는 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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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옴] 그냥..넋두리

마른수건같은 건조한 일상에

필요한건

오히려 더더욱 메말라버린 감정의 발현이라는 사실을 알아챈 순간

이미 나는 너무 멀리 떠나와 버렸단걸 발견하고야 만 것이다

 

다시 돌아가기는

너무 고달퍼 그냥 앞만 보고 내달리기로 한다

 

뭐 또

생각나면 뒤돌아볼 것이고

그때가 되면 다른 일상과 다른 기분이 되어

나는 또다른 결정에 이르게 될 수도 있겠다

 

그렇게 우연이 만들어낸 결과가

어쩌면 내 삶을 가늠할 결정적 계기가 될 수 있겠지만

지금은 그냥 모든게 귀찮아

그마저 예상치 않기로 한다

 

확실히

그것이 필요하다

그것만 정리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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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과 마루

내가 좋아하는 카페가 있다.

시간이 바빠서 자주가지는 못하지만

마음이 심란할때나 아님 뭔가 조용히 사색하고 싶을때 찾아 가는데.

 

특히나 도심속에 이런 곳이 있나 놀라는 사람들이 많다.

 

흙과 마루.....

 

오늘도 들렀다가 좋은 사람이랑 살아가는 이야기 나누다 왔는데.

 

넘 좋다.

 

흐르는 노래 좋고..

분위기 좋고 사람이 좋으니 ^^

 

흙과 마루 날적이에 쓰여진 글 중에...이런글이 있었다.

 

 

"그대는 너무나 눈부십니다.

누가뭐라해도 그대는 나에게 아름다운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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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석이형 보고싶습니다.

모르겠다.

내가 왜이러는 지

 

나와 일면식도 없는 사람에게

난 가눌수 없는 슬픔과 비애를 느낀다.

 

눈물과 콧물이 범벅이 되도록 울었다.

 

몸이 아파 병원에 갔다가 집에 누워 약에 취해 자다가

일어난 지금 !!

 

난 외로움에서 인지 그에 대한 그리움에서인지 자꾸 눈물이 앞을 가렸다.



그대의 노래를 부르는 것 만으로도
오늘 김광석 사망 10주기... 자꾸만 썼다 지우는 그 이름, 그 노래
텍스트만보기   박상규(comune) 기자   
* 잠시 볼륨을 올려주세요. 기사를 읽을 때 김광석의 노래가 나옵니다. <편집자 주>

valign=top 그후 10년, 김광석을 노래하는 사람들 / 편정아 기자


▲ 1996년 1월 6일, 김광석은 갑작스럽게 우리 곁을 떠났다. 소극장에서 김광석과 함께 '서른 즈음에'를 부르던 30대의 사람들은 어느덧 40대가 됐다.
ⓒ 위드 33 뮤직
"광석아, 고맙다. 내 인생에 나타나 함께 시간을 보내줘서… 내 기억 속에 너의 맑은 목소리와 미소를 남겨줘서 정말 고맙다."

김광석 사망 10주기를 이틀 앞둔 지난 4일 밤 12시 무렵. 가수 강산에(43)씨에게 전화를 걸어 물었다. 10년 전에 무심하게 떠난 '친구' 김광석에게 지금 이 순간 어떤 말을 전하고 싶냐고. 강산에씨는 잠시 뜸을 들였다. 애써 감추려했던 그의 작은 탄식은 성능 좋은 전화기를 피하지 못했다. 잠시 후 강산에씨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광석아, 고맙다"라고.

강산에씨는 90년대 초반 김광석과 함께 신촌역 인근의 카페 '무진기행'에서 통기타를 치며 노래를 불렀다. 그리고 2001년 발매된 김광석 추모앨범 'Anthology1'에서는 김광석과 한 소절씩 주고받으며 이렇게 노래한다.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다고.

10년 전 오늘, 김광석이 지다

김광석에게 나직하게 고마움을 전하는 이는 강산에씨와 같이 특별한 추억을 가진 사람만이 아니다. 한번쯤 김광석의 목소리에 기대어 불면의 밤을 건너봤거나, 힘겨운 삶의 고개를 넘어본 사람들은 어김없이 말한다. 김광석은 왜 그렇게 우리 곁을 일찍 떠났느냐고.

"김광석, 그를 막 흔들었어야 했다. 훼방을 쳤어야 했다. 감성의 깊은 골짜기로 홀로 걸어들어갈 때 막 떠들어서 그를 환기 시켰어야 했다. 거울 속에 비친 내 모습이 굳어진다 마음까지, 이렇게 노래할 때, 소리소리 지르면서 그를 불러댔어야 했었다. 두발로 땅을 힘차게 구르면서 그를 마구마구 흔들어댔어야 했다." - 김점선(화가), '김광석 콜렉션 마이웨이'에서

1996년 1월 6일. 하모니카와 통기타, 그리고 한참을 울고난 뒤 비로소 입을 연 듯한 목소리로 많은 사람들을 위로했던 가수 김광석이 세상을 떠났다. 김광석의 목소리에 위로 받았던 많은 사람들은 마냥 맑게만 보이는 주름 가득한 그의 미소와 갑작스런 죽음을 연결시키지 못했다. 거짓말 같은 '이 시대의 가객'의 죽음. 그로부터 10년의 세월이 흘렀다. 거짓말처럼.

소극장에서 김광석과 함께 '서른 즈음에'를 부르던 30대의 사람들은 어느덧 40대가 됐다. 서태지와 함께 '난 알아요'를 외치던 아이들은 '이등병의 편지'를 부르며 군대에 가거나 누군가를 보냈다. 그리고 이들은 지금 "내가 떠나보낸 것도 아닌데, 내가 떠나온 것도 아닌데"를 읊조리며 서른살을 맞이하고 있다.

최루가스 자욱한 거리에서 20대의 삶을 보낸 386과 X세대라 불린 90년대 청춘들, 그리고 휴대폰 문자 메시지로 연인과 실시간으로 사랑을 속삭이는 21세기의 스무살이 함께 김광석의 노래를 부르는 건 더이상 낯선 풍경이 아니다.

세대를 넘어선 이들은 오늘도 뒷골목 술집에서 잔을 부딪히며 김광석의 노래를 부른다. 적당히 취기가 오르면 10년 동안 물었던 질문을 서로에게 또다시 던진다.

"김광석은 왜 그렇게 일찍 죽었을까?"

물음에 대한 대답은 돌아오지 않는다. 영화 <공동경비구역 JSA>의 북한 오경필 중사처럼 "광석이를 위해서 한 잔 하자!"며 술잔을 들뿐이다.

강산도 변한다는 10년의 세월이 흘렀어도 김광석의 흔적은 희미해지지 않았다. 유명 가수들의 그럴듯한 추모 공연은 이어지지 않고 있지만 김광석의 팬을 자처하는 사람들은 늘어나고 있다. 오프라인을 포함한 그의 팬클럽은 50개가 넘고 여기에 가입된 사람은 5만에 가깝다. 가장 오래된 팬클럽 '둥근소리'는 96년부터 추모 공연 성격의 작은 음악회를 개최하고 있는데, 오는 2월에도 열 예정이다.

김광석의 노래가 TV 드라마와 영화에 나오는 것은 더이상 새로운 이야기가 아니다. '이등병의 편지'는 남한과 북한 병사들의 정서적 통일에 이바지하고(<공동경비구역 JSA>),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은 준하(조승우)와 주희(손예진)의 이별을 더욱 애달프게 만든다(<클래식>). 또한 김제동과 영화배우 설경구가 TV에서 김광석의 노래를 부르고 나면 그 노래 제목을 묻는 '신세대'의 문의가 한동안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 쇄도한다.

10년 후 오늘, 여전히 살다

이런 김광석의 힘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왜 사람들은 여전히 김광석을 기억하고 그의 노래를 부르는 것일까.

가수 강산에씨는 "눈에 보이지 않지만 가슴으로 느껴지는 진정성의 힘"이라고 설명했다. 한동헌 '노래를 찾는 사람들(노찾사)' 대표는 "김광석은 우리나라 대중음악사에서 드물게 문학적 성취를 이룬 돋보였던 가객이었다"며 "문학성 짙은 가사와 진정성이 묻어있는 김광석 목소리의 결합은 대중들에게 강한 호소력을 발휘했다"고 말했다.

음악 칼럼니스트 김작가도 "김광석의 목소리는 그에 범접할 수 있는 아류도 계보도 없다"며 "훌륭한 목소리와 좋은 노래가 결합돼 김광석은 많은 사람들에게 하나의 아이콘처럼 굳어졌다"고 평했다. 여기에 김작가는 다른 해석도 덧붙였다.

"한국의 포크 음악은 저항과 미학의 두 갈래 길을 갔는데, 김광석은 이 두 갈래 길을 동시에 장악했다. 그러나 김광석을 작가의 반열에 올리기는 어렵다. 그가 불러 큰 인기를 얻은 곡들은 대부분 리메이크된 것이다. 원곡 자체가 탁월했다. 즉 김광석은 탁월한 보컬이었을 뿐, 창작자는 아니었다."

김작가의 지적대로 김광석이 불러 큰 인기를 모은 '이등병의 편지', '흐린 가을 하늘에 편지를 써', '불행아', '그녀가 처음 울던 날' 등은 모두 <다시 부르기> 앨범에 수록된 곡들이다. 이런 이유로 "김광석은 리메이크의 원조"라는 평가도 있다.

"김광석의 노래에는 이미 모든 생을 살아본 듯한 관조가 진하게 묻어있다. 그러나 그 관조는 체념이 아니라 삶에 대한 강한 희망이다. 짙은 슬픔 속에서 건져 올리는 희망. 김광석에게서는 그런 것이 느껴진다."

김광석의 팬 이혜영(31)씨의 말이다. 김광석도 공연 실황을 담을 앨범 <인생이야기>에서 아래와 같은 구체적인 희망을 언급하기도 했다.

"나는 환갑 때 연애를 하고 싶다. 7년 뒤 마흔살이 되면 오토바이를 하나 사고 싶다. 돈도 모아놨다. 그거 타고 세계일주하고 싶다. 가죽바지 입고… 나이 마흔에 그러면 참 재미있을 것 같다. 여행과 삶을 살아가는 건 그리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조금 힘들더라도 뭔가 새로운 것이 있을 것이라 기대하며 견뎌낸다."

마흔을 꿈꿨던 영원한 33세

그러나 김광석의 죽음이 증명하듯 그는 스스로의 다짐을 지키지 못했다. 그리고 이 앨범은 그의 사후에 세상에 나온 것이다. 64년도에 태어난 김광석이 지금 살아있다면 그의 나이는 43살이다. 그의 말이 지켜졌다면 그는 지금쯤 가죽바지 입고 오토바이에 몸을 실은 채 세계일주를 하고 있어야 한다.

그러나 그는 이미 10년 전에 "다시 돌아올 수 없는 그대"가 되어버렸다. 어느덧 김광석 사망 10주기를 맞이한 지금. 그를 사랑했고 지금도 사랑하고 있는 많은 사람들이 김광석에게 하고 싶은 말은 아래와 같지 않을까.

"또 똑같은 하루를 마치고 집으로 향할 때면 가끔 너에게 전화를 걸어 함께 한 잔 기울이고 싶은 마음이 간절할 때가 있단다. 너도 가끔 그러하니?" - 전 동물원 멤버 김창기. '김광석 콜렉션 마이웨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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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석> 오늘따라 너무 그립습니다.

그립다.

오늘은 광석이 형님이 우리 곁을 떠난지 10년이 되는 날이다.

 

바쁜 틈을 타서 자료 하나 올린다.

 

오늘 저녁 7시 30분에 세이 6층 아트홀에서 김광석 추모 콘서트가 있다.

 



[오마이뉴스 김은주 기자]

 
때로 지나간 시간들은 음악으로 남는다. 그 사람을 떠올리면 함께 떠오르는 향기가 있고, 그 시절을 떠올리면 함께 떠오르는 색깔이 있기도 하다. 혹은 특별한 손짓이나 몸짓만 선명하게 남기도 한다. 하지만 불쑥불쑥 아무 때고 흘러나와 심장을 치고 가는 음악만큼 힘이 센 매개물이 또 있을까.

파도 소리를 들으면 서귀포 앞바다에서 듣던 '제주도 푸른 밤'이 저절로 떠오르고, 오늘은 별이 참 곱구나, 생각하다가 나도 모르게 그 사람이 부르던 '별이 진다네'를 흥얼거리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기도 한다. 사람들이 유행가를 들으면 모두들 "저거 딱 내 얘기라니깐" 하는 것도 그런 까닭이 아니겠는가.

내 지나간 시간들엔 유독 김광석의 노래가 자리하고 있는 순간들이 많다. 예기치 않은 순간에 불쑥불쑥 끼어들어선 내 의지와 상관없이 나직하고 슬픈 노래들을 불러주던 김광석. 그가 다른 세상으로 떠난 지 벌써 10년이란다. 나는 그가 살아있던 시절보다는 이미 가버린 다음에야 그가 내보였던 슬픔의 정서에 깊이 동화될 수 있었던 세대에 속한다.

내가 나이를 먹는 동안에도 김광석은 조금도 나이가 들지 않은 채, 여전히 청춘으로 남아 있다. 그 주름 가득한 웃음이 때로는 슬프고 때로는 고맙다. 김광석을 처음 만난 날부터 오늘까지, 언제나 맑고 깊은 슬픔으로 보듬어준 그의 노래에 다시 한번 감사 인사를 올리며….

[풍경 ①-열일곱살] 나의 짝사랑과 함께 온 노래 '변해가네'

텔레비전에 나오는 가수들 말고는 세상에 도통 가수라곤 없는 줄 알고 살았던 내가 김광석의 노래를 처음 만난 것은 열일곱 살 때였다. 대구에는 '시인'이란 이름의 찻집이 있었는데, 늘 대낮부터 술을 마시는 시인 지망생들과 담배 연기가 꽉 차 있던 곳이었다.

학교 문학 동아리 소속이었던 나는 덕분에 일찌감치 그곳엘 드나들기 시작했다. 토요일마다 모여서 다른 학교 애들이랑 시 토론을 했는데, 어느 날엔가는 동아리 출신 선배들이 그 집에 잔뜩 몰려와서 인사하는 자리가 길게 이어졌다. 자기 소개를 하고, 노래도 한 자락씩 하는데 선배 하나가 무지하게 멋진 노래를 부르는 것이었다. 바로 '변해가네'였다.

"느낀 그대로를 말하고/ 생각한 그 길로만 움직이며/ 그 누가 뭐라 해도/ 돌아보지 않으며/ 내가 가고픈 그곳으로만 가려 했지/ 그리 길지 않은 나의 인생을/ 내게 남겨진 거라 생각하며/ 누군가 손 내밀며/ 함께 가자 하여도/ 내가 가고픈 그곳으로만 고집했지…."

아직 사랑을 몰랐던 어린 나는, '너를 알게 된 후, 사랑하게 된 후부터, 나를 둘러싼 모든 것이 변해'간다던 노랫말을 모두 이해할 순 없었지만, 그 노래를 부르는 선배에게 반해버릴 만큼은 자라 있었다. 노래 잘하는 사람에게 반하면 약도 없다. 짧았지만, 꽤 달콤했던 짝사랑은 선배의 애인을 본 뒤 한 달 만에 접어야 했지만, 그 후로도 오랫동안 나는 '변해가네'를 사랑해 마지않았다. 열일곱, 꽃다운 나이에는 학교 총각 선생님부터 이웃 남학교까지 짝사랑할 대상은 차고 넘쳤으니까.

[풍경 ②-스물살] 최루탄 연기와 함께 온 노래 '그루터기'

내가 대학생이 되었을 때 김광석은 이미 노찾사 활동을 접은 뒤였다. 하지만 그의 목소리는 '그루터기'나 '광야에서' 같은 노래들에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입학 후 첫 집회가 끝난 밤, 알 수 없는 쓸쓸함으로 학교 강당 앞 차가운 시멘트 바닥에 앉아 술잔을 돌리면서 선배들이 부르던 노래는 때론 '노찾사'의 것이었고, 때론 '천지인'이나 '꽃다지', 그리고 또 불쑥 김광석의 노래가 끼어들었다.

목소리를 높이던 집회가 끝나고, 긴장 속에 도로 위에 누워있던 시간이 가고, 참혹했던 열패감의 순간들도 가고 난 뒤, 가없이 쓸쓸한 마음을 김광석의 노래가 다독여주었다. 대학생이었던 내가 '새'나 '사랑이여'와 더불어 참 좋아했던 노래, '그루터기'.

"하늘을 향해 벌린/ 푸른 가지와/ 쇳소리로 엉켜붙은/ 우리의 피가/ 안타까운 열매들/ 붉게 익히면/ 푸르던 날 어느 새/ 단풍 물든다."

무모해서 아름다웠던 이십대를 떠올릴 때, 내 마음에도 덩달아 단풍이 물들곤 한다.

[풍경 ③-스물두살] 떠나버린 사랑에게 보내는 노래 '그날들'

돌아보면 늘 서툴기만 했던 나의 사랑은, 그가 떠난 뒤 속수무책으로 저 혼자 계속되고 있었다. 정작 함께였을 때는 툴툴대기만 하고, 뚱해 있기나 하고, 내 감정을 숨기고 덮어두려고만 했던 주제에, 헤어진 뒤에야 내 사랑은 저 혼자 깊어지고, 또 깊어지는 것이었다. 그가 입대하기 며칠 전, 그를 만나 오래오래 함께 캠퍼스를 걸었다. 다 주지 못한 사랑이 애달파서 나는 자꾸만 눈물이 났다.

"그대의 이름을 부르는 것만으로도/ 눈물이 흐르곤 했었던 그날들/ 잊어야 한다면 잊혀지면 좋겠어/ 부질없는 아픔과 이별할 수 있도록/ 잊어야 한다면 잊혀지면 좋겠어/ 다시 돌아올 수 없는 그대를"

그 사람이 '이제 다시 시작이다, 젊은 날의 생이여'를 부르며 이등병이 되었을 때, 남은 나는 그렇게 부질없이 '그날들'만 불러대고 있었다. 그리고 그해 1996년 겨울, 김광석도 세상을 떠났다.

[풍경 ④-스물일곱] 매일 이별하며 살고 있는 나를 돌아보다 '서른 즈음에'

스물넷에 시작한 서울살이는 그리 만만치가 않았다. 지하철을 타려고 바쁘게 걸어가는 사람들의 속도를 따라잡기가 힘들어 어리벙벙 서있기만 했는가 하면, 지나치게 많은 건물과 너무 많은 차들과 사람들 속에서 낯선 날들을 보내야 했다.

하던 일을 3년 만에 그만두고 새로운 직장을 알아보고 있던 무렵에 연대 앞에 있는 '서른 즈음에'에 처음 갔다. 작고 어두운 곳이었지만, 조금은 시끄러웠고 또 조금은 우울한 곳이었지만, 그곳에 가서 김광석의 '서른 즈음에'를 틀어달라고 우기는 나의 스물일곱은 그리 절망적이진 않았다. 세상 전부와 맞짱을 떠도 해볼 만하다고, 믿는 구석도 없으면서 대책 없이 씩씩하게만 살던 시절이었다. 그래도, 조금은 불안했던 모양이다.

"또 하루 멀어져 간다/ 내뿜은 담배 연기처럼/ 작기만 한 내 기억 속에/ 무얼 채워 살고 있는지/ 점점 더 멀어져 간다/ 머물러 있는 청춘인 줄 알았는데/ 비워 가는 내 가슴 속에/ 더 아무것도 찾을 수 없네/…… 또 하루 멀어져 간다/ 매일 이별하며 살고 있구나"

백수의 하루하루가 멀어져 가는 걸 보면서, 어떻게 살까, 무엇에 내 인생을 걸어볼까, 참 진지하게 고민했던 날들이었다. 옆에 있는 사람들을 무지하게 괴롭히면서. '서른 즈음에'와 '나이 서른에 우린 어디에 있을까, 젊은 날의 높은 꿈이 부끄럽진 않을까'를 번갈아 부르면서 나는 그렇게 나이를 먹어가고 있었다. 서른살 생일엔 꼭 '서른 즈음에'에 와서 술을 먹어야지, 하는 결심을 혼자 했더랬는데, 어쩌다 보니 지키지 못한 약속이 되어 버렸다.

[풍경 ⑤-요즘] "싸구려 감상으로 만들어 버리는 짓이잖아, 이건!"

어제 나랑 술을 먹던 후배에게 김광석 이야기를 꺼냈더니, 대뜸 그런다.

"누나도 김광석이야?"

녀석도 분명히 김광석을 사랑하고, 그가 노래하는 슬픔의 정조를 마음 깊이 이해하고 있기는 하지만, 그냥 혼자 알아서 추억하게 내버려두지 못하고 여기저기 매체에서 떠들어대는 게 싫단다. 자기 감정을 싸구려 감상으로 전락시켜 버리는 것 같아서, 덩달아 그 분위기에 휩쓸리는 게 왠지 기분이 좋지 않다고 했다.

그래, 이해할 수 있을 것도 같다. 아껴둔 마음 속 이야기를 누군가가 헤집어 놓는 것을 보는 일이 유쾌할 순 없는 거니까. 그래도, 나는 또 이렇게 촌스럽게, 김광석을 추억하고 있다.

1993년 2월에 내놓은 음반 '김광석 다시 부르기 1'에 김광석은 이렇게 적어 놓았다.

 
ⓒ2006 미디어신나라
"아무것도 하지 않은 날 붉게 물들어 내일을 기약하는 저녁 노을은 그저 아쉬움입니다. 익숙함으로 쉽게 인정해버린 일상의 자잘한 부분까지 다시 뒤집어보고 내걸어온 길들의 부끄러움을 생각합니다. 쉽지만은 않았던 나날들. 내 뒷모습을 말없이 사랑의 마음으로 바라보던 고마운 사람들을 하나하나 떠올리며 더 열심히 살아야지 다짐합니다.

노래를 부르며 생각했던 세상살이가 지금의 제 모습이 아님을 깨닫고 부대끼는 가슴이 아립니다. 읽다 만 책을 다시 읽으면서 느끼게 되는 기억력의 한계를 느끼듯 불러왔던 노래들을 다시 부르며 노래의 참뜻을 생각하니 또 한 번 부끄럽습니다. 지난 하루의 반성과 내일을 기약하며 쓰는 일기처럼 되돌아보고 다시 일어나 가야 할 길을 미련 없이 가고 싶었습니다.

세수를 하다 말고 문득 바라본 거울 속의 내가 낯설어진 아침, 부르고 또 불러도 아쉬운 노래들을 다시 불러 봅니다. 이제 다시 시작이다, 젊은 날의 꿈이여."


오늘, 그 사람, 김광석이 참 그립다.

/김은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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