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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득권... 필요악인가?

독사의 실험

실제로 내셔널 지오그래픽에서 본건데..
독사에게 생쥐 모양의 인형을 만들어 물려봤다. 그리고 사람 손 모양의 인형을 만들어 물리게 했다.
독사에게 위협(사람 손)을 줄 때 나오는 맹독의 농도와 독사가 먹이(쥐)를 잡을 때 나오는 맹독의 농도 와 질량 차를 비교해 보기 위한 실험이다.
결과는 흥미롭게도 사냥을 할 때의 맹독의 농도와 질량이 자신을 보호를 할 때의 그것보다 더 높았다고 한다.


이탈리아 공산당의 창시자, 안토니오 그람시의 시민사회 이론

안토니오 그람시는 《옥중수고 Prison Notebooks》에서 계급간의 관계, 특히 부르주아계급이 노동자계급에게 행사하는 통제의 의미로서 헤게모니를 설명하였다. 그가 말하는 헤게모니는 한 계급이 단지 힘의 위력으로써만이 아니라 제도, 사회관계, 관념의 조직망 속에 동의를 이끌어냄으로써 자신의 지배를 유지하는 수단이다. (http://kbank.nate.com/qna/KnowRead.asp?TableCode=16&questionID=89747 참조)

헤게모니는 사회관계에서 얻어지는 기득권을 말한다. 건전한 헤게모니란 구성원들간의 합의와 이해, 수용에서 자연스럽게 획득되며, 그 과정에서 정당성이 전제되어야 한다.
아쉽게도 헤게모니를 잡은 집단, 개인은 위의 건전하기 위한 필요조건이 없는게 대부분이다.
대부분의 집단간의 갈등은 이런 가진자와 가지지 못한자의 갈등으로 해석해도 불편하지 않다.

다시 그람시의 '시민사회'이론을 빌리자면 그람시는 좌파들에게 상황이 불리할 때에는 사회 곳곳에 진출해 진지전을 펴다가 결정적인 순간 기동전으로 전환하여 사회주의 혁명을 일으키라고 한다.
오히려 헤게모니를 가진 우파?가 이 전술을 더 적절히 사용하고 있다. 즉, 일반적인 상황에서는 조용히 진지전으로 자신의 지지, 생존 기반을 다지다가 자신에게 유리하거나 불리한 상황이 포착되면 여지없이 기동전을 펴 자신의 이권과 패권을 정당화한다.


지역주의 ???????

한국사회는 과거로 부터 첨예한 동과 서의 갈등이 있었다는 역사적 사실..
한국의 지역주의 계보는 박정희 정부의 경상도 개발 프로젝트에서 소외된 지역 그들 중 가장 힘이 있었던 호남지역이 권리찾기를 위해 뭉친다. 반사적으로 영남지역도 자신의 혜택을 뺏지기 않으려 뭉친다. 이렇게 형성된 연대의식은 더욱 응집력을 갖게 되고 정치인들은 이런 긴장관계를 더 부채질한다.
마치 십자군 전쟁의 본질은 종교간의 갈등이 아니듯 지역주의란 허울을 뒤집어쓴 체 빵을 위해 싸우는 형태이다.

다음은 한계레에서 홍세화씨와 최장집 교수의  [4·15 총선과 한국민주주의] 대담 내용중 일부이다.
(http://www.hani.co.kr/section-001065000/2004/04/001065000200404122153507.html)

"지역주의는 껍데기라고 생각합니다. 민주화가 진행될 때는 민주주의를 지지했던 사회세력과 구질서로부터 혜택을 받거나 구질서를 지지했던 사회세력으로 뚜렷이 구분됐습니다. 민주화가 됐다는 것은 민주주의를 지지하는 세력이 더 강했다는 것을 의미하지요. 지역주의는 이런 보편적인 갈등구조를 국지화하거나 분해, 전치시키기 위해 구질서를 옹호하려는 세력들에 의해 동원된 면이 컸습니다. 권위주의냐 민주주의냐 하는 문제를 지역주의라는 렌즈로 들여다보면 문제가 왜곡되어 나타나고 실제와 다른 내용으로 이해하게 만듭니다. 민주화 이후의 우리사회가 직면하고 해결해야 할 큰 갈등과 균열이 있었는데 이것이 지역주의라는 해석의 틀을 거치면서 한 바퀴 돌아 지역간 갈등으로 뒤바뀌면서 균열 구도가 흐려졌다고 볼 수 있죠..."

4·15 총선에서도 다시 한번 확인된 사실이지만 헤게모니를 가진 집단의 완고한 기득권 사수 기동전은 내셔널 지오그래피의 독사의 실험을 연상케 한다. 우리는 너무도 생생한 정치쇼를 목도했다. 아니다. 우리는 시청자가 아니라 배우의 일원으로 참여했다. 더러는 적극적으로 더러는 소극적으로...
다시 상기할 부분은 기득권을 가진자들은 우리보다 더 적극적이었다는 것...

즉 기득권을 뺏기지 않으려는 의지(먹이를 위한 독의 양)와 서민들의 생존의지(보호를 위한 독의 양)의 차가 이 정도 되지 않을까?



독일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관찰된 바에 의하면 소용자들에게 똑같이 빵과 우유를 나눠줬는데 1주일이 지나자 빵과 우유를 더 가진자와 덜 가진자가 나타났다고 한다.
분배의 문제? 어디든 불평등은 존재한다. 기득권이 필요악이라면 문제는 어떻게 불평등을 납득시키냐? 불평등을 최소화 하느냐? 정당한 불평등을 만드냐?의 문제...
즉 시스템의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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