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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 하나의 염세

별 하나의 추억과, 별 하나의 사랑과
별 하나의 쓸쓸함과, 별 하나의 동경과.
별 하나의 시와, 별 하나의 염세, 염세, 염세...


내겐 그랬던 것 같다.
꼭 정량적으로 시간을 꼬집긴 힘들겠지만 1990년대 대략 10년간은 지독히 pessimism으로 일관했던 것 같다.
실어증 환자 흉내내는 것도 아니고... 어느 순간엔가 염세 마저 지겨워지던 때가 있었다.
누구나 가슴 한 켠엔 고독이란 화초를 키우고 살 것이다. 애써 그 화초를 은닉하고 밝게, 그렇게 살 것이다. (안 그러면 내가 더 억울하자나.. 씨~ 왜 하필이면 지금 월광 소나타가 들리는거야...??)

외로움은 환경이 주는 거고 고독은 스스로 선택하는 거란다.
그렇다면 내 90년대의 편린, 아니 지금도 해방되지 않은 이 눅눅한 기분도 환경이 / 아니면 주체적으로 지고가는 것일까?

억지지만 [별 헤는 밤]에 이런 우울함을 이입해보면 아마도 "나의 청춘이 다하지 않는 까닭" 때문일거다. (나 아직 청춘이네..?? @.@)
어차피 세상이 익사이팅하고, 쿨하지 않을거란 각오는 하고 있었지만 적막한 새벽 3시10분, 월광 소나타 같은 노래를 들으며 음침해지는 기분을 억제하기란 여간 괴로운 일이 아니다.


술도 다 깼는데.. 뭘 쓰고 싶었던거지???????????????????????????

맞다!!! 여기서 질문!! [레옹]에서 마틸다가 말 했던...

"어른이 되어도 이렇게 살기가 힘든건가요?"  (역시 난 아직 청춘!! 캴캴캴~)





별 헤는 밤

시 : 윤동주

계절이 지나가는 하늘에는
가을로 가득 차 있습니다.
나는 아무 걱정도 없이
가을 속의 별들을 다 헤일 듯합니다.

가슴 속에 하나 둘 새겨지는 별을
이제 다 못 헤는 것은
쉬이 아침이 오는 까닭이요
내일 밤이 남은 까닭이요
아직 나의 청춘이 다하지 않은 까닭입니다.

별 하나에 추억과
별 하나에 사랑과
별 하나에 쓸쓸함과
별 하나에 동경과
별 하나에 시와
별 하나에 어머니, 어머니.

어머님, 나는 별 하나에 아름다운 말 한마디씩 불러 봅니다. 소학교 때 책상을 같이 했던 아이들의 이름과 패, 경, 옥, 이런 이국 소녀들의 이름과 벌써 애기 어머니 된 계집애들의 이름과 가난한 이웃 사람들의 이름과, 비둘기, 강아지, 토끼, 노새, 노루, 프랑시스 잠, 라이너 마리아 릴케, 이런 시인의 이름을 불러 봅니다.

이네들은 너무나 멀리 있습니다.
별이 아스라이 멀 듯이

어머님,
그리고 당신은 멀리 북간도에 계십니다.

나는 무엇인지 그리워
이 많은 별빛이 내린 언덕 위에
내 이름자를 써 보고 흙으로 덮어 버리었습니다.
딴은 밤을 새워 우는 벌레는
부끄러운 이름을 슬퍼하는 까닭입니다.
그러나, 겨울이 지나고 나의 별에도 봄이 오면,
무덤 위에 파란 잔디가 피어나듯이
내 이름자 묻힌 언덕 위에도
자랑처럼 풀이 무성할 게외다.



그래도 윤동주 시인에겐 패, 경, 옥이란 여친이라도 있었지....
"내 이름자를 써 보고 흙으로 덮어 버"린 이유를 창씨계명 이후 한국 이름을 (바닥에) 쓰고, 얼른 지웠으리란 추측이 있지만.. 지금 난 센티해진 자아를 황급히 정리해버린 걸로 해석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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