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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우 패망 보고서

김우중 씨가 한국으로 자진 입국을 했다 그와 함께 온 나라가 떠들썩하다. 한국경제를 무너뜨린 장본인 탁월한 경영인 등 그에 대한 평가는 엇갈리고 있다. 오늘자 보도에는 구속수감되어 검찰의 조사를 받고 있는 그를 경제인들이 선처를 호소하는 탄원서라도 작성할 모양이다. 나라경제를 말아먹은 그를 공적(?)을 들먹이며 연로한 그에게 선처를 호소할 거라는데 정몽구 회장도 그자리에 나왔다 한다.

가재는 게편인가?

 

 

"대우패망 예견 보고서, 당시로선 천기누설"
[인터뷰] 98년 '노무라보고서' 낸 고원종 동부증권 부사장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이 지난 14일 귀국한 이후 김씨 공과에 대한 의견이 분분한 가운데, 98년 10월 '대우사태'를 예견한 보고서를 작성해 파문을 몰고 온 고원종 동부증권 부사장이 다시금 화제가 되고 있다.

고 부사장은 지난 98년 10월 노무라증권 조사부 재직 시절 '대우그룹에 비상벨이 울리고 있다'(Alarm bells is ringing for Daewoo group)는 제목의 보고서를 통해 대우사태를 예견했었다.

<오마이뉴스>는 15일 오후 서울 여의도 동부증권 본사 사무실에서 고 부사장을 만나 대우관련 보고서를 작성하게 된 배경과 김 전 회장 귀국과 관련한 그의 입장을 들어봤다.

당시 보고서가 시장에 불러온 충격은 거의 '쓰나미'급이었다. 이 보고서가 나오면서 당시 시중에 떠돌던 대우 위기설이 본격적으로 수면위에 떠오르게 됐다. 이에 따라 슬슬 시장의 눈치만 살피던 금융권에서도 본격적으로 자금을 회수하기 시작했다.

고 부사장은 당시 이 같은 '보고서 파문'에 대해 "이를테면 천기누설 때문이 아니겠냐"고 말했다. 그는 "자신감을 갖고 보고서를 쓸 수 있었던 것은 내가 남들보다 많이 알고 있어서가 아니라 남들이 하지 못한 일을 행동으로 옮길 수 있는 용기가 있었기 때문"이라며 "지금도 그런 상황이라면 똑 같이 보고서를 작성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또 "이제와서 돌이켜보면 당시 외국계 증권사에 소속돼 있었기 때문에 보고서 작성이 수월했다"고 털어놓았다. 그는 "만일 한국 증권사 소속이었다면 보고서를 썼더라도 윗 선에서 '커트'가 돼 빛을 보지 못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고 부사장은 "다만 지금은 98년 당시 대우처럼 바퀴 하나에 의존해 위태롭게 굴러가는 대기업은 찾아보기 힘들다"며 "보고서 작성이후 한국 기업의 질이 크게 개선된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보고서가 나올 당시 한국의 한 대형증권사 투자분석부에 근무했던 한 관계자는 "비록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글로 옮겨놓았다고 하지만 당시 사회 분위기상 누구도 이 같은 보고서를 쉽게 내놓지 못했다"며 "분명한 건 이 보고서가 발표된 이후부터 각 증권사들도 그제서야 대우 관련 보고서를 하나둘 내기 시작했다"고 술회했다.

고 부사장은 "요 며칠전부터 하루에도 수십번씩 언론사 등으로부터 김우중 회장 귀국에 대한 소회와 공과에 대한 재평가를 해달라는 요청이 들어오고 있다"며 "그러나 전부 '노코멘트'로 일관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당시도 그랬고 지금도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다만 내 일을 했을 뿐'이다"고 덧붙였다.

고 부사장은 보고서 파문 이후 ABN암로증권 리서치헤드, SG증권 한국지점장 등 외국계 증권사를 두루 거친 후 지난 2003년부터 동부증권 리서치센터장 및 부사장으로 일해오고 있다.

대우 패망 예견한 '노무라보고서'란?

1998년 10월 29일 노무라증권에서 '대우그룹에 비상벨이 울리고 있다'(Alarm bells is ringing for Daewoo group)는 제목을 단 기업 분석보고서를 발표한 이후 시장은 발칵 뒤집혔다. 당시 이 보고서는 대우가 안고 있는 핵심 리스크를 적나라하게 분석해 시장에 큰 파문을 몰고 왔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대우위기 핵심을 크게 세가지로 분류했다. 우선 정부에서 채권발행을 규제하면서 더 이상 채권발행을 통한 자금 조달이 힘들어졌다는 것이다. 여기에 증자를 통해 자본시장에서 자금을 끌어모으려 했지만 당시 삼성, LG만으로도 버거웠기에 이마저 쉽지 않았다.

결국 보유중인 자산을 팔아 유동성을 확보해야 했으나 대우가 보유한 자산은 대부분 '3류'에 해당해 이 역시 불가능했다는 것. 물론 이 같은 내용이 전혀 새로운 것은 아니었지만 당시 사회 분위기상 이를 보고서화하기는 쉽지 않았다.

이 보고서가 나오면서 당시 시중에 떠돌던 대우 위기설이 수면위에 떠오르게 됐고, 금융권의 자금회수 역시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보고서를 작성한 고원종 동부증권 부사장은 당시 이 때문에 주변으로부터 비난과 협박에 시달려야 했다.

고 부사장이 과거 삼성투자자문에서 근무한 경력 때문에 이른바 '삼성배후설'이 시장에 퍼진 것. 그러나 고 부사장이 사회 생활의 첫 발을 대우그룹(대우투자금융)에서 시작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이 같은 근거없는 '설'도 금세 사그라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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