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범아, 넌 여길 지킬 수 없어

 

 

오늘 창 밖으로 밧줄이 계속 오르락 내리락 한다.

뭔가 공사를 하거나 다른 집에서 인터넷 선이라도 끌어올리나보지.

 

그랬더니 범이가 하루종일 창 밖 감시/경계 경보 모드다.

미어캣처럼 펭귄자세로 서서 온 주의력을 다해 바깥에 신경을 집중한다.

방어 준비 자세와 공격 준비 자세를 번갈아 취하면서.

같이 있는 내가 괜찮다고 해도, 느긋하게 굴어도, 저 애의 영역 보호 본능을 어쩔 수는 없다.

 

평소의 적정 수면량을 반납하면서까지 낮 시간 내내 그러는 걸 본다.

 

저 조그만 고양이.

작고 바보같고 순진하고 본능뿐인 저 조그만 짐승.

말랑말랑한 몸뚱아리, 한 손아귀에 들어오는 목덜미를 잡으면 꼼짝도 못하는 작은 고양이.

쉘터와 이 집안 말고는 밟아본 적도 없는 어린 고양이.

네가 뭘 할 수 있다고.

만일 정말로 이 집이 침입이라도 받으면, 이 집에서 나나 네 주인이 없어진다면,

네가 뭘 할 수 있다고.

100% 속수무책일텐데, 저 조그만 고양이.

아무리 방어 자세를 취해본들, 경계를 게을리 하지 않은들,

이 영역의 아무것도 넌 지켜내지 못할텐데.

 

아(我)를 지각하려면 타(他)가 필요한 법이다. 

고양이를 보면 인간을 생각하게도 된다.

과연 우리는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새삼 더듬어보게 된다.

끈에 매달린 장난감을 좇는 저녀석처럼 우리는 자동반사적으로 무엇에 집착하고 있을까,

사냥감을 겨냥하며 엉덩이를 씰룩대는 저녀석처럼 우리는 사뭇 진지하게 어떤 우스운 짓을 하고 있을까,

결국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방어를 위해 저녀석이 경계를 늦출 수 없듯,

우리는 어떤 대항할 수 없는 것을 핸들링하기 위해 부질없는 몸짓을 그만둘 수 없어할까.

놓을 수가 없다는 것은, 인간에겐 의지일까 본능일까.

 

범아, 넌 여길 지킬 수 없어.

하지만 넌 그래도 괜찮아.

그런 네 인생을 책임질 의사도, 의지도 우리에겐 얼마든지 충만하니까.

어쩌면 그게 저녀석과 우리의 결정적인 차이일런지도 모른다.

트위터로 리트윗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