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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하는 세상

 이해한다. 그 심정. 정말로.

지난 정권 시절 탄핵 정국 지나고 총선이 있을 무렵 써놨던 글들 보면 알 거다.
가장 냄새나는 똥더미가 저기 있고 우선적으로 그걸 치워버리자는데,
어째서 동의하질 않는지 참으로 답답하기 그지없었다.
탁상 공론만 하는 것들이 원칙만 앞세우느라 전략전술은 쓸 줄도 모르거나,
더 크게는 결국 지들의 정치적 욕심 때문이라고 생각했고.
 
나도 그 심정 안에 있었기 때문에 이해는 하지만, 이제는 그 입장이 아니다.
 
당장 눈 앞에 있는 적을 이기자는,
그렇게 싸울 선수를 링에 올려보내야 할 게 아니냐는 대의에
이젠 옳다꾸나가 안되는 게,
10년 간의 지난 정권을 지나며 사람들이 그 정권을 어떻게 대했는지를 봤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노무현을 뽑으면서,
아니 '대통령'을 뽑으면서 가졌던 기대치의 정체가 어떤 것이었는지,
5년간 참여정부가 겪었던 부침들과
5년이 끝나갈 무렵엔 '모든 게 다 놈현 때문이다'란 말을 달고 다니에 됐던 일반 대중과
결국 그들이 이명박을 같은 자리에 뽑아 올려놓은 것을 보면서,
이 사회가 원하는 것이 뭔지를 보았기 때문이다.
이 사회의 기반 자체가 이런 이상,
어떤 '나름 괜찮아 보이는' 놈 몇몇을 정치판에 올려다 놔도 상황은 마찬가지일 것이다.
어쨌거나 지금의 대한민국은 민주주의 국가이며, 여기에서 정치란
정치판 리그가 세상과 똑 따로 떨어져
거기 올라간 걔네들끼리 노는 걸 우리가 객석에서 관전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 성원들이 가진 욕망을 반영하는 거울이기 때문이다.
 
진보적 사회는, '진보적이어 보이는 인사'가 링에 올라가는 것 자체로는 와 주지 않는다.
지금의 이 상태에서 그 사회가 오게 만드려면,
더더욱 뿌리깊은 기저에서부터 변화가 필요하다는 의식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건 근시안적으로 당장 이번 싸움에서
대장으로 앞에 서 있는 놈 쓰러뜨린다고 될 일이 아니다.
그놈이 대장으로 앞에 설 수 있는 이유가 되어준 베이스가 대장 뒤엔 버티고 있다.
그 베이스는 추상적인 악이 아니라,
실체를 지니고,
어디 따로 떨어진 곳이 아닌 바로 내 옆을 오늘도 스치고 지나가고 있는 수백만명의,
나랑 더도 덜도 아닌 등가를 지닌 사람들이다.
 
대장의 실체는 그들이다. 대장 자체가 아닌 거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을 져서 분하게 만드는 게 아니라,
그들이 욕망하는 세상도 내가 욕망하는 세상과 큰 출혈로 상충하지 않아질 때,
그 때에 가서야 나도 비로소 행복할 수가 있다.
그렇지 않고서는
그들의 대장이 져봐야 내 괴로움이 절대로 사라지지 않더라는 경험적 교훈을,
나는 지난 정권 때 얻은 거였다.
 
그런 근본적 사회의식 변화를...
당면한 선거에서 당장 될성싶은 야권인사가 이기게 만든다-
-가 끌어낼 수 없다고 판단하는 것이다.
지난 정권이 들어설 무렵 난 그게
노무현을 대통령으로 올려놓을 수 있는 사회 정도면 될 거라고 봤지만
그걸로는 안되는 거였다.
참여정부 시절 난 노무현과 민주/열우당의 한계보다도,
그들을 통해 고스란히 비추이는 사회의 한계를 절감했고
그게 너무나도 나를 괴롭게 했다.
확실한 수구인 한나라는 거부했으니까,
민주/열우/혹은 노무현을 지지했다는 건 그럼 확실한 수구는 싫다는 거니까,
그 정도면 더 나은 방향으로 더 나아갈 수 있을 거라고 기대했던 거지.
헌데 유럽같은 데다 갖다놓으면 잘 봐줘봐야 중도 우파 정도일 민주계열을
보수에 확실히 반하는 세력으로 위치시키는 레벨의 사회 의식으론,
안되는 거였단 거다.
나는 뽕발 넘치는 핑크색이어야겠는데,
그레이스케일만 난무하던 세상에 사람들이 틔미한 연분홍도 이쁘다고 해주기 시작하니깐
아 이제 됐나부다, 했는데,
결국 대다수의 사람들이 원한 건 약간의 데코레이션을 가미한 모노톤이었지
여전히 뽕발 컬러는 생경하고 불온했던 거라.
그래서 이젠 생각하는 거지.
꽃핑크 세상을 원하면, 결국은 꽃핑크를 집어들고 칠할 수 있는 세상이어야 된다는 걸.
 
사람들의 방향성이 컬러풀이었더라면, 그럼 난 눈 앞의 현실은 연분홍이어도 좋았을 것이다.
 
혹여 당신들은 대장을 쓰러뜨리는 것 만으로도 만족할 수 있는지 모르겠지만,
난 그 뒤에 야기돼야 할 좋은 세상까지를 상정해야한 하겠고,
그것은 가장 그런 의식에 가까운 자를 링에 올려놓을 수 있는 사회라야 가능하고,
내 목표는 그런 사회를 만드는 것이지
저 대장을 쓰러뜨리는 게 아닌 것이다.
저 대장은 내 진정한 적이 아니다. 
저놈을 대장으로 만든 현재까지의 사회풍조 내지는 습속이지.
 
물론.. 앞서도 말했다시피, 이해한다.
나는 멀게 가는 길을 얘기하고 있다, 현실적으로.
당신들은 대장을 이기면 원하는 사회로 가는 게 더 쉬워진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걸 두고 각자 가진 전투 태세의 형태가 다르다고도 할 수 있겠지만,
나로선 지나치게 낙관적인 생각이라고 지금은 여긴다.
당신들은 지금의 반MB 정서가 충분한 것이라고 생각하나?
그것이 곧 反수구의 표상이며 개혁 의지로 연결될 수 있는 것이라고?
..난 비슷하게 생각했다가 크게 데었고, 대빵 뜨거웠고,
같은 방책을 다시 써봤자 소용 없다고 생각하는 거다.
그런 견지에서 보면 견딜 수 있는 괴로움의 종류나 정도가 다른지도 모르겠고.
 
원하는 세상도 다를까?
글쎄, 그렇게까지 다를 거라고, 지금은 생각 안하고 싶네.
단일화 후보가 나온대도 좋고, 참여당 인사가 당선되는 것도 역시 진심으로 환영할거다.
당신들 말대로, 한나라당이 이기는 것보단 당연히 낫잖아.
하지만 당신들이 '어째서 대동단결하지 않고 지들 욕심만 고집하느냐'고 질타하는 게,
보는 기분이.. 씁쓸하고. 착잡하고. 쫌 야속하기도 하고.
뭐. 그렇다는 거지.
 
 
p.s/ 내 이런 빈궁한 얘기 대신 읽을 만한, 산하님 글: http://nasanha.egloos.com/104943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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