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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분당권에서 결국 당선되는 정치세력을 보건대 강남좌파는 허상이란다.
날 표상해줄 수 있는 용어가 유통되는구나!라고 생각하게 되면, 계속 그 용어를 쫓아다니며 변명하게 된다. 나란 개체의 정확한 좌표를 지칭하는데에 그 용어가 쓰이도록 만드려 애쓰면서. 기호와 실재의 불일치라는 딜레마는 어디에나 깔려있다.
오늘 창 밖으로 밧줄이 계속 오르락 내리락 한다.
뭔가 공사를 하거나 다른 집에서 인터넷 선이라도 끌어올리나보지.
그랬더니 범이가 하루종일 창 밖 감시/경계 경보 모드다.
미어캣처럼 펭귄자세로 서서 온 주의력을 다해 바깥에 신경을 집중한다.
방어 준비 자세와 공격 준비 자세를 번갈아 취하면서.
같이 있는 내가 괜찮다고 해도, 느긋하게 굴어도, 저 애의 영역 보호 본능을 어쩔 수는 없다.
평소의 적정 수면량을 반납하면서까지 낮 시간 내내 그러는 걸 본다.
저 조그만 고양이.
작고 바보같고 순진하고 본능뿐인 저 조그만 짐승.
말랑말랑한 몸뚱아리, 한 손아귀에 들어오는 목덜미를 잡으면 꼼짝도 못하는 작은 고양이.
쉘터와 이 집안 말고는 밟아본 적도 없는 어린 고양이.
네가 뭘 할 수 있다고.
만일 정말로 이 집이 침입이라도 받으면, 이 집에서 나나 네 주인이 없어진다면,
네가 뭘 할 수 있다고.
100% 속수무책일텐데, 저 조그만 고양이.
아무리 방어 자세를 취해본들, 경계를 게을리 하지 않은들,
이 영역의 아무것도 넌 지켜내지 못할텐데.
아(我)를 지각하려면 타(他)가 필요한 법이다.
고양이를 보면 인간을 생각하게도 된다.
과연 우리는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새삼 더듬어보게 된다.
끈에 매달린 장난감을 좇는 저녀석처럼 우리는 자동반사적으로 무엇에 집착하고 있을까,
사냥감을 겨냥하며 엉덩이를 씰룩대는 저녀석처럼 우리는 사뭇 진지하게 어떤 우스운 짓을 하고 있을까,
결국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방어를 위해 저녀석이 경계를 늦출 수 없듯,
우리는 어떤 대항할 수 없는 것을 핸들링하기 위해 부질없는 몸짓을 그만둘 수 없어할까.
놓을 수가 없다는 것은, 인간에겐 의지일까 본능일까.
범아, 넌 여길 지킬 수 없어.
하지만 넌 그래도 괜찮아.
그런 네 인생을 책임질 의사도, 의지도 우리에겐 얼마든지 충만하니까.
어쩌면 그게 저녀석과 우리의 결정적인 차이일런지도 모른다.
일단 만화가 양재현씨의 글이 촉발제가 되어 올라온, ZDnet의 기사.
http://www.zdnet.co.kr/Contents/2010/03/11/zdnet20100311115101.htm
...曰, "만화는 원천 콘텐츠로서 원소스 멀티 유즈(OSMU)의 가치가 높다.
업계, 기관, 독자 모두의 노력이 필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만일 정말로 OSMU만이 만화라는 것의 가치라면,
그냥 망해버리라고 해.
딴데다 갖다 쓸 컨텐츠 풀이 문제라면,
만화 만들 머리가 되는 애들,
드라마 업계니 영화판이니에서 흡수해다가 컨텐츠 만들라고 하면 되는 거 아냐.
왜 만화더러 그런 일에 복무하라는 거냐.
그것이 만화의 '존재가치'라고?
그런 역할이라면, 굳이 꼭 만화가 아니어도 상관없다는 얘기잖아.
뭐가 됐든 같은 기능만 해 줄 수 있으면 된단 얘기니까.
결국 꼬리치고 새끼쳐서 번듯하게 다른 업계 배까지 불려줄 수 없다면 필요없단 얘기나 마찬가지잖아.
만화라는 것 자체엔 관심 없다는 얘기고,
만화는 그 자체로 자족할 만한 존재는 아니란 얘기지.
정말 그런 거라면, 뭘 반드시 보호해야만 하겠어?
회생시키려면 이만저만 수술해야 할 게 아닐텐데, 그냥 망해버리라고 해.
반드시 만화여야 하는 것도 아니라며. 대체제 구해서 갖다 써.
산업적 우월만을 논하는 정신상태론, 구멍가게 스케일로 전락한 이 업계 어차피 못 살려.
걱정하는 척이나 하지 마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