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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의 왼쪽

 강남/분당권에서 결국 당선되는 정치세력을 보건대 강남좌파는 허상이란다.

강남/분당권에서 야당 지지율이 높게 나오는 지역은
알고보면 재개발 문제가 얽힌 곳인지라 강남좌파는 허상이란다.
 
그래.
유의미한 현상이 수반되지 않으면 없는 거나 진배없다.
 
허나 강남좌파라는 정치적 현상은 허구일런지 몰라도,
'강남권 사람인데 왼편 성향인 사람'들,
그 개개인의 사람들이 '없는 사람'이 될 수 있는 건 아니다.
제아무리 조낸 적을지라도.
최소한 그냥 '무시해도 된다'고 해주라. '없다'고 하진 말고.
멀쩡히 살아있는데 죽은 사람 취급 당하는 거 같잖아, 꼭.
 
강남에서 좌편향인 사람이라는 건 통계적 결과로 말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물질적, 경제 계급적 환경이 빚어낸 것이라곤 볼 수 없는
그냥 돌연변이이기 때문이다.
그런 돌연변이가 몇 마리 있어봤자 큰 그림에 균열내기 어려운 게 당연지사다.
투표 결과 운운했냐?
내가 2002년 대선 제외하고 근 10여 년 새 내가 찍은 사람이 당선되는 꼴을 단 한 차례라도 봤을 것 같냐?
국회의원은 고사하고 그 많은 후보들이 난립하는 지방 선거에서도.
진짜로 한 사람도 없어, 꼴랑 단 한 사람도.
내가 찍는 사람은 무조건 압도적 표차로 떨어지는 꼴만 죽자고 보는 게,
부모 형제 친척 이웃 친구들 중 아무도 나랑 같은 사람은 지지하지 않는 걸 보는 게,
결코 웃고 넘겨버릴 만한 기분인 건 아니다.
게다가 그 지지 성향은 내가 설득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몰라서', ;부질없는 욕망 때문에' 그러는 게 아니거든.
그들의 지지 성향은 그들의 계급적 이익과 맞아떨어지기 때문에 그러는 거거든.
돌연변이에게 친절한 콜로니가 어디 존재하던가?
끽소리 못하고 짜쳐 지내기 십상이다.
어쩌다 argue라도 벌어지면, 맨날 나만 웃기고 이상한 놈 되는거야.
 
더군다나 강남 출신 따위가 아니어서 자아분열 안 겪어도 되는 명실상부 좌파들한테도,
출신 성분에 위배되는 소리나 지껄이는 이상한 것들에 불과하고.
같은편 취급 안해주지. 믿지도 않고.
이해는 해. 뭘 보고 믿겠냐.
숫자도 적고. 언제 배신 때릴지도 모르고. 있으나 마나한 놈들이지 뭐.
 
강남권의 헤게모니를 쥔 측이 하는 얘기는 피가 거꾸로 도는 것 같아서 들어줄 수가 없고,
심리적으로 준거하고픈 측에서 하는 얘기는 모두 '밖에서 바라본 강남'얘기 뿐이다.
밖에서 본 모습이 실상과 얼마나 닮아 있겠어?
종종 그 '상위 몇%'들에 대해 희망찬 과소평가들을 하는데,
난 그런거 볼 때마다 절망적으로 소름이 쪽쪽 끼쳐.
온통 '카더라'스런 논조로밖엔 그려지지 않는 곳.
객체로밖엔 인식되지 않는다는 걸 볼 때마다
또 없는 사람 취급 당하는 느낌이지.
이건 탓을 한다기보단, 그냥 확인 사살당하는 그런 느낌이란 얘기다.
 
현존 카탈로그에는 번번이 체크할 수 있는 카테고리가 없다고 느끼는 게
비단 한 두 가지 경우 뿐이겠냐마는.
누구나 자기가 나고 자란 곳이 그래도 맘 편해야 하는 법이거늘,
생태 환경이 걸러준 gene을 고대로 이어받지 않은 돌연변이들은 고향이 안식처가 되지 못한다.
민주당에 표를 줬던 영남권 출신들이 명절 귀향 시즌만 되면 다구리 당하는 것처럼.;
그래도 사람에겐,
여기가 내가 있을 곳이다..라고 느껴지는 장소가, 있어야 하는데.
 
 
p.s/..그리고 사실 이런 거다.
 

날 표상해줄 수 있는 용어가 유통되는구나!라고 생각하게 되면, 계속 그 용어를 쫓아다니며 변명하게 된다. 나란 개체의 정확한 좌표를 지칭하는데에 그 용어가 쓰이도록 만드려 애쓰면서. 기호와 실재의 불일치라는 딜레마는 어디에나 깔려있다.less than a minute ago via we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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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아, 넌 여길 지킬 수 없어

 

 

오늘 창 밖으로 밧줄이 계속 오르락 내리락 한다.

뭔가 공사를 하거나 다른 집에서 인터넷 선이라도 끌어올리나보지.

 

그랬더니 범이가 하루종일 창 밖 감시/경계 경보 모드다.

미어캣처럼 펭귄자세로 서서 온 주의력을 다해 바깥에 신경을 집중한다.

방어 준비 자세와 공격 준비 자세를 번갈아 취하면서.

같이 있는 내가 괜찮다고 해도, 느긋하게 굴어도, 저 애의 영역 보호 본능을 어쩔 수는 없다.

 

평소의 적정 수면량을 반납하면서까지 낮 시간 내내 그러는 걸 본다.

 

저 조그만 고양이.

작고 바보같고 순진하고 본능뿐인 저 조그만 짐승.

말랑말랑한 몸뚱아리, 한 손아귀에 들어오는 목덜미를 잡으면 꼼짝도 못하는 작은 고양이.

쉘터와 이 집안 말고는 밟아본 적도 없는 어린 고양이.

네가 뭘 할 수 있다고.

만일 정말로 이 집이 침입이라도 받으면, 이 집에서 나나 네 주인이 없어진다면,

네가 뭘 할 수 있다고.

100% 속수무책일텐데, 저 조그만 고양이.

아무리 방어 자세를 취해본들, 경계를 게을리 하지 않은들,

이 영역의 아무것도 넌 지켜내지 못할텐데.

 

아(我)를 지각하려면 타(他)가 필요한 법이다. 

고양이를 보면 인간을 생각하게도 된다.

과연 우리는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새삼 더듬어보게 된다.

끈에 매달린 장난감을 좇는 저녀석처럼 우리는 자동반사적으로 무엇에 집착하고 있을까,

사냥감을 겨냥하며 엉덩이를 씰룩대는 저녀석처럼 우리는 사뭇 진지하게 어떤 우스운 짓을 하고 있을까,

결국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방어를 위해 저녀석이 경계를 늦출 수 없듯,

우리는 어떤 대항할 수 없는 것을 핸들링하기 위해 부질없는 몸짓을 그만둘 수 없어할까.

놓을 수가 없다는 것은, 인간에겐 의지일까 본능일까.

 

범아, 넌 여길 지킬 수 없어.

하지만 넌 그래도 괜찮아.

그런 네 인생을 책임질 의사도, 의지도 우리에겐 얼마든지 충만하니까.

어쩌면 그게 저녀석과 우리의 결정적인 차이일런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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됐으니 가던 길이나 가세요

일단 만화가 양재현씨의 글이 촉발제가 되어 올라온, ZDnet의 기사.

http://www.zdnet.co.kr/Contents/2010/03/11/zdnet20100311115101.htm

...曰, "만화는 원천 콘텐츠로서 원소스 멀티 유즈(OSMU)의 가치가 높다.
업계, 기관, 독자 모두의 노력이 필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만일 정말로 OSMU만이 만화라는 것의 가치라면,
그냥 망해버리라고 해.

딴데다 갖다 쓸 컨텐츠 풀이 문제라면,
만화 만들 머리가 되는 애들,
드라마 업계니 영화판이니에서 흡수해다가 컨텐츠 만들라고 하면 되는 거 아냐.

왜 만화더러 그런 일에 복무하라는 거냐.
그것이 만화의 '존재가치'라고?
그런 역할이라면, 굳이 꼭 만화가 아니어도 상관없다는 얘기잖아.
뭐가 됐든 같은 기능만 해 줄 수 있으면 된단 얘기니까.
결국 꼬리치고 새끼쳐서 번듯하게 다른 업계 배까지 불려줄 수 없다면 필요없단 얘기나 마찬가지잖아.

만화라는 것 자체엔 관심 없다는 얘기고,
만화는 그 자체로 자족할 만한 존재는 아니란 얘기지.
정말 그런 거라면, 뭘 반드시 보호해야만 하겠어?
회생시키려면 이만저만 수술해야 할 게 아닐텐데, 그냥 망해버리라고 해.
반드시 만화여야 하는 것도 아니라며. 대체제 구해서 갖다 써.

산업적 우월만을 논하는 정신상태론, 구멍가게 스케일로 전락한 이 업계 어차피 못 살려.
걱정하는 척이나 하지 마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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