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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는 냉정하게 가슴은 뜨겁게”

 

“머리는 냉정하게 가슴은 뜨겁게”

 

 

 

- 성승욱(노동자혁명당 추진모임 회원)

 

 

이 글은 <쌍용차 희망텐트촌 노동자참가단>과 <쌍용차지부>가 공동으로 진행하는 "전국순회투쟁"에 참가한 노동자혁명당 회원인 성승욱 동지가 [미디어 충청]에 기고한 글이다. 본 글은 [미디어 충청(http://www.cmedia.or.kr)] 2월 5일자 기사에 실렸다.

 

  모두가 들떠 있던 민족 최대의 명절이라는 설을 며칠 앞두고 쌍용차 해고자 1명이 또 자본으로부터 죽임을 당했다. 벌써 20명이다. 그리고 일자리를 잃어버린 해고자들은 몇 년에 걸친 경제난으로 인해 그 고통은 가중되고 있다. “쌍용차 희망텐트촌 노동자 참가단”(이하 ‘노동자 참가단’이라 함)은 이러한 자본으로부터의 죽임에 대한 절규와 공장으로 돌아가자는 쌍용차 해고자들의 처절한 목소리를 직접적으로 반영한 결과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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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 또한 이러한 목적을 알고 있고 대략 200곳의 투쟁사업장 중 일부만이라도 방문하고 그 곳의 노동자들을 직접 만나서 소통을 할 수 있는 기회가 거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노동자 참가단에 반드시 참가하고 싶었고 정말이지 운이 좋게도 그 기회를 잡게 되었다.

 

 

2월 1일(첫째 날)

 

  유성영동지회의 조합원들과 함께 굳게 닫힌 정문을 열다전날 서울에서의 준비 과정이 덜 끝났던 이유로 당일 새벽에 2명의 노동자 참가단 활동가와 유성기업 영동지회로 출발을 했다. 가는 도중에 쌍용차 평택공장에서 출정식을 했던 인원과 만났다. 10시에 도착을 했고 내린 순간 우리를 본 경비들과 관리들은 바로 정문을 막았지만 곧 유성영동지회의 조합원들이 나오면서 한동안의 실랑이 후 노조 사무실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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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간담회가 시작되고 노동자 참가단에서는 3차 포위의 날 참석을 호소했으며 노동자 참가단의 취지를 설명했다. 이어 유성조합에서는 사측이 노동자들이 모이고 연대하는 것을 가장 두려워하기 때문에 민주노조에 대한 방해공작으로 기업노조를 설립한다고 했으며 향후 노동법 개정 투쟁을 전개해야 한다고 했다.

 

  두 번째는 울산의 효성을 방문했다. 이 날은 효성의 박현정 전 위원장의 1주기 추모제였다. 잠깐 동안 효성 및 지역의 활동가들과 인사를 나누고 추모제를 진행했다. 진행되는 동안 효성 자본에서는 고인의 추모제는 아랑곳하지 않고 가요를 계속 틀어댔다.

 

  현 자본주의 체제 하에서 인간의 껍데기를 뒤집어썼다고 해서 모든 인간이 평등하지 않다는 것은 알고 있었으나 현실은 더 그러했다. 다시 한 번 고 박현정 전 위원장의 명복을 빌면서 효성을 뒤로 했다. 날씨만큼이나 마음 또한 정말 추웠다.

 

  세 번째 투쟁사업장은 울산 현대차였다. 5시에 울산 현대차 비정규직지회 집회 및 선전전을 진행했다. 7시에는 야간조 출근선전전을 진행했다. 선전전을 진행하면서 내가 눈여겨봤던 점은 공장을 출입하는 노동자들 중 적지 않은 수의 노동자들의 얼굴이 너무 어려 보였다.

 

  얼마 전 한 사이트에서 읽었던 글 하나가 순간 스쳐갔다. 내용은 자본가가 싼 노동력을 공급받기 위해 아직 졸업도 하지 않은 고등학생들을 취업시켰고 그 중의 한 학생이 노동을 하다가 뇌출혈로 쓰러졌다는 기사였다. 물론 지금 이 순간에도 많은 노동자들의 자본의 이윤 때문에 죽어나가고 있지만 말이다. 자본은 결코 도덕적 가치로 기준을 삼을 수 없는 이 사회에서 반드시 그리고 무조건 박살내야할 그러한 것일 뿐이다.

 

 

2월 2일(둘째 날)

어용노조를 몰아내고 민주노조를 세운 다스지회

 

  아침 7시에 어제와 마찬가지로 현대차 울산공장 앞에서 선전전을 진행했다. 서있는 것 자체만으로도 너무 추운 날이었다. 뉴스에서는 며칠 전부터 동파에 대해 자주 보도를 했었다. 50여년 만에 찾아온 한파라고 했지만 그 한파가 자본가들과 그 기생충들이 노동자들 특히 비정규직 노동자들 및 해고 노동자들 등을 난도질했던 서슬이 퍼렇게 날이 선 칼보다 더 심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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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 번째 사업장을 방문하기 전 지난 8일 돌아가신 현대차지부 고 신승훈 열사를 찾아뵈었다. 신승훈 열사를 찾아뵙기도 전에 입구에는 벌써부터 수많은 화환들이 줄을 서고 있었다. 국회의원들 등등. 수많은 화환의 주인들이 돌아가신 분을 애도하기 위해 바쳤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왜 이렇게 씁쓸한 것인가? 어제와 같이 열사의 명복을 빌면서 다시금 발걸음을 옮겼다.

 

  경주지부 다스 지회는 이명박의 친형인 이상득의 소유라고 한다. 그 놈의 그 형이다. 그러나 현재 노조인 다스 지회는 어용노조를 몰아내고 현재의 민주노조를 세웠다. 정문을 통과하는 것부터 어제 유성과는 180도 달랐다. 오히려 어색할 정도였다.

 

  조합원들의 안내를 받아 최근 신축했다는 제3공장을 방문했다(나의 공장 첫 경험이기도 하다). 공장 내부 노동자들의 표정에는 뭔가 힘이 넘쳤고 여유가 있어 보였다. 거기에 수많은 플래카드 중에서 한가운데 떡하니 달려 있던 ‘한미 FTA 날치기 무효! 이명박 퇴진, 나라경제 팔아먹은 한나라당 매국노를 심판하자!’는 플래카드가 바로 지금의 다스 공장의 분위기를 반영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리고 조직이란 결국 선진적․조직적 노동자들의 활동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겠는가! 이후 간담회와 중식 선전전을 진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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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 번째 방문한 사업장은 2011년을 뜨겁게 달궜던 한진중공업 지회였다. 한진중공업 본사 맞은편의 조그마한 다세대 주택에 위치한 사무실에서 조함원들은 우리를 반갑게 맞아주었다. 간담회 때 지회 측에서 나왔던 내용은 지회의 한 조합원이 ‘복수노조가 이렇게 빨리 만들어 질지 몰랐다’라고 말을 했듯이 한진중공업 자본은 유성과 마찬가지로 복수노조 설립을 시작했으며 조합원들을 끌어들이기 위해 가입자들에게 비열하게도 1,000만원(구정 전 300만원 지급, 3월 22일 대출금 형식으로 700만원 지급 예정이나 상환계획과 같은 형식적 측면이 부재)이라는 생계비를 지급하고 있다는 것이며 유성지회와 마찬가지로 복수노조에 대한 고민을 갖고 있었다.

 

  그리고 ‘자본은 여태껏 노동의 반격을 막기 위해 철저히 준비했지만 민주노총은 전혀 그러지 못했다’ 그리고 ‘생활고로 인해 복수노조로 갈 수 밖에 없는 노동자들을 만나러 가도 그들이 만나는 것을 어려워하고 피하기 때문에 공장을 가본지 꽤 됐다’는 말로 현재 지회의 안타까움을 표현했다. 이후 본사 앞에서 지회 조합원들과 함께 선전전을 진행했다.

 

  부산시청 앞에서 노숙투쟁을 하고 있는 풍산자본(방위산업체)의 노동자들을 만나는 것으로 노동자 참가단 2일차를 마쳤다.

 

 

2월 3일(셋째 날)

“유족들이 도리어 사과를 받기 위해 그 사람들 앞에서 무릎을 꿇었다니...”

 

  오전 7시 쌍용차 창원공장 앞에서 창원 지역의 활동가들과 함께 출근 선전전을 하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했다. 이후 창원 지역 활동가들과의 간단한 간담회를 진행했다. STX 기업의 한 비정규직 해고 노동자는 STX 조선소가 ‘개인소사장제’를 도입해서 노동자를 특수고용직으로 전환시키고 있으며 한 하청 노동자가 작업 중 1월 18일에 사망을 했다고 전했다. 이에 오늘 저녁 7시에 STX 기술원 앞에서 급하게 규탄 집회를 하게 되었고 이에 많은 연대를 바란다고 했다.

 

  두 번째 방문 사업장은 대공장인 한국GM 창원공장이었다. 간담회를 통해서 노동자 참가단은 제 3차 포위의 날과 노동자 참가단 순회 방문의 취지를 설명했다. 그리고 쌍용차 조합원들과 그의 가족들의 생활고를 조금이나마 완화시키기 위해서 준비한 ‘쌍용차지부 생활안정기금 CMS’ 용지를 전달하면서 GM지회 조합원들의 많은 관심과 참여를 호소했다.

 

  이후 중식시간에 맞춰 선전전을 진행했다. 진행하는 동안 대부분의 노동자들은 홍보물을 적극적으로 받고 먼저 인사를 하는 등 호의를 보여줬으나 2 ~ 30대의 젊은 노동자들은 많은 경우 관심을 갖고 있지 않음을 직접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세 번째는 ROTEM 지회를 방문해 홍보물과 CMS 용지를 전달하고 제 3차 포위의 날에 적극적인 연대를 호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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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후 6시 일정은 1조 - 창원 롯데백화점 비정규직 집회와 하청 노동자 사망에 대한 STX의 책임 촉구를 위한 규탄 집회와 2조 - 부산 풍산 촛불 집회로 조를 나눠 참석하기로 했다. 나는 5명의 활동가들과 1조로 남았다. 5시 30분부터 롯데백화점 해고자들과의 간담회 및 지역 활동가들과 촛불 집회를 진행했다. 이후 곧바로 인근 STX 기술원으로 자리를 옮겨 규탄 집회를 가졌다. STX의 한 해고 노동자는 고인의 사망 경과에 대해 발언했다.

 

  발언 내용은 다음과 같다. ‘불과 11일 만에 작업 중 사망을 했으며 그것도 탈의실이라고 사용하던 컨테이너 박스 안에서였다. 유족은 이에 대해 사과를 받으러 STX를 찾아 갔지만 오히려 너무 당당히 나온 그 사람들은(?) 자신들은 책임이 전혀 없으니 변호사한테 가서 이야기하라고 했으며 이에 유족들이 도리어 사과를 받기 위해 그 사람들 앞에서 무릎을 꿇었다’는 것이다.

 

  너무 화가 났다. 글로는 나오지 못할 감정이 나의 심장을 울렸고 그 울림이 나의 눈물샘을 자극했다. 이후 연대 활동가들의 발언을 거쳐 고인의 유족인 따님이 나와서 발언을 했다. 나오는 순간부터 눈물을 흘리는 모습은 굳이 말을 하지 않아도 그녀의 마음을 조금은 알 것 같았다.

 

  집회가 끝나고 나서 주위를 한번 둘러보았다. 참석자는 30명이 채 안되었다. 참석자 대부분도 롯데백화점 노동자들, 그 집회의 참석자들 그리고 우리 노동자 참가자단이었다. 민주노총의 조합원이 아니고 하청 노동자가 죽었기 때문에 이렇게 한산한 것인가? 도대체 이러한 비참한 처지의 노동자들을 보호하고 조직할 민주노총은 도대체 어디에 있단 말인가? 노동자들이 스스로 조직하고 나서 ‘민주노총에 가입을 하고 싶으니 받아주십시오’ 이렇게 나와야 조합원으로 인정이 되는 것인가? 도대체 무엇이 문제인가? 물어야 할 것이 너무나 많다.

 

  너무 울분이 솟구치고 답답하지만 단지 내 안에만 넣어두지 않고 이와 같은 문제를 제기하고 앞으로 많은 활동가들과 토론과 실천을 통해 전진해야 할 것이다.

 

'머리는 냉정하게 가슴은 뜨겁게‘란 말을 조금씩 이해할 것 같다. 그리고 아직 갈 길은 멀지만 그 길의 끝은 반드시 있다. 반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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