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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주의 혁명정당 건설의 목표와 과제는 여전히 유효하다

 

사회주의 혁명정당 건설의

 

목표와 과제는 여전히 유효하다

 

가칭)노동자혁명당 추진모임 회원 양효식 활동가와의 인터뷰

 

 

사노넷에서 발간하는 사회주의노동자에 실린 가칭)노동자혁명당(추)의 회원인 양효식 동지와의 인터뷰 기사글을 옮겼음을 알립니다.

 

<사회주의노동자정당건설 공동실천위원회>(이하 사노위) 는 지난 5월28일 3차 총회를 개최했다. 3차 총회를 앞두고 사노위 의견그룹 소속 활동가들은 사노위 해산에 관한 안건을 제출했다. 사노위가 출범한 지난해 5월 이후로 1년이 지났지만 강령 상의 통일을 이루지못했다는 이유에서였다. 하지만 3차 총회에서 이들이 제기한 사노위 해산안은 부결되었다. 사노위 해산을 주장했던 이들 중 일부는 <사노위 정치적 해산 선언자 모임>을 거쳐 <(가칭) 노동자혁명당 추진모임>을 꾸려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이에 사노신은 양효식 활동가를 만나 (가칭)노동자혁명당 추진모임이 만들어진 배경과 향후 계획에 대해 들어보았다.

 

 

 

  (가칭)노동자혁명당 추진모임에 대한 소개를 부탁드린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가칭)노동자혁명당 추진모임 회원들은 거의 대부분이 ‘사노위 정치적 해산 선언자 모임’에 속했던 동지들이다. (물론 그 이후 새롭게 결합한 소수의 동지들이 있다. 따라서 ‘해산 선언자 모임’과 (가칭)노동자혁명당 추진모임을 곧바로 등치시킬 수는 없다.)
 

  지난 5월28일 사노위 3차 총회에서 우리는 ‘강령 통일 실패에 따른 조직 해산의 건’을 총회 안건으로 상정하여 사노위 조직 해산을 요구했다. 애초 사노위는 3조직 및 개별 활동가들의 ‘공동실천위원회’로 출발했고, 1년 안에 강령, 전술, 조직상의 통일을 이뤄 단일 조직(사회주의노동자당 추진위원회)으로 전환하기로 했다. 이는 역으로 1년 안에 통일을 이뤄내지 못하면 강령에 따라 각자의 길로 간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만큼 강령과 노선이 조직규모나 쪽수보다 중요하다는 이야기다. 1년이 되었는데 강령 상의 차이가 해소 불가능한 차이로 판명 난 상황에서 애초 설정한 1년을 넘어 계속 간다는 것은 무원칙한 동거가 되는 것이므로 1년이 된 3차 총회에서 조직 해산을 요구한 것이다.
 

  그러나 사노위 내 ‘다수파’(2011년 1월 2차 총회 당시 ‘가입원서’ 건 표결을 계기로 형성된 다수파를 말함)는 조직보존주의 논리를 들어 해산을 끝내 거부했다. 이에 우리는 ‘사노위의 정치적 해산’을 선언하고 ‘선언자 모임’ 명의로 사노위 평가서(1차 보고서)를 냈다. 비록 사노위를 통한 당 건설은 실패했지만 사회주의 혁명정당 건설의 목표와 과제는 여전히 유효하며, 사노위 1년의 투쟁과 경험은 실패에도 불구하고 결코 헛된 노력이 아니라고 보아 당 건설 투쟁을 새롭게 다시 추진하는 것으로 동지들의 뜻을 모았다. 이것이 ‘가칭)노동자혁명당 추진모임’으로 표현된 것이다. 10월에 “가칭” 딱지를 떼어버리는 정식 출범총회를 개최할 계획이다.

 

 

 

  사노련, 사노위를 거치면서 지난 수 년 동안 추진되어 온 써클들의 통합 운동은 실패로 돌아갔다. 일부 음해성 평가들과 달리 당 건설이라는 대의 아래 써클들을 모아내려 했던 동지들의 의도는 분명 진정성을 가지고 있었다고 생각한다. 나름의 공과에 대한 평가는 하고 있겠지만 통합운동은 오히려 각 써클들의 정치적 차이를 선명히 드러내는 결과를 보여준 것 같다. 통합 운동을 가로막은 주요한 정치적, 조직적 차이는 무엇이라고 평가하는지?

 

  써클 통합이라기보다 당 건설로의 결집인데, 어쨌든 통합을 가로막은 핵심 요인은 결국 강령 문제와 당 건설투쟁 노선(경로)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사노련의 경우 강령 상에서는 대체로 일치를 이루어냈지만, 사노위 건설과정에서 나타났듯 당 건설투쟁 노선 문제에서 결국 차이를 해소하지 못하고 갈라졌다. 사노위는 ‘공동실천위원회’ 위상으로서 그 자체가 당 건설 경로이니까 당 건설 노선 문제보다는 결정적으로 강령 상의 화해할 수 없는 차이를 노정하고 있었기 때문에 ‘정치적 해산’이 선언된 것이다.
 

  차이의 구체적 내용을 말씀드리자면, 사노련의 경우 사노위 건설에 합류한 동지들과 사노련에 잔류한 동지들 사이의 차이는, 한 마디로 전자가 당 건설을 정세적 과제로, 당면 정치투쟁의 과제로 접근했다면 후자는 현장 기반을 꾸준히 확대해 나가는 과정 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으로 바라보고 있는 근본적 차이가 깔려 있었다고 본다. 설사 사노위 문제로 갈라지지 않고 모두가 사노련으로 남아 있거나 아니면 모두가 사노위로 합류했다 하더라도 그 차이가 해소되지 않았다면 최종 당 건설 과정에서 다시 불거졌을 거라고 생각한다.
 

  저는 당 건설이 ‘주체들 사이에서 강령, 전술, 조직 문제를 둘러싼 투쟁을 통한 당 건설’이라는 정치투쟁의 기획 없이는 가능하지도, 옳지도 않다고 보는 입장이다. ‘계획으로서의 전술’ 없이 막연히 ‘과정’ 속에서 점진적으로 만들어나가자는 것으로는 자기 써클의 확대는 될지언정 계급의 전위로서의 당은 되지 못할 것이다.
 

  사노위는 그 자체가 이런 당 건설 계획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에 사노위 주체들 사이에서는 이 문제에 관한 한 일치를 보고 출발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전제를 공유한 위에서 강령, 전술, 조직상의 통일을 이루어내기 위한 투쟁을 ‘공동실천위’라는 위상 속에서 1년간 전개한 것이다, 결국 최종 통합, 즉 추진위로의 전환에 실패하고 ‘사노위 정치적 해산 선언’을 하게 된 정치적, 조직적 차이는 다음과 같은 내용으로 요약할 수 있을 것이다. 다음은 해산 선언자들이 지난 6월말에 제출한 ‘사노위 1년, 그 당 건설 투쟁에 대한 평가 (1차 보고서)’ 가운데 결론 부분인데 이것을 인용하는 것으로 대신하겠다.

 

  “사노위 내 소수파와 다수파의 투쟁은 그것이 비록 노동자계급운동에 당장 직접적이고 가시적인 영향과 파장을 미치고 있지 않은 ‘찻잔 속의 태풍’에 불과한 것처럼 보일지라도 그 투쟁의 계급적 의미와 성격은 분명하다. 무엇보다 그 투쟁은 노동자계급 속에서 어떤 당을 건설하고, 어떤 정치활동을 할 것인가를 둘러싼 투쟁이었다. 혁명정당인가, 개량주의에 뒷문을 열어놓는 중도주의 정당인가? 연방주의에 바탕한 꽁무니주의 정당인가, 민주집중제에 기초한 전위당인가? 강령에 입각하여 노동자투쟁을 조직하는 사회주의 정치활동인가, “강령 따로, 실천 따로” 식의 추수주의 · 경제주의 활동인가? 사노위 투쟁의 이 본질적인 주제는 이후 그 어떤 당 건설 투쟁에서도 결코 비껴갈 수 없는 과제로 사회주의자들 앞에 가로놓여 있을 것이다. 사노위 투쟁에서 사회주의자들이 계승하고 발전시켜야 할 성과와 유산이 있다면 바로 이 투쟁의 의미와 교훈을 당 건설 운동의 새로운 지형 위에서 정확히 되새기는 데서 나올 것이다.”

 

 

 

  양효식 동지는 당 건설 운동이 정파들의 단순한 통합을 넘어 선진노동자들이 주체가 된 운동이 되어야 한다고 여러 차례 주장한 바가 있다. 이러한 견해에 대해 전적으로 동의하지만, 사노련, 사노위 운동은 기대했던 만큼 대중적으로 확대되지 못하고 밖에서 보기에는 정파 상층 논의, 혹은 주요 활동가들 간의 논의를 벗어나지 못한 측면이 있다고 보인다. 이에 대해서는 어떠한 평가를 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먼저 당 건설 운동과 투쟁을 해 나감에 있어, 그 주체가 노동자계급, 특히 그 중에서 가장 앞선 부위가 먼저 결합하는 경로와 방식이 되어야 한다는 것은 일종의 정언 명제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 그러나 당 건설은 진공 속에서 이루어질 수 없으며, 특정한 역사적 상황과 결부되어서만 그 구체성을 획득할 수 있다.

 

  그랬을 때 한국의 경우 87년 노동자대투쟁 이후 짧게는 10여 년 길게는 현재까지도 강도와 양상의 변화는 있을지언정 계급투쟁이 끊임없이 이어져왔다. 그 속에서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로 전국에서 수많은 노동자투사들을 배출해 냈다. 그들은 정말 자본과 정권에 맞서 온몸을 던져 비타협적으로 싸웠다. 그러나 알다시피 그들은 최종적으로 사회주의 당 건설의 주체로까지 성장하지 못했다. 자본과 정권의 탄압과 분열, 분화 책동을 극복하지 못했으며, 개량주의와 관료주의 세력에 맞선 투쟁지도력, 정치지도력으로 발전하지 못했고, 사회주의 세력 역시 이들과 정치적, 조직적으로 결합하는 데 실패를 거듭해왔다. 결과적으로 오늘의 시점과 현실에서 볼 때 당 건설 주체로 나설 수 있는 선진노동자의 층은 매우 얇으며 어슴푸레 하게만 존재한다.
 

  바로 이런 현실을 어떻게 극복, 돌파할 것인가를 놓고 사회주의 세력 사이에서 인식과 실천에서의 차이가 벌어지고 있으며 나타나고 있다. 그 차이 중 핵심적인 쟁점은 지금 바로 당 건설 운동을 시작하는 것을 통해서만 다시 계급의 앞선 부위를 되살리거나 새롭게 조직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입장과 반대로 계급의 선진 부위가 다시 형성되는 정세를 경유할 때만이 비로소 당 건설 운동이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선(先) 당 건설론’과 ‘토대구축론’이 바로 그것이다. ‘선 당 건설론’은 다시 ‘사노위’와 같은 경로를 주장하는 입장과 그에 반대하거나 회의하는 복수의 입장이 존재한다. ‘토대구축론’은 나의 입장에서 보면 백년하청일 뿐만 아니라 자신의 무능함을 스스로 폭로하는 것, 한국 계급투쟁의 역사에 대한 무지를 드러내는 것, 세계정세에 대한 추상적 이해에 머무르고 있는 것 외에 그 무엇도 아니라는 판단이지만, 그렇더라도 자신의 노선을 분명하고 명료한 형태로 제출하고 있는 가시적인 세력은 없다고 본다. 그렇다고 ‘토대구축론’이 결코 무시해도 좋을 만큼 소수라고는 생각지 않는다. 심지어 ‘선 당 건설론’을 지지하는 세력 내에서도 실질적, 심리적 ‘토대구축론’자는 광범위하게 퍼져 있다고 보아야 한다.
 

  ‘보아라! 기껏해야 정파 상층 차원의 논의, 주요 활동가들 사이의 논의 이상을 벗어나고 있지 못하지 않느냐’는 목소리가 크고 작게, 들리게 들리지 않게 주변을 맴돌고 있다. 답은 간단하다. 그래서 어쩌라고. 조금 친절하게 답하면 이렇다. 당 건설 운동과 투쟁이 동력과 탄력을 얻지 못하는 이유가 정파 상층 차원에서만 논의해서도, 주요 활동가들끼리만 논의해서가 아니라 정파 상층 차원의 논의가, 주요 활동가들 사이의 논의가 ‘제대로’ 안 되고 있기 때문인 것이다. 정파 상층, 주요 활동가들이 선진노동자 부위에게 정치사상적, 조직적 신뢰를 획득하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사회주의 세력 사이에 벌어진 균열과 틈새가 선진 부위에게 낱낱이 노출되어 있기 때문이다. ‘사노위’는 비록 현재로서는 성공에 이르지 못했지만 바로 그런 상황을 조금이라도 극복하려는 시도였던 것이다. 바로 이런 과정의 연속 위에서 당 건설 운동은 지속되어야 한다. 선진노동자가 당 건설의 주체로 나서게 해야 한다는 것을 기계적으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비록 ‘사노위’의 실패가 일시적, 부분적으로 선진노동자 층에게 실망과 좌절을 가져다 줄 수 있다는 측면을 부정하지 않지만 잔류 ‘사노위’든, 우리든, 그 어떤 사회주의 세력이든 각자의 노선과 정치를 선진노동자들에게 가감 없이 밝히는 것을 통해 그들과 소통하고 접점을 형성하려는 시도를 더욱 밀고 나가야 한다. 그것이 바로 선진노동자를 당 건설 주체로 세우거나 나서게 하는 하나의 경로이다. 이러한 과정 없이 어느 순간 정파 사이의 결집이 이루어질 수 있다거나, 선진노동자 부위가 대거 당 건설의 주체로 나설 것으로 기대하는 것은 무망한 일이다.

 

 

 

  (가칭)노동자혁명당 추진모임이 계속 당 건설의 고민을 이어나간다고 한다면 사노련, 사노위의 경험 이후 당 건설의 주체와 정치적 바운더리를 어떻게 보고 계신 것인가?

 

  너무나 명료한 것이지만 지금으로서는 당 건설의 주체는 당 건설을 자임하는 세력일 수밖에 없다. 그 어떤 세력도 현재로서는 선진노동자 층으로부터 정치적, 조직적 권위를 인정받거나 부여받은 바 없다. 누구(어떤 세력)에게나 기회는 열려 있다. 앞으로 어떤 상황, 어떤 조건이 형성되느냐, 혹은 스스로 그런 상황과 조건을 창출해 낼 수 있느냐에 따라 당 건설 자임 세력 사이의 논의는 또 다시 어떤 형태로든 다시 시도될 수 있는 가능성은 열려 있다. 최종적으로 선진노동자들 사이에서 정치적 신뢰와 지도력을 획득함으로써 비로소 당 건설 자임 주체를 넘어 객관적인 당 건설 주체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원칙적, 일반적 차원을 넘어 구체적으로 우리는 ‘당 건설 추진체’로서의 역할과 임무를 수행하는 것을 최우선적 과제로 삼고 있다. 어떤 조직이든 그것이 존재하는 한 자신을 강화하기 위한 노력과 시도를 하는 것은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그것이 자기 복제를 통해 당 건설을 하겠다고 한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한 마리 미꾸라지가 온 방죽을 흐린다는 말은 뒤집어서 말하면 한 마리 미꾸라지가 방죽 전체의 긴장과 역동성을 이끌어 낼 수도 있다는 것을 말한다. 우리는 우리의 노선과 정치를 가감 없이 밝히는 것을 통해 한편으로는 대적 전선을 형성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사회주의 세력에게도 자신의 노선과 정치를 밝힐 것을 강제해 나가고자 한다. ‘비판의 무기’를 넘어 ‘무기로서의 비판’을 실행해 나갈 것이다.
 

  여기에 미리부터 특정한 바운더리(경계)를 두는 것은 의미가 없다. 이미 큰 틀에서 우리의 정치적 입장과 노선은 알려져 있다. 우리는 이미 말이 아닌 직접적인 행동으로 ‘무원칙한 통합’에 반대한다는 것을 실행했다. 그렇다고 우리만의 경계를 내부적으로 쌓고 있지 않다. 우리만의 성을 쌓거나 울타리를 세우는 것이 목표는 아니다. 오히려 기꺼이 우리를 던져 정세가 요구하는 정치활동을 펼쳐 나갈 것이다. 이 과정에서, 이 과정을 통해 정파 사이의 정치적 거리는 자연히 드러나게 될 것이다. 공동활동, 공동투쟁, 공동전선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지만 당 건설 문제에 있어서는 현재로서는 조금 단호한 입장을 취할 것이다. 단호하다는 것이 곧 배타적인 것은 아니다. 원칙을 지키고, 원칙을 공유하는 것이 기본이 되어야 한다는 의미이다.

 

 

 

  앞으로의 계획은 어떠한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출범 일정을 최근 10월 15일로 ‘잠정’ 결정했다. 그 기간 동안 우리와 함께 할 수 있는 동지들을 최대한 넓히려는 노력과 시도를 다하겠지만 그 결과 때문에 출범 일정 자체를 늦추지는 않을 것이다.
출범을 하게 되면 당연히 강령(초안)을 제출할 것이다. 이제까지 대개의 경우 ‘정치원칙’을 공유하는 차원에서 조직을 형성·출범했지만, 우리의 경우는 이미 지난 1년여에 걸친 ‘사노위’ 활동을 통해 그 과정을 넘어섰다. 그러나 강령을 중심으로 한 본격적인 공개 토론은 출범 이후부터 시작할 예정이다. 우리 자신의 정체성을 먼저 분명히 세우고자 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7월26일 월간정세지 <혁명(준비 1호)>를 발간했다. 출범 때까지 3호를 발간할 계획이다. <혁명>은 이미 밝혔듯이 이론지가 아니라 정세지이다. <혁명>에서 정세에 대한 우리의 입장을 밝히고 그에 입각해 우리의 정치활동을 펼쳐 나갈 것이다. 이제까지 대개의 경우 자신이 발행하는 기관지에서의 주장과 실제로 자신의 조직 활동을 직접적으로 일치시키지 않거나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면 우리는 이 점을 극복하는데 최선을 다할 생각이다. 출범 이후로는 정세지의 발간 주기를 단축시켜 나갈 것이다.
 

  우리는 현실 정세와 투쟁에 대해서도 최대한 개입할 것이다. 아직은 크지 않은 조직이라서 물리적 결합력에는 한계가 있겠지만 해당 시기, 해당 투쟁에서 노동자계급이 지키고 나아가야 할 원칙과 방향에 대해서는 물론 보다 더 구체적인 방침과 지침을 제시하는 데 힘을 기울일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 정세지나 투쟁유인물을 발간하는 외에 이론적 해명이 필요한 주제에 대해서는 당분간 비정기 정치 팜플렛을 통해 우리의 입장을 알리고 선진노동자들과 심도 깊은 토론을 하고자 한다.
결론적으로 출범 때까지 우리는 조직의 정체성과 이데올로기를 확정하고, 당 건설 노선과 경로에 대한 입장 표명, 사회주의 정치활동과 조직화 방안 수립을 위한 사업과 활동을 펼쳐나갈 것이다.

 

글 : 이태영, 김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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