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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_창간준비 5호] 김정일 사망 이후 국제정세, 한반도 정세 전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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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일 사망 이후 국제정세, 한반도 정세 전망
 

 

고민택

 

 

  역사의 필연은 그 속에 수많은 우연적 요소들을 포함하고 있다. 김정일의 죽음은 자연사로 ‘공인’되고 있어, 죽음 그 자체는 비정치적인 우연적 일이지만, 그의 죽음이 앞으로 불러일으킬 파장은 역사의 필연과 맞물려 매우 정치적인 의미를 띨 수밖에 없다. 그가 사망함으로써 가장 일차적인 관심은 새로 등장한 김정은 정권/체제의 앞날이 어떻게 될 것인가이다. 김일성 체제와 김정일 정권 사이에는 연속성이 지배했다. 이제 김정일 체제와 김정은 정권 사이에서도 과연 연속성이 지배적으로 작동할 것인가가 관심사다. 다음으로 보다 포괄적인 관심사는 김정일 없는 또는 김정은 정권 아래에서 한반도, 동북아 정세가 어떤 방향, 어떤 방식으로 형성될 것인가다.

 

 

허탈감

 

  김일성 체제는 소련 붕괴, 동구의 몰락, 냉전 해체라는 거대한 세계사적 격동 속에서 체제와 정권을 지탱해 왔다. 김정일 체제는 신자유주의 세계화, ‘북핵문제’, ‘남북정상회담’이라는 소용돌이를 거치면서 역시 체제와 정권을 유지했다. 이 기간 동안 북은 밖으로부터, 특히 미국이 가하는 압박과 봉쇄에 시달렸다. 그 속에서 북 체제와 정권이 살아남은 것은, 북 체제와 정권의 성격이야 어떻든 그 자체로는 실로 대단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라크 경우 있지도 않은 대량살상무기를 핑계로 미국의 직접침략을 당했지만, 북은 핵실험을 연속적으로 감행하고 오히려 핵보유국으로 등장하기까지 했다. 이제 김정은 정권은 세계공황, 북아프리카/아랍 혁명, 중국의 G2로의 부상이라는 새로운 상황에 직면하게 됐다. 

 

  조만간 미국, 중국, 러시아 그리고 한국에서 정권 교체가 연이어 일어날 예정이다. 북으로서도 김정은을 정점(상징적이든, 실질적이든)으로 한 권력 다지기가 우선적 과제이다. 따라서 적어도 그 기간까지는 북을 둘러싸고 내외적으로 급격한 변화가 일어날 가능성은 높지 않을 것 같다. 현재까지 모습으로만 보면 김정일의 죽음은 매우 싱겁게(?) 정리되고 있다. 그의 죽음을 전후로 마치 무슨 커다란 일이라도 벌어질 것으로 관측했거나, 그러기를 내심으로 바랐던 이들의 입장에서는 허탈감마저 느낄 수 있는 정황이 펼쳐지고 있다. 위로부터의 붕괴론도 아래로부터의 도전론도 당분간은 현실화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김정은 정권에 대한 수많은 인상비평이나, 권력 핵심부에 대한 관전평이 당분간 지면과 전파를 메꿀 것으로 예상해 볼 수 있다.

 

 

균형

 

  북을 둘러싼 정세의 핵심 요소는 ‘이해의 균형’이 언제까지 유지될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지금까지는 그 누구도 독자적 힘으로 ‘이해의 균형’을 깨지 못하고 있다.
  지난 1994년 김일성 사망 이후 북을 둘러싼 정세는 계속해서 이 같은 성격과 특징이 반복적으로 지속돼왔다. 사실 북 체제와 정권이 생존에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북 체제와 정권 자체가 정당하거나 힘을 보유하고 있어서가 아니라 북을 둘러싼 제국주의 사이의 힘의 균형이 팽팽히 유지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동시에 그 사이에 북의 인민은 엄청난 고통과 희생을 치러야 했다. 즉 북 체제와 정권은 힘의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 자신의 인민을 희생양으로 동원했다. 어쨌든 이 기간 동안 전체적으로는 미국의 대북 봉쇄 정책이 근간을 이룬 가운데 6자회담이라는 다자간 테이블을 통해 ‘이해의 균형’이 이루어졌다. 이 과정에서 때로는 북미 직접대화가 또 때로는 남북 사이의 대화가 간간이 있었지만 6자회담 자체를 대체할 정도의 것은 되지 못했다.
  그런데 6자회담이 ‘북핵문제’ 자체를 어떤 방향, 어떤 방식으로든 해소, 해결할 수 있는 해법을 도출하고 있지 못하다는 것이 지금까지 현실이다. 오히려 시쳇말로 노름판의 판돈을 점점 더 키워온 것이 유일하게 한 일이다. 6자회담 기간 중에 ‘북핵문제’는 계속해서 확대재생산 되어 왔다. 북은 그 사이에 ‘핵보유국’이 되었음을 주장하기에 이르렀다. 미국은 ‘북핵’을 관리/저지하기는커녕 반대로 NPT(핵확산저지협정) 정책에 타격만 입었다. 중국 역시 6자회담 의장국 역할을 다하지 못했다. 오히려 미국의 압박 정책에 시달리고 있는 북에 대한 후견인 노릇에 머물렀다. 이명박 정권은 스스로 역할을 철수했다. 결과적으로 6자회담 기간 동안 ‘북핵문제’는 아무런 진전도 이루지 못했다.

  미국으로서는 자가당착적인 요소가 다분히 있다. 9. 11 사태 이후 미국은 대 ‘테러와의 전쟁’을 대외 정책의 근간으로 삼아왔다. 그런 맥락에서 볼 때 ‘북핵’(북이 핵을 보유하고자 하는 의지를 갖거나, 실제로 핵을 보유하고 있는 것)은 ‘테러와의 전쟁’을 수행하기 위한 좋은 구실이 되었다. 중국으로서도 북이 핵을 보유하는 것 자체를 내심으로는 어떻게 생각하든 그를 이용해 미국(북에 대해서도)에 대응하는 지렛대로 삼았다. 이명박을 비롯한 한국의 보수 세력도 ‘안보정권’을 유지, 창출하는 데 그만한 것을 달리 찾을 필요가 없었다. 문제는 북인데, 북은 미국, 일본과의 관계개선과 한반도 평화협정을 체결한다면 언제든지 핵을 포기할 수 있다는 논리를 펴왔으며, 내적으로는 ‘선군정치’, ‘강성대국’의 축으로 삼아왔다. 김정은 정권이 적어도 겉으로 예상보다 빠르게 안정되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도 이러한 이익의 균형이 형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동상이몽

 

  그러나 북을 둘러싸고 형성되어 있는 위와 같은 ‘이익의 균형’은 탄탄한 기반 위에 있지 않다. 오히려 그것은 동상이몽 속에서 복잡한 이해관계가 얽히고설킨 가운데서 이루어지고 있다. 그럼에도 아직까지 균형이 깨지거나 어느 한쪽으로 균형이 급격히 기울고 있지 않는 데에는 그만 한 이유가 있다.

 

  먼저 미국은 여전히 중동(아랍)에 최우선 관심을 두고 있다. 중동은 미국에게 패권 유지를 위한 사활적인 이해가 걸려 있는 지역이다. 석유(에너지) 장악은 미국에게 남은 마지막 보루이다. 뿐만 아니라 이 지역에서 직접적 군사행동을 통해 나머지 국가들에게도 미국의 의지를 확고히 경고하는 효과를 거두고 있다. 이에 비하면 북 또는 ‘북핵문제’는 중동에 비해 그 전략적 가치가 현저히 떨어질 뿐만 아니라, 중국과 직접 부딪쳐야 하는 어려움이 있으며, 미국으로서도 동시에 두 지역을 모두 개입할 수 있는 여력이 없는 상태이다. 오바마가 집권 기간 내내 북에 대해 사실상 현상유지 정책을 썼던 것도 그 때문이다. 이명박 정권과 궁합이 맞았던 것은 오히려 오바마에게는 다행한 일이었다. 거기에 한미FTA까지 자신의 뜻대로 처리하는 수확까지 거두었다.
  중국은 한반도 정세가 급격히 변하거나 혼란에 빠지는 것을 극히 경계하고 있다. 중국은 향후 2~30년 동안은 오직 경제성장을 이루는 것에 국가의 사활적인 운명을 걸고 있다. 그러기 위해 최대한 미국과의 대립이나 갈등을 가급적 최소화하는데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그렇다고 중국이 미국의 눈치를 보는 데에만 급급해 하지는 않는다. 그러기에는 미국의 힘이 예전 같지 않으며 중국 자신의 국력 또한 전과 달라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반도에서 미국과 직접적으로 부딪치는 것까지를 감수하거나 원하는 수준은 아니다. 미국과의 마찰을 최소화하면서 실리를 챙기는 선에서 대응하고 있다. 중국은 미국의 대북 봉쇄 정책을 무력화 할 수 있는 유일한 국가이다. 그 하나만으로도 중국은 손쉽게 미국에 대해서나 북에 대해 동시에 대응할 수 있는 효과를 누리고 있다.

  한국은 지난 15년 이상 선 ‘북핵 해결’을 주장하는 보수 세력과, 북과의 관계 개선을 ‘북핵 해결’과 연결하여 동시에 진행하려는 자유주의(일부 진보 세력 포함) 세력 간의 첨예한 대립과 갈등이 지속됐다. 그 동안 어느 세력도 절대적 지위는 물론 상대적 우위를 차지하지 못했다. 6자회담 참가국 중 한국이 ‘북핵문제’를 둘러싸고 국내적으로 가장 심한 대립과 갈등을 겪고 있다. 반면에 한국은 실질적인 당사자로서 지위와 역할을 6자회담 속에서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 더 나아가 노동자투쟁을 가로막는 주요한 장치의 하나로 작동하고 있으며, 또한 민주노동당이 분당에 이르는 하나의 원인이 되기도 했다. ‘북핵문제’가 기본적으로 국제적 성격을 띠고 있어 제국주의 사이의 이해가 우선적으로 작용하고 있는 상황인 데다 노동자계급의 역량이 아직 미약한 데 따른 불가피한 현실이기도 하다.

 

  북은 체제 유지와 정권 사수를 최우선적 과제로 삼아 왔다. 이를 위해 서방과의 관계 개선을 절실히 원하고 있는 까닭에 일관되게 ‘반제’ 또는 ‘반미’를 견지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북이 ‘반제’ 또는 ‘반미’를 내세우는 것은 압박에 대한 즉자적 대응이거나 나아가 관계 개선을 위한 수단일 뿐이다. 북은 ‘핵 포기’ 외에도 ‘개혁, 개방’에 대한 압력도 동시에 받고 있다. 뿐만 아니라 내적으로는 인민의 생존을 책임지지 못하는 경제적 고통에 시달리고 있다. 북으로서는 ‘핵(무기)’을 지렛대로 삼아 이 모든 문제를 동시에, 일괄 타결하고자 하지만 제국주의 세력을 뛰어넘을 수 없는 한계 때문에 스스로를 궁지에 몰아넣는 벼랑 끝 전술을 되풀이 하는 이상의 해법을 갖고 있지 못하다. 핵(무기) 개발과 핵 보유 정책을 통해 또한 권력의 세습을 통해 이제까지 체제와 정권을 유지해왔지만 바로 그것이 북의 체제와 정권을 위협하는 최대 원인으로 되돌아오고 있는 모순에서 벗어날 수 없다. 북 체제와 정권은 위기를 북 인민에게로, 미래로 계속해서 전가시켜 왔으며, 증폭시켜 왔을 뿐이다.

 

 

불안정, 불확실, 복잡함

 

  지난 김정일 정권 아래에서 6자회담과 두 차례에 걸친 남북정상 회담에도 불구하고, 한반도 정세는 여전히 불안정, 불확실, 복잡함에서 한 치도 진전된 것이 없다. 이제는 그에 덧붙여 김정은 체제의 등장으로 인해 이전 시기보다 그것들이 훨씬 증폭될 가능성만 더욱 높아졌다. 무엇보다 세계공황이라는, ‘북핵’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엄청난 핵폭탄이 등장한 상태다. 사실 지난 시기의 정세도 그 근본에는 세계경제의 전개 과정을 둘러싼 이해관계가 작동하고 있었다. 다만 한반도의 경우에 경제적 상황이 곧바로 대입된 형태로 나타난 것은 아니며 정치, 외교, 군사적 긴장이라는 범주가 주된 힘으로 작동하면서 경제 문제는 배경으로 작용하는 형태를 보여 왔다고 할 수 있다.

 

  당분간 그와 같은 지형과 구도는 유지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김정일 체제가 나름대로 일관된 정책을 펴온 것과 달리 김정은 정권의 향배는 아직 궤도에 올라있지 못하다. 따라서 김정은 정권은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또는 정권의 안정을 꾀하기도 전에 세계공황이라는 쓰나미를 맞아야 할지도 모른다. 이 측면이야말로 이제까지 숱하게 제기됐던 북 붕괴설보다 훨씬 현실적이며 사실적인 전망이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설령 김정은 정권이 빠른 시일 안에 김정일 정권 시기와 같은 정치적 안정을 찾는다 해도 김정은 정권이 맞아야 할 세계공황 앞에서는 그런 안정이라는 것이 하나도 쓸모없는 휴지조각이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알다시피 북은 자본주의 세계체제의 한 구성 부분이다. 북이 사회주의냐, 모종의 자본주의냐는 논쟁은 별개로 하더라도, 현실적으로 북의 경제는 전적으로 자본주의 세계경제에 의존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이미 자본주의 강국으로 떠오른 중국에 대한 의존도가 절대적이다. 북의 경제는 중국이라는 젖줄에 생명줄을 대고 있다. 내적으로는 이미 경제 시스템 자체가, 그 시스템의 성격이 무엇이든 간에 무너진 상태다. 가장 기본적인 식량 자급이 불가능한 지경이다. 국가의 통제에서 벗어난 사유 시장이 그나마 경제의 한 축을 떠받치고 있다. 아니 국가가 인민의 생존을 책임질 수 없는 상태에서 통제 자체를 오히려 포기하고 있는 상황이다.

  북의 인민은 현재까지 정황으로만 보면 정권에 대한 도전이나 투쟁보다는 오히려 각자 생존을 위한 자구책을 강구하는 쪽으로 흘러가는 듯하다. 그렇다면 아래로부터의 분노나 불만이 거대한 형태로 폭발할 가능성은 상대적으로 높지 않다. 이를 두고 북의 정권이 안정되어 있다거나 인민에 대한 장악력이 유지되고 있다고 말하는 것은 지극히 표피적인 분석일 뿐이다. 북의 체제와 정권은 매우 불안정하다. 어떤 면에서 불안정 자체가 안정을 유지케 하는 힘으로 작동하고 있다고 보아야 할 정도다. 북 정권과 인민은 어느 누구도 확신을 가지지 못한 속에서 서로에 대한 일정한 용인과 수용을 할 수밖에 없는 조건에서 동거해야 하는 지극히 불안정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김정은 정권 아래에서 한반도, 동북아 정세는 불안정, 불확실 외에도 복잡함을 또한 그 특징으로 가질 수밖에 없다. 앞에서 봤듯이 균형과 동상이몽이 공존하는 속에서 어느 누구도 섣불리 현재의 긴장을 먼저 깨고 나오기는 쉽지 않다. 더구나 역시 말했듯이 세계공황이라는 초유의 정세까지 겹쳐 있어 이제까지 구도가 한 순간에 물거품이 될 수도 있어 쉽게 행보를 하기도 만만치 않다. 북과 이해관계를 맺고 있는 관련국들의 정치 일정으로 보나, 김정은 정권의 내적 사정으로 보나 적어도 앞으로 당분간은 누구든 현상유지 이상의 상황을 만들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변수와 전망

 

  한국 노동자계급은 물론 전 세계 노동자계급의 입장에서 볼 때, 북 체제와 정권은 한국 및 전 세계 노동자계급의 역량과 특히 북 노동자계급의 아래로부터의 투쟁에 의해 무너뜨려야 할 대상이다. 북 체제와 정권이 비록 보다 더 흉폭한 제국주의 세력의 압박을 받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따라서 바로 그 점에 있어서 제국주의 전쟁 위협으로부터 북한을 방어해야 할 현실적 필요성이 있지만, 그렇다고 북 체제와 정권이 ‘반제’, ‘반미’ 세력이라거나, 북과의 통일을 위해 ‘민족적’, ‘외교적’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거나, 심지어 통일 한국을 통해 한반도 강국으로 부상해야 한다는 국가주의적 태도는 단연코 거부해야 한다. 오직 노동자국제주의의 입장에 설 때만이 올바른 전략과 전술을 일관되게 구사할 수 있다.

 

  다른 한편으로 ‘핵’일반에 대한 부정과 ‘한반도 비핵화’를 구별하지 않고, 즉 ‘한반도 비핵화’는 현실 정치에서 엄연히 ‘핵’ 일반에 대한 폐기가 아니라 단지 ‘북핵’에 대한 포기만을 의미하는 것임에도 이를 보지 않는 것은 단순한 생각일 뿐이다. 노동자계급이 ‘북핵’을 지지하지 않는다고 해서 그것이 곧바로 ‘한반도 비핵화’를 주장하는 것으로 단순 연결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그 사이에는 수많은 현실성과 복잡성이 존재한다. 노동자계급은 이 점에서 한반도 비핵화가 아니라 미국의 대북 전쟁 위협 반대를 가장 우선적인 요구로 걸어야 한다.

 

  한반도는 현재 ‘휴전’상태에 놓여 있다. 이 때문에 ‘휴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바꾸어야 한다는 주장이 있다. 노동자계급의 입장에서 ‘휴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바꾸는 것 자체를 반대할 이유는 없다. 그러나 그것을 노동자계급이 앞장서서 주장해야 할 문제인가는 차원이 다른 문제다. 그것은 지배계급 사이의 쟁점일 뿐이다. 노동자계급의 입장에서는 ‘평화협정’ 자체가 평화를 보장하지 않으며, ‘평화협정’이 체결된다고 해서 한반도, 동북아 정세가 평화 상태로 놓이지 않는다는 것을 인식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계급 사이에 평화란 없다. 부르주아 독재를 프롤레타리아 독재로 대체하기 위해서는 계급전쟁, 즉 혁명을 경유하지 않을 수 없다. 평화적 이행을 특별한 정세 국면에서 바랄 수는 있겠지만, 계급전쟁, 혁명을 부정하는 의미에서 ‘평화주의’는 결국 노동자계급을 무방비 상태로 방치하는 결과를 낳을 뿐이며, 자본과 국가의 탄압 앞에서 무장해제를 하자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앞으로 한반도, 동북아에서 벌어질 정세 전망에서의 최대 변수는 현재 진행되고 있는 세계공황이 끼칠 영향이다. 지금까지 북을 둘러싸고 형성된 제국주의 세력 사이의 이해 균형은 계속해서 유지되기 어렵다. 결국 북을 포함하여 한반도, 동북아에서도 제국주의 사이에 첨예한 경쟁과 대립이 벌어질 수밖에 없다. 김정은 정권 아래에서 북이 더 불안정해 질 수 있겠지만, 그 불안정이란 지금 세계적 차원에서 전개되고 있는 자본주의 체제 위기로 인해 형성되고 있는 불안정에 비하면 사실 작은 변수에 불과하거나, 아무런 변수조차 되지 않을 수 있다. 정치적, 현실적으로 변수가 될 수 있다면 그것은 바로 한국 노동자계급의 투쟁과 태도이다. 만약 한국 노동자계급이 한반도 차원에서의 사회주의 혁명을 향해 나간다면 그것이야말로 한반도, 동북아 정세를 근본적으로 바꿔낼 수 있는 최대의 변수이자, 동력이 될 것이다. 바로 그러기 위해서라도 한국 노동자계급은 2012년 정세에서 ‘야권연대’, ‘민주대연합’, ‘선거심판론’을 심판할 수 있는 아래로부터의 직접투쟁을 조직해야 한다. 한반도, 동북아 정세의 핵심 키는 바로 한국 노동자계급이 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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