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혁명_창간준비 7호] <기고> 총선정국, 그리고 희망광장

사용자 삽입 이미지

 

 

 

<기고> 총선정국, 그리고 희망광장


 

아방가르드


 

사용자 삽입 이미지

 

  총선정국, 한미FTA는 3월15일 발효되었다. 그것의 관철 여부는 차기 정권의 문제로 넘어갔고 그것을 저지하기 위해서는 자신들을 총대선에 선출시켜 달라는 것이 야권연대의 주장이다. 결국, 한미FTA 저지투쟁은 총선을 위한 기만적인 전술이었을 뿐이다. 총선정국은 마치 블랙홀처럼 다가와 모든 사안과 투쟁을 잠식하고. 의회주의와 개량에 대한 환상만을 심어준다.
 
  민주노총은 대대에서 8월 총파업을 천명하였다. 그러나. 워낙에 그 동안 뻥파업 등으로 신뢰를 얻지 못한 민주노총이기에 그 실행 여부가 사실상 불투명하다. 이에 희망텐트 노동자참가단은 실질적인 총파업을 가능하게 하기 위해 총파업실천단으로의 전환 문제를 놓고 열띤 토론을 벌였다. 또한. 현재의 야권연대에 대당하는 실물적인 흐름을 형성하자는 후보전술과 아직은 역량이 부족하기 때문에 총선에 대한 보이코트가 거론되기도 하였다.
 
  한편, 희망버스에서 희망뚜벅이로 다시 희망광장으로 발전된 쌍차, 재능. 유성. 콜트콜텍. KEC, 전북고속, 코오롱과 비정규직 없는 세상 등 장기투쟁 사업장들과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연대 상경투쟁은, 표면적으로는 이것 또한 현재의 총선정국과 부르주아 의회를 넘어서지 못하는 제한적인 투쟁으로 보이기도 한다.
 
  현재의 총선정국은 마치 안개 속을 걷는 듯하다. 우리는 도대체 무엇을 해야 하는가? 도무지 해답이 보이지 않는다. 그 뚜껑을 열어보기 전까지는 말이다. 그러나 이제 시일이 지남에 따라 안개 같았던 장막이 조금씩 걷히고 정세에 대한 윤곽이 보이기 시작했다. 우리가 과연 무엇을 할 것인가에 대한 예단이 가능해졌다.
 
  8월에 예정된 민주노총 총파업은, 한미FTA 저지투쟁이 총선을 위한 기만적인 전술로 끝났듯이, 야권연대를 지지하기 위한 기만적이고 형식적인 총파업으로 그칠 공산이 크다. 민주노총의 10대 요구에 관한 입법투쟁은 부르주아 의회의 한계 속에서만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는 것이며. 야권연대에 기대는 총파업은 노동자계급의 이해를 대변하는 것이 아니라. 야권연대의 입지만을 강화시키는 것이다. 총파업을 위해 울산 현대자동차의 미조직 노동자를 조직화하고 민주노총에 가입시켜서 민주노총과 총파업을 함께 하자고 권유하자는 주장들이 있는데 이는 정세 판단에서 지극히 주관적이다.
 
  우리가 원하는 실질적인 총파업을 가능하게 하려면 민주노총 상층부(야권연대 포함)의 기회주의를 폭로하고 실제적인 총파업이 가능하도록 하나의 흐름을 형성하고 평조합원 위주의 아래로부터의 총파업을 조직해야 한다.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선전선동과 조직화에는 여러 가지 전술이 있을 수 있다. 그것이 노동자 후보 전술이든 보이코트 전술이든 어떠한 것이든 간에, 그것은 반드시 투쟁과 결부되어야 한다. 현재 희망텐트 희망광장의 투쟁이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두 전술은 모두 선거에 대한 개입이다. 그 내용에 따라 투쟁을 포괄할 수도 있고. 아니면 투쟁과 독립적인 별개의 것이 될 수도 있다. 구체적인 예로서. 10대 요구는 총파업과 투쟁을 포괄하는 사안들이다. 하지만. 그 선동을 위해서는 투쟁하는 동지들뿐만 아니라. 그 지역의 모든 노동자들을 전부 포함해서 선전선동을 해야 되기에 투쟁과 별도로 독립적으로 진행될 수도 있다.)
 
  투쟁은 상대적으로 독립되어 스스로 성장, 전화한다. 단사의 투쟁이 연대투쟁이 되고 연대투쟁이 총파업 투쟁이 된다. 경제투쟁이 적들의 탄압에 의해 정치투쟁으로 급변하기도 한다. (로자 룩셈부르크). 투쟁은 스스로 살아서 움직이는 운동체이다.
 
  쌍차의 투쟁은 아직 충분히 고양되지 않았다. 3차 희망텐트에서의 공장진입 시도는 금속노조 상층관료의 투쟁통제를 위해 기획된 퍼포먼스에 멈추었다. 지난 희망버스의 예를 들면. 희망버스에 대한 대중적인 관심이 촉발된 것은 3차 희망버스에서부터였다. 비록. 한진중공업의 담장을 넘지는 못하였지만 진입 시도를 하였기에 물대포와 공권력의 폭력이 자행됨에 따라 대중들의 분노가 SNS를 장악했고. 그것이 또한 매스컴에 대서특필 되었으며, 정리해고에 대한 문제가 사회적인 의제로 부각되기 시작하였다. 실제로 4차 희망버스의 참가인원은 3차 때 만여 명 보다 두 배 가까이 늘어났다. 4차 이후. 투쟁을 조금 더 고양시키지 못한 것은 4차부터 민주노총이 주관함에 따라. 투쟁을 야권연대를 부각시키기 위한 문화제 위주로 만들어 버렸기 때문에 투쟁은 다시 소강국면에 접어들었다.
 
  희망광장의 투쟁은, 표면적으로는 총선에 기대는(부르주아 의회에 기대는) 한계적인 투쟁으로 인식되었으나, 우리의 예측은 빗나갔다. 그 내용적인 측면에서 희망광장의 투쟁은 총선을 돌파하는 투쟁이었다. 이는 3차 희망텐트에서 미처 고양되지 못한 투쟁을 고양시키는 연속선상에 와 있다. 그들의 투쟁은 총선에서도, 민주노총에서도 소외받는 투쟁이 되어버렸다. 하지만 이들의 투쟁은 더 이상 단사에 갇혀 있는 외로운 투쟁만은 아니다.
 
  스물한명의 죽음을 몰고 온 2009년 쌍용자동차 살인진압이 경찰청 우수사례 5위에 선정되었다. 이에 격분한 쌍차 노동자들은 경찰청 담을 뛰어 넘었다. 연행되는 과정에서 김정우 지부장은 “우리는 죽기보다 살기가 더 힘든 사람들” 이라며 절규하였다. 콜트콜텍의 한 동지는 분홍조끼(희망광장조끼)를 입었다는 이유만으로 경찰로부터 감금당하고 경찰들한테 폭행당해서 앰블런스에 실려 갔다. 청와대에 항의서한을 전달하러간 일곱 명의 동지는 모두 연행되었다. 재능의 유명자 동지는 연행되면서 트위터에 희망광장을 지켜달라고 피맺힌 호소를 하였다.
 
  핵안보를 핑계로 경찰의 침탈과 불법약탈(엠프. 마이크. 감자탕. 텐트. 피켓. 손자보등 압수)과 탄압은 강화되었지만. 희망광장의 숫자는 여전히 줄지 않고 있다. 연행된 동지 대신 다른 동지들이 연대해서 그 빈자리를 메꾸고 있다. 희망광장의 불씨는 총선정국 하에서도 결코 꺼지지 않았다. 바야흐로. 한국판 점령운동의 시작이다. 희망광장의 투쟁은 이제 전국 해고자 투쟁으로 그리고 전국 총파업 투쟁으로 가는 교두보로 스스로 성장 전화하고 있다.
 
  쌍차투쟁을 단순히 연대투쟁의 일환으로만 생각하고 포기하는 것은 그 투쟁을 표면적으로만 인식한 결과이다. 혁명적인 전망을 세우고자 한다면. 지금 현재 가장 처절한 사람들. 이들 해고노동자들.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입장에 서야만 한다. 직장에서 쫓겨나고 파업으로 쟁의로 막대한 손배소를 당하고. 광장의 차가운 바닥에서 잠을 자며 농성을 할 수 밖에 없는 이들과 연대하고 함께 투쟁하면서 이들의 입장에 서지 못한다면. 그 전망은 그야말로 탁상공론에 불과하다.
 
  필자의 주장에 대해 그동안 숱하게 겪어 왔던 전망 없는 전투적 조합주의 혹은 전투주의로 치부할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의 혁명적인 전망을 가능하게 할 그 정세와 투쟁은 아직 충분히 고양되지 않았다. 그 투쟁이 충분히 고양될 수 있도록 하는 것 또한 사회주의자의 임무이며 우리의 당면과제이다. 또한. 그 투쟁 속에서 연대하며 끊임없이 야권연대와 민주노총 상층부의 기회주의를 폭로해야만 한다. 우리는 총파업과 조직화를 말하면서도 가장 중요한 등잔 밑을 놓치고 있지는 않는가? 우리가 앞장서서 싸울 테니 제발 힘을 실어달라고 호소하는 희망광장 동지들의 피맺힌 절규가 들리지 않는가?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