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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기고] 두 갈래 길 앞에 선 ‘희망’운동
강종숙
지난 3월 10일 시청광장에 쌍용자동차, 재능교육, 유성기업, KEC, 콜트-콜텍, 코오롱 정투위, 기아차해복투, 현대차비정규직, 대우차비정규직, 기륭전자 등 투쟁사업장 노동자들이 ‘정리해고, 비정규직 없는 세상을 향한 99% 희망광장’의 기치 아래 모여 들었다. 이들은 길게는 8년, 짧게는 몇 달 전 정리해고에 의해 공장 밖으로 쫓겨났고, 비정규직으로 내몰려 신음하다 투쟁에 나선 노동자들이다.
이보다 앞서 1월말부터 2월초까지 2주일 동안 이 사업장을 포함하여 한국 3M, 대우자판, 풍산금속 노동자들이 함께한 ‘정리해고, 비정규직 없는 세상을 향한 희망발걸음’ 투쟁이 있었다.
한편, 2009년 77일간의 공장점거투쟁을 벌여냈던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은 희망버스로 표출된 힘을 바탕으로 세 차례에 걸쳐 ‘희망텐트’ 투쟁을 전개했다.
작년 여름에는 한진중공업, 쌍용자동차, 콜트-콜텍, 재능교육, 발레오공조코리아 등 정리해고, 비정규직사업장 노동자들이 광화문 KT빌딩 앞에서 노숙을 하며 ‘희망꽃밭’을 표방하고 투쟁을 전개했다.
이 모든 투쟁의 이름만 살펴봐도 알 수 있듯이 이들은 모두 저마다 ‘희망’을 내걸고 아직은 요원하게만 보이는 희망을 찾아 앞장서 분투하고 있다.
따라서 지금 우리에게 가장 시급한 것은 투쟁하는 노동자들에게 요원하게 보이는 희망이 현실이 될 수 있다는 확신을 심어주고 어떻게 하면 그리 될 수 있는지 방법을 제시하는 일이다. 그리고 이미 우리 앞에는 크게 두 갈래 길을 제시하며 우리에게 행동을 요구하는 세력들이 있다. 하나의 길은 바야흐로 선거의 해인 2012년 반MB 야권연대를 통한 정권교체를 위해 투표장에서 야당에게 몰표주기의 길이다. 다른 하나의 길은 정리해고와 비정규직은 한계에 달한 자본주의가 유지되기 위해 없어서는 안 될 요소이기에 이를 철폐시키기 위해서는 자본주의 체제 자체를 갈아엎어야 한다는 믿음으로 스스로 대안 정치세력이 되어 투쟁하기의 길이다. 우리가 어느 길을 택하느냐에 따라 우리 운동의 사활이 걸려 있는 것은 물론 정리해고자, 비정규직 노동자 개인에게도 상반된 결과를 가져다 줄 것이다. 아래에서는 우리가 어떤 길을 택해야 하는 지를 살펴보도록 하자.
희망버스는 노동자계급에게 무엇을 가르치고 있는가?
희망버스에 대해 아주 여러 곳에서 다양한 평가를 진행했다. 대중의 역동적 자발성에 대한 ‘재’발견, 조직노동자 운동의 더딘 대응 내지는 무대응에 대한 ‘재’평가가 주류를 이루었고 일정 부분 현실을 반영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국회권고안이 나오고 보여줬던, 김진숙 지도위원과 한진중공업 주체들의 모습, 더 나아가 희망버스 기획단, 좌파 정치세력의 대응은 제대로 평가되지 못한 채, 아쉽지만 김진숙 지도위원이 무사히 생환한 것에 초점이 맞춰지면서 유야무야되어 버렸다. 이러한 사태진행이 처음이라면 모르겠지만 우리는 그리 오래지 않은 과거에 쌍용자동차 8.6 합의에서, 현대자동차 비정규직노동자들의 공장점거 투쟁의 마무리 국면에서 ‘똑같은’ 경험을 한 바가 있다.
누구의 눈에도 그 권고안이 미진하고 100% 실현될 것이라는 확신이 없었지만 그 이전의 숱한 합의가 휴지조각이 되어버렸던 쓰라린 기억을 더 많이 갖고 있던 조직, 개인 어느 누구도 제대로 된 목소리를 내지 못했다.
왜? 첫째, 조직되지 않은 미조직 대중들의 자발성에만 철저히 기댔기 때문이다. 정작 투쟁주체들은 언제나 이들의 종속변수였다. 둘째, 그 대중들을 하나로 엮을 정치가 존재하지 않았다. 김진숙이라는 아이콘에 집중된 ‘열망’은 있었지만, 정리해고 철회라는 슬로건은 존재했지만 ‘어떻게?’라는 것에 대한 내용 논의는 부족했다. 셋째, 조직 노동자운동의 무능력과 좌파 정치조직의 실력이 그대로 반영됐기 때문이다. 조직을 만들어 투쟁하는 이유는 운동을 조직하기 위함도 있지만 언제라도 터져 나올 수 있는 대중의 역동성을 한 곳으로 모아 기성체제에 파열구를 낼 수 있는 곳으로 집중시키는 등 우리의 역량을 가장 효율적으로 배치하는 위치에 복무하기 위함이다. 하지만 우리 조직운동은 어떠한 역할도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다.
이리하여 글자그대로 정말 목숨 걸고 크레인에 오르고 공장을 무덤 삼겠다는 각오로 전개한 투쟁들이 야당이 개입하고 중재안이 나오면서 정크본드 수준의 어음 한 장 달랑 받고 정리당한 것이다.
사정이 이러한 데도 굴하지 않고 싸우고 있는 투쟁사업장 노동자들에게, 투쟁의 길에 처음 들어서는 노동자들에게 또 다른 길이 있음을 이제는 실물로 보여줘야 할 때다. 그래야만 더 이상 죽 쒀서 개주는 꼴을 안 보게 될 것이고, 이를 바탕으로 정리해고, 비정규직 없는 세상을 향한 희망이 현실이 될 수 있는 교두보를 확보할 수 있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바로 그것은 지금 우리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정치세력들의 실천을 바탕으로 하여야 할 것이다.
희망텐트, 희망발걸음, 희망광장에는
‘희망’을 넘어설 정치가 필요하다.
올해에는 작년 희망꽃밭과 확연히 다른 점이 하나있다. 바로 선거를 목전에 두면서 이것이 중요한 변수로 등장한 것이다. 선거를 통해 정권교체를 이루어 정리해고제와 비정규직을 철폐하여 ‘희망’운동에 동참하고 있는 현안 사업장 노동자들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정치가 좀 더 그럴듯하게 좀 더 노골적으로 작동하고 있는 것이다.
앞서도 잠깐 살펴봤지만 현재 야당의 중재로 투쟁을 마무리했던 사업장들은 최악의 결과물을 받아 안아야 했다. 지금도 진행 중인 21명의 죽음, 수백 명에 달하는 해고를 포함한 징계, 수십 명의 구속, 수백억 손배소송.
또 있다. 정리해고제, 변형근로시간제, 근로자파견제는 김대중 정부에서, 기간제법 등 비정규직 악법은 노무현 정권에서 시행되었고 그 기간 동안 헤아릴 수조차 없는 노동자들이 희생당했고 이를 막기 위해 투쟁하다 수많은 노동자가 목숨을 바쳐야 했고 수백 명이 감옥에 끌려갔다. 이른바 민주정부 하에서 구속, 수배, 해고된 노동자가 더 많았다는 것은 이제는 상식이 되어버렸다.
그래서 최소한 희망광장에 모여 있는 노동자 대다수는 그들 스스로의 경험에 의해 정리해고와 비정규직을 만드는 데 앞장선 현재의 야당에 기대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들 중 일부는 이미 민노당과 국참당의 무원칙한 야합에 반대하여 민노당을 탈당하고 야합 반대성명을 내는 데 앞장서기도 했다. 나아가 야권연대에 대해 맹목적인 드라이브를 걸고 있는 민주노총 지도부의 방침에 반기를 들고 ‘선언운동본부’를 결성하는 데 동참하기도 했다.
그런데 문제는 여기서부터다. ‘희망’운동이 민주노총 지도부가 올인하고 있는 야권연대와 다른 길을 걸음으로써 미조직 대중들의 자발적 참여와 눈 밖에 난 투쟁사업장 위주로 그 동력이 형성되었는데도 정작 이들 사이에서 정치가 실종된 것이다. 누구보다 앞장서서 헌신적으로 투쟁하는 노동자들, 정리해고와 비정규직의 폐해를 온몸으로 경험했기에 누구보다 더 절실하게 이의 철폐를 위해 투쟁하는 노동자들이 이를 위해서 어떤 정치를 갖고 어떻게 투쟁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단 한 번도 진지한 토론을 거치지도 못했고, 정치적 대안세력에 대한 고민도 공유한 바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정작 이들 내부에서는 야권연대에 대한 논의가 진척되지 않고 알아서 문제를 일으키지 않을 것 같은 수준에서만 논의와 실천이 이루어지고 있다.
그러나 경험으로 알고 있는 것처럼 선거판세가 박빙이거나 현 정권의 폭정이 극에 달할수록 선거일이 다가올 때 노동자 개인이 유권자로서 받는 압력은 상상을 초월한다. 그래도 이명박보다는 낫다는 생각, 똑같은 놈이지만 내가 기권함으로써 혹시 한나라당(새누리당) 놈들이 반사이익을 누리지는 않을까 하는 불안감 등이 결정적인 국면에서 현재의 ‘희망’운동에 커다란 원심력으로 작용할 수 있는 위험이 내포되어 있는 것이다.
그래서 더더욱 희망텐트에도, 희망광장에도, 앞으로의 ‘희망’운동에도 살아있는 노동자계급의 정치가 절실히 필요하다. 희망광장에 모여 있는 노동자들은 청와대 가까이 가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아니라 왜 청와대로 달려가지 않느냐고 목청 높여 투쟁의지를 밝히는 노동자들이기에 그러하고 이미 공장점거, 1,000일을 훌쩍 넘기는 장기투쟁의 경험과 실천으로 야권연대에 앞장서 반대하고 있기에 더욱 그러하다. 이들에겐 이미 상당한 정치적 합일점이 존재한다. 이제 그것을 밝히 드러내고 이를 조직하여 더 크고 강력한 운동을 시작할 때이다. 그 첫발은 이제 ‘희망’운동의 이름으로 선명하게 야권연대에 반대하는 것이다. 우리의 ‘희망’은 이명박 정권은 물론 결코 야권연대에도 있지 않다는 것을 단지 선언이 아니라 가장 노동자적인 방식으로 실천하는 것이다. 아니 지금까지 해왔던 것처럼 특수고용노동자는 당연히 노동자이기에 단체협약 쟁취할 때까지 투쟁하는 것이고, 다시는 야당 중재안에 속아 공장점거를 풀지 않는 것이고, 이들이 그렇게 할 수 있도록 엄호하는 것이다.
민주통합당이 집권여당일 때 한미FTA나 강정해군기지를 주도적으로 추진한 것이 그 당시 뭘 잘 몰랐기 때문이 아니라는 것은 상식이다. 이명박 정권하에서도 민주당에 뒤통수를 한두 번 맞은 것이 아니다. 그 때 민노당은 무엇을 했고 뭐라고 했던가? 삶의 벼랑 끝에 서서 투쟁하다 분신한 노동자를 두고 비아냥댔던 것이 노무현 정권이다. 그리고 그런 정권의 핵심에서 전도사를 자처하던 유시민의 당과 통합한 뒤 전태일과 노무현이 만났다라고 선언하는 통진당에게 표를 던지라는 말인가? 치매 환자가 아니라면 어떻게 그들과 야권연대를 하자고 주장할 수 있으며, 철면피가 아니라면 어떻게 야권연대를 통해 창출해 낼 정권이 노동자들을 위해 정리해고제와 비정규직을 철폐할 것이라고 말하면서 표를 달라고 할 수 있는가?
‘희망’운동이 이처럼 자명한 사실에 대해 침묵한다면 의도와 달리 ‘희망’운동조차 야권연대의 제단에 제물로 바쳐지게 될 것이다. 우리가 목소리를 ‘지나치게’ 크게 내면 동력이 떨어지지 않을까 염려하는 것은 잘못된 생각이거나 지나친 소심함이다. 이미 ‘희망’운동에는 지금까지 자신이 경험하지 못한 세상으로 나아가는 데 한 치의 두려움도 없고 주저하지도 않을 사람들이 모여 있다. 그리고 이미 몇몇 조직과 개인의 이름으로 무원칙한 야합인 야권연대에 반대하는 실천을 하지 않았는가? 또 이러한 ‘희망’운동의 정치에 동감하기에 함께하기 위해 모여드는 미조직 노동자들이 존재한다.
따라서 이러한 현실과 문제의식을 희망광장에 녹여내고, 청와대 포위투쟁에 앞장서고, 총파업 조직에 앞장서고 한다면 4월 11일에 그리고 그 이후에 우리 눈앞에 보이는 각 정당들은 이러한 힘에 의해 좀 더 왼쪽으로 와 있거나 왼쪽에 와 있는 것처럼 보이려고 부산을 떨 것이다. 그리고 그보다 더욱 중요하게는 투쟁하는 노동자들이 중심이 된 정치세력이 어느덧 대안세력으로 우리들 앞에 한 발짝 더 다가와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이라는 점이다.
이처럼 야권연대의 기만성과 폐해를 사실과 경험에 입각하여 앞장서 폭로하고 그들이 제시하는 죽음의 길을 가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열어젖혀야 할 우리의 길을 힘차게 걸어가면서 우리가 스스로 대안세력이 될 때만이 정리해고도 비정규직도 없는 노동자들의 세상이 우리 앞에 다가올 것이다.
자 이제 더 이상 두 갈래길 앞에서 멈칫거릴 이유도 시간도 없다. 야권연대는 ‘정리해고 비정규직 없는 세상을 향한’ 99%의 길이 결코 아님을 선언하고 노동자는 단지 표 찍는 기계가 아니라 자신들이 가진 힘으로 세상을 바꿀 수 있는 유일한 대안세력임을 행동으로 보여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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