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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_창간준비 8호] <4.11 총선 평가> 반MB 투쟁의 성과와 한계를 동시에 드러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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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11 총선 평가] 

 

반MB 투쟁의 성과와 한계를 동시에 드러내다


 

 

고민택

 

 

[반MB 투쟁의 성과와 한계를 동시에 드러내다.hwp (27.00 KB) 다운받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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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 민중 투쟁이 한국사회에 반MB를 강제, 현실화했다.

 

  이번 4. 11 총선 결과가 말해주는 가장 포괄적인, 따라서 가장 근본적이고 핵심적인 의미는 이명박 정권에 대한, 더 정확하게는 친자본 정권에 대한 대중의 거부와 불만이 광범위하게 표출, 확인되었다는 점에 있다. 그런데 이 점은 사실 선거 결과가 나오기 이전에 이미 기정사실로 되어 있었다. 그 때문에 이번 선거는 반MB의 성과를 누가 어떻게 가져갈 것인가를 가르는 일만 남겨둔 상태에서 치러졌다. 야권연대가 과반을 차지하지 못했거나 원내 제1당이 되지 못했다고 해서, 반대로 새누리당이 원내 제1당을 넘어 과반을 차지했다고 해서 이 같은 사실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이를 조금만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이번 선거는 그 시작부터 큰 틀에서는 여야를 막론하고,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사실상 모두 반MB를 수용 또는 전제한 상태에서 진행되었다. 야권연대만이 그랬던 것이 아니다. 새누리당도 직간접적으로 반MB 입장을 취했다. 그게 단지 제스추어에 불과하다고 말한다면, 야권연대와의 상대적 비교라는 측면으로만 제한해서 볼 때, 아니 제한할 수밖에 없다고 할 때 새누리당만 꼭 제스추어라고 해야 할 것은 아니다. 예컨대 반MB를 상징하는 ‘복지’, ‘경제민주화’, ‘재벌개혁’ 등에서도 새누리당과 야권연대 사이에 실질적 차이 같은 것은 없다. 물론 야권연대 또는 통진당은 새누리당이 말하는 것과는 커다란 차이가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설령 그들이 말하는 차이를 인정한다 해도, 이번 선거 과정에서 봤듯이 야권연대 차원에서든 아니면 통진당 독자적으로든 그들 스스로 주장하는 차이 정도라도 쟁점화 하고, 현실화시키고자 하는 실질적인 의지나 능력을 갖고 있지 않다는 것이 여실히 드러났다. 따라서 그 차이에 어떤 의미를 부여할 수 있을 만큼 실제적 차이가 있다고 말하기 어렵다.
  이런 현실이 앞으로도 변화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 이는 단지 예상이 아니라 김대중, 노무현 정권 시절을 포함해 이명박 정권 아래서 그들이 취한 행보에 낱낱이 담겨 있다. 바로 이런 현실이 있기에, 야권연대가 말한 반MB가 회고(‘심판’)적인 것으로 비쳐진 반면에 새누리당은 비록 대놓고 반MB를 말하지는 않았지만 오히려 반MB에 대한 미래(‘대안’)적인 것으로 다가 갈 수 있었던 것이다.
   
  지난 대선에서 이명박 정권이 등장할 수 있었던 핵심적인 배경은 한마디로 경제를 살리라는 것이었다. 민주가 밥 먹여 주냐, 조금 부패하면 어떠냐라고 할 만큼 대중들에게는 그야말로 먹고 사는 문제가 절실했다. 물론 그 속에는 대중들이 품은 일정한 기대와 환상이 없지 않았지만 거기에는 김대중, 노무현 정권을 대체할 수 있는 다른 대안이 없었던 만큼 대중들로서는 가장 현실적인 또는 불가피한 선택일 수밖에 없었다는 사실이 존재한다. 이 점을 보지 않고 그러한 대중의 선택을 단지 ‘대중의 잘못된 행위’ 내지 ‘대중의 낮은 의식’ 탓으로만 돌린다면 지난 4년간 노동자 민중이 이명박 정권에 맞서 투쟁한 사실이나 이번 선거에서 다 죽어가던 새누리당이 또 다시 과반을 넘긴 이유를 올바로 설명할 수 없다.
  사실 대중들은 자본주의는 물론이고 신자유주의에 대해서도 그 자체를 아직 문제 삼고 있지 않다. 그것은 친자본 정책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대중들은 그 결과가 자신들에게 어떤 결과를 가져다주느냐에 관심을 두고 있는 상태다. 즉 ‘친자본’을 통해서라도 먹고 사는 문제가 나아진다면, 그것이 더 나쁜 상황을 막는 길이라면, 아니 그 보다 더 나은 대안이 달리 없다고 생각한다면 적극적이든 소극적이든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특히 자본간, 국가간 무한 경쟁이 지배하는 현실을 보면서, 세계경제 위기가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는 것에 대해 위협을 느끼면서 보수냐 진보냐 라는 가치나 개념보다는 어느 세력이 현 상황을 더 잘 헤쳐 나갈 수 있을 것이냐는 현실주의, 실용주의를 취하는 것에 별 다른 문제가 있다고 느끼기 어렵다. 이를 두고 대중이 잘못된 행위를 한 것이라거나 대중의 의식이 낮은 때문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오히려 대중이 삶의 최전선에 내몰려 있는 것으로부터 발생하는 불가피한 현상이라고 해야 마땅하다. 다시 말해 이는 도덕이나 의식의 문제가 아니다. 대중은 물질 운동의 상황과 정세 역학에 따라 때로는 수동적으로 적응하거나 또 때로는 능동적으로 움직이거나 하는 것이다.
            
  지난 4년간 이명박정권 아래서 노동자 민중은 이명박 정권에 대한 기대와 바람을 빠르게 분노와 불만으로 표출하기 시작했다. ‘촛불 투쟁’, ‘용산투쟁’, ‘쌍용자동차 투쟁’, ‘현대자동차비정규직 투쟁’, ‘장기사업장 투쟁’, ‘등록금 투쟁’, ‘희망버스, 희망텐트 투쟁’ 등 노동자 민중의 투쟁이 계속해서 이어졌다. 그럼에도 이명박 정권은 ‘친자본’, 특히 독점자본을 살리기 위한 정책으로 일관했다. 그에 반해 복지, 일자리, 물가, 임금 등에 대해서는 아무런 대책도 세우지 못하면서 오히려 노동자 민중에게 노골적인 탄압과 공세를 퍼부었다. 특히 세계적인 경제위기를 맞아 반노동자, 반노조, 반복지 정책을 더욱 강력하게 밀고 나갔다. 더구나 한국경제가 세계경제 위기의 직격탄을 아직 맞지 않은 상태에서 그러했다. 노동자 민중의 분노와 불만은 갈수록 커져갔다. 이제 누구도 이러한 노동자 민중의 분노와 불만을 가로막기 어려운 상황이 펼쳐졌다. 이명박 정권 아래서 실시된 여타의 선거 결과에서, 심지어 나꼼수, 안철수, 박원순 현상을 통해서도 이는 여실히 드러났다. 이것들을 촉발시킨 것은 다름 아닌 노동자 민중들의 투쟁이었다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그 서슬 퍼렇던 이명박 정권도 더는 견디기 어렵다는 것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게 되었다. 무엇보다 총선을 앞두고 집권 한나라당 내부에서부터 움직임이 일기 시작했다. 당명을 바꾼 것은 차라리 ‘요식 행위’라고 할 수 있다.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복지’, ‘경제민주화’, ‘재벌개혁’ 등 그야말로 사실상 반MB라고 할 수 있는 정책과 공약들을 쏟아 냈다. 이명박 정권에 대한 노동자 민중의 분노와 불만이 단지 민주나 평화에 대한 요구 때문이 아니라 가장 밑바닥에는 자본에 대한, 재벌을 향한 분노와 저항이 깔려 있다는 것을 그들도 충분히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노동자 민중은 이미 ‘정리해고, 비정규직 없는 세상’을 외치며 투쟁하고 있었고 세계적으로도 아래로부터의 투쟁, 1%에 맞선 99%의 투쟁 등이 봇물처럼 터져 나오고 있는 것을 마냥 외면하기 어려운 정세가 펼쳐지고 있는 것에도 영향을 받았다고 할 수 있다. 오히려 이에 비하면 야권연대는, 아래서 다시 말하겠지만, 노동자 민중의 반MB 투쟁을 철저히 선거에 종속시키는 일에 매진했다. 노동자 민중의 반MB 투쟁이 야권연대마저 부정할 가능성을 우려하는 태도로 일관했다. 실제로 민주노총과 통진당이 그 사이에 끼어 있지 않았다면 얼마든지 현실화 될 수 있는 상황이었다.
  어쨌든 이번 선거는 그 결과를 말하기에 앞서 이미 반MB가 기정사실이 된 채로 치러졌으며, 그런 결과를 낳게 한 가장 결정적인 동력이 바로 지난 4년에 걸쳐 이루어진 노동자 민중의 투쟁이었다는 것을 먼저 확인할 필요가 있다. 선거 결과에 대한 평가는 이를 기초로 하여 또 다른 맥락에서 시도해야 한다.

 

 

노동자 민중의 반MB 투쟁과 열망을 야권연대가 가로챘다.

 

  노동자 민중은 이명박정권 4년 동안 처음에는 정말 이명박정권과‘만’ 맞서 싸웠다. 그 과정에서 보수야당(민주당)은 물론이고 진보정당 심지어는 민주노총조차도 별 다른 역할을 하지 못했으며 도움도 되지 않았다. 노동자 민중은 민주당을 오히려 경원, 배척했다. 민주당이 지난 대선과 총선에서 참패한 사실 자체가 이미 노동자 민중이 그들을 거부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대표적으로 ‘촛불 투쟁’, ‘용산 투쟁’ 등에서 민주당은 전혀 설 자리가 없었다. 그들 스스로도 대선과 총선에서 참패한 원인을 엉뚱한 데서 찾으며 이른바 ‘뉴민주당 플랜’을 들고 나오는 실정이었다. 진보정당이나 민주노총도 그 투쟁의 중심에 나서지 않았다.
  민주노총은 노동자 민중이 온몸을 받쳐 투쟁하고 있는 상황에서 투쟁을 확대 강화하려는 노력은 뒷전에 밀어둔 채 이른바 ‘진보대통합(당)’을 들고 나와 그것이 마치 노동자 민중이 원하는 것이며, 가장 절실하고 시급한 문제라고 강변하고 나섰다. 진보정당 역시 민주당과 마찬가지로 대선과 총선에서 패배한 결정적 원인이 진보정당으로서의 정체성과 독자성을 잃고(버리고) ‘열우당’ 2중대 역할에 머문 사실 때문이라는 것을 알려 하지 않거나 숨기면서 통합이 마치 새로운 과제인 것처럼 진실을 호도했다. 그러면서 당장의 투쟁에는 형식적으로만 개입하고 정신과 몸은 온통 다가올 선거에서의 유불리만을 따지기에 바빴다. 바로 이 같은 현실 때문에 노동자 민중만이 이명박정권과 정면으로 맞설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가 재보궐 선거, 교육감 선거, 지방선거, 서울시장 선거 등을 맞으면서 노동자 민중은 이제 이명박정권만이 아니라 야권연대와도 부딪혀야 하는 상황을 마주하기에 이르렀다. 대표적으로 현대자동차비정규직 투쟁에서 진보정당은 야4당 중재안을 앞장서서 들이밀면서 투쟁에 찬물을 끼얹었다. 이런 상황은 크고 작은 투쟁에서 계속됐다. 결정적으로 희망버스 투쟁에서는 아예 한나라당까지 포함하여 만든 ‘국회권고안’을 들이 밀었다. 촛불 투쟁, 용산 투쟁, 쌍용자동차 투쟁을 거치면서 이명박정권에 대한 분노가 폭발하고 현대자동차비정규직 투쟁, 장기사업장 투쟁, 희망버스, 희망텐트 투쟁을 벌이면서 ‘비정규직, 정리해고 없는 세상’을 외치는 상황에서 민주노총과 진보정당은 ‘진보대통합이냐, 민주대연합이냐’에만 정신을 쏟았다.
  그러면서도 현실 선거를 맞아서는 야권연대를 점점 더 강화시켜 나갔다. ‘자본가 정당’과 단절하라는 노동자의 요구가 거세게 일어났지만 이를 완전히 외면, 무시한 채 민주노동당은 끝내 자본가 정당인 ‘국참당’과 통합하는 지경으로까지 내달았다. 민주노동당 주류(민족주의 세력)가 갖고 있는 전략인 인민전선(민주대연합) 노선과 부합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그를 밀어붙일 수 있는 두 가지 상황이 벌어졌다. 하나는 진보신당과의 전면 통합이 불발된 것이다. 민주노동당 당권파는 이 상황을 오히려 국참당과의 통합을 통해 책임을 피하면서도 자신의 뜻을 관철하는 대담성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또 하나는 서울시장 보궐선거를 앞두고 안철수 현상을 맞이한 것이다. 진보정당은 아예 존재감마저 위협당하는 상황에 직면했다. 그렇게 되자 이제 민주대연합은 노선이라는 측면에서 필요를 넘어 생존을 위한 필수불가결한 것이 되고 말았다. 물론 민주노총 관료들의 이해관계도 맞아 떨어졌다.

 

  야권연대는 결정적으로 두 가지 현실을 낳았다. 하나는 다 죽어가던 민주당을 되살려 놓은 것이다. 민주당이 힘을 얻어 갈수록 그에 비례해 야권연대, 민주대연합의 필요성도 따라서 커지는 것은 자명한 일이다. 이러한 악순환이 계속해서 반복됐다. 또 하나는 노동자계급의 독자적 정치세력화가 실종된 것이다. 진보정당이 비록 의회주의, 개량주의라는 근본 한계를 갖고 있지만 적어도 형식적으로는 자본가정당과 독립된 상태에서 선거에서라도 독자성을 발휘하는 것을 통해서나마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외형을 유지할 수 있었다. 비록 형식에서라도 진보정당이 독자성을 유지하고 안 하고의 차이는 특히 일상적 시기에는 결코 작다고 할 수 없다.
  사회주의 세력이 진보정당을 향해 자본가정당과 단절하라고 요구하는 것도 단지 진보정당을 압박하거나 정치적 공세를 취하기 위해서만이 아니다. 자본가정당과 단절하지 않을 경우에 노동자 민중이 치러야 할 대가는 줄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사회주의 세력이 활동할 수 있는 정치적 공간이 약화, 축소될 가능성이 더 높아질 것을 우려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의회주의, 개량주의라도 형식적 독립을 유지하는 것과 아예 자본가정당과 공공연하게 통합하거나 민주대연합처럼 은폐된 통합을 통해 노동자계급을 드러내놓고 배신하는 것과는 구별되어야 한다. 

 

  이번 선거에서 야권연대는 지난 대선과 총선에 비할 때 ‘승리했다’라고까지 할 만한 성과를 거두었다. 비록 새누리당이 과반을 차지했지만 야권연대 세력은 연말에 있을 대선에서 정권교체를 충분히 노릴 수 있을 만한 교두보를 확보했다. 새누리당을 포함한 보수진영이 마음을 놓을 수 없는 것도 이 때문이다. 야권연대 세력도 이번 총선 결과가 야권연대 자체의 실패이기는커녕 야권연대를 이뤄낸 덕에 이 정도의 성적을 낼 수 있었다는 것에 아무런 이의를 달지 않고 있다. 야권연대가 이 같은 성과를 낼 수 있었던 것은 앞에서도 말한 바와 같이 전적으로 노동자 민중의 반MB 투쟁에 힘입어서다. 그러나 노동자 민중은 자신이 피 흘리면서 심지어는 목숨까지 잃어가면서 이명박 정권과 맞서 싸운 정치적 성과를 야권연대에 빼앗기고 말았다. 아니 야권연대가 가로채 갔다.
  노동자 민중은 반MB 투쟁을 통해 새누리당마저 좌 쪽으로 이동시키는 힘을 발휘했다. 지난 대선·총선과 비교하면 가히 엄청난 변화를 이끌어 낸 것이다. 그러나 야권연대로 인해, 아니 더 정확하게는 진보정당의 배신적 행위를 막지 못함으로써 자신이 이룬 성과를 야권연대 세력에게 고스란히 가로채기 당했다. 노동자 민중은 이명박정권에 맞서 투쟁한 만큼 야권연대와도 맞서 싸웠어야 함에도 그러지 못했다, 아니 그 정도는 아니어도 적어도 야권연대에 대당할 수 있는 최소한의 대안적 정치·정세 구심을 형성하는 것에서도 성공하지 못했다. 야권연대를 정면으로 반대하는 독자후보를 세워 투쟁하지도 못했으며, 희망광장 투쟁을 통해서도 야권연대에 반대하는 정치(투쟁) 주체를 만들지 못했다. 가장 중요하게는 야권연대에 대당하는 정치·정세 구심이 될 수 있는 노동자 민중의 정치적 요구를 정식화하여 이를 최대한 선전·선동하는 정치활동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노동자 민중의 입장에서 이번 총선 결과를 평가해야 하는 핵심적 지점도 바로 이 부분이다.

 

 

노동자 민중운동 진영의 재편이 불가피해졌다.

 

  이번 4. 11 총선 전 과정과 그 결과까지를 통해서 지난 1987년 이후 형성된 노동자 민중운동 진영의 재편이 불가피해졌다. 사실 이 점은 민주노동당 분당 이후로 이미 시작되었으며 이번 총선은 그 모습을 확인시킨 것일 뿐이다. 물론 최종적인 모습은 연말 대선까지 거치고 나서야 보다 확실한 형태로 드러나겠지만 말이다.
  우선 가장 일차적으로는 그동안 노동자 민중운동 내에서 다수파를 형성했던 민족주의 세력은 통진당을 통해 자본가정당과 민주대연합을 추구하는 것을 확고부동한 정치활동의 기본 축으로 삼으면서도 여전히 노동자 민중운동 진영 내에서의 다수파로서의 지위와 입지를 더욱 강화하려 할 것이 분명하다. 특히 연말 대선에서 야권연대를 통해 정권교체를 이루게 되면 민주당과의 공동정부를 구성하게 됨으로써 그 힘을 노동자 민중운동 진영에 개입하는 지렛대로 사용할 것이 명약관화하다. 그 중심은 말할 것도 없이 민주노총에 대한 영향력을 더욱 키우는 것에 두겠지만 또 한편으로는 빠르게 ‘국민정당화’의 길로 접어들 것이라는 것이 충분히 예상된다.
  이것은 곧 바로는 아니더라도 정치활동의 무게중심을 노동자 민중운동 진영에서 이제까지보다 훨씬 더 명실상부하게 제도권 정당 쪽으로 옮겨갈 것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이럴 경우 시간이 지날수록 노동자 민중운동 진영이라는 범주 자체가 흔들리거나 애매모호 해지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 한국사회에서 노동자 민중운동 진영이라는 범주가 성립할 수 있었던 것도 민족주의 세력의 영향이 가장 컸던 데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물론 민족주의 세력은 여전히 전선체 운동, 예컨대 한국진보연합, 민중의힘 등을 포기하지는 않을 것이지만 그에 따른 모순이 커질 것은 분명하다. 특히 공동정부가 들어설 경우에는 어떤 형태로든 노동자 민중에 대한 회유 내지 압박을 노골화해야 하는 위치로 바뀔 수밖에 없어 자의든, 타의든 노동자 민중운동 진영과 거리가 벌어질 가능성이 높다.

 

  다음으로 진짜 실험대에 오르는 단위는 민주노총이 될 것이다. 민족주의 세력이 노동자 민중운동 내에서 지금까지와 같은 위상과 지위를 누릴 수 있었던 것도 민주노총의 뒷받침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민주노총은 아무리 관료화되었더라도 한국노총처럼 제도정당에 완전히 흡수되기는 어렵거나 흡수되더라도 시간이 많이 걸릴 수 있다.  이는 한국노총을 보더라도 알 수 있다. 민주노총 상층관료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단위 노조에서는 투쟁이 불가피하게 벌어질 수밖에 없다. 이미 쌍용차투쟁, 현대자동차비정규직 투쟁, 장투사업장 투쟁 등에서 알 수 있듯이 이들 투쟁들은 사실 공식노조의 일정과 무관하게 진행된 것이다.
  또한 그게 아니라도 민주노총 안에는 통진당에 대해 반발하거나 거부하는 세력이 아직은 무시하지 못할 정도로는 유지되고 있다. 대표적으로 ‘선언운동본부’에 모인 단위들을 들 수 있다. ‘선언운동본부’가 하나의 세력은 아니지만 통진당에 대한 대응에서는 공동행동을 펼칠 수밖에 없는 각자의 사정을 안고 있다. 진보신당까지를 포함하여 ‘진보좌파연석회의’에 참여하는 세력들이 민주노총 안에서는 ‘선언운동본부’와 같은 형식을 통해, 민주노총 바깥에서는 제2의, 새로운 노동자 정치세력화라는 이름으로 민주노총을 압박하는 지형이 펼쳐질 것이 분명하다.

 

  이 같은 상황에서 민주노총은 적어도 선거 시기가 아닌 때에는, 특히 구체적으로 투쟁이 벌어지는 시기에는 노골적으로 통진당을 따르기가 쉽지 않을 수 있다. 민주노총 김영훈 위원장조차 “‘야권연대’가 ‘연립정부’로 가는 것은 전혀 별개의 문제”라고 한 것도 바로 이와 같은 상황을 염려에 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어쨌든 민주노총은 앞으로 민주대연합이 더욱 깊어지고 진보신당과 같은 민주노총 산하 노조나 조합원들과 연관성을 갖는 진보정당이 독자적으로 존재하는 이제까지와는 다른 상황과 지형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 그에 따라 노동자 민중운동 진영에서 민주노총이 수행했던 중심적 역할도 달라질 거라는 것을 예상할 수 있다.

 

  결과적으로 87년 이후 형성된 노동자 민중운동 진영이라는 범주는 약화되거나 아예 유명무실해 질 가능성이 높아졌다고 할 수 있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이제부터는 노동자 민중운동 진영 내 각 정치세력들이 노동자 민중운동 진영이라는 애매한 범주 안에 머무르는 것이 더 이상 어렵게 되고 오히려 의회주의, 개량주의 세력의 일부로 남을 것인가, 아니면 사회주의 내지 혁명주의 세력으로서의 정체성을 분명히 할 것인가를 선택해야 하는 상황을 맞게 된다는 것이다. 이 같은 현실이 비록 통진당에 의해서 강제되는 것이라는 점에서 씁쓸함을 지울 수 없지만 어쨌든 사회주의 내지 혁명주의 세력에게는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새로운 기회가 주어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번 총선에서 노동자계급 또는 사회주의 세력의 과제가 노동자 민중의 반MB 투쟁이 야권연대로 왜곡 수렴되는 것과 통진당에 대한 반대가 또 다른 의회주의 세력을 낳는 것으로 귀결되는 것을 저지하는 것에 있었다고 할 때 둘 모두에서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사실 이 두 과제는 동전의 양면과 같은 것이다. 따라서 의회주의 세력이 새롭게 ‘진보좌파당’ 또는 ‘노동자계급정당’을 만든다고 해도 여전히 통진당 반대뿐 아니라 야권연대 반대에 대해서도 일관된 태도를 보이기 어려우며 성공할 가능성도 없다. 의회주의를 버리지 않으면서 ‘가치’ 같은 추상적 언사로는 결코 통진당이나 야권연대를 넘어설 수 없기 때문이다.
 

  사회주의 세력은 이번 총선 과정에서 지리멸렬한 채로 제대로 된 대응과 정치활동을 펼치지 못했으며 세력으로서의 존재감은 더욱 드러내지 못했다. 객관적으로, 정세적으로 사회주의 세력의 등장이 요구되고 있으며 역할이 주어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러했다. 이 점에서는 사회주의 세력 자체가 발본적인 재편을 해야 하는 상황이다. 그럴 때만이 주어진 기회를 자신의 것으로 만들 수 있다. 이것이 이번 총선에서 얻어야 할 최대 교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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