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별에 대해

분류없음 2013/12/30 01:31

* 차별에 대해 (1) - 인종 차별에 대한 짧은 생각

 

짧은 동향 - 무슨 일이 있었나

 

크리스마스 휴가 주간이 시작됐다 (12월 23일). 그리고 12월 22일 일요일 새벽, 갑자기 정전. 아침 나절에 춥다는 기운을 느꼈지만 메트리스에서 개기다가 약속한 자원활동을 위해 아파트를 나섰다. 칠흙같은 암흑이 아파트 복도에 가득. 얼마전 친구가 선물해준 레고 열쇠고리에 달린 플래시라이트를 비추며 비상계단을 통해 내려갔다 (젠장, 나는 14층에 산다고!). 이 때까지만 해도 잠깐 정전일거야, 그렇게 생각했다. 교회에 들러 자원활동과 서비스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여전히 암흑. 건물 메니저와 이야기를 나눈 뒤 짝과 함께 이런저런 궁리를 하다가 대피 결정.

살고 있는 도시 곳곳이 지난 밤 덮친 얼음폭풍 탓에 정전 사태를 겪고 있다. 거의 백만 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전기없이 -이 말은 난방, 뜨거운 물, 찬 물 모두 쓸 수 없다는 말이다- 크리스마스를 나야 할 지경인 것이다. 더구나 짝은 다행히 오프를 받았지만 나는 23일부터 줄줄줄 워킹 스케쥴이 잡혀 있어 몹시 당황했다. 결국 아파트 건물과 동네의 전기는 24일 오후에 복구됐다. 그러나 여전히 (29일 현재) 만오천 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고통을 받고 있다. 이 나라와 도시의 비상사태 대응력과 사회안전망에 대해 다시 한 번 공부하는 시간이었다.

물리적 재난이 덮칠 때마다 삶의 평화, 살아있다는 증거, 그런 생각을 하게 된다.

 

 

명절에 만나는 친척들이 차별적 언사를 자행할 때 -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http://www.spectraspeaks.com/2012/12/queer-people-of-color-holiday-christmassurvival-tip-give-the-gift-of-media-storytelling-psychology-empathy/

어떤 분께서 페이스북에 링크해주신 아티클을 읽었다 (고맙습니다). 일부 백인들은 명절에 자기들끼리 모이면 비백인들을 까는 농담(이라 쓰고 인종차별적 언사라 읽는다) 혹은 이른바 소수자들을 놀리는 농담을 곧잘 하는 모양이다. 백인들 사회에서만 일어나는 문제가 아닌 것 같다. 사실 한국에 있을 때 부모님, 부모님 친척들도 곧잘 그러셨다. 주로 일부 특정 지역 출신 사람들과 '운동권' '빨갱이'들을 일컬어 몹쓸 말씀들을 하셨고 나중에는 이주노동자들까지 그 몹쓸 도마에 오르곤 했다.

나는 그 때마다 너무 불편하고 밥을 먹다가 체하기도 하고 급히 화장실에 달려가 토하기도 하고 그랬지만 단 한 번도 그들에게 내 감정을 표현할 궁리는 하지 못했다. 이른바 '가족' 들에게 나의 불편함을 호소하는 것은 '예'에 어긋하는 것이라 배운 탓도 있고 어차피 이들과 사회에서 엮일 일은 없으니 이 순간을 모면하자-피하자는 것이 지론이기도 했으리라.

아마 나만이 아닌 많은 다수의 한국인들이, 비한국인들이 나처럼 대응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모면'의 축적은 갈등해결 (conflict resolution) 의 훈련에 큰 도움이 되지 않는 것 같다. 논쟁을 해야 했어, 당신이 얼마나 바보같은 이야기를 하는 줄 알아, 뭐 이런 후회나 반성이 아니다. 저는 지금 불편해요, 그 이야기를 듣자니 너무 힘들어요! 내 감정을 표현하지 못한 것의 후회와 반성이다. 결국 한다는 게, 했다는 게 급히 자리를 피해 화장실에 가서 토하는 것 정도였으니 -- 아, 가여운 인생이여!

 

 

어글리 차이니스 고잉 홈!

 

이 도시에 왔던 초창기에 들었던 말이다. 짝과 다운타운 거리를 걷는데 일군의 백인들이 모여 있다가 지나가는 우리를 향해 "ugly chinese, fucking smelly japanese going home" 라고 말했다. 우리는 다가가서 "i'm sorry, i'm not a chinese or japanese [이 때는 either, neither, nor 를 전혀 쓰지 못했다]  i'm a korean. you know korea?"라고 응수를 해줬지만 억울한 심정은 가시지 않았다. 몇 달이고 그 때 들었던 그 말이 귓전에 웅웅거려서 조금만 누가 뭐라고 하면 움츠러드는 일이 많았다. 이 반응은 여전히 아직도 몸이 기억하고 있는지 나도 모르는 사이에 툭툭 기억이 되살아나곤 한다.

문제는 대단히 교묘하고 맥락과 상황을 이용한 인종차별이다. 차라리 대놓고 이야기하는 건 응사할 수 있다. 그러나 은밀하고 내밀하게 전달되는 차별은 참으로 고역이다. 저렇게 대놓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교육 (교양) 수준이 낮거나 경제적인 계급이 낮은 계층이다. 치밀대로 치밀어오르는 분노를 주체하지 못해 지나가는 약자에게 퍼붓는 저런 폭력은 차라리 양반이다. 겉으로는 온갖 화려한 언사로 평등과 정의를 부르짖으면서 뒤로 교묘한 차별을 일삼는 그런 무리들은 대부분 학식이 높고, 가방끈이 길거나, 스스로 교양있다고 믿는 무리들이다.

결론은,

한국사회와 별반 다를 게 없다는 말이다.

2013/12/30 01:31 2013/12/30 0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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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간다 정부

분류없음 2013/12/21 00:51

우간다에서 그 나라 국회의원들에 의해 안티호모섹슈얼 법이 탄생 (has passed) 했다. 

 

One World Voice에 올라온 글을 보니,

"'게이'라는 이유로 잡히거나 제3자에 의해 고발당하면 죽임을 당하거나 최소한 감방 신세를 져야 한다. 누구든 게이를 비호하거나 돕다가 걸리면 3년 형에서 14년 형을 받을 수 있다. 누구든 게이에게 말을 걸면 1년 형을 받을 수 있다. 사람들은 단지 다른 사람의 '말'에 의해 감옥에 갇힐 수도 있다."

 

"박정희를 돕던 김일성"이 말이 안되고

"이명박을 돕던 김정일"이 말이 안되고

"박근혜를 돕는 김정은"이 말이 안되듯이

이 법은 정말로 말이 안된다.

 

누구든, 특히 한국 기독교 업계 사람들, 우간다 국회의원 데이비드 바하티 (David Bahati) 처럼 "악마를 막기 위한 법안을 마련해 기쁘다 (I am glad the parliament has voted against evil) 고 말한다면 그 사람은 그 순간 지옥행 초급행열차를 타게 될 것이다. 이건 정말 온 힘을 다해 하는 저주다.

 

 

잠을 이룰 수가 없다.

 

짧은 분석 기사 http://www.bbc.co.uk/news/world-africa-25463942?SThisFB

국문 글 http://mitr.tistory.com/1629

2013/12/21 00:51 2013/12/21 0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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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욕의 연속

분류없음 2013/12/18 16:14

#1.

 

온 날은 스스로 정하지 못했지만 갈 날은 스스로 정하리라 다짐하고 사는 탓에 반은 살았나, 절반 넘게 산 게 맞나 그런 질문을 하루하루 던진다. 그런 질문을 하다보니 삶의 굴곡과 그 굴곡에서 만난 사람들, 느작없던 행동들 따위의 기억들이 힘없는 나뭇가지처럼 툭툭 부러지는 그런 때가 있다.

툭툭 털고 일어서기에는 참으로 견디기 힘든 치욕들. 누가 나에게 준 치욕이 아니라 내 스스로 내게 들이민 치욕들. 

 

삶은 정말이지 치욕의 연속이다.

 

#2.

 

유시민, 한명숙, 이해찬... 이런 사람들이 모여서 뭔가를 한 모양이다. 즈음해 문재인 의원은 출판기념행사를 가진 모양이다. 참으로 가관이다. 나라의 꼴을, 백성의 꼴을 이 지경으로 만든 데에는 저치들의 탓이 크다. 노무현 정부 5년 동안 나라를 다스렸던 사람들 아닌가. 나는 이 자들이 노동자 배달호가 자기 목숨을 끊어 열사가 되었을 때, 수많은 노동자들이 목숨을 던져 동료들과 가족들을 살리려 몸부림쳤을 때 뭐라고 했는지 잊을 수가 없다. 아프간에 파병했을 때, 에푸티에이 밀어부치고, 건강-복지 관련 법안을 개악했을 때 이 자들이 뭐라고 떠들었는지 잊을 수가 없다. 그리고 이명박 5년이 지났고 박근혜 1년이 지나려 한다. 지난 6년 동안 나는 이 자들이 "저희들은 지난 정부에서 무엇을 잘 못했습니다. 미안합니다. 우리 탓이 큽니다" 라고 말하는 것을 듣지 못했다. 말했나? 나만 못 들은 건가? 혹시 들은 사람 있으면 제게 좀 알려주세요.

오히려 이들은 이명박근혜를 욕하고 북조선 정권에 빗대어 도매금으로 넘긴다. 분노가 분노를 재생산하고 안티테제만 난무하는 그들의 거리에 어떤 희망이 있을까. 오히려 이들은 건강한 의식을 드높이는 데에 방해만 될 뿐이다. 미움과 분노, 반성없는 실천, 잘되면 내탓-안되면 네탓. 평범한 사람들이 갖는 정치의 염증과 혐오는 이런 데서 나오는 게 아닌가.

 

정치를 하지 말라는 게 아니다. 실천을 하지 말라는 게 아니다. "잘못이 큽니다. 민주주의를 이 지경으로 훼손한 것에 잘못이 큽니다." 나는 이 말이 듣고 싶을 뿐이다.

 

#3.

 

좌파는 찢어졌다가 합쳤다가 일군의 무리들이 나와서 뭔가를 또 했다가 수면 아래에서 무척 바쁘다. 바쁠 것이다. 지난 여름 기층 민중들의 봉기와 함성이 전세계 곳곳을 달궜을 때에도 전세계 좌파들은 수면 아래에서 무척 바빴다. 월가를 뒤덮은 뒤에 연달아 일어나는 이 봉기의 원인은 무엇인가, 그것을 분석하는 데에 바빴다. 브라질 민중들이 단돈 200원 때문에 일어났을 때에도 원인이 무엇인지, 민중의 투쟁을 불순한 정치집단이 하이재킹할 수 있으니 조심해야 한다느니 - 민중의 힘은 달을 가리키는데 손꾸락을 바라보기에 급급했다.

어쨌든, 어쨌건 -- 바쁜 것과 무관하게 -- 뭘 해도 좋다. 나는 늘 당신들은 응원하고 응원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 이제 그동안 지난 몇십 년 동안 뭘 못했는지, 뭘 잘 못했는지 그런 이야기를 하자. 그래야 뭔가 채울 게 나오지 않겠는가.

 

속이 너무 상한다. 슬프다. 치욕이다.

 

#4.

 

어떤 진보적인 분께서 어떤 개인의 개인정보를 당사자의 의사와 무관하게 제3자에게 노출했다. --채동욱 이야기를 하는 게 아니다.-- 본의 아니게 (?) 새어나간 그 사적 정보는 어떤 개인의 성정체성에 관한 것이었다. 이른바 아웃팅이다. 뒷담화라고 하나, 한국형 오지랍이라고 하나. 나는 그 진보적인 분의 정치적인 색채, 노동자계급에 기반한 정치사상적 진보성에는 전혀 의구심을 갖지 않는다. (사실은 그 부분에는 관심이 없다.) 그러나 나는 그이가 정치사상적으로 급진적이기 때문에 소수자 이슈에 있어서도 그럴 것이라는 점에는 단연코 의구심을 갖는다.

이 둘은 전혀 다른 문제이기 때문이다. 성소수자들의 해방을 지지하는 이들이 노동해방을 지지하지 않듯이 노동해방을 지지하는 이들이 성소수자들의 해방을 지지하지는 않는다는 말이다. 같아야 하는 두 문제는 같을 수 없게 되어버렸다. 이게 바로 현실이다. 그리고 이 지점에 #3의 한계와 그 반성이 있어야 한다. 이 공명(resonance)은, 바라마지 않는 이 공명은 이제 논리나 이론 이외의 문제로 되어버렸다. 가방끈의 문제가 아니라는 거다, 더 이상. -- 이 점에 대해서는 나중에 기회가 되면 좀 생각을 덜어내야할 것 같다.

 

그런데 그 이가 어떤 글로벌한 레즈비언-게이-바이섹슈얼-트랜스젠더 조직의 친구 (allies) 리스트에 떡-하니 이름을 올렸다. 아웃팅당한 그 개인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슬프고 고단하고 아프다. 치욕이다. 치욕의 연속이다.

 

 

2013/12/18 16:14 2013/12/18 1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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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도 못해

분류없음 2013/12/18 04:52

이 나라에 온 뒤 해마다 나를 사람으로 머물도록 돌봐준 사람들에게 새해 인사를 짝과 함께 드린다. 손카드를 써서 보내기도 하고 전자카드를 보내기도 하고 주소도 이메일도 혹은 그런 방편도 모두 곤란하면 마음 속으로 혹은 기도를 혼자 하곤 하는데.

 

올해는 이상하게 부모님께 인사드리는 것이 힘들고 어렵다. 남들에게 다하는 그런 인사를 엄마에게 하지 못하는 게 너무 너무 힘든 거다. 인사드리는 것이 힘든 것인지, 인사를 못 드린다는 것이 힘든 것인지, 아니면 둘 다인지.

 

며칠을 끙끙 앓다가 카드를 보내기는 했는데 또 이것이 보내고 나니까 더 힘들다. 끙끙끙끙끙.

 

마지막 학기에 가족에 대해 배웠던 코스아웃라인과 제출한 숙제들, 교수의 메모 등을 차분히 살펴봤다. 도움이 되기는 하는 것 같다. 왜 이렇게 힘든 것이야..........

2013/12/18 04:52 2013/12/18 0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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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의 일탈

분류없음 2013/12/10 02:53

청와대고 야당이고 국정원이고 경찰이고간에 황당한 일이 생기면 '개인의 일탈'이라고 말하네. 재밌다, 그논리 참. 이 도시의 시장님이 연일 괴이쩍은 행실을 일삼다가 드디어 직무정지를 당했는데 많은 사람들이 그러더라, '미틴(친) 놈'이라고. '개인의 일탈'의 또다른 버전. 

 

엊그제 일하던 곳에서 클라이언트 한 분이 자살계획을 너무나 상세하게 설명하시어 절차대로 병원에 보내드렸다. 업무지침에 따라 그런 사람을 혼자 두면 안되기 때문에 앰뷸런스를 부르고 도착하기까지 계속 같이 있었는데 아무리 봐도 이 사람은 이른바 '미친' 사람 같지 않다. 그런데 이 양반이 나랑 얘기하던 중에 시장님을 일컬어 '미친 사람'이라고 한다. 동의하기에도 반대하기에도 어정쩡한 상황. 사람도, 문화도, 언어도, 생각도 너무나 달라 힘들다. 그렇지만 그렇기 때문에 그때마다 항상 배운다. 

 

개인의 문제로 모든 것을 돌려버리면 얼마나 편할까. 우리 박근혜 대통령 각하의 문제도 그 사람 개인의 문제로 즉, 이른바 '여성편력이 심한 편부를 둔 결손가정'에서 사랑을 못받고 자라 비뚤어질대로 비뚤어지고 이그러진 문제적인 사람으로 치부하면 좀 편하려나. 왜 자기들 눈의 들보는 못 보고 타인들만 바보를 만드는 일에 그렇게 혈안일까. 그나저나, 각하 시간이 얼마 안 남았어요. 이제는 시간이 적입니다요, 적. 결단을 내리십사와요. 오천만 국민이 개인적으로 일탈하는 나라의 대빵이 뭐가 좋아요. 

 

여기에 살고 계시는 많은 진보적인 한국인들께서는 한국에서 발생하는 일에는 대단히 적극적이고 진보적인데 이 도시, 이 나라에서 벌어지는 무수한 불평등과 불공정 사례에 대해선 일반적으로 침묵하신다. 관심이 없으신 것 같다고나 할까. 오히려 한국 상황을 보시면서 강 건너 집이 불타는데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심정이란다. 아이러니도 이런 아이러니가 없다. 내 생각엔 주로 할 줄 아는 일을 하려다보니 이런 아이러니가 나오지 않나 싶다. 뭐랄까, 외관은 진보인데 발상의 수준이나 인식의 패턴은 일정 보수에 가깝다. 할 수 없어도 뭔가 도전해보면, 궁리를 해보면 방법이 있을텐데. 지쳐서 그냥 혼자 알아서 하기로 했다.

그리고 사실을 말하자면,

나는 강 건너에도 '집'이 없다. 불에 탈 집이 없다는 말씀이다. 그냥 세계시민이려니, 내가 사는 곳이 -물리적으로- 그냥 내 집이려니 그러고 산다. 이것도 개인의 일탈이려나?

 

드디어 이번 주 여행의 테마를 정했다. 냄새소환. 지난 겨울 잠깐 들렀을 때 느꼈던 그 냄새를 소환하고 구름낀 어지러움 속에서 명상을 완수하는 그런 여행이 될 것이다. 아, 하나 더 추가. 개인의 일탈.

 

 

 

 

 

2013/12/10 02:53 2013/12/10 0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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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하고 사나

분류없음 2013/12/06 03:30

*

Alison Balsom이 도시에 왔다. 그녀가 이십 분 나오는 공연을 한달 전에 예매해 다녀왔다. 가장 싼 좌석이었고 그녀의 뒤통수만 조그맣게 보였다. 소리만 들으면 되니까. 뭐, 상관없었다.

 

*

Elizabeth Bishop의 사랑-인생을 다룬 브라질 영화를 역시 브라질 친구의 소개로 보게 됐다. 지난 초여름 도시에서 열리는 영화제에서 상영되었으나 놓치고 디비디를 구하느라 진을 빼다가 거의 포기하던 차에 이 친구가 알려줬다. 고마운 녀석.

 

*

우울함이 극치를 달리고 있고 위험 지수를 깨닫고는 있는데 좀처럼 개선의 여지가 없다. 살아있는 시체와 같다고나 할까. 외관으로는 뭐, 남들은 알아차릴 수 없는 그런 상태. 잠깐 여행을 다녀오겠다는 결심을 굳히는 데에만 열흘이 넘게 걸렸다. 다녀온다고 좋아지진 않겠지만 더 나빠지진 않았으면 하는 바람.

 

*

시 하나, 한국어로 옮긴 시를 찾고 있는데 이것도 실패. 내가 옮겼더니 영 시맛이 안나더라. 그것도 실패. 그래서 그냥 원어로 복사.

 

First Snow

 

The snow
began here
this morning and all day
continued, it's white
rhetoric everywhere
calling us back to why, how,
whence such beauty and what
the meaning; such
an oracular fever! flowing
past windows, an energy it seemed
would never ebb, never settle
less than lovely! and only now,
deep into night,
it has finally ended.
The silence
is immense,
and the heavens still hold
a million candles; nowhere
the familiar things:
stars, the moon,
the darkness we expect
and nightly turn from. Trees
glitter like castles
of ribbons, the broad fields
smolder with light, a passing
creekbed lies
heaped with shining hills;
and though the questions
that have assailed us all day
remain- not a single
answer has been found-
walking out now
into the silence and the light
under the trees,
and through the fields,
feels like one.

- Mary Oliver

2013/12/06 03:30 2013/12/06 0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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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양상

분류없음 2013/11/26 01:07

얼마 전 야간노동을 마치고 교대를 기다리는 아침 무렵, 늘 그렇듯이 인터넷을 통해 지난밤 도시에서 일어난 일들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늙은 여남커플이 오랫동안 살았던 아파트에서 동반 투신 자살을 했다. 두 이는 성도 다르고 '법적' 혼인 상태도 아니지만 이웃들은 '부부'로 알고 지냈다고 전한다. 경찰은 두 이가 최근 들어 노환과 만성 (chronical) 질환에 따른 극심한 고통을 호소했고 "견디기 힘들다"는 말을 이웃을 통해 했다는 것도 밝혀냈다. 이웃들은 "평화롭고 다정한" 두 사람이 삶을 중단하는 결정을 내린 것에 큰 충격을 받았다. 늘 그렇듯이, "그럴 줄 몰랐다"는 것이다. 타인의 삶은 잘 들여다보지 않으면 잔잔한 호수와 같다. 그럴 줄 몰랐던 이웃들에겐 아무 책임이 없다.

두 이는 각각의 삶을 중년까지 지내다가 황혼기에 서로 만나 우정을 쌓으며 삶을 함께 보낸 것 같다. 유서를 남기지 않은 두 이는, 여자는 동유럽에서 오래전에 이민온 사람이고 남자는 이 나라에서 태어난 유러피안 배경을 지닌 사람이다. 투신 직후 둘은 병원으로 옮겼으나 절명한 것을 경찰이 확인했다.

 

또 얼마 전 한반도 남쪽의 어느 도시에서 숙환을 견디지 못한 노부부가 자살했다는 기사를 읽었다. "너무 아파서" 연탄을 피우고 동반자살한 것이다. 유서를 남긴 이들은 "자식들에게 부담을 주고 싶지 않다"며 삶을 적극적으로 중단한 이유를 밝혔다.

 

앙드레 고르와 그의 아내 도린은 십여 년을 넘는 동안 함께 투병생활을 했다. 불치병을 의학적으로 확인한 사람은 도린이었으니 세상 사람들은 앙드레 고르가 도린의 투병을 '도왔다고' 전하지만 앙드레 고르 스스로 도린 없이 사회적 삶을 살아간다는 것이 곤란하다는 것을 토로한 바 둘은 같으면서도 다르고 다르면서도 같은 삶을 '함께' 하다가 삶의 중단을 또 '함께' 선택한 셈이다. 이 둘이 앞의 두 커플과 다른 점은 문 앞에 "경찰에 신고하세요"라는 말을 남기고 또 여러 방편의 글쓰기를 통해 둘의 삶과 삶의 중단을 설득해왔다는 정도.

 

앞선 두 커플의 이야기를 읽으며 문득 죽음의 양상이 변하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나는 때때로 내 삶을 중단하는 것에 관해 스스로 되뇌이거나 짝과 토론을 하곤 한다. 어떻게 하면 주변 사람들에게 불편함을 주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 방법에 관해 때로는 그 과정에 관해. 그러나 어떻게 해도 현세에 남아 이 삶을 살아가는 이들에게 불편함을 남기지 않을 방법이란 건 없다. 사람은 '혼자' 살지 않기 때문이다. 혼자 살아갈 수 없기 때문이다.

 

얼마나 견디기 힘들었길래 동반자살을 결심했을까, 얼마나 힘들었으면 그랬을까, 혹은 영화를 따라했다거나, 앞선 사람들 '흉내'를 냈다거나, 그런 추측은 아무 의미 없다. 나는 앙드레 고르 커플을 포함해 앞선 두 커플의 삶과 결단, 그리고 알려지지 않은 수많은 이들의 결단과 결심을 묵묵히 지지하고 그이들이 살아낸 거친 삶을 축복하고 싶다. 고개를 숙인다. 그이들의 명복을 빈다. 저세상 따위는 알지 못하지만, 그리고 그것이 있는지조차, 그것을 알아내는 일이 나에겐 요령부득이지만 부디 그들이 다음 세상에선 행복하기를 바랄 뿐이다. 까닭 없는 연민에서 나오는 낭만이라고 비난받아도 나로선 할 말이 없다. 그 결심은, 결단은 무엇보다 고귀하기 때문이다. 사는 것보다, 치욕스런 삶을 살아내는 것보다 영예롭기 때문이다.

2013/11/26 01:07 2013/11/26 0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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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다녀옴

분류없음 2013/11/18 03:37
간만에 아침 일곱 시에 일어나 교회에 감. 오늘 설교는 Saul 이 다마스쿠스 가는 길에 겪은 멘붕을 기록한 사도행전 이야기에 근거해서 마태복음에 나오는 베드로의 급전직하 인생을 가지고 인생을 살아가는 방식, 리더를 고르는 방법을 설파. // 목사는 이 나라에서 공식적인 첫 동성결혼을 이끈 비이성애자이고 다소 급진적인 사람으로 알려져있지만 한 번도 누굴 찍어라, 라고는 말하지 않는다. 다만 리더를 고를 때엔 그 사람이 제시하는 비전을 보고, 그 비전을 현실화하기 위한 플랜과 실제 (practice) 를 보라고 말한다. 마지막으로 실수했을 때 정직하게 인정하는 것, 그게 중요하다고 말한다. 누굴 두고 하는 얘기인지 뻔하긴 하지만 냉소적이거나 우스꽝스럽게 이끌지 않아서 좋았다. 한국인 목사님들이 제발 저렇게만 설교하시면 좋겠는데. 기도하는대로 이룹니다, 주님은 지켜봅니다, 세상일을 좇지 말고 하나님의 일을 좇으세요, 예수는 천국입니다, 아프면 기도하세요, 명박하게 투표하세요... 뭐, 이런 건 아니지 않나... // 교회에 다닌다고 하면 미쳤다고 할 사람들이 있긴 있겠지만 미친 것 같기는 하다, 일정. 미치지 않고 이 세상을 어찌 살겠는가. 그런데 한국 교회나 한국인들이 장사하는 교회에 비해 훨씬 좋은 점은 뭘 하라고 하질 않는다는 거. 그냥 내버려두니까 너무 좋다. 멤버쉽을 가진 뒤 가끔 전화가 오기는 해도 지금 통화하기 거북해, 라고 말하거나 그레이트, 사운즈굿, 하다가 안녕, 하고 끊어도 별 뒷말이 없다. // 오늘은 로버트 프로스트의 가지 않은 길, 시에 맞춘 송가를 들었는데 아주 그만이었다. 시에서 꽤 유명한 비이성애자 가수가 나와 곧 할거야, (뭘? 뭐든지) 라는 노래를 신나게 부르는 것도 좋았다. 짝이 일하는 탓에 혼자 오가는 길이 쓸쓸했지만 나이가 들어서 그러나, 조용하고 한적한 그 기운이 이젠 참말로 좋다. // 언젠가 게이빌리지의 한 카페 파티오에 앉아 젊은 남자들 구경을 하며 아이스크림을 쪽쪽 빨아 잡수시는 목사 커플을 본 적이 있다. 재미나고 유쾌한 장면이었다. 목사님, 오래 사세요. 목사님 건강을 기원하다니, 참 인생은 살고 볼 일이다.
2013/11/18 03:37 2013/11/18 0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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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에 빠짐

분류없음 2013/11/13 00:33

어쩐지 쓸쓸해 보이는 눈. 그러나 원래는,

 

 

 

 

 

 

안정적인 직장을 구하면 가장 먼저 할 일이 튼튼하고 강한 책장을 사서 책님들이 일어서서 계시도록 편안한 거처를 마련하는 것과 동시에 강/아/지를 입양하고 강아지와 함께하는 자원활동 시-이-작. 요크셔만 쳐다보다가 이제는 코기만 보고 있다. 그 털을 어찌 감당하려고...

 

 

2013/11/13 00:33 2013/11/13 0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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빼빼로데이

분류없음 2013/11/12 23:46

어제가 빼빼로데이라는 것을 몰랐다.

한국에 있을 때도 잘 몰랐으니 그리 새삼스러울 것도 없지만 저녁 늦게 퇴근한 짝에게 저녁상을 차려주는데 빼빼로데이라는 것을 이야기한다.

그래서 나는,

빼빼로라도? 하고 물었더니

그럴 리가 없잖아요. 하고 대답하신다는.

쿨하셔.

 

2013/11/12 23:46 2013/11/12 2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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