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의차이

분류없음 2014/06/02 12:27

일하는 곳에 아시안 중년 남성 클라이언트가 왔다. 이민 뒤 조현증을 앓다가 의처증이 심해져 몇 차례 아내에게 살해위협을 가했다. 언어폭력은 말할 것도 없고 벽에 글씨를 휘갈기거나 심지어 식칼과 같은 무기를 들고 위협하는 일도 있었다. 

 

이이는 강한 엑센트가 들어간 영어를 쓰지만 쓰기도 곧잘 하는 터라 의사소통을 하는 데엔 큰 지장이 없다. 아침마다 일어나 바닥에 앉아 참선을 하고 자기 유닛을 매우 깨끗하게 관리하며 아침식사 뒤엔 공동공간을 스스로 청소하기도 해 평판이 좋다. 이이의 정신질환-형사사건 관련 자료를 읽지 않으면, 히스토리를 알지 못하면 이 남자는 그냥 평범하고 인상좋은 '이웃집' 아저씨일 뿐이다.

 

마지막 형사처벌의 조건 상 이이는 언제나 아내와 백미터 이상의 거리를 둬야 한다. 그 안으로 접근해서는 안된다. 아내가 머무는 집에 가서는 안되고 전화, 이메일 등도 직접 해서는 안된다.

 

이탈리아 이민자 2세와 짝을 이뤄 일을 하는데, 정문에 어떤 젊은 아시안 처자가 나타났다. 뭔 일이니, 하고 나가보니 저 클라이언트의 딸이란다. 아빠를 위해 옷과 자전거, 그리고 엄마가 만든 콘지(중국식 죽)를 가져왔단다. 안타깝지만 나는 이 처자의 등장에 관해 들은 바가 없다. 그리고 이 남자는 자신의 신상에 관해 제3자와 소통을 해도 좋다는 중요한 서류(consent form)에 서명을 하지 않았다. 미안합니다만 댁의 아버지께서 이러저러한 동의서를 제출하지 않으셔서 아무 것도 도와드릴 수 없습니다. 다만 댁의 아버지께서 외출 중이라는 것은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아버지의 전화로 연락해 보시는 건 어떨까요. 맙소사. 아버지는 전화가 없어요. 미안합니다. 아버지가 돌아오시면 따님이 오셨다는 메세지는 전해드릴 수 있을 것 같아요. 미안합니다.

 

볕이 짱짱한 더운 날, 돌아서는 처자를 보니 마음이 짠하다. 그래도 어쩔 수 없다. 한국이었다면, 아니 한국인들을 대상하는 하는 에이전시였다면 잠깐 들어와서 앉으세요, 차라도 한 잔, 이런 게 가능했을까. 가능했겠지.

 

사달은 다음에 발생했다. 일터 건물 외곽을 비추는 CCTV를 바라보던 이탈리안 동료가 오마이갓, 왓더헥 저것 좀 봐. 발길을 돌린 처자가 다시 일터 정문을 지나는데 또 다른 젊은 처자, 그리고 중년의 한 여자와 함께 자전거를 끌고 가는 모습이 보인다. 추측컨대 또 다른 젊은 처자는 큰 딸이고, 중년의 여성은 클라이언트의 아내다. 이탈리안 동료는 교활한 (sneaky) 사람들이라며 어디에 숨어있다가 나왔는지 모르겠다고 의아해한다. 게다가 피해자가 가해자를 찾아왔다면 조건적 석방 (conditional charge) 은 어떻게 되는 거냐며 만약 클라이언트가 있었다면 우리가 클라이언트를 보호할 수 없는 -- 피할 수 없는 상황이 발생하게 되는 거라면서 난리부르스를 친다. 그는 여기에 없어. 그러니 그렇게 가정할 필요 없어. 나는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아. 아시안 컬쳐에선 아주 흔한 일이야. 왜냐하면 그들은 그이의 가족이니까. 이탈리안 동료는 입을 꾹 다물었다. 안그래도 파리 들어가겠다 입 좀 다물어, 라고 말하고 싶었다고.

 

하지만 솔직히 말해 나는 클라이언트의 가족들, 특히 아내, 그 여성을 이해할 수 없다. 아니, 이해하고 싶지 않다. 엄밀히 말하면 가슴과 머리가 이해하는 그 간극이라고 할까. 나에게 가족이란 닿지 못할 은하계 저편에 있는 것이라서 그런가. 문화적 차이가 주는 충격을 복잡다단하게 중층적으로 거듭 확인한 날.

2014/06/02 12:27 2014/06/02 1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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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약떡볶이

분류없음 2014/05/22 09:05

퇴근길. 아파트 앞에 짭새들이 우글거린다. 뒷춤에 수갑을 덜렁덜렁 달고 다니는 사복 경찰 (형사, 응?), 정복 경찰 골고루다. 아무래도 민중의 개망나니지팡이를 대변하는 정복 경찰이 훨씬 편해서 뭔일이야, 하고 물어봤다. 니네 아파트는 깨끗해, 상황종료야. 동문서답.

아파트 포치에 흑인 이웃 한 명이 서 있고 사복 둘, 정복 둘과 대화 중인데 심각하다. 이 흑인 이웃은 덩치가 너무 큰 남자라 처음엔 거북했는데 계속 마주치면서 친해졌다. 평소에 만나면 늘 싱글벙글하고 친절하고 잘 생기고 두런두런 짧은 대화나누는 것에도 전혀 불편한 기색이 없고 놀러온 친구들이 수작을 부려도 말리고 심지어 미안하다고 인사를 대신 하기도 해서 거참 단정한 청년일세, 하고 생각했다.

 

빨래를 걷어오는 이웃 하나 - 이 여자는 꼭대기 층에 살아서 펜트하우스에 사는 기분이 어때? 하고 놀려먹곤 한다. - 와 엘리베이터를 같이 탔다. 뭔일이래? 물었더니 주절주절 잘 설명한다: 

우리 아파트에 대형 마약 딜러가 살고 있다는 첩보가 있었고, 첩보를 입수한 이 도시의 경찰서 마약담당부서에서 한동안 잠복근무를 했으며 오늘 그 현장을 덥쳤다.

펜트하우스(?)에 사는 그 여자는 포치 앞에 서 있는 그 흑인이 딜러인지 아닌지는 불분명한데 경찰이 아까 누군가의 큰 가방을 압수하는 것을 봤다고. 위험한 아파트건물들이 많이 있는 것은 알지만 우리 아파트가 그럴 줄은 몰랐다고 호들갑. 나는 이 정도면 꽤 안전한 축에 든다고, 괜찮다고 위로의 인사를 했다.

 

민중의 개지팡이들이 소기의 성과를 얻었는지는 모르겠으나 - 그리고 나는 그 훈남 흑인 청년이 딜러인지, 소비자인지 관심은 없지만,

 

백인형사와 경찰들이 흑인 청년 하나를 에워싸고 대화를 나누는(이라고 쓰고 심문하는, 이라고 읽는다) 장면은 몹시 불편하다. (사람을 벽면에 새워놓고 네 명이 에워싼 거면 적어도 이건 불링이나 해라스먼트 아닌가)

 

덧. (내 경험상) 마약딜러-마약소비자 가운데 절대다수는 백인이었다.

 

 

 

마약떡볶이, 김밥 먹고 싶다

 

2014/05/22 09:05 2014/05/22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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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구별법

분류없음 2014/05/21 13:16

* 이 포스팅은 서구 식민주의를 내면화하고 젠더적 불평등에 찌들어 살면서 피해의식에 쩔은 사람이 쓴 것이므로 읽을 때 쥬의를 요하며 영 불편하다 싶으면 스킵하는 것이 정신건강에 좋음

** 특히 인종차별적 언사가 남발하므로 특별한 쥬의를 요함

 

 

내가 체득한 주인구별법

 

- 서유럽 백그라운드의 백인이 물건을 팔거나 협상을 한다

이 백인은 주인일 가능성이 높지 않다. 그러나 가게의 온 물건이 마치 자기 것인양 허세를 있는대로 부리고 자기가 무엇이든 협상할 수 있는 것처럼 위세를 떤다. 만약 자기가 마셔본 A와인이 맛있으면 그게 장땡이다. 마진율? 마진율을 따지지 않으므로 그는 주인이 아니다. 그러나 그는 늘 주인 같다.

 

 

- 인디아 (인도-파키스탄-방글라데시-아프가니스탄) 사람이 물건을 팔거나 협상을 한다

이 사람들은 주인일 수도 아닐 수도 있다. 허세는 부린다. 동아시안인인 당신은 이 허세를 이겨낼 수 없다. 주인일 경우, 당신이 여성일 경우, 외모가 맘에 들면 공짜로 뭘 더 준다, 그러나 당신의 전화번호를 요구할 가능성도 높다. 왜? 주고 받는 것에 이들만큼 정확한 이들도 없다. 주인이 아닐 경우, 자꾸 뭘 더 얹혀 팔기 위해 애를 쓴다. 당신이 거부하면 태도를 확 바꿀 수 있고 체크카드 (데빗)로 계산할 경우 별도의 요금을 청구할 수도 있다.

 

 

- 동유럽 사람이 물건을 팔거나 협상을 한다

이 사람들의 기분에 따라 당신은 물건을 살 수도 못 살 수도 있다. 주인이든 아니든 그건 중요하지 않다.

 

 

- 중국인들이 물건을 팔거나 협상을 한다

일단은 물건을 보기 전에 현금이 있는지 확인하라. 물건이 맘에 들면 현금으로 계산하면 얼마인지 협상하라, 협상이 잘 되면 그제서야 웃으라. 같이 웃으면 타협점이 마련된 것이다, 라고 믿으면 바보다. 당신이 가게에 들어설 때부터 그들은 모두 주인이기 때문이다. 현금이 없다고 하면 그들은 안 판다. 만약 수퍼마켓이라면 서둘러라. 그들은 당신이 이미 계산한 계란 한 판도 계산하는-포장하는 과정에서 깰 수 있다. 미안하다고 하면 그만이고, 당신이 새 계란 한 판을 얻기 위해 다녀온 순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 히스패닉들이 물건을 판다

노래를 부른다. 춤을 춘다. 그들은 모두 주인이거나 고용인이거나. 정가에 사라. 그리고 그 춤과 노래에 어울리라. 그게 남는 거다.

 

 

- 캐리비안 출신 흑인들이 물건을 판다

히스패닉들과 비슷하지만 당신이 동아시안인일 경우 춤과 노래가 잠시 끊어질 수 있다. 덤터기를 쓸 수 있다. 정가를 확인하라. 주인-고용인은 동아시아인인 당신이 나타나는 순간 연대한다.

 

 

- 서아프리가 사람들이 물건을 판다

캐리비안 흑인들과 비슷. 무엇보다 문을 열고 닫는 시간이 일정하지 않다. 시계에 맞춰 사는 당신이 물건을 사는 일은 조금 힘들다. 

 

 

- 동아프리가 사람들이 물건을 판다

이들의 기도 시간을 방해하지 말라. 안그러면, 당신의 목숨을 담보할 수 없다.

 

 

- 한국인들이 물건을 팔거나 협상을 한다

백인을 데려가라.

 

 

 

 

2014/05/21 13:16 2014/05/21 1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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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만히있어

분류없음 2014/05/12 00:58

어제 (10일) 일터에서 긴급상황이 발생해 대처를 해야 했다. 간혹 일어나는 일이니 교육받은대로, 절차대로 하면 된다. 그리고 나는 이제 어지간한 물리적 상황에서는 당황하지 않는다. 아니, 당황하지 않게 되어버렸다. 화재와 대형정전 사태로 장시간 피난을 경험한 탓도 있지만 일상에서-일터에서 비상상황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어 몸이 알아서 반응한다고 해야 하나.

 

조현증 (정신분열증의 새로운 말) 같은 정신질환을 앓는 사람들 중 일부는 망상 (paranoia) 을 경험할 때 자신을 방어할 목적으로 평소보다 더 과도하게 행동-말하는 경우가 있다. 어제 그 케이스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그이가 감옥에서 경험한 폭력이 사실이라고 믿는다. 교정시설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상상 이상이다. 상상할 수 없는 무언가가 언제나 일어난다. 마치 2000년대 이명박근혜 정권 아래서 일어나는 일처럼 말이다. 시쳇말로 '멀쩡'했던 이이에게 갑자기 그 상황 (episode) 이 왔다. 그런데 정도가 좀 심했다. 커뮤니티의 안전을 위협할 정도였고, 나에게 혹은 나의 근무파트너에게 폭력을 휘둘러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그런 상황이었다. (그런데 사실, 이렇게 써 놓고도 한국에서 내가 저지른 혹은 내가 겪은 그리고 오늘날 한국에서 일어나는 폭력적인 상황을 떠올리면 '여기서 겪는 일은 별 것 아닌데' 싶어서 큰일이다).

 

어쨌든, 이런 상황에서는 일단 판단을 해야 한다. 완력으로는 그이를 제압할 수도 없고 제압해서도 안되니 나머지 사람들이 부엌이나 레크리에이션 룸과 같은 공동 공간에 머물러도 되는 건지-안전할지 그걸 먼저 판단해야 한다. 어제 상황은 "그렇지 않다" 였다. 그럴 땐 사람들에게 각자 방에 들어가 다음 안내가 있을 때까지 머무르라고 해야 한다. 일일이 찾아다니며 말할 수 없으니 방송을 해야 한다 "가만히 있으라"고 방송을 해야 한다. 맙소사. 이런 말을 해야 한다니.

 

그러나 해야 한다. 그게 내 일이니까.

다음 안내가 있을 때까지 니들 방에 들어가 가만히 있으세요 remain in your unit til further notice

 

설겆이를 하던 사람도, 패티오에서 담배를 피우던 사람도, 보드게임을 하던 사람도 차분히 일어나 자기 방으로 향한다. 뛰거나 서두르지도 않는다. 불평도 질문도 없다. 딱 한 사람, 분노조절장애가 심각한 한 남자가 뭔 일이냐고 묻는다. "나중에 이야기할테니까 일단은 네 방으로 가, 이건 우리 모두의 안전에 관한 거야, 그건 말해줄 수 있어. 오래 걸리지 않아" 맙소사. 이런 말까지 해야 한다.

 

911을 통해 부른 경찰과 엠뷸런스가 이윽고 도착했고 그 사이 경찰을 부른 것을 눈치 챈 이 남자는 줄행랑을 놓아버렸다. 자기 방 책상에 인종차별-호모포빅한 코멘트를 남겼다가 지우려고 애쓴 흔적이 역력한 그 '자취'를 남긴 채 말이다. CCTV를 통해 이 사내가 서쪽으로 급하게 걸어가는 것을 목격했으므로 도착한 경찰에게 이 사내에 관한 자세한 묘사를 전달했다. 경찰은 이 남자를 찾으러 차를 몰고 서쪽으로 갔다가 십여 분 뒤 다시 돌아와 이 남자에 관한 정보를 더 얻어서 현장을 떠났다.

 

모든 일이 종료된 뒤 복도를 돌아다니며 이제 괜찮다, 고 말했다. 그 사이 잠든 사람이 있을 수도 있으니 다시 방송을 하는 것보다 그게 나을 것 같았다. 레크레이션 룸으로 내려와 티비를 보는 사람, 각자 방에서 계속 잠을 청하는 사람, 끝내지 못한 저녁식사를 다시 시작하는 사람. 그리고 나와 파트너는 컴퓨터 앞에 앉아 서류작업을 시작했다. 커뮤니티 구성원 모두 한 시간 안에 일상으로 복귀했다.

 

절차대로, 교육받은대로, 배운대로 하면 불행할 일이 없는데 그 절차와 교육, 배운 것과 원칙이 아예 없거나 무너지고, 무엇보다 중요한 '신뢰'가 사라지면 우리 모두 슬픈 일을 겪어야 한다. 서로를 신뢰하지 못해 "가만히 방에 들어가 있으라"는 나의 방송을 그들이 무시했다면, 경찰만 보면 자지러지는 그들이 만약 방에서 나왔다면. 지금 나는 이 포스팅을 아마도 다른 방식으로 쓰고 있을 것 같다. 

 

2014/05/12 00:58 2014/05/12 0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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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린누굴까

분류없음 2014/05/02 13:55
무슨 일을 하냐고 묻는 사람들 (국적과 인종을 막론하고) 에게 대답을 하면 -- 음, 그러니까 대충 설명을 하면, 위험하지 않냐고, 별의별 일이 다 생기겠다고, 안 무섭냐고, 괜찮냐고 반문들을 하신다, 종종. 그러나--- 이 일은, 이 일터는, 지금껏 해온 일 가운데, 머물던 일터 가운데, 그리고 만나서 어울렸던 사람들 가운데 가장 안전하며 무섭지 않고 예측 가능한 일이며 일터이다. 사람들도 그렇다. 별의별 일? 글쎄, 사람 사는 게 다 거기서 거기 아닐까. 물지 않는답니다.
2014/05/02 13:55 2014/05/02 1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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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의귀환

분류없음 2014/04/16 11:04

아침7시 30분에 일어나 물을 마시려고 부엌으로 가다가 내 눈을 의심했다. 발코니 너머 온 동네가 하얗게 변해버리고 넘실넘실 눈송이가 날리고 있었던 것. 맙소사.

 

일요일에는 기온이 거의 20도에 육박해 내복을 벗어던지고 얇은 셔츠 한 장 걸친 채 구보를 했건만 이것은 무엇이더냐.

 

출근길에 다시 겨울잠바를 꺼내 입고 손을 호호 불면서 걸었다. 젠장, 장갑까지 가져왔어야 해. 퇴근길에 역시 젠장, 목도리도 가져왔어야 해. 지하철에서 팽팽 자다가 일어났더니 몹시 추웠다. 몸이 꽁꽁 언 기분으로 그 한기를 가득 안고 집에 돌아와 바깥 덧문이 떨어져나가지 않았나 걱정하며 올려다본 윗층 발코니 처마에 고드름이 낑낑낑 얼어붙어 있었다.

 

너 겨울이냐.

 

2014/04/16 11:04 2014/04/16 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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숟가락취침

분류없음 2014/04/05 10:54

지난 밤에 숟가락으로 김밥을 먹다가 잠들었다. 소파에 앉아서 띄엄띄엄 숟가락으로 김밥을 떠 먹었던 것. 쇼파에 누워있으면 테이블이 너무 멀어서리...

아침에 --아침인지도 몰라자나-- 시끄러워서 깼더니 저쪽 방에 충전하느라 꽂아놓은 전화기 알람이 혼자 뜬금없이 울고 있었다. 부시시 일어나서 방으로 가 전화기 알람을 끄고 보니 여전히 왼손에 숟가락을 들고 있네그려.

나는 글쎄, 늦은 밤이나 새벽이겠거니 했다. 왜냐면 여전히 어두침침했으니까. 하지만 --- 먹다가 엎어져서 잠들었던 탓에 얼굴 앞면이 전반적으로 퉁퉁 부어서 아침햇살을 가로막고 있던 것이었던 것이었던 것이다.

 

숟가락 두 개를 급속 냉동하여 눈두덩이에 올려보았지만 별 무소득. 샤워는커녕 머리도 감지 못하고 고양이 세수만 한 채 급히 집을 탈출하여 출근길에 올랐으나 여전히 얼굴은 평소의 두 배. 눈은 잘 떠지지도 않고, 젠장.

매니저의 눈길을 계속 외면하며 부은 눈이 가라앉기를 기대했으나 오후 2시가 넘어 원상회복. 늙었어 늙었어 늙었어.

 

* 정신줄 나간 아침 그 나절에도 거울 보며 흰 머리카락을 세 개나 뽑았더랬지, 아마.

2014/04/05 10:54 2014/04/05 1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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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내리는봄

분류없음 2014/03/27 12:54

살다보니 이런 봄도 있다.

서울엔 목련이 희고 희게 피었겠구나.

이곳은 눈발이 희고 희게 날린다.

거참.

 

2014/03/27 12:54 2014/03/27 1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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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로남았다

분류없음 2014/03/17 08:09

짝이 비행기를 타고 서울로 갔다. "잠시" 갔다는 게 맞다. 한 달 뒤에 오실 거니까.

그런데 나는 하염없이 눈물이 흐르는 듯한 기분에 젖어 있다. 그러니까 실제 눈물이 흐른다는 건 아니다. 왜냐하면 빨래도 해야 하고 밖에 나가 물건도 사와야 하고... 그러니까 살아야 하니까니미.

 

한국에 가고싶은 마음은 정말 크다. 생각해보라. 먹는 것, 입는 것, 냄새, 풍경, 사람들, 어느 것 하나 그립지 않은 것이 없다. 칠십년대 중반에 태어나 서른 넘기까지 한국 땅에서 먹고 입고 자랐다. 초등학교 - 국민학교 - 때부터 최루탄 가스 냄새를 맞는 (맡는) 게 일상인 줄 알았고 전세계 대통령들은 죄다 대머리인 줄 알고 살았다. 군인들이 정치하는 걸 불필요하다고 생각해본 적 없는 어린 날을 그렇게 지났다. 그리고 사람들이 무던히 싸우고 죽고 다치는 그런 나날들을 또 경과하면서 지금의 내 삶이란 게 고스란히 그냥 주어진 게 아니구나 그런 생각을 어렴풋이나마 하던 찰나에 대학생이 되었다.

그 거리의 냄새, 사람들의 지친 하루가 묻어나는 밤과 새벽을 지나 시큰한 토사물들을 이리저리 피해 성추행이 넘실대는 지옥철을 타고 매일매일 학교에 가면서 과연 내가 무엇을 느꼈겠는가. 혁명? 아니올시다. 그건 염세였다. 염세. 만약 그 과정에서 혁명을 느끼는 사람이 있다면 글쎄 나는 그에게 납죽 엎드려 소인을 죽여죽시옵소서라고 하기보다는 니미니밥구룻을 뻥--- 차버렸을 것 같지만 또 그게 꼭 그렇지만은 않다.

 

어쨌건너쨌건 가장 치열한 시점에 그 시절을 견뎌낸 그 도시를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이건 미움이라도 좋아. 사랑과 미움. 그래도 좋아. 나는 그 아침 공기가 너무나 좋았더랬다. 살아야 해 살아야 해. 아침 여덟시, 빠닥빠닥 고개를 쳐들고 계단을 치오르며 맡는 아침공기, 그리고 만나던 사람들, 공기, 기운... 스물의 나이만이 누릴 수 있는 그 뻔함 속의 젊음이란.

 

예상했겠지만 잡생각이 이리 많다보니 운동권 주류에게서 사랑을 받지 못하였다. --- 슬픈 결론?

 

십 년이 한참 지난 아침 나절 출근길에 그 기운을 다시 느끼게 되었을 때, 아니 어느날 문득 그 기운을 느꼈을 때 뭐랄까. 이건 뭐랄까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이 기분은 뭐랄까. 그걸 알까.

그걸 알게 되었을 때, 가까스로 알게 되었는데 또 그 도시를 떠나야 했을 때의 그 비애란. 슬픔이란, 연민이란. 상처란. 그러나 그럼에도 그 이별이란.

 

그러니 왜 가고 싶은 마음이 없겠느냔 말이다.

 

그리고 희망. 세상이 나아질 것이라는 희망. 나는 어딘가에 쓸모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막연한 희망. 내가 생각하는 세상을 함께 짊어질 이가 또 있을 것이라는 희망. 그 희망 없이 어찌 이 치욕을 견뎌낸단 말이오. 그리고 그 희망을 일상에서 함께 일굴 이, 짝이 있는데 내가 어찌 그 희망의 끈을 놓을 수 있단 말이요시방.

 

그런데 막상 갈 생각은 없다. 피붙이 모두 나를 나로 받아들이지 않는 그 세계에서 홀연히 느낄 그 외로움을 접수할 그 용기가 아직은 없는 것이리라. 내 몫까지 먹어주라. 해삼멍게광어짬뽕신떡모두다.

 

2014/03/17 08:09 2014/03/17 0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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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타령아냐

분류없음 2014/03/11 12:57

우리 여성들은 같은 여성들에게 더 냉정할 때가 있다. 같은 여성이기 때문이라기보다는 같은 약자의 처지에서 겪어내는, 관통하는 억압의 구체를 더 잘 알기 때문이다. 때로는 세상의 '표준'에 들어맞지 않는 나의 존재를 감추기 위해 그 억압의 구체를 억압자보다 더 잘 내면화하기도 한다. 간혹 장삼이사들이 읊는 '피해의식'은 그 내면화의 대표적인 예일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은 '의식' 이나 '망상'은 아니다. '피해' 그 자체에 가깝다. 아니, 피해, 손해이다. 불평등이다. 그러나 이 피해의 컨텐츠를 잘 이해하지 못하는, 이해할 수 없는 사람들은 '피해망상에 젖었다'든지 '유난을 떤다'며 그 힘든 고백을 가소롭게 만든다, 만들기 위해 애를 쓴다.

 

오늘 무척이나 고단한 하루를 보냈다. 우선 그동안 맡았던 한 클라이언트가 예정보다 일찍 프로그램을 떠났다. 내 계획에 없던 일이었고 나를 대하는 태도와 다른 워커(들)을 대하는 태도가 너무 달랐기 때문에 나로선 무엇이 그이의 진짜인지 잠깐 혼란스러웠다. 그이를 진단한 어떤 이는 보더라인퍼스널리티디스오더(BPD)인 것 같다고 하는데 의당 의사들이나 씹쭈구릴 그런 병명 따위엔 사실 관심이 없다. 나는 그것보다 그이의-여성의- 말을 제대로 청취하지 못하는, 못하는 것 같은 이 환경에 화가 났다. 같은 말을 해도 남성들의 이야기는 쉬이 전달된다. 남성들의 언어가, 그들의 삶이 표준인 까닭이다. 그러나, 그이의 말은 몇 번이고 필터링됐고 이따금 '거짓말'로 취급받기도 했다. 물론 이건 나의 소견이다. 나는 아마도 카운터트랜스퍼런스를 겪고 있는지도 모르고 제대로 클라이언트를 옹호하지 못했다는 자책을 할 수도 있다. 지금 나에게 필요한 건 이 사건과 이 현실과 거리를 두는 것일지도 모른다. 아니다. 그게 가장 필요하다. 어쨌든 그녀는 차디찬 거리를 향해 따뜻한 곳을 스스로 박차고 나갔다. 떠나는 그이를 창문을 통해 바라보며 속이 쓰렸다. 인간에 대한 실망감과 더불어 나에 대한 무력감, 그리고 나는 죽어도 그들의 마음을 알 수 없다는, 알아낼 수 없다는 요령부득의 절망감.

 

또 하나 다른 일. 이 와중에 끊임없이 앞선 그이에게 추파를 던지던 다른 남성 클라이언트가 부적절한 언사를 내게 했다. 전화번호를 줄테니 자기가 이 프로그램을 나가거든 연락을 하란다. 참 나. 너와 나 사이에 네가 한 그 말이 적절하다고 생각하니, 부적절하다고 생각하니. 네 생각을 얘기해봐. 하고 물었더니 농담이란다. 농담이겠지. (나는, 네 농담을 아주 잘 이해할 수 있어, 이 씹짱생아. 왜냐고. 그런 네가 나였고 그런 내가 너니까. 우리 인간은 그냥 백지 한 장 차이야.) 한 번만 더 그런 이야길 하면 너는 이 프로그램을 바로 떠나야 해. 아무도 널 도울 수 없어. 이것만 기억해, 라고 구두경고를 했다. 알았단다. 알아줘서 고마워, 라고 대화를 마친 뒤 썩은 양파 같은 기분을 수습해야했다. 날이 풀리면서 우울증이나 조울증을 심하게 앓는 사람들이 더 곤란을 겪고 있다. 안다. 나도 그렇다. 아프지. 나도 아퍼. 도리가 없구나. 거리를 둬야 해. 눈을 똑바로 뜨고 현상 너머를 봐야 해. 그게 힘들면 현상 그 자체만이라도 제대로 보자꾸나. 냉정하게. 다만 날씨가 풀린 것 뿐이야. 봄이니까.

2014/03/11 12:57 2014/03/11 1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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