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합니다

분류없음 2015/02/18 15:16

토요일.

퇴근 뒤 자정 넘어 집에 온다. 운이 좋아 버스를 퇴근하자마자 타고 지하철을 또 환승하자마자 갈아타고 또 집에 오는 버스를 바로 갈아타면 가까스로 자정 전에 도착한다. 하지만 대개 자정 넘어 00:30 정도에 도착. 지난 주 토요일에 집에 도착하니 00:20 무렵. 일찍 온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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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렌타인데이 스페셜 선물이 뙇!

낮에 집회에 갔다가 마트에 들러 사셨다고. 아이고 감사하고 고마워라. 고맙고 감사하고 송구스럽다. 나는 아무 것도 준비못했는데. 하물며 늘상 하려고 애쓰던 카드도 쓰지 못했다. 사실 오후 출근길에 커피를 사러 들른 가게에서 누가 말해주기 전까지 뭔 날인지도 몰랐다. 

 

다음날, 일요일에 데이 근무라서 맛난 선물을 즐기는 것은 다음으로 미루고 따뜻한 물에 밥을 말아 먹으면서 카드를 읽었다. 참 고마운 일이다. 감사한 일이다. 

 

감사합니다. 

 

 

 

 

 

2015/02/18 15:16 2015/02/18 1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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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와증세

분류없음 2015/02/12 16:42

대한민국 여당의 대표라는 작자께서 "복지과잉으로 가면 국민이 나태해진다"고 일갈하셨다. (복지가 과잉하면) 국민이 도덕적으로 해이해진다... 나태해지고 도덕적으로 해이해진다는 말을 국민에게 한 소리인지 자기자신을 포함한 동료들에게 한 말인지 헷갈린다. 

 

 

지난 대선에서 약속한 복지정책을 입안하자니 자원이 없(단)다. 세수가 늘어야 (=돈이 있어야) 이 짓도 할 수 있는데 그러자니 내년 총선이 걱정이(란)다. 담뱃값 같은 거야 별 저항없이 올렸다. '국민건강'이라는 대전제로 금연율을 끌어올리기 위해 담뱃값을 올린다는 말은 일정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명분이 선다. 혐연론자들의 동의를 이끌어내기에도 좋다. 간접흡연에 시달린 거개의 비흡연자들은 침묵으로 여당과 정부에 동조했다. 흡연자와 비흡연자로 홍해바다처럼 갈라진 국민여론이 저항의 방향도 파고도 효과적으로 잠재웠다. 

 

 

열흘 삶을 호박에 이도 안들어가는 소리를 해대는 여당 대표나 대통령 각하나 그밥에 그나물이니 그렇다고 치지만 "돈이 있어야 복지를 하지"라는 관점은 잘못돼도 한참이나 잘못됐다. 복지는 조건이 갖춰줘야 할 수 있거나 혹은 하면 좋고, 그런 게 아니다. 조금만 더 생각해봤으면 좋겠다. 국민들에게 돈이 있으면 그 돈을 쓰고 쓴 그 돈이 돌고돌아 경제를 움직인다. 시장경제의 기본이다. 경제학을 공부하지 않아도 이건 누구나 다 안다. 자본주의 체제를 지향하는 국가에서 '복지'란 국민들이 양손에 돈을 들고 시장으로 가서 그 돈을 쓰도록 만드는 정책이다. 따라서 정부의 복지지출 양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 일국 자본주의 시장경제 체제 근간-내수를 부양하므로 정부의 복지지출은 반드시 되돌아오는 화살과 같다. 그러므로 '나태'나 '도덕적 해이'는 '복지' 라는 말과는 애시당초 양립불가능한 말이다. '나태'나 '도덕적 해이'는 복지자원을 분배받아야 할 사람들에게 쓰는 게 아니라 그 정책을 결정하는 사람들에게 혹은 내야 하는 세금을 내지 않고 개기는 집단에 들이밀어야 할 잣대다. 뭐 눈엔 뭐만 보인다는 진리를 애써 입증할 필요는 없지 않나.  

 

 

"돈이 있어야 복지를 하지"라는 관점을 "복지를 하면 돈이 더 생긴다"는 관점으로 바꾸지 않으면 이 자본주의 국가에 미래가 없다. 법인세처럼 명분도 세목도 뻔한 것부터, 걷을 수 있는 세금부터 악착같이 걷자. 그리고 걷은 것 이상으로 복지지출에 힘쓰자. 안 그러면 정말이지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자본주의라는 체제에 미래가 없다. 안 보인다. 

 
2015/02/12 16:42 2015/02/12 16: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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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픈멜로디

분류없음 2015/02/10 07:51

 

들을 때마다 참으로 슬픈 멜로디 

 

 

2015/02/10 07:51 2015/02/10 0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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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딩튼보다

분류없음 2015/02/06 07:12

제목: 패딩튼 (Paddington, 2014) 보다 外

 

 

1. 패딩튼 (Paddington, 2014)

 

매주 화요일엔 극장에서도, 식당에서도 할인 상품을 내놓는다. "화요일프로모션"은 북미대륙에선 흔한 일인 것 같다. 북미대륙의 대표적인 멀티플렉스인 시네플렉스 레귤러 극장 값도 화요일엔 $6.47. 평소엔 $12.99. 어마어마한 차이. 결국 영화는 화요일에만 봐야 한다. (토요일 아침에 어린이-가족영화를 가끔 $2.99에 팔기도 한다.)

 

지난 화요일에 패딩튼 (Paddington, 2014)을 봤다. "내 이름은 패딩튼"이란 어린이 책은 아주 예전에 봤다. 마말레이드를 좋아하는 귀여운 갈색곰. 

 

귀여운 갈색곰이 페루의 고향을 떠나 잉글랜드에 도착해 '패딩튼'이란 이름을 얻고 브라운 가족의 일원이 되는 과정을 매우 스무스하게 그렸다. 중간중간에 패딩튼과 브라운가족들이 함께 겪는 소동들만 묶어보면 한바탕 웃고마는 희극 (farce)을 보는 것도 같다. 슬랩스틱이라 일컫는 이런 묘사들은 대단히 극적이면서도 우스꽝스럽고 영화적 상상력의 계산이 잘 맞아떨어져서 큰 부담감이 없다. 

 

다만 패딩튼이 겪는 일들을 보고 있자니 "웃고 있지만 슬프다"고 해야 하나. (완벽한 잉글랜드 잉글리시를 구사함에도) 대도시 런던에 처음 도착한 이방인, 패딩튼이 겪는 일들이 남의 일 같지 않았다고 해야 하나.

 

패딩튼이 책과 영화에서 보여준 어린이처럼 맑고 밝은 마음가짐을 잃지 않고 잘 성장할 수 있을까. 버텨낼 수 있을까. 스토리 너머 내가 닿을 수 없는 그 지경까지 헤아리느라 마음이 다소 복잡했던 영화. 

 

 

2. 테드 (Ted, 2012)

 

의도한 건 아닌데 곰이 또 나오는 영화, "테드 (2012)"를 봤다. 홀드해놓은 책을 찾으러 들른 동네 도서관에서 빌렸다. 디비디에는 unrated version이 있어 그것으로 봤다. 당연히 사전에도 안나오는 각종 표현과 단어들의 향연. 주로 성관계, 여성의 신체부위를 묘사하는. 

 

테디는 물담배를 주로 피우는데 -예상이 맞다면- 그것은 크랙코카인일 것이다. 중간에 파티를 하면서 흡입한 하얀 가루는 코카인일 가능성이 높다. 크랙코카인의 가격은 상대적으로 저렴해 주로 비중산층-노동계급이 사용하는 마약. 하지만 처벌의 수위는 코카인보다 높다. 가격에 비해 강력한 환각-각성 효과를 주는 한편, 또 그 가격 때문에 희소성이 낮아 구하기가 쉽다는 이유. 코카인 가루만 있으면 만드는 것도 어렵지 않다. 가령 크랙 5그람을 소지한 죄로 걸리면 5년을 언도받지만 코카인은 50그람이 걸려야 5년 처벌을 받는다. 그러다보니 크랙과 관련해 처벌받는 사람들은 비백인, 주로 흑인들이다. 상대적으로 수입이 적은 비백인 계층이 수요자이자 공급자인 셈. 결국 크랙과 크랙코카인은 매우 racialized한 약물이다. 직업병인지, 울화병인지 영화를 봐도 이런 것만 눈에 쏘옥 들어온다. 

 

만약 패딩튼이 어른이 되면 테드처럼 되려나.

 

 

3. 김연수의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 (2007) 

 

메리 올리버의 "기러기"를 소개한 김연수의 소설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을 다시 읽었다. 동네 도서관에서 픽업할 수 있게 신청했는데 2주 정도 걸렸다. 다시 읽는 것이 아니라 새로 읽는 것과 같다. 너무 새롭다. 그리고 예전엔 시선조차 가지 않았던 대목에 한참을 머물렀다. 그런 내용이 있는지조차 기억하지 못하였다. 

 

"이처럼 지금의 사람들이 핸드폰, 블로그, 검색, 이메일 같은 단어를 쉽게 접할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 시절의 사람들은 총격, 수류탄, 폭격, 사살 등의 단어에 노출돼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그 시절의 사람들이 우리보다 더 불행했다는 뜻은 아니다. 그건 행복과 불행의 문제가 아니라 습관의 문제였다. 습관이란 무의식중에 행하는 행동을 뜻한다. 폭력이 몸에 밴 사람은 폭력을 인식하지 못한다. 그리고 바로 그 '인식하지 못함'이 그가 속한 세계를 폭력적으로 만든다. 그런 세계에서는 제아무리 비폭력을 주장한다고 해도 현실적으로 그들의 몸은 폭력보다 비폭력을 더 불편해한다. 그걸 가리켜 현실감각이라고 부르는 것인지도 모른다." - p. 102 

 

볼드는 꽃개가 했다. 

 

2015/02/06 07:12 2015/02/06 0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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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산의이유

분류없음 2015/01/29 06:40

일터에서 만난 어떤 클라이언트는 전 남자친구와 사이에서 낳은 아이를 빼앗겼다. 자세한 사정은 설명하지 않아 잘 알 순 없지만 아마도 늦은 시간 아파트에 아이를 혼자 둔 적이 많았던 것 같다. 그리고 두어 번 아이를 때리거나 그랬던 것 같다. 이웃의 신고로 달려온 경찰과 아동보호담당부서 (CAS; CCAS) 에서 아이를 데려갔다. 이 클라이언트에게 CAS는 저주의 대상이다. "망할 놈의 CAS" 는 이 사람의 인삿말에 진배없다. 

 

그런데 이 클라이언트에게 아이가 또 있다. 첫째 아이를 빼앗기고 아이를 되찾기 위해 전 남자친구를 찾아가 협상을 하던 며칠 사이에 임신을 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그 아이가 태어났고 또 그 둘째 아이를 CAS에 빼앗겼다. 둘째 아이가 있다는 사실은 나중에 알게 되었다. 한참 대화를 나누는데 아이 이름이 달라서 나는 이 양반이 잠깐 아프신가, 그런 생각을 했다. 말을 받아서 다시 물어보니 (paraphrasing) 둘째가 있다고, 어떻게 둘째를 낳게 되었는지 설명해줬다. 사진 속의 아이는 푸른 빛과 녹색 빛이 교차하는 영롱한 눈빛을 지녔다. 참으로 곱고 어여쁘다. 

 

맙소사. 

 

나의 주관적 관점으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나는 아무래도 박원순처럼 생각하지는 않기 때문에 "이성애를 지지하지 않는다"라는 말도 안되는 말을 할 필요는 없고) 일단 무책임한 남자와의 사이에서 아이를 낳는다는 것, 낳은 아이를 유기하거나 때리는 등 무책임의 반복으로 국가에 빼앗겼다는 것, 동일한 남자와의 사이에서 아이를 또 낳는다는 것.  

어떻게 저런 일이 일어날 수 있지 하고 생각하는 순간, 저런 일이 일어날 수 있다. 고 결론을 내려야 한다. 사람들은 다 다르므로. 

 

왜 이렇게 아이를 낳으려고 하는 걸까. 잘 기르려고 하지 않고 낳으려고 하는 걸까. 

어느 날 시프트 파트너에게 물어봤다. 그이는 장성한 아들 하나를 두었다. "아무래도 혜택이 있으니까 낳지 않을까?" 

그래, 무슨 혜택이 있는데? 

 

 

이 나라의 출산과 양육 혜택 

 

유니버설차일드케어베너핏 (The universal child care benefit: UCCB)

6살 아래의 아이를 둔 가구에 매월 아이 한 명 당 $100씩 지급한다. 소득수준에 상관없이 지급하는 것으로 소득으로 간주 (taxable)하며 따라서 소득신고를 할 때 포함해야 한다. ‘유니버설’이라는 이름과 ‘소득으로 간주’한다는 명목에서 알 수 있듯이 누구나 아이를 낳으면 받는다. 한국 식으로 대입하면 이재용도 이 돈을 받는다. UCCB는 현재 보수당 정부가 들어서던 2006년, 모든 국민에게 혜택을 준다는 미명 하에 여타의 다른 정책을 통폐합, 개악하면서 새로이 도입한 연방 정책이다. 그 전의 연방 정책은 소득이 낮은 가구를 보조하는 방향이 더 컸다. 시쳇말로 ‘생산적 복지’를 강조하는 변화였다. 이 정책은 때로 이민자들을 혐오하는 용도로도 쓰인다. 중산층 이상의 백인 가구는 대개 0-2명의 아이를 낳아 키우지만 3명 이상의 아이를 낳아 키우는 가구는 대부분 이민자들이다. 언젠가 남아시아에서 온 아주머니께서 9명의 아이를 낳아 키우는 것도 봤다. 아이 하나만 낳아 어렵게 키우는 소득하위계급의 처지에서 9명의 아이를 낳아 키우는 옆집을 바라보면 저 집은 나보다 9배나 많은 돈을 받는구나, 하는 박탈감(?)을 갖게 된다. 양육에 드는 다른 비용과 노력은 사상하고 "저이는 내가 $100를 받는 동안 $900을 그냥 앉아서 버네?" 라는 계산을 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정부는 그런 박탈감과 경쟁을 조장한다. 

 

차일드텍스베너핏(The Canada child tax benefit: CCTB) 

18세 이하 어린이를 키우는 가구를 대상으로 하는 연방정책. 상대적으로 소득이 낮은 (연소득 $43,953 이하) 가구의 소득을 보전하는 방향이므로 소득 신고 시 제외된다. 이 연방정책은 장애어린이혜택 (The child disability benefit: CDB), 보수당 정부가 2006년에 확 뜯어고친 내셔널차일드베너핏보조 (The national child benefit supplement: NCBS)를 포함한다. 어쨋든 기준은 해당 가구의 연소득이다. 
연소득이$43,953 이하인 가구에서 18세 미만의 아이를 키우면 둘째 아이까지 한 달에 $120.50(연 $1,446)를 보조받는다. 셋째 아이부터는 월 $8.41 (연 $101)를 받을 수 있다. 만약 연소득이$43,953를 넘으면 차감하여 보조를 받는다. 

 

내셔널차일드베너핏보조 ( NCBS)

NCBS는 연소득이 $25,584 미만인 가구를 대상으로 한아이 가정의 경우 연 $2,241 (월 $186.75), 두 아이 가정의 경우 연 $1,982 (월 $165.16), 세 아이 가정은 연  $1,886 (월 $157.16)을 공제한다. 따라서 세아이를 키우는데 연소득이 $25,000라면 그 전체 소득에서 $1,886를 감경받는다. 소득으로 추산하는 양을 감경받으니 그만큼 내야할 세금의 규모를 줄일 수 있다는 말이다.

 

역사적으로 출산과 양육 복지정책의 기본, CCTB의 기본정신은 아이를 낳아 기르는 가구의 기본소득을 보장하는 데에 있었다. CCTB는 실질적인 지원으로, NCBS는 절세라는 혜택으로 기본소득을 보장한다. 보수당 정부가 2006년에 CCTB를 뜯어고친 데에는 기본소득 보장이라는 보편적 복지국가 정책을 무너뜨리고 이른바 ‘일하는 복지’, 신자유주의적 복지정책으로 개조하려는 목적이 컸다. 그 반대를 잠재우기 위해 보편적 복지인 유니버설차일드케어베너핏 ( UCCB) 을 도입했던 것. 이재용도, 조현아도 아이만 낳으면 십만 원씩 준다. 

 

앞의UCCB와 CCTB (CDB /NCBS 포함) 는 근본적으로 연방정책이고 각 지방정부마다 출산-양육 보조 정책이 다르지만 기본은 역시 ‘소득보전’이다. 인구가 가장 많은 온타리오 주의 경우 온타리오차일드베너핏 (OCB), 온타리오차일드캐어보조(OCCS) 등의 제도가 있다. 가령 7살 미만의 아이가 있는 두부모 가구는 연 $1,100 (월 $91.67), 싱글맘-싱글대디의 가구는 연 $1,310 (월 $109.17)의 혜택을 받는다.  

 

차일드케어시스템

아이를 낳아서 금전적으로 받거나 세금공제로 받는 혜택 외에 보육원, 어린이집, 유치원 등 내가 일하는 동안 나의 아이를 맡아줄 곳이 필요하다. 구체적인 정책은 시정부에서 시행하지만 기준 역시 소득이다. 예를 들어 아이 두 명 (18개월 미만의 아이 한 명, 18개월 이상 2.5세 미만의 아이 한 명)을 키우지만 연소득이$43,953인 가구를 상정해보자. 이 가구의 차일드케어비용은 하루에 $114.43씩 월 $2488.85가 든다. 엄청난 비용이다. 연소득에 의거해 하루 $12.21, 월 $265.49를 차일드케어 비용으로 내면 된다. 시정부에서 하루 $102.22 (월$2223.36)를 보조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론상 그렇다. 

 

시에서 보조하는 차일드케어 보조 시스템은 전일근무하는 부모/부부/모모/프라이머리 케어기버에게 적용한다. 가령 이브닝시프트로 일하면 대상에서 누락되거나 우선 순위에서 밀린다. 아침에 아이를 돌볼 수 있다는 근거 때문이다. 파트타임 근무를 해도 상황에 따라 적용한다. 가장 큰 문제는 위 혜택을 받으려면 오래 기다려야 한다. 기다리는 것에 익숙하지 않고 전일제풀타임 직장을 갖기 힘든 이민자들이 이 혜택의 사각지대에 놓이는 것은 당연하다.

 

 

잘 뜯어보면 혜택이라고 할 것도 없다. 언뜻 보기에 각종 혜택이 넘쳐나는 것 같지만 설명한 이 모든 출산-양육 혜택을 모조리 받고, 이에 더해 부모 스스로 받을 수 있는 최저생계보장 혜택이나 장애인혜택 등을 다 합쳐도 최저 생계비 수준 (연 $25,584, 월평균 $2,132) 을 넘어설 수 없다. 이 기준을 획기적으로 넘어설 방도가 없는 한 그저 그렇게 살 뿐이다. 한 달 보장소득이 $2,132라고 한들, 집세와 식료품 값, 공공요금, 통신료, 데이케어 요금 등을 제하고 나면 --- 아이가 좋아하는 해피밀 사주는 것도 빠듯하다. 

 

 

그런데도 왜 아이를 낳는 것이냐

 

아이를 직접 낳는 데에 의미를 두는 거라면 --

혜택 말고

기르는 기쁨 말고

뭔가 다른 이유가 있을 것 같다. 그 이유가 뭘까. 

 

 

 

-------------

* 때로는 이해하기 위해 애쓰지 말고 있는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고 신경을 딱! 끊는 것이 정신건강에 이로울 수도 있다. 특히 그 일이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일일 때는 더더욱 그런 것 같다. 사람마다 삶의 방식이 다르니까. 

 

 

 

 

 

2015/01/29 06:40 2015/01/29 0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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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말쟁이

분류없음 2015/01/25 16:02

지난해 가을 새로 당선된 시장님께서 며칠 전 선거 공약의 말씀을 바꾸셨다. 

선거 캠페인 때에는 대중교통 요금을 올리지 않겠다고 약속하셨는데 그 약속을 어기고 요금인상안을 발표하신거다. 결과적으로 거짓말을 하신 거다. 

 

내가 사는 도시에서는 여적지 토큰을 쓴다. 토큰이라고 해봤자 한국에서 90년대까지 쓰이던 구멍 뚫린 상평통보 같은 건 아니고 그냥 볼짝 없는 동그란 동전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저것의 낱개 값은 현재 캐나다 달러로 2.70 이다. 한국 돈으로 2,720원 정도 되겠다. 하지만 낱개로는 팔지 않는다. 최소 판매 단위가 3개, $8.10, 한국 돈으로 8,200원가량을 지불하면 토큰 세 개를 살 수 있다. 환승시스템도 엉망이라 버스를 타면서 "환승이요"라고 운전기사에게 말하면 쪼끄만 갱지같은 걸 주는데 이걸 꼭 지참해야 한다. 중간에 내리면 안되고 원하는 목적지까지 "곧바로" 가야 한다. 뒤로 되돌아가는 것도 허용되지 않는다. 

 

3월 1일자로 저 토큰 값을 10센트, 한국 돈으로 백 원가량 올린단다. 그러면서 동시에 12살 아래 어린이들은 무임승차할 수 있다는 조건을 제시했다. (이마저도 최종 결정난 게 아니다.) 그런데 내가 사는 나라에서는 12살 이하의 어린이들은 혼자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일이 드물다. 12살 이하는 혼자 뭘 할 수 없다. 집 바로 앞에 공원에서 친구들과 놀 수는 있다. 그러나 버스를 타고 이동할 거리만큼의 활동을 할 때에는 반드시 반드시 부모님이나 캐어기버와 함께 다녀야 한다. 아동보호법률이 그렇게 되어 있다. -- 물론 작정하고 나돌아다니겠다는 아이들이야 혼자 다닐 수 있겠지. 그걸 누가 말려 -- 법을 어기면, 그러니까 12살 이하의 어린이가 혼자 나돌아다니다가 사달이 생기거나 큰 일이 발생하면 (사달이 생기면 여기 사람들은 바로 경찰을 부르는데 피의자나 피해자가 12살 이하면 바로 어린이담당부서와 연결된다) 해당 어린이의 부모는 어린이를 키울 자격을 의심받는다. 그리고 곧바로 혹은 반복될 시 양육권을 제한받는다. 

 

이것은 조삼모사다. 마치 어린이의 이동권을 보장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대낮에 어린이와 자유롭게 나다닐 수 없는 맞벌이 가난한 부모-부부-모모 혹은 캐어기버들을 두 번 울리는 처사다. 그래서 신임 시장의 대중교통 요금인상안은 가난한 사람들이 가장 상처받는다는 말이 나오는 거다. 

 

하지만 시장님은 이게 대체 뭔 말인지조차 모를 거다. 그는 백만장자 정치인으로 대중교통은 이용해본 적조차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한국의 수많은 정치인들과 마찬가지... 

 

차라리 약속을 하지 말지. 

"대중교통 요금은 합리적으로 결정한다" 이런 말도 하기 힘든 거다. 대중의 정서로는 이런 말조차 받아들이기 힘든 거다. 차라리 "요금인상은 없다"는 거짓말을 믿고 싶은 거다. 그래서 저 돼지같은 시장님이 당선된 것이겠지. 젠장. 

 

 

 

 

2015/01/25 16:02 2015/01/25 1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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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눈물

분류없음 2015/01/24 07:21

1.

 

꾸준히 접속하는 한국어 사이트로 네이버야구뉴스와 프레시안이 있다. 언론사로서 프레시안은 부침을 거듭하긴 했어도 (제도) 정치 분야를 다룬 기사들에서 일정 흐름을 읽을 수 있어 불편한 가독성에도 불구하고 최선을 다해 읽고 있다. 최근 김세균 교수님이 어떤 모임에 참여하고 계시다는 기사를 읽었다. 관련 기사를 읽어보니 낯설지 않은 이름도 더러 있고 특히 모임의 명칭이 재미나다. '국민의 눈물을 닦아줄 수 있는 새로운 정치세력의 건설을 촉구하는 국민모임(국민모임)' 국민의 눈물을 정말 닦아줄 수 있는지 없는지 능력이나 여지는 차치하고 이 기치가 나온 배경에 주목하게 된다.

 

2014년은 그야말로 한국에서 평민(국민)으로 산다는 것을 근본적으로 회의하게 만드는 시간이었다. (개인적으로 물리적 육신은 한국 땅을 벗어나 있지만 나는 그래도 여전히 한국의 국민이다. ) 역사적으로 여당과 청와대의 무능력은 제1 야당 (혹은 재야세력)에 반사이익을 안겨주었다. 하지만 2014년의 정치공학은 -전혀- 그렇게 작동하지 않았다. 제 1 야당을 포함해 원내 의원을 두었거나 안 두었거나 야당(들)은 죄다 지리멸렬했다. 여당만큼이나, 아니 그 이상으로 무능했다. 여당과 박근혜가 줄기차게 자살골을 쳐넣는 사이 그들 역시 반대편 자신들의 골문을 향해 돌진했다. 평원에 버려진 국민들은 무엇을 할 수 있나. 없었다. 각자 살아남는 방법을 찾는 길밖에. 그 사이 분노와 증오, 국가가 나의 생존을 책임질 수 없다는 것을 자각한 이들의 원성이 하늘을 찔렀다. 한편, 노동운동을 위시로 비제도적 투쟁 정치를 만들던 세력 또한 다르지 않았던 것 같다. 그들 운동의 터전인 인민들의 삶이 바로 '평원에 버려진 삶'이었기 때문이리라. 국민모임은 바로 이 사이를 뚫고 나왔다. 레드오션 속에 홀연히 열린 블루오션. 

 

2.

 

관련 글들을 읽다보니 또 재미난 글이 있다. 

 

당적을갖자

 

국민모임, 진보 정당 재편에 불씨 댕길까

 

박상훈 씨가 쓴 첫째 글은 대단히 위험한 글이다. 나는 박상훈 씨를 모른다. 그가 무슨 일을 하는지 알 순 없지만 그의 글을 읽고나니 무슨 일을 하고 싶어하는지는 알 수 있을 것 같다.

그의 글은 시쳇말로 "링에 오르라"는 얘기다. 링 밖에서 훈수 두지 말고 글러브 끼고 링에 올라와서 "링의 룰"로 함께 하자는 말이다. 같은 편이 되든지, 적으로 만나든지 그것은 부차적인 일이고 일단 "판에 노름돈을 올린 뒤" 이야기하자는 말이다. 그의 글이 위험한 이유는 첫째, 그간 여당과 청와대, 야당(들)을 비롯한 제도정치활동이 왜 국민의 눈물을 닦아주지 못했는지 설명하지 못한다. 다시 말해, 이미 룰이 정해져있는 사각의 링에서 고군분투하시던 분들이 왜 자기들끼리만 고군분투하시면서 국민을 평원에 버려두었는지 변명조차 하지 못한다. 다만 링에 오르라고 할 뿐이다. 이것은 이미 게임의 룰이 정해져있는 제도정치를 유일한 디폴트값으로 상정하는 발상이다. 그의 정치의 영역에는 이것 외에 없다. 말인즉슨, 링 밖에서 훈수 두는 것은 정치가 아니라는 말이다. 

 

둘째, 따라서 링 밖에서 벌어지는 정치를 설명하지 못한다.

어느 해였나, 국회의사당을 바로 정면에 두고 집회대오가 한가득 여의도에 모였다. 추운 겨울이었다. 의사당에서는 (에프티에이였나, 뭐였나 의제가 잘 기억나지 않지만) 의원들이 뭘 결정할 찰나였다. 전국에서 모인 노동자, 농민, 시민사회단체 활동가들이 의사당대로를 가득 메우고 있다. 농성장이 차려졌다. 추운 겨울임에도 불구하고 경찰은 물대포로 진압에 나섰다. 집회대오 이상의 연인원을 동원한 경찰은 그래도 노동자농민들의 저항을 막지 못했다. 결과적으로 국회의원들은 원안을 밀어붙일 수 없었다. 원안을 반대한 결과적 다수자들의 변명은 "국민적 저항이 심각하다" 였다. 그리고 그 변명은 거짓이 아니었다. 

개인적으로 이 일은 두고두고 내 마음에 남았다. 머릿속에서 하염없이 되뇌이던 제도를 넘나드는 비제도적투쟁, 노동(자)정치라는 것에 관해 거듭 생각하게 된 계기였다. 

국회 안에 있던 자들에게 국회 밖 사람들은 동원의 대상 혹은 압박의 기제 정도였을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그 역학을 반대로 읽는다. 국회 밖 사람들에게 국회 안 사람들은 정치적 방편이나 수단일 따름이라고. 세상을 좀 더 인간답게 만들기 위한 과정에 필요한 부스러기 정도일 뿐이라고. 현실을 지양해나가는 정치운동에 필요한 지향적 요소들 가운데 하나일 뿐이라고. 

 

이른바 '국회 안' 투쟁 (제도적 투쟁, 링 안에서의 투쟁) 만이 유효하다고 선언해버리거나 경계를 그어버리면 "정당이 사회에 뿌리를 내려야 민주주의가 건강하게 발전할 수 있다"1는 신념을 갖게 되고 그 신념은 "링 위의 투쟁"만을 완소 가치로 삼는 지표로 작동한다. 그러니 당적을 가지라고 -- 기웃거리지 말고 판에 뛰어들라고 하는 것이다. (그들 시선으로 링 밖의 사람들이 '기웃거린다'는 건 그들이 그것밖에 보지 못하는 탓이다. 따라서 그 언설의 한계는 바로 그들의 탓이다). 평원에 국민들을 내동댕이친 채 자살골만 일삼던 까닭이 그 '당적' 때문이라는 것은 전혀 기억하지 못한다. 

 

3.

 

국민모임, 진보 정당 재편에 불씨 댕길까

 

시사인의 이 둘째 기사는 박상훈 씨의 첫째 글이 주는 묘한 하울링에 공명하는 부분이 있다. 정의당 천호선 당대표와 노회찬 전 의원의 전언. 한 마디로 "드르와". 조금 신경질적으로 읽으면 국민모임의 움직임이 눈에 거슬린다는 거다. 애써 태연한 척 하고는 있지만 또 역시 링 밖에서 기웃거리다가 훈수두는 것으로 끝날까봐 짜증나는 거다.

사/각/의/ 링/에/ 갇/힌/ 그/들

 

비록 제도정당 해산이라는 초유의 헌재 결정에 치명상을 입은 엔엘세력이지만 언젠가는 열 명 이상의 원내 의원을 꽃놀이 패로 쥐고 호시절을 구가했던 적이 있다. 바로 그 때 그들과 손을 잡았던 양반들이 그 당에 지금 계시지 않나. 목적을 위해서라면 뭐든지 할 수 있어. 그래서 그들이 '개방형 진보정당'을 표명할 수 있는 거다. (종내엔 박근혜와도 연대할 수 있지 않을까 --  내 의심은 거기에까지 이른다. 아주 오래전, 엔엘들이 대거 민노당에 들어갈 때 나는 "그들이 엔엘과 손을 잡지 않을까?" 하고 의심했던 적이 있었다.) 

 

노동당은 잘 모르겠다. 그러나 기사로 보아 '진보혁신회의'라는 것도 해본 것 같으니 뭐가 되든 뭐를 하기는 하겠지. 하지만 글쎄, 구 사*당 친구들이 다수가 되거나 당권을 쥐는 순간 어떤 격변 (upheaval)이 이뤄질 지 모를 일이다. 모를 일이긴 하지만 --- 그것은 아주 예전에 민노당이 자기개조를 (당)하면서 당명에 '통일'이라는 글자를 집어넣는 과정에서 이미 목도했던 그 파탄의 21세기 실사판이 될 것 같기는 하다. 

 

뭐가 되었든 게임의 룰을 따르기로 한 이상 그 안에서 할 수 있는 일을 잘 해냈으면 좋겠다. 자꾸 왼쪽에 있는 링 밖의 사람들에게 링으로 들어오라고 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따지고보면 링 안에 사람들이 훨씬 많다. 그들에게 말하라. 함께 하자고.

비보호 우회전이 우세한 나라에서 나고 자란 결과, 우측 깜빡이 켜고 좌회전하는 것보다 좌측 깜빡이 켜고 우회전하는 게 더 위험하다는 결론. 너무 어렵나? 왼쪽에 있는 사람들보다 오른쪽에 있는 사람들을 향해 말하시라고요. 왜 자꾸 당신들의 게임룰을 강요하시나요. 이미 그 룰에 익숙한 사람들에게 말씀하시라고요. 

 

4. 

 

이미 제도정당운동에 올인한 분들이나 집단이야 그렇다고치고 - 어차피 게임의 룰에 따라 움직일 수밖에 없으니 - 제도정당운동을 전술적으로 고려하는 분들은 어떻게 지내고 계시는지 몹시 궁금하다.

이번에 김세균 교수님 동향을 비롯해 여러 기사들을 관심있게 읽게 된 이유는 바로 그 궁금증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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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록. 김세균 교수님에 얽힌 개인적 일화 

 

김세균 교수님은 나에게 잊지못할 기억을 안겨주신 분이다. 대학생 때, 신자유주의가 뭔지 이런 신조어가 대체 뭔지 들어본 적조차 없을 때 월간 "현장에서 미래를"에 실린 김세균 교수님의 글을 읽고 정치토론이란 걸 했었다. '신자유주의'는 지금도 물론 그렇지만 당시에는 참으로 해괴망측한 말이었다. 어떤 단어를 들으면 좋다/나쁘다, 우리편/네편, 판단을요함/보류 뭐 이런 정도의 구별은 할 수 있을 만큼의 어감을 품게 되는데 '신자유주의'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 (적어도 내게는 그랬다.) 직접 드러내어놓고 '학우대중'과 교감할 수 있는 단어가 전혀 아니었다. 즉 이론, 혹은 학문적 바운더리에서는 폭넓게 쓰일 수 있는지 몰라도 (쓸 수밖에 없겠지) 정치언어로, 대중의 수사로 자리잡기에는 거시기하다고나 할까. 

 

어쨌거나 김세균 교수님과 그 분의 글, 말씀은 -- 개인적으로는 브레이버맨 (Harry Braverman) 의 "노동과 독점자본 (Labor and Monopoly Capital)"을 김세균 교수님의 강연과 몇몇 글 꼭지를 통해 이해할 수 있었다. 따라서 어떤 의미에서 나에게 신세계를 알려주신 분이랄까. 

 

고학년이 된 어느날, 일학년 후배들과 함께 종묘 어디쯤 성당에서 열리는 토론회에 갔다. 김세균 교수님이 연사 중 하나였다. 귀에 쏙쏙 들어오는 그 강연을 듣고 후배들과 함께 떡볶이를 먹으러 갔다. 어땠어? 후배 중 하나가 강연을 들으며 그림을 그렸다는데 -- 시커멓고 네모난 '김'과 '세균'을 입체적으로 그려낸 것. 기가 막혔다. 너무 잘 안 들려요. 감기 걸리신 것 같아요. 어려워요. 이 놈들, 사람 이름을 가지고 그런 몹쓸 장난을 치면 되겠냐. 이건 좋은 세균이에요. 유산균 같은 거. 

 

 

 

 

 

 

 

  1. 이 말은 틀린 말은 아닌데 또 옳은 말도 아니다. 그러니까 그냥 좋은 말이다. 뒤집어 말해보자; "민주주의가 건강하게 발전하면 정당이 사회에 뿌리를 내린다."텍스트로 돌아가기
2015/01/24 07:21 2015/01/24 0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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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고통

분류없음 2015/01/20 04:48

독수리의 스프링캠프 연인원은 81명. 김감독은 와이번스 시절에도 타구단에 비해 큰 규모로 캠프를 꾸린 적이 있는데 이번 독수리 캠프는 그에 비해 더 커졌다. 특히 코칭스텝 규모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선수는 58명, 김감독 포함 코칭스텝은 23명. 대략 선수 2.5명 당 1명의 코치를 할당한 셈인데 상당한 비율이다. 코칭스텝의 비율로만 따지면 선수 41명, 13명의 코치를 포함 (전체 54명) 한 트윈스 또한 상당해 보인다. 

 

뭐, 다 좋다. 

 

김감독이 전임 와이번스 감독 시절부터 스프링캠프를 과하게(?) 차렸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충분히 납득할만한 일이다. 그 때에는 와이번스에 팜이라고 부를만한 2군 시설이 없었다. 2군 선수들은 문학구장이나 인하대학교 운동장에서 훈련하는 일이 잦았다. 조범현을 내치고 이만수를 넣어둔 채 김성근 카드를 꺼낸 구단이 바란 것은 '성적'이었기 때문에 초반 몇 년은 김감독이 원하는대로 해주었다. 그리고 김감독은 가시적인 성적을 냈다. 감독 첫 해이던 2007년 와이번스는 페넌트레이스 1위, 한국시리즈 1위를 기록했고 2008년에도 2년 연속 1위에 올랐다. 2009년에는 한국시리즈에서 조범현이 이끌던 타이거즈에 져 분루를 삼켰지만 이듬해 2010년, 삼성을 꺽고 다시 왕좌에 올랐다. 

 

와이번스 구단과 (일부) 인천 야구팬들은 의문을 품기 시작했다 (고 한다). 정규시즌, 한국시리즈 두 번이나 제패를 했는데 왜 구단의 인기는 별 볼일없는 보합세일까. 현대적 시설을 자랑하는 문학야구장, 김광현도 있고 채병용도 있고 남들이 군침흘릴 선수가 한둘이 아닌데 왜 이 선수들은 개인타이틀을 따내지 못하나. 벌떼만 있고 왜 영웅은 없나. 그래도 이만수가 빤쓰만 입고 운동장을 도는 퍼포먼스도 했는데 왜 김감독은 마른 입맛만 다셨나.... 

한마디로 '재미없는' 야구를 한다는 건데 난 이 의견 반댈세, 니덜이 성적을 내라고 했지 재미를 내라고 하진 않았잖아. --- 그리고 알다시피 2011년 시즌 중 김감독은 감독직을 내려놓았다. 뒤가 조금 지저분했지만 바톤을 이어받은 이가 이만수였던 탓에 여론이 손을 들어준 것은 김감독이었다. 이만수의 와이번스는 뭐, 다들 보신 것처럼. 지못미 이만수. 김성근 감독의 후임으로 김성근 감독 할아버지가 와도 그 자리를 메울 순 없다. 김감독은 그만의 독특한 스타일이 있다. 와이번스 구단은 덕분에 (성적과 구단인기, 즉 돈벌이는 반드시 정비례하지 않는다는) 수업료를 톡톡히 치렀고 (트윈스를 제외한) 다른 구단들도 이른바 '김감독의 저주'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 때 배웠을 것이다. 

 

이미 그 수업을 한참 전에 목도했던 한화 이글스의 2014년. 하지만 방법이 없었다. 성적을 내야했다. 개인적으로 이글스 구단이 김감독과 3년 이상 함께 할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김감독은 우선 '돈이 많이 드는' 감독이고 '들인 돈만큼 현장에 개입'하기 쉽지 않은 감독이다. 더구나 김감독은 한국프로야구 첫 해에 대전을 연고로 하던 OB베어스의 투수코치를 했던 것 외에는 대전(충청권)에 연고가 없다. 이럴 줄 알았으면 대전고, 천안북일고 감독 정도는 해두었으면 좋았을 것을... 아무리 충청도 사람들이 겉으로 티를 안내는 양반이라고 해도 3년 이상 침묵을 지킬 수 있을까. 누굴 핫바지로 알어?

하지만 김감독도 와이번스와 원더스사태를 겪으면서 많이 변했을 것이라 생각하면 오산이다. 내일 모레 여든을 바라보는 노친네의 본질 (Substance) 이 어디 가겠는가 말이다. 애국하는 어버이연합은 숟가락 들 기운만 있어도 죽기 전까지 애국하시는 법이다. 

 

역시 관건은 우리의 보스, 김승연 회장님인가? 

 

김광수는 한국으로 배영수, 송은범은 재활 선수단이 머물고 있는 조금 더 따뜻한 오키나와로 이동했다. 그리고 그나마 짧았던 20분의 점심시간은 15분으로 줄었다. 81명의 남자 장정들이 십오 분 안에 점심을 해치운다는 것은 상상만으로도 끔찍하다. 그리고 그런 모습조차 '지옥훈련'의 일환이라며 흐뭇해하는 한국 언론을 들여다보는 것도 고역이다. 아직도 이런 전근대에 머물러야만 성적을 낼 수 있거나 그렇다고 믿는 한국 "프로" 야구를 어쩌자고 나는 이토록 좋아하고 있는 것이냐. 버릴 수 없는 사랑을 사랑하는 자의 고통일지니.  

 

 

 

 

***

이글스는 부디 포스트김성근 시스템을 지금부터 잘 준비했으면 좋겠다.

이만수-와이번스 꼬락서니 보기 싫으면 말이다.

부자가 망해도 삼년 간다는 말은 바로 삼년 안에 다 망한다는 말이다.

서산캠프만큼은 김성근 아귀에서 풀어줘라.

프랜차이즈 전 코치들도 계속 프랜차이즈로서 대우해줘라.

김성근 감독하고 사이좋게 지내라 -- 김감독이 해달라는대로 다 해주라는 게 아니라 할 수 있는 것, 할 수 없는 것, 하고 싶은 것을 노친네에게 잘 설득하란 말이다.

프랜차이즈와 지역 연고는 돈주고도 살 수 없는 자산이다. 

김감독에게 없는 것은 충청권 연고 그 뿐이다. 그것을 잘 활용해서 노친네를 설득해라. 김감독도 이해할 것이다. 그것조차 이해하지 못하는 노친네라면 답 없다. 

 

2015/01/20 04:48 2015/01/20 0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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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릇이없어

분류없음 2015/01/17 01:54

지난밤. 일하면서 겪은 충격과 공포(?)의 기억들. 잊지 않기 위해 여기에 남긴다 --- 

 

#1. 

주로 생물학적인 남성들이 일하는 곳에 고객(clients)으로 온다. 아무래도 형법상 죄를 짓는 사람들 가운데 남성의 비율이 높아서, 그럴 것이다. 이것을 뒤집어 "남성들은 근본적으로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나만 이렇게 생각하지는 않을 것이다. 

 

따라서 남성 고객들을 대하는 태도가 고착화되어있기 마련이다. 어쩌다가 여성 고객들 혹은 여성적인 태도를 지닌 남성고객들이 오면 다소간에 어려움이 상존하지만 하다보면 또 모두들 적응한다. 

 

하지만 여성 고객들을 맞이하는 것에 인색하다. "되도록이면 남성들로 보내줘" "아, 띄발 왜 이번엔 여성들이 일케 많아" 불만스런 목소리들이 가끔- 아니 자주- 있다. 

 

#2. 

아무래도 사람들이 먹고 싸고 자고 살아가는 곳이다보니 별의별 냄새가 다 난다. 흔한 "수컷냄새"는 기본이다. 이 냄새는 아무래도 설명하기 어렵지만 애써 설명한다면 삼겹살 집에서 잘못 걸려 나온 "수퇘지" 냄새라면 이해하기 쉬우려나. 우웩. 

 

상대적으로, "암컷냄새"는 미묘하다. 나는 이것을 잘 잡아내지 못한다. 아무래도 같은 '암컷'이다보니 그럴 수 있겠다. 일터의 여성동료들도 이 냄새에 민감하지 못하다. 다만 남성동료들은 잘 알아채는 눈치이지만 표현하지는 않는다. 표현하지 않으려 애를 쓰는 게 역력하게 보인다. 

 

#3. 

지난 밤. 강력한 여성 고객을 만났다. 아랫도리를 다 벗어제끼고 단잠을 주무시는 이 고객의 방과 주변에서 매우 이상하지만 친근한 노량진수산시장의 냄새 -하지만 신선하지 않고 뭔가 outdated한 - 가 나는 것. 처음엔 대체 이게 뭐야, 했다. 시프트파트너는 풀타이머임에도 불구하고 구역질을 해댔다. 뭐지???? 그런데 바로 옆 방에서 자던 남성 고객께서 잠을 못자겠다고, 악몽을 꿨다고 불평을 하셨다. 

 

이 여성 고객의 방을 열고 들어갔을 때 그리고, 이 여성고객의 이름을 몇 번 불렀으나 대답없는 상황을 목도하고 바로 냄새의 정체를 알아버렸다. 

 

불편하지만, 익숙하지 않아서 적응하기 어렵지만 --- 많이 / 자주 / 익숙하게 접하다보면 이 냄새 또한 "수컷냄새"만큼이나 익숙해질 것이다. 

 

#4. 

같은 시각. 인테이크 약속에 늦은 한 남성고객이 자정을 넘어 입장하셨다. 인테이크 절차 (procedures)와 과정에 대해 설명하고 네가 가져온 가방은 지금 당장 방에 가져갈 수 없으니 창고에 임시 보관하고 내일 아침에 인테이크 절차를 밟도록 해. 일단은 자는 게 어떨까. 그 순간, 술병인지 뭔지 모를 병들이 부딪히는 소리. 일부러, 아는 체를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 순간, 

 

"나는 오십살이 넘었고 엄연히 이 가방들은 내 소관이야. 내가 알아서 할거야. 나는 네가 얘기하는 것을 따르고 싶지 않아. 내 자유야, 이 가방은 내 꺼야. 내 앞에서 썩 꺼져." 

 

어라. 누가 뭐래. 나는 니 가방에 관심없어. 다만 절차를 따르란 말야. 

 

새벽 열두시 반에 도착한 이 망할 놈팽이가 우기는 바람에 새벽 두 시까지 보초를 섰다. 결국 두시 십 분. 이 놈을 불러 최후통첩. 자, 조건은 두 개야. 첫째, 조용히 니 방에 들어가서 자, 대신 니 가방은 창고 보관하고 아침에 인테이크 절차를 밟아. 둘째, 첫째가 싫으면 니가 원하는 곳으로 가. 갈 곳이 없으면 시에서 운영하는 쉘터를 불러줄거야. 둘 다 싫으면 우리는 경찰을 부르는 수밖에 없어. 자, 네가 선택해. 

 

이 아저씨는 둘 다 싫다고. 결국 내 파트너는 경찰에 전화를 넣었다. "미안하지만 너는 기회를 잃었어. 내 파트너가 경찰을 부를 거야. 미안해. 안녕." 그제서야 득달같이 "대화를 하고 싶다"며 초인종을 눌러댄다. 이건 더할나위 없는 하라스먼트(harrassment)다. 

 

결국 이 아저씨. 택시를 불러 소중한 가방을 챙겨 떠나는 모습을 봤다. 경찰은 무서운 거다. 하지만 이민자 출신의 나와 내 파트너는 우스운 거다. 

 

#5. 

이 와중에 이 아저씨는 나에게 너 참 무례하다, (You're too rude) 고 했다. 너 같은 사람은 처음 봐 (I've never been treated like this way) 라면서 나를 비난했다. 내 파트너는 "꽃개는 우리 에이전시에서 가장 잘 참는 사람이야 (she's the most patient staff in here) 너 실수 했어 (you've picked that wrong person)이라면서 경고를 했다. 

 

아침에 교대근무 전환을 하는데 사람들이 말한다. 꽃개가 버르장머리 없는 거면 대체 어쩌라는거냐. 지난 밤 둘 다 개고생했네. 그 자식, 다시는 우리 에이전시에서 머물 수 없을 거야. 클라이언트파일에 레드플래그 얹어. 

 

그러다가 전화를 받았는데 바로 그 아저씨다. 매니저를 찾는다. 모른 척하며, 매니저는 아홉시나 되어야 올 거에요. 전화거신 분이 누구신지 메세지를 받아도 될까요? 하니, 다시 건단다. 오호라. 매니저에게 바로 이야기하겠다는 거지!!! 

 

#6. 

한국에서 아무리 직설적으로 떠들고 재수없게 행동했어도 예의없다, 는 말은 잘 듣지 못했다. 반면 "이상하다"는 말은 자주 들었다. 

 

이 나라에서 "웃긴다"라는 말은 자주 들었어도 "버릇없다" 내지 "예의없다"는 말은 잘 듣지 못했다. 그런데 이제 그렇게 나를 일컫는 사람이 나타난 것이다. 기념비적인 날이 아닐 수 없다. 

 

 

* 이 글은 당장 흥분한 기력으로 작성한 탓에 며칠 뒤 수정하거나 삭제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2015/01/17 01:54 2015/01/17 0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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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놈의팔자

분류없음 2015/01/11 16:14

조직생활에서 이른바 성공(?)한 사람들의 면면을 보면 두 부류다. 원래 실력이 좋거나 관계를 잘 하거나. 나로 말하자면 실력은 그냥 그렇고 개뿔~! 관계를 잘 맺는 편도 아니니 성공하긴 애시당초 글렀다. 

 

한국에 있을 적에 돈(만)을 벌 요량으로 다녔던 몇 군데에서는 "이상한 사람" 혹은 "재미난 사람"으로 본의 아니게 찍혀 영 재미를 못 봤다. 나도 돈 외에는 별로 관심이 없어서 동료들과 어울리지 않았다. 무엇보다 그들과 나누는 대화가 영 시답지 않았다. 요즘 버전으로 치면, 가령 세월호 유가족들이 수억 원을 받았다더라, 신은미는 종북아니냐, 게이를 혐오한다 따위의 말 같지도 않은 말이 오가는 그런 분위기에 헤벌레 헤벌죽 하하호호 혹은 씨익 조용히 들으면서 웃기만 해야 하는데 비위가 좋은 편이 아니니 잘 견디지 못한다. 아니면 상사들이나 결정권을 더 많이 틀어쥐고 있는 연장자들의 똥꾸멍이라도 열나게 핥아줘야 하는데 그건 더더욱 못했다. 아니, 분위기 파악을 잘 못했다고, 눈치가 없었다고 말하는 게 맞겠지. 역시 비위 탓인가? 강한 비위가 살아남는 법이옵니다.  

 

운동권들이 오글오글 모여 있는 곳에서도 별반 재미를 못봤다. 우유부단했고 쓸데없이 예민하거나 혹은 둔했다. 다들 뭔가 이유를 생각하는 곳에서도 안드로메다에 가 있거나 점핑온하느라 맥락없다는 소리도 곧잘 들었다. 그러니 실력이 늘 수가 있나. 관계를 잘 할 수 있나. 어설펐다. 순진했다기보다는 맹랑했고 맹랑했다고 하기엔 또 그리 기민하지 못했다. 귀가 엷었고 철이 없었다. 딱 어렸다.  

 

이 나라에 와서도 그 기질은 변함이 없다. 몇 달 전 다녔던 한국인 회사에서는 죽도록 부림만 당하고 그만 두고 말았다. 저 좀 살려주십사, 사장님 똥꾸멍은 빨간 게 현아~~ 따위의 찬사를 가장한 이죽거림조차 날리지 못하고 그냥 조용히 털었다. 

 

컬리지 2학년 때, 운좋게 일자리를 얻어 그때부터 일하고 있는 -나의 유일한 직장- 캐나디언 어느 회사에서는 이민자들의 등살에 치여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 전세계에서 몰려든 이민자들, 특히 여성들의 내부 투쟁에 말려들 것 같다가 살포시 빠져나오는가 싶었는데 또 어느새 그들의 피바람에 말려들어 있다. 그들의 처지에서 나는 가장 값이 안 나오는, 즉 측량이 불가능한 존재다. 가방끈이 길어서 무시할 수 없는 존재도 아니고, 경험이 출중해 굽신굽신해야 할 사람도 아니다. 백인은 더더욱 아니다. 입바른 말을 제대로 해내어 어쩐지 경계하게 만드는 그런 사람도 아니다. 그렇다고 자기들에게 쩌억 달아붙어 연신 항문을 핥는 존재도 아니니 뭐랄까. 좀 거추장스럽다고 해야 하나, 하지만 갈등이 생길 경우, 적절한 캐스팅보트로 쓸 수 있고 110볼트에서 220볼트에서 어디서든 작동하는 전천후 어플리언스처럼 여기저기 막 꼽아 쓸 수도 있으니 버리기에도 좀 그렇다. 

 

계륵. 

 

아, 조직생활 정말 힘들다. 이놈의 개팔자. 

 

 

 

 

2015/01/11 16:14 2015/01/11 1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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