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의잡담

분류없음 2015/04/12 17:08

생활의 잡담 3 - 꽃개님의 [생활의잡담2] 에 관련된 글이자 트랙백 어트게 하는 건지 리뷰하기 위해 하는 포스팅

 

 

이 나라에 처음 와서 이 나라 은행에 구좌를 개설하고 인터넷뱅킹을 안내받았을 때 나는 아무래도 이 나라에서 인터넷뱅킹 따위는 하지 못할 것 같다는 그런 생각을 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인터넷뱅킹이 너무 간단했으니까. 오로지 비밀번호 하나로 승부하는 인터넷뱅킹, 어떻게 신뢰할 수 있겠는가. 그런데 답은 더 간단한 데 있었다.  
 
이 나라 은행들은 신규 고객이 와서 계좌를 만들면 페이퍼리스통장 (웹스테이트먼트), 인터넷뱅킹(웹트랜스액션) 을 권장한다. 종이통장을 신청하면 한달에 1-5달러를 내야한다. 오프라인 트랜스액션도 한 달에 열 번 혹은 스무 번 등등 이렇게 제한하고 그 이상 쓰면 쓸 때마다 수수료를 내야 한다. 그리고 계좌 관리비도 다달이 내야 한다. 물론 일정 금액 이상을 꾸준히 예치하면 월관리비도, 수수료도, 개인수표 발행비도 모두 "무료"다. 내가 거래하는 은행의 그 "일정 금액"은 한 달 오천 달러 이상이다. 한국돈으로 물경 오백만 원 이상을 예치하면 여타 수수료, 월관리비, 이용요금 면제...꺽.  

따라서 대부분 사람들이 통장을 쓰지 않고 어지간한 일은 모두 인터넷뱅킹으로 처리한다. 따라서 인터넷뱅킹 보안 또한 철저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공인인증서 같은 것도 없고 보안카드도 없고 비밀번호 하나만 있으니 어떻게 이 은행거래 시스템을 신뢰할 수 있겠는가. 
 
다시 말하지만 답은 간단한 데 있었다. 비밀번호를 둘러싼 환경이 까다롭다. 정말 비밀번호다. 가령 비밀번호 하나를 만들 때 묻는 질문들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엄마의 결혼 전 라스트 네임이 무엇? 첫 반려동물의 이름은? 고등학교 이름이 무엇? 처음 산 자동차의 이름이 무엇? 처음으로 해외여행한 나라가 어디? 너의 베스트프렌드 이름은?... 각각 질문을 입력해야 한다. 그 계좌의 주인이 아니면 알 수 없는 매우 퍼스널한 질문들이 "쏟아진"다. 처음에 이 질문들을 받았을 때, 답을 입력해야 했을 때 몹시 당황했다. 공인인증서가 있으면 이런 왼갖 질문들이 하등 필요없는데 왜 공인인증서와 엑티브엑스를 안쓰지?  
 
그렇다고 로그인할 때마다 이 질문들을 하는 건 아니다. 할 때도 있고 안할 때도 있다. 어떤 질문을 할지 나도 모른다. 질문을 한 개 할지 두 개 할지 그것도 모른다. 랜덤 그 자체다. 대개 큰 사고없이 인터넷 뱅킹을 쓰면 질문도 없거나 빈도가 확 줄어든다. 하지만 로그인할 때 한 번 실수하면 이른바 그 가이드라인이 확 올라간다. 다섯 번 이상의 질문을 받을 수도 있다. 그리고 로그인 뒤 이체를 하거나 트랜스액션을 하면 할 때마다 리퍼런스 넘버가 생성된다. 사달이 생기면 사달이 발생한 그 건에 대해 은행과 이 리퍼런스 넘버로 소통한다. 언제 얼마를 누가 누구에게 보냈는데 구구절절 설명할 필요가 없다.  

하지만 역시 불신을 완전히 거둘 수는 없다. 열 사람이 한 명의 도둑을 못 막는다는 말도 있잖은가.  

한편 사유재산 (개인재산) 개념이 월등히 발달한 곳이라 그런지 몰라도 그 개인재산에 흠집을 내는 범죄행위에 관련한 형법이 대단히 교묘하게 발달했다. 개인재산을 침해하는 행위는 거의 뭐랄까, 조금 과장하면 배상청구에 제한이 없는 것 같다. 변호사만 잘 쓰면 얼마든지 청구할 수 있다. 따라서 아울러 변호사들이 창궐한다. 민법전문, 형법전문, 가정법전문, 이혼전문, 법인전문, 소액소송전문, 단체소송전문, 이민법전문, 법원출석전문, 상담전문, 사면전문, 스몰비즈니즈전문, 어카운팅전문, 공증전문, 번역전문...  

 

그리고 가장 독특한 것은, 

 

이 나라 은행들은 거의 국영은행 같다. 자신들이 거래하는 은행이 망하거나 다른 은행에 팔리거나 통폐합한다는 개념이 이 나라 사람들에겐 아직 없는 것 같다. 저금리 환경이나 모기지 위협, 가계부채 등 리스크 환경은 비슷한 것 같은데 이 나라의 은행 빅6는 "건실"하다. 세계금융위기 이후 유행했던 the third basel 개념으로 들여다봐도 마지노선을 훨씬 상회한다 (2013년 기준 11.38%) 독특한 것은 자기자본 (Tier 1) 비율로 보면 한국의 은행들이나 미국 은행들과 크게 다를 바 없는데 그 자기들이 갖고 있는 자본으로 이익을 내는 비율 (ROE) 이 17.4% 이다. 2013년 같은 해 한국 은행들의 ROE는 4.91% 였다. 비전문가인 내가 봐도 요상한 이런 것으로 보아 뭔가 단단히 착취를 하고 있고 동시에 뭔가 단단한 빽을 갖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가장 큰 특징은 원체 시장규모가 작다보니 리먼브러더스 같은 게 뻥 터져도 온 나라 자본과 국민이 휘청할 정도로, 매우 가시적으로 흔들리지는 않는 것 같고 서서히 서서히 가랑비에 옷 젖듯이 국민의 고혈을 빨아먹는다. 결론은 --- 모든 게 다 저 수수료 탓인 것 같다. 개미들이 먹여살리는 "국영" 은행? 한국의 은행들이 수수료를 올리는 이유가 여기 있었나? 

 

  

 

  

2015/04/12 17:08 2015/04/12 1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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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의잡담

분류없음 2015/04/11 10:12

생활의 잡담 2 - 오늘은 하소연 

 

이 곳에서 한국의 웹페이지에 접속하면 로딩하는 데에 한참 걸린다. 아마도 플래시 따위로 도배된 광고페이지 때문인 것 같다. 심지어 최근에는 프레시안도 잘 안 열린다. 이런 느림에 비하면 한국에서 인터넷하던 시절이 그립긴 그립다. 한국의 초고속 인터넷을 쓸 적엔 거의 모든 페이지들이 "뚝딱" 열렸다. 반면 여기에서 한국 웹페이지를 열면 "뚜우---우---욱--따---악" 열린다. 그나마 진보넷은 "뚜욱따악" 열리는 편. 

 

엑티브엑스 때문에 손해를 많이 봤다. 대학졸업증명서 따위를 다운로드받으려면 엑티브엑스를 깔아야만 하는데 문제는 엑티브엑스가 이 나라에서는 취급불가능한 프로그램이라는 점. 학교 컴퓨터나 직장에선 아예 시도조차 할 수 없다. 집에서 쓰는 랩탑에 그나마 설치할 수 있는데 이것도 종종 이 나라에서 주로 쓰는 다른 프로그램들과 충돌을 일으켜 아무 것도 할 수 없게 만들기도 한다. (장학금으로 간신히 마련한 이 랩탑도 이젠 너덜너덜해졌다. 멀티컬쳐럴 랩탑이 필요해) 

 

제일 큰 문제는 은행업무였다. 엑티브엑스를 풀면 다음 단계의 허들이 있다. 

 

오늘 인터넷뱅킹을 할 일이 있어 S은행 홈페이지에 접속했다. 화이어폭스나 구글크롬에선 아예 열리지도 않는다. 잘 쓰지도 않는 인터넷익스플로어로 접속했는데 접속하자마자 뭘 후다닥 자기가 알아서 보안프로그램을 깐다. 또 뭘 더 깔라고 해서 찬찬히 읽어보니 안 깔면 아예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없다. 어쩔 수 없지, 동의. 

엑티브엑스에 버금가는 프로그램을 설치하는 데만 십 분이 넘게 걸렸다. 

 

- 공인인증서를 클릭했더니 이미 만료가 되어 재발급받으란다. 

- 재발급받는 과정에서 해외거주자 인증을 하라고 해서 클릭했더니 바로 인증해줬다. 오호라, 진전이 있긴 있구만 제법이야. 고마워. (뒤에 일어날 일을 전혀 모른 상태였다) 

- 재발급받았다. 아싸. 

- "이체"를 눌렀다. 

- 일 년 이상 이체서비스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자동으로 "장기미사용정지"되었단다. 그것을 해지하란다. 

- "해지신청"을 눌렀다. 

- 계좌번호와 비밀번호를 입력했다. 

- 본인확인을 해야하니 010 혹은 011로 시작하는, 한국에서 쓰던 전화를 이용해 ARS 서비스를 통해서 본인인증을 하란다. (나는 더 이상 그 전화번호를 쓰지 않는다구. 그리고 여긴 한국 밖이란 말이야) 

 

뭐지? 미로를 간신히 간신히 풀어 나왔는데 다시 입구로 돌아간 느낌? 몇 시간 동안 낑낑 산에 간신히 기어올랐는데 이 산이 아니야, 뭐 그런 기분? 느낌 탓인가? 기분 탓인가? 

 

정리해보자. 

 

은행 보안에는 은행 서비스를 이용하는 소비자(개인)가 담당해야 하는 몫과 은행의 유무형 자산 (예, 서버)를 관리하는 회사가 담당해야 하는 몫이 각각 있다. 현행 인터넷뱅킹 서비스 과정에 얽혀 있는 보안 시스템에는 이 두 진영이 각각 책임져야 하는 역할이 단단히 혼재되어 있다. 회사는 서버에 침입하여 회사와 고객의 자산에 흠집을 내는 제3자들을 막아내는 역할만 하면 된다. 나머지는 회사와 계약을 맺은 개인들의 몫이다. 본인 인증을 위해 본인들이 쓰는 개인전화를 통해 일률적인 서비스를 이용하도록 강요하는 것은 자본주의-자유경쟁 시스템 하에선 온당치 못한 일이다. 개인전화를 쓰지 않는 사람도 있을 수 있고 청각장애인-시각장애인의 경우 그 서비스를 제공받는 과정에서 배제될 수 있다. 이것은 평등하게 서비스를 제공해야 하는 서비스 공급의 원칙을 위배하는 것이다. 

 

은행은 애초 개인(법인) 고객을 유치하여 계약을 맺을 때 최소한의 정보만 수집해야 한다. 따라서 기본패스워드 이외의 보안의 영역에 대해선 그 개인고객들이 책임진다는 계약을 맺어야 한다. 그 약속이 필요하다. 개인 고객들이 기본 패스워드 (비밀번호) 만으로도 인터넷뱅킹 서비스를 충분히 이용할 수 있는 서버와 환경을 구축하는 것이 은행(회사)의 역할이다. 그것이 구축되면, 구축된다면 개인이 자기 패스워드를 유출하든 말든 그것은 그 개인고객이 알아서 할 일이다.

 

은행이 애초에 당사자들이 져야 할 책임 - 예를 들어 천하의 북한 해커가 쳐들어와도 막아낼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하는 것 - 을 지지 않으려고 지랄하다보니 개인들이 져야 할 책임과 해야 할 일들이 산더미같이 늘어났다. 공인인증서 비밀번호, 계좌비밀번호, 계좌이체비밀번호, 보안카드번호, 계좌번호 ... 이것이 대체 뭣하는 짓인지 정말 알다가도 모르겠다. 이러다간 입력해야 할 비밀번호가 계속 늘어나고 이 비밀번호들을 관리해주는 에플리케이션이 나올지도 모르겠다. 

 

결국, 

 

한국의 은행이 정상업무를 재개하는 월요일 오전 9시까지 기다려야 한다.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지, 또 다시 "영업점으로 방문해주세요"라는 말을 듣고 거품물고 쓰러질지 그것은 아직 모르겠다. 

 

 

2015/04/11 10:12 2015/04/11 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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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예와자살

분류없음 2015/04/11 04:22

부활절 연휴 기간에 함께 일했던 파트너가 북쪽에서 왔는지 남쪽에서 왔는지 물었다. 내가 한국인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는데 나름대로 껄끄러운 질문이라 생각했었는지 그동안 묻지 못했던 것. 

 

이 친구는 캐나다 동쪽, 섬 Nova Scotia 라는 곳에서 왔다. 우울한 십대를 보낸 이 친구의 유일한 고등학교 친구가 바로 한국인이었는데 아버지는 남한, 어머니는 북한에서 온 사람이었다고. 특이한 케이스다. 그 친구에게 한국에서는 정신건강을 어떻게 다루냐고 물은 적이 있는데 "한국엔 그런 건, 정신질환이란 건 없다"고 대답했다고. 

 

없을 리가 있나. 며칠 전에 다시 함께 일했다. 지난 번에 끊어진 질문, 한국 사회와 정신건강에 관한 질문을 계속 하다가 최근 자기가 졸업한 대학의 한 웹페이지에서 봤다면서 최진실 씨 이야기를 물어봤다. 그녀는 어떤 사람이었어?, 명예를 위해 자살하는 게 한국에선 보편적인 거야?, 그녀가 죽었을 때 동조자살 비율이 갑자기 늘었던 게 사실이야?...  

 

SOUTH KOREANS USE SUICIDE TO PRESERVE HONOUR 

명예를 지키기 위해 자살하는 한국인들

 

올리비아 존_ 객원 필자 

 

사람들은 유명 인사들의 자살에 충격을 받는다.  로빈 윌리엄스의 죽음 이후 감당하기 힘든 슬픈 상황이 한동안 지속됐다. 자살은, 여느 정신건강에서 드러나는 여타 다른 요소처럼 문화에 따라 다르게 나타난다. 한국 최고의 국민적 여배우였던 최진실 씨는 지난 2008년 10월, 스스로 목을 매 자살했다. 

 

한국 문화에서 명예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최진실 씨의 이야기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대중은 그녀를 종종 이혼녀, 싱글맘 등으로 낙인을 찍어 바라봤다. […] 그녀의 이혼은 가정폭력의 결과였지만 법원은 “(그녀가) 결혼생활의 의무를 다하지 못했”고 “(결혼 생활의 유지를 위한) 존엄을 지키고 사회적, 도덕적 명예를 지키는 데 철저하지 못했다”고 판결했다.

 

그녀의 자살은 시작에 불과했다. 그녀의 자살 뒤 동조 자살의 기운이 일어 같은 달 자살률이 70% 증가했다. 2010년 3월, 그녀의 동생[이던 최진영씨]도 목을 매 자살했고, 그녀의 전남편[이던 조성민씨]도 2013년 1월에 목을 매 자살했다.  

 

일련의 이러한 사례는 정신과 치료를 바라보는 한국인들의 회의적인 시선을 보여준다. 하규섭 서울대 의대 정신과 의사는 한국인들이 심각한 우울증을 겪어도 [서구적인 방식의] 치료를 받는 것을 탐탁치 않게 여긴다고 말한다. 우울증을 앓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은 [일과 삶에서] 실패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하는 것과 다르지 않으며 가문에 수치로 된다. 때로는 [우울증을 앓고 있는 그 자체를] 감춘다. 

 

가문의 명예 [혹은 평판] 를 지키는 것은 어떤 것보다 중요한 일이다. 가족구성원 가운데 우울증을 앓았거나 자살한 사람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꺼린다. "사람을 두 번 죽이지 말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은 죽은 사람의 명예가 [그 사람에 관해 이야기하는 것만으로도] 더럽혀질 수 있다는 말이다. 

 

조선대학교 정신과 의사인 김형수 씨는 이런 평판을 중요시하는 것에 사람들의 동요가 있다고 말한다. 한국인들은 그들이 심리치료를 받을 때마저 보험회사가 치료사실을 찾아내는 것을 막고자 치료비를 현금으로 계산한다. 

 

서울대학교 정신과 의사이자 한국자살(예방)협회에서 연구를 하는 윤대현 씨는 한국인들이 [정신건강을 예방하기 위해] 전문적인 사람들보다 성직자나, 무속인, 혹은 접대부와 대화를 나눌 수 있는 룸살롱 같은 곳을 더 많이 찾는 경향이 있다고 말한다. 정신건강에 관한 한 서구적인 접근은 확장되지 않았다. 

 

한편, 한국의 우울증 비율을 계속 늘고 있으며 자살의 80-90%는 우울증과 관련이 있다. 

 

2010년 워싱턴 포스트에 따르면 [한국 사회에서] 자살을 받아들이는 것과 더불어 전문적인 치료를 거부하는 경향이 한국이 세계에서 가장 높은 자살율을 나타내는지 이유가 될 수 있다고 한다. (2014년, 한국의 자살률은 그린란드와 리투아니아에 이어 3위를 기록했다)  

 

이러한 흐름은 한국 정부로 하여금 다리 위에 자살방지 시설을 만들거나, 지하철 스크린도어를 늘리고, 24시간 운영하는 생명의 전화 같은 공공 예산을 확충하는 동인이 되었다. 일부 한국인들은 전통적인 사고방식이 여전히 [진보적인 발전에] 발목을 잡고 있다고 믿고는 있지만 변화는 서서히 나타나고 있다. 

현재, 한국 정부는 정신건강, 자살에 대한 인식을 높이기 위한 예산을 늘리고 있다. 온라인 모니터링을 통해 자살을 독려하는 사이트를 폐쇄했다. 과거에 자살하는 사람들의 흔한 수단이었던 농약, 그라목손은 현재 판매금지되었다. 그리고 개선된 연금 제도와 대기업 지원 등을 통해 과거 정신건강을 위한 혜택의 사각지대에 있던 이들도 서비스를 받을 수 있게 되었다. 

 

[정부가 이끄는] 공공 서비스의 메세지는 사랑하는 나의 가족이 자살한 데에는 자살 외에 다른 것을 생각할 수 없었던 그 과거의 방식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것을 강조한다. 그들 [정부 서비스의 메세지는] 은 이제 명예는 삶을 통해 회복할 수 있다는 점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일차적으로 정신건강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람들은 [프론트라인에 있는 사람들은] 그들이 만나는 사람들이 어떤 삶의 가치와 방식을 갖고 있는지 그것을 이해해야 하며 그 문화에 기반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한국의 현실을 개선하는 열쇠이다. [*프론트 라인에 있는 사람들이 잘해야 한다] 생명을 버려서라도 명예를 지키는 것이 중요한 [전통을 지닌 문화의] 나라에서는 해법 또한 그 전통을 깨는 것이 아니라 그 전통에 기반해 수립해야 할 것이다. 

 

올리비아 존이라는 사람이 한국 정부가 제공하는 정신건강서비스 실태와 시민의식 등에 관해 얼마나 어떻게 잘 알고 있는지 나는 잘 모른다. 이 짧은 글만으로는 알 수 있는 게 대단히 제한적이다. 다만 필자는 전통적인 가치와 관념을 혁명적으로 뒤집지 않고도 해법을 찾아갈 수 있다는 데에 의미를 두는 것 같다. 

 

"[...] They focus on the idea that honour can be regained by living." 

죽지않고 살아 명예를 되찾을 수 있다는 생각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In a country where honour is tantamount to life, solutions must build on tradition, not break it."

명예의 가치가 생명보다 중요한 나라에서는, 해법 또한 이 가치를 부수는 것이 아니라 이 가치에 근거해야 한다.  

 

서구인들의 의식에서는 이른바 명예를 위해 자신을 죽이거나 (자살), 가족을 살해하는 것 (명예살인) 이 매 한가지로 이해하기 어려운 것일 테다. 따라서 그들이 이해할 수 없는 관념의 측면을 부수지 않고 (not to break) 그것을 인정한 가운데 정책을 수립하자는 포인트를 찾아낸 혜안이 놀랍다. 한국정부의 움직임을 그렇게 해석해낸 관점이 놀랍다. 꿈보다 해몽이지만. 

 

 

* 나는 자살하는 사람들을 존중한다. 그러나 타인을 살해하는 명예살인 따위에는 철저히 반대한다. 자살과 타살의 차이.

* 팩트 보충 http://www.salon.com/2014/03/15/why_is_suicide_so_popular_in_south_korea_partner/

 

 

2015/04/11 04:22 2015/04/11 0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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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야할시간

분류없음 2015/04/07 23:10

별의별 일을 겪는 사회복지사로 혹은 사회서비스 영역에서 일하는 사람들 (Social Workers; Social Service Workers) 은 대체 자기 자신들을 어떻게 단련할까. 프론트라인에서 서비스노동, 감정노동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자기 자신들을 어떻게 단련할까. 슬픔, 애도, 상실과 같은 감정소모를 많이 하는 노동자들은 대체 자기 자신들을 어떻게 단련할까. 또, 비영리분야 (NPOs) 혹은 운동단체 같은 곳에서 일하는 활동가들은 자기 자신들을 어떻게 단련할까. 

 

번아웃 (Burnout)을 방지하기 위한 개인별, 직군별 대처방안이 있겠지만 나의 관심은 대체로 사회공공영역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람들, 프론트라인에서 민원을 직접 대하는 사람들, 병원 같은 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게 가 있다. 아무래도 현재 나의 일이 그런 분야라서 그렇겠지.  

 

작년에 클라이언트 두 명이 연달아 죽는 사건을 겪은 뒤로 이 문제의 해법이 더더욱 절실해졌다. 물론 객관적으로 말하건대 나는 아직 그 단계 (Burnout, Compassion Fatigue) 의 지경까지 이르지는 못했다. 아무래도 나는 나도 모르는 사이 점점점 조금씩 소진하고 있는 모양이다. 즉, 소진할 게 더 남았다는 말?!

 

종종 하는 말로 셀프케어 (Self-Care) 라는 말이 있다. 이 용어가 지니는 정치적 함의나 옳고 그름의 여부는 차치하고 --- 나는 나를 케어하기 위한 방법, 나에게 맞는 방법을 찾기 위해 음악을 찾아 듣고, 간혹 침을 맞거나, 관련 글, 도서를 찾거나 동종업계 다른 사람들의 개인 포스팅, SNS 등을 참고한다 참고하려고 애를 쓴다.

 

아무래도 회사에서 제공하는 카운셀링 서비스에는 한계가 있다. 북미대륙 방식, 유러피안 방식에 익숙한 것이다보니 동아시아에서 자고 나란 내가 그 방식에 맞추는 것에 한계가 있다는 말씀이다. 그렇다고 그 카운셀링이 아예 쓸모가 없느냐, 아예 그런 것도 아니지만 꼭 도움이 되었다, 라고 말하기엔 허무한 면이 없지 않다.

 

그 와중에 이글 저글 이책 저책을 타고 가다가 Karen Messing이라는 양반을 발견했다. 이 양반의 작업 분야는 나의 (현재) 관심 분야와 꼭 일치하지는 않지만 사람들의 아픔 (산업재해 혹은 직업병의 양상) 을 분석하거나 그 아픔을 시스템의 관점으로 바라보고 젠더적 관점을 견지하는 데에는 일견 도움이 될만하다. (될 것 같다고 판단했다.)

 

그러다가 알아낸 것. 한국에서 이 사람 책이 번역 출간 됐다. 짜잔 ~~~

반쪽의 과학 일하는 여성의 숨겨진 건강 문제

 

꺅. 물경 30,600원이나 한다. 대학 교재임에 틀림 없어. 아니면 납품이나 우수도서 선정을 목표로 만든 책인가? 원제는 One-Eyed Science: Occupational Health and Women Workers, 원서값은 페이퍼백이 $41.36이고 하드커버도 $60.40. 뭔가 출간한 지 꽤 된 책인가 싶어 들여다봤더니 1998년에 나왔고 한국에서는 2012년에 나왔다. 그리고 한국어판 역자의 이름에 낯 익은 듯, 익지 않은, 익은 것 같은 이름이 있다. 아, 반가워. 반갑고도 슬프다. 복잡한 기분이랄까.

 

지난 밤에 오버나이트 근무를 하면서 이 사실을 발견하고 한동안 흥분상태를 진정하지 못했는데 냉정하게 생각해보니 어제 그 상황에서 내가 그럴 이유가 하등 없었다. 아, 슬프다. 아스트랄하다고 해야 하나.

 

직장 동료가 알려준 최진실의 죽음에 관련한 트라우마 아티클에 대해 포스팅을 하려다가 아스트랄한 기분을 먼저 정리해본다. 그건 다음 번으로 미루고, 일단 나는... 지난 밤에 일을 했으니 이제는 자야할 시간. 이게 바로 셀프케어.

 

* 작년에 나온 Karen Messing 의 또 다른 책 Pain and Prejudice

 

 

 

 

 

2015/04/07 23:10 2015/04/07 2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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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의유산

분류없음 2015/04/02 05:45

한국에서 다나 포파 (Dana Popa)의 사진전이 열린다. 언뜻 보면, 

 

소년인 듯, 소녀인 듯 -- 어른에게 이런 표현은 좀 그런가. 
아저씨인 듯, 아줌마인 듯 -- 어른에게 이런 표현도 좀 그런가.
바이너리 전형으로 딱 떨어지지 않아 더 좋은 다나 포파. 
그의 사진도 그렇다. 뭐라고 딱 설명하기 어렵다. 컨템포러리. 

 


동구의 몰락은 -- 공산주의의 몰락은 어릴 적 기억 한 켠에 "봐라, 민주주의가 이겼다" 는 주변 어른들의 말씀으로 남아있다. 경악스러울만치 충격적이었던 것은 두 개의 이미지인데 하나는 차우세스쿠 (Ceausescu)의 죽음이고 또 다른 하나는 당시 동독의 대빵이었던 호네커 (Honecker)와 소련의 오야였던 브레즈네프 (Brezhnev)의 키스 장면이다. 

 

첫째는 차우세스쿠 처형 직후 그 사진이 서구 미디어로 흘러나간 것을 한국에서도 그대로 내보내면서 나같은 꼬마도 보게 되지 않았을까 싶다. "처형"이라는 단어가 주는 무시무시함과 더불어 어제까지 국부였던 이가 오늘 아홉시 뉴스에 시체로 나오는 장면은 드라큘라를 보는 것처럼 어쩐지 감당하기 힘들면서도 쫄깃한 짜릿함을 줬다. 둘째 이미지는 아마도 독일 통일 과정에서 홍수처럼 쏟아져나오던 미디어의 자료화면 가운데 하나였지 않았나 싶다. 코카시언 두 남정네 노인들이 부여잡고 강렬하게 키스하는 그 모습은 아름답지도 않았지만 추하지도 않았다. 그저 신기했다. 아, 서양인들은 다 저렇게 키스를 하는구나. 좋네. 우리도 저렇게 하면 좋겠다. 김영삼이랑 김일성이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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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우세스쿠는 나에게 거리의 인민들이 모두 체조를 할 것만 같았던 루마니아에 체조요정만 있는 게 아니라는 점을 알려줬다면 좀 그런가. 루마니아를 다나 포파 (Dana Popa)가 기록했고 이번에 한국에서 열리는 사진전 제목도 역시 "아워 파더 차우세스쿠 (Our Father Ceausescu)"이다.

 

나는 사람들이 전체주의의 시절을 그리워한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그저 그 때에는 모두가 불안했었을 것이다. 혁명 이후의 루마니아는 자본주의의 단점도 받아들여야했고 부정부패가 만연했다. 민주주의가 왔지만 독재정권 시절에 권좌에 앉았던 사람들이 민주주의 시대에도 그 권좌를 유지했기 때문에 실제로 사람들은 이전의 전체주의 체제로부터 완전히 해방되지 못했다. 사람들은 극심히 가난했고, 물가는 매년 급격히 상승했다. 미래에 대한 안전판과 희망이 없었기에 젊은이들은 다른 나라로 이민을 가길 원했다. 이렇게만 생각한다면 표면적으로는 과거를 그리워한다는 말이 나올 수 있다.

 

한국에서 사시든지, 외국으로 이민하여 사시든지 한국에서 태어나시고 박정희 시대를 경유하신 많은 어르신들 가운데 박정희 시대를 그리워하시는 분들이 많다는 소리를 곧잘 듣는다. 언젠가 아버지도 박정희가 유신을 단행한 그 해부터 인생이 풀리기 시작했다는 말씀을 하신 적이 있었다. (물론 아버지의 인생이 풀리기 시작한 것은 박정희의 유신과는 하등 상관이 없지만 우연히 시절이 그렇게 맞아 떨어졌다.) 아버지의 넋두리를 듣던 당시엔 아버지의 머릿속이 어떻게 된 것은 아닐까, 혼란스러웠다. 물론 지금도 그 사정을 이해하기란 요령부득이다. 

 

나토와 바르샤바 조약기구 (WTO, Warsaw Pact) 가 대립하던 시절의 동구권 나라나 여전히 정치가 흉흉한 남미 몇몇 국가에서 이민온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다보면 당시 자기들 나라의 정치인들을, 독재자들을 썩을 놈, 후레자식이라고 욕하는 경우가 있다. 조금 더 자세히 얘기해줄 수 있니, 하고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나누다보면 묘한 겹울림이 담긴 말들을 한다. "그래도 그 때는 다같이 가난했어" "빈부격차는 없었지, 모두 다 가난했으니까" "모두 다 가난했지만 집걱정은 안 했어" "마약은 꿈도 못 꿨어. 걸리면 사형이니까" "엄마들의 요리솜씨가 더 나았던 것 같아. 제한된 식재료로 음식을 만들어야 하니까" 

 

짝꿍과 대화를 나누며 박정희 시대를 회상하는 이들의 이면엔 모두다 가난했던, 모두다 빌어먹었던 그 시절에 대한 퇴행도 어느 정도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을 나눴다. 그리고 그 때엔 공부를 하면 개천에서 용까지는 아니어도 토룡탕 정도까지는 거듭날 수 있는 여지가 있었다. 공부를 하고 대학에 가면 그래도 제 식구 뉘일 전세집 하나 마련하고 결혼하고 아이를 낳아 기를 수 있는 일자리 정도는 건사할 수 있었다. 오늘 정부미를 먹어도 내일은 뽀얀 이밥에 고깃국을 먹을 수 있다는 꿈 정도는 꿀 수 있었다. 그런데 그게 오늘날에는 결단코 어렵거나 불가능한 꿈이 되어버린 것이다. 백미에 고깃국을 매일매일 먹어도 불안하고 막연한 희망없는 내일. 이게 오늘날 우리가 마주한 현실인 셈이다. (퇴행은 나만 겪는 게 아니었다.)

 

나는 박정희를 그리워한다는 어르신들이 중정을 앞세워 언론을 탄압하고 한국적 민주주의란 미명 아래 정당정치와 민주주의를 싹다 밀어버린 그 '전체주의'를 그리워한다고 여기지는 않는다. 엊그제 막걸리 마시며 신세한탄하던 옆집 아제가 국가보안법으로 형무소에 갔던 그 시절로 돌아가고픈 게 아니라고 생각한다. 다만 그들은 모두 다 가난했고 모두 다 빌어먹었지만 쌀톨같을지언정 삶의 희망이 있던 그 시절의 "좋았던 점"을 무한반복하는 것 뿐이라고 여길 뿐이다. 아버지가 말씀하신 인생이 잘 풀렸다는 것도 그저 그런 맥락이 아니었을까 싶다. 

 

다나 포파 (Dana Popa)는 그의 작품에서 혁명을 온몸으로 겪어낸 어른신 세대가 아닌 젊은 세대에 초점을 맞췄다. the bittersweet changes 라 말할 수 있는 혁명의 유산. 그들은 무엇을 생각하고 있을까. 그들의 부모 세대는 무엇을 그리워하고 있을까. 

 

다나 포파 (Dana Popa) 홈페이지 http://www.danapopa.com/projects.php

 

 

*사진 가져온 데 http://blogs.discovermagazine.com/intersection/files/2009/09/14-sovietleaderleonidbrezhnevandeas.jpg 

2015/04/02 05:45 2015/04/02 0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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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뚝청소부

분류없음 2015/04/02 04:16

코리아타운에 있는 도서관에 가면 한국어 책이 한 켠에 있다. 북쪽 North York에 있는 도서관에 가면 더 많이 있는데 집에서 멀다. 지난 번에 들렀을 때 "철학과 굴뚝청소부"가 있어서 반가운 마음에 살펴봤다. 옛날에 읽었던 것과 사뭇 다르다. 뒷부분에 들뢰즈도 추가된 것으로 보아 개정판이지 싶다. 

 

의심의 천재, 데카르트로 시작하는 "철학과 굴뚝청소부"는 대학에 들어가 접한 신문명 가운데 하나였다. 고등학교 때 단골 서점주인에게 유물론적 세계관을 접할 책을 추천해달라고 했더니 지금은 절판된 소련교과서의 일본어 중역판 유물론과 어쩌구, 이런 책을 권했다. 돈을 주고 사기는 했는데 평범한 고등학생이 혼자 독해할만한 수준은 아니어서 책장에 고이 간직했었다. 몇몇 선생님들의 도움으로 윤구병, 위기철... 의 책을 읽기는 했지만 큰 재미는 못봤고 주로 소설을 읽었다. 그 때 읽은 소설이 정도상, 황석영, 이문열, 박상륭 등이다. 

 

발랄한 새내기 시절, 서점에서 "철학과 굴뚝청소부" 책을 살 때만 해도 저자의 이름이 이쁘네, 정도였지 그가 누군지 몰랐다. 나중에서야 비로소 감히 범접하기 어려운 사구체논쟁의 종결자라는 것을 알았지만 누군지 안다한들 당시 나에게 큰 의미는 없었다. 

 

낭만주의-자연주의로 이어지는 문학을 공부할 때 윌리엄 블레이크의 "굴뚝청소부 (The Chimney Sweeper)" 라는 시를 배웠다. 띄엄띄엄 원문 (영문) 으로 읽을 땐 잘 몰랐다. 나중에 교수가 설명할 때 비로소 그림이 그려졌다. 디킨스와 하디의 소설에서 어슴프레 그렸던 침울한 회색빛 이미지. 그 굴뚝청소부가 열 살도 채 되지 않은 어린아이였다는 사실에 적잖이 충격을 받았다. 가난으로 아버지에게서 팔려 노예처럼 일하는 어린이, 너무나 비참하도록 사실적이지 않은가.

 

이진경 선생의 책에 대해 공공연히 떠들고 토론할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었다. 당시 분위기를 회상한다면 '읽는 것도 아니고 읽지 않는 것도 아닌' 그런 어정쩡한 분위기였던 것 같다. 시대가 그랬고 세태가 그랬고 당시에 '이진경'이라는 이름이 갖는 관음증적인 파워가 그랬다. 요즘 말로 하면 종북인 듯 종북 아닌 종북 같은 책? 대학 입학하던 해에 서울지하철노동조합이 파업을 했는데 대학로, 동국대, 고려대 근방에서 가방수색을 당하는 일도 흔한 일이었다. 나는 아무래도 여학생 같아서 (?) 용케 피하곤 했지만 가방에서 "철학에세이"가 나와 경을 칠 뻔했던 어떤 이도 있었다.

 

블레이크의 문학을 가르친 교수는 (그 자리에 오른) 실력이나  개인적 삶의 역정으로 치면 대단할는지는 몰라도 나는 그날로 그 교수가 싫어졌다. 전공도, 교수도, 동기들도 다 싫어졌다.

 

나는 내가 왜 이런 어정쩡한 사람이 되었을까. 혼자 찬찬히 생각할 때가 많다. 왜 그 때 싸우지 못했을까. 답답하다고 소리치지 못했을까. 선생님 그건 슬픈 게 아니에요, 끔찍한 거예요.

 

무리에서 떨어져 결국엔 혼자 걷는 펭귄 한 마리가 되기 싫었던 그런 마음 때문이었던 것 같다고 자문해본다. 

 

오늘 다시 읽어보는 굴뚝청소부 -- 이진경 말고 블레이크 

 


The Chimney Sweeper: When my mother died I was very young

 

BY WILLIAM BLAKE

 

When my mother died I was very young,
And my father sold me while yet my tongue
Could scarcely cry " 'weep! 'weep! 'weep! 'weep!"
So your chimneys I sweep & in soot I sleep.

 

There's little Tom Dacre, who cried when his head
That curled like a lamb's back, was shaved, so I said,
"Hush, Tom! never mind it, for when your head's bare,
You know that the soot cannot spoil your white hair."

 

And so he was quiet, & that very night,
As Tom was a-sleeping he had such a sight!
That thousands of sweepers, Dick, Joe, Ned, & Jack,
Were all of them locked up in coffins of black;

 

And by came an Angel who had a bright key,
And he opened the coffins & set them all free;
Then down a green plain, leaping, laughing they run,
And wash in a river and shine in the Sun.

 

Then naked & white, all their bags left behind,
They rise upon clouds, and sport in the wind.
And the Angel told Tom, if he'd be a good boy,
He'd have God for his father & never want joy.

 

And so Tom awoke; and we rose in the dark
And got with our bags & our brushes to work.
Though the morning was cold, Tom was happy & warm;
So if all do their duty, they need not fear harm.

 


꿀뚝 청소부

 

엄마가 돌아가셨을 때 전 아주 어렸어요
아빠는 제가 '딱으! 딱으! 딱으! 딱으!"라고 밖에는
소리를 내지 못할 때 절 팔아버렸어요.
그래서 제가 여러분들 굴꾹을 청소하고 검댕을 뒤집어 쓰고서 자게 된 거에요.


개중엔 톰 데커라는 친구가 있었어요. 양털 같이 복슬복슬한
그애 머리가 밀렸을 때 울었지요. 그래서 제가 이렇게 말해줬어요
"뚝, 톰! 신경쓰지마, 네 머리가 깨끗하면 
검댕이 네 하얀 머리칼을 망칠 일도 없잖아."

 

그래서 그애는 조용해졌고 바로 그날 밤
톰은 자다가 그 비슷한 광경을 보았어요
수천의 청소부들, 딕, 조, 네드 그리고 잭,
그애들 모두가 시커먼 관속에 열쇠가 채워져서 갇힌 거에요

 

그런데 빛나는 열쇠를 가지고서 천사가 옆에 내려왔어요
천사가 관을 열어 아이들을 모두 풀어주었어요
아이들은 푸른 평원을 껑충 뛰고 깔깔 웃으며 달려 내려갔죠
강물에 몸을 씻었고 햇빛에 빛이 반짝였어요

 

알몸에 하얀 모습으로, 아이들의 가방은 모두 뒤에 남겨둔 채,
아이들은 구름 위로 솟아 올랐고, 바람을 타고 뛰어 놀았죠.
그때 천사가 톰에게 말했지요. 톰이 착한 아이가 되면
하나님을 아버지로 삼게 될 것이고 그러면 기쁨으로 넘칠 것이라고요.

 

톰은 잠에서 깨어났고 우리도 어둠 속에서 일어나
일 가방과 청소솔을 메고 나섰지요.
아침이 차가웠지만 톰은 행복했고 마음이 따뜻했어요
그렇게 모두가 할 바를 다하면 해코지를 당할까 두려워할 이유가 없어요.

 

 

* 이진경 선생의 책 제목의 굴뚝청소부와 블레이크 시의 굴뚝청소부는 같기도 하고 다르기도 한 굴뚝청소부들이다. 이진경 선생은 탈무드 일화를 가져온 듯하고 블레이크도 --- 탈무드 일화를 가져온 것이라 믿고 싶다. 

 

2015/04/02 04:16 2015/04/02 0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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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의잡담

분류없음 2015/04/01 07:31

잡담1

 

살이 빠져 집에 있는 바지가 죄다 헐렁하다. 나이도 먹었으니 곧 살이 찌겠지... 일 년을 넘게 기다렸는데도 다시 살이 찌지 않는다. 어쩔 수 없다. 짝이 작년에 한국에서 공수해 준 바지도 원래는 슬림핏인데 내게로 와서 헐렁이방구 바지가 되어 버렸다. 

 

오늘 낮에 다운타운에 나가 바지, 셔츠, 운동화를 샀다. 짝이 일하는 회사에서 작년 연말에 받은 기프트카드로 샀다. 참 좋은 짝. 박수. 짝짝짝. 

 

바지는 슬림이지만 역시 피팅룸에서 입어보니 헐렁~하지만 그런대로 입을만하다. 어린이 바지를 사면 좋겠지만 어린이들의 골격과 어른들의 골격 차이로 확실히 무릎 부분에서 차이가 난다. 어린이들 골격을 자세히 뜯어본 적은 없지만 어린이들은 한창 성장이 진행 중이라 그런지 넙다리뼈가 어른보다 작아서 무릎이 더 위로 올라간다. 그래서 어린이옷은 --- 윗옷은 입을만하지만 하의는 잘못 입으면 하하나 노홍철 옷을 입은 것처럼 될 수 있다. 

 

셔츠는 오렌지색 줄무늬가 흐리게 들어간 하늘하늘한 질감인데 방글라데시에서 만들었다. 방글라데시 옷은 다 좋은데, 다 좋다고 칠 수 있는데 다만 단추마감 부분에서 다소 어색하다. 마치 저녁먹으러 가느라고 미싱을 돌리다 만 것 같다고 해야 하나. 예전에는 방글라데시 산 셔츠의 단추를 죄다 뜯어 다시 달아서 입곤 했는데 이젠 그럴 기운이 없다. 에라이 될대로 되라. 베트남이나 캄보디아 산 셔츠들의 단추마감은 그렇지 않았는데 아마도 단추를 입히는 기계가 다른 모양이다. 

 

운동화는, 

이게 정말 웃긴 게, 어린이 코너를 돌아보는데 어린이들이 신는 -- 막 뛰어노는 바야바같은 어린이 말고 샌님과 같은, 내 남동생의 어릴 적 모습 같은 어린이들이 신는 운동화가 세일 중이다. 그 중에서 제일 큰 신발을 장난삼아 한 쪽만 신어봤는데 딱 맞다. 혼자 낄낄대고 웃는데 짝이 나머지 한 쪽도 신어보라고 권하신다. 두 짝의 신발은 십센티가량의 끈으로 묶여있어서 양 쪽을 다 신으면 콩콩콩 뛰어야 한다. 어쨌든 그 신발을 사기로 결정한 것은 신발이 너무 예뻤기 때문이다. 난 네게 반했어.    

 

옷을 사고 나와 밥을 먹으면서 생각해보니 옷을 사러 갈 때부터 너무 배가 고팠다. 배가 고파서 옷을 너무 대충대충 산 것은 아닐까. 집에 가서 후회하고 반품하러 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또 그것을 주제로 며칠 고민하지 않겠는가. 왜 나는 배고픈 상태임에도 스넥을 먼저 먹자고 하지 않고 옷을 사러 가자고 했는가. 셔츠는 필경 배고픈 탓에 적당히 구매한 것이 분명하다.... 뭐 그런 생각을 했다. 

 

오늘 잡담 끝 

2015/04/01 07:31 2015/04/01 0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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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공통점

분류없음 2015/03/30 02:35

한국과 이 나라에서 겪은 공통점들, 물론 많지만 그 중에서 또 하나 최근에 겪은 것.

 

성차별을 주제로 이야기하거나 성폭력 등 젠더불평등 이슈를 다룰 때 아저씨들이 너무 많이들 자기 이야기를 하신다는 거다 (아니면 입을 아예 꾹 다물고 있거나: 수동공격성 Passive-Aggresiveness). 

 

대체로 현재 성차별은 과도하게 규정되었다거나 혹은 역차별이거나 근육 중심의 남성-감성/모성 중심의 여성 등 태생적인 것으로 돌리거나. 성폭력의 경우 여성들을 위시로 한 피해자들이 너무 민감하다거나 피해자들 탓도 있다, 남자도 성폭력을 겪는다 등으로 프레임을 흐리는 경우. 

 

***

 

지난 주에 워커스액션센터에서 두 달에 걸쳐 격주로 개최한 회원대상 교육프로그램을 마쳤다. 


첫째, 이 나라 노동자들의 저항의 역사와 워커스액션센터의 성장과 역사,  
둘째, 노동법과 인권 및 노동자가 작업장에서 자신을 지키기 위해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
셋째, 이 나라의 정부 체계 (연방-주정부-시정부)와 노동자의 권리를 지키고 향상하기 위해 각 정부를 상대로 어떻게 싸울 것인가, 
넷째, 작업장 재해와 이의 대처. 어떻게 우리의 커뮤니티를 다양성을 존중하는 커뮤니티로 만들 수 있을 것인가.

 
프로그램을 모두 공히 이수하였으니 이제 리더십트레이닝프로그램에 등록하면 된다. 한국어로 표현하면 ‘선진노동자를 위한 교육강좌’ 정도 되려나?

 

둘째, 넷째 세션을 경과하면서 주 정부에서 규정하여 정책으로 채택한 Ontario Human Rights Code를 자세히 배우게 됐다. 연방정부에서 채택하는 Human Rights Code가 따로 있고 각 주마다 Human Rights Code를 또 따로 채택한다. 내가 살고 있는 주정부에서 규정한 바에 따르면,


-    Race 인종
-    Colour 피부색
-    Ancestry 혈통
-    Place of origin 출신지역
-    Citizenship 국적; 이민법에 따른 체류신분
-    Ethnic origin 민족이나 전통을 드러내는 출신
-    Creed (religion) 종교
-    Receipt of social assistance (applies only to housing situation) 최저생계비 지원 등 사회보장혜택을 받는지 여부; 집을 구할 때 차별을 당하면 적용 
-    Sexual orientation 성적 정체성/지향 
-    Marital status 결혼유무 혹은 혼인상태를 드러내는 여부
-    Family status 가족 구성 형태, 가령 싱글맘, 싱글대디
-    Record of criminal offence (applies only to employment and you must have been pardoned) 형법상 범죄 기록,  일을 구할 때에만 적용되며 반드시 사면을 받아야 한다. 
-    Age  나이 
-    Disability 장애 
-    Sex (includes being pregnant, sexual harassment) 성. 임신여부에 따른 성차별, 성추행도 포함
-    Gender identity and gender expression  성별 정체성 및 이에 따른 표현   


위의 17가지를 이유로 어떤 사람이 기회를 박탈당하거나 핍박을 겪는 등 차별을 당하면 그 사람은 ‘보호받을’ 수 있다. 즉 Human Rights Committee에 제소하여 시정을 요구하고 민형사상 다툼을 통해 보상과 정정을 요구할 수 있다는 말이다. 이론상 그렇다. 피해를 당한 사람은 그것을 증명해야 한다. 가령 직장 상사 혹은 직장 동료가 A가 트렌스젠더라는 이유로 A를 직무에서 배제하거나 불링 (따돌림)을 조장하면 그 근거를 마련해 소를 제기한다. 메모, 이메일, 녹음, 손으로 휘갈겨 쓴 낙서, 농담 (증인),  페이스북... 모두 증거로 쓰일 수 있다. 

 

***

 

사달은 위의 Human Rights Code 과 함께 주로 진보적인 진영/사회서비스 영역에서 채택하는 Anti-Oppression Approach를 배울 때 시작됐다. 이 접근법에 따르면 남-여 젠더 구별에 따라 전통적인 성역할을 강요하고 상대편 성을 차별하거나 억누르는 것을 Sexism (성차별)으로 규정한다. 특히 이 성차별은 사회적으로 암묵적으로 조장, 강화되기 마련이다. 사실 여기까지는 누구나 다 알고 있는 부분이다. 가령 여성의 고위직 진출이 난망함을 비유하는 "유리천장 (glass ceiling)"은 엄연히 존재하는 사실이지만 이것을 헌법에서 보장하거나 사회적으로 바람직한 것으로 간주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존재한다. 

 

인종주의 Racism, 나이에 따른 차별 Age-ism 이 너무 억울하다는, 자기는 그것 때문에 여전히 비정규직을 전전하고 있다고 억울하다고 말씀하신 남미 출신의 아저씨 이민자께서 갑자기 성차별은 어쩔 수 없는 것이란 똥변을 쏟아놓으셨다. 예컨대, 건설노동자는 무거운 연장을 써야 하는데 근육질의 남성과 연약한 여성이 있을 때 고용인은 누굴 고용하겠느냐, 누구의 자격 (qualifications) 을 더 인정해줘야 하는 거냐, 며 똥변을 계속 쏟아부으셨다. 심지어 남성과 여성이 일하는 속도와 강도가 다른데 동일임금을 주면 안된다, 는 똥변도 쏟아져나왔다. 

정말이지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질문이다. 무식하다. 사실 이런 류의 질문은 답변할 가치조차 없다. 너는 차별을 받아도 싸, 계속 그렇게 살다 죽어, 그러니까 네가 아직도 비정규직에 최저임금을 벗어나지 못하는 거야, 성차별이 정상인 네가 태어난 나라로 도로 돌아가, 네가 떠드는 "자격 (qualifications)" 이란 말이 바로 너를 차별하는 말로 쓰인다는 걸 왜 모르니... 뭐 이런 억하심정이 없는 것도 아니지만 그렇게 떠들면 곤란하다. 참가자들의 얼굴표정이 미묘하게 바뀐다. 3일 밤 감기를 앓던 차라 이마가 지끈지끈. 

 

한국이나 이 나라나, 자기 자신을 너무너무 사랑하느라 자기 자신과 사랑에 빠진 사람들이 많다. 특히 아저씨들에게 - 씨스젠더 남성들에게 이런 경향이 많이 두드러진다. 나는 되고 남은 안된다는 심보다. 나는 존중받아 마땅하지만 남은 내 알 바 아니라는 심보다. 홍준표 저리가라. 

 

***

 

일반적인 Human Rights Code 를 토론할 때에는 별 이견이 없었다. 아무래도 정부에서 정한 것이다보니 그렇겠지. 그런데 Anti-Oppression Approach 로 넘어가면, 이견이나 말도 안되는 질문이 왕왕 있었다. 비단 워커스액션센터에서만의 문제는 아니다. 그렇다고 이견이 발생하는 이런 상황이 나쁜 것이냐, 물론 그것도 아니다. 만수산 드렁칡이 얽혀진들 어떠하겠는가. 

심화트레이닝도 아니고 직업상 능력을 계발하기 위한 자리도 아니고 보통 사람들이 모여 노동자의 권리를 향상하기 위한 관심사를 나누는 자리니 크게 문제될 것도 없지만 나는 어쩐지 피곤했다. 

내가 누굴 무식하다, 고 말할 처지도 아니고 그럴 형편도 아니지만 어쩐지 박근혜 같은 사람이 대통령이 되고 스티븐하퍼 같은 저질이 이끄는 보수당이 집권당이 되는 이유를 알 것 같아서 몹시 피곤했다. 

 

  

쓰다보니 수동공격성을 다시 찾아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 밤 정도에. 

2015/03/30 02:35 2015/03/30 0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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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마이티걸

분류없음 2015/03/25 03:46

얼마전에 SNS에서 알게 된 정말 괜찮은 페이지. A Mighty Girl. 

 

https://www.facebook.com/amightygirl/info?tab=page_info
http://www.amightygirl.com/

 

페이스북에 설명은 "어마이티걸은 소녀들을 똑똑하고 자신감넘치고 용감하게 키우려는 부모와 선생님들, 그리고 그들의 친구들을 위한 곳입니다. 이를 위해 세계 최대 규모의 책, 장난감, 영화 등을 제공합니다. A Mighty Girl is the world’s largest collection of books, toys, and movies for parents, teachers, and others dedicated to raising smart, confident, and courageous girls." 

 

 

A Mighty Girl FB 페이지에는 주로 전통적 성역할을 이겨내거나 이에 맞서는 여성들, 이들의 활약상을 소개하거나 다양한 문화적 백그라운드를 지닌 세계 곳곳의 여성들을 소개하여 여성으로 태어나고 자라는 소녀들에게 자신감을 북돋우는 포스팅들을 올린다. 때로는 아주 종종 성폭력을 근절하기 위해 아들과 딸을 어떻게 키울 것인지에 관한 내용들도 올린다. 이런 교육을 어렸을 때부터 받았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런 생각이 들지만 앞으로 우리 아이들 세대들만이라도 이런 교육을 받을 수 있다면 -- 나의 몸과 상대의 몸을 존중할 수 있는 교육을 받을 수 있다면 정말 좋겠다,는 바람을 품어본다. 비슷한 내용의 한글 자료가 이미 있는 것 같은데 주로 어린 소녀들을 대상으로 하는 자료들만 본 것 같다. 남자 아이들과 청소년 이상을 대상으로 하는 자료가 있는지 그것은 나도 잘 모르겠다. 

(물론 A Mighty Girl 는 물건을 사고 중계하고 파는 상업적인 곳이다. 따라서 자본주의의 한계를 갖고 있다며 비판한다면 그 비판은 그 자체로 유의미할 것이다.)

 

이 곳에서 지난 2월 말에 "건강한 성교육 이야기: "합의"가 뭐예욤? 1살부터 21살의 친구들을 위해Healthy Sex Talk: Teaching Kids Consent, Ages 1-21" 의 자료를 올렸다. 

https://www.facebook.com/amightygirl/posts/809498729086442:0

 

이것을 한글로 옮기면 좋겠는데 한글도 영어도 잘 못하고 있어 도무지 엄두가 안 난다. 할 수 있겠지. 할 수 있을 거야 아마도. --- 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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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is excellent article offers parents concrete advice on how to "raise empowered young adults who have empathy for others and a clear understanding of healthy consent." Although it may seem like a complicated concept, especially for younger kids, it’s much more accessible than you might think. In this thoughtful piece, four editors have compiled a list of ways to talk to kids, from age 1 to 21, about consent, appropriate touch, and empathy for others. Their hope is that “parents and educators find this list of action items and teaching tools helpful, and that together we can help create a generation of children who have less rape and sexual assault in their lives.”

 

For children age 1 to 5, they suggest simple things -- for example, “teach your kids that 'no' and 'stop' are important words and should be honored" and “allow children to talk about their body in any way they want, without shame.” For children age 5 to 12, they recommend “[encouraging] kids to watch each others’ facial expressions during play to be sure everyone’s happy and on the same page" and “[teaching] kids to look for opportunities to help." For teens and young adults, they maintain that "education about 'good touch/bad touch' remains crucial, particularly in middle school" and that it's important to teach them that “their feelings, desires and needs are no one’s responsibility but their own. They still need to practice kindness and respect for everyone around them.”

 

To read the full article, published on The Good Men Project, with all of the tips for each age group, visit http://bit.ly/1oHk4jz

 

There are also several excellent books that are helpful for talking to young children about body privacy and touch including “Your Body Belongs To You” for ages 3 to 7 (http://www.amightygirl.com/your-body-belongs-to-you), "Those Are MY Private Parts!" for ages 3 to 6 (http://www.amightygirl.com/those-are-my-private-parts) and “An Exceptional Child’s Guide to Touch,” which is especially geared toward children with special needs, for ages 3 to 7 or the equivalent developmental age (http://www.amightygirl.com/an-exceptional-children-s-guide-…).

 

For more resources for younger girls in preschool and early elementary school, check out the recommendations in our post ""Talking with Younger Girls about their Bodies," at http://www.amightygirl.com/blog/?p=2006

 

For our recommended books to help your tween or teen understand the changes she's experiencing both physically and emotionally during puberty and adolescence, visit our post on “Talking with Tweens and Teens About Their Bodies” at http://www.amightygirl.com/blog?p=2229

 

For two great parenting books that address teaching children about health and sexuality that offer tips for how to incorporate your family’s values about everything from dating to clothing choices to what constitutes a supportive relationship, check out "From Diapers to Dating" (http://www.amightygirl.com/from-diapers-to-dating) which covers infancy to age 12, and "Beyond the Big Talk" (http://www.amightygirl.com/beyond-the-big-talk), which addresses middle school, high school, and the early college years.

 

And, for parents of children with Down syndrome and other intellectual disabilities, this is a helpful resource on this topic: "Teaching Children With Down Syndrome About Their Bodies, Boundaries, And Sexuality" athttp://www.amightygirl.com/teaching-children-with-ds

 

 

 

 

2015/03/25 03:46 2015/03/25 0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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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수없는글

분류없음 2015/03/25 03:23

근래에 들어 나의 문해력-독해력이 현저히 떨어졌는지 도무지 알 수 없는 글을 하나 읽었다. 

 

http://newscham.net/news/view.php?board=news&nid=98858&page=3

 

오늘까지 네 번 읽었다.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이해하기 힘들다. 그러나 제목에도 나와 있으니 누구 읽으라고 쓴 글인지는 알겠다. 인터넷 언론 기사를 그것도 칼럼을 네 번이나 읽었는데도 나는 지금 이것을 해독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을 주제로 대화를 나눌 일이 없는 게 다행인지 불행인지. 다만 이해하지 못했다는 것, 나의 내용으로 받아들이지 못했다는 것이 갑갑할 따름이다. 관련기사를 더 읽으면 이해가 쉬우려나. 그러나 관련기사를 더 찾아읽어야만 독해가 가능한 글이라면 그것은 필자의 한계인가, 독자의 한계인가, 아니면 둘 다인가. 이도 저도 아니라면 누구 읽으라고 쓴 글이라는 그 용도가 명확한 글인 것 같다는 점에 만족해야 하는 건가. 

 

한글도 영어도 이도 저도 밥도 죽도 못하는 세월을 보내고 있다.  

 

(며칠 전 폰에 남긴 일기)

 

++++++++++++++++++++++++++++++++++++++++++

 

오늘까지 다섯 번 읽고 대충 읽어낸 꽃개 방식의 독해; 

 

- 금속노조가 뭔 잘못을 하기는 한 것 같다:

그런데 무슨 잘못을 했는지, 그게 왜 잘못인지 너무 복잡하다.  

- 사내하청이 불법파견 판결을 받았으므로 그간 일한 사내하청 노동자들을 정규직으로 고용해야 한다:

당연하다. 그런데 그것이 왜 현실에서 안되는지, 즉 대법원 판결이 왜 현실에서 이루어지지 않는지 이 글만으로는 알 수가 없다. 마치 모든 게 다 금속노조 탓인 것만 같다. 금속노조는 슈퍼맨이 아니지 않나. 노동조합 또한 자본운동의 산물이다. 

-  대법원의 전향적 판결:

대법원은 앞으로 사내하청을 쓸 때 합법적으로 쓰라고, 합법파견으로 쓰라고 정부/자본을 독려하는 취지로 그런 결정을 한 것 같다.  

- 금속노조는 '교섭권'이라는 산별 노조의 권리(이자 의무)를 방기하거나 호도한 듯:

산별노조 건설 역사를 돌이켜보건대 현행 산별노조가 기업노조의 틀을 부수지 못하는 반쪽짜리 산별노조인 것은 분명하다. 그리고 이것은 노조운동 그 자체 + 노조를 지원하는 외곽세력이 동시에 짊어져야 할 과제인 것 같다. 노동조합만 몰아세우는 건 노조주의의 또 다른 얼굴이 아닐까. 

- 금속노조 농성단: 

아주 잘 하고 계시는 일이다. 절차와 방법이라는 형식적민주주의가 통하지 않을 때 혹은 상대가 꿀먹고 잠잠할 때에 우리 민초가 쓸 수 있는 방법은 이것 뿐이다. 

- 금속노조와 사회진보연대의 공통점 어떤 '불문율':

이른바 대답않고 뭉개기-몽니 전술을 쓰는 모양이다. 금속노조는 그렇다치고 과거에 줄곧 노조주의로의 함몰과 몰입을 경계한 사회진보연대가 저런 모습을 보였다는 것은 전혀 놀랄 일이 아니다. 노동조합운동은 늪과 같아서 한쪽 발이 빠지면 나머지 발도 빠진다, 고 하셨던 어떤 분의 말씀 때문이지 사회진보연대 조직 자체가 태생적으로 노정하는 문제 때문은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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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포스팅은 추후에 가능하면 관련기사를 읽고 나의 독해가 틀렸다면 보완할 여지를 둔다. 

 

2015/03/25 03:23 2015/03/25 0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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