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잡한심경

분류없음 2015/07/15 12:02

 

*

엊그제는 다른 포스팅을 하려고 했는데....  얼마 전 한 사람이 경찰의 총에 맞아 즉사했다. 앤드류 로쿠, 마흔 다섯살, 다섯 아이의 아버지, 남수단에서 온 망명자, 젊었을 때 군인으로 강제복무하며 내전을 겪었고 이 경험과 기억으로 외상후스트레스장애 (PTSD) 를 진단받았다. 최근 컬리지에서 건설관련 학업을 마쳤고 고향에 있는 가족과 재조우할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앤드류는 공공지원을 받는 삼층짜리 아파트 빌딩 2층에 세들어 살았고 최근 3층에 사는 이웃들이 내는 소음 (층간소음으로 추측) 과 여러 다른 이유로 불면증을 호소했다. 사고가 발생한 날에도 앤드류는 소음 때문에 잠을 이루지 못했고 학업 및 작업용 연장 중 하나였던 해머를 든 채 3층에 올라가 이웃들에게 제발 잠 좀 자자, 하소연을 했지만 이웃이 부른 경찰은 바로 출동, 두어 번의 경고 끝에 앤드류에게 총을 쐈고 그는 바로 죽었다. 사고를 목격한 주민에 따르면 경찰이 출동 직후, 무기를 내려놓으라, 경고한 뒤 총을 발사하기까지 채 5분도 걸리지 않았다고 한다.

 

 

로컬 신문을 통해 앤드류를 봤을 때 어디선가 본 것 같은 사람인데, 하는 생각을 했다. 교회에서 만났었나, 아니면 자원활동을 하던 로컬 단체에서 만났었나, 기억이 가물가물했다. 알고보니 꽃개가 일하는 프로그램에서 클리너로 잠시 일했던 사람이다. 사고가 발생한 약 스무 개의 유닛을 둔 삼층짜리 건물도 꽃개를 고용한 회사에서 위탁운영하고 있다. 회사에서는 직원 전체 이메일을 보내 이 사건에 대해 언론이 인터뷰를 요청할 시 법을 저촉하지 않도록 주의하라는 것과 함께 장례식/앤드류의 가족을 위한 도네이션에 참여할 것을 독려했다.

 

 

프론트라인에서 일하면서 체득한 습관 때문인지 희생자 개인이 놓인 상황에 먼저 관심이 간다. 또 꽃개의 프로그램에서 함께 일하는 사람들, 앤드류가 살던 하우징 프로그램에서 일했던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며 희생자 및 이번 일로 트라우마를 겪거나 겪었을 사람들이 놓인 상황에 신경을 먼저 쓰게 된다. 전반적인 하우징 정책, 경찰의 과잉대응 (이번 건은 경찰에 의한 "살인"이다), 회사의 대응이 옳았는지 등등 아무래도 마이크로 레벨을 넘어서는 것에 관해선 그 다음에 생각하게 된다.

 

 

**

당장 지금은 여러 가지 많은 생각을 정리조차 할 수 없을만큼 혼란하고 복잡한 심경이다. 앤드류의 케이스메니저가 앤드류의 불면증과 층간소음 문제를 미리 알았다면, 스무 개가 넘는 유닛를 관리하던 관리인이 조금 더 적극적으로 갈등을 중재했더라면, 경찰이 조금 더 훈련받은 - 무기를 든 채 격앙된 사람을 대하는 스킬을 조금 더 잘 체득한 사람이었다면... 사람 개개인들을 하나하나 생각하는 것을 넘어 시스템에 대한 의아함과 그의 비판으로 나아가야 하는데 - 그것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그게 힘들다. 심리적으로 힘들다. 아마 나도 트라우마 비슷한 고통을 겪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것은 나만 안다. 내 스스로 정리하고 말하지 않으면 아무도 모른다. 시간이 필요하다.

 

 

***

경찰의 과잉대응으로 숨지거나 다친 사람들은 대부분 잘 살아보겠다고 조금 더 나은 인생을 일궈보겠다고 고향을 등진 사람들이거나 이 사회에서 주류가 아닌, 대접받지 못하는 사람들이 태반이다. 그리고 절대다수가 "흑인"이거나 "유색인종"이다.

 

한국에서는 어떤지 모르겠지만 경찰이 터무니없이 폭력적으로 대응하는 사람들 "피의자" 대부분은 여전히 노동자이거나, (비백인) 이주민이거나, 소득이 낮거나, 혹은 정신질환을 알게모르게 앓고 있는 사람들이 아닐까 조심스레 짐작해 본다. 공권력의 야만성 이면에 자리한 차별과 편견, 인권 유린의 본질에 대해 또 다시 생각해 볼 수밖에 없지만 뭐랄까 이번에는 더더욱 심경이 복잡하다.

 

 

****

앤드류의 명복을. 경찰의 학대와 폭력으로 명을 달리한 비백인 희생자들의 명복을.

2015/07/15 12:02 2015/07/15 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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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립두어개

분류없음 2015/07/13 03:41

 

우선 음... 탁족하는 강아지.

 

 

 

황동규 시인이 21세기에 쓴 시 하나.

 

탁족 (濯足)

 

황동규

 

휴대폰 안 터지는 곳이라면 그 어디나 살갑다

아주 적적한 곳

늦겨울 텅 빈 강원도 골짜기도 좋지만,

알맞게 사람 냄새 풍겨 조금 덜 슴슴한

부석사 뒤편 오전 (梧田) 약수 골짜기

벌써 초여름, 산들이 날이면 날마다 더 푸른옷 갈아입을 때

흔들어도 안터지는 휴대폰

주머니에 쑤셔 넣고 걷다 보면

면허증 신분증 카드 수첩 명함 휴대폰

그리고 잊어버린 교통범칙금 고지서까지

지겹게 지니고 다닌다는 생각!

 

시냇가에 앉아 구두와 양말을 벗고 바지를 걷는다

팔과 종아리에 이틀내 모기들이 수놓은

생물과 생물이 느닷없이 만나 생긴

화끈한 문신(文身) 들!

 

인간의 손이 쳐서

채 완성 못 본 문신도

그대로 새겨 있다

요만한 자국도 없이

인간이 제풀로 맺고 푼것이 어디 있는가?

 

 

 

그리고 다음은 볼보이 강아지들

 

 

 

 

마지막 것은 노래. 루시드 폴의 "외줄타기"

 

 


 

떨려오는 마음 안은 채로

저기 까마득한 지평선으로

한 발 한 발 걸어가다 보면

나도 부채처럼 가벼울 수 있을까

 

개미 한 마리 나를 질러

달려 나가네

 

바람 거세게 불어와도

자유롭게

가볍게

걸어가는 너

 

실 나는

함께 가고 싶어

 

너의 등에 업힌 채로

너의 손을 잡은 채로

저 아래 너른 들판

혹은 깊은 바다

울고 싶을 때 울 수 있는

그런 곳 말이야

 

 

2015/07/13 03:41 2015/07/13 0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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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러링인가

분류없음 2015/07/13 02:37

 

요리 중이던 한 클라이언트가 내게 물었다. Mr.로 불러야 해, Miss로 불러야 해.

꽃개의 타이틀을 묻는 건지 섹스 (Sex) 를 묻는 건지 젠더 (Gender) 를 묻는 건지 뭐라고 대답할까 2초 정도 고민했다. 하지만 "무슨 뜻이야?" 라고 되물었다.

 

 

"네가 Mr.인지 Miss인지 궁금하다고"

"응. 내가 선호하는 대명사는 she야. 그런데 너는?"

"..." 

"너는? 나는 답했잖아. 너도 알려줘야지"

"나는... 당연히, 보다시피, 남자야(ah... me... I'm... um, obviously... I'm male)"

"보이는 것만으로 우리가 어떻게 알 수 있니. 아무도 몰라 (we never know). 어쨌든 알려줘서 고마워"

 

 

책상에 앉아서 다른 일을 하는데 이 남자가 밥 먹을 때 쓰는 나이프를 들고 다가왔다. 2초 정도 또 식겁했지만 시선을 다른 데 주고 물었다. 

 

"안녕. 뭐 필요한 거 있어?"

"아까 네게 질문한 건 너를 불편하게 할 의사가 아니었어. 미안해 (my apologies, didn't mean to be offended) "

"전혀 불편하지 않았어. 괜찮아. 어리석은 질문이란 건 없어 (no stupid questions) "

 

 

상황을 요약하자면,  본인 스스로 남자라고 여기며 자신의 외모를 본 사람은 누구든 명백히 자기 자신을 남성으로 인지할 것이라 여기는 이 남자는 꽃개가 남성인지 여성인지 정말로 궁금했거나 그 질문을 계기로 꽃개를 희롱하고 싶었던 것 같다 (이런 희롱을 시도하는 사람들을 종종 봤다). 그런데 생각지도 못한 질문 - 그런데 너는 남자야, 여자야 - 을 받고보니 불쾌했나보다. 그리고 그 불쾌함 때문에 상대방도 불쾌했을 거라고 생각하고 사과한 것이다. 의도하진 않았지만 이게 요즘 메갈리안지 디씨인지에서 유행하는 미러링인가 싶다. 미러링 맞나? 

 

 

 

 

 

* 글로 옮기고보니 이상한 게 있다. 내 귀엔 그렇게 들렸는데 문법적으로 틀린 말. 아이 몰라. 수동태로 말하는 게 일상이라서 그런지 내 귀가 잘못된 건지. 다시 물어볼 수도 없고. 젠장.

2015/07/13 02:37 2015/07/13 0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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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병소고

분류없음 2015/07/13 01:39

 

한국에 있을 때 정신질환에 관한 공부를 한 것도 아니고 관련 분야에서 일을 한 것도 아니라 한국의 보건의료 분야에서 정신질환을 어떻게 다루는지, 당사자들-가족/친구들이 어떤 고통을 겪고 있는지, 사람들의 관심과 생각 (편견 포함) 은 어떤지 잘 알지 못한다. 다만 사람들이 "정신병자"를 운운할 때 그 단어가 쓰이는 컨텍스트를 헤아려보면 지독한 편견이 횡행하며 당사자를 얕잡고 하찮은 것으로 대상화하여 당사자 개인(들)의 문제로 치환하려는 것은 알 수 있겠다. 박귾혜 식으로 말하면 "개인의 일탈"이다.

 

우울증, 조현증, 경계성 인격장애, 소시오패스 등 우리 입과 귀에 익숙한 정신질환 명칭들은 모두 DSM (Diagnostic and Statistical Manual of Mental Disorders, 정신질환 진단 및 통계편람) 에 따른 것이다. 조선시대에 그런 명칭들이 이미 있었는지 그건 잘 모르겠다. 개인적인 경험에서 떠오르는 일로는 정신질환 (정신장애) 을 뭔가 신이 내린 일 내지 귀신이 작용하는 일 - 천형 - 로 여긴 "문화"다. 아주 어릴 때 이상한 행동을 일삼는 어른이 동네에 살았는데 어느날 동네가 떠나갈 정도의 큰 굿이 열렸다. 지금 생각으로는 '간질병'이 아니었을까 싶은데 그 어른의 병이 나았는지 기억엔 없고 무척 큰 규모의 굿이었다는 점, 굿을 한참 구경하고 떡을 먹은 기억 정도만 남아있다.  

 

이런 한국의 고전적인 샤머니즘 문화를 천박하다거나 무지몽매하여 형편없는 것으로 여기지 않는다. 나아가 정신질환을 잘 다룰 수 없다고 여기지도 않는다. 당사자의 장애가 당사자 자신에게서 온 것이 아니라 사람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외부의 힘이 작용한 것이라는 생각은 참으로 탁월한 접근이었다. 따라서 사람의 힘이 아닌 것을 빌어 그 치료 (treatments) 를 시도한 것은 진단과 처방이 한 박자로 맞아떨어지는 일이다. 아울러 굿판을 벌여 온 동네 사람들의 다친 마음을 아우르고 음식을 나누면서 서로를 격려하는 일도 오늘의 관점으로 본다면 전형적인 공동체적 치료 방식 (community treatment) 이다. 이런 접근과 관점은 비단 한국에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한 책을 보면 서구제국주의가 침략하기 이전 아프리카와 아시아 몇몇 나라에서는 "조현증 (정신분열증)" 이라는 병은 아예 존재조차 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서구 제국주의 + 미국/유럽 주도의 제약자본이 침투하면서 DSM에 따른 정신질환 카테고리가 세분화되었고 사람들이 겪는 마음의 상처/정신의 혼란이 서구식 이름을 얻었다. 북미나 남미, 호주, 뉴질랜드 등지에서 유러피안 백인들이 침략하기 전부터 살고 있었던 원주민들도 그들 나름의 독창적인 처방과 치료 방법을 갖고 있었다. 북미의 어떤 원주민 종족은 이상행동을 보이는 사람을 온갖 향료와 야생허브로 치료하면서 부족이 함께 모여 굿을 하고 당사자에게 사색할 시간을 주었다고 한다. 당사자는 며칠동안 혼자 혹은 사랑하는 사람 + 짐승과 함께 지내면서 공동체로 복귀할 준비를 한다. 그가 "건강하게" 돌아오면 온 공동체는 축제를 벌이고 그가 죽거나 "회복하지 못해도" 역시 공동체는 축제를 벌인다. 그의 문제는 (전적으로) 그의 잘못이 아니기 때문이다. (북미 원주민의 전통을 읽은 리퍼런스를 지금 찾을 수 없어 안타깝다.)  

 

얼마전 이런 글을 읽었다.

한국사회의 정신질환에 관한 보건의료계의 현황, 사회의 대응 등은 앞에서 말했듯이 잘 알지 못한다. 하지만 --  여전히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 (One Flew Over The Cuckoo's Nest, 1975)", "처음 만나는 자유 (Girl, Interrupted, 1999)" 등에서 투사하는 방식으로 정신질환을 대하는 것은 아닐까 심한 우려가 든다. 1968년을 경과하며 서구사회에서는 이미 폐기된 방식을 여전히 고수하면서 하지만 서구의료기준의 관점으로 정신장애에 접근한다면 오히려 이것은 "굿을 하는 것"보다 못할 수도 있다. 더 심각한 것은 우리 모두 "이윤/이문을 남기는 것"이 정상인 자본주의 사회에 살고 있다는 점이다.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의 세상에 살고 있는 것에 더해 더 좋고 품질이 뛰어난 약물을 있는데도 그것을 처방할 수도/받을 수도 없는 사회라면 답은 뻔하지 않나. 

 

 

덧 1.

"처음 만나는 자유"는 1999년-2000년 사이에 서울 시내 영화관에 걸렸다. 지금 기준으로 따지면 "이효리+수지" 급이었던 위노나 라이더와 이제 막 뜨기 시작한 안젤리라 졸리가 주조연을 맡았다는 것만으로도 대단한 입소문을 탔지만 막상 들여다본 영화는 뜨악하기 그지없었다. 게다가 "처음 만나는 자유"라니? 갸우뚱스러운 제목이지만 또 당시에 유행했던 모 통신회사 카피를 떠올리면 그닥 이상하지도 않다. 오히려 친근하다. 영화수입상과 마케터들의 솜씨가 좋았다고 말할 수밖에. 자, 그 광고를 보자. 한겨레신문 1999년 7월 15일자 12면 전면광고. 므흐ㅛ.

 

사용자 삽입 이미지

 

 

 

 

 

 

 

 

 

 

 

 

 

 

 

 

 

 

 

 

 

 

덧2.

위에서 언급한 두 영화는 모두 훌륭한 영화다. 개인적으로 그렇다. 첫째로 두 영화는 모두 언젠가 책에서 읽은 환자 (대안) 공동체를 떠올리게 했다. 눈으로 직접 본 것도 아니고 자료를 충분히 접한 것도 아니지만 존재한다면 당사자들의 저항과 권력이 저렇게 용솟음쳤으면 좋겠다, 하고 바란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두 영화 속에서 당사자들의 저항은 실패도 아니고 성공도 아니고 열린 결말로 끝난다. 물론 보기에 따라 "보기좋게 실패했다"고 말할 수도 있지만 적어도 꽃개 눈엔 그렇지 않았다는 거. 울림이 강했다. 둘째, "처음 만나는 자유"는 실화에 근거한 것이기도 하지만 (젊은) 여성들이 스스로 자신들의 힘으로 대안과 자아를 찾는 모습을 보여준다. (위노나 라이더와 안젤리나 졸리의 섹시하고 어여쁜 이상을 기대했던 뭇남성 플러스 어렸던 꽃개를 포함 일부 비남성 관객들에겐 멘붕을 초래했지만...) 두 영화 모두 꽃개에겐 인생의 영화다.   

 

 

 

2015/07/13 01:39 2015/07/13 0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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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이터진다

분류없음 2015/07/11 13:00

408일을 굴뚝에서 보낸 한 노동자가 땅에 닿자마자 경찰에 의해 구치소로 보내졌다. 스타케미컬 해고노동자 마흔 여섯 살 남성 차광호 // 사람은 땅에 발을 딛고 살아야 하는 동물이다. 날개도 없고 지느러미나 아가미도 없다. 날개가 있고 지느러미나 아가미가 있는 동물도 중력의 법칙을 거스르지는 못한다. // 차광호 씨가 굴뚝에서 내려오자 의료진은 협심증 소견을 내놓았지만 경찰은 이를 무시하고 이미 세워놓은 구속수사 방침을 집행하기 위해 구치소로 입감 조치했다. 경찰이 근거로 든 차 씨의 혐의는 업무방해죄와 건조물침입죄. // 408일을 중력에 맞서 산 사람이 땅으로 내려와 발을 딛었다. 그의 몸은 건강할까. 구치소 생활을 감당할 수 있을까. 경찰의 조사에 "성실히" 임할 수 있을까. // 경찰이든 누구든 제대로 된 상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408일을 허공에서 살다 내려온 이의 물리적, 정신적 건강을 먼저 따져야 한다. 그래야 제대로 심문하고 추후에라도 문제의 소지를 남기지 않는 분명한 조서와 그 결과를 내올 수 있지 않겠는다 말이다. // 차광호 씨는 분명 아프다. 그것은 분명하다. 강호동 할아버지가 와도 굴뚝에서 408일을 살면 당연히 몸과 마음이 아프다. 그게 사람이다. // 그 어떤 대역죄를 졌든 일단 사람을 제대로 고쳐놓고 그 뒤에 따져물을 걸 물어라. 그래야 결과도 확실하다. // 사람 몸을, 사람 정신을 사람 것이 아닌 것처럼 다루는 일에 환장하겠다. 한국내 관련법은 없는 건가, 찾아볼 기운도 없을만큼 속이 터진다. // 차광호 씨에게 변호인단이 있다면 차 씨와 변호인단은 이 일을 나중에라도 분명히 짚고 따졌으면 싶다. 이것은 학대다.

2015/07/11 13:00 2015/07/11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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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세범이란

분류없음 2015/07/01 14:13

설마 나 혼자는 아니겠지. '세범'이란 글자를 한국에 있을 때 본 것 같기는 하다. 언니들이 쓰던 화장품에 있었던 듯. 화장실에서 'SEBUM CONTROL'이라고 쓰인 작은 화장품 발견. 작년에 한국에 들른 짝이 가져온 것. 어라. 영어로도 세범? 이게 설마 영단어일 거라곤 미처 몰랐다. 네이버에 한글로 '세범'을 치니까 '노세범' 자동완성. 오호 사람 이름인가. 혹시 화장품 발명가? 클릭해서 읽어보고 기절할 뻔. 영어 단어였어. "씨이븸" 비슷하게 읽는. 뜻은 '피지'. 젠장. 노세범, 사람 이름 아닙니다.

2015/07/01 14:13 2015/07/01 1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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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환1집

분류없음 2015/07/01 03:46

 

추억의 이승환 1집을 R이 알려주어 다시 듣게 됨.

 

 

1989년에 나온 이이의 노래는 당시 획기적인 히트를 쳤는데 소방차나 박남정, 김완선처럼 퍼진 것은 아니고 라디오 유저들을 통해 알음알음 널리널리 퍼져나갔다. 당시에 나는 다른 친구들처럼 이문세의 별밤을 듣진 않았고 이종환의 디스크쇼를 들었던 것 같다. 별밤은 솔직히 말해 한 번도 청취하지 않았는데 이유는 이문세 때문이었다. (아 유치해)

 

 

당시에 같이 어울리던 몇몇 친구들 가운데 밤에만 만나는 녀석들이 있었다. 둘 혹은 서넛이 만나 시민회관 같은 곳 마당에 있는 풀섶에 들어가 음주가무를 일삼다가 흥이 나면 자전거를 타고 도시를 휘젓고 다녔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그 자전거가 어디서 났는지 모르겠다. 아마 길에 있는 아무 자전거나 탔던 것 같아. 죄송합니다. ) 그 녀석들 가운데 한 친구가 이승환 1집을 들어보라고 했는데 자전거를 타고 돌아다니며 그 음악들을 주구장창 들었던 것 같은 기억이 있다. 당시 나에겐 마이마이 같은 휴대용 카세트테입재생기가 없었으니까 아마도 그 친구가 빌려줬겠지. 아아아 그 친구는 지금쯤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 덧

 

자전거를 타고 도시를 종횡무진 날아다니며 주체할 수 없는 에너지를 발산한 것 같기는 함. 종종 도시의 경계를 넘어 옆 도시들로 원정을 다니기도 했다. 오토바이였으면 딱 폭주족이겠구나. 어흐.

 

2015/07/01 03:46 2015/07/01 0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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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지한기록

분류없음 2015/06/28 15:50

하나님은 모든 기도를 다 들어주시지는 않는다. 오늘 근무를 하는 동안 마음이 몹시 평안해졌다, 면 거짓말이고 그냥 내 마음을 관찰했다. 미국의 동성결혼 대법 판결이 "반대"로 나오기를 애타게 기도하셨다는, 새벽기도를 하며 울부짖었는데도 정반대의 결정이 나와 몹시 절망적이라는 어떤 한국인의 이야기를 가만히 들어드렸다. 이민온 지 십 년이 넘은 이 분의 이야기를 들으며 예전 같으면 분노에 치를 떨었을텐데 이상하게도 담담했다. 사실 미연방 대법원 판결은 그저 "대세"일 따름이다. 극렬히 반대하는 이성애자들의 삶에는 아무 변화가 없을 것이다. 지금까지 살아온 것처럼 그들의 주님 안에서 행복하게 살아가면 될 일이다. 다만 어느 누군가 어떤 이들은 약간의 혹은 큰 행복을 누릴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할 행복, 물론 이혼도 포함해서. 달라질 건 그 뿐이다. 이제 결혼 (이혼) 하고 싶은 사람들은 그들의 성정체성과 무관하게 누리고 싶은 그 권리를 누리면 될 일이다. 그런 의미에서 "대세"라는 거다. 나는 왜 그들이 타인의 행복할 권리를 애타게 눈물 뿌려가며 기도하며 반대하는지 진실로 궁금하다. 어떤 이익도, 혜택도 돌아오지 않는데 그들은 그들의 소중한 시간과 열정과 에너지를 쏟아 그 훼방전선에 앞장선다. 기이하다. 보수도 대가도 없이 열정을 불사르는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해방정신이다. 나같은 사람이야 결혼제도에 그닥 관심이 없어 뜨뜬미지근했지만 정말로 정말로 관심이 많았다면, 만약에 정말로 그것을 바랐다면 그들처럼 애타게 울부짖으며 성령이 오셔서 역사하기를 무릎이 까지도록 기도할 수 있었을까. 그러한 열정과 바람과 애타는 사모를 나는 과연 품을 수 있었을까. 글쎄 잘 모르겠다. 하지만 하나님은 모든 기도를 들어주시지는 않는다. 그것은 확실하다. * 이것은 어떤 비아냥도 깝침도 아닌 진지한 관찰의 기록이다. *

2015/06/28 15:50 2015/06/28 1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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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무김치외

분류없음 2015/06/26 12:33

열무

 

 

며칠 전 지하조직이 열무김치 만들고 열무국수 해 먹은 것 보고 단단히 필을 받아 열무열무 노래를 불렀다. 소면을 말아 국수를 해 먹으면 정말 맛있겠구나. 꿈도 꾸고 헛것을 보고 (아무래도 이런 것이 향수병인가봐) 계속 네이버 검색을 하다가 안되겠다 싶어 로컬올가닉 상점에 들렀다. 유럽열무라도 사서 대신하면 될 테니까. 한 묶음에 $2.99 인데 세 개가 달렸다. 세 개라고 해봤자 작고 말랐다. 이쪽 사람들은 주로 빨갛고 동그란 뿌리 부분을 먹어서 그럴까 잎사귀 부분이 영 시원치 않지만 뭐 어쩔 수 없지. 그거라도. 네 묶음을 샀고 유럽 배 하나와 사과 하나를 사서 집에 왔다.

 

 

소금에 삼십 분만 절였다가 배, 사과, 마늘, 생강을 갈아넣고 피시소스로 간을 하여 우선 샐러드를 만들었다. 양파 약간, 파 약간을 넣고 마지막으로 들기름으로 향을 냈다. 아주 맛있었다. 나머지로는 밀가루 죽을 조금 쑤어 물김치를 만들었다. 재료를 사와서 손질하는 것만 내가 하고 나머지는 짝이 다 했다. 짝의 요리솜씨는 아주 그만이다. 짝짝짝.

 

 

오늘은 열무 국수를 먹었는데 소면 대신 카펠리니 파스타로 먹었다. 밀면 느낌이 나는 쫄깃스러움. 그리고 아무래도 허연 일반 밀가루보다 세몰리니 드럼 밀이 몸에 좋을 것 같다는 느낌. 한국 음식을 구하기 어려웠던 선배 이주자들이 아마도 이런 식으로 해 잡숫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을 잠깐 했다.

 

 

중학교 친구

 

 

중학교 친구와 다시 연결되었다. 반갑고 쑥스럽고 뭔가 몰캉몰캉 따뜻한 기운이 솟아오른다. 20년도 넘었다. 다시 "접속"하게 된 것이. 친구는 고등학교 뒤로 만난 기억이 없는 모양인데 둘이 대학생이던 시절 한 번 만난 적이 있다. 마지막으로 만났을 때 나는 말수가 줄었고 친구는 말수가 늘었다. 보기 좋았다. 이 블로그를 통해 나를 찾았다고 했는데 흠흠... 한국도 아닌 서로 다른 대륙에 살고 있어 만날 일이 있을까 싶기도 하지만 또 만날 수 있다는 그런 점잖은 희망을 가지고 살아가면 된다. 페이스북에서 친구를 찾아보니 어떤 똑닮은 "소녀"가 나와 얼씨구나 들어가봤는데 그 친구가 아니었다. 친구신청 안하길 잘했지 경칠 뻔. 나 늙은 것만 생각하고 친구 늙은 건 생각못한 꽃개는 바보. 

 

 

프라이드 주간

 

 

프라이드 주간이 시작됐다. 도시는 들썩들썩. 작년에 새로 임기를 시작한 시장님께서 드디어 프라이드에 납시겠다고 하셨다. 흥칫뿡. 하지만 좋다. 이 도시를 대변하는 사람이 프라이드 행사에 참여한다는 것은 좋은 일이다. 긍정적인 일이다. 그리고 당연한 일이었다. 보수당 색을 완연히 드러내었던 이전 시장이 프라이드 행사를 기피했던 바 따라서 그 당연한 일이 뭔가 특별한 일이 되어버렸을 뿐이다. 시계를 거꾸로 돌리는 보수는 당연한 무언가를 특별한 무언가로 만들어 버리는 데 일가견이 있다. 재주가 있다. 어쩌면 리버럴의 생명원천일는지도.

 

 

매드맥스

 

 

처음에 아이맥스 3D로 두번째엔 레귤러 3D로 보았다. 두번째 영화를 보러 가면서 영화를 본 뒤 만약 레귤러 2D-세번째 관람 욕구가 일어나면 이 영화는 내 인생의 영화가 될 것이다, 그런 생각을 했는데 세번을 볼 영화는 아니었지 싶다. 더구나 일반 3D는 영 아니었다. 단 한 번도 일반 3D 영화를 보고나서 잘 봤다, 고 느낀 영화가 없다. 따라서 이것은 매드맥스 탓이 아니다.

 

 

더 인터프리터 (The Interpreter, 2005) 

 

 

시드니 폴락 감독, 니콜 키드만과 숀 펜이 나온 더 인터프리터를 봤다. 처음엔 숀 펜 때문에 보게 되었는데 결국엔 니콜 키드만 때문에 끝까지 봤다. 그녀의 영어 억양이 독특했다.

 

 

동의와 존중

 

상대방이 동의했다고 여겼어요, 우리는 서로 합의했다고 생각했어요... "합의 하에 이룬 성적 행위 혹은 관계" 라는 표현이 매우 윤색되어 쓰인다. 제대로 쓰고 있지 못하다는 말이다. "제대로 이루는 합의"가 무엇인지 설득하기 곤란하다고들 한다. 어떻게 해야 잘 이해할 수 있을까. 나 스스로도 깜깜하던 차에 접한 카툰 -- What If We Treated All Consent Like Society Treats Sexual Consent?

 

사용자 삽입 이미지

 

 

 

 

 

 

 

 

2015/06/26 12:33 2015/06/26 1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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씁쓸하지만

분류없음 2015/06/22 14:14

주말 아침. 아파트 앞마당에 장터가 열렸다. 이른바 거롸지 혹은 야드 세일. 평소에 친하게 지내는 8층 필리피노 아저씨가 인사. 그런데 갑자기 한국에 다녀왔냐고 묻는다. 순간 왜 이걸 묻지, 싶었지만 "아니" 대답. 마지막으로 한국 방문한 게 언제냐고 묻는다. 뭐야 이건 웬 호구 조사. 대답하고 난 뒤 알았다. 메르스. 조사(?)가 끝나니 그제서야 잘 지내냐고 짝꿍은 잘 있냐고 물으시네. 악수도 했어. ... 씁쓸하지만 웃지요. 나도 서울에서 태어났는데 동향 출신 낙타의 심정이 이런 거였을까. ///// 부디 모두들 강녕하시기를.

2015/06/22 14:14 2015/06/22 1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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