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또보자

분류없음 2015/09/30 0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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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 언니가 하늘나라로 갔다. 일요일 밤 근무 중에 언니 소셜미디어에 들어갔다. 한 사람이 부고를 남겨놨다. 믿을 수 없었다. 직장에선 한글도 쓸 수 없고 셀폰도 쓸 수 없어 발을 동동 굴렀다. 정말일까, 정말일 수도 있겠다.

 

2010년 한국에 들렀을 때 언니를 만났다. 나는 그 때 만신창이가 되어 있었다. 최소한 3년은 걸릴 일을 시작할 참이었기에 인사를 겸해 고향에 들렀을 때 가족들 반응은 매우 좋지 않았다. 어찌나 절박했는지 심지어 그들은 신발을 숨기기도 했다. 진력을 다해 회유했다. 알고 있다. 모두 "나를 위해서" 그랬다는 것을. 나의 파트너는 나의 가족에게 인사조차 하지 못했다. 가족들이 거부했으니까. 파트너에게 미안했다. 가족에게 부정당한 뒤로 - 가족과 이런 일을 겪은 뒤로 심리적 공황 상태에서 어느 누구도 만날 수 없었다. 그 때 만난 사람이 언니였다. 여느 때 같았으면 이런저런 욕도 하고 그랬을텐데 그 때는 그냥 내 얘기를 들어줬고 건강하라고 했다. 헤어지는 길에 대낮에 홍대 길거리에서 엉엉 울었다. 갑자기 준비없이 인생의 어느 국면이 진지하게 변해버렸다. 울다가 웃다가 손을 흔들고 길을 건너서 돌아보니 거기에서 언니가 계속 울고 있었다. 이것이 마지막일 줄은 그 때는 몰랐다.

 

출국 전 열이 40도까지 올랐다. 의사는 비행기를 타지 말라고 했는데 죽더라도 고향 땅에선 안 죽는다, 는 각오로 비행기에 올랐다. 열 몇 시간을 계속 물만 먹고 내리 잠만 잤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이 나라에 닿자마자 열이 내리고 통증이 씻은 듯이 가라앉았다. 그 뒤로 5년이 흘렀다. 사이사이 언니가 보내준 북어채로 국물을 만들어 수제비도 끓여먹고 언니가 보내준 책을 읽다가 펑펑 울기도 하다가 혈육들 생각이 나서 더 울다가 그랬다. 언니는 결혼을 했다고 했는데 - 심지어 나는 잘 살라고 했던 것 같기도 한데, 그 그림이 잘 그려지지 않았다. 그래서 아직도 나에게 언니는 비혼으로 남아 있다. 기억이 다 조각조각나서 뿔뿔이 흩어졌다가 모였다가 다시 흩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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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는 사진을 참 잘 찍었다. 초창기에는 사람의 표정을 담는 언니의 사진을 좋아했다. 사진 잘 찍는 요령이 뭐요 했더니 그냥 막 닥치는대로 많이 찍어, 라고 했던 언니 때문에 뭐야 이 사람 했던 적도 있지만 초창기의 언니 사진이 담아냈던 상황 속의 사람들 표정을 보고 대리위안이랄까 뭐 그런 느낌을 종종 받았다. 아직도 기억하는 가장 좋은 사진은 간만에 집에 놀러간 언니가 언니 엄마를 찍은 연작. 무표정 엄마, 웃는 엄마, 뭐라고 말씀하시는 엄마 (아마도 그만 찍어, 였을 것 같다)... 그 사진은 나에게 찍사와 피찍사의 관계 (relationships), 그리고 그의 결과로서 사진이라는 게 뭔지 그런 것을 심각하게 생각하도록 해줬다. 너 왜 나 이렇게 못 생기게 찍었어, 사진은 거짓말을 안 해. 사진을 두고 벌이는 이런 사소한 신경전도 관계의 연장이다. 며칠 전 길거리에서 파트너의 사진을 찍었는데 파트너가 너무너무 예쁘게 나왔다. (사실 언제나 예쁘게 나온다) 아, 너무 이뻐요 했더니 파트너께서 비슷한 이야기를 하셨던 기억이 난다. 언니도 나처럼 예민한 구석이 잔뜩한 사람이라 아는 사람, 좋아하는 사람, 그냥 그런 사람, 잘 모르는 사람, 그리고 각각의 상황들 --- 피사체들에 어떤 감성을 투사하는지 그게 다 고스란히 나타난다. 시쳇말로 '젠 체'를 못하는 거다. 상업적 찍사로는 영 아니네, 했더니 그것도 상황에 다르지 피식, 응사했던 언니. 그러면서도 언니는 언니가 가끔 찍었던 상업적 사진, 혹은 감정을 담을 수 없었거나 담기지 않은 사진을 보여줄 땐 다소간에 어색해했다. 하지만 그런 작품들도 그 나름대로 참 좋았다.

 

시간이 지나 노랗게 은행잎이 물든 가로수 - 정수라의 노랫가사대로 "가로수 잎들이 계절을 말해주는 거리" - 하늘, 나무 따위의 피사체 그대로 볼라치면 관계를 가늠하는 데 한참 걸리는 사진들이 늘었다. 언니와 물리적으로 소통하는 일이 줄었으니 뭐라 말하기엔 조심스러웠지만 아, 언니가 뭔가 끈 같은 걸 놓았나보다, 서로 서로 있는 그대로 자연스럽게 살아보자, 언니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구나. 혼자 궁상스럽지만 그런 추측을 했다.

 

 

*

언니는 글도 담백하게 잘 썼다. 비문을 잡아내는 안목도 탁월했는데 나는 컨텐츠에 집중했던 반면 언니는 문장 자체에 많이 집중하는 편이었다. 글 전체를 다듬어야 한다면 글에 담긴 문장 하나하나를 글 그 자체의 재료로 대하는 자세가 아무래도 나완 틀렸던 거다. 서로 훈련받은, 자라온 배경이 다른 탓이기도 하겠지만 아마도 눈과 마음이 편안한 글쓰기를 언니는 선호했던 것 같다. 평범한 상식을 지닌 사람들이 읽고 이해할 수 있는 글을 쓰는 게 가장 어렵다. 이런 면에서 언니는 운동권끼리 쓰는 자족적인 현학적인 글쓰기 같은 것은 멀리하는 편이었던 것 같은데 그건 언니가 그런 글들을 싫어하거나 좋아했다기보다 그런 글쓰기를 하는 사람들도 있고 다른 사람들도 있고 등등의 그런 경계를 스스로 받아들였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짐작해본다. 무엇보다 언니는 언니가 직접 보고 느낀 것을 글로 썼다. 감성과 느낌이 묵직하지도 않으면서 글고랑 사이에 뚝뚝 있는 그런 글 말이다. 자신을 글에 억지로 드러내거나 허세와 허영이 묻어나는 일이 없는 담백함, 그게 언니가 쓰는 글의 장점이었다. 맑은 생태지리탕 같은 맛이라고 할까. 마지막으로 받았던 손편지에는 생략이 많았다. 언니가 뭔가를 상당히 절제하고 있다는 느낌과 함께 아무래도 물리적 거리 탓인지 그리웠다. 꽃개의 마음 속 그리움. 꽃개가 마지막으로 전한 카드에도 그런 생략과 절제가 많았는데 카드를 부치고 우체국에서 돌아나오며 후회를 했다. 맥락없이 주절거렸네. 아, 씨, 괜히 그랬나. 그런데 이제 올해에는 그런 크리스마스 카드마저도 부칠 수가 없다.   

 

 

*

어제 퇴근길. 일터에서 나오자마자 부고를 전한 어떤 이에게 메세징을 했다.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을 그런 식으로 컨택하는 일엔 큰 용기가 필요하다. 그리고 얼마 뒤 제3자를 통해 연락처를 받았는데 뜨아 했다. 어 이건 어떻게 된 거지. 나의 깨어진 기억의 조각들을, 그 편린들을 짜맞추어야 했다. 시간이 정말 많이 흘렀구나. 그 사이에 정신을 수습하고 같은 대륙에 사는 한 친구, 그 친구를 통해 한국에 있는 한 친구와 연락이 닿았다. 오버나이트 근무를 하면 날짜개념이 엉키는데다가 한국 로컬 시간으로 계산해야 하니 언니의 발인이 언제인지 그걸 따지고 있는 내가 참 한심했다. 하루 종일 멍 때리며 웃다가 울다가 오락가락 하다가 밤이 되어 간신히 진정을 하고 파트너와 이렇게저렇게 디브리핑을 하고 나니 그나마 정신이 든다. 파트너와 함께 찍은 사진에 언니가 둘이 닮았다, 고 했던 일이 떠올라 더 눈물이 났다. 6월에 한국에 들를 수 있을 것 같아 연락을 했는데 그 계획을 취소할 수밖에 없었던 사정은 미처 전하지 못했다. 단디하고 건강하라는 말, 그게 언니가 남긴 마지막 메세지였다.

 

 

*

외할머니가 이슬이를 좋아하셨으면 좋겠어요. 뜬금없는 꽃개의 말에 파트너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던 적이 있다. 외할머니도 돌아가셔서 하늘나라에 있고 이슬이도 무지개다리를 건너갔으니까 둘 다 하늘나라에서 만났을 거 아니에요. 외할머니는 강아지를 집 안에서 키우는 건 싫어하셨지만 그래도 거기에선 좋아하셨으면 좋겠어요. 아니면 그냥 마당에 두셔도 상관없고, 그래도 밤엔 실내로 들이셨으면 좋겠다, 이슬이는 당연히 외할머니를 좋아할 거예요.

 

이슬이는 아마도 언니를 무척 좋아할 것 같다. 외할머니도 언니를 무척 좋아할 것 같다. 언니가 이슬이와 외할머니에게 내 안부를 간단하게나마 전해줬으면 싶고 그 곳에서 고통 없이 즐겁고 행복하게 맛있는 것도 많이 먹고 여기저기 다니면서 사진도 많이 찍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함께 나눈 마지막 대화처럼 다시 만날 때까지 단디하고 있어야겠다.

 

언니 안녕

 

 

2015/09/30 03:41 2015/09/30 0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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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수리걱정

분류없음 2015/09/15 00:27

 

트윈스-독수리가 겨룬 시즌 양팀 간 15-16차전 경기 (9월 8일-9일) 는 트윈스 팬으로선 해피했지만 "야구인"으로선 절대로 해피하지 않은 경기였다. 독수리 때문.

 

김성큰 감독님은 독수리와 3년-20억 계약을 맺으셨다. 올해만 독수리 감독할 게 아니란 말씀. 그런데 요즘 하는 꼬락서니를 보니 아마도 이면계약이 있지 않나 싶다. 가령 올해 결과에 따라 연봉을 지급한다든가, 계약기간을 보장한다든가. 그것도 아니라면 김감독님 정말... 노망 드셨나.

 

권혁은 정현욱을 능가하는 노예가 되어버렸다. 권혁은 선발이나 롱릴리프 감이 아니다. 삼성에서 그를 불펜 보직으로 둔 건 다 이유가 있었다. 그가 최고로 많이 던진 해는 2009년, 80과 ⅔이닝이다. 하지만 올해 현재 106과 ⅓이닝을 던졌고 9월 전에 이미 100이닝을 넘게 던졌다. 선발이 아닌 구원이 이렇게 많은 공을 던지는 경우도 흔한 일이 아니고 (선발도 아닌데) 던지면 던질수록 피안타율이 올라가는 투수를 이렇게 자주 보는 것도 흔한 일이 아니다. 봉황대기 야구대회도 아니고 이건 좀 심하지 않나. 지못미 권혁.

 

어디 권혁 뿐이랴. 박정진, 윤규진, 송창식, 김민우... 아기 때부터 키워온 토종 독수리들 날개 뿌러지는 소리가 벌써부터 들린다.

 

9월 8일 경기에선 권혁을 투입한 시점이나 상황으로 보아 할 말이 없기는 하다. 카드가 없었다는 것에 동의한다. 하지만 9월 9일 송창식 상황은 정말이지 두 눈 뜨고 볼 수조차 없다. 김감독님 전매특허, 위장선발이라고 치자. 그게 속편하다.

 

부상으로 일찌감치 1군을 떠난 윤규진의 처지가 오히려 낫지 싶다. 김민우는 투구폼이나 던지는 구질 상 잔신경을 두루두루 써줘야 하는 어린이인데 이런 식으로 굴리다니 이거 원 쌍팔년도 돌고래나 돌격대 야구도 아니고...

 

박정진은 할 말이 아예 없다. 얼굴이 그렇게 생겨서 그렇지 이 양반 불혹인데 아무리 감독 입장에서 다 "아이들" 같다고 해도 이건 정말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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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세 박정진 (2011년). 뿌잉뿌잉. 출처_나무위키

 

 

한화 이글스의 내년 야구, 걱정이다. 부디 남은 시즌 잘 이겨내고 마무리 훈련도 잘 해내길 빈다.

2015/09/15 00:27 2015/09/15 0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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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레포비아

분류없음 2015/09/14 09:04

 

예전에 없었던 무서움? 공포? 바로 집안에서 발견되는 벌레. 야외에서 돌아다니는 벌레는 상관없다. 야외는 그들의 활동무대이고 그들 삶의 배경이니까 그냥 그러려니, 그렇구나 할 뿐이다. 그러나 이들이 집안에 들어와서, 그러니까 꽃개가 사는 공간에 들어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꽃개는 자지러진다. 패닉킹. 주로 꽃개의 파트너가 벌레를 처리하신다. 꽃개는 캬우치, 의자 위에 재빨리 올라가거나 "왜 쟤가 우리집에 들어왔어!?" 소리를 지른다. 요즘엔 많이 나아져서 파리채 같은 것으로 스매싱을 해 기절시키는 지경까지 발전했다. 하지만 손으로 잡거나 죽이는 일은 절대 하지 못한다. 아주 작은 초파리 같은 것, 수박을 좋아하는 초파리 정도는 박수를 쳐서 잡을 때도 있긴 한데 실패하는 확률이 더 높고 손바닥이 많이 아프다.  

 

일터에서도 가끔 이름모를 집벌레들이 나타난다. 꽃개는 폭력적으로 돌변하는 클라이언트나 심지어 죽은 사람을 봐도 무덤덤한 편이다. 그러나 벌레는? 건물 안에 벌레가 등장하면 또 이야기가 달라진다. 얼마 전에 사무실에 벌레가 나타났다. 행정담당 직원이 꽃개에게 벌레를 죽여달라고 했다. 죽이라니? 벌레를? 내가? 다른 동료에게 벌레를 처치해달라고 take care of that guy please 부탁했다. 죽이지 말고 밖으로 내보내라고 걔네 집으로 가게 해 달라고 부탁했다 don't kill, just grab and let him go out 하지만 그이는 그 벌레를 콱 죽여버렸다. 

 

행정담당 직원은 너 벌레를 싫어하니? 라고 물었다. 당연하지. 누가 벌레를 좋아하겠니? 라고 물었다. 의외라는 표정을 짓는 직원에게 실내에 있는 벌레는 나의 약한고리라고 말해줬더니 더 의아해한다. 

 

나는 아마도 뭔가 나만의 로직으로 벌레에 대한 더블스탠다드를 갖고 있는 것 같다. 특히 실내에 있는 벌레에 대해 과민반응을 보이는 것으로 보아 "실내엔 벌레가 살면 안된다"는 명제를 고수하는 것 같은데 그 이유를 이제 샅샅이 찾아 공포를 극복해야겠다는 결심을 한다. 벌레가 나타날 때마다 같이 사는 짝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일이 미안하기도 하고 부끄럽기도 하고 좀... 민망하다. 

 

http://www.helpguide.org/articles/anxiety/phobias-and-fears.htm

 

 

2015/09/14 09:04 2015/09/14 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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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포르노

분류없음 2015/09/09 09:51

제목: 진짜사나이 여군특집3

 

 

대국민 새디즘 포르노그라피 예능, 진짜사나이 여군편. 욕하면서 보는 임작가님 드라마 예능 버전.  
 
이번 편이 벌써 세번째이고 그간 거쳐간 배우들만 해도 거진 스물이 넘는다. 그 중엔 좋아라하는 엠버도 있고 몇몇은 아예 얼굴도 이름도 몰랐었다. "저 친구 누구예요?" "연예인인가?"  
 
짝꿍은 이걸 봐야 해 말아야 해, 엄청 망설이신 끝에 살며시 물어보신다. 보고 싶어요? (네!) 
 
국방의 의무가 국민의 의무 가운데 하나인 한반도에서나 흥할 수 있는 아이템. 아마도 비한국에서 이런 소재로 예능을 찍었다면 (곧이곧대로 찍었다간) 파일럿조차 공중파를 타긴 힘들었을 것 같다. 우선 재미가 없고 둘째론 공중파치곤 너무 위험하다.  
 
지상최대의 주적, 미군도 설설 기는 북괴를 막기 위해 존재하는 한국 "군"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일은 거참 곤란하다. 군대 얘기를 꺼낼 수 있으려면 우선 군필이거나 아니면 군예산을 주무를 수 있는 정도는 돼야 자격이 있다. 예외는 있다. 화자의 자격유무에 상관없이 무조건 군의 존재와 의미에 대해 "칭송"하면 된다. "나라를 지키는 군인아저찌" 같은 개념으로다 말이다. 그냥 이 정도만 되면 아무도 암말 안한다. 좌도 우도 남과 여도 노도 소도 여도 야도 없다.  
 
남자연예인들 (남자민간인들) 이 나와서 줄줄이 좌로 가, 에 우왕좌왕하거나 화생방 훈련에서 온갖 분비물을 노골적으로 쏟는 건 미안하지만 - 솔직히 말해- 재미가 없다. 안됐네, 정도면 모를까. 사디즘적 포르노그라피의 요소가 단연 반감된단 말씀. 게다가 남자라면 군대에 다 가잖아! (정치인들, 친일파 자손들, 고급행정관료들, 재벌들 아드님들 빼고. 아, 유승준도 빼고) 모두 다 겪는 평범한 포르노그라피를 누가 좋아한담?! 
 
걸그룹 멤버들, 아이 둘셋 둔 유부녀 여배우들, 철근이라도 씹을 것 같은 개그우먼이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이에 더해 한국의 군대문화는커녕 한국말도 시원찮은 교포2세 연예인까지 더한다면? 이런이런 찹쌀떡 같으니라규!

 

진짜사나이 여군특집을 보며 너무 위험하다는 생각을 했던 건 이 프로그램이 주는 가학성과 그 가학성을 안방에서 즐기는 국민적 문화가 너무너무 징글징글하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렇게 폭력에 시나브로 길들여지고 결국에는 아무렇지도 않게 폭력을 즐기거나 쓰게 된다. 네가 나를 때리는지 내가 너를 때리는지 우린 서로 아무도 모른다. 그냥 서로 때린다. 그리고 얼싸안고 눈물흘린다. 이런 사디즘-마조히즘 포르노그라피, 이토록 잔인무도한 내용을 일요일 오후 한낮에 온국민 모두 다함께 시청할 수 있다니... 끔찍하다.

 

모든 포르노그라피는 반드시 소비자의 재량으로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 제한하자는 말로 받아들이면 곤란하다. 컨텐츠에 대한 안내가 필요하다는 말이다. "진짜사나이 여군특집을 보다가 토할 수도 있으니 시청자의 재량이 필요합니다." 공중파는 아예 그게 불가능한가? 아니면 군에 대한 모독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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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9/09 09:51 2015/09/09 0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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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인훔치기

분류없음 2015/09/04 09:36

 

트윈스가 죽을 쑤는 동안 실로 재미난 일이 벌어졌다. 타이거즈와 이글스가 맞붙은 9월 2일 청주구장. 시즌 양팀 간 14차전 경기. 사실 패넌트레이스 1위-4위는 거의 굳어졌고 올해 처음 도입한 와일드카드 때문에 5위 싸움이 더욱 재미진 것은 사실. 주지하다시피 런기태님의 타이거즈가 올라갈 것인지, 마리화나 이글스가 올라갈 것인지 흥미진진 관전 포인트. 개인적인 바람이야 이글스가 올라가서 더욱 더 재미난 포스트시즌을 이끌었으면 하지만 타이거즈가 올라가는 것도 그닥 나쁘지 않다. 결국 팔짱끼고 구경? 

 

 

4회말 2사, 두 점 차이로 타이거즈가 이기고 있는 상황. 투수는 토종좌완 양현종, 타석은 이제 이용규 순서. 순간 런기태 감독님께서 덕아웃으로 구심을 불러들임. 상황도 상황이지만 런감독님 표정이 압권. 증말 순진한 표정을 지으시긴. 대단해. 왜 하필이면 이용규 타석 바로 앞에서? 

 

 

 

 

요약하면, 덕아웃에 설치한 세 대의 스크린 가운데 하나가 조이스틱-카메라로 연결되어 구장 곳곳을 살펴볼 수 있다는 것. 해석하면, 조이스틱을 이용해 투수-포수-2루의 센터라인은 물론 1루 타격코치 - 3루 주루코치 등을 통해 상대팀의 사인 (signs) 을 훔칠 수 있다는 것. 런기태 감독님은 이런 게 있는지 몰랐다고.

 

한국야구위원회 (KBO) 규정에 "상대팀의 사인을 훔치면 안된다"는 규정은 사실 없다. 하지만 다른 규정을 적용해 사인을 훔치는 것이 명명백백할 경우 제재를 가할 수 있기는 하다. 

 

사인훔치기는 경기의 한 맥락이다. 수많은 전략과 전술 가운데 하나라는 거다. 어떤 분이 일찍이 말씀하셨듯이 사인훔치기를 당하는 팀이 바보다. 그만큼 어리숙한 전술을 써서 상대팀에게 간파당한 것이니 그것은 당한 팀의 감독이 책임져야 할 문제다. 그러면 사인을 훔치는 팀은 잘한 거냐? 전혀 그렇지 않다. 알아서 잘하란 말이다. 들키지 않게. 아주 세련되게 누구도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잘 하란 말이다. 가령 2루에 나간 주자가 포수의 사인과 투수의 투구동작이나 쿠세를 보고 사인을 알아차려 1루 혹은 3루 코치에게 전달하고 타석에 선 타자가 투수의 구질을 알아내어 대처한다면 -- 그리고 이 과정을 상대팀은물론 중계석, 관중석 그 누구도 간파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정말로 훌륭한 일이다. 

 

 

그런데 생각해보자. 히트앤런 같은 간단한 작전이나 번트같은 기본적인 보수적 플레이도 해내지 못하는 선수들이 2루까지 갔다한들 상대팀 배터리의 사인을 알아내어 1루 혹은 3루 코치에게 전달하고 또 이들이 다시 타자에게 전달하고 코치는 덕아웃에 다시 보고해서 덕아웃에서 작전을 수령하여 타격과 동시에 진행하는 별도의 타격/주루작전을 진행한다? 뭔가 이상하지 않나? 동시에 왜 그토록 김성큰 감독님이 선수들을 들들 볶는지, 야구는 감독이 하는 거라고 주장하는지 아주 잘 납득이 가지 않나? 아니라고? 나는 아주 잘 납득이 가는데? 한편 2루까지 간 선수들이 이런 사인을 훔쳐내지 못하니까 별도로 알아낼 방법을 쓰는 것은 아닐까? 가령 운동장 곳곳을 비추는 감시카메라나 관중석에 들어앉은 제3의 인물이 망원경으로 포수 사인을 살펴보고 텍스트메세지를 보낸다든지. 듣자하니 언젠부턴가 덕아웃에서는 어떤 디지털디바이스도 쓰지 못하게 한다는데 왜 쓰지 못하게 했을까?  

 

 

꽃개는 김성큰 감독님이 지시해서 청주구장에 요상한 물건을 설치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김성큰 감독님이 계신 한화구단의 세컨홈구장에 운동장 곳곳을 비추는 카메라가 설치되었고 그 카메라를 덕아웃에서 조이스틱으로 조종할 수 있었다는 그 팩트만 인정할 뿐이다. 그리고 시즌이 끝나가는 지금까지 어웨이팀은 그 사실을 몰랐고. 하필이면 그랬다는 거다. 그 뿐이다. 

 

사인훔치기는 사인을 잘 짜내고 작전을 잘 운용하는 고도로 훈련된 팀, 아니면 야구의 신 같은 사람이 감독으로 있지 않는 한 할 수도 없고 해봤자 아무 의미가 없다. 머리만 아플 뿐이다. 왜 얀이 도망갔겠는가? 

 

덧: 메이저리그의 "경기장을 이용한 사인훔치기"를 아주 잘 정리하신 어느 블로거의 훌륭한 글모음을 볼 수 있다. http://bravesblog.co.kr/220321756870

 

 

2015/09/04 09:36 2015/09/04 0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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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읽는책

분류없음 2015/09/01 08:05

 

요즘 출퇴근길에 읽고 있는 책. 컬리지에서 몇 개 과목을 들은 게 전부인지라 메디컬 접근에 관해선 여전히 잘 모른다. 그리고 의학적-진단에 입각한 접근보다는 다른 접근, 그러니까 정치사회적, 계급적 접근을 하고 싶은 까닭에 더더욱 메디컬 모델에 관해선 등한시했던 것 같다.

 

그러다가 9월 중순부터 졸업한 학교에서 시작하는 저녁 수업 하나를 들으려고 마음을 먹었다. 원래는 6월에 신청하려고 했는데 이 나라를 떠나야 할지 말아야 할지 결정하지 못한 탓에 -- 사실은 나의 우유부단한 결정장애 탓에 -- 또 다시 이번 가을로 밀렸다. 여전히 갈등하고 있는지라 9월 16일 수업을 시작하는 날 꽃개가 참석하면 끝까지 가는 것이고 참석하지 않으면 또 다시 다음 번으로 미루거나 아니면 영영 시작하지 못하는 것으로 될 것이다.

 

그 수업에서 저 책을 다룬다.

정신질환 진단에 관한 것은 나의 몫은 아니지만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사람들과 함께 하는 것이 나의 일인만큼, 즉 사람의 인생에 관한 것인만큼 신중해야 한다. 꽃개는 의학적-과학적 호기심과 호승심에 편승해 일하는 의사도, 과학자도 아니다. (모든 의사들과 과학자들이 그렇다는 말이 절대 아니므니다) 환자를 연구의 대상으로만 여기는 연구자도 아니다. 꽃개는 꽃개도 앓고 있을지 모를, 혹은 나중에라도 명백히 앓게 될지 모를 정신질환을 갖고 살아가는 현재의 사람들 (꽃개) 을 만나는 일을 하는 만큼 신중하고 또 신중해야 한다. 타인의 관한 일이지만 결국엔 나에 관한 일이기 때문이다.

 

저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호기심이 일어 그것을 차단하고 거듭 필터링하는 일이 오히려 힘에 부친다. 아직 준비가 덜 된 꽃개에게는 별로 좋은 책은 아닌 것 같다.

 

2015/09/01 08:05 2015/09/01 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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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안시지탄

분류없음 2015/08/25 10:34

제목: 만시지탄 (晩時之歎)

 

어제 밤에 페이스북 구경하다가 데굴데굴 구르며 한껏 웃어버렸던 어떤 포스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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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회해봤자 소용없어. 흘러간 과거는 되돌릴 수 없으니까. 정신 차리고 앞으로 잘 살 궁리를 해. 경험에서 배우라고. 나중에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말고." 어번딕셔너리의 정의.

 

 

 

 

 

 

 

 

뽀나스: 올해 트윈픽스 다시 나온다는 말이 소올 솔~

 

2015/08/25 10:34 2015/08/25 1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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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페어카페

분류없음 2015/08/23 13:46

 

오늘 낮에 친구들과 리페어카페에 다녀왔다. 재작년 8월부터 자원활동을 했는데 몇 달동안 주말 근무로 참여하지 못하다가 이번 달에 스케쥴이 바뀌어 큰 맘 먹고 들렀다. 여유가 있었으면 자원활동가로 참여할 수 있었겠지만 오늘은 그냥 비지터로 갔다. 간만에 갔는데도 기억해주는 사람들이 있어 고마웠고 웃으며 인사할 수 있는 사람들이 있어 고마웠다. 

 

일터에 버려져있던 LCD 모니터 마더보드-파워는 결국 고치지 못했다. 16v, 1000uf 짜리 캐퍼시터 세 개만 있으면 고칠 수 있는데 그걸 구하는 게 힘들다. 개당 일 달러도 하지 않는데... 지멘스 것 두 개와 파나소닉 것 하나를 구하긴 했는데 리페어카페에서 자원활동하는 은퇴한 전문가들이 호환에 자신이 없다며 권하지 않는다. 결국 이 모니터는 버려질 것이다. 아니 퓨즈, 다이오드 따위의 부품들은 멀쩡하니까 해체해서 써도 되겠지... 납땜 (soldering, 싸더링) 을 해야 하고 노동을 엄청 들여다 하는데 그에 비해 얻는 게 너무 빈약하다. 아마 그래서 컴퓨터 관련 부품들이 마구 생산되고 마구 쓰이고 마구 버려지는 모양이다.

 

꽃개의 회사는 정신건강+형사범죄 관련 사회복지서비스를 제공하는 데라 납땜 용품 따위가 있을 리 없다. 만약 수퍼바이저에게 캐퍼시터 세 개와 싸더링 물건을 구입해 달라고 하면 사줄까? 책임지고 모니터를 고칠테니 사달라규~~~ 수퍼바이저에게 잘만 이야기하면 사줄 것 같기는 한데 연장, 부품 비용 + 꽃개의 인건비보다 모니터 값이 훨씬 싸구나. 경제논리. 젠장.

 

사더링 연장도 사고 싶고, 이것 저것 사고 싶은 게 많다. 그리고 공간이 있었으면 좋겠는데 언감생심이다. 일 년에 두어 번 가끔씩 카페에 들르는 것으로 만족해야지 싶다.

 

 

한국에 있을 때엔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 혹은 마음 속으로만 품었던 일들을 하나둘 경험하는 것은 경이롭다. 때론 하고 싶은 일들의 구체에 이르지 못하는 현실에 좌절할 때도 있지만 조금씩이나마 그 구체에 다가서는 순간들에 오히려 감사할 때가 더 많다. 나이가 들어서 그러는 걸까?

 

 

 

2015/08/23 13:46 2015/08/23 1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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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잡한마음

분류없음 2015/08/13 10:26

 

일하는 곳에서 리퍼럴 정책이 업데이트된 지 2개월이 넘었는데 리퍼럴을 보내는 사람들 가운데 여전히 몇몇은 옛날 방식을 고집한다. 전화로 설명하면 자기는 몰랐단다. 당연하지. 몰랐으니까 그랬겠지. 이 정도는 괜찮다. 몰랐다고 말하고 그럼 어떻게 해야 하는데, 라고 물으면 서로 대화하면 되니까. 

 

 

새 정책이 프론트라인 워커들에게 더 편리한 방향으로 업데이트되어 다들 좋아한다. 꽃개도 좋아한다. 가령 리퍼럴 전화를 받고 전화로 프리스크리닝을 하고 어세스먼트 약속을 잡고 직접 어세스먼트를 하고 인테이크를 한다. 시간과 여건만 허락하면 전과정을 한 사람의 워커가 담당할 수 있으니 보다 긴밀한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 

 

 

어디에나 빈 지점은 있다. 이것은 시스템의 문제이지 인간 개개인의 문제라고 하기는 다소 힘들다. 어제 어떤 사람 (A) 이 전화를 해서 새로운 정책을 심각하게 어기는 방향으로 자신의 일을 처리해달라고 했다. 꽃개는 새로운 정책을 줄줄줄 떠들면서 그럴 순 없다고 했다. 그랬더니 대번 디렉터와 얘기하면 해결해 줄거냐고 하더라. 디렉터든 매니저든 니가 얘기하는 거니까 그건 니가 알아서 해 (that's up to you) 라고 말하는데 마치 개그콘서트에 나오는 그 경비아저씨 "그건 난 모르겠고" 가 되어버린 것 같아서 - 꽉 막힌 아저씨 - 모골이 송연했다.

내 보스를 바꿔달란다. 그 양반 지금 없어 내일 아침 아홉 시에 전화해. 라고 했더니 꽃개와 꽃개 보스의 이름을 묻는다. 이름을 알려주고 전화를 끊었다. 오늘 오전에 그 사람 (A) 이 다시 두어 번 전화를 했는데 꽃개의 동료가 잘 달래서 끊었다.

점심 무렵 꽃개 회사의 본사에서 일하는 어떤 매니저 (B) 가 전화를 해서 꽃개의 보스를 찾았다. 내선을 돌려 바꿔줬다. 잠시 뒤 꽃개의 보스가 쪽지를 한 장 들고 와서는 이 일을 처리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방법을 찾아보자고 했다. 방법을 잠정적으로 찾아 보고했더니 그럼 그렇게 하자고 했다.

 

 

일이 어떻게 된 것이냐하면, A 는 어제 나와 전화를 끊고 방법을 찾았다. 익일에 조금 더 파워가 센 워커랑 얘기를 해보면 되겠지 싶었는데 꽃개의 동료도 꽃개처럼 응대했다. 결국 A 는 자신의 파워를 이용해 B 에게 청탁을 넣었고 B 는 동료/같은 매니저 급인 꽃개의 보스를 찾았던 거다. 물론 과정에 교정시설 + 공공 하우징 서비스 + 정신건강 서비스가 얽혀서 A 가 원하는대로 결정하는 것이 A의 클라이언트를 위해 최상의 일이겠지만 그러나 꽃개처럼 원칙을 따지는 워커는 그 원칙을 바꿔서 적용해야 하고 무엇보다 꽃개가 서비스하는 클라이언트들이 손해를 볼 수도 있다. (꽃개가 입밖으로만 떠들지 않으면 사실 아무도 모를 일이긴 하다 -- 잠깐, 누가 이걸 영어로 구글에 돌려서 읽거나 그럴 일은 없겠지. 이 대나무숲마저?) 하지만 무엇보다 꽃개의 보스가 결정한 일이니 책임도 그 사람이 지는만큼 꽃개는 여기서 보스의 결정을 따르면 될 일이다. 결정권자는 보스다. 책임권자도 보스다. 꽃개는 사실상 아무 책임이 없다. 일견 간단해 보인다. 

 

 

그런데 A, B, 꽃개의 보스, A의 클라이언트 모두 백인이다. 꽃개의 클라이언트는 흑인이다. 결과가 그렇다는 것이다. 과정에서 누구도 그것을 염두에 둔 사람은 없었다. 심지어 꽃개도 그런 생각은 못했고 다만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그런 생각이 들어서 속이 불편했다. 우연일 뿐이다. 그런데 정말 우연일 뿐일까?

옛말에 "여자팔자 뒤웅박"이라는 말이 있다. 어떤 남자를 만나 시집가냐에 따라 인생이 달라진다는 말이었는데 지금은 잘 쓰지 않는 말이긴 하다. 갑자기 클라이언트들의 운명이 옛말의 "여자"들과 진배없다는 생각이 들어 착잡했다. 

 

 

 

 

2015/08/13 10:26 2015/08/13 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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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시티비티

분류없음 2015/08/10 0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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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스북에서 본 어떤 포스팅 . 한국에서 영어 선생으로 일하는 케이트라는 북미대륙 출신 여성이 친구와 함께 지하철을 타고 가다가 봉변을 당한 이야기. 용케도 스마트폰으로 촬영했다. 포스팅에 영상클립이 있어서 그것도 봤는데 아연실색. 등산 지팡이 같은 것으로 면전에서 사람을 위협하며 "Go back to your country!" 라고 고함을 지른다. 명백한 폭행 (Assualt) 이다. 이 클립이 있는 한 저 양반은 곧 입건될 수 있겠다, 싶지만 잘 모르겠다. 아직은.

 

포스팅 제목엔 저 아저씨를 일컬어 인종차별주의자 (Racist) 라고 했는데 이게 인종차별인지는 잘 모르겠고 -- 큰 범주에서는 그렇게 말할 수도 있겠다 싶지만 -- 외국인혐오 (제노포비아, xenophobia) 는 분명한 것 같다. 아울러 피해자들이 (외관상) "여성 (female)" 이었으니 여성혐오 (misogyny + sexism) 도 섞여있겠다, 싶다. 아닌 말로 덩치큰 남자외국인 둘이 키득거렸다면 저 아저씨가 아무리 용감한 사람이라도 저런 식으로는 하지 못했겠지.

 

이 아저씨께서 약주를 하셨는지 - 막걸리 따위 - 그것은 중요하지 않지만 만약 취중 (under the influence) 이었다면 가중처벌을 받겠구나, 라고 짐작할 수 있지만 그것도 아직은 잘 모르겠다.

 

페이스북에 덧글을 단 일부 한국인들은 한국인으로서 부끄럽다고 하는데 나는 전혀 그런 생각이 안든다. 그럴 이유가 전혀 없다. 부끄럽다기보다는 아닌 밤중에 홍두깨 식으로 봉변을 당한 여성들이 안됐다. 그리고 저런 종자는 반드시 처벌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

이것은 좀 다른 맥락이지만 저 클립을 보고 "폭력"에 관한 민감성 (sensitivity) 에 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됐다. 내가 만약 한국사회에서 계속 살았다면, 혹은 캐나다에서 살고 있더라도 인권과 폭력에 관한 교육/공부를 하지 않았다면 -- 저런 상황을 보고 어떤 생각을 했을까. 뭐 저런 개저씨가 있어, X신이 따로 없네... 분노는 했겠지만 "당연한 입건" 감이라는 결론에까지 이를 수 있었을까. 경찰력과 같은 행정권력/사회의 개입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결론지을 수 있었을까. 피해자들이 원한다면 전문가와 함께 debriefing 을 하고 상처를 보듬어야 한다는 그런 생각을 할 수 있었을까. 혹시 피해자들이 비한국인이어서 이런 민감성이 되살아난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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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밤에 사로잡힌 어떤 일의 기억 때문에 잠을 잘 이루지 못했다. 꿈 속에서 좌충우돌하다가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구글 창에 "who can report suspected child abuse" 를 검색했다. 사실 학교에서 배운 대로면 검색할 필요가 없다. 답이 뻔하기 때문이다. "누구든" 할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은 어른의 책무이기도 하다. 다만 어린이가 학대받고 있거나 보호가 필요하다는 "납득할만한 근거 (reasonable grounds)" 가 있어야 한다. 그리고 이 "납득할만한 근거" 는 "평균적인 사람이 정직하고 평범한 판단을 내리는" 것을 말한다. 참 모호하다. 가령 "어린이가 따귀를 두 대" 맞았을 경우처럼 구체적인 가이드라인이 없다. 보통 사람의 정직하고 평균적인 판단을 요구한다.

 

보통 사람의 정직하고 평균적인 판단이란 무엇일까. 한국 (이나 여타 몇몇 나라) 에서는 매우 정상적이거나 혹은 정상참작이 가능한 어떤 행동들이 한국이 아닌 다른 나라에서는 비정상이거나 행정권력이 개입해 중재해야 하는 상황이 되기도 한다. 각각의 사회적 맥락이 다른 탓이다.

 

*

보다 엄밀한 하지만 예리한 민감성이 필요한 대목이다. "누구든 타인을 (그 타인의 권리에 반해) 해하면 안된다" 이 명제를 기억하고 실천한다는 것은 어렵다. 그리고 어떤 사회에 어느 땅에 발딛고 사는지에 따라 이 명제는 그를 수도 옳을 수도 있다. 무엇보다 어떠한 한 상황을 이성적이고 합리적으로 해석할 수 있는 혜안이 필요하다. 심장 (감성) 이 먼저 반응하는 일에 머리 (이성) 는 어떻게 심장에 공명할 것인가. 어떻게 명실이 상부하도록 살 수 있을까.

 

 

 

 

2015/08/10 01:48 2015/08/10 0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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