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관전중

분류없음 2016/04/05 23:39

총선관전중 2

 

 

작년 초쯤인가, 캐나다 총선을 몇 달 앞둔 어느날, ATM에서 돈을 찾았는데 이상한 지폐 한 장이 들어있었다. 엘리자베스 할머니 얼굴이 있긴 있는데 지금은 유통하지 않는 아주 오래된 지폐. 박물관에서 본 것 같은 그런 지폐였다. 사진을 찍어놨어야 했는데... 쩝. 바로 은행 창구에 가져가 이게 뭐냐. 혹시 위조지폐 아니냐. 물었다. 오래 전에 쓰던 지폐이고, 더 이상 유통하지 않지만 가치는 같다고 했다. 음모이론을 적용한다면 --- 어 어 이거 봐라. 선거 앞두고 쟁여놓은 돈을 풀었네. 

 

 

옛날에 전두환 아들이 출판사를 차리면서 출판유통업까지 마수를 확장했다. 언젠가 도시전설처럼 돌았던 이야기 가운데 하나. 전두환 아들이 사장으로 있던 출판유통회사 직원들이 명절 보너스를 현금으로 받았는데 만 원 지폐 구권, 그러니까 그 때 기준으로는 더 이상 시중에 존재하지 않던 구권이 보너스 봉투에 잔뜩 들어있었다는.

 

 

이명박이 대통령을 하던 시절에 오만 원 지폐가 세상에 처음 나왔다. 그 이전엔 만 원짜리로 사과박스에 가득 담으면 2억 원이 들어갔는데 이제 오만 원짜리로 넣으면 10억 원까지 담을 수 있다. 빼빼로 과자 박스에 오만 원짜리를 넣으면 5백 5십만 원까지 들어간단다. 괜히 완구오빠가 비타오백을 사랑한 게 아니었다. 이 포터블한 오만 원 권의 현재 회수율은 28%. 10장 가운데 7장은 어디엔가 숨어있다는 말이다. 어디에 숨어있을까. 알아보면야 알 수 있겠지만 - 그러니까 잘은 모르겠지만, 확실한 건 이번 총선엔 많이 풀리지 않았을 거라는 거. 많이 숨겨놓은 사람(들)이 풀 수 있을만한 상황이 아직은 아니라는 말? "양적완화" 를 울부짖는 새누리당 사람들이 생각나는 건 우연인가.

 

2016/04/05 23:39 2016/04/05 2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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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려치기란

분류없음 2016/03/31 00:44
 

 

세종대왕께서 한글을 만들었을 땐 나름대로 목적이 있었을 것이다. 두 가지 정도 유추할 수 있는 목적은 첫째, 왕권강화 (신권/사대부 권한 약화) 둘째, 본인의 재미. 

일단 사람들이 글을 쓸 줄 알고 어떤 글이든 그 내용을 읽게 되면 (정보를 획득하게 되면) 그게 대체 뭔지 분석하게 된다. 그리고 결국 그 이치, 세상의 이치를 깨닫게 된다. 농사를 짓는 사람들이 - 세금을 내는 사람들이 사대부의 노예로 살지 않고 독립적으로 기능하게 되면 그만큼 세금도 많이 걷을 수 있고 상대적으로 사대부의 권한은 축소된다. 이런 면에서 보면 한글창제는 세종이 비사대부계급과 연대한 정치행위로 된다. 그래서 세상의 이치를 깨달은 이들이 왕권에 도전하면? 그 때엔 사대부계급과 연대하면 된다. 정치는 그때그때 달라요. 이것을 간파한 최만리 등의 사대부들은 강력하게 저항한다. 그 유명한 여섯 가지 조목의 상소문을 내걸고 싸운다. 하지만 상소문의 내용을 보면 임금아 너그 권력 키울라고 너 그거 지금 만든거지, 따위의 내용은 없다. 지금 시점에서 보면 황당하기 그지없는 "명분" 투성이다. 정치는 명분이니까.

둘째 이유는 본인의 재미를 위해서. 세종은 알려졌다시피 엄청난 학구파로 특히 언어학+음성학에 비상했다. 어쨌든 한글을 만든 세종에게 엄청 감사. 이 쉬운 알파벳을 발명하신 점에 감사할 따름. 그런데 한편으론 의미가 담긴 한자 (표어?문자, logogram) 를 쓰면 더 낫지 않나, 그런 생각을 문득문득 하는 것도 사실이다. 간혹 중국인들과 필담을 나눌 때 그런 생각이 스친다.   

 

 

 

일찍이 최만리 같은 우리 조상님들께서 일찍이 간파했던 것처럼 일무리의 사람들을 통제-착취, 후려치는 효과적인 수단으로 정보를 차단하는 방법이 있다.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지 못하게 만들면 된다. 한반도에서는 옛날부터 반상제도 같은 계급을 둬서 이른바 양반계급이 정보를 독점하는 명분을 설명했다. 계급제도가 형식적으로 철폐된 뒤에도 이 흐름은 변하지 않았는데 가장 가까운 예로 여자아이를 낳으면 국민학교 공부만 시키거나 아예 학교에 들여보내지 않았던 것을 떠올릴 수 있다. 반면 공부를 하지 못한 그 딸들은 대처로 나가서 오빠나 남동생, 집안의 아들들이 고등학교나 대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돈을 벌었다. 먼 일이 아니다. 1970년대, 1980년대까지 이런 일이 흔했다. 또 다른 예로는 여성들에게 성 (Sex; Sexuality) 에 관한 정보를 주지 않는 것이다. 그런데 이건 좀 다른 게 - 이불 속에 들어가 딸딸이를 칠 수도 있고 또래들끼리 모여 정보를 교환할 수도 있으니까 공부의 기회를 차단하는 것처럼 대놓고 말릴 수가 없었다. 그래서인지 여성에 성에 관해서는 아예 이들이 애초부터 알 수 없도록 했다. 담론을 조성했다. "여성의 성욕은 없고, (따라서 오르가즘도 없다) 밝히면 나쁜 년이다. 시집가면 알게 된다" 여성들이 아예 아무 것도 모르니까 통제하기가 편했다. 시키는대로 잘 움직였다. 후려치기도 쉬웠다. 예전에 어머니께서 꽃개에게 "철들기 전에 (시집을) 보내버렸어야 했는데" 라고 말씀하신 적이 있다. 철이 들면 후려치기 어렵다는 걸 그 때 깨달았다.   

 

 

 

남아시아 어느 나라에서 이민온 한 여성 클라이언트. 십년 전에 이민와서 초등학교 저학년부터 고등학교까지 이 나라에서 공부했다. 그런데 학교다니는 시간 외에는 철저하게 아버지가 통제하는 삶을 살았다. 친구가 없다. 중고등학교를 이 나라에서 다닌 것에 비해 말하기 (영어) 를 잘하지 못한다. 라마단 기간에는 집안을 대표해 혼자 단식을 했다. 얼굴도/나이도 모르는 같은 나라 출신의 어떤 남자와 정략 결혼을 앞두고 있다. 오빠에게 성폭행을 당했다. 스물 세살인데 영양에 문제가 있었는지 아직 중학생으로 보인다. 어찌어찌하여 구출되다시피 해서 꽃개가 일하는 곳으로 왔다. 갑자기 정보가 쏟아져들어오니까 감당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인다. 인간으로서 여성으로서 권리, 이 나라 시민으로서 권리, 그리고 동시에 타인을 존중해야 할 의무... 은행 계좌를 만드는 방법 (과거에는 아버지가 만든 계좌로 생활보조금이 다 들어갔고 당연히 아버지가 그 돈을 집행했다) 필요한 물건을 사기 위해서 지출 계획을 세워야 하는 방법... 다 모른다. 나이는 스물 셋인데 하는 짓은 열 살도 채 안 되어 보인다. 자기자존감이 당연히 낮다. 안타깝다. 동시에 왜 이 클라이언트가 이렇게 세상을 모를까, 바로 답이 나온다. 아버지의 통제 아래에서 살면서 정보를 전혀 공급받지 못했다.

 

 

 

몇년 전에 어카운팅 펌에서 잠깐 일했을 때 일이다. 한국을 포함해 한국보다 더 강력한 가부장제 나라에서 온 고객들이 연말정산 자료를 가지고 왔다. 대개 남편들이 아내의 자료까지 들고 온다. 아내가 서명해야 할 곳에 이미 서명을 다 받아가지고 왔다. 아니면 아내에게 연락을 취해야 해서 전화번호를 달라고 하면 자기한테 (남편한테) 얘기하라고 강력히 요구한다. 심지어 아내가 받아야 할 세금혜택 크레딧을 자기 앞으로 이전하는 일도 있다. 본인 동의가 필요한데요, 제 아내는 제가 하라는대로 합니다. 그냥 진행하세요. 동의서명이 필요하다니까요. 자, 제가 해드리죠. 크레딧은 평생 쌓아서 자기가 필요할 때 쓰면 되는데 이렇게 되면 (남편이 아내의 동의없이 아내의 크레딧을 도둑질하면) 나중에 이혼했을 때 문제가 될 수 있다. 아내의 이권까지 대놓고 갈취하는 남편의 뇌 속에 "이혼"이라는 단어가 들어있을 리는 만무하다. 그리고 많은 아내들이 이런 세상의 이치를 모른다. 이치를 모르고 정보를 모르니 자기 자신이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 그것도 모른다. 그리고 그들이 모르니까 착취하기 편한 거다. 그리고 그게 그 커뮤니티의 "주류적 흐름" 이다. 이슬람이나 후진국 사람들이나 그러지 설마 한국인도 그럴라구? 천만에. 그런 한국인이 여기엔 지천이다. (한국 본토에서는 어떤지 잘 모르겠다)    

 

 

 

우리 여성들은 이 점 하나를 꼭 기억해야 한다. 새로운 무언가를 배우려고 할 때 가로막고 나서는 사람을 조심해야 한다. 이거 정말 배우고 싶어, 라고 했을 때 "니가 할 수 있겠어?" 라든지 "지금은 때가 아니야!" 라든지 심지어 "시집이나 가" 혹은 이미 시집간 경우 "밥이나 줘" 라고 말하는 사람이 옆에 있다면 당장 관계를 끊어야 한다. 그 사람은 나를 지금 후려치고 있는 거다. 자기자존감을 앙양하려는 나를 깍아내리고 있는 거다. 그래야 밥을 계속 차려 줄 테니까. 

혹은 뭐 새로운 게 궁금해서 그게 뭐야, 라고 물었는데 "넌 알 거 없어" 혹은 "배고파 밥 줘" 라고 답하면 그 사람과 당장 관계를 끊어야 한다. 정보를 차단하는 거다. 네가 알면 더 이상 널 후려칠 수 없어, 너는 나에게 밥을 주지 않을 거야. 

새로운 것을 습득하려는 나에게 늘 자극을 주는 그런 사람들을 곁에 두고 살자. 나의 자존감을 지켜주고 높여주는 사람들을 곁에 두고 살자. 

 

2016/03/31 00:44 2016/03/31 0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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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저런것

분류없음 2016/03/25 06:54

 

아프지 말자 

 

파트너가 일하는 곳에 인플루엔자 A 가 퍼져서 (outbreak) 일주일동안 근무를 중단한 것이 지난주였나. 며칠 아프면서 신경이 쓰였다. 단지 생리전 증후군 (PMS) 인가 하다가 오늘 세탁실에서 건물 관리인을 만났는데 아픈 사람들이 한둘이 아니란다. 말도 마 얘, 내 컨트랙터 (contractors, 청소나 기타 관리업무를 용역받아 일하는 사람들을 이렇게 부른다) 들도 세 명이나 아프다고 해서 약속을 취소했고 우리 아파트 사람들도 많이 아프대. 열나고 쑤시고 그런다더라. 얘기를 듣고보니 내 증세랑 비슷하다. 내가 아프면 나도 고생이지만 신경을 쓰는 파트너도 고생이다. 올해는 뱅쇼도 못 만들어먹였는데, 라면서 레몬+파뿌리+계피+꿀차를 만들어주셨다. 파뿌리 때문에 냄새가 고약하다고 칭얼거렸었다. 화요일 밤근무 때 출근해서 간식통을 열어봤더니 레몬을 저며 꿀에 넣은 게 들어있다. 같이 일한 친구가 네 파트너 너무 스윗하다, 며 격찬을 했다. 미안하고 감사하다. 아프지 말아야지.

 

 

움직이자구

 

기운이 조금 나서 빨래를 하고 동네 데니쉬 빵집에 들러 빵을 몇 개 사고, 연휴에 먹을 과일을 사러 중국인 채소가게에 들렀다. 내일은 굿프라이데이 (Good Friday) 라서 휴일이다. 너 내일 일해? 응. 그럼 너 두 배로 페이받겠네? 뭐 그런 셈이지. 좋겠다. 너는 사장이잖아. 근데 때론 나도 회사에 나가고 싶어. … 뭔 소리야. 사장님께서. 처음엔 진짜 한국인이냐 (남한에서 온 사람이냐) 가짜 한국인이냐 (북조선이나 중국 연변 지방에서 온 한인) 성분 파악성 질문을 하는 바람에 뜨악했던 사람인데 이제는 농담도 하고 많이 친해졌다. 같은 중국인들도 어느 동네에서 장사하느냐에 따라 손님을 대하는 자세가 다르다. 중국인마을, 차이나타운에 있는 사람들은 백인이나 관광객들을 아무리 많이 대해도 대단히 뜨악스럽게 무표정하다. 한국식으로 말하면 "불친절"하다. 그런데 우리 동네에서 장사하는 중국인들은 대부분 잘 웃고 밝은 편이다. 아무래도 동유럽, 그리스 사람들 (그러니까 백인들) 을 상대하다보니 그렇게 된 게 아닐까 싶은데 처음에 던진 진짜/가짜 한국인 질문 때문에 한동안 꺼렸던 것도 사실이다. 

 

 

번진 생각들 

 

아파트 난방 시스템을 업그레이드한다고 했는데 그게 잘 됐는지 물어본다는 걸 깜빡 했다. 얼마전 밤에 소음이 심하다고 리포트를 했는데 관리인 왈, 모터를 미국에서 들여오기 때문에 시간이 좀 걸린다고 했다. 얼마나 대단한 모터를 들여오길래 국경 밖에서 사오나 싶었는데 잘 생각해보니 많은 물자를 미국에 의존하고 있는 게 캐나다의 현실이다. 가령 일상생활에서 흔히 보는 열쇠, 페브리즈나 세탁세제 같은 일부 가정 용품들, 커피, 쌀 등도 라벨만 영어/프랑스어를 붙여서 대부분 미국에서 온다. 물론 캐나다에서 생산하는 물건 (특히 공산품 혹은 가공식품) 이 없는 것은 아니나 가격, 유통과정에서 경쟁력을 얻지 못한다. 이러다가 미국이 국경을 폐쇄하기라도 하면 캐나다가 얼어죽는 것은 시간문제겠구나 그런 생각도 들었다. 샅샅이 조사해보진 않았지만 인구 사천 만이 채 되지 않는 이 넓은 땅덩어리의 나라는 미국경제 의존율이 상당히 높은 편인 것 같다. 예전에 북미자유무역협정 NAFTA 에서 이제 TPP (Trans-Pacific Strategic Economic Partnership) 시대로 간다는데 갈수록 이 의존력은 높아질 것이다. 상품을 자유롭게 사고파는 시장법칙에는 노동력도 당연히 포함된다. 문제는 이 노동(력)이 인간의 것이란 것을 사상하는 자본의 성질. 즉 자본과 노동의 힘에 달렸다는 말. 아파트 관리인과 얘기를 하다가 문득 TPP 까지 생각이 번졌다는 그런 얘기.

 

 

허리띠

 

한국을 떠나기 전에 파트너께서 사주신 벨트가 무척 낡았다. (이 시점에서 짝에게 감사감사. 내 인생에서 나에게 처음으로 벨트를 하사하신 인물!) 새 벨트를 사야 하는데 사이즈 문제로 부침을 거듭하고 있다. 한국 같으면 매장에서 사이즈를 조절해달라고 하거나, 실력좋은 동네 구둣방/세탁소에 가져가서 의뢰하면 돈 만 원이면 될 일이 여기에선 불가능하거나 최소한 오만 원은 줘야 한다. 이잡듯이 찾아보면 이런 일을 아주 잘 해내는 이민자들이 있을 것 같기는 한데 또 그걸 찾자니 영 내키지 않는다. 얼마전에 들른 할인점에서 사십 달러짜리 스위스기어 벨트를 십오 달러에 샀다. 집에 있는 가위 같은 부실한 연장으로 충분히 길이를 조절해서 내 허리에 맞춰 쓸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가위 다리를 이용해 버클을 열다가 뭐가 똑 부러지는 소리가 났다. 마침 출근을 앞두고 있어서 더 세심히 살펴보진 못하고 엉엉 울면서 출근. 아, 아까운 내 돈 십오 달러. 출근길에 뭐가 문제였지 한참을 생각하다가 뭔가 재생할 방법이 있을 거야, 긍정의 기운을 불어넣으며 퇴근. 집에 돌아와 다음 날 다시 시도했으나 사망. 벨트 끈은 천연가죽으로 아주 좋은 건데 버클 부분이 영 조잡스럽다. 아 띄발 메이드인촤이나가 다 그렇지 괜시리 탓을 해보지만 돌이킬 수 없다. 한국에 있을 적에 매우 편안하게 아무 불편없이 누렸던 호사들이 떠오른다. 계속 한국땅에 살았다면 절대 느낄 수 없는 고마움이다. 아 내 돈 십오 달러. 저 가죽끈으로 뭘 할 수 있을까.  

 

2016/03/25 06:54 2016/03/25 0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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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선관전중

분류없음 2016/03/22 00:26

 

비록 시범경기이긴 해도 한국에서 프로야구가 한창인데, 우리 트윈스가 올핸 정말이지 뭔가 할 것 같아 울렁울렁하는데 야구보다 더 재미진 게 있다. 바로 총선 관전. 몇 가지 포인트가 있는데 그 중 단연 압권은 역시 환골탈태 (換骨奪胎) 의 기로에 선 더민당과 김종인. 둘째는 기믹 (gimmick) 안철수. 셋째는 유승민 등과 익세트라 (et cetera).  

 

 

1.

구원투수로 나선 김종인의 퍼포먼스를 바라보는 시선이 극과 극인 것 같다. 한국 제1야당을 진보적인 당이라 믿고 싶은 일부 사람들, 혹은 (일부) 친노범주류는 김종인을 일컬어 “전횡” “짜르”라고 표현하는 것 같은데 아이러니하게도  이들의 시선은 종편/조선일보의 시선과 정확히 일치한다. 따라서 새누리가 원하는 프레임에 일치하고 결국 기믹선생이 원하는 프레임에 부합한다. 예컨대 비례 2번을 고집하는 김종인의 태도를 “노욕” 이라거나 “구원투수로 데려왔는데 구단주가 되려한다”며 비판하는 것을 보라. 또 깨알같이 강봉균과 비교한다. “‘2번’에 죽고사는 김종인, 비례대표 거절한 강봉균” 

 

임창용이 빠진 한국에서 그나마 잘 던지는 마무리투수 정우람은 작년 11월 이적 당시4년 총액 92억원(계약금 50억원, 연봉 11억 5000만원, 옵션 4억원)에 한화로 옮겼다. 김종인을 저 값에 데려온 게 아니라면 구원투수 운운은 참으로 구차하다. 운동권 흉내 좀 그만내라. 돈도 안주고 지분도 안주고 너는 그냥 명분만 챙기세요… ? 김종인은 당에 들어온 이상 김종인 계파 반드시 만든다. 볼세비키당도 아닌데 설마 그걸 막으려는 건 아니겠지? 어차피 쓰고 버릴 사람이니까 잘 쓰고 잘 버려라. 잘 쓸 생각부터 해야지, 버릴 생각부터 하는 거 그거 진짜 안좋은 버릇이다. 

 

꽃개로 말할 것 같으면 한국에 제대로 된 보수가 있어야 한다고 믿는 편이라 – 그래야 왼편의 진보도 제대로 설 수 있다고 믿기 때문에 – 더민당이 김종인의 전횡을 발판삼아 제대로 된 보수로 거듭났으면 한다. 싸구려 운동권/동네패거리 흉내내는 친노범주류와 동교동계를 잘근잘근 잘 밟아서 객토의 근거로 썼으면 한다. 더민당 같은 당은 정통 보수로 자리매김하는 게 보수에도 진보에도, 노동에도, 자본에도 좋다. 왜 선명하잖아. 갈짓자로 왔다갔다하는 유권자들도 없을 거고. 사표심리처럼 무망한 허위의식을 걷어내는 데에도 그만한 게 없다. 그러니까 일단 총선, 4월 13일까지는 그리고 총선 뒤 당권재편까지는 김종인이 하자는대로 눈 꼬옥 감고 한 번 해보기를 적극 권장한다. 그러니까 2번 그냥 줘라. “2번에 죽고사는 김종인”이라는 카피를 뒤집어서 적극 활용하라는 말.

 

 

2. 

기믹선생, 안철수는 정말이지 이번엔 단단히 속 썩일 것 같다. 진교수 말마따나 지난 대선 때 속 썩인 건 아예 축에도 들어가지 못할 듯. 문제는 안철수만 바라보고 있는 MB와 아이들인데 아마도 지금 제일 속 타는 건 대치동 사무실의 "그이"이지 싶다. 간철수가 좀 잘 되면 우다다다 붙어줄라고 했는데 BBK랑 4대강으로 쟁여둔 총알(돈)도 많이 쏴줄라고 했는데… 솔직히 말해 제일 관심있게 들여다보는 게 바로 간철수의 퍼포먼스. 왜냐하면 나중에 MB와 아이들이 간철수에 붙으면 우리가 상상했던 그 이상의 야권연합 (야합) 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정동영과 MB가 같은 우리에서 같은 정강정책을 외치는 거, 상상해보았는가? 글쎄, 나는 한 번도 상상해보지 않아서. 새누리당이 150석을 넘게 차지하여 20대 총선의 승자가 되는 것은 기정사실이다. 문제는 개헌선(2/3, 200석)을 넘어서느냐 마느냐. 그런데 사실 안철수는 여기에 관심이 없다 (새누리가 안철수를 좋아합니다). 안철수는 친이(MB) 류의 보수 (라고 쓰고 쓰레긔라고 읽는다)를 끌어올 레버리지로 이번 총선을 상정했다. 꿈나무 안철수, 꿈쟁이 안철수의 희망은 저어기 저멀리 대선에 가 있으니까. 나는 미래를 볼태양.

 

 

3.

개헌에 관심없기로는 김무성도 마찬가지다. 아니 요즘 하는 꼬라지로는 반반인 것 같다. 그런데 그의 치명적 약점은 아마도  박귾혜 (라고 쓰고 정원이라고 읽는다) 가 툭 치기만해도 옥수수알 떨어지듯 추잡스러운 것들이 후두둑 떨어질 것 같다는 거. 채동욱은 저리 가라. 웬지 한 살 어린 그녀가 누나처럼 무섭다. 아마도 유승민은 벌써 탈탈 털린 것 같다. 털어도 털어도 나오는 게 없는 건지 아니면 “최후”를 위해 한 개 정도 만들고 있는 중인 건지 잘은 모르겠지만 “알아서 결정하라” 고 할복을 허락한 걸 보면 뭐가 아직은 남긴 남은 모양.

 

군소좌파당, 극좌민족주의자들, 맑시스트당들은 이번엔 제발 "反박근혜"는 안했으면 싶다. 안티말고 진테제로! 만날 안티만 해버릇해서 뭘해야할지 잘 모를 것 같으면 그냥 정의당을 찍으세요. 약은 약사에게 투표는 정의당에게. 체해도 난 몰라. 

 

 

---

* updated on March 25, 1127hrs, EDT

친박계 핵심 의원은 연합뉴스에 "선거 이후를 잘 지켜보라. 김 대표에게 상당히 고통스러운 국면이 전개될 것"이라며 총선 이후 김 대표에 대한 반격을 예고했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01&aid=0008282829

 

상당히 고통스러운 국면이 전개될 것

상당히 고통스러운 국면이 전개될 것

상당히 고통스러운 국면이 전개될 것

상당히 고통스러운 국면이 전개될 것

상당히 고통스러운 국면이 전개될 것

 

 

 

2016/03/22 00:26 2016/03/22 0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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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일의식

분류없음 2016/03/15 01:31

 

비틀즈의 음악을 들어보세요 

 

 

컬리지 친구들과 놀던 도중 고등학교를 막 졸업하고 대학생이 된 친구들 몇몇이 존 레논 (John Lennon, 1940-1980) 을 모른다는 것에 멈칫했던 적이 있다. 그럼 너네 비틀즈는 알아? 그게 뭐야? ... 이런 게 세대차이인가. 그들은 트와일라잇 (The Twilight Saga) 혹은 해리포터 (Harry Potter), 또는 저스틴비버 (Justin Bieber) 세대. 그래도 그렇지. 털썩. 집에 놀러온 친구들, 씨디 (CD) 를 듣는 나와 동거인을 보곤 질겁하기도 했다. 아이튠을 통해 음악을 구매해 듣는 그들은 바로 스트리밍 세대.

 

지난 2월 말, 한국에서도 마침내 스트리밍을 통해 비틀즈 음악을 들을 수 있게 됐다. 이미 작년 크리스마스 선물로 세상에 풀린 비틀즈. 씨디나 카셋테입이 어떻게 생긴 건지 모르는 친구들아, 비틀즈는 진리랍니다. 한번만 들어보세요. 

 

 

 

아동복지에 관한 단상 

 

 

원영이가 결국 주검으로 발견됐다. 친부와 계모의 지속적인 학대와 폭행에 따른 외상이 사인이라는 부검 소견이 나왔단다. 최근 들어 학대에 시달리다 세상을 등지거나 지옥보다 못한 곳을 간신히 벗어나는 한국 아이들의 사연을 종종 접한다. 아마도 전수 조사 뒤 벌어지는 일련의 여파이지 싶다. 지구상에서 한국인 사회적 약자로 살아가는 건 천형인 것 같다. 이젠 생존 그 자체가 불가능해 보이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먼 이 곳에서 바라보는 시선으론 암담하고 참담하고 참혹하고 그리고 믿기지 않는다. 믿을 수가 없다. 

 

이 나라에서 이런 일이 발생할 수 있을까? 당연히 발생한다. 사람사는 곳이 다 거기서 거기니까, 사람들이 하는 일은 사랑하는 일이든 살인하는 일이든 어느 곳에서나 다 비슷하게 벌어진다. 다만 사건이 발생했을 때 처벌하는 수위, 사건을 예방하는 시스템, 사람들의 인식이 다를 뿐이다. 일단 아이가 학교에 나오지 않는다? 게다가 부모의 학대 혹은 물리적 체벌이 의심스럽다? 교사는 바로 경찰에 신고해야 할 "의무"가 있다. 나중에 교사가 신고하지 않은, 그러니까 의무를 방기한 일이 밝혀지면 그 교사까지 처벌받는다. 신고가 접수되면 경찰이, 그리고 필요하면 아동보호기관이 바로 결합한다. 아동보호기관도 일반 어린이복지를 담당하는 곳 (CAS), 가톨릭 아이들의 복지를 담당하는 곳 (CCAS), 유대인 가정과 아이들의 복지를 담당하는 곳 (Jewish Family & Child) 등으로 나뉘어 있다. 각 아동보호 기관은 연방 기관, 주 기관, 시군구 기관이 있고 각각 독립법인이다. 시민들의 세금 (정부 펀딩) 과 개인/단체의 기부금으로 운영된다. 아동보호기관에서 일하는 사회복지사의 권한은 상상 이상이다. 간혹 아이 양육권을 빼앗긴 엄마들/아빠들이 아동보호기관 (CAS) 과 워커들을 "악마"로 묘사할 때가 있다. 그들의 입장에선 틀린 말은 아니다. 자기들의 아이를 "빼앗아" 갔으니까. 개인적으로 현재 이 나라의 아동복지에 만족하는 편은 아니지만 시스템만 따진다면 더 나은 것을 상상하는 것이 나로서는 아직 어렵다.

 

서유럽의 영향을 받은 북미대륙에서 아동학대에 관해 견지하는 무관용 (Zero Tolerance, 제로 톨러런스) 원칙은 거의 절대적이다. 아이들은 (아직 성인이 아닌 청소년을 포함해) 정신적, 신체적, 물리적, 정서적 보호를 받을 "권리"가 있고 주양육자 (main caregivers) 를 비롯한 주변의 어른들은 이들의 권리를 옹호해야 할 "의무"가 있다. 컬리지에서 이 부분을 공부할 때 유럽과 북미대륙은 왜 이렇게 아이들 복지를 시끄러울 정도로 강조하나 그런 생각을 잠깐 한 적이 있다. 보다 깊숙이 공부하지 못해 뭐라 단정할 순 없지만 개인적인 추론으로는 -- 아동노동에 대한 트라우마, 근대를 벗어나고 싶은 몸부림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다. 19세기, 20세기 사실주의, 자연주의 문학에서 묘사하는 사회적 약자들 (노동계급 어린이 그리고 여성들) 의 삶을 들여다보면 끔찍함 그 자체다. 영국에서 아동노동을 제한하는 법률이 제정된 것이 1802년 (The Health and Morals of Apprentices Act 1802) 이다. 그렇다고 아동노동이 사라졌을까. 천만의 말씀. 지금 2016년, 인디아에서, 방글라데시에서, 중국에서, 중남미에서 여전히 많은 수의 어린이들이 양탄자를 만들고, 아이폰을-셀폰을 조립하고, 축구공을 꿰맨다. 하루에 천 원도 안되는 돈으로 어린이들을 철저하게 착취하는 아동노동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즉, 유럽의, 북미대륙의 아동복지는 유럽만의, 북미대륙만의 아동복지다. 어느 나라에서 태어나느냐에 따라 아이들의 인생이 달라진다. 아이고 내 팔자, 인샬라. 

 

제 2의 원영이를 막자는 말이 참으로 허무하게 들린다. 원영이가 "계모"와 살았기 때문에 죽임을 당했다고 생각하면 곤란하다. 모성이 넘치는 "친모 (생모)"가 원영이 곁에 있었다면 사태를 막을 수 있었을 것이라 접근하는 것은 순진하다 못해 어리석다. 학교가, 이웃이, 사회가 어린이의 권리를 지킬 수 없다면 수퍼파워 엄마가 있어도 그 어린이의 팔자는 풍전등화 (風前燈火) 일 뿐이다.

 

 

 

그람시와 하지원   

 

 

그람시 (A. Gramsci, 1891-1937) 가 태어나고 자란 이탈리아 남부는 곡창지대이자 해산물이 풍부해 언뜻 보면 살기 좋은 곳으로 보인다. 마치 한국의 호남 지방처럼 말이다. 맞다. 살기 좋은 곳이다. 더구나 날씨도 마일드한 전형적인 지중해식 기후. 당연히 역사적으로 지배계급의 착취가 극심했고 전쟁이 잦았다. 그러다보니 살기 좋은 그 곳이 민중들에게는 살기 어려운, 가장 가난한 지역으로 되어버렸다. 이탈리아 이민자들을 만나 고향 얘기를 할 때 그냥 이탈리아에서 왔다고 하면 거의 이탈리아 남부에서 온 사람들이다. 상대적으로 공업이 발달해 돈과 물자가 많았고 산업화가 도드라졌던 북부 지방에서 온 사람들은 밀란 (밀라노), 튀린 (토리노), 제노아 (제노바) 에서 왔다고 도시 이름을 말한다. 마치 뭄바이에서 온 인도 이민자들이 "뭄바이에서 왔어" 라고 말하는 동안 인디아 지방에서 온 사람들은 그냥 "인디아에서 왔어" 라고 말하고, 서울에서 온 한국인 이민자들이 "서울에서 왔어" 라고 말하는 동안 비서울에서 온 사람은 "한국에서 왔어" 라고 말하는 것처럼. 

 

대학을 튀린 (토리노)에서 다닌 그람시는 자연스럽게 노동자들과 어울리며 맑스주의자로서의 삶을 시작한다. 그는 가난한 이들, 노동자들이 자신들과 전혀 다른 이해를 추구하는 집단을 동경하고 심지어 지지하는 (투표하는) 현상을 목도하며 상념에 빠진다. 착취와 전쟁의 폐해 속에서 가난에 시달리던 고향의 이웃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람시의 두뇌를 적어도 이십년 동안 멈추게 해야 한다던 파시스트 정부에 의해 감옥에 갇힌 뒤 그 생각을 진전시켜 정리한다. 그 정리가 그람시 사후 "옥중수고 (The Prison Notebooks) 로 묶여 나왔다. 

 

한국에서는 이명박귾혜, 미국에서는 트럼프가 득세하는 이 엄혹한 현실을 보면서 그람시를 떠올렸다가 문득 예전에 "옥중수고"를 대놓고 보여주던 드라마가 있었는데... 한참을 생각했다가 그게 "발리에서 생긴 일"이라는 걸 기억해냈다. 드라마를 볼 때에는 별 감흥이 없었는데 찬찬히 생각해보니 소지섭이 권한 "옥중수고" 를 읽지 않고 되돌려준 하지원이 어떤 면에서는 명석했다. 그 복잡한 번역도 문제지만 이미 하지원은 삶의 문제와 우선순위가 뭔지 잘 알고 있었으니까. 물질적 존재로서 "옥중수고" 는 냄비받침 정도라면 모를까 당시 하지원에게는 필요가 없었다. 그람시가 고민하고 소지섭이 고민하던 정신과 가치는 사실상 의미가 없었던 거다. 트럼프 지지자들을 분석한 기사를 읽으며, 그 중에 왜 노동계급 공화당원들이 열정적으로 트럼프를 지지하는지 그 내용을 보며 소지섭이 권한 "옥중수고"를 얌전히 되돌려주던 하지원 생각을 했다는 그런 얘기.  

 

2016/03/15 01:31 2016/03/15 0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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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운다는것

분류없음 2016/03/08 02:05
 

 

1.

일전에 도서관에서 빌렸다가 한 번만 읽고 반납한 책, 나에게 맞지 않는 것 같다고 단정했던 그 책을 결국 샀다. 그리고 졸업한 컬리지에 들러 파트타임 수업을 다시 한 번 확인했다. 오랜만에 들른 그 곳은 그대로였다. 갖가지 아름다운 추억과 기억들이 오롯이 남아있는 학교, 좋은 사람들도 만났고, 일도 했고 또 그를 통해 평생 잊지 못한 기억을 만들었던 학교가 어쩐지 낯설게 느껴졌다. 하지만 한편으론 삶을 다시 시작한 곳에 진배없는 곳이니 (reborn place!) 이 낯선 기억을 초심 (初心, "Stick on your initial resolution!")  으로 여기고 끝까지 잊지말아야겠다, 그런 다짐도 했다. 봄에, 아니 곧 공부를 다시 시작할 수 있을지 그건 잘 모르겠다. 그러나 나는 늘 공부하고 있다. 그것만은 잊지 말자.

 

 

2-1.

토요일 이브닝 근무시간에 경찰이 데려온 한 클라이언트. 경찰과 간호사 (간호사도 역시 경찰이긴 경찰이다) 2인1조로 움직이는 사람들과 클라이언트 모두 범상치 않았다. 글쎄, 뭐랄까, 여느 경찰관이나 여느 클라이언트들과는 사뭇 달랐다. 우선 클라이언트의 태도. 버릇없고 건방지고 동양인을 깔보거나 그런 건 전혀 아니었는데 뭔가 다르다. 정신질환 진단에 따른 증상도 확실하고 왜 여기에 왔는지 이유가 빤히 들여다보이는 가운데 깍듯한 예의, 기본 바운더리가 확실하다. 뭐랄까, 전형적인 "교육받은 백인 중산층 캐나디언" 이라고 해야 하나. 중간에 요가 슈즈를 두고왔다며 엉엉 울었는데 잠시 뒤 백인 남자 경찰이 오피스로 봉지를 들고 들어온다. 클라이언트의 집에 다시 들러 요가슈즈를 가지고 온 것. 인테이크에 같이 참여한 백인 여자간호사는 한술 더 뜬다. 클라이언트가 자기 옷은 드라이클리닝을 해야 한다며 투덜거리자마자 스마트폰으로 구글링을 해서 드라이클리닝샵을 찾는다. 이건 좀 아니다 싶었다. 투 머치 (too much) … 클라이언트에게 네 눈을 보여줘, 선글라스를 잠시 벗어줄 수 있겠니, 하고 물었는데 간호사가 끼어들어 이 분은 늘 선글라스를 하세요… 병원에 간 기록을 알려줄 수 있나요, 하고 물었는데 간호사가 대신 대답하려는 찰나, 잠깐만요 저 분에게 직접 듣고 싶어요, 말씀을 끊어서 미안해요. 이런 경우는 처음이다. 대체 이 클라이언트 집안이 얼마나 대단하길래 이러는 거야. 이러쿵저러쿵 잘 설득해서 인테이크를 마쳤다. 나중에 동료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이렇게 황당하리만치 과도하게 친절한 경찰은 처음 본다며 웃었다. 그 중에 한 명, 반은 차이니즈/반은 캐리비안 백그라운드의 흑인 동료 [이 친구는 넓은 의미에서 '한 방울의 법칙 The One Drop Rule' 에 따라 흑인이다] 가 이런 말을 했다.

 

클라이언트도 백인, 경찰도 백인, 간호사경찰도 백인. 쟤네들은 서로 충분히 이해하고 공감하고 있는 거야. 집안이 잘 살고 하이클라스인지 그건 잘 모르겠지만 보통의 가정에서 자랐어도 백인은 백인인 거지. 경찰이 다른 클라이언트 [바로 전날 경찰이 데려온, 흑인/아시안들이 밀집해서 사는 가난한 동네에서 온] 를 어떻게 다뤘는지 생각해봐.

 

 

2-2.

지난 주에는 이십대 초반의 중국인 클라이언트 한 명이 떠났다. 물컵을 들고 있다가 다른 한 명 (백인 남자) 클라이언트와 부딪혔고 컵이 바닥에 떨어지면서 깨졌다. 중국인은 자기 습관대로 상대방에게 괜찮냐며 물었는데 이게 과도한 폭력으로 간주되었던 것. 목소리도 컸고 손짓도 컸다.  그랬을 것이다. "교육받은 백인 중산층 캐나디언" 의 관점에서 볼 때 이 중국인의 행동은 "과도한 폭력"이 되고도 남았던 것이다. 중국인 클라이언트는 이민온 지 8년이 지났음에도, 꽤 어린 나이에 건너와 중등교육을 캐나다에서 마쳤는데도 불구하고  나고 자랄 때 습득한대로 "몸이 반응" 했다. 역시 중국인인 담당 워커가 눈썹이 휘날리게 달려와 설명해도 소용이 없었다. 결국 그 젊은 친구는 퇴거 조치를 받았다.

 

 

2-3.

흑인 남성은, 남아시아에서 온 사람들은, 무슬림 백그라운드를 지닌 사람들은 이보다 더한 경우를 많이 겪는다. 오해라고 말하는 순간, 그게 아니고 사실은, 이라고 말하는 순간 변명이 되고 뻔뻔한 사람이 된다.

 

 

2-4.  

그리고 여성은, 더 많이, 일일이 설명하기에도 복잡할 정도로 이해받기 힘들다. 워커들도, 솔직히 말하자면 나도 여성 클라이언트를 대하는 것이 종종 더 힘들다. 말할 수 없는 고통이다.   

 

 

3.

"교육받은 백인 중산층 남자 캐나디언" 이라는 범주에 흑인은, 아시안은, 무슬림은, 여성은 들어가지 않거나 포함되더라도 "교육받은 백인 중산층 남자 캐나디언" 처럼 품행이 방정하지 않으면 억울한 일을 겪기 쉽다. 어쨌든 "교육받은 백인 중산층 남자 캐나디언" 이 표준인 까닭이다.

 

 

4.

한편, "교육받은 백인 중산층 캐나디언" 들은 여러 나라의, 여러 인종의 엑센트가 섞인, 혹은 깨진 영어조차도 잘 알아듣는다. 그런 편이다. 가령, 일터에서 만나는 동아프리카인, 인도인은 나의 영어를 잘 알아듣지 못할 때가 많다. 나 또한 마찬가지다. 그러나 역시 일터에서 만나는  "교육받은 백인 중산층 캐나디언" 들은 - 직원이든 클라이언트든지 막론하고 동아프리카인, 인도인, 한국인, 중국인, 아랍인 등의 강한 엑센트 섞인 영어를 아주 잘 알아듣는다. 그래서 그들은 더 포용력 있어 보인다. 참 신기한 일이다.

 

 

5.

클라이언트도 백인, 경찰도 백인, 간호사경찰도 백인. 쟤네들은 서로 충분히 이해하고 공감하고 있는 거야. 집안이 잘 살고 하이클라스인지 그건 잘 모르겠지만 보통의 가정에서 자랐어도 백인은 백인인 거지. 

 

'한 방울의 법칙' 에 의해 흑인이 된 동료의 말을 듣고 잠시 억압의 내면화 (internalized oppression) 에 대해 생각해봤다. 그 동료는 어머니가 중국인임에도 불구하고 중국인을 싫어한다. 떠나온 나라에서 살 때 중국인들이 하도 돈만 밝히고 흑인들을 구박해서 그런다고 했다. 중국인으로 오해받아 그 친구와 친해지는 데 애를 먹었던 기억도 있다. 그 친구 또한 억압을 내면화하고 있었던 거다. 그 고백을 들으며 숙연했던 순간이 떠올랐다. 인간 개개인이 깊이 지닌 "억압의 내면화" 는 결국 누구를, 어느 집단을 이롭게 할까. 나는 내 속에 침잠 (沈潛) 한 이 억압을 언제쯤 끝장낼 수 있을까. 살아있는 동안에 그게 가능할까. 아마도, 불가능하지 싶다. 순간순간 깨닫고 애쓰고 확인하고 점검하고 그러는 수밖에는 도리가 없어 보인다. 진정한 의미의 탈식민지적 (decolonization)  실천은  삶 속에서 그냥 애쓰는 수밖에는 길이 없는 것 같다. 담담하게 받아들여야 하는데 그게 참 어렵다. 왜냐면 깨닫는 그 순간 순간 자기혐오 또한 함께 샘솟기 때문이다. 배우는 게 참 힘들다. 

2016/03/08 02:05 2016/03/08 0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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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병대책

분류없음 2016/02/27 04:15

 

대한민국 정부는 지난 2월 25일 "정신건강 종합대책" 을 발표했다. 내년부터 시작해 2020년까지 시행할 예정의 이 계획은 늦은 감이 있어도 한편으로는 다행이다 싶

 

지만은 않다. 정부 발표를 보면 전체 국민 가운데 25%가량의 사람들이 정신건강 관련한 문제를 겪는다고 한다. 유병률 (prevalence rate) 로 단정할 수는 없지만 꽤 높은 수치다. 캐나다에서는 국민의 20%, 그러니까 다섯 명 가운데 한 명이 정신건강의 곤란을 경험한다고 전한다. 캐나다 정부가 국민 20%의 사람들이 겪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쏟아붓는 재정과 인력배치 등을 감안할 때 25% 인구를 잠정추산하고 세운 계획치고는 형편없다. 더구나 한국 인구는 캐나다보다 천만 명 이상 많다. 내용은 더 형편없다. 핵심은 "문턱을 낮춰서" "항우울제 복용 비율을 높여서" "초기에 치료" 하겠다는 건데 누구 좋은 일을 시키려고 이런 정책을 세웠을까? 혹시 제약자본...? 북미에선 아스피린만큼이나 널리 알려진 프로작이 한국에서도 마침내 널리 널리 퍼지겠구나. 

 

 

가정의나 동네 의원의 내과의가 우울증 진단을 하고 항우울제를 처방하겠다는 게이트키핑 발상을 보자. 이건 현재 한국사회의 의료체계에서 "항우울제 처방, 복용 비율을 OECD 수준 이상으로 올리겠다"는 발상으로밖에는 들리지 않는다. 연동해서 환자 개인 부담비율을 낮추겠다는 (사실은 항우울제 사느라 더 많은 인구의 사람들이 돈을 더 많이 쓸테니 민중의 총부담은 늘어난다) 것도 같은 소리로 들린다. 

 

 

현재 한국에서는 가정의 (패밀리 닥터, family physician) 개념이 희박하거나 자리잡지 못한 상태다. 의료서비스이용자들은 가정의를 먼저 찾고 전문의 리퍼럴을 받기보다 각 질환이나 증상에 따라 의료쇼핑을 한다. 각자 알아서 다닌다. 안과, 이비인후과, 정형외과 의원이 가정의학과 의원처럼 동네에 널려있다. 어떤 개업의들은 내과 간판을 같이 달고 장사한다. 개업한 의사들은 쿼터제 적용없이 장사를 하니 초기에 많은 비용을 들여 쓸데없는 의료자재들을 도입하고 처음에 질러댄 그 비용 (원가) 을 뽑아내야하니 그만큼 많이많이 환자를 닥치는대로 받고 진단을 남발해 공단에 비용을 청구한다. 악순환이다. 이 상황을 그대로 둔 채 국민 25%가 경험하는 질환의 문턱을 낮추면 상황은 어떻게 돌아갈까? 두고 볼 일이지만 앞으로 내과 혹은 가정의학과 간판으로 고쳐다는 동네 의원들이 점점점 늘어날 것이다. 무엇보다 나는 이들이 우울증 등을 제대로 진단할 수 있을까 그게 의심스럽다. 일전에 컬리지에서 공부했을 때 자료를 다시 보니 DSM4 (정신질환 진단 및 통계 편람. 버전4) 의 진단 정확도 (Reliability) 가 그렇게 높지 않다. 0.70 이상이면 신뢰할 만하다고 가정했을 때 그 수치를 넘어선 질환은 바이폴라 (0.84), 알콜 중독 (0.75), 거식증 (0.75) 정도다. 

 

 

더 큰 문제는 술 (알콜 중독) 에 대한 관용, 중독을 포함한 정신질환에 관한 편견이 강고한 점 등이다. 우선 술에 대해선 우리나라처럼 관대한 곳이 없다. 24시간 어느 곳에서든 편의점만 있으면 술을, 그것도 20도에 육박하는 소주를 사서 들고다니며 마실 수 있다. 텔레비젼을 틀면 언제든 소주/맥주 광고를 볼 수 있다. 술을 마시고 저지른 성폭력이나 폭행은 감형받는다. 국회의원부터 술마시고 여자를 추행해도 별 문제없는 그런 관행이 널리 자리잡았다. 어디서부터 손을 봐야하는지 뻔히 보이지 않는가. 

 

 

알콜중독, 담배중독, 여타 중독은 언제든 일어날 수 있는 보통의 평범한 일이라는 인식을 가져야 한다. 누구나 겪을 수 있는 - 그 상황에 처하면 부처님 할머니라도 겪을 수 있는 일이라는 것을 인식했으면 좋겠다. 그러나 그것이 일상을 위협할 때 특히 타인의 안전을 위협할 때에는 반드시 처벌받고 교정받아야 한다는 상식을 갖는 게 필요하다. 그게 책임이다. 나에게, 나의 주변에서는 일어나지 않는 특별히 문제있는 사람에게만 일어나는 일이야, 하고 생각하는 순간 편견과 차별이 자라난다. 그런 환경에서는 진단도, 치료도, 재활도 어렵다. 그래서 사람들이 "격리" 라는 손쉬운 방법을 고안하게 된 거다.

 

 

정신질환도 마찬가지다. 특히 한국에서 아직도 적지 않은 사람들이 호모섹슈얼리티를 정신질환으로 이해한다. 미안하지만 (!) 이것은 사실이 아니다. 1952년 DSM 을 도입했을 때에는 정신질환으로 기록되었다. 하지만 이십 년이 흐른 1973년, DSM 리스트에서 사라졌다. 만약 여전히 동성애를 정신병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1952년에서 1973년 사이에 살고 있는 거나 진배없다. 동성애가 1952년에는 정신질환으로 알려져서 치료도 받고 정신병원에도 가고 그랬는데 왜 이제는 그렇지 않을까. 의당 질문할 수 있다. 첫째는, 정신질환도 시대적 맥락, 상황에 따라 달리 규정받을 수 있다는 것 둘째는, 정신질환은 인간의 삶을 구성하는 한 부분이라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사실, 이명박귾혜 세상에서 살면서 미치지 않고 살아가는 게 이상한 게 맞긴 맞지만 "그들"이 우리를 정신나간 사람 혹은 우주의 기운을 받아야 하는 사람으로 취급한다면 그냥 그렇게 살아주는 게 어쩌면 맞을 수도 있겠다 싶다. 저항하지 말고 운명을 받아들이자는 게 아니라 그래 나 미쳤다. 그런데 너는, 안 미친 너는 뭘 하고 있는데? 라고 소리지르고 미친 척 덤비자는 얘기. (판사님 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2016/02/27 04:15 2016/02/27 0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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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밤의일들

분류없음 2016/02/23 02:22

 

1.

얼추 일 년 전, 꽃개의 일터에 잠시 머물렀던 중년 여성 클라이언트가 있다. D라고 해두자. 요 몇 주 연속으로 일요일 오버나이트 근무 시간, D는 새벽 2시에서 3시 사이에 전화를 한다. 처음에 전화를 받았을 때에는 지금은 클라이언트를 더 받을 수 없다고 말한 뒤 Distress Centre 와 Crisis Line 전화번호를 알려줬다. 다음에는 내 목소리를 알아듣고 이름을 다시 확인했다. 그 다음 주에 전화했을 때에도 역시 클라이언트를 더 받을 수 없는 상황이었는데 D의 상태가 별로 좋지 않게 느껴졌다.

 

네가 머무는 곳에 스탭이 없니 / 응, 있는데 별로 도움이 안돼 / 그래도 그들한테 얘기해, 그게 그들의 일이야 / 별로 말하고 싶지 않아. 온 몸에 경련이 오고 어지러워 / 의학적 도움이 필요한거니 / 응, 그런 것 같아 / 그러니까 스탭에게 알려야 해. 아니면 직접 911에 전화를 해. 미안하지만 나는 돕고 싶어도 도울 수 없어. 잘 알잖아 / 병원에는 가기 싫어. 병원 사람들은 나를 거칠게 다뤄. 나는 네가 있는 곳으로 가고 싶어 / 정말 미안해. 스탭에게 바로 말해, 일단 숨을 크게 들이마셔봐, 그래, 잘한다, 그리고 크게 내쉬어 / … / 괜찮니? / 응, 조금 괜찮은 것 같아 / 자, 이제 일어나서 스탭에게 가. 따뜻한 차를 달라고 해. 바깥 바람도 쐬고. 다시 돌아오면 괜찮을거야. 차도가 없으면 바로 911을 불러. 알았지? / 알았어, 고마워

 

전화를 끊고 잠시 뒤 전화벨이 다시 울렸다. D의 목소리다.

 

꽃개야, 나 스탭한테 얘기했고 지금 따뜻한 차를 받아서 방으로 왔어. 이제 이거 마시려고 해 / 그래 잘했어. 한꺼번에 마시지 말고 천천히 씹는 것처럼 한모금씩 마셔. 사이사이에 숨을 계속 크게 내쉬고. 알았지? / 알았어. 그런데 너 남편 있니? / … 아니 … / 남자친구는? / … 난 그런 데 관심없어. 그런 얘기는 하고 싶지 않은데 / 그럼 여자친구가 있는 거야? / 반복하지만 그런 주제로 얘기하고 싶지 않아. 그건 내 사적인 영역의 일이니까. 너도 잘 알겠지만 지금 난 일하고 있어, 그러니까 지금 너와 전화통화를 하고 있지 / 아, 미안해. 너무 열심히 일하지 말라고. 너도 너 자신을 챙겨 / 응, 그래 고마워. 잘 자

 

전화를 끊고나니 허탈하기도 하고 웃기기도 하고 약간 얄밉다는 생각도 든다. 그런데 어쩌랴, 그게 그 사람이 아픈 이유인 걸.  지난 밤에는 전화가 안왔다. 살짝 걱정이 됐다면 거짓말?

 

 

2.

아편류 (Opiates) 중독이 정말 징하긴 징하다. 밤새 아편 금단 (opiate withdrawal) 에 시달리는 클라이언트 한 명을 신경썼더니 다크서클이 턱까지 내려왔다. 원래는 외과 수술 이후 뒤따르는  진통을 다스릴 목적으로 아편류 향정신성의약품 (가령 코데인이나 모르핀) 을 처방받았는데 거꾸로 그 처방받은 진통제 (아편류) 에 중독된 거다. 그 중독을 치료할 목적으로 메타돈 (methadone; 역전 치료, reversing treatment) 치료를 받았는데 이제는 되려 메타돈에 중독이 되어버렸다. 일부 자료에 의하면 메타돈 그 자체가 원인으로 되는 중독은 일어나지 않는다고 하는데 나는 전문가가 아니니 알 수 없다. 어쨌든 이 양반은 작은 물병에 메타돈을 넣어 가지고 다니며 먹는 눈치다. 물론 의사처방은 없다. 처방전 없이 그 약을 어떻게 구했을까 궁금하지만 답이 뻔해서 묻기도 참 민망하다. 메타돈이 다 떨어지면 처방받은 다른 약 (역시 아편류) 을 줄기차게 잡수시는데 별 효과가 없어 보인다. 바로 지난밤이 그런 상황이었다. 아주 예전에 모그룹의 회장님께서 폐암치료 중에 맛을 들이신 모르핀을 구하는 게 귀찮고 번거로워 아예 종합병원을 통채로 사들였다는 그런 풍문이 있었다. 꽤 개연성이 있어보인다.    

 

 

3. 

"retard". 들으면 신경쓰이는 단어. 사람들이 본인을 언급할 때 혹은 타인을 언급할 때 저 단어를 쓰면 한 번 더 쳐다보게 된다. 지난밤에 한 클라이언트와 대화를 나누다가 본의 아니게 심경고백 (self-disclose) 같은 걸 하게 됐다. 니맘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거 같아. 왜냐하면 ---

 

영어로 말할 때 버벅대거나 같은 단어를 반복하거나 깨진 영어 (broken English) 를 구사할 때가 제법 있다. 원래 한국말도 잘 못하는 편이긴 하지만 머리속에서 한국어-영어 컨버팅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을 때 주로 그런다. 대체로 당황하거나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이것이 사람인가 싶은 기본예절이 없는 사람을 만났을 때. 오히려 911에 전화할 때는 대단히 차분하고 또박또박 말하는 편이다. 이렇게 버벅대다가 저 단어로 나를 면전에서 지칭하는 사람을 몇 번 만난 적이 있다. 사실 듣는 것 그 자체로는 큰 느낌이 없다. 영어로 하는 욕은 아무리 센 걸 들어도 그냥 영어다. 욕처럼 안들린다. 영어니까. 내 모국어가 아니니까. 단어 그 자체보다는 상황과 맥락, 관계에 더 집중하게 된다. 한국어였다면 "니미럴시펄새끼" 라는 말을 듣기만해도 소름이 끼쳤을텐데. 어쨌든 저 단어 ("retard") 는 덜 떨어진 놈, 얼간이, 저능아, 칠푼이 따위로 옮길 수 있겠는데 막상 또 한국어로 옮겨놓고 보면 글자 자체로는 별 감흥이 없다. 하지만 정신적/신체적 장애를 극단적으로 얕잡아 일컫는 말이란 걸 대번 알 수 있다. 대화를 나눈 그이는 남들에게 저 말을 들으면 화가 나서 펀치를 날리고 싶다는 말을 했다. 그런데 정작 자기는 남들에게  자기엄마에 대해 말할 때 저 단어를 쓴다면서 어색하게 웃었다. 복잡했다. 

 

어쨌든 저 단어는 "정말로 덜 떨어진" 사람들이 쓰는 것 같다는 게 내 관찰과 경험의 결과. 우리는 서로 다르게 기능할 뿐이다. 다를 뿐이다. We're just differently abled.

 

 

2016/02/23 02:22 2016/02/23 0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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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사랑을

분류없음 2016/02/14 1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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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2/14 11:35 2016/02/14 1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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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자와배추

분류없음 2016/02/11 16:05

 

고향에 있을 적엔 감자는 그냥 감자였다. 종류도 맛도 향도 그렇게 다양한지 몰랐다. 모를 수밖에 없었다. 대학생일 때에는 해마다 강원도로 농촌활동을 간 탓에 정말 감자를 물처럼 먹었던 때도 있었다. 감자국, 감자밥, 감자조림, 감자전, 옹심이... 여름농활할 적에 수확한 감자가 남으면, 혹은 감자에 상처가 나면 땅에 묻었다가 가을이나 겨울농활할 적에 꺼내어서 이렇게저렇게 떡을 만들거나 사료로 만들어 사람도 먹고 소도 먹고 그랬던 기억이 난다. 하루 종일 감자밭에 쪼그리고 앉아 호미질을 해도 끝없이 나오는 감자를 보며 한숨을 푹푹 쉬었던 그런 날들이 있었다. 간혹 고속도로 휴게소를 지날 때마다 먹었던 작은 알감자도 생각난다. 언젠가 자줏빛이 감도는 감자를 먹었던 기억도 있는데 그렇게 인상적인 맛은 아니었다. 

 

 

서유럽 문화가 지배적인 식문화에서 감자는 우리의 밥 (쌀밥) 에 대응하는 격을 갖는다. 로스트비프나 스테이크나 혹은 폭챱 같은 것을 메인디시로 먹으면 반드시 감자를 먹는다. 매시드포테이포나 통채로 구운 감자 따위에 치즈를 곁들여 먹기도 하고 다양한 드레싱을 섞어서 풍미를 더한다. 심지어 햄버거에도 감자가 꼭 따라나온다. 바로 프렌치프라이. 영국인들이나 북해 연안 국가 사람들이 좋아하는 피시앤칩스도 생선요리와 감자튀김이다. 아니면 포테이토칩처럼 군것질거리로 소비하기도 한다. 부활절 (Easter) 이나 추수감사절 (Thanksgiving), 크리스마스 같은 명절을 앞두고 큰 푸대자루에 담긴 감자를 사가는 사람들의 풍경도 흔하게 볼 수 있다. 감자는 서양인들에게 머스트해브아이템오브머스트해프아이템스온더테이블이다.  

 

 

감자는 유럽인들의 역사를 바뀌어놓기도 했다. 1840년대에 시작한 대기근이 끝났을 때 아일랜드의 인구는 무려 절반으로 줄었다. 감자흉년 때문이었다. 먹을 것이 없어 고향을 떠난 아일랜드 사람 가운데 많은 이들이 미국이나 캐나다 등 신대륙에 정착했다. 꽃개가 사는 도시 한가운데에 양배추마을(Cabbagetown) 로 불리우는 곳이 있다. 19세기 중후반, 감자 대기근으로 고향을 등진 아일랜드 사람들이 대거 정착한 곳이다. 먹을 것이 부족했던 그들은 양배추를 심기 시작했고 양배추가 조석으로 밥상에 올랐다. 재개발 (Gentrification) 이 한창 중인 그 곳에 아직 쫓겨나지 않은 이민자들이 여전히 많이 살고 있지만 오늘날 이민자들의 얼굴 색깔은 19세기 그들의 얼굴 색과는 사뭇 다르다. 대부분 남아시아와 동아프리카, 혹은 중국에서 온 사람들이다. 19세기에 고향을 등진 그들의 후손은 이미 그 곳에 살지 않거나 살더라도 재개발이 끝난 고급주택이나 콘도에 산다. 그리고 양배추밭은 더 이상 볼 수 없다. 감자나 양배추 (배추), 그리고 가난한 사람들을 떠올리면 생각나는 게 또 있다. 바로 김동인 (金東仁) 의 "감자 (1925)". 복녀는 감자와 배추를 훔치다가 왕서방에게 걸리지 않았나. 또 하나, 빈센트 반 고흐 (Vincent Van Gogh) 의 "감자먹는 사람들 (1885)" 이란 그림도 있다. 이 그림은 뒤에 케테 콜비츠 (Käthe Kollwitz) 를 비롯해 수많은 사람들에게 가난과 삶의 치열함에 대한 영감을 줬지만 정작 당대에는 외면당했다고 전한다. 

 

 

종종 감자를 삶아 먹는다. 며칠 전 먹었던 감자가 제법 맛이 좋아 오늘도 감자를 너댓 개 삶았다. 맛이 딴 판이다. 퍽퍽하고 잘 부서진다. 껍질도 딱딱하다. 아마도 매시드포테이토에 걸맞는 그런 품종인 것 같다. 가격을 따져보니 지난 번에 먹었던 노란 감자가 아마도 서너배가량 비싸지 않았나 싶다. 그렇구나. 역시 비싼 게 맛있구나. 싼 데는 다 이유가 있구나. 그 옛날 아일랜드 민중들과 복녀는 어떤 감자를 먹었을까. 오늘 내가 먹었던 그 퍽퍽한 흰 감자였을라나. 아이고 오늘 산 저 감자를 어찌 다 해치울꼬. 고향에서 먹었던 그 찰지고 달콤한 감자가 그립다.

 

2016/02/11 16:05 2016/02/11 1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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