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한마음

분류없음 2015/11/19 22:28

 

*

베이루트, 바그다드, 말리, 그리고 파리. 폭력의 난무. 민간인 희생. 사람의 목숨이란 게 너무나 형편없이 다뤄진다. 쾅. 폭탄 한 방이면 원하는만큼 사람을 살상할 수 있는 세상. 아무렇지도 않게 군중을 향해 총을 난사할 수 있는 그 신념은 어디서 나오나. 

 

꽉찬 드럼통 하나도, 똑바로 서있는 장정 하나도 저만치 날려버릴 수 있는 워터캐논. 대한민국 경찰이 이걸 사람을 향해 직사했다. 세월호를 겪은 대한민국은 아직도 안전 문제에 있어 불감. 사람 죽이는 거, 이렇게 쉽다. 부디 쾌유를. 아...

 

또 한 명의 성소수자 청소년이 자살했다는 한국발 소식을 접하고 절망한다. 내가 바란 21세기는 정말이지 최소한 이런 건 아니었다. 

 

불안. 

 

 

*

회사 내 다른 프로그램에 어플라이를 했고 지난 월요일, 2시간 동안 잡인터뷰를 했다. 그 전날 밤에 오버나이트 근무를 했기 때문에 한 시간이 넘어가자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오기 시작했고 긴장이 좀체 풀어지지 않았지만 최선을 다해 그 시간을 마쳤다. 인터뷰를 마치자마자 너를 고용하겠다, 는 답을 듣자 긴장과 어지럼증, 갈증이 다 사라졌다. 허탈했다. 썩 좋은 - 안정적인, 그리고 나의 체류신분에 당장 도움되는 - 일자리는 아니지만 하나의 모멘텀은 될 수 있겠다. 수입원이 늘었다. 하이리스크 클라이언트, 포렌식 시스템이 더욱 강화된 프로그램이어서 짝꿍의 걱정이 더 커졌다.

 

불안. 

 

 

사람은 생명체다. 생명체는 모두 죽는다. 고로 모든 사람은 죽는다. 이유와 과정과 갖은 배경을 사상하고 이 명제만 놓고보면 틀림없이 맞는 말이다. 사람이 죽는 일이 뭐 대수랴. 하기에 사람의 일에 논리를 들이미는 일은 얼마나 무의미한가.

 

불안

 

+++++++++++++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왜 Daesh 는 그리고 일부 극단주의자들은 일반인 (혹은 자신보다 약해 보이는 사람들) 을 타격의 대상으로 삼는가이다. 일 국가를 선포할 정도의 완성도를 갖춘 집단이라면 적어도 상대 타격 국가의 군부대나 군사적 요충 시설, 최소한 대사관이나 정부시설 정도를 타겟으로 삼지 않을까. 마치 사회 불평등과 실업, 불합리한 군대를 겪어 불만이 많은 사람들이 "만만해 보이는" 여성과 이주민을 골라 못살게 굴고 harassing 하는 모습 같다. 성소수자들을 타겟으로 삼는 기독교 극단주의자들 또한 마찬가지다. 그들이 그들 권력 반등의 지렛대로 삼은 성수자들은 기실 아무런 힘도 영향력도 없다.

 

 

2015/11/19 22:28 2015/11/19 2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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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추초절임

분류없음 2015/11/18 10:41

 

김치가 똑 떨어졌다. 이미 진작 떨어졌고 스키야키를 해먹을 때 샀던 남은 배추로 급히 만든 비상김치마저 다 먹어치웠다. 원래부터 식성이 이랬나 싶게 김치 생각이 간절하다. 이러다가 진정한 K-저씨의 식성으로 귀환하는 건가... 라는 착잡함과 아련함과 아무래도 이건 향수병의 한 조짐이겠지. 뭐 그런 식으로 위안하기엔 그 갈망 craving 이 너무 크다.

 

 

그리스-남/동유럽 출신 사람들이 주로 사는 우리 동네에 조선은커녕 중국 배추도 있을 리 없고 구할 수도 없다. 버스를 타고 차이나타운을 가야 하는데 그럴 거면 차라리 조금 더 시간을 들여 한국인마트에 가는 게 낫다. 어쩌지.

 

 

잠깐 궁리. 양배추로 김치를 담그자니 그건 좀 아닌 것 같고 일전에 먹었던 사우어크라우트를 사올까 싶었지만 별로였다. 덴마크 사람들이 먹는다는 그 노오란 것을 먹을까 했지만 정체를 모르겠는 것을 이 상황에 먹기엔 좀... 그냥 오이피클을 먹어야겠다 싶어서 집 앞 컨비니언스에 갔는데 뙇... 오늘의 발견.

 

사용자 삽입 이미지

 

그리스 바로 위에 있는 나라, 마케도니아에서 온 "페페로니 고추 피클" 되시겠다. 할리피뇨 고추 절임 맛을 생각했는데 막상 먹어보니 한국산 청양고추에 가까운 맛이 난다. 식감도 비슷하다. 이럴 수가.

 

 

가끔 그리스 사람들, 남/동유럽 사람들과 그들의 섭생과 생활 같은 걸 관찰해보면 한국인과 비슷한 점이 많아 깜짝깜짝 놀랄 때가 있다. 가족이나 친구를 필요 이상으로 챙기거나 간섭하는 모습 (어쩌면 오지랍), 먹는 것을 나누고 먹는 것 자체에 의미부여를 많이 하는 모습, 매운 음식/돼지 고기를 즐기는 모습, 누구도 못 말릴 것 같은 허세, 타인을 의식하는 것 같으면서도 전혀 의식을 안하는 것 같은 모습... 이젠 먹는 식재료에서까지 비슷한 점을 찾아내다니, 이 정도 간절한 집착이면 거의 "발가락이 닮았다" 수준이다. 

 

 

어쨌든 아주 맛나게 잘 먹었다. 밥을 먹고 마케도니아 나라를 다시 한번 검색해봤다. 슬픈 역사와 사연을 간직한 축구 제법하는 나라. 고추절임도 우리와 아주 비슷하게 먹는 나라.

 

 

2015/11/18 10:41 2015/11/18 1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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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었다는것

분류없음 2015/11/11 07:23

 

 

간장게장, 간장새우장을 담갔다. 살아있는 서해 꽃개가 이 나라에 있을 리 만무하므로 블루크랩 (청게?) 2.24파운드를 $8.04에 샀다. 1킬로그램이 약간 넘지만 서해 꽃개에 비하면 덩치가 하염없이 작아 열두 마리. 타이산 꽁꽁 얼어있는 블랙타이거는 18두에 $9.99. 블루크랩은 대서양에서 온 국내산이고 블랙타이거는 수입산인 셈이다. 그저께 일요일 오후에 차이나타운에 나가 장을 본 뒤 바로 냉동실에 넣어 기절하시도록 기다렸다가 꺼내 씻는데 여전히 살아계시다. 질긴 생명력. 경외감. 새로 꺼낸 치솔로 박박 닦는데 미안함+무서움+귀찮음. 새우는 찬물을 틀어 삼십 분 정도 방치했더니 생물새우처럼 되살아났다. 이 분들은 이미 돌아가신 탓에 덜 미안. 이틀이 지난 오늘 간장을 새로 끓여 넣어야 하는 작업을 하면서 한 번 먹어봤다. 작은 청게께서 알을 소중히 꼭꼭 간직하고 계셔서 맛이 아주 그만. 각종 채소와 양념거리는 파트너가 담당했었는데 역시나 이 분의 손길이 닿아야 마지막 2%가 살아나는구나. 나 혼자 만들었다면 이런 맛을 내지 못했을 것이다.

 

 

간장게장은 참으로 익숙한 음식이다. 어릴 때엔 꽃게철에 거의 매일 먹었다. 외가쪽은 조기, 굴비, 꽃게, 조개, 새우(젓), 김, 굴과 같은 서해에서 주로 나는 해산물을 넉넉히 소비하던 집안이라 어머니께서도 어릴 때부터 종종 잡수셨고 그 취향은 당신의 자녀들에게도 이어졌다. 아주 어린 꼬마시절엔 외할머니 명의의 논에서 서식하던 작은 게로 민물게장을 담그셨던 기억도 있다. 아버지는 상대적으로 박복한 가정에서 성장하셨고 따라서 음식에 관해 ‘취향’이란 게 없거나 무척 제한적이었다. 가령 죽을 너무 많이 드셔서 밥이 진 것을 끔찍하게 싫어하신다든지, 수제비나 국수 같은 밀가루 음식은 음식으로조차 취급하지 않는다든지. 반면 어머니는 국수를 좋아하셨고 밥도 질척질척한 느낌을 선호하셨다. 나중에야 아버지도 어머니 음식에 딴지를 거시는 일이 없어졌지만 아버지가 왜 저런 음식에 종종 거의 광기어린 반응을 보이는지 – 가령 상을 엎는다든지 - 어머니께 듣고서야 이해할 수 있었던 그런 때가 있었다.

 

 

언젠가 밥상에 집게다리만 잔뜩 있는 간장게장 사발이 올라왔다. 이게 뭐지, 하고 들여다보는데 이번에 게살이 빨리 물러서 몸통은 다 먹었고 집게다리만 남았다고 하셨다. 지금이야 사과, 배, 양파, 레몬, 매실, 마늘, 고추 등의 갖은 채소와 과일로 간장의 풍미를 더하지만 옛날에는 그냥 막간장과 신선한 약수만 넣고 끓였던 것 같다. 먹기 진전에 청양고추만 송송 썰어 넣는다. 아무래도 간장맛이 – 혹은 간장의 주원료인 메주가 훌륭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짐작해본다. 집게다리도 나름대로 훌륭했고 맛있었다. 상 옆에 앉으셔서 혹여나 치아가 나가지 않을까 걱정하시기도 했지만 그런 불상사는 일어나지 않았다. 돌을 씹어도 상관없는 나이였다. 두그릇, 세그릇 뚝딱 밥을 먹었다. 먹어도 먹어도 쓸쓸하고 허전했다.

 

 

나이가 들어 식당에서 간장꽃게장을 먹으려면 기만 원 이상을 치러야한다는 것을 알았을 땐 이미 늦었다. 꽃게값은 천정부지로 치솟아올랐고 어머니는 많이 늙으셨다. 질좋은 메주로 담그는 간장도 이젠 없는지 장독대의 독들은 텅텅 비어있었다. 진작 배워뒀어야 했는데. 혹여나 꽃게를 구해도 어떻게 담그는지 물어볼 용기조차 나지 않았다. 그냥 그렇게 기억 뒤편으로 사라진 어머니의 추억의 간장게장.

 

 

담근 지 이틀만에 꺼내어 먹으며 집게다리가 몸통에 비해 상당히 튼튼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파트너에게 말해 집게다리만 뜯어서 간장에 넣어둘까요. 한 번 물어봐야겠다는 생각을 잠깐 했다. 그런데 그 옛날에 어머니는 아마도 몸통만 따로 아버지 밥상에 올린 것은 아니었을까, 그런 생각이 잠깐 스친다. 뭐 그래도 상관은 없다. 다 지난 일이다. 집게다리를 씹었던 이가 아플 뿐이다.

 

 

2015/11/11 07:23 2015/11/11 0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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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뇌의출처

분류없음 2015/11/04 09:40

제목: 번뇌의 출처 

 

 

보름 전에 셀폰을 바꿨다. 전에 쓰던 것은 윈도우즈폰인데 오래 전에 단종됐다. 새로 장만한 것은 안드로이드 구글폰이다. 직원이 전화번호부를 새로운 폰에 옮기는 것을 도와주면서 구글이메일에 저장된 사람들을 폰에서 직접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말이 무슨 말인지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다가 옛날 폰에 있는 전화번호들이 새로운 폰에는 없는 것을 발견하고 하나하나 입력하기 시작했다. 작은 키패드를 붙잡고 작은 글씨를 입력하느라 쩔쩔매다가 아! 구글이메일로 입력하면 편하겠구나! (깨달음의 순간) 랩탑으로 구글이메일의 컨택트 리스트에 접속했다. 어머나, 완전히 새로운 세상이구나. 구글플러스라는 것을 비롯해서 거의 페이스북에 버금가는 수준으로 업그레이드되어 있었다. 구글이 일상생활을 통제할 수준까지 도달했다는 아티클은 가끔 봤지만 이 정도였는지 차마 몰랐던 것이다. 

 

 

기능을 하나하나 살피며 한사람 한사람을 리뷰했다. 지금은 연락이 끊긴 사람들이 제법 있었다. 교회에서 자원활동 팀장을 할 때에 팀원들 연락처를 모두 저장했었고 대부분 LGBT 그라운드로 레퓨지를 신청한 사람들이었는데 적지 않은 사람들이 체류신분을 획득한 뒤로 말도 없이 사라졌다. 그들도 그들 나름대로 그럴 수밖에 없었던 사정이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로 인해 상처를 받고 한동안 마음고생을 했었다. 

 

 

그러다가 어떤 사람이 나를 블럭한 것을 알게 됐다. 마우스를 여기저기 움직이는 도중 갑자기 "You are restricted from following Abc Defg" 라는 메세지가 뜬 것이다. 이것은 무슨 말인가. 나는 그 사람을 팔로잉한 적이 없다. 그런 기능이 있는 것도 모르고 있었다. 사람들 사이에 종종 일어나는 일이니 다른 사람도 나를 블럭했을까 찾아봤다. 하지만 그 기능으로 나를 차단한 사람은 Abc Defg 라는 그 사람이 유일하다. 언제부터였을까. 잘 모르겠다. 내가 그 사람을 귀찮게 하거나 불쾌하게 한 적이 있었나, 생각해봤다. 그럴 수도 있겠다.

 

 

소셜미디어를 하다보면 온라인에서 친구가 되었음에도 소통하고 싶지 않은 특정 개인이 있기 마련이다. 일 년 내내 그런 감정이 드는 사람도 있고 어제는 괜찮았다가 오늘은 괜찮은 사람도 있다. 그런 마음이 들 때마다 언프렌드 (unfriending) 를 하는 사람도 있고 다시 친구신청 (friending) 을 하기도 하고 그런다. 그렇게 산다. 인간관계에서 발생할 수 있는 매우 평범한 일들이다. 그런 일들에 일희일비하다가는 정작 마음을 많이 쏟아 정성을 다해 고민해야 할 일이 닥칠 때 번아웃 (burn-out) 하기 쉽다. 그래서일까. 일찍이 퍼거슨 경은 "There are a million things you can do with your life other than that. Go to a library and read a book. 인생에는 (소셜미디어를 하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할 수 있는 게 있다. 차라리 도서관에 가서 책을 읽어라" 라고 일갈하셨다. 

 

 

이 모든 것을 이성적으로 이해하고 있는 나. 하지만 Abc Defg 라는 사람이 설정한 "You are restricted from following Abc Defg" 라는 메세지에 적지 않은 상처를 받았다. 이것 또한 그가 그의 세상과 커뮤니케이션하는 수많은 방법 가운데 하나일 것이다. 아니, 어쩌면 그는 나를 그냥 싫어할 수도 있겠다. 부딪힐 일이 별로 없지만 그것과 무관하게 그저 귀찮을 수도 있고, 어쩌면 아시안을 좋아하지 않을 수도 있고, 어쩌면 미래에 부딪힐 일이 있을 때 보다 넓은 거리를 유지해달라는 일종의 경고일 수도 있다. 어쩌면 페이스북에서 언프렌드를 하고 싶은 마음을 우회적으로 돌려서 표현한 것일 수도 있다. 

 

 

어쩌면, 어쩌면, 어쩌면… 수많은 가정과 추측은 사실 아무 소용이 없다. 이것은 커뮤니케이션이 아니기 때문이다. 소통이 아니기 때문이다. 다른 일 같으면 시간을 두고 생각한 뒤에 당사자와 소통할 방법을 찾겠지만 이번엔 그런 마음이 쉽게 들지 않는다. 아마 평소에 그 사람을 높게, 훌륭하게 평가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 나중에 늙어서라도 좋은 친구가 되면 좋겠다, 옆집에 살면 정말 좋은 이웃일 사람인데, 기회가 되면 함께 일하고 싶다… 혼자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더더욱 상처를 받은 건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하고 있다. 가령 나는 100 정도의 마음을 갖고 있는데 상대는 3 정도의 마음을 갖고 있다. 100 이라는 나의 마음이 닿지 못하는 것을 확인하면 절망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따라서 내가 느끼는 모든 상처와 번뇌는 나에게서 나온다. 잊어버리면 될 일이다.

2015/11/04 09:40 2015/11/04 0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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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날상념

분류없음 2015/11/03 03:06

 

감정. 가장 어려운 노동. 
나의 것인지 남의 것인지
어제의 것인지 오늘의 것인지 
지나칠 수 있는 것인지 붙잡을 수 있는 것인지 
모서리마다 각이 있는지 아니면 그저 수평선 같은 것인지
부질없이 그런 생각을 하고 있다. 

2015/11/03 03:06 2015/11/03 0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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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총선

분류없음 2015/10/22 02:00

 

캐나다 총선이 끝났다. 장장 십년동안 (2006-2015) 군림했던 보수당 정부가 자유당 정부로 대체되었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일부 사람들은 보수당이 아닌 정당 그룹이나 진영을 "좌파" 혹은 "사회주의자"로 매도하기도 한다. 그나마 대놓고 중도를 표방하는 자유당 (Liberal) 이 있지만 역시 중도보수나 보수 입장에선 자유당도 마찬가지로 좌파 (Lefts) 가운데 하나로 취급된다. 어쨌든 그 리버럴이 다수당이 되어 차기 집권 정당이 되었다. 

 

몇 주간 지켜보며 한국과 비슷한 경향들을 발견했다. 

- 여당 (보수당) 의 물량공세. 11주라는 어마어마한 선거운동 기간. 
- 여당 (보수당) 의 공포정치 프레임. 역시 안티테제로는 이길 수 없다. 
- 중도보수 및 사민당 지지자들의 투표전술. 사표는 싫다. 투표라는 기제가 갖는 허위의식. 
- 보통 사람들의 삶에 큰 변화는 없을 것 같다.
- 사람들은 며칠이나마 '희망'을 품어본다. 그 힘으로 사는 건가?

 

여당 프리미엄을 갖고 있던 보수당은 애초에 선거운동 기간을 11주로 정했다. 대개 한 달 안팎이던 선거캠페인이 두 배가량 늘어난 거다. 왜 그랬을까. 다 이유가 있다. "돈" 

 

선거전술을 안티테제에서 진테제로 옮아가도록 (자유당의 당수는 어리고 정치경험이 짧고 준비가 안됐다 -> 십년의 집권경험이 있는 보수당이 여전히 대안이다) 짰던 보수당은 선거운동 후반 좀처럼 여론이 변하지 않자 극도의 신경질적인, 공포를 가하는 전술을 쓴다. 투표일이 다가올수록 이 전술은 일정 도를 넘어섰는데 투표일 바로 전날 주말, 전국 방방골골 신문 1면에 아래와 같은 정치광고가 실렸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자유당 찍으면 세금도 많이 내야 하고 혜택도 사라져. 보통 가구는 일 년 $4, 028, 시니어 부부는 일 년 $4,086 을 더 내야 돼. 살 수 있겠냐. 이래도 찍을래?"

 

 

일요일, 집에서 라디오를 듣는데 광고를 통해 계속 현직 총리의 목소리가 나왔다. 나는 이전엔 미처 몰랐다. 보수당이 이토록 사람들의 살림살이에 관심이 많은지. 그러니까 진작에 좀 잘하지. 

 

 

새누리당이 툭하면 공포전술을 들고 나오는 것과 비슷하다. 다만 다른 점이라면 고정 지지자를 제외한 유동층이 이번엔 안 속았다는 점이다. 안 속았다기보다는 그간 십년에 넌덜머리가 났다고 해야 하나. 

 

 

한편 주변의 사민주의 정당 (NDP) 지지자들 가운데 투표전술로 자유당을 지지하자고 호소했던 사람들이 제법 있었다. 마치 반한나라당/반새누리당 전술로 민주당이나 새정연을 지지하자고 하는 것처럼. 실제 많은 신민주당 (NDP) 지지자들이 이탈해 자유당을 찍었고 그 결과, 제1야당이었던 신민주당이 현격히 쪼그라들었다 (103석, 30.63%->44석, 19.71%). 개인적으로 사민주의 정당 실험을 관찰하고픈 욕심이 있어서 NDP의 약진, 적어도 자유당과 연정을 구성하는 것을 바랐지만... 

 

 

어쨌든 자유당이 됐다. 자유당->보수당->자유당->보수당->자유당의 무한루프를 밟는 캐나디언들의 중도적 성향이 다시 재현됐다고 해냐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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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tthewbrett

 

 

 

 

 

2015/10/22 02:00 2015/10/22 0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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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성에대해

분류없음 2015/10/15 01:33

 

내성 (tolerance) 을 네이버 창에 치면 친절하게 심리학사전 내용을 소개해준다. 맞는 말이다. "tolerance" 는 참으로 넓은 영역에서 좋은 의미로, 나쁜 의미로, 다양한 의미로 쓰인다. 맥락을 봐야 한다. 컬리지에서 약물 (마약) 에 대해 배울 때 "tolerance" 에 대해 내린 정의 가운데 "people become less sensitive to the substance (adaptation)" 가 있다. 자극에 대한 반응이 떨어진다는 것, 즉 그 자극에 이미 적응했다는 말이다.

 

 

어제 도서관에 책을 찾으러 가는 길이었다. 동네 도서관 앞 횡단보도엔 이른바 반감음 보행자 신호 (pedestrian semi-actuated signal)가 설치되어 있다. 이미 한국에서도 보편화된 이 신호장치는 보행량이 일정치 않거나 드물 때 차량통행을 돕는 효과를 낸다고 알려져 있다. 길을 건널 때 횡단보도 앞에 있는 버튼을 누른다. 보행자가 버튼을 누르면 차량 신호기에 "정지" 신호가 뜬다. 차량은 횡단보도 앞에서 무조건 멈춰야 한다. 어제도 도서관 앞 횡단보도에서 버튼을 누르고 양 옆을 살핀 뒤 건너기 시작했다. 어디서 나타났는지 모를 승용차가 거의 무릎 앞까지 와서 끼익- 멈췄다. "fucking Chinese, go back to China!" 애써 창문 밖으로 고개를 끄집어내어놓고 소리를 지른다. 이미 나는 반쯤 건넜고 돌아볼 이유도, 관심도 없다. 더구나 "Chinese"는 나를 올바르게 설명하는 단어가 아니며 개인적으로 아직까지는 China에 갈 일도 가야할 필요도 없다. "I'm not a Chinese." 듣든 말든 상관않고 대꾸를 한 뒤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길을 마저 건넜다. 

 

 

놀랐겠지. 갑자기 보행자가 나타났으니 놀랐겠지. 어디서 감히 보행자가 나타나, 그것도 냄새나는 차이니스가 나타나 앞길을 막는 것이냐. 힐끗 본 바로는 운전자, 조수석에 앉은 이의 외관과 영어 억양에서 남아시아에서 온 티가 난다. 아마도 그 쪽 문화에서는 차량에 우선권을 주는 모양이다. 옛날 한국사회처럼 말이다. 차가 오면 사람이 알아서 피해야 하는 문화. 놀라서 식겁해서 소리를 질렀겠지. 암, 내가 그 맘 이해한다. -- 하지만 이해하는 것과 그 행동을 받아들이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처음에는 "fucking Chinese, go back to China!" 따위의 말을 들으면 화가 많이 났다. 한 번은 전차에서 백인 운전자가 늙은 중국인을 저런 식으로 모욕하는 것을 보고 차량 번호를 적어 회사에 리포트한 적도 있었다. 차차 띄엄띄엄 화를 내다가 이제는 뭐랄까, 화도 안난다. 일종의 "내성"이 생긴 셈이다. 민감도가 많이 떨어진 셈이다. 

 

 

개인적으로 생각할 때 긍정적인 방향의 내성은 아니다. (긍정적인 면도 없지 않다) 마치 이명박귾혜 정부가 괴상망측한 정책들을 마구 입안하면서 사람들로 하여금 기함을 토하고 분노하게 하다가 세월호라는 현실에 맞닥뜨린 뒤 절망하고 "적응하여" 사는 것처럼, 따라서 이제는 그 어떠한 자극에도 반응하지 않게 (혹은 "못하게") 된 것처럼 말이다. 박귾혜정부는 내성을 빠르게 돋구면서 강력한 의존성을 일궈 결국엔 사람을 사람으로서 기능하지 못하게 만드는 - 후과가 가장 지저분한 "헤로인" 같은 정부다. Heroin not Heroine.

 

2015/10/15 01:33 2015/10/15 0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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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로운날

분류없음 2015/10/08 12:28

 

점심 무렵. 한국인 마을에 있는 미용실, 단골 미용실에 예약전화를 했다. 전화를 안받는다. 일단 나가기로 했다. 지하철역 부근에 있는 올가닉 샵에 들러 비누를 사고 나오는 길에 이발해주는 선생님을 만났다. 스타벅스에 커피를 사러 가는 길이라고 하셨다. 안녕하세요? 오늘은 한 시부터 하는데요. 괜찮아요, 도서관에서 책 읽다가 한 시에 들를께요. 한국어 책을 구비한 도서관에 들러 책장을 둘러봤다. 하루키의 단편집 "여자 없는 남자들"이 들어왔다. 지난해 봄부터 기다리던 책이다. 앉아서 읽기 시작했다. 첫째 단편을 다 읽고 둘째로 넘어가려는데 누가 어깨를 툭툭 친다. 이런 곳에서 말없이 내 몸을 만질 사람은 적어도 내 상식엔 없다. 뭐라고 대답할까. 속으로 생각하면서 그 사람 냄새를 맡았는데 일단... 음 나쁘지 않다. 고개를 들어보니 미용사 선생님이 도서관까지 오셨다. 한 시경에 예약한 손님이 있는 걸 깜빡했어요. 먼저 해드리려고요. 여기까지 오시다니. 하루키 책을 체크아웃하고 발빠른 선생님을 허둥지둥 따라갔다. 

 

 

이 도시에 온 뒤로 같은 미용실에 들르고 있다. 중간에 문을 닫았을 때 (주일엔 쉰다) 다른 미용실에 갔었는데 결과가 안 좋아 많이 오래두고 후회했다. 바리깡도 샀었는데 두어 번인가 시도했다가 실패하고 그냥 머리카락을 길렀다가 나중에 몽창 잘랐다. 장발을 관리하는 데엔 영 재주가 없고 아버지 쪽 유전자 때문에 머리카락이 자라면 곱슬곱슬 제 멋대로다. 처음엔 사장님이 이발해주셨다가 나중엔 어떤 오빠가 그리고 마지막으로 지금 만나는 언니 선생님이 이발해주신다. 두어 달, 서너 달에 한 번 꼴로 들르는데 그냥 가만히 앉아 있으면 알아서 잘라주신다. 편하다.

 

 

나에겐 미용실-미용사를 바꾸는 것에 관한 두려움이 있다. 누가 들으면 대단한 머리손질을 하는 줄 알겠지만 그냥 단순한 커트인데도 이 두려움이 가시질 않는다. 아주 오래전부터 그랬다. 초등학교 때부터 고등학교 때까지는 집 앞에 있는 미용실에서 머리카락을 한 달에 한 번 잘랐다. 대학에 가서는 학교구내 미용실에서 시작했다가 그 미용실이 없어지자 학교 앞에 새로 생긴 미용실을 거의 3년 동안 다녔다. 그 미용실 언니가 말도 없이 폐업을 했을 때 마치 나라 잃은 백성처럼 좌절했다가 주변 친구들에게 실연당했냐는 말까지 들었다. 그러다가 또 학교 앞에 있는 미용실을 어찌어찌해서 다녔고 그럭저럭 미용사 언니들을 사귀는 솜씨가 느는가 싶다가 그놈의 두려움이 또 도져서 고생하다가 또 어쩌다가 그렇게 사는가 싶을 찰나에 고향 땅을 떠났다. 

 

 

이발을 잘 마치고 한국 음식을 조금 사고 오래전부터 눈여겨보았던 떡국을 먹기 위해 아주 작은 한국 식당에 들렀다. 나보다 먼저 와서 두리번거리던 라티노 한 분이 바싹 내 곁에 붙어앉았다. 김치볶음밥을 시켜서 먹던 그 분이 이 근처에 한국인 학교가 있냐고, 몇 학년이냐고 물어서 영어를 못하는 척하고 이어폰을 다시 꽂은 채 혼자 떡국을 마저 먹었다. 벽면을 마주보는 일렬 횡대의 식당 좌석에 앉아 떡국을 먹으며 하루키 책을 읽자니 마치 고등학생이 된 것만 같다. 국물이 다소 짠 것 같다는 생각을 하다가 소주나 사케가 있으면 딱 알맞겠구나 그런 불가능한 바람을 품어봤다. 계산하는데 사장님이 왜 이렇게 갈수록 말라가요, 하셔서 그냥 끙, 하고 나왔다. 지하철을 타고 집에 왔다.

 

 

하루키의 책을 읽고 이발을 하고 그로서리 쇼핑도 하고 떡국도 먹고 그렇게 보낸 그렇고 그런 - 평화로운 날이었다.

 

2015/10/08 12:28 2015/10/08 1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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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숙제

분류없음 2015/10/01 01:19

미루고 미루다 지난 주에 참여한 트레이닝 평가에 대한 답을 받았다.

 

 

한국어로 옮기면 자살예방스킬트레이닝? 좀 이상하네... 훔.

의무교육, 그러니까 꽃개가 일하는 회사의 직원들은 모두 반드시 이수해야 하는 트레이닝인데 꽃개는 트리거될 것 같아서 유사한 성격의 다른 트레이닝이나 워크샵에 참여했었다. 하지만 "반드시" 저 트레이닝을 이수하고 이수증서를 제출해야 하는 탓에 더 이상 미룰 수가 없었다. 한 달 전에 신청서를 넣고 일정을 조율하고 메니저에게 통지를 하고 기다리면서 별 일 없을 것이야. 괜찮아. 스스로 주문을 걸었다. 과연 감정의 동요없이 잘 받아들일 수 있을까. 할 수 있을 거야.

 

 

개뿔. 첫 날부터 울어버렸다. 그 자리에서 처음 만난 사람들인데도 트레이닝에 참여하는 자세랄까, 타인의 감정을 존중하고 그 감정이 더 다치지 않도록 배려하는 모습에 아, 내가 위로받고 있구나, 그런 편안함. 이들은 나를 기다려줄 자세가 되어있구나. 북받치는 설움에 눈물이 터지고 목이 뙇 메였지만 금방 추스렸다. 미안하다고 말한 뒤 하던 이야기를 끝까지 마쳤다. 누구도 중간에 끼어들거나 분위기를 바꾸려 하지 않았다. 기다려줬다. 한 사람의 감정은 오로지 그 사람의 것이기는 해도 어떤 상황에서는 또 다른 누군가의 것이 되기도 한다. 트리거된 당사자가 그 감정을 추스리는데 걸리는 시간은 기껏해야 몇 분. 하지만 열두 명이 한 그룹이었으니 나는 그들의 시간 몇십 분을 혼자서 쓴 셈이다. 그래서 미안했다. 아마 더 견기디 어려웠다면 미안하다고 말한 뒤 나갈 심산이었다. 밖에 나가 바람을 쐬고 오면 되니까.

 

 

이 나라에서 이쪽 분야 공부를 시작하고 사람들을 만나고 직접 현장에서 일을 하며 알게 된 것은 감정을 다루는 사람들의 자세 (본인의 감정, 타인의 감정) 가 한국의 그것과는 사뭇 다르다는 점이다. 어느 쪽이 더 낫다 혹은 맞다 그런 차원이 아니라 두 개의 문화가 아주 다르다. 이제부터 찬찬히 각 문화의 장점을 잘 취합하여 나를 케어하는 데에 (self-care) 그리고 클라이언트들/타인을 서포트하는 데에 잘 써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덕분에 나의 경험과 깊은 곳에 들어있던 감정을 조금이나마 드러내어놓고 객관화할 수 있는 시간을 가졌다. 완벽하진 않다. 그것을 한 순간에 할 수 있다고, 치유할 수 있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나는 계속 살아갈 것이고 삶이 다하는 순간까지 그 숙제를 해 나갈 것이니까.

 

 

지난 주에 있었던 일의 평가와 그 답신을 이번 주에 받았으니 이 나라의 평균적인 행정속도에 비해 매우 빨리 답을 받은 셈이다. 더불어 메니저도 교육시간에 대한 페이를 이러저러한 식으로 하겠다고 답장을 보내왔다. 어쩐지 속도가 빨라진 것 같아서 불길?하다면 나 너무 부정적이야? 

 

 

2015/10/01 01:19 2015/10/01 0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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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갈리아외

분류없음 2015/09/30 10:16

 

1. 메갈리아

 

"메르스갤러리"+"이갈리아의 딸들"의 조합인 "메갈리아"가 가장 흥하는 데라기에 들어가봤다. 처음엔 너무나 깜짝 놀랐다가 어찌하다 이런 게 생겼는지 유래를 리뷰해보니 충분히 납득할만하다. 사회에 널리 퍼진 여성혐오 (misogyny), 그 여성혐오를 [생각이 아닌] 행위로, [개인적인 일기장이 아닌] 공공의 영역에서 양산하는 일베의 행태와 그들이 구사하는 용어 (혹은 은어), 또 그간 여성혐오가 폭넓게 자리한 지평에서 묵묵히 침묵으로 일관했던 (passive-aggressive) 사람들을 겨냥해 정확히 반대로 표현하는 - 미러링하는 사이트다. 읽을 때는 그 점을 반드시 염두에 둬야 한다. 안그러면 더 이상 읽을 수가 없다. 예를 들어 메갈리아사전이라는 게 있는데 원본에 빗대어 용어를 정의했으므로 원본 없이 읽어내면 독해가 어렵다.

아직 일 년도 안되었으니 좀 더 지켜봐야 할 것 같다. 다만 소라넷이라는 존재를 공론화한 점, 내부 자체 도네이션 시스템을 통해 사회참여를 독려하는 점 등엔 손바닥에 빵구나도록 박수를 쳐주고 싶다. 소라넷은 꽃개도 잘 모르는, 긴가민가 하던 곳인데 이번에 자세히 알게 됐다. 끔찍한 곳이다. 여성들의 몸을 부위 별로 나누어 상품화하는 것도 심각하지만 무엇보다 '개인의 존엄권; 프라이버시' 라는 것의 의미가 이 곳에서는 아예 없다. 공공화장실, 도서관, 지하철, 탈의실, 회사, 버스, 심지어 집에서까지, 여성들의 삶과 사생활을 1) 그들의 동의없이 2) 침해하고 3) 확산-유포하여 4) 이득을 취하는 행위는 엄연한 범법이다. 사회전반의 신뢰지수를 떨어뜨리는 이런 일은 김정은 북괴 괴뢰도당보다 더 나쁘다. 어떤 사람 (사람인지 짐승인지 모르겠다만) 은 여자친구와 헤어지자 여친의 사진을 올리고 그녀의 개인정보까지 알려주겠다고 했다. 줄줄이 덧글에 이메일을 달아 더 진한 (?) 사진과 개인정보를 보내달라고 떼쓰는 사람들을 보자니 이들이 과연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알고 있는 건가 의심스럽다. 메갈리아에서는 그 이메일들을 구글링하여 그 개인들의 신상을 역으로 알아내어 '박제'하였다. 회사원, 대학생, 대학원생, 공무원... 평범한 사람들이다. 악의 평범성? 한국판 소라넷-애슐리?

꽃개는 메갈리안들의 행동을 지지하는 편이다. 다만 불쑥불쑥 남성 성기 사진이 떠서 사무실에서 읽을 때 여간 곤혹스러운 게 아니니 타이틀에 [치남이 영 좋지 아니한 부위] 라든지 [눈조심]/[눈호강], [소추] 따위의 경고글을 달아주면 좋겠다는 작은 바람이 있다. (하긴 그런 경고 타이틀을 할 거면 미러링이 아니겠지)

 

 

2. 맨스플레이닝

 

고종* 씨가 절필한 줄 알았는데 글을 계속 쓰신다. 에마왓슨에게 보내는 어떤 글을 친절하게 쓰셨는데 노정태 씨가 반론을, 슬로우뉴스 에서 반론을 싣었다. 사람들이 모두 다 참 친절하고 참을성이 깊다는 인상을 받았다. 고종*의 원글은 읽고 그냥 버리면 되는 글인데 그걸 찬찬히 읽고 분석하고 예의를 갖춰 또박또박 반박까지 해서 지면을 찾아 발행을 했다. 사람들이 참 착하고 친절하다. 메갈리아에서는 그 글을 영어로 옮겨서 에마왓슨에게 직접 보내든지 영어권 미디어에 기고하자는 제안이 올라와 누군가 번역을 자청했다. (뭐 그럴 것까지야) 고종*의 글은 그냥 뭐 ... 뭐라 이름붙여야 하나... 그냥 뭐... 쓰*기다. 옛날옛적 박귾혜에 대한 최보은 씨 논쟁까지 가지 않아도 될만큼 아주 고리타분한 프레임이다. 차라리 고종*보다 훨씬 어리고 게다가 여자이기까지 한 사람이 쓴 이런 글이 천만 배 낫다. 경향 편집국이 고종* 안티인가. 아니면 편집국이나 여성 후배 가운데 글감을 나눌 사람이 그리 없나. 하긴 고종* 따위의 인간이 여성들을 특히 자기보다 나이 어린 여성들을 어떤 식으로 대할는지 안봐도 빤하긴 하다. 교훈 다시 한 번. 사람들은 정말로 정말로 친절하다. 그리고 유독 어떤 부류의 사람들은 쓸데없이 더더욱 친절하다.

 

 

3. 안전이별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와 우울증, 섭식장애 및 알콜중독과 간경화까지 겪고 있는 한 클라이언트. 아버지를 만나 대화해보니 3년 전 이별한 (전) 남자친구에게 죽도록 맞아 거의 죽을 지경에서 살아난 뒤로 위 증상들이 발현됐다고 한다. 처음에는 술을 마시기 시작했고 술을 마시면서 섭식장애 (Bulimia nervosa) 와 체중감소를 거쳐 상담 뒤 정신장애 진단을 받았다. 그 뒤 기억력 감퇴와 분노조절장애 등으로 몇 번의 범죄를 저지르고 꽃개가 일하는 곳에 오게 되었다. 도울 수 있는 길이 상당히 제한적이다. 마치 죽기 전 에이미 와인하우스 (Amy Winehouse) 를 연상케하는 그녀의 외모에 간혹 사람들은 놀라기까지 한다. 지난 번엔 엄마 집에 가겠다고 해서 택시를 불렀는데 택시 기사가 그녀를 보자마자 줄행랑을 놨다. 리햅센터에 자리가 나기를 기다리고 있는데 부디 그 때까지 별 탈 없이 머물다 가기만을 바랄 뿐이다. 밤근무를 할 때엔 그녀가 무탈한지 잘 자고 있는지 신경이 쓰인다. 두어 번 들여다보고 숨쉬는 것을 확인하고 문을 닫고 나오며 큰 한숨을 혼자 쉰다. 여기든 한국이든 파트너 폭력을 겪고 생사를 오가는 경험을 해야만 하는 여성들은 참으로 많구나. '안전이별'이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구나 실감하는 중이다. 이 경험이 침소봉대라면 좋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는 것. '숨쉴한'이란 말은 듣기에 기분 나쁜 '말'일 뿐이지만 여성들은 최소한 적어도 삼 일에 한 명씩 파트너 폭력에 의해 죽어나간다는 '사실'을.

 

 

2015/09/30 10:16 2015/09/30 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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