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아는 여자, Someone Special, 2004>

분류없음 2013/08/13 11:38

남들 다 봤다는 그 영화 <아는 여자, Someone Special, 2004>를 오늘에서야 봤다. 지하조직이 몇 년 전에 정말 재미나게 봤다고 - 참, 그이는 이나영을 좋아해 - 했는데, 봐야지 봐야지 하다가 2013년 오늘에서야 봤다. 장진 영화의 특징이기도 한 정말로 독특한 (extraordinary) 캐릭터들이 나온다. 옛날에 봤으면 이해하기 어려웠을 캐릭터들인데, 수퍼 내성적(super-introvert)으로 성격이 변해서 그런가 아주 잘 납득이 가요, 납득이.

 

무엇보다 야구선수와 야구를 소재로 차용한 점이 재미지다. 이나영이 과일을 깍고 정재영이 과일을 기다리면서 - 사실 과일을 깍는 신은 두 사람의 어색함을 덮는 기제일 뿐 - 티비로 야구를 본다. 왜 1루에서 3루로 바로 안가고 2루를 거쳐 가냐는 질문, 야수가 땅볼을 잡아서 1루로 송구하지 않고 관중석으로 바로 던지면 어떻게 되냐는 질문. 글쎄, 나로선 단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은 질문이라서 '당황'했다. 나의 머릿속 대답은 "2루를 안 거치면 수비수가 2루 송구를 하지 않겠어? 그럼 바로 아웃이고 말이야." "관중석으로 던져도 게임은 지속되고 아마 타자주자 포함 주자들이 두 개씩 진루하는 것으로 결정하지 않을까?" 야구는 룰이야, 다른 건 몰라도 야구는 룰이야, 라고 믿고 있었던 내가 단 한 번도 하지 못한 질문을 아니, 과거에 들었더라도 별반 개의치 않았던 질문을 오늘 영화 속에서 이나영이 던지는 것을 보니, 깊이 깊이 생각하게 되더라는. 거참 야구도 별반 재미없는 인생이랑 다를 게 없네. 시큰둥...

 

역시 (이성애자) 남자들이 사랑할 수밖에 없는 이나영 캐릭터이기는 한데, 섹슈얼리티에 대한 지향을 떠나 사랑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 그런 캐릭터, 였다고 하면 나, 감독한테 지는 건가?

 

리뷰를 찾아보니 오래된 영화라 별 것을 찾기란 기약없는 방황 같고 아시안무비웹이라는 데에서 하나를 찾았다. 이렇게 지친 속과 다친 마음을 영화로 달래는 것도 기약없는 방황 같구나. 옘비.

 

* 하지만 야구는 여전히 재미있다고요. 트윈스가 오늘 내일 1위에 등극하는가, 마는가. 과연 18년 만의 한을 풀 수 있을 것인가, 없을 것인가. 젠장. 벌써 18년이나 지난 거야? 이런 18.

** 요즘은 트윈스가 잘하니까 별 상관없는데 올 초까지 룸메이트께서는 종종 울화통을 터뜨리는 내게 이런 말씀을 하시곤 했다. "저, 그런데, 응원하는 팀 좀 바꾸면 안될까요?"

*** 영화의 앞부분. 헤어지자는 여자친구 (오승현) 에게 퍼부을 갖가지 분노의 말과 행동을 생각으로만 하다가 결국 "그래, 알았어 (it's okay)" 라고 말하는 정재영을 보다가 속이 터지는 줄 알았다. 그런데 나는 이 곳에서 살면서 괜찮지 않은데 괜찮다는 (it's okay) 말을 자주 하게 된다. "괜찮다"고 말한다고 괜찮지 않은 현실이 바뀌지 않는다. 이것을 잘 알면서도 자꾸 저렇게 말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괜찮아야 한다 (should be okay)" 는 강박 때문인가? 아마도.

 

 

2013/08/13 11:38 2013/08/13 1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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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를 떠나고 나면

분류없음 2013/08/13 01:46

지금까지 살면서 인생의 단면 하나하나 내 뜻대로 된 적이 없었다. 그렇다고 내 뜻을 크게 어긋난 적도 없다. 타인들의 시선으로 보면, 나는 꽤 성가신, 예민하고 날카로운 사람이지만 나는 늘 내가 세운 원칙을 조금씩 수정하면서 원만하게 깍아내면서 삶의 순간들을 살아왔다. 내 인생 최초의 타협 -글씨를 오른손으로 써야 한다는 할머니와 부모님의 압박에 승복한 것. 아마 다섯 살 정도였을 거다- 이래 단 한 번도 애초에 세운 고집 그대로 강행한 적이 없는 것 같다. 아마 그렇게 살아왔다면 벌써 저승에 가 있겠지.

 

모든 사람들이 아마도 다들 이렇게 살고 있을 것이다. 그들 나름대로 연민과 사정과 사연이 있고 그래서 사람들은 자신의 생각을 고집하기보다 다른 사람의 말을 듣고 따르려 애쓰는 것도 잘 알고 있다. 삼십 넘게 ‘잘’ 살던 내 나라를 떠난 것은 나의 고집이었다. 물론 타인의 영향, 가장 가까운 곳에 있던 타인의 영향도 컸지만 내 스스로 결정하지 않았다면 나는 아마 이 낯선 나라에 있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분명하다.

 

후회라고 해야 하나. 문득문득 후회의 국면에,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나, 그 후회의 국면에 들어서는 일이 잦아지고 있다. 이 도시를 떠나야 하나, 그래서 이 도시를 떠나면, 그리고 나면? 아예 이 별을 떠나야 하나? 그래서 그 뒤엔? 이 지구를 떠나고 나면?

2013/08/13 01:46 2013/08/13 0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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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gust 7-8, 2013

분류없음 2013/08/08 16:18

일주일 사이에 오버나이트, 이브닝, 데이 근무를 번갈아가며 했더니 생활리듬이 꼬였다. 아침부터 밖에 나가 손님을 맞고 점심을 먹고 늦게까지 대화를 같이 하고 났더니 진이 빠져버렸다. 이른 저녁에 곯아떨어져 눈을 뜨니 밤 아홉 시. 밥을 대충 먹고 미뤄둔 영화 <실비아 Sylvia >를 봤다. 한국에 있을 적에 그녀의 일기와 시를 읽으면서 이해하기 힘들었던 대목들이 이 나라에 온 뒤 하나둘 살이 돋아나듯 되살아났고 영화를 볼 마음을 먹은 것은 몇 달 전부터 불어닥친 감정의 소요를 다스려야겠다는 다짐 때문이었다. 영화는 역시 별로였지만 다시금 그녀의 시를 읽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지금 시각은 이 곳 기준으로 새벽 3시 7분이다. 아침에 다시, 오늘처럼 일찍 일어날 수 있을지 장담은 못한다. 생활리듬은 스스로 찾지 않는 한 사연이 생기면 무너지기 쉽다. 외부의 힘으로 강제하면, 그러니까 일을 한다든지, 애써 약속을 잡는다든지 그런 방식으로 찾게 되면 일하지 않는 날, 일요일 같은 날엔 하루를 뭉개기 쉽다. 이것은 내 인생이 말해주는 바다. 일을 해도 즐겁게 하면, 일 속에서 그 가운데 보람을 찾게 되면 일요일을, 쉬는 날을 빠릿하게 보낼 수 있지만, 그 반대일 경우 이른바 '월요일병 (a Manic Monday)'을 겪게 되더라는.

 

한 번 무너진 감정의 소요는 되살아날 기미가 없다. 애써 겉으로 태연한 척, 잘 이겨내고 있는 척해도 어지간한 힘으로는 되살릴 수 없음을 잘 알고 있다. 다만 시간이 흐르길, 그 시간 속에 내맡겨놓는 방법 외에 왕도는 없는 것 같다. 지금까지 내가 살아온 방식으로는 그런 것 같다. 이제 계절은 가을로 치닫는다. 아침저녁으로 쌀쌀한 기운이 그것을 말해준다. 9월이 오고, 10월이 오고, 아까 영화 속에서 바라봤던 짙은 단풍의 계절이 돌아오고 또 눈이 내리고 눈이 녹고 하는 동안 이 소요가 가라앉기를 다만 애써 바랄 뿐이다.

2013/08/08 16:18 2013/08/08 1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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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도 미움도 없는 사람?

분류없음 2013/08/07 16:02

사랑하는 사람과 만나지 말라. 미운 사람과도 만나지 말라.
사랑하는 사람은 못 만나 괴롭고, 미운 사람은 만나서 괴롭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사람을 만들지 말라.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 것은 커다란 불행.
사랑도 미움도 없는 사람은 얽매임이 없다.

 

- 법구경 (法句經, Dhammapada) 중에서

 

2013/08/07 16:02 2013/08/07 1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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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소리가 왜 울리나 궁금한가?

분류없음 2013/08/05 05:57

'미드나잇 파리' (Midnight in Paris, 2011)를 보면 성질 더러운 헤밍웨이가 잠깐 나온다. 후까시 존나 잡기로 유명한 그 할배가 이 사실, 자기가 잠깐 나온 걸 알면 찌질이 본성을 폭발할지 모르겠다만 그의 작품은 대부분 영화화되었고 픽션이든 논픽션이든 소설이나 영화를 보면 하나같이 그는 더러븐 성질의 존나 깝치는 '마초'로 나온다. 실재로도 '마초'임에 틀림없는 것 같다. 마치 IMF 이전 한국 가부장 아저씨들의 모습 같다고나 할까. 이 외에도 그의 흔적을 찾을 수 있는 영화로는 '무기여 잘 있거라' (A Farewell to Arms, 1932),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For Whom the Bell Tolls, 1943), '킬리만자로의 눈' (The Snows of Kilimanjaro, 1952),  '파리는 여자였다' (Paris Was a Woman, 1996, 다큐, 국내 미개봉),  '러브 앤 워' (In Love and War, 1996), '헤밍웨이와 겔혼' (Hemingway & Gellhorn, 2012, 국내 미개봉) 등이 있다.

 

영어공부 하려고 마음먹어본 사람 가운데 그의 '노인과 바다 (The Old Man and the Sea)'를 원서로 안 읽어본 사람, 아니 읽으려고 노력하지 않았던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붉은 색 펭귄 문고본처럼 생겨서 시사영어사에선가 만들었던 시리즈 가운데 가장 잘 나가던 책이었다. 이제 헤밍웨이 사후 50년이 지났고 그 소유권도 해제되었을테니 이제 슬슬 헤밍웨이 책들이 나올 법도 한데 그렇게 수선떠는 소리가 없는 걸 보니 아마도 그는 이제 유행을 덜 타는, 아마도 피츠제럴드 (S. Fitzgerald) 같은 사람이 된 모양이다. 하기사, 우리 세대와 바로 윗세대만큼 헤밍웨이를 추모하고 떠받들던 세대도 없었고 앞으로도 없겠지. 노벨상 값이 여기까지인가.

 

1997년 어느 날, 어느 극장이었는지는 기억에 없는데 '러브앤워 (In Love and War)'를 봤다. '무기여 잘 있거라'와 다소 오버랩되는 내용이라고 들은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그러니까 사전 정보를 갖고 갔는지 아닌지 그건 잘 모르겠다. 더구나 1997년이면 '한가하게 영화나 보고 다닐' 수 있는 그런 정세도 아니었는데 혼자 영화를 본 것으로 기억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아마도 '몰래' 보지 않았나, 싶다. 참 슬펐다. 감성을 아주 잘 조합한 영화였고 그저 그렇게 뻔한 줄거리임에도 사람의 감정을 읽고 호소할 줄 아는 영화였다. 눈물이 나왔던 것 같은데 꾹꾹 참아서 끝끝내 결국 울지는 않았다. 그리고 몇 년이 지난 뒤 이따금 이 영화의 몇 장면들이 떠오르다가 재작년 이 도시에서 '미드나잇 파리'를 본 뒤로는 그 주기가 짧아졌다. 본격적인 패러노이아. 아마도 영화를 보던 당시 억눌렀던 감정들이나 감정의 잔흔들이 솟구쳐 오르는 게 아닐까.

 

그리고 어제 'Hemingway & Gellhorn'을 봤다. (한국에선 극장 상영을 안한 모양인데 DVD는 구할 수 있는 것 같다.) 우선 가장 친한 친구, 니콜 키드만을 좋아하는 가장 친한 친구가 떠올랐다. 꼭 보려무나. 누군가의 풋노트(각주)로는 살고 싶지 않다며 인터뷰를 마치는 겔혼 Gellhorn. 사실 겔혼은 헤밍웨이의 법적인 네 명의 아내 가운데 유일하게 헤밍웨이를 뻥 차버린 여자로 알려져 있거나 독하고 독립적이며 자유분방한 캐릭터의 종군기자로 알려져 있을 뿐이다. 위키피디아를 찾아도 변변한 기록 하나 없다. 이것은 다만 헤밍웨이-겔혼의 관계 뿐 아니라 모든 남-여 커플의 관계 (혹은 여-여/남-남 커플이라 할지라도 세상이 둘 가운데 어떤 사람을 남성 '역할'로 기억하는가에 따라) 에 해당한다. 영화 속에서도 헤밍웨이는 또 다시 전장으로 떠나겠다는 겔혼에게 화를 낸다, "너를 만든 건 나야" 하지만 헤밍웨이는 알아야 한다. 헤밍웨이, 너를 만든 건 "겔혼" 그녀라는 것을.

 

'무기여 잘 있거라'는 헤밍웨이가 19세 청년 시절, 제1차 대전이 한창이던 유럽 (이탈리아) 전선에서 직접 경험한 것을 근거로 씌였다. 당시 연상의 간호사 여인을 사랑했고 그 로맨스는 영화 '러브앤워'에서 지극히도 슬프고, 괴롭고, 자세히 묘사된다. 헤밍웨이, 그의 곁에는 언제나 여성(들)이 있었고 그의 작품의 원초적인 질문도 사실은 (여성들과의 혹은 그 이상의) '관계'에 대한 것을 담고 있다. 인간의 고독, 외로운 인간, 그 인간이 세상과 어떻게 관계를 맺을 것인가. 이런 면에서 잘 나가는 작가들이나 인사들을 보면 곁에서 돌봐주는 이, 젖주는 이가 없으면 제대로 발도 딛고 일어서지 못했을 그런 경우들이 왕왕 있는데 그 맥락을 가장 잘 보여주는 게 '파리는 여자였다'이기도 하다. 나는 이것을 책으로 먼저 읽었다. 한국어판 책이 2007년엔가 나왔는데 과거 교류가 있던 한 진보넷블로거가 편집했다.

 

1997년에 '러브앤워' 영화를 볼 땐 몰랐는데, 어제 'Hemingway & Gellhorn'을 보고나니 이미 헤밍웨이는 19세를 전후로 자신의 인생을 스스로 어떻게 정리할지, 결심한 것은 아니었을까, 그런 의심을 하게 됐다.

 

마지막으로,

'누구를 위하여 종을 울리나'의 출처이기도 하고 헤밍웨이 자신도 'Hemingway & Gellhorn' 속에서 언급하고 있는 시를 하나 읽어본다.

 

전공 때문에 잠깐 귀동냥으로 들었던 존 단 (John Donne, 1572~1631)의 Meditation 중,

 

No Man Is An Island

 

No man is an island,
Entire of itself,
Every man is a piece of the continent,
A part of the main.
If a clod be washed away by the sea,
Europe is the less.
As well as if a promontory were.
As well as if a manor of thy friend's
Or of thine own were:
Any man's death diminishes me,
Because I am involved in mankind,
And therefore never send to know for whom the bell tolls;
It tolls for thee.

 

구글번역기에 돌리니 엄청난 의역으로 변신. 어쩔 수 없이 어떤 분의 블로그를 링크. http://blog.daum.net/sung.im/77

 

 

2013/08/05 05:57 2013/08/05 0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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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을 찌우자!

분류없음 2013/08/04 13:55

지난 늦은 봄에 긴바지 두 개, 짧은 바지 두 개, 셔츠 몇 개를 샀다. 여름에 입을 요량이었다. 그러니까 4월 말이나, 5월 초에 산 것 같다. 셔츠는 늘 그렇듯이 잘 입고 다닌다.

 

바지 가운데 청바지는 구입한 뒤 몇차례 입고 더워서 잘 입지 않았다. 짧은 바지 하나는 한창 더울 때에 잘 입고 다녔다. 며칠 전 청바지를 입으려고 꺼냈는데 아 글쎄, 이게 너무 헐렁하다. 허리는 물론이고 엉덩이와 허벅지까지 너무 헐거웁게 변했다. 늘어났나? 옷걸이에서 계속 대기하던 짧은 바지 하나도 입을 수가 없다.

 

봄을 경과하고 여름을 나면서 살이 많이 빠졌다. 대략 5kg 정도 빠진 것 같다.

 

1999년에 성신여대 앞 길거리에서 산 짧은 바지가 있는데 너무 예뻐서 버리지 않고 있었다. 2004년인가, 매일 술을 먹고 앉아서 컴퓨터 작업을 하고 그런 일을 하는 동안 배가 너무 많이 나와 이 바지를 입을 수 없었다. 그 뒤로도 술배가 들어가지 앉아서, 또는 허벅지에 살이 붙어서 입을 수가 없었다. 그래도 바지가 너무 이뻐 버리지 않았다. 그런데, 그런데! 이 바지가 올 해에 꼭 맞는 거다. 

 

올해 초에 한국에서 가져온 옷들을 몽창 버린 적이 있다. 다 맞지 않아서. 그 버린 옷들을 떠올리면 억울하다는 생각도 드는데, 무엇보다 이제 옷을 - 특히 바지를- 어떻게 사야 할지 그게 막막하다. 어느 기준에 맞춰야 하는 거지. 훅 빠져버린 살들이 바로 올라올 리도 만무하고.

 

빠진 살도 그렇지만, 얼굴이 해골같이 변했다. 입을 꽉다물면 없던 보조개도 생긴다. 얼굴에 덕지덕지 일어난 건선에, 주름살에... 너무 못생기게 변했다.

 

어서 정신을 차리고 마구 음식을 먹어야 겠다. 모든 것을 잊고 먹는 일에 집중할 때이다.

 

다 끊고, 생각을 끊고 먹는 일에 집중하자.

술을 끊듯이, 담배를 끊듯이 확! 끊을 수 있는 것이라면. 그런 것이라면!

 

 

 

 

 

2013/08/04 13:55 2013/08/04 1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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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쉽 (Editorship)

분류없음 2013/08/03 01:52

일터에서 만난 한국인이민자 한 분이 빌려주신 책을 읽고 있다. 강신주의 <맨얼굴의 철학 당당한 인문학>. 그 분은 한국에서 굉장한 운동이력을 지닌 분이시지만 지금은 '조용히' 살고 계시다. 하지만 그분의 생각이랄지, 인생철학이랄지, 개인 스스로 진행하는 투쟁이랄지 여느 운동권보다 존경할 만한 면이 많은 그런 분이다. 만약 한국에서 만났다면 '정파'가 달랐으니 연을 깊이 맺을 일은 아무래도 내 이십대에서는 삼십대 초반에서는 불가능했을 것 같다.

 

지난 밤에 잠들기 전 읽은 파트는 '에디터쉽'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 인문학 출판에 대한 강신주 본인의 생각이 짙게 묻어난다. 최근 그린비출판사 사태?도 있었고, 나름대로 관심있는 분야이기도 해서 눈에 쏙쏙 들어왔다. 물론 보리출판사의 '4시 칼퇴근'에 대한 언급도 있다.

 

하지만 에디터가 저자의 글을 최초로 읽는 독자라는 측면에서 그리고 그 글을 매만지는 노동자로서 어떤 프로패셔널리즘을 갖추어야 하는지 참으로 잘 읽어내었다. 인문출판사가 살아남기 위해 어떤 길을 가야 하는지도 잘 짚고 있다. 9장 음악이 필요한 시간, 을 권하고 싶다, 인문출판사 사장님들에게, 그리고 에디터들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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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만난 한국인들과 이주일에 한 번, 인문학 세미나를 하고 있다. 근대서양철학, 지금은 흄을 하고 있다. 예전에 얼렁뚱땅 읽어제낀 책들을 한글과 영어로 함께 '억지로' 읽어내면서 사람이 사람을 이해한다는 것에 대해 그리고 내가 어떻게 살고 싶은지에 관해 다시 생각해내는 이 시간이 귀중하다. 만약 과거에 이런 느낌을, 소중함을 알았다면 그렇게 인생을 막 살지는 않았을 것 같은데, 사실 지나고보니 알게 되는 것들이라 후회해도 소용없는 일이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읽어도 아픈 사랑을 이해하지 못하면 소용없듯이.

 

2013/08/03 01:52 2013/08/03 0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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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gust 1, 2013

분류없음 2013/08/02 15:42

August 1st. 8월 1일이다. 8월인 줄 모르고 7월 메트로패스를 들고 버스를 탔다. 버스운전기사가 그냥 웃었으므로 오늘이 8월 1일인 줄 몰랐다. 인문학 세미나를 하러 갔다가 동료 가운데 하나가 벌써 8월이야, 하면서 신세한탄을 했고 비로소 오늘이 8월의 첫 날인 것을 알았다.

 

낮에 어떤 분과 전화 통화를 하다가 나도 모르게 울컥 눈물이 치솟아 엉엉 울었다. 40여 분을 그렇게 울고나니 진이 빠졌지만 마음이 한결 가벼웠던 것도 사실이다. 평소에 이런 훈련을 잘 하지 못해 갑자기 감정이 엉키면 나도 잘 모르는 내 모습에 깜짝 놀란다. 감정을 그때 그때 잘 표현하고 슬기롭게 드러내는 훈련을 서른이 훌쩍 넘어 시작하려니 참, 어렵다.

 

사실 이번 주에 잡 인터뷰를 두 번이나 했는데 -하나는 승진 인터뷰, 하나는 전화로 하는 새로운 에이전시 인터뷰- 둘 다 결과가 좋지 않았다. 아니, 둘째 것은 과정도 좋지 않았다. 7월엔, 2013년 7월엔 정말로 많은 일을 겪었다. 심장이 완전히 너덜너덜해서 다 떨어져 나간 것 같다. 말할 수 없는 어떤 것, 글쎄 이건 아마도 무덤까지 가져가야겠지. 생각하는 것을 생각하지 말자. 시간이 약이다. 9월이 오고, 10월이 오고, 계절이 다시 바뀌고 해가 바뀌면 아무렇지도 않게 그렇게 잘 되겠지. 그럴 수 있겠지.

 

기운 내자. 영차, 영차.

 

2013/08/02 15:42 2013/08/02 15: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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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비우기

분류없음 2013/07/28 10:59
마음을 비우면 괜찮을 줄 알았는데 괜찮지 않은 것을 보니 마음을 비운 게 아니었나보다. 마음을 비웠다고 믿고 싶었던 것이지. 어떻게 하면 마음을 비울 수 있을까.
2013/07/28 10:59 2013/07/28 1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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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사람들

분류없음 2013/07/26 04:50

http://www.christiantoday.co.kr/view.htm?id=265590

 

참 안된 사람들이다. 이 사람들은 참 안된 사람들이다. 타인을 억압하는 것으로만 자신의 존재를 증명할 수 있는 이들은 참으로 안된 사람들이다.

 

그리고 이들은 참으로 솔직한 사람들이다. 사람들의 ‘관계’라는 걸 성적인 것으로만 바라보는 자신들의 본질을 날 것 그대로 보여주는 이들은 참으로 솔직한 사람들이다.

 

하지만 이들은 참으로 못된 사람들이다. 자신들의 억압 (sexual repression)을 타인에게도 강요하기 때문에 이들은 참으로 나쁜 사람들이다.  

 

 

2013/07/26 04:50 2013/07/26 0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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