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년째 연애 중, 을 보고

분류없음 2013/07/23 14:21

*

영화 '6년째 연애 중'을 유튭으로 봤다. 기억에 남는 대목은 신성록이 감기기운 있는 김하늘에게 감기약을 권하고 김하늘이 이걸 그냥 먹는다. 나로서는, 이 나라에서 몇 년 살아서 그런가, 날 것 그대로 받아들이기 다소 어려운 장면이다. 물론 둘이 아주 친하고 말도 살도 섞고 그런 사이라면 뭐, 그럴 수도 있겠지. 그런데 신성록과 김하늘은 영화의 맥락 상 그런 사이까지는 아닌 것 같다.

*

얼마 전, 일하던 곳에서 무료로 배포하는 브로셔를 정리하다가 "바(bar)나 클럽(club)에 가서 자신의 잔을 들고 이동하라"는 안내 문구가 붙은 브로셔를 봤다. 같이 일하는 사람에게 이게 무슨 말이냐, 고 물으니 대답인즉슨, 모르는 사람이 내 잔에 정체모를 약을 탈 수도 있으니 자신의 잔에 대한 책임은 자신이 져야 한다, 는 것.

처음에는 세상에, 아무 것도 믿을 수 없는 데구나, 내가 사는 이 도시라는 곳은. 화들짝 놀랐다. 하기사, 인도 등지를 여행하는 여대생들이 친절한 현지 남성이 권한 음료를 마시고 졸도해 성폭행을 당했다는 기사를 보기도 했으니 뭐, 새삼스러울 것도 없지. 

하지만 여기에서는 "약(물)"에 관한 한 개인의 책임과 그 책임에 대한 물음도 엄밀하다. 유독 바(bar) 등지에서만 강조하는 일이 아니라는 거다. 평소에 친하게 지낸다고 해서, 그 사람이 아프다고 해서 아무 약이나 권했다가는 대략 좋지 않은 일이 일어날 수도 있다는 거다.

*

또 얼마 전, 일하던 곳 (앞서 말한 곳과 같은 곳)에서 아침에 출근해 업무 준비를 하는데 과거에 나의 상사였던 사람이 와서 생리통으로 컨디션이 좋지 않다는 호소를 하면서 생리대를 찾았다. 나는 pain-killer가 필요하냐고 물었고 그녀는 반가워하며 있으면 달라고 했다. 나는 아침은 먹었느냐, 아침을 먹지 않았으면 머핀이라도 먹고 약을 먹으면 좋겠다, 고 했다. 그녀는 매우 고맙다면서 "네가 내 남편보다 낫다"고 하는데 그 말이 그냥 빈 말이 아니었다. 나는 가방에서 타이레놀 통을 꺼내 두 알을 주었고 그녀는 고맙다고 거듭 감사 인사를 하곤 내 방을 떠난 뒤 일자리를 찾고 있으면 돕겠다면서 내 이메일 주소를 받아갔다.

나는 그녀가 물었던 생리대만 찾아서 주면 되는 거였지만 역시 생리통으로 고생하는 사람으로서 오늘 하루를 견뎌야 할 그녀의 고통을 '짐작'했던 것 뿐이었고, 그녀 또한 나와 지속한 2년여의 시간으로 나를 신뢰했던 것 뿐이었으리라. 그러나 그녀는 내게 빚진 것 (i owe you)이 있다고 여겼을테니 그녀 또한 짐작으로 내게 가장 급한 일자리 문제를 거론하며 이메일 주소를 받아갔으니 서로 "퉁"친 셈이다.

*

신성록과 김하늘은 감기약을 주거니받거니 한 뒤로 친해진다. 둘 사이에 논리론 설명할 수 없는 공감대가 형성된다. 그렇다고 둘이 서로 그 감기약 때문에 "퉁"치는 그런 대목은, 맥락은 그리 도드라지지 않는다.

*

문화적 차이라는 건가. 이건.

*

어쨌든 영화는 그냥 그랬다. 한국 영화는 몇몇 감독의 영화를 제외하곤 결말이 대단히 후지다. 김빠지는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같이 사는 사람의 말로는 (한국) 상업영화엔 "개입하는 사람이 너무 많아서" 그렇다는데 이건 뭐 한두 편도 아니고 보는 영화마다 그러니 뭐랄까, 결말을 준비하고 영화를 보라는 건가. 아니면 보지 말라는 건가. 

*

"사랑"이란 혹은 사람 사이에 오가는 "감정"이란 논리로 설명할 수 없는 부분이 많기는 많은 것 같다. 그걸 논리로 풀기 위해 덤비다가는 불가지론으로 빠질 수도 있다는 것을 이제는 인정해야 할 것 같다.

 

2013/07/23 14:21 2013/07/23 14:21
tags :
Trackback 0 : Comment 0

외로운 사람들에게 최고

분류없음 2013/07/22 01:01

http://www.youtube.com/watch?v=n0uAQu00T6w

2013/07/22 01:01 2013/07/22 01:01
tags :
Trackback 0 : Comments 2

외로운 일요일

분류없음 2013/07/21 22:59

*

일요일 아침. 남들은 -내가 아는 사람들은- 다 잘 것 같은 시간에 퇴근 준비. 백투백은 무리인가. 어제 아침처럼 경쾌한 기분이 나질 않는다.

 

*

일요일 아침엔 9시부터 지하철이 다닌다. 어쩔 수 없다. 지하철 다니는 시간까지 버스를 타고 최대한 가까이 가는 수밖에. 버스는 Dufferin 역에 도착했는데 여전히 9시 전이다. 잠긴 지하철 문을 야속하게 바라보다가 책을 꺼내 읽기 시작.

 

*

지하철로 내려가는 문이 열렸다. 플랫폼에서 지하철을 기다리는데 이게 또 오질 않는다. 책을 집어넣고 세미나 다음 주제인 흄에 대해 읽기 시작.

 

*

안그래도 무거운 가방을 들었는데 자리가 없다. 가방을 어깨 한 쪽에 짊어지고 한 손으로 뭘 들고 읽자니 여간 고단한 게 아니다. 자리가 나서 앉았는데 어떤 백인 할매가 하필이면 나한테 와서는 자리를 내어달라고 한다. 젠장.

 

*

근대(서양)철학을 읽으면 읽을수록 사람에 대한 연민이 깊어진다. (당시) 사람들의 생각, 관념, 지각하는 방식이 주는 외로움 때문이다. 이것은 지적 유희가 아니다. 정말로 정말로 사람을 이해하고 싶다. 그리고 그 사람들이 인식해내는 타자, 상대를 이해하는 그 방식을 이해하고 싶다. 이제 조금만 아니, 몇 개월만 달리면 다시 맑스일 것이다. 2013년, 혹은 2014년의 맑스(철학)는 1999년, 2000년, 혹은 2000년대 중반, 나의 맑스와 무엇이 다를 것인가. 시선의 차이, 그 차이가 궁금하다. 조급증 같기도 하고.

 

*

진정한 에피쿠로시안이 되려면 동양철학을 다시 읽어야 하는 건 아닐까. 역시 죽음에 대한 생각을 하다가 귀로를 이렇게 그리는 건 내가 황인종이기 때문인 건가. 아시아에서 왔기 때문인 건가. 중국의 콜로나이제이션 영향 아래 태어나 살았고 살고 있는 사람이기 때문인 건가.

 

*

어디서 왔는지는 알겠는데, 알 것 같은데 어디로 가야할지 모르는 이 갑갑함. 외롭다. 외로워. solitude.

2013/07/21 22:59 2013/07/21 22:59
tags :
Trackback 0 : Comment 0

아픈 지구

분류없음 2013/07/20 17:18
날씨가 아주 이상하다. / 폐인이 된 것 같다. 먹고 싶은 것도 하고 싶은 것도 없다. 숨쉬는 게 귀찮다. / 오버나이트 근무는 하면 할수록 점점 더 무덤에 가까워지는 그런 기분을 자아낸다. / 우박이 내렸다. / 이 모든 게 다 지구가 아프기 때문이다. / 지구야, 아프냐, 나도 아프다.
2013/07/20 17:18 2013/07/20 17:18
tags :
Trackback 0 : Comment 0

죽부인

분류없음 2013/07/19 02:53

날이 너무 덥다.

이 도시에 온 뒤로 밤에 잠을 이루지 못할 정도로 고생한  적은 없는데 이번 여름은 유독 덥다.

죽부인이 필요하다. 아침에 일어나 이 도시에서 죽부인을 구할 수 있을까 검색했다. 구글에 뭐라고 써야하지, 고민하다가 "bamboo madame"을 쳐 넣었는데 꽥. 아주 괴상한 이미지가 뜬다.

그럼 뭐지, 죽부인이면 bamboo+wife? 혹시?

속는 셈치고 bamboo wife를 쳤더니,

젠장,

위키에 이게 뙇, 하고 있다.

http://en.wikipedia.org/wiki/Bamboo_wife

그러니까, "부인"하고 나이든 여성을 부를 때 쓰는 경어체의 그 존칭이 아니라 "아내" 즉, 한 침대를 쓰는 여자,  그런 의미로 "부인"을 쓰는 거였구나.

하긴 madame이면 일반적인 호칭인데 아무 부인들을 껴앉고 그럴 수는 없는 노릇이니. 이거 원, 관점이 이렇게 다르니 개념도 정말 다르긴 다르구나.

2013/07/19 02:53 2013/07/19 02:53
tags :
Trackback 0 : Comment 0

치욕을 이겨내는 글쓰기

분류없음 2013/07/18 06:13

"강한 자가 약한 자에게 못할 짓이 없고, 약한 자 또한 살아남기 위해 못할 짓이 없는 것이옵니다"


- 김훈 (2007), 남한산성, 학고재, p.339

2013/07/18 06:13 2013/07/18 06:13
tags :
Trackback 0 : Comment 0

It never rains but it pours

분류없음 2013/07/16 15:57

*

나는 바보가 아니야, 라고 말하면 괜찮을 줄 알았는데 더 바보가 된 것 같다.

 

*

영화, 7번 방의 선물, 을 보았다. 처음에는 강아지가 나오는 '마음이'를 보려고 했는데 너무나 슬퍼서 도무지 감당할 수가 없어 유툽을 통해 걸리는 영화를 고른 것이 바로 '7번 방의 선물'

주인공은 지적 장애 -발달 장애-가 있지만 누구보다 강한 부성애를 지닌 용구 (류승룡). 그는 말을 잘 하지 못한다. 기억력은 뛰어나지만 스피킹 능력과 논리적 추론력은 6살에 머물러 있다. 단순하다. 수학으로 얘기하면 연산법칙 2번을 넘어가는 것은 아마 곤란할 것 같다. 결국 딸을 위해, 딸을 위하는 것이 그것이라고 생각해 자신이 저지르지도 않은 일을 했다고 고변한 뒤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다.

아무래도 이 곳에서 나는 그 주인공처럼 취급될는지도 모르겠다. 영화를 보는 내내 용구에게 감정이 이입되어 눈물을 한 바가지 이상 쏟은 것 같다. 아무래도 나는 이 나라에서 '잘' 살 수 있을 것 같지가 않다.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지 않기 위해, 억울한 죽음을 당하지 않기 위해 바득바득 살아야하나, 그런 생각을 했다.

 

*

'그 겨울 바람이 분다'는 텔레비젼 드라마를 잠깐 봤다. 예쁜 송혜교와 잘생긴 조인성이 함께 나오니 그 둘의 조합만으로도 "그림"이 된다, 싶다.

짝이 날더러 조인성을 닮았다고 해서 뭐야, 했는데 허리가 긴 게 닮았단다. 쿨럭. 그럼 그렇지.

 

*

생각해보니, "나는 바보가 아니야"라고 말하는 사람은 정말 바보인 것 같다는 그런 생각이 들었다. 정말 바보는 그런 말을 하지 않을테니.

 

*

전혀 맥락은 없지만 오늘의 결론은,

禍不單行.
It never rains but it pours.

 

2013/07/16 15:57 2013/07/16 15:57
tags :
Trackback 0 : Comment 0

아픈 날 단상들

분류없음 2013/07/14 07:04

* 목, 금, 토. 오늘이 토요일이니까 삼일째구나.  식음을 전폐하고 앓아누웠다가 쌩쌩 잘 돌아가는 인터넷에 접속.

* 거참.

* 육년 전에 쓴 글을 난도질당하는 이 기분은 하늘을 날아갈 것처럼 엿 같다.

* 무엇을 하겠다는 결심, 무엇을 하지 않겠다는 결심은 섰는데 나도 내 맘 속을 잘 모르겠다. 이런 일이 처음이니 어디서 어떻게 첫 발을 내 딛어야 하는지 알 수가 없구나. 누가 나에게 가르쳐주면 좋겠는데 말야.

* 사람에게는 살면서 반드시 이 말을 '오늘' 하지 않으면 안될 것 같은 그런 날이 있기 마련이다. 그 '오늘'이 맞았는지 틀렸는지는 사는 그 동안에는 결코 알 수 없으리라.

* 언젠가 털이 몽창 빠지고 비를 잔뜩 맞은 채 구석에 웅크리고 있는 불쌍한 강아지를 본 적이 있다. 냄새가 많이 났는데 몹시 불쌍해보여서 다가가 손을 내밀었더니 글쎄 그 강아지가 나의 손바닥을 핥았다. 분홍색 혀가 내 손에 온기를 전해줄 때 고맙고 감사했다. 편의점에 들러 참치 한 통을 사서 강아지에게 주었는데 잘 먹지 못했다. 나는 나의 길을 가야했으므로 그 때 그 강아지를 거두지 못했다. 그런 적이 내 인생에 너무나 많다.

* 어제 짝이 외출하는 길에 먹고싶은 음식을 이야기하라는데 내가 먹고 싶은 음식은 이 나라에서 구할 수 없는 음식이다. 짝이 침대에 누워 앓고 있는 내게 다가오더니 "사람인가, 개인가"라며 장난을 쳐 그제서야 한 번 웃을 수 있었다. 아마 나에게서 그 강아지 냄새가 났을 것이다. 짝이 나간 뒤 그 한 길에 두고 온 강아지 생각이 나 한참을 울다가 다시 잠들었다.

* 이제 좀 정신을 차리려하는데 기운이 없다. 정신줄이라는 게 어딘가에 있기는 있는 모양.

 

2013/07/14 07:04 2013/07/14 07:04
tags :
Trackback 0 : Comment 0

르몽드디플로마틱을 읽읍시다

분류없음 2013/07/13 08:03
오오오오. 7월호 1면에 삼성기사를 실었다. "남한의 기업왕조; 국가 그 자체..."뭐 이런 용어 몇 개는 건졌는데 구독자가 아니라 더 이상 읽을 수가 없네. 한국판은 어떤가 했더니, 오오오오오 그대로 변역해서 실었다. 박수 짝짝짝. 한국 같은 미국중심 사회에서 프랑스판 르몽드디플로마가 얼마나 재미없는지 잘 알기는 안다만 그래도 이만한 게 없지 싶을 때가 참 많았다. 처음엔 한겨레보다 자본력이 안되는 데서 시작해서 곧 문 닫겠네, 했는데 이젠 한겨레에서 내고 있어.ㅡ 그래도 조만간 문 닫을까봐 쓸쓸해./ 삼성을 대놓고 까는 르몽드디플로마틱을 읽읍시다. 더 열심히 깔 수 있게 힘을 실어줍시다. / 그런데 편집장의 편지를 읽어봤더니 이 친구들도 나름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던 모양. 격려가 펠요해, 지금 당장에는.잘 했소ㅡ 계속 잘 하시오.
2013/07/13 08:03 2013/07/13 08:03
tags :
Trackback 0 : Comment 0

변신 잠정 실패

분류없음 2013/07/13 05:20

어릴 적에 남들은 백오십 원짜리 부라보콘 먹는데 나는 그것도 어쩌다가 오십 원짜리 하드를 먹게 되면 대단히 슬펐다. 계급차이와 성별차이, 가구의 구성원차이, 가구의 인컴과 소비 등 몇 겹의 '차이'라는 레이어가 브라보콘과 깐돌이 사이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건 한참 뒤였지만 그 차이를 차별로 받아들이고 인식하는 데에는 또 한참이 걸렸다. / 어떤 사람의 눈을 바라보았는데 빛을 화사하게 받아 그 파란 눈이 더 몽환적으로 보였다. 그이는 온 식구들이 다 같은 색의 눈을 갖고 있다고 얘기하는데 나는 갑자기 눈 색깔을 주제로 다룬 다큐멘터리 한 편이 떠올렸다. 그 다큐는 눈 색깔과 차별에 관한 것을 다루고 있다. 여기서 다운받은 동물의 소리 앱에 나오는 모든 동물들 눈도 다 파란 색이다. 원래부터 있던 사람들은 뭐가 있어야 하는 건지 그 차이를 모를 수 있다. 원래부터 없던 사람들도 사는 데 지장이 없었다면 그 차이를 잘 모를 수 있다. 그런데 서로 그 차이를 알게 되는 순간, 이건 정치로 변할 문제다. / 바라는 것을 바랄 수 없고 욕망하는 것을 얻을 수 없는 상태로 산다는 건 얼마나 슬픈 일인가. 살아도 살아도 변하지 않을 이 세상을, 나를 바라보는 일은 그래서 얼마나 슬픈 일인가. 변신 잠정 실패.

 

* 제목 바꿈. 흠 무슨 선언 까지야.

2013/07/13 05:20 2013/07/13 05:20
tags :
Trackback 0 : Comment 0
◀ PREV : [1] : ... [30] : [31] : [32] : [33] : [34] : [35] : [36] : [37] : [38] : ... [41] : NEX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