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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키 페디아에서 대안사회로

위키페디아에서 대안사회로

현장에서 미래를  제117호 

김영식 


 중세 봉건제가 맹위를 떨칠 때 자본주의의 싹이 자라나고 있었다. 그렇다면 자본주의가 한참 맹위를 떨치고 있는 지금 어딘가에 대안 사회의 싹이 자라나고 있을 것이다. 필자가 자유소프트웨어 운동에서 대안적인 모습을 찾는 것에는 특별한 이유가 있다. 흔히 자유소프트웨어 운동에서 자유로운 이용에 주목하는데, 이러한 분배의 관점에서는 그리 큰 매력은 없다. 왜냐 하면 자유소프트웨어가 아니더라도 셰어웨어나 프리웨어 등 자본의 통제를 받는 무료 소프트웨어는 널려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이용자들이 익숙할 때까지 무료로 공급하다가 익숙해질 때쯤 유료로 전환하는 경우도 있고 광고 등을 목적으로 무료로 배포하는 경우도 있다. 각종 검색 엔진들도 이러한 경우에 해당한다.


자유소프트웨어 운동의 진정한 강점은 생산자-이용자 공동체에 있다. 자유소프트웨어 생산자들은 사람들이 필요하기 때문에 생산하지, 시장에서 교환할 목적으로 생산하지 않는다. 또 자유소프트웨어를 사용할 수 있는 권리는 그 공동체에 기여(노동을)한 사람에게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 소프트웨어를 필요로 하는 사람 모두에게 주어진다(접근이 허용된다). 노동한 량에 따라(혹은 기여한 양에 따라) 차등으로 분배받는 개념이 아니라는 뜻이다. 무엇보다도 자유소프트웨어 공동체는 비-시장적 관계(non-market relations)를 유지하면서도 전 세계적으로 자유로운 생산자들의 협동 노동을 이끌어 내며 끊임없이 발전하고 있다.


특히 수많은 특허를 독점하고 있는 IBM 등 컴퓨터 자본이 자유소프트웨어 개발에 참여하고, 자유소프트웨어를 그들의 기계에 적용하고 있기는 하지만, 대개는 소프트웨어 분야의 독점 기업인 마이크로소프트사에 의존하지 않기 위해서이고, 그 만큼 자유소프트웨어가 기술적으로도 보안상 유리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점은 자본마저도 자유소프트웨어에 기여하게 유도하고 있다는 의미로, 자유소프트웨어의 강한 흡입력을 보여 주는 것이다. 


이러한 자유소프트웨어 운동의 정신은 소프트웨어 이외의 영역으로 폭넓게 확장되고 있다. 예를 들어 IPLeft(http://ipleft.or.kr)의 정보공유라이선스운동이 있고 열린-음악 운동 (http://jazzbond.soundhome.cz/OML.html)도 있다. 미국의 MIT대학에서는 강의 자료를 공유하자는 오픈 코스웨어 (Open-Courseware, http://ocw.mit.edu/index.html)운동을 펼치고 있고, 과학자사회에서는 과학저널에 공적 접근(open-access)을 허용하는 공공과학 전자도서관(http://www.plos.org/)운동을 펼치고 있다. 다만 아쉬운 점이 있다면 이들 운동은 거의 모두 개별 노동으로 생산된 생산물을 기부 받아 이용자들에게 분배하는 수준에 머물러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모두 그런 것은 아니다. '위키페디아(Wikipedia)'라는 인터넷 백과사전 운동은 자유소프트웨어 운동처럼 전 세계적으로 생산자들의 참여를 이끌어 내며 거대 백과사전으로 발전시키고 있다. 그 결과 불과 4년 만에 230여년 전통 과 권위의 백과사전 브리태니커 수준을 넘어가고 있다.




 

실패한 자유백과사전 : 누페디아


 위키페디아의 이러한 성공 뒤에는 과거 누페디아(Nupedia)의 실패 경험이 있었다. 누페디아(Nupedia)는 웹을 기반으로 하는 인터넷 백과사전이었다. 누페디아라는 말은 자유소프트웨어를 나타내는 GNU(그누)에서 '누(NU)'와 백과사전(encyclopedia)에서 '페디아(pedia)'라는 말의 합성어이다. 이름에서 풍기듯이 누페디아는 리차드 스톨만의 자유소프트웨어 운동, 일명 그누(GNU) 프로젝트의 정신을 소프트웨어가 아닌 문서에 적용하여 권위 있는 백과사전을 만들어 보자는 운동(프로젝트)이었다.


그러나 누페디아의 경우 '오픈 라이선스'와 같은 정보 공유 라이선스를 채용하는 것 이외에 기존 출판과정과 다른 점이 없었다. 전문가들이 글을 쓰고 전문 편집인들이 평가하였다. 물론 일반 사람들이 참여할 공간은 주어졌지만 아주 작은 부분이었다. 일단 글이 완성되면 웹상에 올라가는데 더 이상 수정되지 않는다. 누페디아는 일반적인 웹페이지처럼 '중앙'에서 기획되고 통제되었다. 소수 편집저자 몇 명의 헌신에 의존한 누페디아 운동은 자유소프트웨어 정신을 가져온다고 했지만 정작 가장 중요한 물적 토대인 전 세계 생산자들의 참여를 이끌어 내는데 실패하였다.


다시 시작된 자유백과사전 : 위키페디아(ko.wikipedia.org)


누페디아 운동을 딛고 위키페디아 운동이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는 당시 새로운 위키위키(WikiWiki)라는 웹기반 소프트웨어가 있었기 때문이다. 위키위키는 지난 1995년으로 당시 미국 컴퓨터 프로그래머인 워드 커닝햄(Ward Cunningham)이 '네티즌들이 협동해서 웹 페이지를 만들어보자'는 개념에서 만든 웹 소프트웨어이다. 간단하게 협동으로 웹을 구성할 수 있는 '협동 소프트웨어'라고 생각하면 된다. 이것은 컴퓨터 엔지니어인 팀 버너스리(Tim Berners-Lee)가 월드 와이드 웹(WWW)의 개념을 처음 만들었을 때의 개념을 다시 살렸는데, 웹에서도 누구나 소스 코드를 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웹페이지의 내용을 자유롭게 수정할 수 있게 하는 개념이었다.


 위키위키 웹페이지를 보면 항상 [편집edit 혹은 수정]이라는 메뉴를 볼 수 있는데, 이것은 누구라도 웹페이지를 완전히 바꿀 수 있게 허용하는 메뉴이다. 변환된 내용은 원 저자의 허락이나 다른 누구의 평가도 없이 웹페이지에 즉시 반영된다. 각각의 페이지에는 가장 최근에 바뀐 내용과 함께 그 웹페이지가 어떻게 수정되었는지를 알 수 있는 [역사 history]라는 메뉴가 있다. 이것을 통해 필요하다면 다시 원상 복구할 수 있다. 참고로 위키위키는 하와이 언어로 '빨리 빨리'라는 뜻이다. 이용자가 웹페이지 내용을 읽어 보고 맘에 들지 않으면 즉시 수정할 수 있기 때문에 이러한 이름이 붙여졌다.  


위키위키를 기반으로 한 위키페디아 백과사전에서는 인터넷에 접속할 수 있는 사람이면 누구나 새로운 단어를 추가하고 수정하고 편집할 수 있다. 위키페디아에서는 모두가 저자가 되고 편집자가 된다. 그 때문에 전 세계적으로 사람들의 참여를 이끌어 낼 수 있었다. 단어를 추가하고 편집/수정하는 작업은 전 세계에서 집단적으로 일어나며 그 결과는 누적되었다.


자유소프트웨어에서 버그가 적은 이유는 많은 사람들이 소스 코드를 볼 수 있어 버그를 잡을 확률 또한 증가하기 때문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보다 많은 사람들이 보고 수정할 수 있는 위키페디아 역시 같은 경로를 따라 가고 있다. 백과사전의 내용 중에 발견된 실수나 빠진 부분은 즉시 교정되거나 추가된다. 모든 글은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깊이가 깊어지고 내용은 풍부해 졌다. 2005년 9월 추산으로 전 세계적으로 약 35만 명가량이 참여하고 있다고 있다. 그 결과 2006년 1월 현재 영어판 94만 건, 한글판 1만 9천 여 건을 비롯하여 모두 260만 건 이상의 글이 수록되어 있고, 25개국 이상으로 번역 서비스되고 있다.


위키페디아를 제작하는데 필요한 컴퓨터 서브와 인터넷 연결 하드웨어는 미국 산디에고에 있는 검색엔진 회사 보미스(Bomis)의 짐보 웨일즈(Jimbo Wales)에게서 기증받았지만 지금은 비영리 재단인 위키페디아 재단에서 운영하고 있다. 아직까지 보미스에 데이터의 교환, 전력소비에 사용되는 비용을 담당하고 있다. 위키페디아의 내용은 카피레프트 저작권 가운데 하나인 GNU 자유 문서 사용 허가서로 배포된다.


역 침투


자본주이 사회에서 자라나는 대안 사회의 싹은 그대로 내버려 두어도 자본주의를 뒤덮어 새롭게 하는 그런 것이 아니다. 흔히 어린 싹들은 꽃도 피우기 전에 밟혀죽기도 하고, 울타리 속에 갇혀 구경꺼리로 전락하기도 한다. 또 자라나면서 가지치기를 당해 대안적인 성질이 퇴색해 버릴 수도 있다.


자유소프트웨어 운동도 내외적으로 ‘가지치기’를 당하고 있는데, 외적으로는 오픈소스운동이 등장해, 자유소프트웨어 운동을 시장에 편입시키기 위해 활동하고 있다. 그리고 내적인 문제로는 자유소프트웨어 공동체를 운영에 몇몇 엘리트들이 지나친 권리를 갖고 있다는 점이 지적되고 있다. 이들 엘리트들의 권리는 무력으로 강탈한 것이 아니라 높은 기술력과 공동체 기여도에 따라 권위를 획득한 것으로 민주적으로 부여된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권위의 불평등은 자유소프트웨어에 접근할 수 있는 권리의 불평등으로 이어지고 있다. 물론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 몇몇 자유소프트웨어 공동체에서는 직접 선거의 방식을 채택하기도 한다.(데비안 리눅스 공동체)


위키페디아도 역시 몇 가지 문제점들이 나타나기 시작하고 있다. 언제나 자유롭게 누구나 수정할 수 있는 백과사전에서 가장 큰 문제는 각각의 글들이 질적인 수준이 다르며 허위 내용이 있을 수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소위 누리꾼들의 일탈행위도 무시할 수 없다.


 2005년 6월 LA타임즈는 "이라크에서 미군의 철수를 주장"하는 논설을 위키위키 형식으로 걸고 실험한 적이 있었다. 처음에는 찬성과 반대의 글이 나눠져 고쳐지는 등 활성화되는 모습을 보였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포르노 사진과 비속어가 난무해서 결국 닫아 버렸다. 2005년 4월에는 교황 베네틱도 사진이 '스타워즈' 시리즈에 나오는 악의 황제 사진으로 바꿔치기 한 적도 있었다. 전직 언론인인 존 세이겐탈러(John Seigenthaler)는 자신이 로버트 케네디와 존 F 케네디의 암살에 관여했고, 이후 13년간 소련으로 이주했다는 내용이 132일간이나 수록돼 있었던 적도 있었다. 또 미국 상하원 의원들은 정기적으로 위키페디아에 올라온 자신의 이력을 자신들에게 이롭게 관리하고 있다. 또 이 위키페디아가 자본에 위협적이라면 자본가들이 자본력을 동원해서 위키페디아 전체의 성격을 변화시킬 가능성도 있다.


다행히도 아직까지 이러한 영향은 크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과학 학술지 네이처가 해당 분야 전문가들이 42개 항목에 대한 조사한 결과 위키페디아가 브리태니커만큼 정확한 정보를 담고 있다고 밝힌바 있다. (2005년 12월 15일)


그러나 몇 차례 홍역을 치룬 뒤 위키페디아 운영진은 운영방식을 수정하였다. 익명의 이용자들은 새로운 단어를 등록하지 못하도록 하였고 600여명의 자원 편집자들은 잘못된 내용이나 인신 공격적 내용을 찾아서 수정하는 일을 하고 있다(The Guardian 2005. 12. 9).


높은 수준의 대안 모델이 되기 위해서는 어떤 수준에서건 (민주적) 관리자가 필요하다는 점을 부인할 수는 없다. 이 관리자의 역할이라는 것이 지배자의 역할이 아니라 자본이나 정치/문화 권력 대한 대안 장치로 그리고 소수자를 위한 보호 장치의 역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실 사회주의의 경험은 보다 세밀한 접근을 요구한다. 그들은 자본주이 시장관계가 사라진 그 자리에는 정보와 사회 시스템에 대한 불평등한 접근권을 허용하였고, 이를 통해 새로운 권력관계(착취관계)가 형성되는 것을 방치하였다. 자유소프트웨어 운동에도 엘리트층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으며 위키페디아 운동에서도 익명이용자들의 등록 금지하는 등의 조치가 있었다. 아직 우려할 수준은 아니지만 공동체내에 차별이 증가하고 있다는 점은 사실이다. 물론 자유소프트웨어의 경우 소프트웨어 특성을 고려해서 판단해야 하고, 위키페디아의 차별 역시 소수자를 위한 역차별인지 여부 대해서 좀 더 면밀한 검토가 필요하다. 중요한 것은 위키페디아나 초기 자유소프트웨어 운동에 있어 가장 중요한 성공요인은 공동체 내의 사람들에게 생산과 이용 모든 면에서 차별 없는 접근권을 허용했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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