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닭갈비 과학기술, 좌파도 싫어하는 과학기술

닭갈비 과학기술, 좌파도 싫어하는 과학기술

 

실업문제에 비정규직 문제 등 각종 투쟁들이 산적해 있는 이런 시국에 과학기술에 관심을 가져 달라고 한다면? 왠지 굶어죽는 사람에게 SF소설을 읽으라고 권하는 격이지 않을까? 또 친구 중 누군가가 빅뱅(Big Bang)이나 선사시대 공룡을 연구하고 싶다고 한다면, 혹은 중력의 근본원인을 파헤치고 싶다고 한다면, 이런 생각이 들지 않을까? “불쌍한 놈~”, 아니면 “집에 돈이 많구나!” 아이러니하게도 과학기술에 대한 이런 생각은 자본가들에도 마찬가지 인듯하다.

 

자본가의 닭갈비(계륵) 과학기술

 

세계적으로 유명한(했던) 미국의 벨연구소를 보면 요즘 자본가가 과학기술을 어떻게 바라보는지를 알 수 있다. 1925년에 설립된 벨연구소는 ME(극소전자) 혁명을 일으킨 트랜지스터와 레이저를 최초로 발명한 곳이며, 11명의 노벨물리학상 수상자를 배출하기도 한 곳이다. 처음에는 국영 AT&T사 소속이었다가, 1996년에 AT&T사가 3개의 민영회사로 분리되면서 루슨트사 소속이 되었다. 지속적인 경기 침체로 2006년에는 프랑스 통신회사 알카텔과 합병을 하게 되었다. 매 변화 시기 마다 순수과학에 대한 투자와 인원을 줄였으며, 지금은 순수과학 분야에는 단 4명만이 연구하고 있다고 한다(네이처 2008). 국내에서는 삼성종합기술원이나 LG 전자 기술원이 비슷한 역할을 담당 했지만, 요즘은 사업부의 하청 업체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자본주의 초기에 과학기술은 종교권력에 대항하고, 생산력 발전의 동력이 되었으며, 새로운 계급을 억누르기 위한 착취의 수단과 이데올로기를 제공해 주었다. 그러나 권력의 지위가 확립되고 새로운 경쟁 상대(노동자)의 발흥을 충분히 막을 수 있게 되면서부터, 자본은 현상유지에만 관심을 가졌고, 이때부터 과학기술의 주가는 떨어지기 시작했다. 특히 인터넷과 주식 시장의 확산으로 자본이 단기성과에 집착하게 되면서 그 주가는 더욱 떨어졌다.

 

7-80년대 ME 혁명은 냉전시기 개발된 군사기술이 수십 년 동안 숙성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예를 들어 1956년에 개발된 트랜지스터가 실제 시장에서 꽃피운 시기는 1970년대 중반 이후였다. 개발 후 본격적으로 실용화되기까지 20여년의 숙성기간이 필요했던 것이다. 그러나 현재 자본은 더 이상 과학기술이 숙성될 때까지 기다릴 여유가 없다. 과학기술은 한마디로 버리자니 아깝고 먹자니 먹을 것이 없는 닭갈비(계륵)의 신세가 된 것이다.

 

좌파도 싫어하는 과학기술

 

‘좌파가 언제 과학을 싫어한다고 했어?‘ 라고 반문을 할지도 모르겠다. [간첩 리철진]이라는 영화를 보면, 북에서 내려온 간첩 리철진이 강도에게 공작금이고 뭐고 다 털린 후 고정간첩 오선생을 만나는 장면이 나온다. 오선생이 다짜고짜 북으로 다시 돌아가라는 ‘현실적인’ 요구를 하자, 리철진은 단 한마디로 상황을 반전시킨다. “당에서 보내서 왔소”

당은 이성(과학)의 화신이었던 시절이 있었다. 절대 진리를 담지 하는 신은 절대 진리를 밝혀내는 과학(혹은 이성)으로 대체되었다. ‘과학적’ 사회주의를 ‘지도’한다는 당은 무엇이 ‘과학’인지는 상관하지 않고 당시 과학의 특권화된 권위만을 고스란히 이어 받아 모든 정보과 권력을 독점했다. 그리고 나서 그들이 내놓은 ‘과학적’ 진리란 겨울이 지나면 봄이 오듯 자본주의가 지나면 사회주의가 된다는 식이었다. 전 세계 노동자-농민들의 구체적인 투쟁은 당의 ‘과학적’ 판단 속에 무시되거나 심지어는 탄압받기도 했다.

 

이 것이 좌파가 과학을 싫어하는 배경이다. 일부에서는 그 역편향으로 과학기술의 모든 권위를 해체해 버리고, 과학기술의 독특한 방법론까지 인정하지도 않으려는 경향이 생겨났다. 이들은 이성의 시대는 가고 감성의 시대가 왔다고 주장한다. 아이러니 하게도 이것은 자본가가 바라는 변화이기도 하다. 자본가들은 많은 자본과 오랜 숙성의 시간이 필요한 ‘이성적’ 과학기술에 투자하기 보다는 작은 자본으로 단기간 내 성과를 볼 수 있는 ‘감성적’ 디자인에 투자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가 보듬고 가야할 과학기술!

 

사실 과학기술에서 중요한 것은 경험적이든 연역적이든 어떤 현상을 일반화(추상화)해서 사물의 본질을 파악하는 것이 아니다. 이러한 일반화는 각각의 상황에서 인정되는 정보의 일부분일 뿐이기 때문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그러한 정보를 종합해서 “구체적 상황에 대한 구체적 분석”을 해 내는 것이다. 아무리 많은 경험과 과학지식을 가진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구체적인 현실 속의 노동자-민중의 지식과 실천(혹은 투쟁)과 함께하지 않는다면 진정한 진리를 얻을 수 없다. 왜냐하면 진리는 구체적이며 역동적이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서 연안시절(1937-1949) 모택동의 말은 아직도 시의 적절하다.

 

“당시의 열일곱, 열여덟 살 먹은 청년들은 [자본론]과 [반듀링론](양자역학과 상대성 원리 등을)등을 열심히 배웠지요. 청년들은 훌륭한 선생(훌륭한 과학자)에게서 배운 것은 의심할 수 없는 진실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지요. 마르크스-레닌주의(현재의 과학기술을)를 종교적 교의로 여기는 사람들은 맹목의 무지를 나타내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들에게 공개적으로 “너의 교의는 똥보다도 쓸모없다”는 점잖지 못한 말을 써야 합니다. 개똥은 들판에 거름으로 쓰일 수 있고 사람의 똥은 개가 먹을 수도 있다는 걸 압니다. 그러나 교의라는 것은 들판을 비옥하게 할 수도 없고, 개를 먹일 수도 없지요. 그게 무슨 쓸모가 있겠습니까?“ (괄호속의 말은 필자가 삽입함)

 

흔히 과학기술은 생산력이면서 생산관계라고 한다. 이 말은 과학기술이 우리 생활의 모든 부분에 관여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과학기술은 싫다고 회피할 수도 없으며 회피해서도 안 된다. "과학(기술)은 단지 과학적 성취와 응용기술을 나열한 명부가 아니다. 그것은 특별한 사회 환경에서의 인간 활동이다. 그러므로 과학(기술)은 사회주의자들이 사회에 대한 학습에서 주요하게 다루어야할 대상인 것이다. 최근 들어 점점 더 다양한 이슈들, 지식의 군사화, 건강, 환경 경제 발전, 여성해방, 인종주의와 계급 서열화의 합리화 그리고 교육문제 등에 대한 정치적 투쟁들이 과학적 문제와 연관되어 있다."

어렵다고 상아탑 속에 갇히게 해서도 안 된다. 이를 위해서 “혁명정당은 권력을 잡기 전과 후 모두 과학(기술)에 대한 프로그램을 가져야 하고 이런 저런 과학적 근거를 형성하는 사회운동에서 어떤 식으로 투쟁할 것인지를 배워야 한다. 맑스주의 과학자는 자본주의 하에서 과학(기술)이 이데올로기적, 제도적 속박에서 어떻게 기능하는지를 밝혀야 한다. 우리의 삶을 관통하는 자본주의에 대항해야할 필요성을 인식한 사회주의자들은 과학의 문제들에 대한 초기의 관심을 부활시키고, 과학(기술)을 투쟁활동과 연구를 위한 실천과제 속에 배치시켜야 한다.“ (리차드 레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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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 속에 감추어진 역사

과학 속에 감추어진 역사
 
“역사는 파괴와 창조, 투쟁과 노동이 서로 맞물려 가면서 변화 발전하고 우리 근현대에서 그러한 역사의 주체는 낡고 썩은 것을 유지하고 지탱하려는 소수 보수 기득권 세력이 아니라 사회의 대다수 노동자 민중이었다” 이러한 이유로 우리는 “대의제도와 대리주의를 넘어 노동자 민중이 정치의 주체로 ‘반자본주의 정치변혁’의 거대한 역사의 강줄기를 만들어 가야 한다”
 
이 주장은 파업 속에서, 반자본주의 투쟁 속에서 더 큰 물질적인 힘을 발휘하고 있다. 그러나 과학 영역에 들어오는 즉시 힘을 잃어버리고 만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과학의 역사는 ‘코페르니쿠스가 갈릴레오를 낳고 갈릴레오가 케플러를 낳고 케플러는 당연히 뉴턴낳’는 다는 식으로 이어질 뿐이다. 과학의 역사 어디에도 생동감있는 노동자 민중의 역사는 찾아 볼 수 없다. 대리주의와 대의주의가 오히려 더 자연스럽게 느껴진다.
 
그러나 과학의 역사가 외부 즉, 신이나 외계인의 역사가 아니라면, 앞에서 언급한 (투쟁과 노동이 서로 맞물려 변화 발전하는 그런)역사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과학 역사의 주체도 당근! 노동자 민중일 것이다. 그러나 왜 과학에는 엘리트들만 보일까? 혹시, 우리가 (자본주의라는) 병에 걸려 기억하지 못하거나, 아니면 누군가 그 역사를 의도적으로 왜곡하고 숨겨 버렸기 때문이 아닐까? 그렇다면 숨겨진 역사를 찾아보는 것도 의미 있을 법 하다.
 
천연두 백신을 개발한 노예와 농민
 
16세기에 세계인구의 5분의 1을 죽음으로 몰아넣었고, 중남미 원주민들을 90%나 사망시킨 무시무시한 천연두 문제의 해법을 서방에 알려준 이는 바로 미국으로 끌려온 오네시모(Onesimus)라는 아프리카 노예였다.
1721년 미국 보스톤에 천연두가 번졌을 때, 오네시모는 그의 주인 코튼 마터(Cotton Mather)에게 자신의 고향 아프리카 수단에서 사용하는 천연두 예방법을 알려 주었다. 이 방법은 천연두 환자의 고름을 피부를 긁어서 생채기를 내어 바르는 방법인데, 11세기 이후 중국이나 한국에서도 이와 유사한 방법이 있었다. 이를 인두법(人痘法) 이라고 한다.
 
코튼 마터는 대범하게 이 방법을 주민들에게 바로 적용하였으나 그 과정에 6명의 환자가 사망하고 말았다. 격렬한 종교적 반발이 있었고, 성난 군중들은 그를 목매달려고 했다. 그가 피신한지 1년 후 그는 다시 영웅이 되었다. 당시 천연두에 걸린 사람 대부분 사망했지만, 그의 시술을 받은 환자는 2% 만 사망하는데 그쳤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후 오네시모의 이야기는 사라져 버렸다.
 
천연두에 얽힌 얘기 하나만 더 해보자. 흔히 천연두 예방 백신을 개발한 사람은 영국의 의사인 에드워드 제너(Edward Jenner)라고 알려져 있다. 그가 1796년에 개발한 백신은 소의 천연두라고 알려진 우두(cowpox)를 접종하는 방식이다. 국내에서는 불주사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이 방식은 이미 22년전, 당시 농부였던 벤자민 제스티 (Benjamin Jesty)에 의해 이미 알려진 방법이었다. 벤자민은 같이 살고 있는 소 젖 짜는 여자들이 우두를 앓고 나서 천연두에 걸리지 않는다는 사실을 발견하였다. 그래서 대범하게 소의 유방에서 고름을 채취하여 부인과 아들의 팔에 바늘로 상처를 내고 주입하였다. 부인은 심하게 고생하긴 했으나 두 사람 모두 천연두에 걸리지 않았다. 에드워드 제너(Edward Jenner)는 단지 이 사실을 접하고, 소년을 대상으로 ‘과학적인’ 인체 실험을 거쳐 정식화 했을 뿐이었다.
 
말라리아도 유사한 역사가 있다. 중국에서는 2000년 이상 개똥쑥이라는 약초를 사용해 말라리아를 성공적으로 치료해 왔다. 그리고 남아메리카에서 페루 인디언들은 기나수(樹) 껍질을 사용하여 치료하였다. 기나수를 통한 치료법이 유럽에 소개된 것은 17세기나 되어서 였다.
 
뉴턴보다 뛰어난 시계공
 
요즘은 배를 타고 항해를 할 때 배의 위치는 인공위성을 이용한 GPS로 쉽게 알 수 있지만 17세기만 해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배의 위치는 지구상의 위도와 경도로 알 수 있는데, 위도는 특정시간에 태양과 수평선의 각도로 정확하게 알 수 있었지만 경도는 정확하게 측정할 방법이 없었다. 이 문제는 영국 의회가 0.5도의 오차를 허용하는 경도 측정방법 개발자에게 2만 파운드라는 거대한 상금을 걸 만큼 아주 심각한 문제였다. 해결책으로 제안된 방법은 두가지 였다.
 
첫 번째 방법은 뉴턴과 영국 왕실에서 진행한 방법인데, 목성의 위성 관측이 경도를 결정할 수 있다는 갈릴레오의 발견을 이어 받아 계산하는 방법이었다. 두 번째 방법은 정확한 시계를 이용하는 방법이었다. 경도 15도의 차이는 지구가 1시간 자전했을 때의 차이이므로, 시간을 정확하게 측정하면 경도를 계산할 수 있다. 존 해리슨이라는 아주 평범한 시골 시계공은 이 방법을 택하여 뉴턴에 도전했다. 결론은 평범한 시계공의 승리로 끝이 났다. 뉴턴이 이 방식을 택하지 않은 이유는 당시 기술로 정확한 시계를 만드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오히려 목성의 위성을 관찰하는 것은 평지에서는 가능했지만 흔들리는 배위에서 매우 어려웠다.
 
미생물의 세계를 연 안토니 반 레벤후크(Antony van Leeuwenhoek)
 
17세기 초기만 해도 현미경의 배율은 그리 높지 않았다. 그래서 현미경은 과학 탐구의 도구가 아닌 장난감으로 취급받았다. 과학자들이 현미경의 배율을 높이기 위해 무척 많은 노력을 했지만 모두 실패하였다. 그런데 17세기 중반 네덜란드의 한 의류 소매상인 안토니 반 레벤후크는 독학으로 현미경의 배율을 획기적으로 개선시켰다. 그는 살아 있는 원생동물과 박테리아를 직접 본 첫 번째 사람이었을 것이다. 그의 경력은 16세 때 직물상의 견습생, 22세 때 직물점 상인이 전부였다. 대학교육도 받지도 않았고, 자연과학, 철학은 물론이고 영어나 프랑스어, 라틴어도 몰랐지만, 그는 20세기 과학혁명에 가장 중요한 기여를 한 사람 중 한사람이 되었던 것이다.
 
과학에도 풍부한 노동자-민중의 역사가 핵심이다.
 
레닌의 혁명은 소비에트를 통한 노동자-민중들의 자발적인 투쟁과 그것의 양적 성장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과학 역시 마찬가지 이다. 과학이 기본적으로 자연에 대한 지식이라면, 과학이 자연과 가장 가까운 사람들(노동자-민중)로부터 나오는 것은 오히려 자연스럽다. 갈릴레오가 대포의 각도가 45도일 때 가장 멀리 날아간다는 사실을 처음 수학적으로 증명해서 유명해 졌다고 하지만, 당시 대다수의 포수들이 이미 경험적으로 알고 있었다. 오히려 이러한 풍부한 포수들의 경험이 갈릴레오의 이론을 탄생시킨 동인이 된 것이었다. 뉴턴의 만류인력 법칙도 혼자만의 작품이 아니다 로버트 후크라는 과학자가 만류인력을 먼저 주장한 바 있다. 코페르니쿠스의 태양중심설 역시 그리스 시절부터 있었던 주장이며, 지구 중심설의 대부격인 푸톨레마이오스의 수학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프랑크가 양자역학의 문을 열었던 계기도 이전에 수많은 과학자들의 실험적인 결과와 이론적 성과가 있었기에 가능하였다. 아이슈타인도 예외는 아니다.
 
이제 과학에 자리 잡고 있는 “아브라함이 이삭을 낳고 이삭은 야곱을 낳고 야곱은 유다와 그의 형제를 낳고..(중략) 다윗은 우리야의 아내에게서 솔로몬을 낳고...(중략)..야곱은 마리아의 남편 요셉을 낳았으니 마리아에게서 그리스도라 칭하는 예수가 나시니라”식의 역사관은 성경에서 끝나야 한다.
 
참고서적 : Clifford D. Conner, "A People's History of Science"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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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 라듐 그리고 광우병과 방사능

소, 라듐 그리고 광우병과 방사능

 

1922년, 은행에서 일하는 그레이스 프라이어(Grace Fryer)는 병원을 찾았다. 갑자기 이빨이 흔들리며 뽑혔고, 턱에는 염증이 생겨 부어올랐다. X-ray 결과는 참혹했다. 턱뼈가 마치 벌레먹은 이파리처럼 구멍이 숭숭 나있었다. 같은 증세를 호소한 사람은 마을에 여러 명 있었고, 모두 야광 칠을 하는 공장에서 일을 했었다.

 

그레이스가 병원을 찾기 20년 전(1902년), 발명가 윌리엄 해머(William J. Hammer)는 과학자 퀴리 부부로부터 특별한 선물을 받았다. 그가 받은 선물은 라듐염 결정이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방사능은 새로운 과학 분야이기에, 그 위험성이 알려져 있지 않았다. 피에르 퀴리는 라듐을 자신의 팔에 붙여 위험성을 실험하기도 했다. 사람들은 라듐이 스스로 푸르스름한 녹색의 빛과 열을 내기 때문에, 인간에게 무한 에너지를 주는 환상적인 물질로 생각했다. 해머는 이 라듐염으로 야광 페인터를 발명하였다.

 

야광 페인터는 US-라듐사(US Radium Corporation)에 의해 상품화되어 1차 대전 중에 계기판 표시기나 군인들의 손목시계에 사용되었고, 민간용으로도 확대 되었다. 당시에는 라듐의 위험은 상당히 알려져 있을 때이다. 그러나 US-라듐사는 아주 미량 사용되기 때문에 안전하다고 주장하였다.

 

US-라듐사의 과학자는 라듐의 위험성을 잘 알고 있었다. 그들이 사용한 라듐은 우라늄보다 100배 더 강한 것이기 때문에, 실험시 방사능 차단 장치를 확실히 사용하였다. 그러나 공장의 노동자들은 그 사실을 몰랐다. 작업장 바닥과 벽은 이미 방사능으로 오염되어 있었고, 심지어 여성 노동자들은 남자 친구에게 보여주기 위해 입술이나 치아에 바르기도 했다.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이미 라듐은 일상화 되었고 구조화 되어 있었다. 관절염, 고혈압, 암 등의 치료약으로 쓰였는가 하면, 치약이나 화장품, 심지어 생수와 빵에 넣어 먹기도 했다. 자본은 이윤 때문에 스스로 이 위험한 거래를 멈추려 하지 않았다.

 

3년 후, 그레이스의 의사는 병의 원인으로 US-라듐사를 지목했다. US-라듐사는 콜롬비아 대학의 전문가 플린(Flynn)을 내세워 그레이스를 조사하였다. 플린은 그레이스가 건강이 아주 좋다는 결과를 발표했다. 그러나 그는 의사도 아니었고, 그레이스의 “동료“를 조사한다면서 작업장에서 일하지 않았던 부사장의 감염여부를 조사하는 등 부정한 방법을 사용 했다. 상황이 여의치 않자 US-라듐사는 그녀의 병이 방사능 중독이 아니라 매독 때문이라고 유언비어를 조성하기도 했다. 또 많은 의사들을 포섭해서 왜곡된 정보를 만들었다.

 

사실, US 라듐사는 이미 1920년대 초부터 하버드 생리학 교수 세실 드링커(Cecil Drinker)를 고용하여 작업장 환경에 대한 연구를 시킨바 있다. 드링커는 보고서를 통해 심각하게 오염된 작업장 실상과 노동자들의 이상 증세를 자세하게 보고하였다. 그러나 정작 US-라듐사는 노동부에 가짜 보고서를 제출했다. 이 가짜 보고서의 시작은 모든 것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모든 여공들은 완벽한 조건에서 근무 하고 있다”.

 

그레이스와 5명의 노동자들은 US-라듐사의 방해에도 불구하고 어렵게 변호사를 선정하여 소송을 했다. 재판은 2년을 끌었고, 당사자들의 병세 악화와 절박한 사정으로 회사에 유리한 합의를 해야 했다. 당시 합의를 주선한 사람은 라듐 재판의 판사이자 US-라듐의 주주였다고 한다.

 

방사능에서 광우병으로

 

현대로 오면서 라듐의 방사능은 광우병 소로 대체된다. 기업은 정부로 바뀌고 대상은 특정 노동자 민중에서 전체, 전 세계 노동자 민중으로 확대된다. 영국은 1985년에 최초로 광우병이 발병했고, 1년 뒤 그 사실을 처음 확인하였다. 그러나 아주 중요한 사안인데도 불구하고 영국 보건부는 11달이나 대중들에게 알리지 않았으며, 그 후 눈에 잘 띄지도 않게 수의학 논문지에 싣는 것이 전부였다.

 

1980년대 중반쯤에 영국정부는 소에게 먹인 동물사료가 광우병의 원인이 될 수 있다는 증거를 충분히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1989년이 되어서야 뇌, 척수, 가슴샘, 비장 그리고 일부 내장을 소의 사료로 금지시켰다. 그러고 나서 다른 조직들은 안전하다고 주장했다. 사실 이러한 조치는 노동자-민중의 건강을 위한 것이 아니라 축산업자의 이윤을 위해, 사료비 증가를 막기 위한 궁여지책이었다.

 

영국 정부는 사이비 과학 자료와 잘못된 가정을 바탕으로 소고기 안전에 대해 여러번 왜곡된 발표를 했다. 예를 들어 1989년에 영국정부가 발표한 사우스우드(Southwood) 보고서에 따르면 소를 광우병의 종말 숙주라고 주장하면서 인간에게는 위험성이 거의 없다고 밝히고 있다. 대범하게도 위원회는 “광우병과 사람의 건강과의 관련성은 결코 있는 것 같지 않다“고 결론내리고 있다.

 

정부의 초기 대응 실패로 광우병 발생 수가 급격히 증가했다. 그러나 정부는 이 문제를 노동자-민중의 건강의 위기로 보지 않고 어떻게 발표할 것인가의 문제로만 보았다. 영국 농무부장관 존검머(John Gummer)는 BBC 방송에서 자신의 딸 코델리아와 같이 햄버거를 먹으며"광우병 안전합니다."라고 선전하기도 했다. 아무도 믿지 않는 광고를 촬영하면서 자신의 딸을 광우병 볼모로 삼고 “맛이 기가 찹니다.” 라고 말하였다.

 

영국 정부의 거짓말은 곧 바로 드러났다. 1994년 16세 소녀 비키 리머(Vicky Rimmer)는 인간 광우병의 첫 희생자가 되었다. 그러나 정부는 가족들에게 경제를 위해 사망사실을 공개하지 말 것을 요청했다. 또한 비키가 죽은 후 메이저(John Major) 총리는 "인간은 광우병에 걸리지 않았다는 사실을 명확하게 해두고자 합니다.“ 라는 어처구니없는 내용의 편지를 가족에게 보내기도 했다. 아무튼 첫 번째 희생자이후 지금까지 전 세계적으로 약 200여명이 광우병으로 죽었거나 앓고 있다.  일부 학자들은 치매로 죽어간 사람들 중 상당수가 인간광우병일 수 있다고 주장한다.

 

 

핵심은 이윤에 반해 전복할 수 있는 권리이다.

 

시장에서 잘 팔리는 상품이라면, 즉 자본의 이윤을 위해서라면 자본가 혹은 그를 대변하는 정부는 그것이 방사능 물질이든 광우병 소든 상관하지 않고 확실하게 주장한다. ‘아주 안전하다’, 자본에 매수된 과학(자)은(는) 이 주장을 뒷받침할 결과들을 쏟아 낸다. 그러다 실제 위험이 발견되면, 방사능 오염은 ‘매독’이 되고, 광우병은 ‘치매’로 둔갑해 버린다. 그리고 방사능물질과 광우병으로 노동자-민중이 죽어 나갈 때 까지 우리에게 어쩔 수 없는 구조(무의식 적인 것)가 된다.

 

2008년, 한국의 노동자-민중은 검역 ‘주권’을 놓고 ‘미국-한국 연합정부’와 투쟁하고 있다. 주권이라는 것은 ‘(필요에 따라) 생산할 수 있는 권리’와 ‘전복할 수 있는 권리’를 말한다. 생산할 수 있는 권리는 생산수단이 없다면 구성하기 힘들지만 전복할 수 있는 권리는 그런 기반이 없어도 된다. 특히 자본주의에서 ‘이윤에 반해’ 전복할 수 있어야 의미가 있다. 미국은 광우병이 발생했지만 도살된 소의 1% 미만에 대해서만 검사를 하고 한국에 수출한다. 이명박 정권은 이 소에 대해 전복할 수 있는 권리를 미국에서 넘겨주었다. 그대로 받아들이면 미국소는 우리의 구조 (아무렇지도 않은 일상)가 된다. 그러다 광우병이 발병하면 비극은 시작될 것이다. 누구나 공감하듯 촛불시위는 이 권리를 다시 찾는 것이다. 그리고 여기서 끝이 아니다. 더 나아가 이미 구조화 되어 버린 것들을 돌아 봐야 한다. 일상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만나는 먹을거리들. 예를 들어 국내 소는 항생제만 해도 미국의 3배 스웨덴의 24배나 사용한다. 광우병은 발병하지 않았지만 전수검사 역시 하지 않는다. 이것들에 대해 우리는 (이윤에 반해) 전복할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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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담 1)

 한국의 촛불 투쟁이 미국의 노동자-민중들의 투쟁뿐아니라 전세계의 투쟁으로 나아가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해본다. 미국의 광우병 정책을 비판하는 미국의 시민단체들이 힘을 얻고 있고, 일반 신문  마져 비판적인 기사를 보내고 있지 않은가. (""美농무부 정신 차려라"…美언론들, 줄줄이 비난"), 대만, 일본 민중들 또한 한국의 촛불 투쟁을 지지하고 있을 것이다. 진짜로, 우리의 촛불 투쟁은 바로 자본의 이윤에 맞서 전세계 민중들을 위한 것이지 아닌가! (머찐 투쟁이다.!!)


(잡담 2) 사람들이 햇깔려 하는 것.

촛불집회에 반대하는 사람들의 "올바른 주장"은 한국소도 안전하지 않다는 주장이다. 이에 관련된 글은 "인간광우병, 국산 쇠고기도 안전지대 아니다!" 를 참조하면 될 듯하다. 그런데 문제는 한국소의 불안정성을 미국소 수입근거로 삼는다는 점이다. 아주 위험한 발상이다. 그 위험은 우리가 경험으로 명백히 확인한 바 있다.  한국 소의 위험은 "어렵겠지만" 우리 국회와 정부를 촛불집회와 같은 투쟁으로 압박한다면 집적적인 결과를 얻을 수 있다. 그런데, 미국소의 경우는 다르다. 죽어라 촛불집회에 참석하고 밤새고 ..  "좀비"라는 욕을 들어 가면서 까지 아들딸 댈고 나와 시위했는데 그 결과는 한국 정부가 미국 정부로 (재협상도 아니고) 추가 협상을 하러 가게 만드는 것이었다. 그나마 얻은 결과는 말도 하기 싫을 정도의 결과를 가져 왔다. 그래 놓고 90점 받았다고 지랄발광을 하고 있다.  그만큼 우리 일상 식탁의 안전을 지켜내기가 힘들다는 것이다. 이것이  미국소를 더 엄격하게 규정해야 하는 중요한 이유중에 한가지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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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 노동자..

참세상에 "삼성반도체 백혈병 진상규명' 대책위 발족"기사가 났군요.

"23세 황유미 씨 등 최근 7년간 노동자 5명 백혈병 사망"했다고 하는 군요. 냉혹한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어떤 조치가 취해지기 위해서 5명의 생명이 부족한 것일까요?

 

유사한 소송이 대만에서는 RCA(미국)를 대상으로 그리고 미국에서는 IBM을 대상으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2002년에 적은 글(깨끗한(?) 첨단산업의 더러운 비밀<노동자의 힘>)과 번역글(클린 룸의 더러운 비밀<사회진보연대>)이 있어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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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끗한(?) 첨단산업의 더러운 비밀

 

과학기술혁명을 주도했던 전자 산업의 이미지를 떠올려 보라고 한다면, 먼지하나 없이 ‘깨끗한’ 작업장의 이미지가 떠오를 것이다. 자본가들은 늘 첨단 기술의 깨끗한 작업장을 자랑해 왔다. 한국에서도 대표적인 전자 산업인 반도체 공장들이 환경 업체로 선정되기도 했다. 그러나 노동자들은 첨단 전자회사의 ‘깨끗한’ 작업장이 반도체 칩을 보호하기 위해 설계된 것이지 인간을 보호하기 위해 설계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점차 깨닫기 시작했다.


지난 5월 말 대만에 있는 다국적 기업 RCA(Radio Company of America) 전직 노동자들은 그들의 실상을 알리고, 정당한 보상을 요구하기 위해 미국 원정 투쟁을 전개했다. RCA 노동자 자력구제 연합(Self-help Association for RCA Employees)에 따르면 RCA에 근무한 노동자들 중에서 1998년까지 1375명이 암으로 고통받고 있으며, 이들 중 216명이 죽었다. 그리고 102명이 여러 가지 종양으로 고생하고 있다고 한다. 이 수는 매년 증가하고 있으며, 공장 주변에 살고 있는 주민들까지 포함하면 그 수는 더욱 증가할 것으로 보고 있다.


살인적인 ‘깨끗한’ 작업장


RCA는 30여 년 전부터 미국의 대표적인 가전 제품 제조 회사였다. 1969년에 대만의 타오위엔(Taoyuan), 주후베이(Zhubei)와 이란(Yilan)에 공장을 지었고, 전체 노동자 수는 2-3만 명 정도 되었다. 1992년에 문을 닫은 RCA는 1986년에는 GE(General Electric) 소유였다가, 1988년에 프랑스 톰슨사로 소유권이 이전되었다. GE와 톰슨은 둘 다 대표적인 다국적 기업이다. 1992년 문을 닫기 전까지만 해도 대만 정부는 RCA 공장을 대만의 대표적인 수출 회사의 전형으로 선정하는 등 철저하게 그들의 본 모습은 은폐시켰다. 1994년이 되어서야 타이완 환경보호국(EPA)은 RCA가 발암물질로 알려진 독성 폐기물과 유기 용매를 불법 매립하여 그 일대의 토양과 지하수를 오염시켰다고 공개했다. 그 후 1998년에 환경보호국은 RCA공장 지역을 영구 오염지역으로 선포했다.


그러나 현 RCA 공장의 소유주인 프랑스 톰슨사는 그 주민들과 노동자들의 질병과 그들의 공장은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대만 정부 보고서를 인용하며 반박하고 있다. 1999년에도 유사한 소송이 있었으나 기각된 바 있다. 노동자들은 수년동안 지속적으로 GE와 톰슨사를 대상으로 가해 책임을 인정하고 정당한 보상을 요구했으나 거절당했다.


미국에 도착한 그들은 LA, 뉴욕, 워싱턴에서 거리 선전전 및 대중연설을 진행했으며, GE에 대해서는 정당한 보상을 요구하는 항의 투쟁을 펼쳤다. 아울러 미국의 SVTC(Silicon Valley Toxics Coalition), 그린피스, AFL-CIO(미국노총) 등 미국 내 활동가들과 환경부 간부, 의원들과 만나 그들의 상황을 전했다.


이러한 첨단 산업의 문제는 비단 제3세계에 국한된 것이 아니다. 미국에서도 현재, 250여명의 노동자들이 대만 노동자들과 같은 이유로 뉴욕과 캘리포니아에 있는 IBM과 내셔날 반도체(National Semiconductor) 등 첨단 반도체 회사를 고발했다. 미국 노동자들은 반도체 생산에 사용되는 수많은 독성 혼합물들이 선천성 기형과 유산 그리고 암을 유발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선천성 기형아 출산, 암, 환경 파괴…

발뺌하는 자본가들


미국 자본가들은 노동자들에게 노출된 독성물질의 양은 미국 정부의 직업 안전 보건부(OSHA)에서 설정한 기준치 이하라고 강변했다. 그러나 그 규정은 수십 종의 위험한 물질들이 항상 새어 나오고 있는 실제 작업장의 상태를 정확하게 반영하지 못한다는 노동자들의 주장이 훨씬 설득력 있다. 일반적으로 반도체와 같은 첨단 산업의 작업장을 클린룸(깨끗한 방)이라고 부른다. 클린룸에서 작업하는 노동자는 먼지가 나지 않는 방진복이라는 옷을 입고 작업한다. 그러나 이 옷은 사람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반도체 칩이 오염되는 것을 막기 위해 설계된 옷이다. 또한 클린룸의 공기도 일정하게 순환되지만 필터는 먼지만 제거하고 화학 가스는 제거하지 못한다. 노동자들이 클린룸에서 작업하는 동안 발암물질 혹은 발암물질로 의심받는 수십 종의 화학약품에 노출되고 그것을 호흡하게 된다. 첨단 산업의 클린(Clean)한 이미지는 안전하다는 것과는 전혀 관련이 없는 것이다.


1991년에 캐나다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클린룸에 사용되는 약품과 유사한 화학약품에 노출된 임산부들은 125명중 13명이 기형아를 출산했다고 한다. 이 통계는 화학약품이 없는 다른 작업장에서는 125명중 1명 정도임을 감안할 때 매우 큰 수치임을 알 수 있다. 스코틀랜드 조사에서도 남성노동자에서 나타나는 뇌종양 발생률이 평균보다 4배나 된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아직까지 미국의 반도체 노동자들에 대한 암 발생률은 조사된 적이 없다. 1998년, 캘리포니아 보건 서비스부(California Department of Health Services)는 이에 대한 연구를 계획한 바 있었지만, 반도체 제조업체들이 참여를 거부했기 때문에 실패로 끝났다.


한국 전자산업 종사노동자의

정밀 검진과 작업장실태조사가 시급하다!


이렇듯 첨단 ‘공해’ 산업의 문제는, 전통산업과 특별히 다르지 않다. 선진국에서 직업병 및 환경 문제가 발생하여, 자국의 노동자-민중의 저항에 부딪치게 되면 다국적 기업은 환경 규제가 허술한 제3세계로 이동한다. 예나 지금이나 다국적 기업은 한 나라에서 충분한 이익을 뽑은 다음 노동자들에게는 항상 직업병과 환경오염을 뒤에 남기고, 규제가 보다 허술한 제3세계로 이전했다.

차이가 있다면, 첨단산업에서 발생하는 직업병은 장기간에 걸쳐 발생하기 때문에, 그 원인 규명이 매우 어렵다. 그러므로 선진국과 제3세계 국가들의 노동자들이 거의 동시에 유사한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는 점을 차이점으로 볼 수 있다. 그리고 정부나 연구소가 발간하는 첨단 산업에 관련된 자료들은 대부분 자본가를 위한 것들이 대부분이다. 그렇기 때문에 전통산업 보다 첨단 산업에서 더욱 노동자-민중들이 대응하기는 힘들고, 장기간의 투쟁을 요구한다.


대만과 미국 노동자들의 이번 투쟁은 첨단 산업의 깨끗한 이미지 이면에 숨겨져 있는 더러운 음모를 전세계 노동자-민중들에게 알려내기 위한 투쟁의 시작으로 의미가 있다. 특히, 전자 산업의 역사가 20여 년이 되고, 환경규제도 선진국보다 엄격하다고 볼 수 없는 한국의 노동자-민중들에서는 더욱 큰 의미를 가진다.

제일 우선적으로 한국의 전자 산업에서 작업장 실태에 대한 조사작업 즉, 작업장에서 사용되는 각종 독성물질들의 종류(첨단 산업의 자본가들은 독성물질의 종류를 기업 비밀이라는 이유로 공개를 거부할 것이다)와 그것이 인체와 주변환경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조사작업과 전자산업에 종사하고 있는, 그리고 종사한 적이 있는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그들의 건강상태에 대해 정밀 조사를 요구하는 투쟁을 시급하게 진행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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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린 룸의 더러운 비밀

반도체 산업은 첨단 기술의 “클린 룸”을 자랑하였다. 그러나 점점 더 많은 노동자들은 첨단기술의 보호 장치들이 마이크로 칩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지 인간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기 시작했다.

수잔 Q. 스트라나한

1984년, 종합 검사 결과, 40세의 아미다 메사(Armida Mesas)는 유방암에 걸렸다는 진단을 받았다. 라틴계인(라틴계 여성들은 대부분의 소수민족보다 암 발생률이 낮다) 메사는 두 아들을 출산했으며(출산은 역시 감염을 낮춘다) 술과 담배도 하지 않는다. 그녀의 어머니도 그리고 7 자매 역시 이러한 병에 걸린 적이 없는데 그녀만 이런 병에 걸리게 되었는지 그 이유는 알 수 없었다.

그녀의 나이 57세가 되어서야 비로소 자신이 왜 그런 암에 걸리게 되었는지, 그리고 그녀의 동료, 수자네 루비오(Suzanne Rubio)가 왜 36세의 나이로 유방암으로 죽었고 그녀가 알고 지내던 상당 수의 사람들이 왜 암에 걸리게 되었는지 확신할 수 있게 되었다. 그들 모두는 캘리포니아 산호세에 있는 IBM 반도체 공장에서 근무하고 있었고 컴퓨터, 휴대폰 등, 하이테크 상품에 적용되는 실리콘 칩을 생산했던 것이었다.

메사는 다른 250명의 반도체 노동자들과 그리고 그 가족들과 함께 하이테크 공장에서 사용되는 독성 화학약품들이 노동자들에게 암을 유발하고 자녀들에게 선천성 기형을 일으키는 지 여부를 증명하고, 고용주들이 그 화학약품의 위험성을 알고 있었지만 아무런 보호대책을 새우지 않았음을 밝히기 위해 투쟁하고 있다.

“그러나 그들은 전혀 사회에 부각되지 않고 있다.”라고 요셉 라도우(Joseph LaDou) 박사는 언급하였다. 그는 직업병치료를 위한 국제 센터 회장이며, 1970년대부터 대규모 반도체 제조가 시작된 이래로 이 산업에 대해 연구하고 있다.

미국에서는 거의 30만명의 사람들이 반도체 공장에서 일하고 있다.; 그 노동자들은 작업량의 1/4정도는 일상적으로 반도체 칩을 생산하는데 사용되는 독성 화학약품에 노출되고 있다. 전세계적으로 반도체 노동자수는 백만명보다 훨씬 많을 것으로 추정되며, 이들 회사중 인텔과 모트롤라와 같은 미국회사들은 반도체 시장을 주도하고 있고 매년 말레이시아, 필리핀, 중국에 새로운 공장을 짓기 위해 수 조원씩 투자하고 있다.

라도우 박사는 반도체 산업이 확대됨에 따라, 노동자들(그들 중 대부분은 여성이거나 소수민족이다)의 건강문제는 급격하게 커질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것은 이제까지 누구도 경험하지 못한 훨씬 큰 문제다. 아마 석면에서 경험한 것보다 더 크게 만연될 것으로 본다”라고 경고했다.

반도체 칩이 만들어지는 “클린 룸(clean room)”에서, 노동자들은 머리에서 발끝까지 덥을 수 있는 보호옷(통칭 토끼옷)을 입는다. 그러나 이 옷은 사람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칩이 오염되는 것을 막기 위해 설계된 옷이다. 클린룸에서 공기도 일정하게 순환되지만 필터는 먼지만 제거하고 화학 가스는 제거하지 못한다. 노동자들이 클린룸에서 작업하는 동안 발암물질 혹은 발암물질로 의심받는 수십종의 화학약품에 노출되고 그것을 호흡한다. 이들 약품중에서는 톨루엔(toluene), 카드늄(cadmium), 아신(arsenic), 벤젠(benzene) 그리고 트리클로로에칠렌(trichloroethylene)을 포함하고 있다. 이러한 물질들 뿐아니라 여러 화학약품들의 혼합으로 생성되는 화합물 역시 피할 수 없다. 역시 이런 화합물들은 사람에게 미치는지 영향을 한번도 실험된 바 없는 물질들이다.

그러나 산업계 대표들은 노동자들에게 노출된 독성물질의 양이 모두 직업 안전 보건부(OSHA)와 같은 정부 기간에서 설정한 기준치 이하라고 강변한다. 그러나 그 규정은 수십종의 위험한 물질들이 항상 세어 나오고 있는 실제 작업장의 상태를 반영하지 못한다고 노동자 지지자들과 관련 전문가들은 주장한다. 노동자 지지자들과 전문가들은 노동자들이 여러 질병으로 스러지기 시작하자 그 규정의 효율성에 대해 의심하기 시작했고, 고용주가 위험을 알고 있었는지, 그리고 노동자들에게 경고하지 않았는지에 대해 의혹을 제기했다. 현재, 250명 이상의 노동자들이 뉴욕과 캘리포니아에 있는 IBM과 내셔날 반도체(National Semiconductor) 등 하이테크 반도체 회사를 고발하였다. 고발당한 회사는 이외에도 칩제조에 사용되는 화학약품을 생산하는 유니온 카브라이드(Union Carbide), 듀퐁(DuPont)과 이스트맨 코닥(Eastman Kodak) 등도 포함되어 있다. 노동자들은 반도체 생산에 사용되는 수많은 독성 혼합물들이 선천성기형과 유산을 유발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첨단 산업의] 클린(Clean)한 이미지는 안전하다는 것과는 전혀 관련이 없다”고 많은 노동자들을 대표해서 산호세의 아만다 하위(Amanda Hawes) 변호사는 주장한다. 많은 IBM노동자들처럼, 24년가량 근무한 아미다 메사는 빅불루(IBM)에서 특별한 기억을 가지고 있다. IBM의 회사 관료는 “항상 우리들을 제일 우선적으로 [안전을 위해서] 개개인을 감독하고 있다고 이야기했고, 우리들은 그말을 완전히 믿었다”라고 메사는 [그때를] 회상했다.

메사는 1968년, 그녀의 나이 23세 때 코트 로드(Cottle Road)에 있는 IBM에 취직한 것을 매우 자랑스럽게 여겼다. 지금의 실리콘 벨리인 산호세가 농장과 과수원이었을 때, 오랫동안 그 지역을 실리콘 벨리라고 불렸다. 1959년에 문을 연 그 공장은 인텔, 휴렛페커드, 내셔널 반도체, NEC 전자 등과 초창기 컴퓨터 회사중의 하나이다.
반도체 칩 제조에는 위험하다고 이미 알려져 있는 수백가지의 화학약품들을 사용한다. 접시 크기의 실리콘 웨이퍼를 가지고 여러 가지 산과 용매로 3차원 구조물을 만들기 위해 세기고 벗겨 내는 작업을 수행한다. 이러한 작업과정을 거쳐 생선된 수많은 미세 전기도선을 통해 반도체에 전기 신호를 전달할 수 있게 된다. 매 공정마다 실리콘 웨이퍼에 화학약품 처리하여 평탄하게 하거나 아신과 같은 화학약품도 칩에 부분적으로 주입하여 특정부부에 전기를 잘 통하게 하기도 한다.

거의 20여년 동안 메사는 반도체 칩 제조 라인의 클린룸에서 일했다. 그녀와 동료 노동자들은 우선 보호 가운과 신발을 신은 후에 토끼옷(방진복)을 입었다. “반도체 웨이퍼에 있는 화학약품을 씻을 때 우리가 끼고 있는 장갑은 다소 거치적거린다. 장갑이 재 기능을 못하기 때문에 때로는 장갑을 벗고 작업하기도 한다.”

메사는 작업하는 동안에 종종 건강의 좋지 않음을 느꼈다. 두통과 축농증, 혹은 예전에 경험하지 못한 증세들까지 나타나기 시작했다. 결국, 1984년에 유방암 판정을 받고 수술을 받았다. 수술후 완쾌되자 그녀는 다시 일터로 나갔다. 그러나 1991년에 다시 재발하여 유방절제 수술을 받게되었다. 그녀가 근무한 IBM은 그 이듬해 그만 두었다. 얼마 후 그녀의 코트 로드의 가까운 몇몇 동료들 뿐아니라 다른 노동자들도 역시 암에 걸렸다는 사실을 접하게 되었다. “맙소사, 이게 전염병인가?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놀랐다”고 한다.

1988년 이들 작업 노동자들중 일부가 IBM에 소송을 제기했다는 사실을 접하고 메사도 역시 소송을 제기했다. 약 50건의 소송이 켈리포니아에서 제기되었고, 뉴욕의 이스트 피셔킬(East Fishkill)과 버몬트의 에식스 정션(Essex Junction)에 있는 IBM 공장에는 약 200건 이상의 소송이 제기된 상태이다. 뉴욕의 아몽크(Armonk) 위치한 IBM은 가장 긴 역사 때문에 대부분의 소송의 초점이 되고 있다. IBM대변인은 이 소송에 대한 언급을 거절했다.

첫 소송은 이스트피셔킬(East Fishkill)의 IBM 공장 클린룸에서 일하였던 패지 칼튼(Faye Calton)과 미가엘(Michael)에 의해 제기되었다. 그들의 아들 자채리(Zachary)(16)는 심한 골격 장애를 가지고 태어났다. 1996년에 미가엘과 칼튼은 이 장애에 대한 보상으로 IBM에 4천만불을 요구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이 소송은 작년 비밀에 붙인다는 조건으로 비공개된 금액에 타협하여, 재판까지 가지 않고 빠른 시간에 끝냈다. 그 당시 IBM은 “첨단 과학에 기초해서, 이 소송에서 IBM은 어떠한 책임도 없으며, 잘못된 조치도 없었음을 확신한다”라고 주장하였다. 뉴욕에서는 이 회사를 대상으로 80여건 이상의 소송이 있었고 올 후반기에 재판이 잡혀있다. IBM에 대한 캘리포나아 소송에서는 재판 날짜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여러 가지 소송건들이 있지만, 원고 모두에 공통적인 소송건이 있다; IBM 등 첨단 회사들은 그 회사에서 사용되는 화학약품들이 노동자들에게 위험할 수 있는지에 대한 [공동] 연구 제안을 무시했다는 것이다. 1980년대 초반에, 클리콜 에테르(glycol ethers)-반도체 산업에서 한때 널리 사용된 화학약품-가 실험실 동물 실험에서 불임을 유발 한다고 보고된 바 있다. 1989년에 반도체 산업 협회에 의해 지원되는 연구를 포함하여, 뒤이은 연구 보고에 따르면, 화학약품에 노출된 반도체 노동자들의 유산율은 예상치 보다 두배에 달한다고 한다.

반도체 산업에서 1990년대 중반에 되어서야 글리콜 에테르의 사용을 점차적으로 줄여나갔다. 그러나 아직도 사용되는 많은 다른 화학약품들, 예를 들면 크실론(xylene), 트리클로로에칠렌, 페놀 그리고 아세톤 등은 불임과 관련이 있다. 1991년에 캐나다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클린룸에 사용되는 약품과 유사한 화학약품에 노출된 임산부들은 125명중 13명이 기형아를 출산하였다고 한다. 이 통계는 화학약품이 없는 작업장에서는 125명중 1명 정도임을 감안할 때 매우 큰 수치임을 알 수 있다.

한 연구자는 반도체 제조업에 여성노동자들의 비율이 증가하기 때문에 불임 문제는 매우 위험한 문제라고 경고한다. 이 산업의 임금은 상대적으로 적지만 (2000년에 미국인들의 시급의 중앙값은 12달러이다) IBM과 같은 큰 회사는 12시간 교대 근무로 좋은 수익을 보장해 주었고, 노동자들과 그의 가족에게는 상당해 매력적인 직장이었다.

최근에 전문가들은 반도체 노동자들에게 [유산, 불임 그리고 기형아 출산이외에] 또 다른 위험-암발생을 경고했다. 1985년 이전에도 IBM의 한 화학자는 그의 직장 상사에게 상당히 많은 그의 동료 노동자들이 여러 형태의 질병에 걸렸다는 경고 메모를 남긴 적이 있다. 그후 많은 연구 보고에 따르면, 전자 산업에 장기간 근무한 노동자는 특정 암에 걸릴 위험이 높다고 한다. 그러나 실질적인 관심을 끌기 시작한 것은 지난 12월 영국 정부의 실제 조사 보고서의 내용 때문이었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스코틀랜드 그린녹(Greenock)의 내셔널 반도체에 근무하는 4000명 이상의 노동자들 중에서 유방암, 폐암, 뇌종양 그리고 위암 발생률이 증가하고 있다고 한다.

아직까지 미국의 반도체 노동자들에 대한 암 발생률은 조사된 적이 없다; 1998년, 캘리포니아 보건 서비스부(California Department of Health Services)는 이에 대한 연구를 계획한 바 있었지만, 반도체 제조업체들이 참여를 거부했기 때문에 실패로 끝났다. “클린룸에서의 작업과 암발생이 관련이 있다는 충분한 과학적인 증거는 없다” 또한 “그와 같은 연구에 관여하는 것도 어울리지 않는 것 같다”고 반도체 산업 협회의 대변인 몰리 투틀(Molly Tuttle)은 주장하였다. 2000년에 그 협회는 이 연구를 해야 하는지를 결정하기 위해서 자체 과학자문 위원회를 소집한 바 있다. 결과는 공개되지 않았지만,“매우 심각하게” 논의되었다고 투틀은 밝히고 있다. 그러나 기업들이 어떤 조치를 빠른 시간내에 취할 것이라고 믿는 전문가들은 거의 없다.

라도우와 존 배랄 3세(John Bailar III) 박사 그룹은 WHO가 클린룸 노동자들에서 암 발생률을 국제적으로 연구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반도체 산업에서 직업병문제가 증가함에 따라 [이 문제는 단순한 사고가 아닌] “넓은 영역에 걸쳐 깊이 있게 공중 보건의 문제로 다루어져야 한다”고 배랄박사는 암 관련 정부기관 담당자에게 1월에 보낸 한 편지에서 주장하였다. 특히 개도국의 노동자들은 더 큰 위험에 직면해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개도국에서 직업안전에 관한 법률들이 약하게 규정되어 있는 경우를 흔히 볼 수 있고, 선진국에서 이미 위험하다고 밝혀진 화학약품과 장치들도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이다. 배랄은 스코틀랜드의 연구를 포함한 연구결과를 살펴본 후에 [즉시 이러한 활동에] 참여했다고 한다. 그 연구결과를 보면 상황이 심각함을 확인할 수 있다. “이 작은 연구 결과에서도 공통적으로 신체의 4곳에서 암 발생-[유방암, 뇌종양, 폐암, 위암]-이 증가하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이 자료는 비록 [반도체내의 작업환경이] 암 발생을 [일으킨다는 사실을] 증명하지는 못하지만 [그 관련성을] 강하게 시사하고 있다.”라고 배랄은 주장하였다.

배랄에 따르면 유산, 선천성 기형 그리고 특정 암은 같은 화학약품에 의해 촉진될 수 있으며, 원인은 밝혀지지 않았지만, 그 독성은 인간 유전자에도 손상을 입힐 수 있다고 한다. 그러나 노동자들이 화학약품에 노출된 후에도 수년 동안 건강상의 문제가 발견되지 않기 때문에 원인과 결과의 직접적인 연계를 밝히는 것은 무척 어렵다. “노동자들이 20여년 동안 이 산업에서 지속적으로 같은 문제를 제기하고 있는 것은 슬픈 현실이다“ 라고 브루스 포웰(Bruce Fowler)박사는 언급했다. 만약 [20년 전] 이 연구에 집중했다면 현재 노동자들이 법정소송에서 제기한 [많은] 의문에 대해서 상당수는 해결할 수 있었을 것이다.

에드 마츄작(Ed Matuszak)는 1988년 1월에 IBM에서 일을 시작하였다. 화학과에서 학사학위를 받고 재료과학에 석사를 받은 에드는 빅블루로부터 다섯 개의 부서에서 일을 제안을 받았다. 그때의 행복감은 아마 북부 버몬트에서 최고였을 것이다라고 그의 아내 스잔은 회상한다. 그는 벌링톤(Burlington) 부근에 있는 엑식스 정션의 IBM공장을 직장으로 선택했고, 클린룸에 정교한 장치를 관리하는 일을 맡게 되었다. 그는 종종 12시간의 긴 작업을 마친 후 집으로 돌아와 동료에게 전화를 걸어, 이 일이 그에게 상당히 의미가 있음을 말하곤 했다.

2000년 3월 어느날 에드는 감기증세를 호소하며 퇴근했다. 몇 시간 후 발작증세로 뒹굴기 시작했고, 너무 심한 발작으로 어깨까지 탈골되기도 했다. 그의 아내는 고열 때문으로 생각했지만, 응급실 의사는 정밀 조사를 해봐야 하는 심각한 상황이라고 했다. 그 다음날 아침 “ MRI 촬영을 했다. 신경외과 의사는 매우 퉁명스러웠다. 그 의사는 에드가 뇌종양을 갖고 있으며 5년에서 10년 정도 더 살 수 있다고 진단했다.” 스잔은 그때 당시를 회상했다. [그 후] 에드(40)는 수술과 방사선 치료를 받고 [증세가 호전되는 듯했다.] 의사도 낙관적으로 이야기 했다. 공장에서의 작업을 지속하기 위해 그의 직장 동료에게 랩탑컴퓨터를 요구했고, 다시 직장에 복귀하는 이야기를 했다.

재활기간 중 어느날 물리치료사는 간단한 수학 테스트를 했다. 그러나 그는 덧셈도 할 수 없었다. “나는 순간 얼어 버렸다“ 고 수잔은 회상했다. 뇌종양이 다시 자라난 것이었다. 그해 6월 에드 다시 큰 발작을 일으켰고, 4주후 죽음을 맞이했다. 당시 에드가 알지 못한 사실이 하나 있는데, 같은 병원 다른 병실에 에드의 동료 노동자 마이크 뷰드니(Mike Beaudry)도 역시 치명직인 뇌종양과 싸우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그는 작년에 죽었다.

수잔 마츄작은 “두 남자의 병이 그들의 직업과 관련이 있는지에 대해서는 그 공장의 다른 노동자들은 심각하게 고려하기를 원치 않았다.“고 회상했다. “추측컨대, 그들에게는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수잔과 뷰드니의 모친은 현재 IBM에 대해 소송중에 있다.

에드 마츄작의 경우처럼 직장에서 남자들의 뇌종양 발생률이 평균보다 더 크게 나타나고 있다. 1975년에서 1989년사이에 죽은 1만명 이상의 IBM노동자들을 대상으로한 1996년 연구 결과에 따르면 10년 혹은 그 이상 이 회사에 근무한 경험이 있는 남성 기술자와 엔지니어사이에서 뇌종양 발생률이 높게 나타나고 있다고 한다. 이 자료만으로 [암발생의] 원인을 단정하기는 어렵지만, 그 수치는 IBM이 [확실하게 어떤] 문제를 가지고 있음을 말해준다고 포웰박사는 지적했다. 게다가 두 개 이상의 다른 연구 결과에서 전자 산업에서 노동자들 사이에 뇌종양 발생률이 증가되고 있음을 보여 주고 있다; 스코틀랜드 조사에서는 남성노동자에서 나타나는 뇌종양 발생률이 기대치보다 4배나 된다고 밝히고 있다.

여전히, 이러한 통계수치는 스잔 마츄작과 같이 작업장과 남편의 죽음의 관계를 급하게 판단해야 하는 상황에서는 [적절한] 답을 주지는 못한다. 클린룸에 사용되는 특별한 화학약품들이 직접 그 질병의 원임임을 밝히는 것은 헤라클레스의 힘을 빌려야 할만큼의 어려운 작업이다. 이는 연방정부의 보건 안전 가이드라인에 있는 100개의 화학약품 보다 더 많은 화학약품과 수십종 이상의 질병과의 관계를 밝혀 내야 하기 때문이다.

소송이 진행됨에 따라 노동자들은 산업계의 변호에 대응해야 한다. 산업계에서는 반도체 작업은 국가에서 인정한 가장 안전한 산업에 속한다라고 변호하고 있다. 반도체 제조업자는 미국 노동통계국의 자료를 종종 인용하는데, 반도체 제조업은 그 자료 목록에 나열된 200여개의 산업중에서 6번째로 낮은 산재와 직업병의 비율을 갖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그 자료는 작업중에 발생한 산재와 직업병에 관한 것이지 장기간에 걸쳐 발생하는 병에 대한 것이 아니다. 그리고 노동자의 2세에 발생하는 유전 병 혹은 불임에 관한 것은 더더욱 아니다. 이러한 자료의 누락-특히 젊은 여성이 많고 이직률이 높은 이 작업장에서-은 [반도체 제조업이 매우 안전하다]고 쉽게 오인하게 만든다. [이러한 이유로] 정부 단속위원도 첨단 산업에 대해서는 크게 신경을 쓰지 않고 있다. 작업장을 감독하는 연방 기관 [역시] 반도체 공장에 대해서 특별한 감시와 연구를 하려고도 하지 않고 있다. 반도체 산업에서 “깨끗하고 안전한 기록”들은 단속위원들게 단속에 있어 우선 순위를 갖지 않게 한다고 직업 안전 보건부(OSHA) 대표들은 지적하고 있다. “[산업체]가 ‘우리에게는 어떤 문제도 없다’고 입장을 이야기할 때 무척 심한 좌절감에 빠진다. ‘네가 틀렸어, 너는 사람들을 잘못 인도하고 있어. 우리에게 [직업병으로 확인된] 사망자 수를 [명확하게] 제시해봐, 그러면 우리는 그에 상응하는 조치를 취할 꺼야'라는 말은 항상 듣는다, 우리는 반도체 산업체들과 [싸움은] 오랫동안 이런식으로 반복해왔다.”고 산호세의 하위 변호사는 그의 심정을 털어놓았다.

일부 산업 감시 전문가들은 변화를 이끌어 내기 위해서는 널리 알려지고 값 비싼 소송을 치러야 할 지도 모른다고 믿고 있다. “만약 고용주가 하기로 한 약속을 이행하지 않는다면, 그리고 정부도 개입하지 않는다면, [반드시] 변호사에게 가야한다” “그들이 마지막으로 의지할 사람이다.“ 라고 라도우는 주장한다.

그러나 [설사, 변호사를 찾아가서 재판을 하더라도] 수십년 혹은 수년이 지나야 이러한 의학적이고 환경관련 법적 이슈들은 해결될 것이다. 라고 포웰박사는 지적한다. 그런 동안에 미국과 해외에서 반도체 산업은 [지속적으로] 확대될 것이다. 그리고 아파서 쓰러진 노동자들만이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끝까지 투쟁할 것이다. 그러나 “기억하라 그들에게 죄가 다면 단지 일을 필요로 했다는 것 뿐이다라는 사실을..”PSS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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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우리 자신의 과학 : 맑스주의와 자연 -맑스주의 과학 II

I 편

 

우리 자신의 과학 : 맑스주의와 자연 -맑스주의 과학 II

 

리차드 레빈스 (Richard Levins)

 

부르주아지의 부흥과 현대 과학의 탄생

 

사회를 과학적으로 분석하면 더 나은 세상을 향한 프로그램에 이르게 된다는 생각은 맑스보다 3세기 앞선다. 과학은 신흥 부르주아지에게 생산 방법과 항해도구의 발전과 같은 실질적 가치를 주었고, 봉건적 관계에 복무한 신학의 권위에 저항할 수단도 제공해 주었다.

 

과학은 부르주아 혁명의 기치 중 하나였다. 민주주의처럼, 과학의 슬로건은 사회적 토대가 필요로 하는 그 이상까지 나아갔다. 과학은 구체제와의 투쟁에 필요한 것 이상으로 도전과 독립의 수준을 분명히 했기에, 잠정적으로 새로운 부르주아 질서에도 위협이 되었다. 그러나 과학의 실용적인 가치만이 논증되었다.

 

잉글랜드에서 과학은 17세기 중반에 사회적 지위를 얻었고, 실제로 영연방의 공식 정책이 되었다. 당국의 중요한 문제를 조사할 때 과학으로 인해 정치 혹은 종교까지 확대하지 않는다면 그리고 과학에 따른 자유가 위험한 선례를 남기지 않는다면, 유럽의 가장 보수적인 정부까지도 과학 부흥을 지원했다. 대부분 유럽의 기존 과학자들은 이러한 역사적 타협을 받아들였고, 주목받을 만하지만 성가신 것은 발견조차하지 않았다. 혁명적인 갈증은 무뎌갔다. “이 시대 초기에 코페르니쿠스는, 신학을 비판하는 편지를 쓰고, 뉴턴은 신의 최초의 충격(역주- 뉴턴은 최초 물질의 운동에는 신이 개입해야 한다고 믿었다.) 이라는 가설로써 이 시기를 끝맺었다”(엥겔스, 자연 변증법)

 

과학과 철학의 통일

 

과학의 영역에 모든 인간 경험을 포함하려는 사람들은 실험실 과학과 일정한 거리를 두었다. 실험실 과학은 좁게 경험적이며 신중하고 중립적인 것에 국한하려고 하며, 거대한 인간의 관심사에 개방형 질문을 던지는 철학자들을 의심했다.

 

맑스와 엥겔스는 철학과 과학을 구분하는 이분법적 사고를 거부했다. 둘 중 하나를 택하지 않고, 그들의 모든 철학적 도구로 과학에 접근했고 과학적 탐구 대상으로 철학을 고찰했다. 엥겔스(자연 변증법)는 17, 18세기 과학의 기계론적인 사고방식을 기술한 후에, “자연에 대한 이런 경직된 사고방식에 균열을 일으킨 사람은 자연과학자가 아니라 철학자였다(칸트의 태양계의 기원에 대한 성운설)”고 보고하였다.

 

맑스와 엥겔스가 발전시킨 세계관은 과학도 아니고 철학도 아니었다. 완전히 새로운 지적범주로 종합적인 어떤 것이었다. 그 내용에는 사회적 토대, 조직형태 그리고 실천관계를 포함한다. 학계의 필요에 의해, 맑스주의를 전통적인 학문영역에 끼워 맞추려는 시도들이 종종 있어 왔다. 예를 들어 알튀세르의 경우 맑스주의 과학을 맑스주의 철학과 분리하였다. 맑스주의자는 맑스주의를 대학의 경제학부에서, 역사학부에서, 정치 과학, 철학, 문학 혹은 자연과학부에서 가르치지만 그들이 가르치는 것은 동료나 학장이 이해하는 그런 경제학, 역사, 철학, 문학일 수는 없다. 확실히 이를 정당화하려는 지적 압력은 존재하고 있다. 단지 학문의 한 분야로써, 기본적인 것만을 성취하려 할 때 맑스주의는 파괴된다. 그러므로 맑스주의의 생존력은 맑스주의 사상의 발전을 위한 별도의 학술적 기반, 출판, 맑스주의 학교, 학회 혹은 정당 등에 의존한다.

 

맑스주의는 부르주아 혁명시기의 과학으로부터 권위에 대한 거부, 논증, (우리의 바램을 제거하고) 있는 그대로 보는 것에 대한 중요성 그리고 국제적인 지적 상호교류의 개념을 받아들였다. 맑스-엥겔스 시대에, 권위의 폐기란 세상을 있는 그대로 편견 없이 바라보는 것을 통해 종교적 권위를 폐기하고 모든 권의 도전하는 것 의미했다. 문맥상, 이러한 주장은 순진해 보인다. 편견 없이는 볼 수 있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 자유주의 이성에서도 편견은 우리의 형성에 영향을 준다고 하며, 더 깊게 변증법적 이성에서도 편견 없이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한다. 그러므로 편견의 폐기는 실제 연구수행이나 과학의 이상적인 상태를 설명하는 말이 아니다. 과학에는 자기비판이 요구된다. 그리고 우리는 항상 오래된 것을 조망하며, 새로운 것에 접근한다. 그리고 이러한 접근 방식을 항상 의심하는 지속적인 자각이 필요하다.

 

각각의 과학에는 실수를 인식하는 자기만의 전통적인 패턴과 그 실수를 피하기 위한 방법론을 가지고 있다. 맑스주의의 주요한 방법론적 통찰은 다음과 같은 역사적 유물론자의 가르침이다. 세계 상황에 관한 일반적인 견해들(특히 이데올로기)은 그 상황[을 구성하는] 일부 정보일 뿐이다. 그리고 그 세계를 이해하는 과정으로 그 상황 자체를 가지고 분석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들 원칙은 모두 합쳐, 과학에 객관성과 자연과 사회에 대한 진리 발견을 요구할 때 기초가 된다. 즉 객관성은 [과학이 가진 기본] 조건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추구해야 할] 과정이다. 그것은 우리가 편견을 갖고 세상과 맞서는 과정, 다른 사람의 편견이 우리의 편견과 맞서는 과정이며, 여러 가지 다른 편견으로 우리가 가진 여러 편견과 맞서는 과정이다. 객관화의 과정은 결코 끝이 없다.

 

객관성을 달성하기 위한 우리(맑스주의자의) 방법은 개인 특유의 편견과 다른 그룹의 편견에 대응해서 꽤 잘 작동한다. 그러나 우리가 서로 같이 공유하고 있는 편견을 강화시키기도 한다. 예를 들어 동물 행동에 관한 연구는 실험의 정확성을 개선하고 해상도를 안정화시킴으로써 매우 정교한 실험을 수행할 수 있다. 반면에 거의 전반적으로 우리가 가진 성적 편견에내에서 연구가 수행된다. 그런 성적 편견은 페미니스트 연구자들의 활발한 저항에 의해서만 상당히 균열을 낼 수 있다.

 

그러나 “과학적”이라는 말은 제한된 의미에서만 “객관적”이라는 의미를 갖는다. 레닌이 “실무적인(businesslike)"이라는 말의 의미를 바람직한 성격으로 경험이 많고, 책임 있고, 훈련된 그리고 현실감 있는 성격으로 생각했지만, 교묘하거나 개인주의적이거나 탐욕적이거나 정직하지 못하다는 뜻으로 사용하지 않았다. 그리고 일반적인 말로 ”고결하다“는 의미는 용기 있고, 명예롭다는 뜻으로 사용되지만 지독하고 고집 있거나 성차별주의라는 뜻은 아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과학적”이라는 말을 사용할 때 이것의 의미는 실제 과학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이상화된 과학을 의미한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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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우리 자신의 과학 : 맑스주의와 자연 -맑스주의 과학 I

이 글은  1986년 미국의 좌파 잡지 먼슬리 리뷰지에 실린 리차드 레빈스의 글입니다. 하버드대 교수이며 생태학자인 레빈스는 한국에서도 이미 많이 알려진 맑스주의 과학자입니다(참세상에서 “과학, 사회, 혁명운동 그리고 변증법”이라는 글에서 소개된 바 있습니다). 이 글은  좌파가 왜 과학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지 그리고 과학에 대해 어떤 입장을 가져야 하는지를 비교적 명료하게 설명되어 있어 소개합니다. 이 글을 총 3부분으로 나누어 번역하고 있고, 이번에 이어 다음에는 ‘부르주아의 성장과 현대과학의 탄생’,‘과학과 철학의 통일'을 그 담에‘현실 과학 비판‘과 ’좌파와 과학‘을 번역해서 올릴 예정입니다. (급하게 번역하느라 오역이 많이 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원문을 참조해 주세요)

  

우리 자신의 과학 : 맑스주의와 자연 -맑스주의 과학 I


리차드 레빈스 (Richard Levins)


내가 글을 배우기 전에 할아버지(아브라함 색만, Abraham Sackman)는 배드 비샵 브라운 신부(역주- 윌리엄 몽고메리 브라운, 미국 성공회 주교이자 공산주의자. 배드 비샵이라는 별명은 이교도 재판과정에서 붙여졌다.)의 “소년 소녀를 위한 과학과 역사”라는 책을 읽어 주셨다. 이 책에서는 과학과 역사는 서로 연계관계가 있음을 주장하였고, 그런 주장이 나에게  전혀 이상하게 들리지 않았다. 오히려 그것은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 수 있는 매우 흥미 있는 발견이었다. 할아버지는 사회주의-노동자들을 위한 교육에 최소한 우주론, 진화론 그리고 역사를 의식적으로 포함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교회에서 파문당한 맑스주의자 배드 비샵은 그의 책에서 과학과 역사를 분리할 수 없는 하나로 보았다. 그에게 인간의 역사는 자연 역사와 연속선상에 있었다.


과학과 역사는 몇 가지 이유로 맑스주의자들에게 중요하다. 첫째로 세상을 이해하는 것 자체가 지배계급의 지식 독점과 종교적인 반계몽주의에 저항하는 것이며 특히 신교도들이 인간을 하찮게 여기는 사상에 반대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사람이 무엇이 건데 주께서 저를 생각하시나이까?) 이 질문에 우리의 대답은 이렇다. 


우리는 은하수 주변 바깥, 2류 태양 주위를 도는 작은 행성위에서 최근에 살고 있는 하찮은 존재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는 바위에서 과거를 읽을 수 있고 우리의 노동으로 현재를 변혁하며, 별들의 미세한 빛의 조성을 프리즘으로 알아내고 또 의식적이고 집단적인 활동을 통해 우리 자신의 미래 발전을 도모한다.


세계를 알고, 지식화해야 한다는 열정적인 책임감은 우리의 적들에게는 오만함으로, 더 심하게 지독한 뻔뻔함으로 인식되었다. 적들은 맑스주의를 반박하기 위해 그리고 그들 미학의 핵심으로 신비주의, 불가지론, 랜덤함, 비이성의 논리로 무장하고 있다. (예를 들어, 1940년대 고전 아서 커스틀러의 《요가 수행자와 인민위원 The Yogi and the Commissar and Other Essays》를 참조)

 

맑스주의자들에게 과학 기술의 발전은 세계에 대한 최신 지식을 얻는 다는 의미 이외에 특별히 더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과학 기술의 발전은 기술과 사회 발전의 중요한 역할을 하는 생산 수단의 발전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생산수단의 발전은 변혁을 위한 필요조건이다.


과학은 단지 과학적 성취와 응용기술을 나열한 명부가 아니다. 그것은 특별한 사회 환경에서의 인간의 활동이다. 그러므로 과학은 사회주의자들이 사회에 대한 학습에서 주요하게 다루어야할 대상인 것이다. 최근 들어 점점 더 다양한 이슈들, 지식의 군사화, 건강, 환경 경제 발전, 여성 해방, 인종주의와 계급 서열화의 합리화 그리고 교육 문제 등에 대한 정치적 투쟁에서 과학적 문제와 연관되어 있다.


혁명 정당은 권력을 잡기 전과 후 모두 과학에 관한 프로그램을 채용해야 하고 이런 저런 과학적 근거를 형성하는 사회 운동과 어떤 식으로 공동 투쟁할 것인지를 배워야 한다. 맑스주의 과학자는 자본주의 하에서 과학이 이데올로기적, 제도적 속박에서 어떻게 기능하는지를 밝혀내야 한다. 우리의 삶을 관통하는 자본주의에 대항해야할 필요성을 인식한 사회주의자들은 과학의 문제들에 대한 초기의 관심을 부활시키고, 과학을 투쟁 활동과 연구를 위한 실천과제 속에 배치시켜야 한다.


과학을 이해하는 작업은 과학의 주요 모순을 명확하게 하는 것으로 부터 시작한다. 현대 과학은 지식 성장의 역사에서 한 단계이며, 동시에 서구 부르주아지 계급에 속박된 창조물이기도 하다. 자본주의 사회는 과학이 그들의 이익과 권력 추구를 위해 필요한지를 묻고, 지금까지 발전된 과학으로 적절한 방법을 적용한다. 그리고 부르주아 사상에 순응할 수 있는 적절한 답을 찾아낸다. 현대 과학은 생산력의 한 부분이면서 생산관계의 한 부분이기도 하다.

 

과학은 상품으로서 교환가치와 사용가치 사이의 모순을 가지고 있다. 과학은 실재(reality)를 해석하고 반영하지만 이데올로기적으로 실재를 혼미하게 하기도 한다. 또 과학은 부르주아 혁명의 산물이지만 부르주아 민주주의처럼 부르주아의 욕망과 필요를 초월해서 때로는 걸림돌이 되기도 하고 위협이 되기도 하지만 그 근본 태생의 성흔은 결코 털어버리지 못한다.


과학은 지적 자유를 향한 저항의 함성이 되기도 하지만 억압과 지배를 합리화하기도 한다. 조작된 미신에 대항하는 계몽의 무기이기도 하지만 제 3세계 문화의 지식을 인종주의와 맹목적 애국주의로 파괴하는 무기이기도 하다. 그리고 과학은 우리 존재 조건이기도 하고 정치의 대상이기도 하다. 또 이데올로기 장벽을 넘어 국제 협력의 장이기도 하지만 계급투쟁의 현장이기도 하다. 세상을 변혁하기 위한 길잡이기도 하지만 독단적인 교조의 그리고 자기자랑의 미사여구가 되기도 한다. 내적인 면에서, 작은 규모에서, 한 연구소 규모에서는 과학은 지적 교양을 증가시켜 주는 것으로 보이지만 전체적인 과학 활동 수준에서는 비이성적인 면이 증가하고 있다. 과학은 알려지지 않은 것을 지금 알려진 것으로 가정하고 연구하기도 하는데 종종 그러한 가정을 잊어버리기도 한다.


맑스주의자는 이들 모순들에 대해 서로 다른 입장을 취하고 있기도 하다. 몇몇 학파들은 액면 그대로 이상화된 과학관을 받아들이고 있다. 많은 서구 유럽 맑스주의자 특히 유로코뮤니스트들 중에는 맑스주의 영역을 진보적인 정치경제 프로그램에만 국한시키려는 자들이 있다. 그들은 변증법적 유물론에 자연 과학의 오용과 독점을 비판하는 것 이외에 더 중요한 것이 있다는 개념을 “스탈린주의”로 보고 거부하고 있다.


맑스주의 당에서 이런 독단적 흐름은 과학이 실제 어떻게 작동하는지에는 관심 없게 하고 과학을 객관적 실재와 동등한 것 그리고 (순수한) 진리로만 받아들이게 한다. 그래서 ‘과학적 사회주의’처럼 ‘과학적’이라는 말을 정당성을 주장하기 위한 말로 사용한다. 이미 엥겔스 시대에 “독일 사회주의는 최근에... 한층 더 터무니없는 잠꼬대를 지껄이며, ‘과학‘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면서 뻐기기만 하는 사람들이 많이 생겨났다.(엥겔스, 반듀링론) 그 이후 수십건의 체계적인 문건에서 단지 한 두 번 일어난 일을 과학적으로 증명되었다고 주장해왔었고, 저자들은 그것을 인정해왔다. 


변증법적 유물론을 비판하는 유로꼬뮤니스트와 독단적인 좌파 모두 과학을 진보적이며 객관적이고 해방을 담지한 힘이라는 이상화된 개념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이러한 화려한 묘사에 맞지 않은 과학은 그것 자체로 순수하지만 단지 외부에서 탐욕과 ‘이데올로기’로 오염된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과학에 접근하는 유물론자는 이런 이상적인 정의에서 출발하면 안 된다. 명확히 과학은 자본주의와 함께 진화하는 것으로써 정의해야 한다. 그러므로  과학의 역할을 부르주아 혁명에서 해방의 힘으로 그리고 부르주아 사회를 견고하게 하는 힘으로 평가하고 짧게 다시 살펴볼 필요가 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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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역사의 빅뱅, 제로존 이론(?)

인류역사의 빅뱅, 제로존 이론(?)


이랜드 사태 등 비정규직 투쟁으로 정신없는 우리 노동자들에게 생소하게 들리겠지만, 지난 8월 <과학동아>도 아닌 <신동아>는 과학 역사상 엄청난(?) 특종을 발굴했다. “한국 재야 과학자의 제로존 이론, 세계 과학사 새로 쓴다!”는 제목으로 “길이, 온도, 질량, 시간의 무차원화… 소립자에서 우주까지 대통합”한다는 이론을 발표한 것이다. 이 잡지는 제로존 이론을 “바벨탑 이전의 세계로 복원"하고 "인류 역사에 빅뱅 초래"할 만하며, "노벨상 0 순위"라고 평가하고 있다.

아마추어(그들은 ‘재야’ 과학자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과학자 양동봉씨(표준반양자물리연구원장)에 따르면, 제로존 이론으로 질량(㎏), 시간(초), 길이(m) 등 7개 기본단위를 숫자로 변환해 모두 통일시킬 수 있다고 한다. 즉 사람의 키와 몸무게를 차원이 다른 숫자로 바꾸어 더하거나 뺄 수 있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모든 과학이론을 숫자로 통일할 수 있다는 의미로 사이비 종교의 교주이기도 한 피타고라스를 연상케 한다.


이 이론에 대한 지지층도 만만치 않다. 전 KIST(한국과학기술 연구원) 부원장이자 단국대 부총장(전기전자공학)인 오명환 교수는 “양원장의 발견은 (중략) 물리학계에 엄청난 충격을 줄 것”이라고 평가했고, 제주대 교수 이현주 교수(원자핵 공학)는 “기존 패러다임의 중대한 전환을 초래할 것이다. 노벨물리학상을 기대해도 될 것 같다”, 서울대의 문병로 교수(컴퓨터공학부)는 “그가 발견한 방법은 매우 신기하고 놀랍다.” 한국생산기술 연구원 이상목박사는 “산업적 가치는 상상의 범위를 넘어설 것이다. 실험하지 않고도 결과를 유추할 수 있기 때문에 실험활동의 90%는 사라지고 진짜 필요한 실험에만 집중할 수 있다. 이것만 해도 경제적 가치는 무궁무진하다. 아울러 정보, 컴퓨터, 재료, 소립자, 생체공학 등에 끼칠 영향은 ‘엽기적’일 것이란 표현도 부족하다.”고 평가했다(지지자들의 발언은 더 있지만 지면관계상 생략한다.) 지지 발언이 이쯤 되면 제로존 이론의 진실성과 무관하게 왠지 줄기세포의 악몽이 떠오르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아이러니 하게도 제로존 이론을 지지하는 학자들 중에 물리학자는 한명도 없다.


물리학계에서는 사태 진압에 나섰다. 한국물리학회는 지난 6일 기자회견에서 '제로존이론'을 과학적 가치가  전혀 없는 것이라고 밝혔다. 학회는 "양 원장과 그의 지지자에게 3차례에 걸쳐 논문 제출을 요청했으나 논문을 받지 못했“으며, 양 원장이 논문을 투고한 '유러피언 피지컬 저널 C'의 편집자로부터 논문 수준이 심사에 회부하지 못할 정도로 낮아 편집자가 즉각 `게재 불가(reject)' 판정을 내렸다는 사실을 확인한 바 있다.


 




 

제로존 이론과 인터넷


양 원장 측은, 물리학계가 검증을 위해 논문 제출을 요구했을 때, “유럽 물리학회지에서 현재까지도 심사 중인 논문을 공개한다는 것은 논문심사에 지대한 영향을 줄 수 있”으며, “어느 나라에서든 심사 중인 논문을 심사종료 전에 물리학회 등을 통하여 미리 공개한 사례는 없다”며 거절했다. 그러나 이 말은 사실이 아니다. 과학자들 중 많은 수는 논문지에 발표하기 전에 인터넷 arXiv(http://arxiv.org)에 올려 토론하고 논쟁한다. 때로는 arXiv에 올려 많은 비판을 받고 논문지에 실리기 전에 스스로 철회하기도 한다. arXiv의 특성상 표절이나 거짓 데이터를 올리기 힘들다. 인터넷에 올라온 논문들은 많은 사람들이 자유롭게 접근해서 오랜 시간 동안 검토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번이라도 조작된 데이터를 올렸다가는 그 흔적이 두고두고 남기 때문에 좁은 과학기술계에 살아남기 힘들다.


양 원장 측은 재야(?) 과학자답게 자신들의 정당성을 주류에 대한 저항에서 찾기도 한다. 주류 과학계는 그물망처럼 권력관계를 형성하고 있고, 기존 이론에 대해 매우 보수적이다. 주류이론에 도전하는 경우 논문지에 실리지 못하거나 왕따 당하기 쉽다. 양 원장 측도 같은 이유로 물리학계의 논문 검증을 거부하고 있다.


그렇다고 비밀주의는 해답이 아니다. 오히려 자유로운 접근이 가능한 인터넷은 해결책을 주기도 한다. 한 예로 양자역학 전문가인 Shahriar Afshar 박사는 보어의 상보성 이론을 부정하는 실험 방법을 제안한 바 있다. 보어는 음악에서의 바흐와 같이 양자역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입지적인 존재이다.


빛은 입자적 특성(국소영역에 모여 있는 특성)과 파동적 특성(전 공간에 퍼져있는 특성)이 모두 관측된다. 상보성 이론이란 파동성과 입자성이라는 모순적 특성은 동전의 양면과 같아서, 동시에 측정할 수 없다는 이론이다. 이 상보성 이론에 반하는 이론이란 빛의 입자성과 파동성을 동시에 측정할 수 있는 실험에 관한 것이다. 참고로 자연 변증법을 옹호하는 쪽에서는 상보성 이론에 반대하고 있다. 자연 변증법에 따르면 모순은 물질 내부에서 발생하고, 공존해야 하기 때문에 동시에 관측되어야 한다. 이해를 돕기 위해, 이 주장은 좌파 내에서 맑스의 이윤율저하의 경향에 반대하는 규모로 생각할 수 있다. 아무튼, Shahriar Afshar 박사는 자신의 논문과 제세한 실험 결과를 웹 블로거에 올려 공개토론을 제안하였고 (http://irims.org/blog/index.php/questions), 이를 통해 오히려 주류 과학계에 도전할 수 있는 계기가 되고 있다.


왜 이런 사건들이 반복될까?


양원장 측은 그들의 이론으로 “우리나라는 세계 최고의 표준 & 원천기술 국가로 확고한 위치를 선점할 수 있고, 21세기 대한민국의 차세대 성장 동력을 자연스럽게 획득하게 될 것”이라고 한다. 논문지보다 신동아에 먼저 발표한 이유 역시 해외 유명 학술지에 제출된 “논문의 게재 승인을 계속 기다리다가, 시기를 놓쳐 핵심 정보가 관련 외국학자들에게 유출되는 위험에 봉착”할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요즘 들어 이러한 종류의 사건들이 자주 반복되고 있다. 2005년, 한국전자통신연구원의 김현탁 박사팀이 노벨상을 수상 가능성이 높은 금속 절연체 이론을 개발했다고 언론에 크게 보도한 바 있다. 이 기술로 1천억 달러(한화 약 100조원)로 추정되는 세계시장을 선점할 수 있다고 했다. 그러나 과장 보도였음이 드러났다. 30조 이상의 국익을 안겨줄 것으로 예측된 황우석 줄기세포 사건도 또 언급할 필요가 없을 것같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공유지가 발견되면 누가 빨리 점유하느냐 경쟁을 해야 한다. 배타적 소유만이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므로, 안정적인 소유권이 확보될 때 까지 비밀스럽게 작업해야 한다. 과학기술은 이미 인류의 공동자산이 아닌 한 국가 혹은 개인의 사유재산으로 인식되고 있다. 그러므로 배타적 소유가 확보될 때까지 숨기는 풍토는 오히려 자연스럽다. 그러나 이러한 풍토는 제로존 이론의 아류를 반복 생산하게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물론 ‘돈이 되지 않는’ 기초연구에 투자 받지 못하는 현 과학 기술계의 현실도 여기에 한 몫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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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복제는 안 돼! 그런데 동물 복제는?

인간복제는 안 돼! 그런데 동물 복제는?

/* 노동자의 힘에 기고한 내용을 약간 수정했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


황우석 논문 사기 사건이후, 논쟁의 한 주역이었던 서울대 수의대 이병천 교수팀은  스너피 복제에 이어 아프간하운드 암캐 3마리의 복제에 성공했다. ‘보나(Bona)'라는 이름을 가진 개는 2006년 6월에, 피즈(Peace)와 호프(Hope)는 7월에 태어났다. 예전과 같이 열광할 필요는 없겠지만 이들의 과학적 성과와 노력에 찬사를 보내지 않을 이유는 없다.


인간 복제의 경우 그 위험성만큼이나 반대의 목소리가 높아서 몇몇 사이비 종교 집단이나 소수 과학자를 제외하고는 인간복제에 찬성하는 사람은 없다. 특이하게 1997년 당시  ‘인간 복제권 연합전선(CRUF)’이라는 단체를 구성한 동성애자들은 인간복제를 지지하였다. 그 이유는 ‘이성애자 동성애자 할 것 없이 자신의 유전자를 지닌 아이를 못 갖는 사람들에게 인간 복제는 유일한 희망’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동성애자 문제와 자신의 유전자를 가진 아이를 가지는 문제와는 큰 관련성이 없다. 자신의 유전자를 가진 아이를 갖는다고 동성애자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자신의 유전자에 집착하는 것은 유전자 결정론 혹은 우생학 등의 주류 자본주의 이데올로기의 영향으로 보인다. 아무튼 생명공학자들은 인간 복제가 논란이 일자 배아(인간이 되기 직전단계) 복제로 한발 뒤로 물러 났어나, 역시 난자 매매 문제 등 상당한 논란을 불러일으킨 바 있다.

 



 

한발 더 뒤로 가서 동물복제의 경우는 어떤가?


동물복제의 경우 종교계나 동물 보호 단체와 환경운동가들 중심으로 지속적으로 반대하고 있다. 그러나 동물복제의 목적이 인체에 유용한 단백질을 확보해서 대량의 값싼 의약품을 생산하기 위해서라면, 인공장기를 가진 동물 복제 기술을 통해 인간에게 간, 심장, 허파, 콩팥 등을 제공하려는 것이라면 그리고 우수 종자로 복제된 동물을 통해 식량문제를 해결할 목적이라면 상황은 달라진다.


일반적으로 사람의 장기이식은 항상 부작용의 위험성이 있다. 과학자들은 동물의 장기를 유전적으로 조작해서 부작용이 없는 인간 장기를 만들 수 있을 것으로 믿고 있다. 또 그것을 복제로 대량 생산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분명 이러한 전망은 장기를 이식 받지 못해 죽어가는 수천 명의 사람들에게는 큰 희망이다.


질병 치료를 위한 동물 복제의 경우 ‘복제동물 새끼는 부모 유전형질을 고스란히 물려받아 여러 마리가 아주 흡사한 성장과정을 거’치기 때문에 복제 동물을 ‘이용하면 비슷한 조건의 동물에 다양한 실험을 할 수 있어 질병 치료법과 신약 개발이 훨씬 쉬워진다’ 예를 들어 ‘당뇨를 앓는 암수 컷을 여러 마리씩 복제한 뒤 자연교배로 많은 새끼를 낳게 하면 자라면서 같은 병에 걸리는 새끼들을 연구해 당뇨의 발병 원인을 구명하고 치료법도 찾을 수 있다’


이런 식으로 동물 이용을 동물 학대라는 이유로 혹은 종교적 이유로 반대할 수는 있다. 하지만, 이미 인간은 동물들에서 음식에서부터 가죽까지 얻고 있고 한국에서는 개를, 중국에서는 원숭이를 식용으로 먹고 있다. 그리고 암 연구를 위해 ‘개발된’ 하버드 마우스라는 쥐는 유전자가 조작되어 항상 암에 걸려 태어난다. 이러한 현실적 상황에서 동물복제를 단순히 동물 학대나 종교적 이유로 무조건 모라토리엄(연구 중지)을 선언할 수 는 없다. 소외받는 환자들에게는 아무리 작은 희망이라도 그것이 삶의 전부일 수 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동물복제 기술의 경우, 노동자-민중의 관심이 절실히 필요하다. 왜냐 하면 과학기술자도 그 기술을 정확하게 이해 못하는 경우가 많으므로, 오직 이윤의 논리 속에 강제적(무의식적으로)으로 끌려갈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생명과 관련된 것은 엄청나게 많은 환경 변수들이 장기적으로 상호작용 하기 때문에 더욱 그러하다. 병명을 모르는 환자들을 대상으로 주변 환경 역학조사는 하지 않고 이 약 저 약 먹여 보는 것이 치료의 전부인 경우가 허다하다. 이는 제약 회사의 이윤만 늘리는 것이지 결코 의사라는 과학자가 해야 할 치료 행위가 아니다.


어느 정도 명확하게 과학적 사실이 밝혀진 경우에도 별반 다르지 않다. 비타민 C가 감기나 암의 예방에 좋다 통설이 있는데, 이는 노벨 화학상과 평화상 수상자인 폴링에서 비롯되었다. 그는 실험을 통해 비타민 1g 이상 먹은 사람의 45%가 감기에 걸리지 않는다고 주장하였고 또 하루에 10g 비타민 C를 복용한 말기 암 환자 100명의 수명이 복용하지 않은 말기암환자에 비해 3∼4배 연장되었다고 발표하였다. 그러나 미국 국립보건원(NIH)과 국립암연구소(NCI) 실험 결과 분석에서 비타민 C는 심리적 효과이외에는 아무런 효과가 없다는 사실을 증명하였다. 그리고 폴링의 암환자 실험의 경우는 환자 선정 방법 자체가 틀렸기 때문에 의미 없는 결과임을 밝혔고, 또 자체 실험에서도 큰 효과가 없다는 결론을 얻었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에도 거대 제약회사에서 제조된 비타민 C는 병원에서 약국에서 절찬리에 팔리고 있다. 이 처럼 생명체에 대한 실험 결과의 경우 항상 숨어 있는 1인치가 있다. 


숨어 있는 1인치 - 바이러스와 종의 다양성(species diversity)


의료용 동물 복제에서 위험성은 동물 속에 존재하는 바이러스에서 찾을 수 있다. 보통 바이러스가 다른 종의 동물로 이전되면 더 치명적인 새로운 종으로 변종될 수 있다. 독감은 돼지나 오리에서(물론 조류독감은 조류에서) 전염된 것이고, 페스트(흑사병)는 쥐에서, 천연두, 홍역과 결핵은 소에서 그리고 백일해는 개와 돼지에서 전염된 것이다. AIDS 역시 아프리카 야생원숭이가 지니고 있던 바이러스가 인간으로 전이되어 치명적으로 변종된 것이라는 증거들이 있다. 복제동물에서 생산된 장기로 장기이식을 한다면 이러한 위험성은 더욱 증가할 것이다.


예로부터 자연 상태의 동. 식물의 종(혹은 유전자)은 매우 다양하게 존재하고 있다. 그렇기에 지구 환경이 갑자기 변한다 하더라도 생태계는 안정적으로 유지될 수 있었다. 다양한 생물 종들이 존재한다면 변화된 환경에 잘 적응하는 동. 식물들이 존재할 확률은 높아지고, 이들이 번식해서 생태계는 유지되었다. 그런데 특정 자본이 선택한 동. 식물들에 의해 종(혹은 유전자)의 다양성이 사라졌다면 어떻게 될까? 어떤 시점에 갑작스러운 환경변화가 있을 때 그 환경에 적응하지 못한 동식물들은 멸종할 것이다. 확률적으로 다양성이 사라진 특정 동. 식물들이 우선 멸종할 것이다. 또 자연계는 먹이사슬로 연결되어 있기에 생태계 전체의 교란까지 예상할 수 있다. 자칫 종의 다양성을 해친다면 후대 사람들에게 우리는 씻을 수 없는 과오를 범하게 될지도 모른다.


형질전환이란 외부로부터 주어진 DNA에 의하여 생물의 유전적인 성질이 변하는 것을 말한다. 형질 전환의 경우 자연적으로 발생하기도 하며 생물학적인 교배나 유전자 조작을 통해 인위적으로 발생되기도 한다. 모든 식물들이 오랜 진화 기간 동안 형질 전환을 거쳐 왔다. 문제는 형질전환이 인위적일 경우 종의 다양성, 유전자 다양성은 축소되었다는 점이다. 해충과 제초제에 저항성 유전자를 갖는 유전자 변형작물(GMO)의 경우 이들 유전자는 쉽게 생태계속으로 전이되었다. 그래서 슈퍼잡초와 슈퍼 해충을 발생시키고 다시 더 강력한 제초제가 필요한 악순환이 계속되었다. 결국 생태계는 교란되고 여러 가지 종들이 파괴되고 획일화되었다. GMO를 가장 많이 생산-수출하고 있는 미국의 환경청(EPA)에서도 이러한 사실을 인정하고 있다.


숨어있는 98인치-자본주의


동물 복제 기술은 생물 종의 다양성 문제에 기여할 수 도 있다. 희귀동물이나 멸종위기 동물을 복제하는 경우를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체세포 복제 동물의 경우 정상 동물 보다 질병에 약하거나 비정상적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복제양 돌리를 다시 복제해서 태어난 새끼 양들은 비정상적이었고 정상적인 새끼 양에 비해 사산하는 비율이 여덟 배나 높았다고 한다. 복제양 돌리 역시 초기에 노화조짐이 보였고 5살 때는 관절염을 결국 6살 때 폐질환을 앓다가 안락사 당했다. 희귀동물이 체세포 복제에 성공했다고 하더라도 야생상태로 돌려보낼 수 있을지 미지수이다. 무엇보다도 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수천억의 연구비를 투자해서 얻은 기술을, ‘돈이 되지 않는’ 희귀동물과 멸종위기의 동물을 복원하는데 사용할 이유가 없다.


복제동물을 이용해서 장기를 생산할 경우, 설사 아무 문제 없다고 하더라도, 자본주의 의학은 정작 중요한 그 질병들의 발생원인에 대해서는 무관심하다. 다만 그 질병에 대한 치료에만 관심이 있다. 그래야지만 질병은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또 치료약에 대한 요구는 증가하기 때문이다. 어떤 노동자가 직장 내 작업환경에 의해 간이 나빠져 이식 수술을 받아야 하는데, 의사는 간 이식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뜻이다. 물론 지금 당장 급한 것은 간이식일 것이다. 하지만 간이 나빠진 진정한 원인이 제거되지 않는다면 그 노동자는 이식 후 다시 간이 나빠질 것이다. 또 간을 이식하고, 또 간을 이식하고, 결국 노동자의 삶은 피폐해지고 자본가의 주머니는 불룩해 질 것이다.


마지막으로 우량 동물의 대량복제는 식량문제 해결에 기여할 수 있다고 하는데, 지구상에서 식량문제는 식량부족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다. 현재 생산된 세계 식량은 인구의 두 배 이상 먹여 살릴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제 3세계의 민중들은 1초에 한명 꼴로 굶어 죽고 있다.  동물복제를 통해 이러한 왜곡된 구조를 바꿀 수 있을 것 같지는 않다.


숨어있는 99인치를 찾는 해법


 우리는 동물복제 기술에서 99인치를 보고 있고, 나머지 1인치만 보지 못하는 것이 아니다.  지금 우리의 동물복제 기술은 언론과 과학 저널을 통해  1인치만 보일 뿐이며, 나머지 99인치가 숨어 있다. 이 기술을 개발하고 있는 대부분 과학기술자에게도 역시 마찬가지 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숨어있는 99인치가 1인치(장미빛 기술)와 같은 내용일 수도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그렇지 않다. 거의 모든 첨단 기술들의 상황이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에, 이러한 이유가 동물복제 연구에 대한 모라토리엄(연구 중지)의 근거가 될 수는 없다.  그러나 이 것은 동물복제 기술에 대한  노동자-민중의 통제가 필요한 강력한 이유가 된다.  


그 시작은 동물 복제 기술에 대한 노동자-민중 관심이다. 퀘퀘먹은 이야기 같지만, 노동자-민중들이 첨단기술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토론해야 한다. 결코 어려운 일이 아니다. 작년한해 동안 '디시 인사이드'의 '찌질이'들은 당시 세계적인 과학자(황우석)와  세계적인 과학저널(사이언스)지를 대상으로 세계적인 논문의 위작 여부를 밝혀 내었다. 일반 노동자-민중들이 이해할 수 없기 때문에 통제할 수 없는 과학기술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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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시, 청정에너지 개발을 부르짖다. - 부시의 에탄올 에너지

 

부시, 청정에너지 개발을 부르짖다. - 부시의 에탄올 연료

                                                                                      노동자의 힘 97호

미국의 부시는 대통령은 1월 31일 국정연설을 통해 미국이 ‘석유 중독증‘에 걸렸다고 비판하면서 중동의 석유 의존도를 줄이겠다고 발표했다. 또 2월에는 한 언론사와의 인터뷰에서 ’내 생전에 중동에 대한 석유의존을 끝내거나 줄일’ 것이며 특히 6년 내에  청정에너지 연료로 평가받는 에탄올 생산기술을 실용화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2005년 6월에 이미 미국 의회는 에너지 법안 하나를 통과시켰는데, 이 법안은 가솔린 공급자는 현재 30억 갤런에서 2012년에 이르면 연간 80억 갤런의 에탄올을 첨가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석유자본가 집안의 부시가 이러한 정책을 발표하는 것은 보고 있노라면 돈을 위해 제비 다리를 부러뜨렸지만 이후 크게 뉘우친 놀부를 보는 것 같다. 그런데 이 놀부의 뉘우침이 그리 믿음직스럽지 못한 것은 왜일까?



 

석유에 중독된 미국


서방 정부는 거대 석유 자본과 매우 긴밀한 관계를 맺어 왔다. 미국정부는 1930년대부터 석유와 자동차 자본의 음모에 따라 전차(전기 자동차)는 물론 대중교통수단 모두를 축소했다. 결과적으로 10명중에 9명의 사람이 자동차를 소유하고 있으며 현재 2억대 이상의 자동차가 미국 내에서 돌아다니고 있다. 결국 미국은 마약중독자와 같이 해마다 더 많은 석유를 공급받지 못하면 살수 없게 되어 버린 것이다.


마약중독자는 마약이 끊기면 심한 타격을 입고 행동을 통제할 수 없게 된다. 1973년 아랍국가의 석유 금수 조치와 1979년 이란 혁명에 의한 공급 중단 등과 같은 일련의 사건은 서방 국가들에게 안정적인 수익을 보장할 석유 공급을 위협했다. 이들 국가 중 가장 심한 타격을 받은 나라는 전 세계 오일의 25%를 사용하는 미국이었다.


미국은 석유 공급의 문제가 심각해지면 질수록 석유를 생산하는 아랍이나 남미국가에 대한 정치공작을 증대시켰다. 이들 국가의 부패 관료들은 자국의 석유 시설을 미국 자본가에게 헐값으로 넘겼고, 산업 인프라는 미국식으로 석유 의존적으로 바꾸었다. 그리고 필요한 자금은 미국에 빚을 내어 충당하였다. 자국 원주민들은 땅을 강탈당했고 이 정책을 비판한 민주인사들은 감옥으로 보내졌다. 아마존의 열대 우림은 헐벗기 시작했고 강과 바다는 오염되어 버렸다. 그들은 마치 고이율의 사채를 빌려 쓰고 장기매매를 기다리는 노동자와 같은 신세로 전락해 버렸다.


이라크 침공만으로는 해답이 아니었다.


미국은 아랍 국가에 대한 석유 의존도를 낮추려고 온갖 노력을 다해 왔다. 그러나 아랍 국가들은 여전히 석유공급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고 가격이나 생산량을 통제하고 있다. 미국의 입장에서는 아랍국가의 국가 주도형 석유산업을 민영화 시키는 것이 이후 중동지역에 정치적 미래를 통제하기 위해 중요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고자 부시 정부는 이라크를 대상으로 전쟁을 일으킨 것이다. 


그러나 전쟁으로도 해결되지 않았다. 석유는 노동자의 노동 강도를 높인다고 더 많이 생산되는 그런 종류의 상품이 아니었다. 1970년 이후 미국 내 석유 발견량은 이미 소비량의 1/3 이하의 수준이었다. 새로 발견된다 하더라도 더 깊이 매장되어 있고 발굴이 어려운 지역이고 그 양도 작아서 더 많은 비용이 필요 했다. 아랍과 남미 국가도 예전처럼 녹녹하지 않다. 이라크를 침략했지만 아직까지 저항이 거세고 인접국 이란 역시 반발하고 있다. 17%의 석유를 수입을 수입하고 있는 남미의 베네수엘라에는 '참신한' 좌파 정권이 들어서 버렸다. 또 하나 중국의 산업 발전은 전 세계 석유 수급을 더욱 어렵게 하고 있다.


부시, 대안에너지 찾아 나서다.


이와 같이 부시는 환경적인 이유라기보다는 경제적인 이유로  에탄올과 같은 청정에너지 정책을 발표한 것이다. 이유야 어떻든 청정에너지 연구를 지원하겠다는 정책을 비난할 이유가 없다. 특히 에탄올 연료는 청정에너지의 탈을 쓴 수소에너지(기관지 노힘 59호 참조)나 위험한 원자력 에너지와는 차원이 다른 고려할 가치가 있는 에너지원임에는 분명하다. 


에탄올이란 정확하게 에틸알코올이라 불리는 물질로 식용으로 제작되면 술이 된다. 제조과정도 술과 동일한데, 사탕수수나 옥수수와 같은 식물을 발효, 증류해서 만들어진다. 에탄올은 가솔린처럼 태워야 하지만 산소를 다량 포함하고 있어 가솔린과 섞어 사용하면 이산화탄소(일산화탄소) 배출을 줄일 수 있다. 또 에탄올 분자는 석유 속에 포함되어 있는 탄화수소보다 분자가 훨씬 작기 때문에 더 완벽하게 연소된다. 문제가 있다면 배출되는 아세트알데히드라는 물질은 대기 중에서 오존의 광화학적스모그의 생성촉진제 역할을 한다는 점이다.


이 분야의 선두 주자인 브라질은 자국의 막대한 사탕수수 생산량을 바탕으로 에탄올을 대량 생산해서 자동차 연료의 40%를 대체하고 있고, 미행정부는 에탄올 정제회사에 1갤런(약 3.8리터)당 51센트의 세액공제 혜택을 주어 가솔린과 혼합해 사용하도록 권고하고 있다. 여기에 작년 여름 새로 입법화된 '종합 에너지법'도 에탄올의 이용촉진을 유도하고 있다.


환경운동가, 청정에너지 공장에 반대하며 분신자살하다?


작년 11월 브라질의 환경운동가 프란시스코 안셀모 바로스 (Francisco Anselmo de Barros)는 세계에서 가장 큰 습지대인 판타날 (Pantanal)지역에 에탄올 공장 건설하려는 정부의 계획에 반대하며 시위를 벌이다 온몸에 가솔린을 뿌려 분신자살했다. 환경운동가가 청정에너지 생산 공장을 반대하다 분신자살을 했다는 것이다. 이유는 자본주의 에너지 시스템에서 이 청정에너지가 환경을 보호하기보다 오히려 파괴했기 때문이었다.


1980년대 이후로 브라질에서는 대량의 에탄올을 목적으로 대규모 사탕수수 공장을 건설하였다. 이 지역에만 2개의 공장을 설립한 바 있다. 이 과정에 식량생산 경작지가 감소하였고, 농토를 빼앗긴 소농과 소작농이 도시빈민층으로 전락하였다. 그리고 사탕수수 경작지는 숲을 태워 확보하였다. 이렇게 설립된 사탕수수 공장에서는 식물 비료 생산과 수송 과정에서 다량의 이산화탄소를 방출하였고, 발효시키고 세척하는 과정에 배출되는 엄청난 양의 폐수는 하천과 토양을 심각하게 오염시켜 버렸다.


판타날의 지역 중 165,000㎢ 넓이를 갖는 그리스보다도 넓은 지역이 원시 지역이다. 이 지역은 파라과이 강과 파라나 강의 유량을 조절하는 스펀지와 같은 역할을 하고 있으며 650종의 조류, 190종의 포유류, 270 종의 어류 및 1,100종의 나비가 서식하고 있다. 그러나 이 지역이 에탄올 대량 생산을 위해 파괴되고 있는 것이다.


자본이 하면 망한다.


자본주의 철학은 아주 단순하다. 항상 시장 하나만 생각한다. 또 모든 것을 따로 때내서 개별적으로만 생각한다. 에너지 문제는 이미 자본가의 생존 기반마저 위협하고 있고, 전 인류의 문제로 되어 버렸다. 그런데 바로 이 점 즉, 전 인류의 문제라는 점은 자본가에게는 새로운 ‘시장’으로 보인다. 확신컨대 부시의 청정에너지 정책에는 시장만 고려되어 있다. 한국의 경우도 삼성이나 LG와 같은 대기업들이 앞을 다투어 대안에너지인 태양전지 개발을 시작하고 있는 이유도 같은데서 찾을 수 있다.


자본의 입장에서는 그것이 무엇이든 시장에서 상품으로 거래되면 좋은 것이다. 어떤 상품이 시장에 주목받으면 그 상품의 고유의 특성은 무시되며 교환 가치만 중요시된다. 자본의 눈에는 환경과 인간은 없다. 만약 청정에너지가 시장성이 있다고 판단되면, 그들은 이것을 시장에 상품으로 내 놓기 위해 모든 기술을 집중시킨다(과학기술자의 노동 강도를 극도로 높인다). 이 과정에서 새롭게 파괴되는 환경의 문제는 그들의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이와 같이 자본이 하면 어떤 한 과학기술은 급속도로 발전할지도 모르지만 결국 다른 모든 시스템은 엉망이 되어 버린다. 브라질의 사례는 이점을 잘 설명해준다. 청정에너지 개발 문제는 청정에너지 자체만 봐서는 안 되고 자본주의 에너지 시스템을 건드려야 하는 유기적이며 총체적인 시각이 필요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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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류독감, 자본주의에 상륙하다.

/* 일반적으로 질병 문제를 다를 때, 그 치료약에 한정해서 논의한다. 예를 들어 조류독감의 문제를 다룰 때 그 치료약인 타미플루의 효과 및 소유권에 대해서만 논의한다. 그러나  이것은 질병의 원인을 특정 바이러스에서만 찾는 환원주의적 시각으로 그 바이러스의 발생원인이 되는 환경적 요인을 무시하는 결과를 낳는다. 이 것을 경계해야 한다. 조류독감문제는 백신의 공유를 통해서만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조류독감, 자본주의에 상륙하다.

김영식

계절이 바뀌는 환절기가 되면 항상 찾아오는 반갑지 않은 손님이 있는데, 바로 감기이다. 감기에 걸리면 목구멍(기도) 주변에 염증이 나서 목이 아프고 기침 콧물이 난다. 감기는 수백 가지의 바이러스에 의해 발생되므로 정확하게 진단할 수 없어 특별한 치료약이 없다. 흔히 감기약이라고 하는 것은 바이러스 치료약이 아니라 증세만 완화시켜주는 일종에 '나일론-약'이다. 다행히도 대부분 감기는 일주일만 버티면 사라진다.


그런데 독감의 경우는 다르다. 독감의 경우 인플루엔자라는 바이러스에 감염된 경우를 말하며, 이름값을 하느라 일반 감기보다 더 지독하고 세균성 폐렴과 같은 합병증을 일으키며 심하면 죽게까지 한다. 다행히도 독감은 감기와 달리 바이러스 종류를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적절한 백신(치료약)이 있다. 지금 유행하고 있는 조류독감(H5N1) 역시  타미플루 (Tamiflu)라는 치료약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왜  전 세계가 이 독감에  전율하고 있을까? 에이즈나 말라리아 혹은 폐렴으로 매년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죽어 가고 있는데, 이제 겨우 117여명 감염되고, 60여명이 사망한 조류독감에 이토록 긴장하고 있을까? 여기에는 과거 20세기에 인류가 경험한 아픈 상처와 자본주의의 본질이 숨어있다.

 

 



 

독감, 그 무시무시한 역사

1918-1919년에 스페인 독감(H1N1)은 전 세계인구 30%를 감염시켜 2천만 명에서 5천만 명 정도 죽음으로 몰고 갔다. 이것은 인류 역사상 가장 많이 사망한 사건이며, 1차 세계대전 때의 총 사망자 수 보다 몇 배 많은 수치이다. 그리고 이 질병의 원인균은 1933년이 되어서야 알게 되었다. 1957-1958년의 아시안 독감(H2N2)은 6개월 동안 전 세계에 퍼졌고 2백만 명 가량 사망에 이르게 했다. 그리고 1968-1969년에는 중국의 동남쪽에서 발생한 소위 홍콩 독감(H3N2)은 1만 명을 죽게 했다.


 2005년 10월 6일 [네이처 Nature]지에 발표된 연구 결과에 따르면 1918년의 독감 바이러스는 처음에 조류독감이던 것이 돌연변이해서 사람을 감염시킨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그리고 지금 인간을 감염시키는 조류독감이 또 유행하고 있는 것이다.


천연두나 탄저병과 같은 전염병은 원인균이 발견되면 그에 따른 백신이 개발되기 때문에 문제가 되지 않는다(지금 테러가 아니라면 아무도 천연두나 탄저병에 대해 걱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해마다 독감이 문제가 되는 이유는 독감(인플루엔자) 바이러스의 경우 쉽게 돌연변이 해 완전히 다른 바이러스로 변해 버리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때그때 백신을 개발해야 한다. 만약 그 개발 시기를 놓치거나 물량확보를 하지 못한다면 1918년과 같은 재앙이 재현될 수도 있다.


이번 조류독감은 아시아의 가금류 밀집지역에서 발생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처음에는 새나 사람한테나 그리 위협적이지 않았지만 돌연변이를 통해, 오리, 닭 등에 감염되면 48시간 내 죽을 수 있는 무서운 병원균으로 변질된 것으로 보고 있다. 이 조류독감은 1997년 홍콩에서 처음으로 사람에게 감염된다는 사실이 확인되었다. 당시 18명의 사람이 감염되어 그 중 8명을 죽었다. 이어 2003년에는 한국, 일본, 중국북부 등에서 역시 같은 종류의 조류독감이 발생했고 2004년에는 베트남 남부 지역을 시작으로 태국, 중국 남부, 라오스, 인도네시아, 필리핀 등지의 동남아시아에서, 2005년에는 터키와 유럽에까지 번지고 있다.


이 조류독감의 경우 아직 사람들 사이에 감염률은 상대적으로 낮다. 하지만 과학자들은 감염된 가금류와 밀접하게 살고 있는 대규모 인구 밀집지역에서 바이러스가 돌연변이를 통해 사람들 사이에서도 감염될 수 있음을 경고하고 있다. 특히 닭과 같은 가금류를 집단 관리하는 자본주의식 양계장 모델은 조류독감 확산을 더욱 가속화 시킬 것으로 보인다. 


조류독감과 특허권

현재까지 알려진 백신은 프랑스 제약회사 로슈(Roche)가 특허 독점권(주 1)을 가지고 있는 타미플루이다. 이 약은 증상이 나타난 후 처음 24시간에서 36시간이내에 처방을 해야 효과가 있다고 한다. 세계보건기구(WHO)는 각국이 인구의 20%분을 타미플루를 확보할 것을 권유하고 있다. 한국의 경우 500-1500만 명분에 해당한다(주 2). 그러나 로슈는 타미플루를 스위스에 있는 단 한 개의 공장에서만 독점 생산하고 있으며, 2016년까지 특허권을 포기하지 않을 것임을 분명히 했다.


WHO에 따르면 로슈의 공장을 완전 가동해도 10년 후 세계인구의 20% 정도만 타미플루를 생산할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이러한 타미플루의 독점과 품귀 상황은 제 3세계 국가들을 더욱 어렵게 한다. 얼마 전 타이 보건당국은 타미플루를 구매하려고 했어나 미국정부가 이미 로슈로부터 거의 모두 구매해 버렸기 때문에 구매할 수 없었다.


또 몇 달 전 WHO 회의에서 태국과 남아프리카 공화국은 이 문제의 해결을 위해 타미플루를 자신의 나라에서 생산해, 생산 설비가 없는 제 3세계국가들에게 수출 할 수 있게 하는 ‘수출을 위한 강제실시‘를 요청한 바 있다(주 3). 그러나 미국과 프랑스는 이 논의를 차단했다. 그리고 부시 정부는 2006년에 타미플루를 미국에서 제조할 수 있도록 로슈와 합의 했다. WHO 역시 독감이 창궐할 때 로슈로부터 3백만 명분(course)의 타미플루를 제공받기로 약속했기 때문에 그 대가로 로슈의 독점에 대해서 비판도 지지도 하지 않고 있다. .


신자유주의에서 활개 하는 조류독감

 조류독감이 아무리 위험한 독감이라고 하더라도 바이러스성 질환이기 때문에 위생적인 생활환경과 충분한 영양 공급으로 큰 예방효과를 얻을 수 있다. 특히 조류독감은 일반 독감과 같이 보균자의 경우 증세가 한동안 나타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에, 격리 수용과 같은 방법은 효과가 크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주 4). 그러므로 위생이나 영양 상태를 향상시키는 방법이 타미플루보다 더 좋은 대안일 수 있다.


그러나 자본주의 사회에서 이것을 기대하기란 불가능하다. 전 세계 빈민가는 1918년 이후 해마다 지수함수적으로 증가했다. 1980년 이후 부터 불어 닥친 신자유주의 바람으로 인해 전 세계 공공 보건의료 시설은 황폐화되었고, 노동자들은 구조조정으로 거리로 내 몰려 도시 주변 참혹한 위생환경 속에서 살고 있다. 이러한 상황은 조류독감의 위험성을 배가시킨다. 극단적인 예로 서울역 노숙자들이 조류독감에 감염되었다고 해보자 어떻게 될까? 전국적인 확산은 불을 본 듯하다. 그리고 AIDS가 창궐하고 있는 아프리카 지역에 유행성 조류독감이 발생한다면 어떻게 될지는 쉽게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자본가 눈에는 오직 자본만이 보일 뿐이다. 사람들이 죽든 말든 그들의 눈에는 특허 독점권 유지에만 혈안이 되어 있다. 또 몇몇 자본가들만 안전하다면(주 2) 그들에게는 그리 무서운 병이 아닐지도 모른다.


(주 1) 타미플루는 미국의 비영리적인 공공 병원에서 의료용으로 개발되었고 이후 켈리포니아의 작은 회사에서 조제약으로 개발되어 지금 프랑스 로슈가 독점권을 가지고 있는 약이다.

(주 2)한국 정부의 정책은 70만 명분만 확보하겠다는 안일한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그리고 이것이 조류독감에 대처하는 정부정책의 전부이다. 약이 부족할 때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약값을 올린다. 만약 조류독감이 창궐한다면 시장의 논리에 따라 약값은 하늘을 찌를 것이다. 그때 70만 명 속에 노동자 농민들은 얼마나 포함되어 있을까?

(주 3)국내에서도 IPLeft 등 일부 사회단체를 중심으로 타미플루의 수출을 위한 강제실시를 추진하고 있다.

(주 4) 사스(SARS)의 경우 증세가 나타난 이후 감염되기 때문에 이 점에서는 사스는 조류독감보다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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