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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류독감, 자본주의에 상륙하다.

/* 일반적으로 질병 문제를 다를 때, 그 치료약에 한정해서 논의한다. 예를 들어 조류독감의 문제를 다룰 때 그 치료약인 타미플루의 효과 및 소유권에 대해서만 논의한다. 그러나  이것은 질병의 원인을 특정 바이러스에서만 찾는 환원주의적 시각으로 그 바이러스의 발생원인이 되는 환경적 요인을 무시하는 결과를 낳는다. 이 것을 경계해야 한다. 조류독감문제는 백신의 공유를 통해서만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조류독감, 자본주의에 상륙하다.

김영식

계절이 바뀌는 환절기가 되면 항상 찾아오는 반갑지 않은 손님이 있는데, 바로 감기이다. 감기에 걸리면 목구멍(기도) 주변에 염증이 나서 목이 아프고 기침 콧물이 난다. 감기는 수백 가지의 바이러스에 의해 발생되므로 정확하게 진단할 수 없어 특별한 치료약이 없다. 흔히 감기약이라고 하는 것은 바이러스 치료약이 아니라 증세만 완화시켜주는 일종에 '나일론-약'이다. 다행히도 대부분 감기는 일주일만 버티면 사라진다.


그런데 독감의 경우는 다르다. 독감의 경우 인플루엔자라는 바이러스에 감염된 경우를 말하며, 이름값을 하느라 일반 감기보다 더 지독하고 세균성 폐렴과 같은 합병증을 일으키며 심하면 죽게까지 한다. 다행히도 독감은 감기와 달리 바이러스 종류를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적절한 백신(치료약)이 있다. 지금 유행하고 있는 조류독감(H5N1) 역시  타미플루 (Tamiflu)라는 치료약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왜  전 세계가 이 독감에  전율하고 있을까? 에이즈나 말라리아 혹은 폐렴으로 매년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죽어 가고 있는데, 이제 겨우 117여명 감염되고, 60여명이 사망한 조류독감에 이토록 긴장하고 있을까? 여기에는 과거 20세기에 인류가 경험한 아픈 상처와 자본주의의 본질이 숨어있다.

 

 



 

독감, 그 무시무시한 역사

1918-1919년에 스페인 독감(H1N1)은 전 세계인구 30%를 감염시켜 2천만 명에서 5천만 명 정도 죽음으로 몰고 갔다. 이것은 인류 역사상 가장 많이 사망한 사건이며, 1차 세계대전 때의 총 사망자 수 보다 몇 배 많은 수치이다. 그리고 이 질병의 원인균은 1933년이 되어서야 알게 되었다. 1957-1958년의 아시안 독감(H2N2)은 6개월 동안 전 세계에 퍼졌고 2백만 명 가량 사망에 이르게 했다. 그리고 1968-1969년에는 중국의 동남쪽에서 발생한 소위 홍콩 독감(H3N2)은 1만 명을 죽게 했다.


 2005년 10월 6일 [네이처 Nature]지에 발표된 연구 결과에 따르면 1918년의 독감 바이러스는 처음에 조류독감이던 것이 돌연변이해서 사람을 감염시킨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그리고 지금 인간을 감염시키는 조류독감이 또 유행하고 있는 것이다.


천연두나 탄저병과 같은 전염병은 원인균이 발견되면 그에 따른 백신이 개발되기 때문에 문제가 되지 않는다(지금 테러가 아니라면 아무도 천연두나 탄저병에 대해 걱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해마다 독감이 문제가 되는 이유는 독감(인플루엔자) 바이러스의 경우 쉽게 돌연변이 해 완전히 다른 바이러스로 변해 버리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때그때 백신을 개발해야 한다. 만약 그 개발 시기를 놓치거나 물량확보를 하지 못한다면 1918년과 같은 재앙이 재현될 수도 있다.


이번 조류독감은 아시아의 가금류 밀집지역에서 발생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처음에는 새나 사람한테나 그리 위협적이지 않았지만 돌연변이를 통해, 오리, 닭 등에 감염되면 48시간 내 죽을 수 있는 무서운 병원균으로 변질된 것으로 보고 있다. 이 조류독감은 1997년 홍콩에서 처음으로 사람에게 감염된다는 사실이 확인되었다. 당시 18명의 사람이 감염되어 그 중 8명을 죽었다. 이어 2003년에는 한국, 일본, 중국북부 등에서 역시 같은 종류의 조류독감이 발생했고 2004년에는 베트남 남부 지역을 시작으로 태국, 중국 남부, 라오스, 인도네시아, 필리핀 등지의 동남아시아에서, 2005년에는 터키와 유럽에까지 번지고 있다.


이 조류독감의 경우 아직 사람들 사이에 감염률은 상대적으로 낮다. 하지만 과학자들은 감염된 가금류와 밀접하게 살고 있는 대규모 인구 밀집지역에서 바이러스가 돌연변이를 통해 사람들 사이에서도 감염될 수 있음을 경고하고 있다. 특히 닭과 같은 가금류를 집단 관리하는 자본주의식 양계장 모델은 조류독감 확산을 더욱 가속화 시킬 것으로 보인다. 


조류독감과 특허권

현재까지 알려진 백신은 프랑스 제약회사 로슈(Roche)가 특허 독점권(주 1)을 가지고 있는 타미플루이다. 이 약은 증상이 나타난 후 처음 24시간에서 36시간이내에 처방을 해야 효과가 있다고 한다. 세계보건기구(WHO)는 각국이 인구의 20%분을 타미플루를 확보할 것을 권유하고 있다. 한국의 경우 500-1500만 명분에 해당한다(주 2). 그러나 로슈는 타미플루를 스위스에 있는 단 한 개의 공장에서만 독점 생산하고 있으며, 2016년까지 특허권을 포기하지 않을 것임을 분명히 했다.


WHO에 따르면 로슈의 공장을 완전 가동해도 10년 후 세계인구의 20% 정도만 타미플루를 생산할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이러한 타미플루의 독점과 품귀 상황은 제 3세계 국가들을 더욱 어렵게 한다. 얼마 전 타이 보건당국은 타미플루를 구매하려고 했어나 미국정부가 이미 로슈로부터 거의 모두 구매해 버렸기 때문에 구매할 수 없었다.


또 몇 달 전 WHO 회의에서 태국과 남아프리카 공화국은 이 문제의 해결을 위해 타미플루를 자신의 나라에서 생산해, 생산 설비가 없는 제 3세계국가들에게 수출 할 수 있게 하는 ‘수출을 위한 강제실시‘를 요청한 바 있다(주 3). 그러나 미국과 프랑스는 이 논의를 차단했다. 그리고 부시 정부는 2006년에 타미플루를 미국에서 제조할 수 있도록 로슈와 합의 했다. WHO 역시 독감이 창궐할 때 로슈로부터 3백만 명분(course)의 타미플루를 제공받기로 약속했기 때문에 그 대가로 로슈의 독점에 대해서 비판도 지지도 하지 않고 있다. .


신자유주의에서 활개 하는 조류독감

 조류독감이 아무리 위험한 독감이라고 하더라도 바이러스성 질환이기 때문에 위생적인 생활환경과 충분한 영양 공급으로 큰 예방효과를 얻을 수 있다. 특히 조류독감은 일반 독감과 같이 보균자의 경우 증세가 한동안 나타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에, 격리 수용과 같은 방법은 효과가 크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주 4). 그러므로 위생이나 영양 상태를 향상시키는 방법이 타미플루보다 더 좋은 대안일 수 있다.


그러나 자본주의 사회에서 이것을 기대하기란 불가능하다. 전 세계 빈민가는 1918년 이후 해마다 지수함수적으로 증가했다. 1980년 이후 부터 불어 닥친 신자유주의 바람으로 인해 전 세계 공공 보건의료 시설은 황폐화되었고, 노동자들은 구조조정으로 거리로 내 몰려 도시 주변 참혹한 위생환경 속에서 살고 있다. 이러한 상황은 조류독감의 위험성을 배가시킨다. 극단적인 예로 서울역 노숙자들이 조류독감에 감염되었다고 해보자 어떻게 될까? 전국적인 확산은 불을 본 듯하다. 그리고 AIDS가 창궐하고 있는 아프리카 지역에 유행성 조류독감이 발생한다면 어떻게 될지는 쉽게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자본가 눈에는 오직 자본만이 보일 뿐이다. 사람들이 죽든 말든 그들의 눈에는 특허 독점권 유지에만 혈안이 되어 있다. 또 몇몇 자본가들만 안전하다면(주 2) 그들에게는 그리 무서운 병이 아닐지도 모른다.


(주 1) 타미플루는 미국의 비영리적인 공공 병원에서 의료용으로 개발되었고 이후 켈리포니아의 작은 회사에서 조제약으로 개발되어 지금 프랑스 로슈가 독점권을 가지고 있는 약이다.

(주 2)한국 정부의 정책은 70만 명분만 확보하겠다는 안일한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그리고 이것이 조류독감에 대처하는 정부정책의 전부이다. 약이 부족할 때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약값을 올린다. 만약 조류독감이 창궐한다면 시장의 논리에 따라 약값은 하늘을 찌를 것이다. 그때 70만 명 속에 노동자 농민들은 얼마나 포함되어 있을까?

(주 3)국내에서도 IPLeft 등 일부 사회단체를 중심으로 타미플루의 수출을 위한 강제실시를 추진하고 있다.

(주 4) 사스(SARS)의 경우 증세가 나타난 이후 감염되기 때문에 이 점에서는 사스는 조류독감보다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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