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근현대사 역사 강좌가 있었다. 민족문제역구소가 후원을 하고 '대학생 민족문제 연구모임'에서 주최하는 강좌였다. '종북을 넘어 민족의 미래로!'라는 대주제 하에 매회마다 각기 다른 강사와 주제로 11회에 걸쳐서 있었다. 오늘 열린 강의는 오후(7.23) 7시 대방동 여성프라자 시청각실에서 열린 그 10번 째 강의로 민주당 상임고문인 정동영 전 통일부 장관이 참석했는데 대학생 80여 명을 상대로 <7.27, 60년과 한반도 평화체재>라는 강제로 2시간 반 동안 계속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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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래에 드문 강의였다. 6.25부터 53년 7.27 정전을 거쳐서 그동안 전개된 남북한 문제며 현재 벌어지고 있는 국내문제에 이르기까지 해박하고 신실한 강의내용은, 탁월한 경륜과 깊고 넓은 이해를 동반한 것이었기에 그 어느 강의 보다 군계일학 그 자체였다. 최근에 논란이 되고 있는 NLL 문제와 북핵문제를 정확하고 날카롭게 분석하여 대학생 참가자들을 옳바르게 이해시키고 집중시키는데 발군의 실력을 발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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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의 남북문제는 크게는 6.15 이전과 이후로 나눌 수 있고, 그 전에 높이 평가해야할 역사적인 시도는 노태우정부로 거슬러 올라간다. 노태우 정부의 남북문제는 1992년 1월 발효된 남북문제 기본합의서로 나타나는데 남북한이 교역하고 서로 왕래하자는 내용이었다. 남북한은 그동안 서로 괴뢰로 칭하면서 괴뢰하고는 어떠한 왕래나 교류도 하지 않는다고 못박아 놓고 있었기 때문에 남북 기본합의서는 35년 만에 서로를 괴뢰가 아닌 왕래와 교류의 상대로 인정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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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는 남북문제를 우리가 리드한 거나 마찬가지였다. 구 소련이 1990년도에 무너졌을 때인데 소련이 무너지고 나니 북한이 맺고 있었던 주변 동맹국들이 줄줄이 없어지게 되는 상황에 놓이게 됐던 것이다. 이에 체재위기를 느끼던 북한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6.25 발발 35년이 경과한 이후에 가장 진지하게 남북한이 만나서 남북문제에 대한 대전략을 구상하고 남북기본합의서를 도출해 낸것이어서 이에 대해서는 군사독재정권이었지만 평가를 해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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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것이 그해 10월에 휴지조각이 된다. 안기부가 들어서서 대통령의 훈령을 조작하는 사건이 있었고 이선실 간첩단사건이 또 터진다. 남북문제는 다시 정권안보에 철저하게 이용되기 시작됐다. 그것이 김대중 정부 때 분단 후 처음으로 남북 정상이 만나고  평화체재로 가는 교두보를 쌓는 6.15 합의로 이어진다. 이에 따라서 이산가족 상봉, 금강산관광, 평화교류 등 하루가 다르게 진전을 이루는 성과로 나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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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으로 획기적인 쾌거였다. 그러나 지난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고부터 다시 암흑기가 시작된다. 남북문제에 있어서 한걸음도 나아가지 못했을 뿐 아니라 오히려 수십년 뒷걸음질 하는 결과로 이어졌다. 자구책에서인지 북한은 핵개발에 더욱 박차를 가하고 북한 핵문제는 심각한 위협요소로 부각된다. 이명박 정권의 대북전략이 북핵문제를 키우고 있었던 것이다. 오늘 날 역시 남북한 문제는 국정원 사건을 덮기 위해 꺼내든 정략적인 카드로 이용되는 지경에 이르렀다. 답은 뭐냐? 정치에 있다고 생각한다.

강의를 마치고 대학생 참가자들과 함께 기념사진을 찍는 모습이다. 열강을 마치고 활기찬 모습으로 막강한 기를 내품으며 퇴장하는 정동영 고문의 모습이다. 그의 이런 모습에 유난히 주목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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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7/24 10:06 2013/07/24 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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