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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비참함을 외면하는 학문은 얼마나 무기력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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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서늘한여름밤의 내가 느낀 심리학 썰> 페이스북 페이지 

 

(페이스북 페이지에 올라온 글을 보고 괜히 맘이 복잡해져서 말이 많아졌다. 원문은 요기에서 볼 수 있다.)

 

"삶의 비참함을 외면하는 학문은 얼마나 무기력한가"
(임상심리와는 전혀 다르다고 했던 것 같지만) 어렸을 때부터 정신분석이 배우고 싶었다. 우선 재밌어보이니까!_! 사람을 읽는 작업이었고, 세상과 내 맘이 어떤 연관을 맺고 있는 가에 대한 것이기도 했다. 처음 꿈 상징과 해석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너무 충격을 받았다. 무의식 그거 대체 뭐야! 하는 느낌이랄까. 애초에 꿈을 (흔히 말하는 응축, 치환 이딴 게 전혀 없이)곧이 곧대로 꾸는 나는 내 속을 잘 아는 편이었다. 아, 난 뭐가 힘들구나. 이걸 배우고 싶던 이유는, 세상의 입김에서 내가 전-혀 자유롭지 않다는 걸 확실하게 설명해버려서. 세상을 설명하고, 내 삶을 설명하고, 사람을 설명해주는 것들에 늘 혹했다. 특히나 이건 나를, 사람을 이해할 수 있을 것만 같아서 그랬다.

상담이 기만적이라고 느꼈던 순간은, 그 삶의 조건을 별개로 치부하고 상담을 통한 치료가 가능할까에 대한 의문때문이었다. 삶의 조건이 변하지 않는 상황에서 사람이 변한다는 게 개인의 노오오력일테고, 삶의 조건을 보지 않고 누군가를 이해한다는 게 가능한 이야기일까.

어제 술을 마시다 뷰티인사이드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사실 보진 않았지만) 외형이 아무리 바뀌어도 사람의 본질이 있고 어쩌고의 설정이 너무 구리다는 이야기였다. 어제는 술먹고 담배피다 오늘은 과자에 우유마시고, 어제는 생리하고 오늘은 몽정하는 인간이 대체 어떻게 제정신일 수 있냐는 말인가. (그래 영화니까, 뭐 넓은 아량을 발휘한다 해도) 옆사람이 그 사람을 계속 사랑하는 건 둘째 치고, 본인이 제정신일 수가 있을까. 나를 둘러싼 세상의 시선과 내가 처한 사회적 조건이 계속해서 달라지는데 그에 따른 내 움직임이나 사고나 태도가 일정할 수 있다고? 인간을 구성하는 것에 물질적 조건이 그토록 부수적이란 주장인가? 여튼 말도 안 되는 소리다.

이 만화 마지막의 문장에 문득 말이 많아지고 싶었다. 현실에서의 모습과 말이 동떨어진 입만 동동 뜬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았다. 세상을 보지 않으며, (혹은 세상의 비참함마저 내 장식으로 이용하며) 말만 번지르르한, 내 멋에 취해 사는 사람은 되고 싶지 않았다. (이런 말을 하는 건 아직도 되고 싶지 않은 사람의 모습에서 자유롭지 못하니까) 그래서. 언제나 내 입장에서 세상이 설명되지 않거나, (지적허영이나 권력자들을 위한 게 아닌)어떻게 써먹어야 할 지 모르겠는 건 배우고 싶은 맘이 전혀 없었다. 확실히 난 공부형 인간은 아니다. 학문적 호기심이 아니라 쓸모와 필요로 움직이는 것 같다.

삶의 비참함을 외면하는 학문은 무기력하지 않다. 그건 나쁜 거다 그냥. 삶의 비참함을 외면하는 학문은 삶의 비참함을 만들어내는, 조장하는 학문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까지 치달았다. 아 궁상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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