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뜨거운 피는 쓸 게 없다.
부제 : 그래서 어둠의 왼손 씀
부부제 : 사실 책 내용도 별로 없음
정주
언제는 엄마가 갑자기 내게 피아노를 배워 볼 생각이 없냐고 물었다. 왜냐고 물으니까 마치 부모님께 깜짝 서프라이즈를 준비한 어린아이의 얼굴로 내게 아이패드를 보여줬다. 어린아이의 뻔한 서프라이즈를 본 어른처럼 놀라는 시늉과 적절한 리액션을 했다. “정주야. 이거 피아노 가르쳐주는 앱인데 아까부터 해보니까 너무 재밌더라!! 진짜 생초보도 곧 노래를 칠 수 있을 것 같아! 나 때는 도.래.도.래 이거부터 시작했는데! 얼마나 지루했는데 요새는 이런게 잘 나온다. 키보드만 있으면 독학으로 해볼 수 있을 것 같아! 어때?” 그 자리에서 몇 번 쳐보았다. ‘오 이거 괜찮네’ 정도였지 사실 신기하지도 놀랍지도 않았다. 요새는 이런 걸 자주 접할 수 있으니까.
엄마는 ‘나 때는’ 이란 말을 자주 쓴다. 우리 엄마가 꼰대라는 소린 아니다. 왜냐하면 엄마는 현재를 인정하는 사람이었으니까. 그저 자신과 현재와의 간격이 놀라운 사람일 것이다. 자주 무서운 세상이라고도 말했고, 놀라운 세상이라고도 말했다. 가장 크게 페미니즘이 그랬다. 언제 한 번 또 오해영을 보며 엄마랑 얘기를 한 적이 있다. 에릭이 서현진의 양 손목을 잡아놓고 강제로 키스를 하는 장면이었으며, 난 그걸 데이트폭력이라, 엄마는 사랑이라 말했다.
엄마가 폭력이라 인정을 하게 된 건 몇 달 후의 일이다. 엄마가 어떤 성교육 강의에 갔는데 또 오해영에 대해 나와 했던 대화로 질문을 했고 이런 대답을 받았다고 했다. “우리는 질문하는 문화에 익숙하지 않다. 키스해도 돼? 손 잡아도 돼? 같은. 지금까지의 한국 사회가 그 장면을 로맨스라고 얘기해왔고 그렇게 만들 수 있었던 것도 그 때문이다.” 사실 그 말도 난 마음에 들지 않은 부분이 있었지만. 아무튼 엄마가 그 얘길 하며 내게 인정했다. 사실 엄마가 더 충격 받았던 건 아마 ‘예전에는’과 ‘요즘은’의 간격일 것이다.
작년과 올해는 많은 게 다를 것이다. 사회도, 패션도, 나도, 엄마도. 그리고 어쩌다 변한 것도 아닐 것이다. 맞다. 어쩌다 이렇게 된 세상은 아닐 것이다. 또 오해영, 엄마가 보던 어떤 웹툰에 달린 댓글들, 미투운동 등의 현재를 보며 엄마는 자신이 알던 세상과 다른 세상이라고 생각 할 수도 있다. 자신이 알던 세상의 방식으로 이해하려 들지 않는 것. 그 과정에서 괴리감을 느끼며, 충돌하고, 받아들이고. 어둠의 왼손에 겐리 아이가 그랬던 것처럼. 좀 더 충돌하며 살아야겠다.
어둠의 왼손은 어렵고 어둡고 심오한 책이었다. 생각은 많이 하게 되지만 정작 어디부터 무엇을 생각해야 할 지 모르겠는 책. 음. 바깥은 여름은 매우매우 직관적인 책이었구나. 한다라 교인들을 만나보고 싶고, 그 중에서도 파세를 꼭 보고싶다.
“알려지지 않은 것, 예견되지 않은 것, 증명되지 않은 것, 삶이란 바로 그런 것 위에 서 있습니다. 무지는 사고의 기반입니다. 입증되지 않은 것은 행동의 기반입니다.
만약 신이 없다고 증명된다면, 신도 없고 종교도 없을 것입니다. 한다라도 없고, 요메시도 없고, 화로신들도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또한 신이 있다고 증명되면 신이 있어도 종교는 없게 됩니다.
말해주십시오, 겐리. 우리는 무엇을 알고 있습니까? 무엇이 확실하며 무엇이 예견 가능하고 무엇을 피할 수 없습니까? 당신이 당신의 미래에 대해, 그리고 제 미래에 대해 알고 있는 가장 확실한 것은 무엇입니까?”
“우리 모두는 죽는다는 겁니다.”
“그렇습니다. 대답할 수 있는 오직 하나의 질문이 있습니다, 겐리. 그리고 우리는 모두 그 대답을 알고 있습니다.
인생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바로 영원히 우리를 괴롭히는 불확실성, 다음이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무지’입니다.”
오늘도 마트에서 어떤 직원분이 꿈이 무어냐, 관련된 공부는 하고 있느냐 물었다. 대답하고 싶었다. 우리는 모두 죽는다! 그냥 산다! 의미 없는 삶도 삶이며, 꿈이 없는 나도 나다! 이야아아아아아아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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