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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대학거부라는 것을 했다. 사실, 했다고 이야기 하기에는 무언가 많이 낯부끄럽다. 딱히 비장한 마음으로 준비한 대학 거부도 아닐 뿐더러 알바한다고 몸도 마음도 지쳐가는 와중에 그냥 지나가버린 일이 되었다. 그냥 갈 생각이 없어서 가려고 노력하지 않을 뿐이다. 심지어 주변사람들이 놀리는 것처럼 검정고시로 봤던 중졸이 최종학력인 나는 갈 수도 없다.
나에게 대학..?
살 면서 대학에 가고 싶다라고 느꼈던 순간들은 꽤나 분명하게 한 손에 꼽힌다. 예를 들어 초등학생때 좋아하는 주변 어른들 중에 성균관대를 졸업한 사람이 많으니까 나도 저기 가보고 싶어! 라고 떠올렸던 적이 있었다. 물론, 교원대와 교대가 같은 곳인 줄 알았던 시기였다. 중학교에 가면서 슬슬 너는 꿈이 뭐야? 라는 질문들이 주변에서 들려올 때에 소설책 읽는 걸 너무 좋아했으니까 작가가 되고 싶었다. 대학은 당연하게 가야 된다고 생각했기에 사람들에게 대학교 어느 과에 가야 하냐고 물어봤던 것 같다. 그리고는 문예창작과에 가겠다고 결심했던 시절도 물론 있었다. 하지만 학교를 안다니고 알아서 생활해야하는 나에게 가장 중요한 고민은 오늘, 내일 뭘 할까? 와 내가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일지 찾아보는 것이었다. 이전에 대학에 대해 했던 고민들이 잘 기억나지 않는다. 이제는 대학에 안가겠다는 결심이 거의 굳어있는 상태이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쩌면 별로 생각을 안했던 것일 수도 있을 것 같다.
우 리 엄마는 나를 대안학교에도 보냈었고, 학교를 안다니게도 했던 이 사회에선 나름 특이한 사람일 것이다. 엄마는 내가 어렸을 때에 종종 '니가 정말 가고 싶고 필요하다고 생각하면 그 때 대학에 가라, 니가 돈벌어서 다녀라, 대충 당연하게 가야되니까 가서 놀다올 거면 지원할 수 없다'는 말을 했었다. 물론 니가 돈벌어서 다 다니라는 말은 농담이고 으름장이었을 거다. 하지만 그 말들과 내가 살아온 그 분위기가 나에게 꽤 영향을 주기는 했었나보다. 게다가 청소년 활동판과 일하고 있는 단체사람들을 만나게 되면서는 대학이라는 것이 내 미래에 대한 고민과 구상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거의 없어졌다. 나에게는 대학같은 것에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지금 하고 싶고 궁금한 일들이 사방에 깔려있는데 대학이 뭐 중요하겠는가! 아직 먼 얘기였고, 내 관심사는 대학과 그닥 상관이 없었으니까.
대학생이 되는 건 골드민증같은 사회가 주는 허가증인 거야?!
안 타깝게도 대학에 신경 쓸 겨를같은 건 금방 생겨버렸다. 하하. 어느덧 18살, 학교로 치면 고등학교 2학년 나이가 되었다. 이제는 정말 대학가긴 늦었다는 감이 오기 시작하면서 불안과 분노로 가득 찼던 시기였다. 슬슬 내가 알던 사람들이 대학에 들어가기 시작했고, 온갖 청소년 보호법에서 자유로운 골드민증마냥, 사회가 준 대학생이라는 명찰을 받아서 생기는 혜택들이 부럽고 또 부러웠다. 재학생만 들어갈 수 있는 대학도서관이라는 그 방대한 데이터베이스와 자료가, 마음껏 쓸 수 있는 그 공간이 부러웠다. 20대를 당연히 대학생이라고 생각하는 사회에서의 대학생 시기에는 실컷 놀기도 하는 거지~ 라며 놀 수 있게 주어지는 그 시기도 부러웠고, 다른 걱정없이 하고 싶은 걸 찾아다녀도 될 것만 같이 보여지는 게 부러웠다. 공부만 해도 괜찮은 시기인 게 부러웠다.
물 론 이제와 생각해보면 이것저것 다른 상황들이 떠오르긴 한다. 학비를 부모님이 대주는 경우도 있겠지만, 대학에 갈 수 없는 사람들도 많을테고, 수업이 별로일 수도 있을 것이고 뭐 이런저런 우울한 대학생들의 반론들 같은 것. 하지만 저 때의 고민이 품고 있던 것은 물질적인 그 무언가가 아니었다. 말로 풀려니 잘 안되지만 간단하게 말해보면, "유예기간" 이라는 것에 대한 분노였다. 대학을 가지 않는 이들은 20살이 되는 순간 사회생활을 하는 것으로 간주되어 안정적이게 미래에 대한 고민을 해나갈 시기가 없다. 하지만 1년에 1000만원이라는 어마어마한 금액을 지불한다면 사회는 대학생이라는 명찰을 붙여 안정적인 유예기간을 준다. 10대에게서 수능과 대학, 공부 이상의 것을 생각할 권리도 고민할 권리도 다 앗아가려는 이곳에서 대학을 가지 않는다는 선택을 할 때에는, 제대로 고민해볼 틈도 없이 냅다 내동댕이쳐지는 상황이 나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비싼 응급실
대 학에 관한 이런저런 생각들은 나를 너무나도 불안하게 만들었다. 난 뭘 해야하지? 잘 모른다면 대학에 가서 경험해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어떻게 먹고살지? 알바도 대학생 우대하는 이 상황에서 내가 중졸로 살아남을 수 있는 거야? 지금도 불안하긴 매한가지다. 그 불안의 강도가 달라질 뿐 늘 내 안에 잠재하고 있다. 그러나 내가 생각하기에는 이 불안은 대학이 만들어내는 불안만은 아니고, 꼭 대학에 대해 고민을 하고 또 해야만 할 필요는 없는 것 같다. 그렇게 대학에 묶여서 사고하게되는 것 자체가 더 이상한 것 같기도 하고 말이다.
나 는 내가 현재 하고 싶은 것을 잘 모르겠고, 뭘 할지 잘 감이 오지 않을 때에 당연히 느낄 수밖에 없는 불안을 느끼고 있는 것일 뿐이다. 그런 상황에서 19살은 당연히 대학이라는 예제만을 끊임없이 보고 자라니까 대학이 불안해지는건 어쩔 수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안에 들어가서 내가 뭘 하고 싶은 지 찾아보겠어! 라고 대학에 무턱대고 들어간다는 건, 늦은 밤에 응급실에 들어가 훨씬 비싼 진료비를 내야 하는 상황만큼이나 돈도 아깝고, 입안도 쓸 따름이다. 그런 식의 응급처치로 대학에 갈 바에는 조금 막막하더라도 다른 길을 찾아보려고 한다. 18살의 분노와 부러움을 지나 19살이 된 지금은 전문적인 공부는 하려는 마음과 의지를 가지고 사람들을 찾아갔을 때에는 너무나도 반갑게 함께 공부해준다는 것도 알게 되었고, 대학을 가지 않고도함께 살아갈 수 있게 만들어보자며 시작했던 활기의 기억도 있다. 그리고, 알바한다고 열심히 결합하지 못하지만... '투명가방끈'도 내가 대학을 가지 않고도 하고싶은 걸 하면서 살아나갈 수 있을 것 같다는 가능성의 실마리들이다.
그래서 우린 네트워크가 필요할꺼야
대 학입시거부토론회에 패널로 와주었던 지나가던 시민이 대학 진학률 80퍼센트의 이 나라에서는 곧 고졸들이 굶어 죽을지도 모른다고 했던 말이 기억에 남는다. 그런 상황이 오지 않기 위해서는 더 많은 사람이 함께 대학을 거부하고, 대학을 거부한 사람들이 함께 모여 네트워크를 만들어야 한다고 했던 그 말에 얼마 전 우연찮게 들어본 고졸 네트워크가 떠올랐다. 그리고 대학을 가지 않고, 불안해 할 수 많은 사람들에게 그 네트워크가 되어 줄 위안과 현실적 안정은 상상만으로도 너무 행복하다. 앞으로 그 행복한 상상이 정말 현실이 되게 하는 일들을 해야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필요한 것도, 해야할 일이 어떤 것인지도 아직은 잘 모르겠다. 그 네트워크를 만드는 것에 대한 일은 내 마음 한구석에서 나를 종종 흔들어댈 것만 같다. 내가 살아남기 위해서, 우리가 살아남기 위해서, 그리고 나중의 누군가가 대학을 쉽게 선택하지 않아도 될 수 있도록 하고 싶은 일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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