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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들의 어설프던 모난라디오, 그보다 잘나가서 얄미운 '아저씨들의 나꼼수'

청소년들의 어설프던 모난라디오, 그보다 잘나가서 얄미운 '아저씨들의 나꼼수'

 

2009 년 6월 1일 '우리 라디오나 해볼까?'라는 한마디로 시작된, '모난라디오'라는 팟캐스트 인터넷 라디오가 개국했다! 뭔가 재미난 활동을 해보자던 여성청소년활동가들이 모여 뉴스, 텔레비젼, 보호주의+여성주의, 학교, 고민상담 같은 코너들로 이루어진 청소년의 목소리로(그리고 청소년 인권활동을 하는 20대의 목소리로) 청소년의 이야기를 모나게 해보자던 라디오였다. 사실, 지금 생각해보면 내가 들어도 재미는 없었던 것 같다ㅋㅋ 그 시절 우리는 한주에 하나씩 각자 맡은 코너로 2시간 가량의 분량의 방송을 생산해야했고, 라디오라는 컨텐츠를 생산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던 것도 아닌 우리의 방송은 '두시간동안 혼자서 말하는 라디오'라는 기염을 토해냈다. 나같은 경우는 부끄럽게도 대본을 짜면 더 안된다며 대본도 없이 전날 새벽에 밤새도록 목이 가라앉아 주절주절 '왜 청소년은 음반도 맘대로 못사게 만드냐!'고 흥분해가며 이야기를 했었던 기억이 난다.

 

모 난라디오는 (그 당시 표현으로는)블링블링한 여성청소년들의 색다른 활동으로 인터뷰 요청도 자주 받았고, 한 방송당 조회수가 1000건은 되던 나름대로 관심을 받던 라디오였다. 빠듯한 방송 생산과 매너리즘, 기획이 그 때에는 너무나 힘겹기도 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재밌고 소중한 기억이다. 그리고 각자가 바빠지며 2010년 어느 시점에 유야무야 해산되었다.

 

그 리고 1년 쯤 뒤 '나는 꼼수다'가 나타나 2011년을 휩쓸었다. 난 기분이 별로였다. 사람들이 갑자기 나꼼수가 진보의 아이콘이라며 추앙하는 모양새도 싫었고, 그들의 그 마초적일 게 뻔히 예상되는 부분들도 싫었다. 하나 더 덧붙이자면 재미가 덜 할 수도 있고, 모양새는 좀 모났지만 우리가 먼저 했었는데! 하는 귀여운 억울함도 생겼다. 

 

12 월 강정마을에 가있던 도중 제주도에서 나꼼수 콘서트가 열렸다. 들으래도 안 듣던 그 나꼼수를 강정마을 홍보를 하러 갔다 직접 관람하게 되었고, 내가 나꼼수에 대해 예상했던 기분나쁨은 콘서트장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한국 아저씨들이 모여 여성비하적인 발언과 성적대상화, 그리고 가벼운 음담패설을 기본으로 내뱉는 그들의 '쇼'는 불편하기 짝이 없었고, 비키니시위 논란 때 원글의 게시판에 달리던 나꼼수 청취자들의 비슷한 정서는 너무 싫었다! 팬들의 나꼼수 진행자들 우상화에서도 2009년의 노무현 대통령 자살 당시 나타났던 우상화와 비슷한 맥락의 불편함을 느꼈다.

 

하 지만 정치적 표현을 할 수 있는 미디어 영역을 확장한 것과 더 많은 사람들에게 주류 미디어에서 볼 수 없는 현 정권을 비판하는 정보들을 접하고, 관심을 표현할 수 있도록 만든 점은 인정할 수 있었다. 아마 나꼼수의 주 청취층은 사회에 관심도 불만도 많지만 투표이외에는 할 수 있는 액션이 많지 않았던 2-30대 청년층(?)이다. 그들에게 나꼼수는 들어서 정보를 알게되고, 자신의 입장을 표현할 수 있게 도와주는 좋은 미디어였을 것이다.  뭐 촛불때 향수를 만끽하려 했던 386들도 꽤 많이 듣는 것 같지만, 역시나 '청소년'은 그 안에서 비율을 차지한다고 보기 어렵다.

 

결 국 소수자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수단의 하나로 미디어의 영역이 확장되고, 다양해졌다지만 떠올려 보자면, 청소년의 이야기를 직접 하겠다고 만들었던 모난라디오의 청취층도 청소년활동가들과 운동판의 성인활동가들이 대부분을 차지했지, 학교를 다니는 청소년들은 거의 없다고 말할 수도 있었다. 그럴 수밖에 없다. 공부만 강요되는 상황에서 목소리를 내는 일과 정치에 대한 관심, 그 미디어를 활용할 여유는 '아직'이라는 말로 강탈당해있기 때문에 청소년들은 목소리를 낼 수단을 활용하기에 앞서 접하기조차 쉽지 않다는 이야기가 된다.

 

게 다가 나꼼수는 정말 얄밉고, 매우 부럽게도 프로페셔널한 컨텐츠 생산력과 기획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 부분이 콘서트에서 가장 크게 인정하게 되었던 점이었다. 모난라디오는 아마추어리즘을 표방한다고 했지만 그들만한 능력 역시 없었다. 우리가 가진 능력을 가지고 최선을 다했기에 모나고 어설펐지만 하려던 이야기 만큼은 나꼼수만큼, 혹은 보다 더 진심이었고 열정이 넘쳤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사람들은 청소년들이 내던 까칠하고 모난 목소리들보다, 좀 더 커다란 일에 대해 이야기하는 능숙하고 아는 것 좀 있는 아저씨들이 하는 방송에 더 관심을 갖는다.

 

사 실, 아직 나꼼수 이후에는 나타나게 된 다른 것들은 보수진영에서 만든 '저격수다'라는 나꼼수보다 더 듣고싶지 않은 라디오 이외에는 딱히 들어본 적이 없는 것 같지만 앞으로는 더 많은 목소리들이 더 다양한 방법으로 표현을 하게 되는 시기가 올 것이라고 믿고 싶다. 그렇다면 그 때는 세상의 더러운 마초+꼰대의 정서에 조금이라도 반기를 들며 파장을 일으킬 삐딱하고 불만많은 청소년들의 목소리가 당당히 나오게 되길 바라는 마음과, 그 목소리가 한국 사회에서 나꼼수만큼이나 열광받으며 지지받기를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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