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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철

전철 2009.12.16.Wed AM 1:20

전철,
그것은 아마도 괴물이다.
하지만 아름다운 것이다.
그것은 모두가 죽어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다른 한 편으론 모두가 살아있다는 증거다.

나는 전철 타기를 그리 즐기지 않는다. 물론 예전에는 집이 서울이 아니기에 서울에 올 때 늘 전철을 타고 다녔고, 서울 지리를 모르기에 한두 정거장도 걷거나 버스를 타지 못하고 늘 전철을 탔었다. 서울에 거의 매일같이 와야 하는 나로서는 전철을 안 타는 게 오히려 불가능한 이야기였었는데….  하지만 이제는 전철이 싫다. 자리가 있을지 없을지도 불확실한 것도 싫고, 전철에서 출구로 나가거나 갈아타려면 힘들게 계단을 오르내리고 걷고 또 걸어야 하는 것이 싫었다. 무거운 가방을 메고 그 많은 사람들의 틈바구니에 끼어서 모두가 같은 목적지를 향해 조금이라도 앞서가려고 아등바등하는 그 대열이 두려웠다. 이건 내가 교복을 입은 사람들을 무서워하는 이유와도 비슷한 것이겠지.
교복이야기라는 건 난 등하교 시간에는 거의 거리를 걸어 다니지 않는다. 특히 학교 주변이라면 말이다. 어느 날, 급히 나가다가 같은 옷을 입은 사람들이 같은 머리를 하고, 그들 사이의 유행을 따라서 비슷한 모습을 하고 정말 인도를 꽉 채워 그들이 걸어오는 길을 걸어가다 마주친 이후로는. 어쩌면 동경일지도 모른다. 학교를 다니지 않는 나에게 소속감을 가진 것 같아 보이는 그들을 바라보는 것이. 그리고 어쩌면 그것은 오만일지도 모른다. '난 그런 개성이 말살되고, 사람으로서 가져야만 하는 최소한의 인권이 보장받지 못하는 학교라는 공간에 묶여 있지 않아' 라는 오만하고도 위험한 생각. 하여간에 나는 아직도 교복을 입은 학생들이 떼로 몰려오면 순간 두렵다. 그들 안에 내가 먹혀버릴 것 같아서.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전철 이야기를 하자면, 그래 나는 전철이 두렵다. 전철을 잘 타지 않게 된 이유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앞서 이야기 했던 것도 한가지 이유고 말이다. 또 다른 건 아마도 서울에 출근도장을 찍다시피 서울과 집을 오간지 꽤나 오래 되었기 때문이다. 무언가에 익숙해진다는 것은 더 잘 알게 된다는 것과 비슷하게 쓰이니까.
예전 같으면 전철을 탔을 코스도 이제는 2-30분 거리라면 충분히 걸어 다니게 되었고, 혹은 어느 정도 익혀 둔 버스노선을 기억해서 다니게 됐다. 그 뿐 아니라 집과 서울을 오갈 때에도 빠르지만 힘든 전철에 비해 조금은 오래 걸리지만, 의자도 편안하고, 자리도 거의 확실하고, 내리자마자 갈아타기를 한두 번만 하면 곧 집에 도착하고, 또 사람들 틈바구니에 부대껴 가면서 갈 일이 거의 없는 버스로 집과 서울을 왕복할 방법을 찾았다. 어느새 전철은 내가 많이 늦거나 러시아워인데 멀미할 것 같은 그런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물러터져 맛도 모양도 상해버려 나를 두렵고 손이 안 가게 만드는 과일들처럼 쓸데없이 입맛이 까다로운 나와는 점점 멀어져버렸다.

나는 그러면서 서울의 이곳저곳을 더 많이 알아갔다. 처음에는 공연을 보고, 사람들을 만나고, 구경을 다니고, 일하던 곳인 서교동, 동교동으로 시작됐던 나의 서울은 시간이 조금 흐른 뒤 마포구가 되었고, 마포구에서 시간이 더 흐른 뒤에는 서울의 지역들이 하나둘씩 더 붙어 불어나기 시작했다. 종종 가게 되는 사무실들이 있는, 그리고 날이 하나도 안 풀린 2월부터 1달 가까이 사람들과 일제고사 반대로 농성을 했던 서대문, 충정로가 붙었고, 병원에 다녔을 때 가야했던 여의도가 생겨났고, 자주 놀러갔던 집들이 있는 화곡동이 생겼다. 한동안 알바를 했던 명동, 연애하며 자주 가던 돈암동과 안암동, 그 외에도 딱 한 곳뿐이지만 (예를 들어 집에 가는 버스정류장이 있는 그 어딘가?) 같은 곳들도 기억 속에서 하나 둘씩 불어나 나의 서울은 커졌다. 커진 만큼 더 익숙해졌다. 조금 더 많이 알아갔다. 반면 나의 서울이 커진 만큼 두려웠다. 괴물이 되어간다. 내가 아는 곳이 늘어날수록 나에게 서울은 멀리 떨어져있는 것들이 바로 옆에 붙어있는 괴물이 되어간다. 나의 많은 생활을 차지하기 시작한다. 지배하기 시작한다.
그런데 그 서울이라는 곳을 이곳저곳 기워주는가 싶지만 어쩌면 관통하고 헤집고 상처내고 있는 것은 바로 전철이었다. 버스도 아니다. 전철이다. 서울특별시에서 여기저기 흩어져있는 조각들을 연결해서 나의 서울을 만들어 준 것도 전철이다. 어쩌면 전철이 사람들을 지배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서울이 아닌 전철이. 언젠가 부터 사람들을 서울 어디든 쉽게 갈 수 있도록 만들어주기 시작하더니 사실은 아무 곳도 갈 수 없게 만들었다. 전철과 같이 전체 노선도를 보여주지 않는 버스가 어려워지게 만들었다. 높으신 분들이 만들었을 역 이름만 기억할 뿐, 그곳이 어디인지 전혀 알 수 없게 만들었다. 내가 2호선 '홍대입구'역에서 외선순환행 전철 3-2에 타고, 핸드폰을 켜서 최단경로검색을 해서 나온 40분이 정확히 소요되어 2호선 '잠실'역 3-2에서 내렸더라도 그곳은 어쩌면 잠실이 아닐지도 모른다. 아마 아닐 것이다. 잠실이라고 꾸며놓은 노원일지도 모른다. 아니 어쩌면 그곳은 서울이 아닐 확률이 높다.

서울이 아닌 우주 어딘가의 별일지도 모른다. 그 별은 이미 바오밥나무가 무성해져 자취를 감춰버린 어린왕자가 살던 소혹성 B-612호가 있던 곳 근처 어딘가에 있을 지도 모르는 외계생명체 '기스부에루'들이 살고 있는 다른 혹성 N-893호일 것이다. 인간만이 가지고 있는 그 희귀한 에너지가 아니면 살 수 없게 되었거나, 그 곳에 전쟁이 일어나서 그 에너지가 급히 필요해진 기루(줄여서 보통 그들은 자신을 기루라고 한다.)들은 서울에서 그 곳에 전철을 타고 갈 수 있는 방법을 개발했을 것이다. 그리고는 나사(NASA)에 몇몇이 침투해서 지구에 퍼트린 후, 사람들을 우주에서 일하게 만들고 있는 지도 모른다. 집이 우주에 있지만 서울이라고 속게 만들고 있는지도 모른다.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냥 속고 있는 수 밖에는 없다. 우린 그 곳에 살고 있는 기루들이 먹고 살 수 있는 희귀한 에너지를 만들어 주고 있는지도 모른다.
물론 속아주는 것만큼 맘 편한 것도 없다. 무엇이던 간에 누군가를, 무엇을(그게 우리 집 부엌에 열을 지어 기어 다니면서 음식 찌꺼기를 찾아 헤 메이던 개미 한 마리 잡아온 것을 숨기기 위해서이더라도!) 속이기 위해서는 엄청난 준비가 필요하다. 거짓말이 들통 나지 않기 위한 거짓말들과 변명, 거짓증거, 연기 그리고 그것을 뒤 바침 해 줄만한 연기, 거짓증거, 변명 또다시 거짓말…. 힘들다. 속아준다고 해서 손해 보는 것이 없다면 그냥 속고 만다. 하지만 우리는 그 혹성 N-893호에 살고 있을 기루들에게 에너지를 빼앗기고 또 빼앗기고, 그것에 계속 반복된다면 곧 사라질지도 모른다. 이 세계에서. 어쩌면….

한밤중에 한강에 세워진 야경이 멋진 다리 위에서 그 야경을 더 빛내 주며 나타나는 사람들을 가득 채운 아름다운 전철의 속에 들어있는 그 많은 사람들을, 살아있는 게 맞나 싶은 무기력하게 '이동'하는 사람들을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없는 역에 왈칵 토해내고, 하지만 각자가 전혀 다른 그 사람들을 또 삼키는 괴물 같은 전철. 우리가 이 세계에서 사라지고 싶지 않다면,  전철을 더 이상 타지 않는 것이 '답'일수도 있고, 아니면 그 전철을 계속 타지만 늘 나는 지금 어디에 있는 것일까를 고민하며 우리는 ‘이동’이 아닌 ‘생각을 하며 이동’하는 그런, 살아있다는 것을 기루들에게 보여주는 것이 답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과연 답이라는 게 있을 수 있나 싶긴 하지만 말이다.)

 

 

 

//////

 

 

사실 늘 밤에 버스를 타고 올 때에 한강다리위를 지나는 아름다운 야경을 완성하는 전철을 보며

무섭다, 는 생각을 매번했었어

사람을 삼키고 토해내고 삼키고 토해내고

그안에는 '이동'하는 사람들

터키갔다와서 내가 살아있지 않은 것 같아. 라고 생각했었을 때도

전철안의 사람들을 보면서였지

가장 살아있는 장면같으면서 가장 죽어있는 장면같은 그런거..

 

잘 모르겠다

그냥 중간에 갑자기 내용이 산으로 가더니

음모글이 되었어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거 왠지 쪽팔린데 재밌었다.

나다 회의 끝나고 청소하고 밥먹고 KMC가서 치킨에 맥주한잔 먹고

집에 오는 내내 쳐댔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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