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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적인, 너무도 인간적인!

인간적인, 너무도 인간적인!

은하철도

  우리의 억제된 욕구와 욕망의 원천은 개인적인 성적 억압을 수도 있지만

대부분의 경우는 사회 경제적인 모순에 기인한다.(자살의 원인을 살펴보라!)

편집증적인 자본주의 사회에서 개인은 분열증을 꿈꾸고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끊임없는 분열증적 모습을 꾀한다.(선량한 아버지 그러나 원조교제의 '도너')

 

  '원조교제'라는 관계속에서 도너의 경우는 지배적 , 우월적인 위치를 점하고 상대방의 경우는

수동적, 피억압적 지위를 가지게 된다. 지배와 피지배 그리고 능동과 수동의 관계는

개인 각각의 성적,사회적 지위에 기인하기 보다는 개인이 가지고 있는 화폐의 량에 기초한

'화폐의 능력'에 기초한다.

 '호스트바'에서의 경우를 보면 관계의 전도(물론 성적 지위로만 보면)가 나타나는 듯 하지만

 두 경우의 공통점이 바로 '돈의 능력'임이 적나라하게 나타난다.

 

  성적 도착, 색광증 등으로 설명하는 전통적인 정신 분석학의 설명보다는 사회 경제적 원인을 중시하면서 설명하는 들뢰즈 가타리적 설명이 더 설득력이 있는 부분이다. 물론 과도기적으로 구조적 언어학에 기반한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의 개혁을 추구한 라캉의 학설도 있지만 라캉의 경우는 언의의 상징으로서의 기능은 인지하였지만 사회의 관계속에서의 언어의 능력과 전도된 허상의 인식까지는 도달하지 못했다.

 

  아무리 개인간의  관계가 유지 지속 된다고 하더라도 또는 종료된다 하더라도

관계속의 개인들의 욕구와 욕망은  고개를 쳐들게 되고 관계의 유지와 상관없이

재생산된다는 것에 근본문제가 있다.

과연 해결점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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