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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18~19시경부터 24~01시까지 안 자고 보채던 것을
안고 다독이며 재웠더니
잘 자던 밤중 잠이 줄어들었다.
밤엔 젖만 먹고 내리 3시간도 자고 4시간도 잤는데
이젠 재우기 위해 낮처럼 공을 들여야 한다.
낮잠이 밤잠을 먹어버렸나?
젖을 먹이며 마루를 보니 파트너는 티비를 보고 있다.
오늘 그는 무척 피곤하고 힘이 든다.
지난 주말부터 공부를 하고 일을 하느라 3일 밤을 거의 새다시피 했다.
새로 일을 시작해서 아침 일찍 일어나느라 그것도 힘들 것이다.
집안 일에 대한 책임을 많이 느끼고 또 많이 하기 때문에 그것도 힘이 들 것이다.
감기가 오는지 머리가 멍하고 띵하다고 한다.
아마 그간 못 잔 잠의 이자가 붙어 더 힘이 들 것이다.
그래서 주말이 되자 나는 '푹 쉬라, 밤에 푹 자는 것이 좋으니 따로 자도 좋다'라고 말을 했다. 그의 머리와 몸엔 정말 휴식이 필요하다.
그는 지금 그의 방식대로 쉬고 있는 중이다.
나도 일이 엄청 치이고 피곤하면 잠을 자는 것보다 스타크래프트를 하는 것이 더 좋았던 때가 있기에 그 맘을 안다.
하지만, 이 밤에 티비 불빛을 보는 것은 유쾌하지 않다.
유쾌하지 않은 까닭을 생각해 보니
나는 그가 '쉴 것'도 원하지만,
내일 해야 할 일들을 위해 힘을 비축하기를 원한다.
그러니 '이렇게 못 자면 내일 또 늦잠을 자고 피곤할텐데
대파는 누가 썰고,(엄마가 대파를 엄청 많이 보내서 썰어 냉동실에 보관해야 한다. 나는 칼질을 하고 싶지 않아 그에게 부탁했다.)
걸레는 누가 짜고(청소기만 돌리고 걸레질을 안 한 지 며칠째다. 가재수건을 짜도 손에 무리가 와서 큰 걸레는 되도록 짜려고 하지 않는다.)
설거지는 누가 하며(주중 설거지는 거의 내가 했다. 어제 먹은 것들과 주중에 모아놨던 큰 설거지를 그가 해 주길 바란다.)
숯은 누가 닦고(아이 머리맡에 습도 조절을 위해 두었는데 꽤 무거워서 들고 싶지 않다.)
곰국은 누가 갈무리를 하는가.(내가 곰국을 끓였다!!! 제법 곰국다운 맛이 난다. 세 번째 우려내고 있는데, 이제 뼈를 버리고 많은 곰국을 보관해야 한다.)'하는 생각이 든다.
또 나는 낮에 계속 홍아랑 있지만,
그는 떨어져 있는데 아빠가 아이와 함께 있을 시간도 필요하지 않은가, 하는 생각도 든다.
그러려면 잠을 자야 할 텐데.
다행히 내 컨디션이 좋아서 이렇게 차분하게 생각을 하지만
(이렇게 컨디션이 좋은 것은 그가 한참 아이를 보고 나는 편히 잔 덕이다.)
내가 더 힘들었다면 짜증을 냈을 것 같다.
아니 뭐 해, 이 밤에?
늦게까지 티비 볼 기력이 있으면
빨래라도 삶지?!!
그렇다면 그는 황당하겠지.
불과 몇 시간 전엔 선심쓰듯이
'괜찮아~~ 내가 다 할 수 있어. 쉬어~ 자긴 정말 휴식이 필요해.'라고 말했던 내가
쉬고 있다고 짜증을 부리니..
상대방의 생활도 배려하고 집안일도 하고 아이도 키우려면 상대에게 어떤 태도를 취하는 것이 좋을까.
아이에게 젖을 먹인다는 것은 엄청난 의미이다.
아이의 생을 유지하는 것다.
또 아이와 함께 지내다보니 아이의 요구를 먼저 알게 된다.
그래서 나는 육아에 주도권을 갖게 된다.
밖에 나가 일을 한다는 것은 엄청난 에너지를 쓰는 일이다.
아무래도 집에 있는 사람처럼 살림을 챙길 수 없다.
그래서 나는 살림에도 주도권을 갖게 된다.
그러니 상대가 일을 하고 돌아오면
이런저런 해야 할 것을 알려준다. 요구한다. 부탁한다.
그런데 전념할 수 있는 일이 똑같지가 않은데 어디까지 요구를 해야 하는 것일까?
역할을 어떻게 나누어야 할까?
남편이 일을 하니 육아와 가사일은 제 몫이죠, 라고 다 끌어안을 순 없다.
일을 해도 다 나처럼 같이 해, 라고 할 수도 없다.
아이를 낳고 내 생활이 완전히 바뀐 것처럼 당신도 그래,라고 말할 수는 있을까?
역할 분담보다
내 태도에 대해 우선 생각하게 되는 게 있다.
알아서 해 주길 바라지 말 것- 원하는 것을 분명하게 말할 것.
상대를 배려한답시고 '알아서 해, 자기 좋을 대로 해'라고 말해 놓고
내가 피곤해졌다고 '아니, 이것도 못 해? 이렇게밖에 못 해?' 한다면 상대는 황당할 것이다. 나도 속상할 것이다.
내 몫이라고만 생각하지 말 것-착한 척 하지 말 것.
결국엔 안 착할 거면서 내 몫이니까 염려 마, 강한 척 해 봐야 얼마 못 간다. 그러니 힘든 것이 있으면 그 때 그 때 털어놓고 해결 방안을 함께 찾을 것.
그래서 자려던 사람에게 아이를 맡기고(또 뉘이면 자지 않고 피곤 섞인 옹알이를 한다.)
이렇게 내 시간을 갖는다.
미안은 하지만, 혼자 아이를 끌어안고 머리 뜨겁게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것보다는 낫다.
이 사람을 사랑하고 지내며(아 이젠 이런 표현 좀 어색하고 쑥스러워질라 한다. 하지만 굴하지 않겠어.) 많이 싸우지 않고 지냈는데, 그런 이야길 하면 남들이 '애 키워 봐. 엄청 싸울 거야'라는 이야기들을 한다.
아마 그렇게 될 거라는 생각이 든다.
그 싸움이 덜 소모적이고 덜 아프려면
서로 더 속내를 솔직하게 드러내야겠지.
요건 내가 더 못 하는 일이다.
댓글 목록
봄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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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상황을 직시하는게 쉽지 않은데...님은 연습을 많이 하셨나봅니다.
답도 아시고...힘내세요 잘될거에요~
파란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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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운동하는 데 표현으로는, 머리를 너무 써서 단전이 허하대요. ^^;; 근데 이렇게 생각해도 생활은 또 다르더라구요~하얀저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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젖을 먹이는 어머니가 가장 먼저 챙길 일은속내도 좋지만 무엇보다 잘 먹는 일입니다,
육아와 수유와 가사노동은 각각 세가지 일이라서
여성의 몸돌보기는 밀리다보면 소홀해질 수도.....
파란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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ㅠㅠ 감사해요. 요즘은 챙김받는 말 들으면 감동받아요. 그래서 곰국을 끓여놓았어요. 배고플 때마다 편하게 퍼 먹으려고요. 아이 크는 걸 보면 내 몸에서 지방도, 탄수화물도 더 많이 필요하겠구나, 싶어 잘 먹으려고요.^^수진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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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를 낳은 시점이 비슷해서인지 나랑 거의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네요. 아니 완전 일치??한다고 해야하나~~ 남편이 나름 애쓰고 있다는 것도 알면서도 나도 모르게 어떤 상황을 막닥드리게 되면 욱하는 상황이 생기고 그러다보니 관계에 냉기가 돌다가 다시 삭히다가 평온해지다~~ 내마음은 하루에도 여러번 나도 모르는 상황이 생기기도 합니다. 남편에게 쿨해지고 싶으나 정말 그렇기 쉽지 않은 요즘입니다.ㅜ.ㅜ파란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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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쵸, 그쵸? 엄마는 순간에 '되는' 것 같은데 아빠는 '되어가는' 것 같아요. 그러니 먼저 엄마된 내가 더 앞서가고 기다리고 요구하고 서운해하고.. 게다가 다른 일이라도 생기면 우와 정말 쉽지 않아요..schu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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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구...전 이 테마 때문에 진정 심각하게 싸웠던 적이 한두번이 아니에요. 그래도 파란꼬리는 현명하단 생각이 많이 듦. 화이링 하삼. 어쩌면 서로 서로 서로 삼자가 알아가는 시기가 아닌가 싶어요. 새로운 환경에요. 그러니 화이링 하삼. 수다가 필요함 불러주세요.파란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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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걸기가 제 글을 읽더니 '결국엔 안 착할 거면서'에서 엄청 큰 공감을 표했어요. 췟!!! 진짜로 안 착하게 굴테닷!아직은 아이의 신호를 읽느라 신경을 곤두세우고, 생활을 이끌기보단 따라가기에 바빠요. 하지만 좀 여유가 생기면 말동무가 필요할 것 같아요. 슈아가 가까이 있다는 거 맘으로 느끼고 있어요. 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