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아무도 기획하지 않은 자유 <마지막 자국> 장준석

 

코뮌

 

12세기 북프랑스를 중심으로 사회 질서 안정을 위해 결성된 주민자치제.

 

어렵다.

 

그냥..

 

코뮌이란 자신과 마음이 맞는 사람들간의 조그만 공동체이다.

 

그리고 노마주의의 결합.

 

수유+ 너머의 공동체는 거대한 토지를 거점으로 하여 마을을 구성하는 정착적 방식을 택

 

하지 않았다. 거점의 유연한 변이가 가능하고, 영토표지와 개별주체가 아니라 활동과 네

 

트워크를 통해 그 존재를 표현한다.

 

그들은 명실상부한 '노마디즘적 코뮌' 인 것이다.

 

그들은 자본주의의 강압으로부터 벗어난 집단이다.

 

자본으로부터 행복을 찾는 것이 아닌, 돈으로 환원되지 않는 행복을 스스로 창안해 낸다.

 

많은 생각을 머리 속에서 뒤얽히게 만든 내용이 있었다.

 

- 이 도시는 병들었어. 이 도시는 외로움과 두려움으로 병들었어. 이곳은 거대한 고독의

 

집합체야... 모두들 이 사실을 알고 있고 여기에 대해 한결같이 불평하고 한탄해댄다.

 

그러나 "모두들 불평을 하면서도 정작 떠나려는 사람은 하나도 없다" 왜?

 

떠나는게 더 불안하기 때문이다. 행복이 아니라, 덜 불행해지기 위해 사는 불쌍한 도시인

 

들.

 

도시 중산층의 삶이 아니고도 행복할 수 있는 길은 많다. 사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달리

 

방법이 없기 때문에 남들처럼 사는 길을 택할 뿐이다. 성공해봤자 나른한 일상과 소통부

 

재만이 존재하는 그런 코스를. 따라서 그런 코스와는 다른 선택지가 많아야 한다. 돈으로

 

환원되지 않는 행복을 스스로 창안할 수 있어야 비로소 자본에 대항할 수 있는 법이다. -

 

씁쓸하다.

 

자본이라는게 소유하면 소유할 수록 욕심이 생긴다는 사실을 이젠 어렴풋이 알게 되는

 

나이가 되었다. (물론 정치가 더욱 심하다는 사실도_)

 

그리고 도시라는 곳은 그 자본의 욕심을 느끼게 하는 최고의 장소라는 것도 어렴풋이 알

 

아가고 있다.

 

더욱 많은 지식을 습득해서, 자신의 꿈을 현실화하는 능력을 배운다는 대학생들도

 

위의 사실은 알고 있지만_ 그걸 뿌리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생각과 행동은 다를 수 밖에 없다.

 

자신의 습관을 버리고 일탈을 한다는 것은 대단한 용기와 모헙심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일탈이 자신을 행복하게 해 줄것이라는 확신도 없다.

 

원래는 스승과 친구는 하나다라는 내용의 부분이 너무 맘에 들어서, 그 부분에 중점을 두

 

려고 했는데_ 이 소설의 마지막 부분이 내게 너무 복잡한 생각을 들게 하여버렸다.

 

그리고 마지막 부분이 작가가 독자에게 가장 말하고 싶은 부분이라고 생각이 들었다.

 

마음을 비우면 그들에게는 항상 행복한 일들이 생겨났다.

 

마치 이 소설의 내용만으로 보면 그들에게는 항상 행복한 일들만 일어난 것만 같은 착각

 

들 정도로 말이다. (착각이 아닌 사실일 수도 있다.)

 

사랑에 대한 집착, 소유에 대한 집착, 자본에 대한 집착_

 

아마 학문에 관한 집착과 음식에 관한 집착(그들은 먹는 것을 좋아한다)을 제외하고는

 

마음을 비우고 조금씩 성장해 나가는 그들을 보고는..  많은 사고의 틀에 파문을 일으켰

 

으며_ 그 파문을 하나라도 현실에 반영해보자는 의지를 갖게 되었다.

 

글쎄_

 

4학년 수업이라 이 도서를 강독시킬 수는 없겠지만,

 

지금 나와 비슷한 삶의 방식을 영유해 나가는 사람들이라면

 

우리들과는 조금 다른 삶의 방식을 엿보는게

 

앞으로 남은 많은 시간들에게 희망적인 영향을 줄 것이라고 생각이 들었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