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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06/04/30
    What IS Management <가치 창조>(4)
    bluething
  2. 2006/04/10
    아무도 기획하지 않은 자유 <마지막 자국> 장준석(4)
    bluething
  3. 2006/04/02
    아무도 기획하지 않은 자유 <2> - 장준석(7)
    bluething

What IS Management <가치 창조>

경영이란 무엇인가?

 

경영학을 전공하고, 경영에 관려된 전공수업만 해도

 

20여개는 들었을 나지만, 이 질문에 선뜻 답하긴 어렵다.

 

경영(Management)의 정의를 내리자면,

 

경영이란 기업 등의 개별 경제단위의 경제적 목표를 합리적으로 달성할 수 있도록 계획·

 

통제하는 과정을 경영(administration)이라고 한다.

 

간단히 말하면 경영은 기업의 이윤추구를 효율적으로 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이렇듯 기업은 경제적 목표를 달성을 위하여 노력하며, 경영자는 목표 달성을 위해 가치

 

를 창조한다.

 

가치란 무엇인가?

 

그것을 알기 이전에 소비자에 대해서 알아야 한다.

 

소비자의 욕구는 항상 needs와 wants로 구분되어 진다.

 

needs는 사람이 살아가는데 필요한 욕구이다. 일상적인 문제 해결을 위한 욕구를 마케

 

팅에서는 needs라고 부른다.

 

wants는 구체화된 소비자의 선호를 말한다. needs로 인해 발생된 구매욕구를 해소하기

 

위한 구매에 소비자의 구체화된 선택 선호도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소비자의 wants를 만족시키기 위한 방법이 가치 창조이다.

 

소비자가 원하는 부분을 발견하고, 그 부분을 만족시켜 주는 것.

 

그것은 금전적인 면만이 아니라 고객의 가치를 창조하고 만족시키는 것도 포합된다.

 

이런 고객을 위한 사고 방식은 20세기 중반이 되서야 생긴 개념이다.

 

제조업적인 효율성에만 집착하였던 시대가 지나고, 고객을 위한 가치에 중점을 둔 시대

 

가 온 것이다.

 

소위 그것을 판생학적 모델(make & sell)에서 생판학적 모델(sense & respond)로의 변

 

화라고 한다.

 

판생학적 관점에서만 보면 소비자는 가장 저렴한 가격의 제품을 구매하는 것이 정답일

 

것이다. 물론 약간 다른 사례이긴 하지만 말이다.

 

그러나 소비자는 가격이 저렴한 제품만을 구매하는 것이 아닌 소비자의 가치를 만족시켜

 

주는 제품을 구매한다.

 

그것은 매우 어렵고 다양해서 기업들은 고객의 가치를 위해 유동성있는 변화를 해나가야

 

한다.

 

가치 창조는 산업 시대의 중점인 효율성을 포함하는 거은 물론 소비자 시대의 중점인 고

 

객과 품질, 선택 등도 포함된다. 게다가 가치 창조는 현대적 경영에 필요한 모든 구성요

 

소를 포함할 수 있을 정도로 범위가 넓다.

 

이렇기 때문에 쉽게 정의를 내리긴 어렵지만 소비자를 위한 가치 추구는 기업의 생존이

 

걸려있을 만큼 중요하기 때문에 기업들이 지속해야 할 부분이다.

 

 

 

<후기>

 

제 생각이 많이 들어가 있어서, 틀린 부분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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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기획하지 않은 자유 <마지막 자국> 장준석

 

코뮌

 

12세기 북프랑스를 중심으로 사회 질서 안정을 위해 결성된 주민자치제.

 

어렵다.

 

그냥..

 

코뮌이란 자신과 마음이 맞는 사람들간의 조그만 공동체이다.

 

그리고 노마주의의 결합.

 

수유+ 너머의 공동체는 거대한 토지를 거점으로 하여 마을을 구성하는 정착적 방식을 택

 

하지 않았다. 거점의 유연한 변이가 가능하고, 영토표지와 개별주체가 아니라 활동과 네

 

트워크를 통해 그 존재를 표현한다.

 

그들은 명실상부한 '노마디즘적 코뮌' 인 것이다.

 

그들은 자본주의의 강압으로부터 벗어난 집단이다.

 

자본으로부터 행복을 찾는 것이 아닌, 돈으로 환원되지 않는 행복을 스스로 창안해 낸다.

 

많은 생각을 머리 속에서 뒤얽히게 만든 내용이 있었다.

 

- 이 도시는 병들었어. 이 도시는 외로움과 두려움으로 병들었어. 이곳은 거대한 고독의

 

집합체야... 모두들 이 사실을 알고 있고 여기에 대해 한결같이 불평하고 한탄해댄다.

 

그러나 "모두들 불평을 하면서도 정작 떠나려는 사람은 하나도 없다" 왜?

 

떠나는게 더 불안하기 때문이다. 행복이 아니라, 덜 불행해지기 위해 사는 불쌍한 도시인

 

들.

 

도시 중산층의 삶이 아니고도 행복할 수 있는 길은 많다. 사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달리

 

방법이 없기 때문에 남들처럼 사는 길을 택할 뿐이다. 성공해봤자 나른한 일상과 소통부

 

재만이 존재하는 그런 코스를. 따라서 그런 코스와는 다른 선택지가 많아야 한다. 돈으로

 

환원되지 않는 행복을 스스로 창안할 수 있어야 비로소 자본에 대항할 수 있는 법이다. -

 

씁쓸하다.

 

자본이라는게 소유하면 소유할 수록 욕심이 생긴다는 사실을 이젠 어렴풋이 알게 되는

 

나이가 되었다. (물론 정치가 더욱 심하다는 사실도_)

 

그리고 도시라는 곳은 그 자본의 욕심을 느끼게 하는 최고의 장소라는 것도 어렴풋이 알

 

아가고 있다.

 

더욱 많은 지식을 습득해서, 자신의 꿈을 현실화하는 능력을 배운다는 대학생들도

 

위의 사실은 알고 있지만_ 그걸 뿌리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생각과 행동은 다를 수 밖에 없다.

 

자신의 습관을 버리고 일탈을 한다는 것은 대단한 용기와 모헙심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일탈이 자신을 행복하게 해 줄것이라는 확신도 없다.

 

원래는 스승과 친구는 하나다라는 내용의 부분이 너무 맘에 들어서, 그 부분에 중점을 두

 

려고 했는데_ 이 소설의 마지막 부분이 내게 너무 복잡한 생각을 들게 하여버렸다.

 

그리고 마지막 부분이 작가가 독자에게 가장 말하고 싶은 부분이라고 생각이 들었다.

 

마음을 비우면 그들에게는 항상 행복한 일들이 생겨났다.

 

마치 이 소설의 내용만으로 보면 그들에게는 항상 행복한 일들만 일어난 것만 같은 착각

 

들 정도로 말이다. (착각이 아닌 사실일 수도 있다.)

 

사랑에 대한 집착, 소유에 대한 집착, 자본에 대한 집착_

 

아마 학문에 관한 집착과 음식에 관한 집착(그들은 먹는 것을 좋아한다)을 제외하고는

 

마음을 비우고 조금씩 성장해 나가는 그들을 보고는..  많은 사고의 틀에 파문을 일으켰

 

으며_ 그 파문을 하나라도 현실에 반영해보자는 의지를 갖게 되었다.

 

글쎄_

 

4학년 수업이라 이 도서를 강독시킬 수는 없겠지만,

 

지금 나와 비슷한 삶의 방식을 영유해 나가는 사람들이라면

 

우리들과는 조금 다른 삶의 방식을 엿보는게

 

앞으로 남은 많은 시간들에게 희망적인 영향을 줄 것이라고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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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기획하지 않은 자유 <2> - 장준석

- 아무도 기획하지 않은 자유

 

수유+너머의 운영비는 초기에는 '고미숙'씨가 전액 부담했었다.

 

현재에 와서는 일반 회원들이 내는 회비와 강의 수입으로 인한 특별 회비, 세미나 회비

 

등이 생겨서 부담이 덜어졌지만, '고미숙'씨에게는 물질적인 충만함보다는 정신적인 충

 

만함이 더욱 우선인 셈이다.

 

세 차례에 이사에 더욱 넓어진 공간의 사용비는, 공간의 증식과 함께 나타났던 예기치 못

 

한 활동비로 충당되었다. 말하자면 공간과 활동과 관계가 동시적으로 증식되는 행운을

 

맛보았던 것이다.

 

계속되는 이런 지출에 비해 얻는 건 실로 엄청났다.

 

그녀는 이런 현상을 '사이보그 - 되기' 라고 표현했다.

 

물질적인 만족이 아닌 타인과의 인연으로 인해서 그들의 능력을 내 것으로 활용할 수 있

 

는 정신적인 만족을 가졌다고 한다.

 

물론 내가 모르는 내용은 아니다.

 

물질적인 행복만을 추구하다가는 정신적으로는 핍박해 진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없

 

아마 없을 것이다.  다만 이렇게 실천하기가 어려울 뿐이다.

 

'마시멜로 이야기' 라는 소설에서도 처음에 나오는 내용이 결심과 실천의 차이이다.

 

우리가 살면서 다짐하는 수 많은 결심, 금연이라던가 다이어트 등의 결심들은 실천으로

 

옮기지 못하면  그것은 항상 제자리 걸음이라고 했다. 결심을 '결실' 로 만들기 위해서는

 

'실천' 이 필요한 것처럼, 내가 아는 내용이라도 실천이 없으면 모르는 것과 마찬가지이

 

다.

 

한 강의 시간에 교수님이 학생들에게 질문하셨던 적이 있다.

 

"사랑이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

 

나에게 질문이 돌아오지는 않았지만, 난 사랑은 '이해'라고 생각한다.

 

작가는 '니콜라이 체르니셰프스키의 <무엇을 할 것인가> 로서, 자신의 사랑에 대한 생각

 

을 독자들이 엿볼 수 있게 하였다.

 

사랑이란 상대가 원하는 것을 하게 하는 것이다. 소유와 집착이 아니라, 혹은 자기와의

 

동일성에의 요구가 아니라, 그의 본성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하도록 촉발해주는 것이

 

바로 사랑인 것이다. 사랑의 이름으로 자신의 욕구를 그대로 이식, 복제하기를 강요하는

 

것은 사랑이라는 가면을 씌운 소유와 집착이다.

 

진정으로 사랑을 하게 되면 상대방이 너무도 평온하게 느껴진다. 흔히 사람들은 사랑이

 

자극적인 감정이라고 생각한다. 사랑에 빠지면 동요하고, 불안에 잠기고, 설레이고, 거절

 

당할 수록 더욱 끌려가며, 그 상실에 대한 불안감_ 이런 감정은 소유와 집착이라고 작가

 

말한다. 그리고 주장한다.

 

사랑은 '코뮌주의(Commune) 다.

 

코뮌이란 프랑스 중세의 주민자치체로서 작가는 의역해서 서로의 기쁨과 행복을 증식시

 

키는 것이라고 말한다. 외부를 향한 감역력을 가지고, 다른 대상들을 촉발하는 것이 사랑

 

이라고 말한다.

 

작가가 주장하는 코뮌주의적 사랑은 이성적인 감정의 사랑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에게 행

 

복한 감정을 나누어 주면, 그 감정들은 계속 순환작용을 일으킨 다는 말을 하고 싶었던

 

것이다. 부와 재물이란 멀리 떨어져 있는 누군가에게 양도되기 위해 잠시 내게 머무르는

 

것일 뿐이니, 많은 증여와 순환으로서 코뮌주의적 사랑을 하여라.

 

코뮌주의란 노마디즘에 이어 나에게 새로운 생각의 감각을 자극시키게 해 주었다.

 

코뮌이 제대로 돌아가려면 무엇보다도 공간이 비어 있어야 한다.

 

비어야 외부를 향해 열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비움과 열림은 같은 표현이라고

 

해도 좋다. 그리고 비어 있음의 표현이 바로 청결이다. 청결해야만 곧 변이가 가능하다.

 

공간을 단지 하나의 기능으로만 쓴다면 정말 낭비다.

 

이런 청결함으로 인한 공간 변이성은 수유+너머의 이념인 노마디즘과도 연관성이 있다.

 

'흔적을 남기지 않는다' 는 원칙이 자가 발전하면서 전 회원이 유목하기를 택했다는 점이

 

그 점이다. 이런 점에서 보아도 노마디즘과 코뮌주의의 이념은 결합되는 개념인 것 같다.

 

하나 더 말해볼까?

 

흔히 공동체라고 하면 이념과 세계관을 공유하는 진지한 집단이라고들 생각한다. 하지만

 

진지함은 공동체의 치명적 약점이다. 그런 공동체들은 내적으로 상하위계가 작동하게 되

 

는 한편, 외적으로는 안팎의 경계가 뚜렷해짐으로써 결국에는 정체될 수 밖에 없다. 그러

 

므로 코뮌이 살아 움직이려면 유머러스해야 된다. 웃음이야 말로 일상의 축제를 만들어

 

내는 기초이자 원동력이기 때문이다. 이렇듯 유머는 코뮌의 원동력이다. 소위 진지한 것

 

이 진실이라고 사람들은 생각한다. 하지만 유머에 익숙해지면 안팎이 사라지면서 새로운

 

관계, 이질적인 삶이 열리게 된다.

 

그런 점에서 유머는 ' 노마디즘의 토대' 다. 낯설고 이질적인 것들 사이를 자유롭게 가로

 

지으며 예기치 않은 흐름들을 만들어내는 동력으로서의 유머. 더 나아가 그것은 주류적

 

질서를 전복하면서 매끄럽게 옮겨 다니는  ' 유목적 특이점이자 우발점의 기법' 이다.

 

그러므로 코뮌을 꿈꾼다면 가장 먼저 웃음의 지혜를 터득해야한다.

 

이렇듯 코뮌과 노마디즘은 하나로 결합되는 개념이다.

 

감정기복이 덜하고, 진지함을 좋아하는 한국 사람들에게서 이런 유머의 개념은 낯선 개

 

념이다. 특히 남자는 무뚝뚝하고 진지해야 한다는 사고방식이 누구에게 배우지 않았는데

 

도, 대한민국 남자라면 가지고 있는 개념이다. 이런 낡은 사고방의 틀을 이 글이 조금은

 

부수게 해 주는 것 같다. 나에게_

 

노마디즘과 코뮌주의는 하나의 획기적인 개념이라기 보다는 그동안 가지고 있던 개념들

 

의 방향을 조금씩 수정해 주는 화이트(white)같은 개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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