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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성장 일기] 날씨가 점점 추워지지만 함께해주는 분들 덕에 훈훈한 농성장

농성장 일기

  * 이 글은 여성가족부 앞에서 농성중인 피해 노동자 분이 직접 작성하신 글입니다.

 

아침부터 가을비가 제법 많이 내린다. 비도 오고 해서 모든 게 귀찮다. 그래도 비가 내리니 밖에 나가서 텐트 단도리를 해야 한다. 휴지며 깔판들이 벌써 다 젖어서 비바람에 날리고 있고 신발도 비에 젖고 있었다. 시계를 보니 벌써 8시 30분을 넘기려하고 있어 급히 사노위 임용현 동지를 깨웠다. 사람이 없어서 요새는 아침에 집회신고 하는 것을 사노위 서울대표인 임용현동지가 전담해서 내주고 있는 형편이다. 미안하기도하고 고맙기도 하다. 사노위 일만해도 벅찰텐데 재능지부 농성장과 우리 농성장을 번갈아 다니면서 철농에 집회신고까지 해준다. 추운 비바람에 보내는 맘이 안쓰럽다. 용현동지가 가고 세수를 하고 비는 그칠 줄 모르고 어디 있을 곳이 딱히 없어 텐트 속으로 들어왔다. 텐트 안에는 어제 밤에 철농을 함께 해주겠다고 옷가지를 싸가지고 온 여성동지가 아직도 자고 있다. 백선영 동지는 지구지역행동네트워크에서 9월부터 일하기 시작한 신참이란다. 옆에 누워서 신문도 보고 일기도 쓰면서 언제나 일어날까 했는데 곤히 잘 잔다. 출근 때문에 깨워야 하나, 그러나 조금 늦게 가도 철농했으니 나영 동지가 혼내지는 안겠지, 이해해주겠지 했다. 아이나 어른이나 자는 모급은 다 예쁘다. 이 동지의 별명을 잠자는 숲속의 공주라고 지어줄까, 생각했는데 함께 점심을 먹으며 알고 보니 ‘백곰’이라고 별명은 따로 있다네. ^^ 백곰이라고. 우리 농성장에서 불편하단 말없이 너무 잘 자주고간 동지에게 고맙고 고맙다. 그리고 비타민 씨도 잘 먹을 게요.

 

날씨가 추워져서 그냥 자기엔 이불을 두개를 덮어도 춥게 느껴지는구나, 생각을 했더니 저녁에 나영이가 제일 비싼 핫팩을 두 봉지나 사들고 왔다. 수정이랑 내가 핫팩 때문에 싸울까봐서 한 봉지씩 서로 사이좋게 나눠 쓰라고^^ 덕분에 유별나게 추위를 많이 타는 내가 등과 다리 쪽에 한 개씩 붙이고 잤더니 뜨듯하다. 탐앤탐스 음악소리와 새벽 한기를 느끼면서 밤새 몇 번씩 개야하는 중에 그래도 침낭 속에 한기가 없어지고 따듯하니 나영이의 따듯한 온기를 느끼며 금방 다시 잠이 든다.

 

어느 날 아침 일찍 출근하다 농성장에 예쁘게 웃으면서 “사랑님, 저 이거요.”하며 토리가 고구마와 자두를 내민다. 내가 좋아하는 자두다. 어려서 고구마는 무지 많이 먹어서 그런가 손이 먼저 자두로 간다. 삼겹살과 과일을 좋아해요. 단감도 좋아해요. 토리 선생님 담에는 단감이요.^^ 여러 동지들과 구운 고구마를 나눠먹었는데 자두는 나 혼자 먹었다.

 

산재 제조사 받는 날 “사랑님, 고구마 또 구워서 농성장에 놀러 갈께요.” 한다. 언제 고구마가 다시 오려나 기다려진다. 요새 내가 토리선생님께 원고청탁을 받아서 글을 써서 넘겨주었다. 세상에, 내가 글을 쓰게 될 줄이야. 꿈에도 몰랐다. 원고료도 있단다. 도서상품권. ^^

 

낮에는 오랜만에 어린 검둥 강아지 같은 귀여운 강정주 기자가 “언니, 저 왔어요.”하며 찾아왔다. “오늘은 취재할 곳이 없어?”하고 물으니 “예. 오늘은 좀 한가해서 근무 땡땡이 치고 언니 보러 왔어요. 바쁘단 핑계로 자주 못 와봐서 죄종해요. 그래서 오늘은 비도 오고해서 언니랑 티타임 가지려고요.” 한다. 둘이 탐앤탐스 가서 커피와 치즈가 듬뿍 뿌려진 빵을 하나 시켜놓고 맛있게 먹으며 오랜만에 깔깔 웃었다. 강정주 기자는 “날씨도 점점 추어지는데 얼른 복직하셔야죠. 인제 금속 선거가 끝나서 새로운 임원이 당선되시고 김현미 부위원장님이 다시 또 되었으니, 더 잘됐죠. 언니복직 먼저 신경 써서 해결해 주시겠죠.” 하며 나를 안심시켜 주기도 한다. 어른스럽다. 티 없이 웃는 모습이 좋다.

 

저녁에 농성장에 앉아 있는데 아름다운 한 쌍의 시민분이 다가오시면서 “피디수첩 보았습니다. 티비 보기 전에는 여기 계신 줄 몰랐습니다. 제가 사는 곳이 여기서 가까운데도 몰랐습니다. 얼마 안 되지만 힘내시라고 왔습니다.”하시며 하얀 봉투를 주신다. 참 고맙고 감사했다. 새삼스럽게 방송의 힘이 이런 거구나, 싶었다.

 

그 다음날 아침에도 또 지나가는 시민분이 “피디수첩에서 봤습니다. 힘내세요.” 그 뒤에도 계속해서 시민 분들이 피디수첩 보았다고 인사를 하신다.

 

목요일, 금요일은 청계광장이 들썩들썩 했다. 목요일은 대학생들의 반값등록금 1박2일 텐트촌 집회였고, 금요일엔 전국 교대 통합 반대 집회였는데, 금요일엔 청계천이 학생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이날 모인 인원이 자그마치 삼천 명이 넘는단다. 낮에 혼자 있었지만 심심치는 않았다. 그러나, 낮이고 밤이고 행사로 시끄러운 탓에 이틀 동안 한숨도 제대로 못 잤다. 학생들이 이번처럼 체계 있게 하는 큰 집회는 내 눈으론 처음 보는 것이라서 새로웠다. 학생들이 발디딜 틈도 없이 많아서 놀라웠다. 조금 보면서 사진을 좀 찍고 몸이 별로여서 텐트 안에 들어가서 끝날 때까지 마냥 누워있었다. 3시부터 5시까지 두 시간 집회를 끝내더니 줄이 길어 나가는 것도 길다. 오늘은 충남에서 노동전선이 야간농성 지원연대 오는 날이다. 7시에는 바로 반값집회가 또 있단다. 이틀을 날 잡아서 총력전을 하는가 부다. 사노위 임용현 동지가 전화가 왔다. “누님, 저녁은 드셨어요. 지금 제가 그리 가고 있으니 저녁 같이 먹어요.”해서 정신없이 빠져나가는 학생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6시쯤 되자 용현동지가 왔고, 노동전선도 거의 다 왔다고, 오면 같이 먹자해서 임용현 사노위 서울대표랑 충남전선 옥선 씨랑 같이 오래간만에 셋이서 저녁을 먹었다. 항정살과 삼겹살을 반반 시켜서 정말 맛있었다. 계산은 서울대표가 했다. 상근비 조금 받았는데 밥 두 끼로 다 나갔다고 해서 ^^ 좀 맘이 그랬다. 어쨌든 간에 먹긴 잘 먹었다.

 

진보신당 김홍춘 여사가 텐트 안에 누워있는데 들꽃을 한줌 꺾어서 텐트 안으로 넣어준다. 잠깐 운동하러 나왔다면서 강원도로 이사를 가야하는 자신의 처지를 못내 한숨 쉬면서 약속이 있어서 가는데 다음에 올 때는 꼭 복직해서 들어가 있어야 된다면서 텐트를 나간다. 여름 내내 고마웠던 여인이다. 농성장을 자기 집 안방처럼 드나들면서 즐거워했던 마음착한 여인이다. 어디를 가든지 행복하길 바래요.

 

농성장에서 그냥 앉아 있기에는 이제는 춥다. 노동전선 김태석 동지와 옥선동지와 셋이 각자 이불을 하나씩 덮고 앉아 태석 씨가 틀어준 영화를 보았다. 재능농성장에서 노래를 하시고 왔다면서 고미숙 동지와 구자혁동지가 씩씩하게 방문하셨다. 구자혁 동지는 이제 우리와 한식구가 되었다. 비어있거나 쓸쓸한 농성장을 항상 훈훈하게 채워주고 가시는 동지다. 시원하다. 뭐가를 하면 획기적이고 기발한 발상이 나오는 동지다. 그런 발상들을 구체화해서 농성의 여러 일들을 실현하려고 무던히 노력한다. 구자혁 동지가 뭘 한다고 하면 왠지 든든하다. 이날도 늦은 시간까지 지켜주고 가셨다. 고마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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