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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칼럼]기막히고 코막힌 일/장귀연

세상 읽기] 기막히고 코막힌 일 / 장귀연
[한겨레] 

 
              
성희롱 당하고 하소연하자 징계
노조 가입·인권위 진정하자 해고
여성가족부에 호소해도 나몰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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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귀연 경상대 사회과학연구원 교수
 
 
 
여성이다. 젊은 아가씨도 아니고 아이 셋 키운 홀몸 된 ‘아줌마’다. 공장에서 일하는 생산직 노동자다. 정규직도 아니고 하청 비정규직이다.

 

이런 조건이면 한국 사회에서 말할 것 없는 약자다. 서럽고 억울한 일을 당해도 호소할 곳 없는 약자들. 현대자동차 아산공장 사내하청 업체에서 일하던 박아무개씨의 사연을 보면, 약자의 설움과 강자의 횡포에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힐 지경이다.

 

첫째, 적반하장, 도적이 도리어 매를 든다. 박씨는 조장과 소장으로부터 성관계 요구 등 지속적으로 성희롱을 당했다. 혼자 끙끙 앓던 박씨가 동료에게 휴대전화로 온 성희롱 문자를 보여주며 하소연하자, 곧바로 회사는 인사위원회를 열고 감봉 등 징계를 결정하였다. 그런데 징계 대상자는 바로 피해자인 박씨. 회사 질서를 문란케 하고 회사 이미지를 실추시켰기 때문이란다.

 

둘째, 힘없는 여성이라 성희롱도 모자라 매까지 맞는다. 참다못한 박씨는 노조에 가입하여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서를 냈고, 이번에 회사의 대응은 그를 아예 징계해고해 버리는 것이었다. 해고당한 박씨는 공장 앞에서 1인시위와 농성을 시작했다가 폭행을 당해 두번이나 입원해야 했다.

 

셋째, 비정규직은 부당한 일을 당해도 보호를 받을 수 없다. 인권위는 성희롱과 징계 및 해고를 수정하라는 권고를 냈고, 얼마 전 대전지방검찰청 천안지청도 직장내 성희롱 피해와 고용 불이익에 대해 사장을 약식기소하기로 결정했다. 그만큼 누가 봐도 명백한 사정이었다. 그럼에도 박씨는 복직을 하지 못했다. 박씨가 다니던 현대자동차 사내하청 회사인 금양물류는 폐업을 하였고, 대신 형진기업이라는 회사가 들어서 박씨를 제외한 다른 사람들은 모두 고용승계를 했다. 물론 성희롱 가해자도 포함해서. 말하자면 위장폐업으로 회사 이름만 바꾼 것이다. 이름 바꾼 회사는 자기와 관련 없는 일이란다. 하청업체가 폐업하고 이름이 바뀌는 과정에서 원청이 관여하지 않았을 리 없건만, 원청인 현대자동차 역시 하청업체의 고용 문제는 상관할 바 아니란다. 훌륭한 꼼수다. 법적으로 부당한 해고라고 판정이 나도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다. 사실상 최소한의 법적 보호도 받지 못하는 게 바로 비정규직이다.

 

넷째, 이렇게 억울하고 억울한데 어디 호소하기조차 어렵다. 6월부터 박씨와 지원대책위는 여성가족부 앞에서 천막농성을 시작했다. 여성 노동자가 성희롱을 당하고 그걸 문제시했다가 해고까지 당하는 기막힌 상황을 앞장서서 막아줄 곳이 여성가족부라고 상식적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여성가족부 장관은 정식 면담조차 해주지 않았다. 사무관만 불쑥 찾아와 농성 천막을 철수하지 않으면 건물주가 용역을 고용해 철거할 거라는 말을 전해주고 갔을 뿐이다. 아니나 다를까, 여성가족부가 있는 건물의 관리사무소가 농성장 철거 가처분신청을 냈다. 법원이 이를 받아들이면, 농성과 집회를 포기하든지 아니면 매일매일 200만원씩 내야 한다. 검찰이 박씨를 해고했던 사장을 약식기소한 벌금은 300만원이다. 매일 200만원과 총 300만원의 차이를 생각하면 서러울 따름이다.

 

대대적인 정리해고가 발생한 일은 아니다. 사회적으로 크게 관심을 끌지도 못했다. 하지만 박씨는 오늘도 추운 농성장을 지키고 있다. 계란으로 바위치기일까. 이런 말이 있다. 계란으로 바위를 치면 바위가 깨지지 않더라도 더러워진다고. 설사 그가 복직을 성취하고 가해자를 처벌하더라도 상처는 가시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스스로 깨지더라도, 힘없는 약자를 무참하게 짓밟는 이 사회의 더러운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어쨌든 바위도 영원히 깨지지 않는 것은 아니다.

 

 

한겨레 칼럼 읽기 ->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506611.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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