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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 The Reader 독후감-by 사포

http://blog.jinbo.net/sadsappho/?pid=36

 

The Read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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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 http://serviceapi.nmv.naver.com/flash/NFPlayer.swfvid=DDE2077C4C8F80C0C028F8E71144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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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나도 책 읽어주는 남자에 대한 환상을 갖고 있는지 모른다. 내가 읽지 못하는 세계를 스스로 고민하고 해석하기 보다는 똑똑한 누군가에게 의존하고 싶은 적이 많았다. 나보다 지적으로 우월한 그 누군가는 분명히 남성일 가능성이 많을 것이다. 하여튼 그의 음성을 통해 사랑 뿐만 아니라 내가 알지 못하는 여러 세상을 경험할 수 있다면, 영화 속 주인공처럼 나도 행복감에 빠져들 것이다. 하지만 거기까지이다.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에 대한 이유는 너무도 많지만 치명적으로 그녀는 글을 읽지 못한다. 글을 읽지 못한다는 것은 무엇을 상징하는가? 책을 읽어주는 남자와 듣는 여자, 영화 속 장면은 행복한데 나는 왜 이 대목에서 슬픈가? 책은 마치 또 하나의 권력처럼 느껴진다. 아름답고 연륜있는 그녀가 갖지 못한 능력, 훨씬 어린 남자는 그것을 갖고 있음으로써 그녀와 동등해지거나 오히려 우위에 서게 되는 것처럼 보인다. 결국 세상의 기준에 꼭 맞게 보이지 않는 그들의 관계는 적절한 시점에 그녀가 떠남으로써 끝난듯하다. 그런데 그녀는 어느덧 유태인 수용소의 충실한 감시원이 되어 교회 안에서 타죽는 수많은 사람들을 내버려둔다. 감시 - 그것이 그녀의 임무였으므로. 정작 책임자도 아니면서 스스로 책임을 인정하고 유태인 학살의 주범으로 재판 과정에서 죄를 뒤집어쓰게 된다. 혼란스러워하는 그녀, 지켜보던 남자는 소리없이 절규한다. 그녀의 잘못은 무엇인가? 무지함 또는 무관심 - 그녀는 알려고 하지 않았다. 타인의 고통과 세상에 대해서. 그러나 그랬던 것은 그녀뿐만이 아니었음을 모두 알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피고인으로 법정에 선 그녀와 법대생으로 참관하는 그, 둘 사이의 거리는 참으로 멀게 느껴진다. 오랜 시간이 지난 후, 변호사가 된 그가 보내온 테이프를 통해 마침내 그녀는 스스로 글을 읽고 쓰게 된다. 그리고 수년만의 만남임에도 아직도 정의와 그녀에 대한 감정속에서 혼란스러워하는 그를 뒤로 하고, 그동안 둘 사이를 이어온 소중한 책들 위에 올라서서 자살하고 만다.

 

보고 나서도 가슴이 설레듯 아리듯 잠 못 이루는 영화가 있다. 오랜만에 만나는 바로 이런 영화 말이다. 왜일까? 감성적인 여자들이 흔히 그러듯 내게도 결핍된 지식에 대한 열등감으로서 지적인 허영심이 존재한다. 당연히 똑똑한 남자가 멋있어 보이는 것이다. 그러나 막상 잘난 척하는 꼴은 차마 못본다. 나를 넘어서는, 그러나 나를 뛰어넘지 않을 정도의 부드러운 지적 능력.. 얼마나 유치한 생각인가. 그렇게 부러우면 스스로 똑똑해지면 그만인데 말이다. 도넘게 천재수준을 원하지 않는 한 따지고 보면 아주 불가능한 일도 아닌 것을ㅋ 하여튼 현실에서든 영화에서든 순진하고 감성적이고 아름다운 여자와 지적이고 멋진 남자의 공식은 아주 질릴 지경이다. 실제로 사제간도 아닌데 언제어디서든 친절하게 설명해주고 싶어하는 남자들과 당연하듯 질문해대는 여자들, 그 틈에서 내 어중간한 감수성과 지식은 늘 밀리게 마련이다. 그럼 나는 어느 쪽일까? 책을 읽어주는또는 듣는 - 물론 어중간하다 그러나 사실 둘 다이고 싶다. 어느 한쪽이든 일방적이지 않고 서로가 좋아하는 책을 함께 읽어 주고, 듣고 싶다. 같은 여자들끼리도 좋지만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더욱 신나겠지. 아, 언젠가 나도 영화의 한 장면처럼 사랑하는 그와 함께 책 읽을 수 있기를.. 그때 이 영화도 다시 봐야지. 물론 그이와 같이ㅋ

 

영화속 그녀는 너무 아름답고 슬프다. 그녀는 살아서 더 많은 책을 읽고,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더 많이 사랑했어야 했다. 용서는 그렇게 구해야 한다. 죽음은 결국 아무것도 아니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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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6/18

촛불 논쟁을 힐끔거리다 문득...

그래서 촛불OO(항쟁 or 시위 or 문화제, 뭐든간에...)의 한계와 문제점을 발견한

그 이름이 여러 글에 간간히 인용되어 나오는 우리 훌륭한 지식인들이 (비꼬는 말이 아니다. 지식의 깊이에선 글이라고 써봤자 일기나 편지정도인 나같은 일반인이 따라갈 수가 없는 사람들이니까. 항상 열심히 말을 생산하는 그들한테 덕본다는 느낌이 있다.)

촛불이 문제를 극복할 수 있도록 어떤 개입을 했는가? 하는 궁금증이 솟는다.

 

중간계급의 한계, 신자유주의와 자본주의에 정면으로 맞서지 못한거, 민족주의로 흐른거 등등... 읽다보면 촛불이 넘어서지 못한 문제 내지는 태생적인 한계(혹은 특성)이 많다.

특히 요즘은 왠지 작년보다 뒤로간 것 같아 괜히 걱정이다.

 

그런데 그런 얘기를 하시는 분들이 자기 블로그나 촛불들이 거의 보지 않는 매체 말고

작년에 촛불들이 신나게 놀던 아고라에 촛불이 극복해야 할 점에 대한 자기 생각을 한번도 안올려보신 건 아니겠지..? 설득력 있는 글을 쓰는게 그분들 특기니까, 천천히 '잘' 하면 일반인들한테도 먹힐텐데.

 

설마... 자기의 글발을 과소평가해서.....

혹은 일반인들이 알아듣기에는 너무 어려운 얘기라서,

또는 베스트에 안올라갈까봐 두려워서(베스트 등극 자꾸 좌절되면 은근 맘에 상처입는다.)

아니면 원래 놀던 데가 아니라 낯설어서,

악.... 아니면.... 용어를 일일히 풀어서 말해줘야 하는 애들이랑 말 섞기 싫어서...... (이건 의학용어를 일일히 설명해줘야 한다는 이유로 환자랑 말하기 싫어하고 동료의사랑만 얘기하는 의사 - 얼마나 끔찍한가?-랑 비슷한 이미지잖아)

한번도 안써본 건 아닐거다.

 

아마도

촛불의 여론과 흐름을 바꿔보려고 글도 올리고 했는데도

일반인들이 알아듣기에는 너무 어려운 얘기라서,

또 아고라에선 유명인사가 아니라서

그래서 글이 베스트에 안올라가니까 눈에 안띄어서,

또 내가 24시간 아고라에 죽치진 않았으니까 (뭐 그 비슷하긴 했지만...ㅋ)

내가 그분들 글을 못본걸거다.

 

그분들의 다음아이디를 모르니 검색해 볼 길도 없으면서

근거 없는 의심으로 괜한 사람들을 매도하려 하다니! 나 나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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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 전문시위꾼

힘내자...

지겨워...

모두가 애써 견디고 있는 지겨움과 수면부족.

우리는 우리 자신의 삶을 학대하고 있는 것 같다.

청춘의 한복판에서 황폐해져가는 정신을 가까스로 붙잡고 있는 우리들.

 

 

 

움직이자. 이 지겨움과 우울이 다 털려나가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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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0 광화문-시청, 이어서...

(http://blog.jinbo.net/camusian/?pid=71  에 이어서...)

 

아저씨는 눈을 꼭 감고 신음하고 있었다. 아저씨를 데리고 온 사람들이 말하길 캡사이신 스프레이를 정면으로 맞았단다. 난 아저씨를 붙잡아 시청광장에 세워놓은 정체불명의 설치물 (아무래도 오세훈이 바리케이드 대신 세워놓은거 같아...ㅡ,.ㅡ)에 기대어 앉힌 후 물을 찾았다. 마침 옆에 음료수와 닭꼬치를 파는 아저씨가 있어서 부상자가 있는데 물이 필요하다고 했더니 얼은 생수 한병을 꺼내주신다. (ㅡㅡ;;; 섭씨 0도 이하의.....)

그걸로 아저씨 얼굴에 묻은 캡사이신을 먼저 닦아드리고, irrigation을 하는데 마침 누가 의료봉사단을 한분 데리고 왔다. 그분이 일회용 식염수를 꺼내는데 무전이 울린다. 4번출구에 추락 환자가 있는데 두피 열상이 있다고 한다. 중환일 것 같아서 '저 인턴인데요 이 환자 제가 봐드릴게요' 했더니 식염수를 주고 그쪽으로 후다닥 뛰어가신다.

 

응급실에서 하던대로 (line에 연결된 식염수 대신 얼음 생수를 졸졸 붓는 것이 다르긴 하지만, ;;) 계속 씻어내자 아저씨가 눈을 뜰 수있게 되었다. 주위에는 기자도 있고, 아저씨 뒤에 서 있는 바람에 캡사이신을 피한 여자분이 연신 불빛을 비춰주고 있었다. (핸드폰 불빛이었던 것 같다) 아저씨는 '고마워요' '미안해요'를 계속 반복하신다. 나도 '뭐가 고마워요' '뭐가 미안해요' 하고 매번 대꾸하다가 '저놈들이 미안해야지!' 하는 생각이 들어서 아저씨 대신 주절주절 경찰들 욕을 했다.  아저씨가 '아이구 그래도 이렇게 봉사하러 나오시니 얼마나 고마워요..' 하시길래  '아저씨 저 봉사하러 나온거 아니에요. 시위하러 나왔어요. 그리고 시위하는 분들이 봉사하러 나오는 분들보다 더 고마운 분들이에요.'  했다.

아저씨는 눈을 깜빡깜빡 하시더니 신이 나서, '어, 이제 괜찮다! 이제 이길 수 있겠어~!' 하신다. (참 성격도 밝으시지... ㅡㅡ;; 경찰 욕 한번 안하시고 ㅋ) 아저씨한테 얼음물 때문에 추우시니까 젖은 옷부터 말리시라고 신신당부를 하는데 들은건지 못들은건지 아저씨는 연신, 이제 이길수 있을 것 같다는 말을 하시며 인파 속으로 들어가신다.

아저씨가 가시고, 주변에 모여있던 사람들과 서로 조심하시라고 인사를 하고 헤어졌다.

 

캡사이신은, 일단 맞으면 씻어내야한다. 얼음물이라도...

엇... 그러고 보니 물값 안드렸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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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고라펌] 똘똘한 명박이

http://bbs1.agora.media.daum.net/gaia/do/debate/read?bbsId=D003&articleId=2739777

 

 

 

 

<글·윤무영 | 그림·김용민>

 

 

선생님 : 여러분, 일제고사 성적이 나왔어요. 면박이 학생, 나와서 성적표 받아가세요.

면박 : 제 성적은요, 잘 나왔기 때문에 선생님이 그냥 불러줘도 될 것 같아요.

선생님 : 그럼, 부를게요. 면박이 학생, 도덕은 빵점.

면박 : 성적만 좋으면 됐지, 도덕 점수가 뭐가 중요해요?

선생님 : 수학 20점

면박 : 그건 옆집에 사는 미국이 때문에 그래요.

선생님 : 자연은!

면박 : 그건 내가 잘 하는 과목인데. 저는 녹색을 좋아해요.

선생님 : 자연은 빵점. 그리고 사회는 20점.

면박 : 제가요, 그래도 다른 애보다는 성적이 좋잖아요. 저기 저쪽에 앉은 애. 어! 오늘 결석했네. 공부를 못하는 애들이 날씨가 좋으면 꼭 결석을 해요.

선생님 : 너가 만날 비교하던 그 학생은 전학갔어요. 이제 그 학생하고 비교하지 마세요. 안 그래도 그 학생이 전학갈 때 성적표를 떼어보니 면박이 학생보다 훨씬 나았어요.

면박 : 어, 그러면 이제 비교할 대상이 없네.

선생님 : 저기 구석에 있는 학생 있잖아요. 공삼이. 수학 성적이 빵점이라 면박이 학생보다는 약간 뒤떨어지잖아요. 그래도 성적은 안 올라도 매번 출석하는 정성은 알아줄 만해요. 어디든지 안 끼는 데가 없어요.


 

 


 

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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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0 광화문 (이어서)

( http://blog.jinbo.net/camusian/?pid=70  에 이어서...)

 

작년 7,8월달만 해도 이런 막진압 상황에서 순간적인 갈등을 겪었더랬다.

도망가다 넘어진 사람, 그냥 두면 깔리고 밟힐건데 그냥 두고 도망가?

경찰한테 맞고있는 사람, 그냥 두고 도망가?

잡혀서 끌려가는 사람, 그냥 두고 도망가?

 

아니면 달려들어서 내가 맞고 잡히고 끌려가는 한이 있더라도

저 모르는 사람과 함께 맞서야 하나.

 

처음엔 그 갈등은 내 정체성과 자존감을 흔들 정도로 크게 다가왔던 것 같다.

그런데 한번 극복하고 나니까 이젠 그런 갈등의 과정이 거의 생략되어 버린다.

그런 장면을 보고도 아무 행동 하지 않는 것이 그 부당한 폭력을 용납하는 일이라는 생각에

그 것에 말로만 분노하고 몸으로 분노하지 않는 것이 너무 비겁하게 느껴져서,

도망가고 나면 자신이 너무 창피하고 미워서, 다음번 시위에 나가 맞고 끌려가는 시위대 한명을 구출해 내 스스로 그 한계를 넘은 것을 확인 할 때까지 괴로워해야된다는 걸 알기 때문에

조건반사적으로 몸을 날리게 된다. (파블로프의 멍멍이처럼)

 

그러다 몇번 다치고 노트북도 부서지고 그랬지...

 

 

ㅡㅡ

 

아.... 기억을 더듬다보니... 좀 불쌍하네...

 

 

암튼,  ;;;

 

 

그래서 도망치는 시위대 속에서 오히려 나는 '도망치라고' 자신을 타일러야 했다. 입으로 '오늘은 안돼'를 주문처럼 외우면서, 뒤에서 달려드는 체포조와 전경이 하는 짓거리를 안보려고 노력하며, 군중에 밀려 넘어지지 않으려고 애쓰며 앞으로 나아갔다.

 

그런데...

그러다가

신발 한짝이 벗겨졌다.

 

발이 너무 커서 항상 작은 신발땜에 물집이 생기는 나한테

편하게 맞는 유일한 나의 직장용 신발...

 

'앗,  신    발     이     벗    겨    졌      구      나     !! '

하는 사실을 깨닫고서도 멈추지 못하고 15m 정도를 더 도망가다가

뒤를 돌아 눈으로 도로를 훑었다. 신발이 안보인다.

이 신발... 꼭 찾아야하나?

신발찾다 얻어터지거나 끌려가면 좀 웃기잖아.

그렇지만....... 찾아야해.....

더 이상 저것들한테 내 물건들을 잃을 수 없어~!

(전사한 바이오가 떠오르더니 간이 급속히 부어버렸다...)

 

닌자거북 견찰들이 사람들을 끌고가고 쥐어패면서 점점 다가오고, 가장 후미에 있던 시위대 몇명이 내 뒤로 뛰어가는 길에서 나는 신발을 찾으러 역주행을 했다. (10미터(씩이나). ㅎㅎ)

바닥에 널부러진 주인 잃은 물건들 사이에 있는 신발 몇개 중에 내 신발을 발견했다.

경찰들이 '벽'을 만들어 다가오고 있어서 서두르지 않으면 내 신발이 그 벽 뒤로 사라지게 생긴거다.

그런데 경찰의 땅따먹기에서 내 신발이 넘어가고 나면 그 다음은 내차례거든......

난 더 다가가지 못하고 신발 앞 5m 지점에 멈추고 말았다.

그리고,

손가락을 쭉 뻗어 아스팔트 위의 신발을 가리킨 채 어떤 전경애를 쳐다보고 그냥 서있었다.

내 몸짓을 알아들을 만큼 제정신이기를,  나한테 방패질 실습을 하지 않기를 바라면서...

다행이 그녀석은 내가 가리키는 쪽을 돌아보더니 내 왼발이 맨발인 것을 본다.

그러더니 내 신을 주워다 준다. (그 옆에 있는 놈을 쳐다보고 서있지 않은 것이 다행이다. 그놈은 곧 시위대 한명을 쫓아가서 곤봉질을 했다. )

그 신발을 신고 인도로 올라갔다.

내가 떨고 있는게 느껴졌다.

 

내가 시위대 앞쪽으로 가던 걸 본 일행들한테 전화가 왔었길래

나 괜찮다고 알려주고 있는데,

사람들이 눈을 감고 괴로워하는 아저씨 한명을 부축해 오면서

의료진을 찾고 있었다.

 

나머지는 갔다와서 또 이어서 써야징... ㅋ ㅡㅡ; 이거 몇일에 걸쳐 쓰는거야....

 

http://blog.jinbo.net/camusian/?pid=73 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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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0 시청-광화문

24시간 x 6일 근무지만 말이다,

요즘은 꽤 한가한 편이다.

일만 빨리 끝내놓으면 숙소에 들어와 쉴 수 있는 시간이 꽤 길다.

쉬다가 갑자기 call 이 오면 나가서 일하는데, 어제는 유난히도 없어서 계속 숙소에서 아프리카로 시청광장 scene을 틀어놓고 헤드폰을 끼고 엉덩이만 들썩들썩거리고 있었더니 내 룸메이트가

"야, 너 죽을 것 같다. 그러다 마우스 잡은 채로 굳어버릴 것 같애. 삐삐 나한테 맡기고 어디 좀 나갔다 와. "

 

친구야 ㅜ.ㅜ 고맙다.

 

나는 급히 컴퓨터를 로그아웃하고  병동에 가서 콜이 올만한 일을 찾아서 다 해치운 후 ("인턴 할 일 있어요? 또 있어요? 이게 다예요? 이제 없죠,  없죠?') 데일리까지 만들고 삐삐를 맡기고,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핸드폰을 부여잡고 시청으로 출발했다. (다행히 그 사이에 콜이 딱 하나 왔는데, 그것도 이미 해놓은걸 모르고 콜한거였다. Yes!!  하나님, 감사합니다. ㅜ.ㅜ)

 

시청역 출입구를 막았을까봐 종각에 내려서 걸어간 시청은 사람들이 광장에서 넘쳐 흘러 도로까지 나와있는 상태였다. 경찰은 청와대쪽으로 난 길을 한사람 지나갈 길 빼곤 다 막아버리고, 사무라이조가 휘두르던 장봉을 등에 빗겨메고 도열해 앉아서 대기하기도 하고, 갖가지 볼거리(혹은 못볼꼴)를 제공하고 있었다.

 

'대통령 사과' 라는 따라하기도 낯부끄러운 구호에다가 뒤에는 잘 들리지도 않은 각종 '발언' 과 '공연' 이 끝나고 (이해 안가는 건 아니지만... 마음속에는 배경음으로 '꺼져줄래?'가 흐르고 있었다는...) 삼사백명의 사람들이 세종로에 나가서 경찰과 대치하고 있었다. 나는 그 때 밥먹고 시청광장을 가로질러 그쪽으로 합류하려던 차였는데, 시청 뒤쪽에 진치고 있던 경찰이 떼거지로 우리 뒤를 따라오는거다.

' 어, 얘네 뒤에서 칠려나보다'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불안한 눈으로 그들을 바라보고 있는데, 앞에서 무아지경으로 경찰과 대치중인 시위대는 전혀 모르고 당하게 생긴거다. 그래서 난 또 '익명성'의 철가면을 쓰고 인파를 헤치고 앞으로 나가며 '뒤에서 치려고 준비중이예요' 를 외쳤다. 사람들은 '경찰 들어온대' 하는 말을 서로 퍼뜨리며 서서히 뒤로 빠지기 시작했다.

그런데 내가 전경과 시위대의 대치선에 채 다다르기도 전에, 사람들이 으악 소리를 지르며 뒤돌아 뛰기 시작하는거다. 나는 앞으로 가던 터라 갑자기 벙 쪄서 거의 경찰 손에 잡힐 뻔 했다가 벗어났다.

그런데 이것들이 달려드는 기세가 진짜 열흘 굶긴 개떼같은거다. 그냥 인도로 올리려고 그러는게 아니라, 잡아 족치는게 목적인 듯 했다. 

 

(여기까지 쓰고 콜받고 병동올라갔다가 이 뒤는 6.12 에 이어서 씀)

 

나도 참 요 일년 시위에 많이 나오고 대치상황에 나대기도 많이 했나보다.

뒤돌아 뛰는 사람들에 밀리면서, 더 빨리 뛰고 싶은 사람들에 밀쳐지면서, 아... 참 익숙하다.... 하는 생각이 드는거다. 사람들은 서로 엉켜 넘어지고, 넘어진 사람에 걸려 넘어지는 사람에 걸려 넘어지고 있었다. 나는 한두명 손을 잡아 일으키다가 이미 경찰들이 내 '앞에' 있다는 걸 깨닫고 화들짝 정신이 들었다.

'아... 오늘은 잡히면 안되지...'

'오늘부터 2박 3일 닭차투어를 하면, 나는 '근무지 이탈하고 불법시위하다 잡혀가서 2박3일 근무 빵꾸낸 인턴' 이 되는거다. 이 문장이 가진 '안주'로서의 매력은 어마어마한 거다. 항상 스캔들과 루머에 목마른 선생님들과, 이런 루머의 교류에 있어서는 그들과 공생관계에 있는 병원 직원들에게까지 퍼질 것이다. 게다가  이바닥이 워낙 좁고 뻔해서, 다른 병원에도... 아마 앞으로 나는 이 꼬리표를 달고 살아야 될지도 모른다. 시위하다 연행된거 소문나는 건 괜찮다. 하지만 근무시간에 나갔다는 건 스스로도 할 말이 없잖아. 소문이 나도 떳떳하게 나야지. 오늘은 안돼.'

 

(여기까지 쓰고 이 뒤는 6.13 이어서 씀 http://blog.jinbo.net/camusian/?pid=7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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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 &quot;이것은 사람의 말&quot; 6.9 작가선언

시국 선언문이 쏟아져 나오고 있는 가운데,

내가 본 것 중 가장 아름다운 시국선언문.

탄압받는 인간성과 감성들의 저항, 그 전방에 선 문학에 감사하며.... 펌.


제가 말한 건 요거였어요~ 젊은 작가들의 선언문! ^-^

시국선언문의 최고봉이라고 감히 아뢰옵니다. 녜.

 

 

 

 

 

이것은 사람의 말 - 작가 188인 ‘6.9 작가선언’

(* 강조는 그라쪼 ^-^)


작가들이 모여 말한다.

우리의 이념은 사람이고 우리의 배후는 문학이며 우리의 무기는 문장이다.

우리는 다만 견딜 수 없어서 모였다.

모든 눈물은 똑같이 진하고 모든 피는 똑같이 붉고 모든 목숨은 똑같이 존엄한 것이다. 그러나 권력자와 그 하수인들은 극소수 특권층의 이익을 위해 절대 다수 국민의 눈물과 피와 목숨을 기꺼이 제물로 바치려 한다. 우리는 지금 대한민국 국민이라는 사실이 수치스럽고 고통스럽다. 본래 문학은 한계를 알지 못한다. 상대적 자유가 아니라 절대적 자유를 꿈꾼다. 어떤 사회 체제 안에서도 그 가두리를 답답해하면서 탈주와 월경을 꿈꾸는 것이 문학이다. 그러나 문학 본연의 정신을 되새기는 것이 차라리 사치가 되어버린 시대를 우리는 살아가고 있다. 우리는 다급한 마음으로 1987년 6월을 떠올린다.

박종철의 죽음이 앞에 있었고 이한열의 죽음이 뒤에 있었다. 그 죽음들의 대가로 민주주의를 쟁취했고 힘겹게 그것을 가꿔왔다. 우리에게는 이 모든 것을 기억해야 할 의무가 있다. 아니다. 우리에게는 이 모든 것을 망각할 권리가 없다. 이명박 정권 1년 만에 대한민국은 1987년 이전으로 후퇴해버렸기 때문이다. 그래서 각자가 하나의 정부인 작가들이 이 자리에 모였다. 조직도, 집행부도, 정강도 없다.

우리는 특정한 이념에 기대어 발언하지 않는다. 이명박 정부가 아무런 이념도 갖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들이 내세운 ‘중도실용주의’라는 가짜 이념은 집권 1년도 못 돼 폐기해야 할 대상이 되어버렸다. 우리는 도처에서 헌법 위에 군림하는 독재의 얼굴을 본다.

용산 철거민들의 생존권을 짓밟는 와중에 여섯 명의 무고한 목숨을 앗아가고도 이명박 정부는 끝내 사죄하지 않았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강행하여 국민적 저항에 직면했지만 저들이 행한 일은 위선적인 사과와 광범위한 탄압이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언론 장악을 기도했고 도심 광장과 사이버 광장에 차벽을 치고 철조망을 세웠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 한국예술종합학교 사태는 이 정부가 시대착오적인 색깔론과 천박한 관료주의로 문화예술의 토대를 위협하고 있음을 극명하게 보여주었다. 전직 대통령을 겨냥한 사상 최악의 표적수사와 비열한 여론몰이는 그를 벼랑에서 투신하게 하였다. 민주주의의 가치는 매장되었다.

이 모든 일에 적극 가담한 정치검찰과 수구언론을 우리는 민주주의의 조종(弔鐘)을 울린 종지기들로 고발한다. 살아있는 권력에는 굴종하고 죽은 권력에는 군림하면서 영혼을 팔고 정의를 내던진 정치검찰들, 증오와 저주의 저널리즘으로 민주화의 역사를 모독하고 민주주의의 가치들을 조롱하는 수구언론에 우리는 분노한다.

우리가 저들과 같은 모국어를 사용하고 있다는 사실에 참혹해진다. 저들을 여전히 검찰과 언론이라고 불러야 하나. 곰팡이가 온 집을 뒤덮었다면 그것은 곰팡이가 슨 집이 아니라 집처럼 보이는 곰팡이일 뿐이다. 저 권력의 몸종들과 함께 민주주의의 일반 원리와 보편 가치를 무자비하게 짓밟으면서 달려온 이명박 정권 1년은 이토록 참담하다.

오늘날 대한민국의 권력자와 그 하수인들에게서 우리는 깊은 절망을 느낀다. 저들은 수치를 모르고 슬픔을 모른다. 수치와 슬픔을 아는 것이 사람이고, 사람됨이라는 가치에 헌신하는 것이 문학이다. 우리는 문학의 이름으로 이명박 정부를 규탄한다.

이곳은 아우슈비츠다. 민주주의의 아우슈비츠, 인권의 아우슈비츠, 상상력의 아우슈비츠. 이것은 과장인가? 그러나 문학은 한 사회의 가장 예민한 살갗이어서 가장 먼저 상처입고 가장 빨리 아파한다. 문학의 과장은 불길한 예언이자 다급한 신호일 수 있다.

아우슈비츠의 생존자 프리모 레비는 이렇게 적었다. “우리가 노예일지라도, 아무런 권리도 없을지라도, 갖은 수모를 겪고 죽을 것이 확실할지라도, 우리에게 한 가지 능력만은 남아 있다. 바로 그들에게 동의하지 않는 것이다.”

과연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다면 그래야만 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아직 종이와 펜이 있다. 그러니 동의하지 않는 것에서 멈추지 않고 끝내 저항할 것이다. 민주주의의 정원을 갈아엎고 있는 눈먼 불도저를 향해, 머리도 영혼도 심장도 없는 권력자와 그 하수인들에게 저항할 것이다.

가장 뜨거운 한 줄의 문장으로, 가장 힘센 한 문장의 모국어로 말할 것이다. 사람의 말을, 사람만이 할 수 있고 사람이니까 해야 하며 사람인 한 멈출 수 없는 그 말을. 아름답고 정의로운 모든 문학의 마지막 말, 그 말을.

 


우리는 작가입니다.
우리는 각자의 말을 합니다.
우리는 각자의 글을 씁니다.
우리는 각자의 나라를 가졌습니다.

하지만 우리에겐 공통점이 있습니다.
우리가 쓰는 글의 바탕에 언제나 인간이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념이 아니라 사람의 편에 섭니다.


우리는 모였습니다.
참혹한 오늘을 불러온 것도 우리이지만
참다운 내일을 만드는 이도 우리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정권의 야만에 분노합니다.
사람의 설 자리가 사라진 현실에 분노합니다.

우리는 보고 싶습니다.
이견을 두려워하지 않고 국민과 소통할 줄 아는 정치가의 얼굴을.
우리는 듣고 싶습니다.
아첨과 왜곡의 목소리가 아니라 공정하고 진실된 언론의 발언을.
우리는 느끼고 싶습니다.
이 땅의 주인은 국민이며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확신과 자부를.
우리는 되찾고 싶습니다.
본래 우리 것인 광장과 집과 대지, 스스로 흘러 생명일 수 있는 강물을.
우리는 꿈꾸고 싶습니다.
그 어떤 권력에 의해서도 사람이 죽어나가지 않는 사회,
양심과 이성이 죄가 되지 않는 세상,
자유와 평등은 원래 사람의 것이라 믿고 자라날 수 있는 아이들의 미래를.


우리는 입을 엽니다.
이것은 사람의 말입니다.

 

 

‘한줄선언’ 참가자 명단

강경희 강성은 강 진 고나리 고명철 고봉준 고인환 고찬규 곽은영 구효서 권 온 권혁웅 권현형 권희철 김경인 김경주 김경후 김 근 김나영 김남극 김남혁 김대성 김명기 김미월 김미정 김민정 김사과 김사람 김사이 김 산 김선재 김성중 김소연 김 안 김양선 김애란 김 언 김연수 김요일 김윤환 김이강 김이은 김이정 김자흔 김재영 김정남 김정란(소설가) 김지녀 김지선 남상순 맹문재 명지현 문동만 문혜진 박대현 박민규(시인) 박 상 박상수 박성원 박수연 박슬기 박시하 박연준 박정석 박창범 박형서 복도훈 박형숙 박형준 박혜상 방현희 배영옥 백가흠 백지은 서성란 서안나 서영식 서영인 서효인 서희원 성기완 손세실리아 손홍규 송기영 송승환 송종원 신용목 신해욱 신형철 신혜진 심보선 안상학 양윤의 양진오 여태천 오창은 우대식 원종국 원종찬 유용주 유정이 유형진 유홍준 윤성희 윤예영 윤이형 윤지영 이경재 이기성 이기호 이덕규 이도연 이동욱 이만교 이문재 이민하 이선우 이성미 이성혁 이순원 이시영 이신조 이 안 이영광 이영주 이용임 이용헌 이은림 이장욱 이진희 이 찬(평론가) 이현승 이현우(로쟈) 이혜경 이혜미 임수현 임영봉 임지연 장무령 전도현 전성욱 전성태 전형철 정여울 정영효 정우영 정은경 정주아 정한아(시인) 정혜경 정홍수 조강석 조동범 조성면 조연정 조연호 조용숙 조원규 조 윤 조 정 조해진 조형래 조효원 주영중 진은영 차미령 채 은 천운영 천수호 최성각 최진영 최창근 하성란 하재연 한세정 한용국 한지혜 함기석 함돈균 해이수 허병식 허윤진 허 정 홍기돈 홍준희 황광수 황규관 황호덕 총1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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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 ‘촛불논쟁’ 초간단 정리

http://blog.naver.com/non_organ/70047340582

 

아놔... ㅋㅋ 디씨인싸이드 말투는 모든것을 녹여버린다..... ㅡ,.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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