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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04/12/23
    좋아한다면 잠시 기다리자.(2)
    푸른 솔
  2. 2004/12/06
    한 해를 보내며.(2)
    푸른 솔
  3. 2004/11/28
    아버지와의 대화(1)
    푸른 솔
  4. 2004/11/25
    사소한 것이 삶이다.(2)
    푸른 솔
  5. 2004/11/16
    일의 순서
    푸른 솔
  6. 2004/11/16
    사람이 꽃보다 아름답다고 느껴질 때(3)
    푸른 솔
  7. 2004/11/03
    신념과 로또(3)
    푸른 솔
  8. 2004/09/28
    어느 비혼자들의 추석(2)
    푸른 솔
  9. 2004/09/17
    이름때문에..
    푸른 솔
  10. 2004/09/17
    육지로 나온 인어공주
    푸른 솔

좋아한다면 잠시 기다리자.

한달동안 술을 안마시겠다고 선언하고 열흘이 지났다. 1년가야 몇번 안마시는 분들도 계시겠지만(체질적으로 못 마시는 분들은 일단 논외!) 유난히 모임이 많은 연말을 택해 술을 안마시겠다고 결심한 것이 스스로 대견할 뿐이다. 왜냐하면 우리 아버지 말을 빌리면 내 사주에 '술'이 들어 있을 정도로 나는 '술'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버지는 내게 충고하시길 "너는 술을 지고는 못가고 먹고는 가는 사람이니 조심, 또 조심하거라~")


뭐 여러가지 이유를 대는 사람들이 있겠지만 나는 일단 '술'이 좋다. 물론 좋은 사람과 함께 하는 술자리는 더욱 즐겁지만 그것이 아니어도 '술'을 마시는 일은 나에겐 일종의 휴식이다. 지루한 것, 반복되는 일을 싫어하기에 술도 가능한 다양한 종류를 맛보기를 좋아한다. 그러다가 최근에는 나의 경제적 상황과 입맛을 동시에 만족시키는 술을 발견하였는데 대한민국 국민술인 "소주"가 그것이다. 문제는 이놈의 술은 정말 만원짜리 한장만 있어도 어디서나 일단 자리를 펼 수 있는 까닭에(요즘 안주값이 장난 아니어서 일반적인 술집은 만원은 있어야 들어갈 수 있는 것 같다.) 술을 먹는 횟수와 양이 점점 늘어나는 거다. 그러다보면 남들이 20대 초반에나 저질렀을법 한 무용담이 이 나이에도 생기고..... 무용담이 계속되다보면 어느새 망신담으로 전개될 위험도 커진다.-_-; 거기까지 가기전에 자신을 얼마나 컨트롤 할 수 있는지 시험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술만이 아니라 사람을 좋아하는 마음도 그런 것 같다. 좋다고 너무 매달리면 언젠가는 서로에게 상처만 남는다. 적당히 간격을 두고 뜨거웠다고 잠시 숨도 돌렸다가 은근히 쳐다보다가.. 그래야 오래가지, 지나치게 빠져서 정신을 못 차리면 조금만 안보여도 조금만 다른데 관심을 돌려도 '왜 나를 안봐주나?' 원망이 솔솔 피어오르고 그러면 관계는 끝나기 마련이다. 일도 그런 것 같다. 물론 지구력이 강한 사람이라면 오래도록 마냥 열심히 일할 수도 있겠지만 나같은 범인이야 어디 그런가? 신이 나서 시작했던 일도 하다보면 지치고 힘든 순간도 오고, 내가 좋아라 일한만큼 성과가 안나오면 실망하고 자책하고.. 그럴땐 잠시 한 호흡 가다듬는 쉼이 필요하다. 정신없이 달리다 제때 멈추지 못해 지쳐 주저앉는 쉼이 아니라 더욱 힘차게 달리기 위한 그런 쉼이 있었으면 좋겠다. 좋아한다고 좋아하는 양대로 마시다가 술도 나도 원망하게 되기전에 잠시 쉬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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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해를 보내며.

참 많은 일들이 있었다.

개인적으로도 그렇고 조직적으로도 그렇고

연초에 어머니가 고협압으로 쓰러진 후

부모님도 역시 세월을 비켜가지는 않는구나 새삼 느끼고

대학원 마지막 학기를 포기하면서

나에게 학력이란, 공부란 어떤 의미여야 하는가 생각해 보는 시간도 가지고 

보육교사회에서는 드디어 보육노조를 만들고

나이 마흔이 얼마남지 않은 상황에서

새로운 일을 시작한다는 셀럼, 기대와 걱정이 모두 들고..

 

머리로만 알았던 세상을

몸으로 느껴볼 기회를 가진다는 건 내 인생의 행운이라는 생각도 들지만

예전같지 않은 체력과 나이먹음으로 오는 삶에 대한 책임은 갈수록 만만하지가 않다.

 

친구들과  만나 이런저런 이야기도 나누고

서로에게 " 고생많지? 힘 내라! 한해동안 수고했다."  격려도 하고

아니, 그저 반가운 얼굴보고 숨이라도 돌려보면 좋겠구만

시간은 항상 부족할 따름이다.

 

 

모든 선거에서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문구는 '새로움'이다.

늘, 뭔가를 책임지겠다고 나서는 사람들은 그전과는 다르리라는 약속을 한다.

어찌보면 이건 우리 역사의 불행한 면일 수도 있다.

지나간 역사와 활동을 부정하고

다른 사람의 업적에 부정적 평가를 내리는 것이 자신을 드러내는 방식이라니...

우리가 온전히 믿음직한 역사와 사람을 갖지 못한 탓일 수도 있으나

그 안에는 나도 포함되어 있음을 기억하지 못하는 것일까?

성과와 한계, 과제는 늘 하나일 수밖에 없고

냉정한 평가가 의미있는 것은

수정을 통해 잘못을 반복하지 않겠다는 자기약속이기 때문이다.

 

물론

어떤 면에서 과거에 대한 집착이 새로운 길을 가는데 발목을 잡기도 한다.

특히 그것이 자기의 청춘의 증거였을 때는 더욱 그렇다.

 

계승과 발전, 한계극복, 혁신.. 언제나 듣는 말이지만 언제나 어렵다.

 

매년 연말이면 지난 일년을 돌아보며 평가회의를 한다.

사업의 목표와 방향은 무엇이었고

계획에 따라 진행한 것과 못한 것은 무엇이고

왜 그렇게 되었는지, 어떤 결과가 나타났는지?

그 결과는 사업의 목표에 부합하는 것이었는지 평가를 진행한다.

그리고 생각해본다.

나의 인생에서 이번 한해의 목표는 무엇이었는지? 어떤 성과와 과제를 남겼는지.

나에게 맡겨진 일을 성실히 수행하고 그걸 통해 세상과 동료들에게 조금쯤 도움이 되고자 했지만

성적표를 받아 든 아이처럼 걱정이다.

혹시, 더 할수 있었는데 쉽게 포기한 것은 없는지?

혹시, 그만했어야 했는데 과욕을 부린것은 없는지?

계획대로 되지 않은 많은 것들에 대한 아쉬움도 남는다.

이번 한해의 성적표가 내 남은 인생의 모든 것을 결정하지는 않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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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와의 대화

오늘 저녁을 먹으면서 드뎌 아버지에게 내가 무슨 일을 계획하고 있는지 말씀을 드렸다. 노동조합을 만들고 거기서 일을 하게 될 거라는 아주 간단한 정보만 이야기 하는데도 한시간이 걸렸다. 대충 노인네가 이해 못할 부분은 빼고 보육현장 민주화와 아동의 인권보장을 위해서 만든다고 했다. 쉽게 이야기해서 횡령, 정원초과 등 나쁜 짓 하는 원장들 긴장하라고 노동조합 만드는거라고 이야기했다. 우리 아버지 왈, '합리적이고 목적이 분명하면 되지 않겠니? 너를 믿는다.' 이 보수적인 양반이 왠일로 이리 순순히 노조활동을 인정한단 말인가? 잠시 감격했다. 그러나 뒤이어 하시는 말씀이... '뭐든지 대립각을 세울 생각만 하면 안된다. 한국노총 봐라 경영자랑 대화도 하고 합리적으로 하잖냐? 민주노총은 말도 안되는 요구나 하고, 도대체 이라크 파병이 노동자랑 무슨 상관이 있다고 노조에서 그런걸 요구하냐? 불그스럼해가지고..' 아버지 저도 불그스럼한대요? 그리고 세계적 견지에서 보면 이라크 파병문제가 노동자랑 상관있는 것 맞아요. 그게 아니더라도 노동자도 국민인데 거기에 대해 의견을 가질 수 있죠. '그럼 안되지. 노동조합은 기본적으로 노동법의 테두리안에서, 그게 허용하는 범위에서만 요구하는거야.' ....... 더 이야기 하다간 부녀간에 의가 상할 것 같아 정치적 견해는 다를 수 있으니 더이상 얘기하지 말죠.하고 이야기를 정리했다. (아버지 그 노동법이 잘못되었을때는 어떻게 하나요?)


우리 아버지는 우리 집안(친척들을 통틀어)에서 가장 강력한 여론 주도층이다. 많은 친척들이 아버지의 정치적 견해에 무한한 신뢰를 보내는데 아마도 자신들과 같은 견해를 가지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언젠가 한겨레신문에 나의 인터뷰 기사가 났는데 그걸 친척들에게 자랑하고 싶었지만 어느 친척도 그 신문을 보는 사람이 없어서 결국 신문을 사서 돌렸다. 어머니가 큰 집에 전화를 걸어서 한겨레신문좀 보라고 했더니, '우린 조선일보만 봐' 이래서 그게 아니고 우리딸 기사가 났다니까요. 설명해서 그 면만 보게 만들었다. 그때 우리집안 어른들, 평생 처음으로 한겨레 신문을 봤다. 심지어 어떤 친척분은 한겨레신문같은데 자꾸 오르내리면 안 좋으니 조심하라고 전화까지 했다. 이런 분위기에서도 최고 수위를 달리는 보수파가 우리 아버지다. 그런 양반이니, 노조활동이란 거의 미친 짓으로 보일 수밖에. 그래도 자식이 가는 길을 말릴 도리는 없고 자신이 생각하는 가장 합리적인 노조활동을 충고해주시는거다. 필요하면 사용주와 타협하라. 이게 우리 아버지가 내게 주는 세상을 살아가는 지혜의 충고였다. ------------- 우리 아버지는 평생 성실하게 일해 가족을 먹여 살리고 사소한 교통법규 위반도 안하는 분이다. 그러나 그렇게 일해서 돌아 온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한탄하신다. 그리고 그 원인을 요령껏 살지 못한 자신에게서 찾는다. 부동산, 주식, 무엇을 해도 손해만 봐 온 분이기에 자신이 답답하기도 하겠지. 그러나 노동을 통해 얻은 소득으로 제대로 삶을 영위할 수 없는 그런 사회가 문제인 것이지, 편법이 판치는 사회에서 편법을 쓰지 않아 늙으막까지 고생하는 자신을 한탄하는 것은 아무리봐도 이상하지 않느냐 말이다. 아버지의 성실한 삶이 제대로 대접받지 못하는 이 사회가 문제이고 그래서 그런 사회 자체를 바꾸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나의 임무라고 아무리 이야기해도 아버지에게는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분들이 살아왔던 시대에 저항은 늘 개인적 파멸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전두환 군사독재 초기에 이유도 없이 고모가 안기부에 끌려가서 1주일이나 생사를 알지 못해 애태운 경험을 가지고 있는 양반이 어째서 자신을 억압한 정권의 수하들에게 계속해서 투표하는지. (인질이 납치범에게 애정을 느끼는 스톡홀름 신드롬이 아닌가 말이다.) 앞으로 이 의식의 간극을 어떻게 메꿔나가야 할지, 어떻게 대화를 진행시켜야 할지, 진짜 고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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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소한 것이 삶이다.

<새벽의 집>이라는 책이 있다. / 보리출판사 1996년 펴냄

 

문영미(문동환목사님딸)라는 분이 쓴 책인데

1970년대 수도교회의 청년들이 중심이 되어

실험적으로 만든 공동체에서의 삶을 적은 글이다.

그때 글쓴이의 나이는 초등학생이었지만

서로 다른 사람들이 하나의 생활공동체 안에서 살아간다는 것이

어떤 즐거움과 어려움을 동시에 주는지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어서

참 재미있게 읽은 기억이 난다.

 

각자 능력껏 일하고 필요한만큼 가져다 쓰되

기본적인 의식주는 공동으로 해결하는

언뜻 원시공산제를 떠올리게 하는 생활.

 

초기 기독교공동체가 그러했듯이

개인과 가족이라는 울타리를 넘어서기 위한

여러가지 시도들이 공동체 안에서 이루어졌고

더러는 성공하고 더러는 실패한다.

1977년초에 공동체는 결국 해산되었지만

글을 읽으면서 나는 의미있는 실험이었다고 느꼈다.

 

한가지 인상깊게 남아 있는 것은

많은 갈등들이 아주 사소한 곳에서 시작된다는 것이다.

왜 누구는 치우지는 않고 어지르기만 하냐?

왜 정한 시간에 식사하지 않고 늑장을 부리느냐?

- - - -

 

따지고 보면

산다는 게 그런 것 같다.

거창한 이념이나 정의, 신념, 인류애 뭐 이런 것들을

'일상'에서 항상 기억하면서 사는 건 아닌거다.

당신과 나는 '동지'요! 를 아무리 외쳐도

매일 얼굴을 맞대고 한솥밥을 먹는 상황이 되면

상대방의 작은 버릇, 툭툭 내뱉는 말들,

대단하지는 않지만  하지않으면 안되는 일을 얼마나 성실히 하는지 등등이

상대를 평가하는데 더 유용한 잣대가 되곤 한다.

 

그래서 정말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혹은 어떻게 살고 싶은가?를 생각할때

일상에서의 나의 모습을 다시 평가하게 되는 것이다.

 

.....

 

그런데...

요즘...

정해진 근무시간안에 일을 끝내지 못하는 건,

능력부족인가?

일이 많은 건가?

아직까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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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의 순서

요즘들어 그런 생각이 든다. 시간은 한정되어 있으되 욕심을 내기로 치면 일은 한정이 없다. 그래서 어떤 일을 먼저 할지를 정하는 것이 중요해진다. 그것은 시간을 다투는 일일때도 있고 (대부분은 그 일이 가지는 무게보다 마감에 쫓기는 경우가 더 많지만-_-) 정말 전체 일정에서 시간을 들여 처리해야 되는 일도 있다. 그런데 사실 하루 하루를 보내다 보면 거의 대부분 일의 중요도보다는 시간에 맞춰 일을 하게 된다. 예를 들어 언제까지 보내야 되는 공문, 시간이 지나면 의미가 퇴색해버리는 보도자료 등. 사실 활동의 중심에서 무슨 내용을 잡고 갈 것인가에 대한 심도깊은 고민과 논의가 진행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일정에 밀려 제일 나중으로 내버려놓게 된다. 그러다가 정작 그것이 필요한 때에 내용을 만드느라 끙끙대고 결국 익지않은 술맛처럼 떨떠름한 무엇이 되어버린다. 이런 현상은 활동안에서만 벌어지는게 아니다. 내가 맡고 있는 직책이나 책임과 개인적 욕구(대부분은 휴식에 대한 욕구, 또는 사교생활에 대한 욕구)의 충돌은 하루이틀의 문제가 아니다. 대부분은 일이 우선하지만 가끔 없는 시간을 쪼개 개인적 욕구를 해결하고나면 이후에는 더 많은 일들이 쌓여버린다. 이 균형을 맞추는 일이 요즘 내겐 만만하지가 않다. 일 속에서도 그렇고, 대학원 수업은 거의 포기하고 결석을 밥먹듯 하지만 그렇다고 일이 결코 줄지 않는다. 물론 수업을 제대로 다 들어가고 교수가 요구하는 과제를 꼬박꼬박 제출할 정도로 시간을 투여한다면 지금과는 비교도 안되게 일이 쌓일것이다. 학벌 위주의 사회에서 그것에 저항하는 방법으로 대학원을 중도포기한다고 하면 그럴듯할까? 아, 능력의 문제인지, 시간의 문제인지, 의지의 문제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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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꽃보다 아름답다고 느껴질 때

내가 사람 복은 좀 많은 편이다. 성질이 더러워서 언제나 하고 싶은 말 턱턱 뱉고 여럿이 모이는 자리에서도 내 관심사만 주로 이야기 하고 다정하게 옆에 사람 챙기는 것도 잘 못하고 (그러면서 어떻게 보육교사를 했는지 쩝!) 그러면서도 남들이 나를 무시하면 못 참는다. 그래도 늘 주변 사람들이 나를 믿어주고 격려해주는 것이 어떨때는 신기하기도 하다. 물론 장점도 좀 있으니까 그렇겠지? ^^; 좌우지간 이번 노동자대회때 나름대로 감동받은 일이 있어서 혼자 간직하기엔 아까와서 몇자 적는다. 보육노조준비위 결성식을 마치고 노동자 대회에 참가해서 앉아 있는데 갑자기 누군가 아는 척을 한다. 내가 아는 사람 중에 노동자대회에서 만날만한 사람은 (보육노조관계자가 아니면)없는데... 쳐다보니 중학교 동창이다.


이 친구는 졸업할때까지 같은 학교라는 것도 모르고 살다가 동창 모임을 하면서 알게 되었는데 사실 얼굴 맞대고 본 것은 전체 모임에서 서너번이 고작이다. 게다가 무슨 수도생활을 한다고 근 일년 지방 모처 수도원에 있었기에(카톨릭) 정말 얼굴 볼일이 없었던 친구다. 얼마전 동창회 홈페이지에 내가 요즘 하는 일을 적었더니 그걸 보고 노동자대회라면 내가 나와 있을 줄 알고 일부러 보러왔단다. 그러더니 춥지 않아? 따뜻한 것 좀 사줄까? 이러는 거다. 얼결에 대회 중간에 잠시 나와 해장국을 먹었다. (이거 그날 참석자들이 보면 안되는데.-_-;) 나를 찾느라 대회장 앞쪽에서부터 한줄씩 훑어보면서 왔단다. 이런 고마울때가.. 예전에 빈민지역 공부방활동도 했었고 카톨릭공동체에서 운영하는 나눔공동체에서도 일했다는 이 친구, 이젠 우리 나이 생각해서 너무 무리하지 말고 일하라고 충고를 남기고는 밥 한그릇 사주고 갔다. 뜻밖의 장소에서 만난 중학교 동창. 반갑기도 하고 고맙기도 하고 공연히 콧잔등이 시큰해지고. 나와 특별히 친한 것도 아닌데 내가 무얼 해준것도 아닌데 그저 내가 하는 일의 정당성을 인정하고 격려해주기 위해 나온 그 친구를 보면서 아, 정말 이래서 사람이 꽃보다 아름답다고 하는구나. 보육노조준비위가 출범하면서 기쁘기도 하고 긴장되기도 하고 책임감도 느끼고.. 여러가지 감정이 많았던 노동자대회였지만 그러나 이번 노동자대회에서는 무엇보다 어깨 두들겨주고 간 그 친구가 제일 기억에 남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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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념과 로또

사람마다 자신의 신념이 있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이러저러한 것은 절대로 하면 안된다, 이러저러한 것은 반드시 해야 한다 등등. 사람마다 살아가면서 지키고 싶은 자기만의 원칙이 있을 것이다. 그게 양심일수도 있고... 좌우지간 신념에 반하는 행동을 했을때는 몹시 불편해진다. 나의 수많은 신념 가운데 하나는(신념이 많으면 사는데 피곤하다.-_-;) < 자기 힘으로 땀흘려 얻지 않은 것을 바라지 마라. 특히, 자본주의의 상업성이 만들어낸 '복권'은 인간의 노동가치에 대한 모욕이다. 고로 복권을 사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복권을 사지 않는다. 그런데 정말 어쩌다 복권을 살때가 있다. 여태까지 내가 산 복권의 총량은 전부 3만원을 넘지 않는다. 즉석복권은 2번, 인터넷 복권으로 만원, 로또는 딱 2번-오천원씩 두번이니 만원이다.- 사봤다. 누구처럼 좋은 꿈을 꿔서도 아니다. 다른 대부분의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돈이 필요한데 도무지 구할 방도가 없다고 느껴질 때 샀다. 물론, 한번도 당첨된 경험은 없다.


복권을 살때마다 마음이 몹시 불편하고 자기 혐오가 밀려온다. 신념을 지키지 못할 때가 그때뿐은 아닌데 유난히 복권을 사는 행위는 나를 불편하게 한다. 복권을 사지 않는다는 신념은 내가 생활속에서 나름대로 자본주의에 저항하는 방법이다. 일상적 저항이 원래 더 힘든 법이다. 그래서 다른 신념보다 더 선명하게 인식되나 보다. 돈의 가치를 알고 나서 20여년동안 이 정도면 신념을 지키고 산 편이다..라고 자신을 위로하고 싶지만 다른 신념을 어길때도 그런 변명을 할까봐 그렇게 생각하지도 못하겠다. 나의 어머니는 60이 넘는 평생에 단 한번도 복권을 사지 않으셨다. 그건 그 분의 신념이다. 반면에 아버지는 20여년동안 매주 복권을 사셨다. 거의 습관처럼. 완전히 다른 신념을 가졌지만 나름대로 그 신념에 충실한 삶을 사는 두 분의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면서도 나는 나의 신념을 제대로 지키지도 못하고 어쩡쩡하게 살고 있다. 지난주에 산 복권 역시 마음만 불편하게 하고 아무것으로도 당첨되지 못했다. 그런데 만약.. 당첨이 되었다면 그때도 신념 운운 할 수 있을까? 솔직히 100% 자신할 수 없다. 작은 신념하나를 배반하고 지금 많은 사람들에게 필요한 보상을 얻게된다면 그 배반을 합리화하려고 하지 않을까? 만약, 복권이라는 불확실성이 아니라 어떤 보상이 주어질 것이라는 확신이 있다면 나는 얼마나 그 신념을 지켜 낼 수 있을까? 아마, 신념을 배반해서 올 결과와 보상 사이를 저울질 할지도 모른다. 그 신념이 '복권을 사지 않는다'정도가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 큰 영향을 주는 것이라면 이런 저울질 자체가 얼마나 위험한가? 그리고 작은 신념 하나를 지켜내지 못하면서 그보다 큰 무게를 어떻게 감당할 수 있을 것인가? 일확천금의 환상으로 자본주의 모순을 은폐하려는 적들의 술수에 넘어가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면서 나는 다시 한번 자기를 긴장시킨다. 아, 진짜 다시는 복권 사지 말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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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비혼자들의 추석

어제 모처럼 식구들이 한자리에 모였습니다. 저희집 식구는 모두 여섯,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사남매입니다. 그냥 이렇게만 보면 여느 평범한 집과 다를 것이 없어 보입니다만.. 문제는 그 사남매가 한명만 빼고 다 30대에 모두 독신 가구주라는 거지요. (나머지 한명도 조만간 30대에 진입할 예정입니다.) 가족을 중시하는 한국사회에서 별로 흔한 상황은 아니지요. 그러다 보니 명절때마다 부모님이 스트레스를 받으시는 것 같습니다. 정작 결혼 안한 자식들은 아무 생각이 없는데, ㅋㅋ 올해는 명절이 시작되기도 전에 어머니께서 한마디 하시더군요. '언제까지 내 손으로 명절음식 만들어야 하냐? 나도 힘들어서 못하겠다. 아무것도 안할꺼다.' 으~ 부끄럽게도 다들 독신가구다 보니 명절은 그냥 기간이 좀 긴 휴일정도로만 인식하고 살다가 어머니가 해 놓으신 음식 먹으라고 부르면 그제야 찾아가는 불효막심한 자식들이었지요. 어머니 연세를 생각해보니 어이구 낼모레면 칠순이더군요. 반성, 반성 -_-; 그래서 동생들에게 전화하고 이번만큼은 우리가 명절음식을 시장보기부터 다 준비해보자 이랬지요. 그리고 월요일(추석전일)에 다 찾아가겠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인터넷으로 명절음식 목록과 재료도 찾아보고.. 그리고.. 아침에 집에 가보니 왠걸 벌써 전날 시장을 다 보셨더군요. 우리 온다는 소리에 벌써 일꺼리를 하나 가득 마련해 놓고 계셨습니다. 그럼 그렇지.. 우리 어머니가 어떤 분인데 제가 잠시 속았습니다.-_- 결국 우리가 준비하려고 계획한 것보다 훨씬 많은 음식재료들과 씨름해야 했죠. 뭐, 모처럼 모인 자식들때문에 기운이 나신 어머니가 몇가지는 손수(?)하셨기에 아주 엄청나게 많이는 아니었지만. 호박전, 두부전, 동태전, 고추전, 고구마전.. 부치다가 반죽이 좀 남는 것 같으니까 이번엔 부추를 꺼내 놓으시더군요. 도대체 어디서 재료가 자꾸 나오는지.. 생전 처음 굴소스를 이용한 고추잡채도 해보고 (첫 솜씨였지만 상당한 수준으로 성공했습니다. 스스로가 자랑스러웠습니다. *^^*) 다시 이마트에 가서 샐러드 꺼리랑 기타등등 장을 보고 예정은 점심때쯤이면 일을 모두 마치고 오후엔 개인 볼일을 본다였는데 얼추 정리를 하고나니 오후 5시. 계획한 일들이 있었지만 자식들이 와서 같이 음식하고 수다떨고 그 모습만으로도 좋아하시는데 어쩌겠습니까? 부모님이 많이 외로우셨구나, 반성도 하고. 제가 전날 우리 보육노조 합니다, 말씀드렸더니 예상대로 걱정을 많이 하셔서 (몇십년을 조선일보만이 제대로 된 신문이라고 믿고 계신 분들이 생각하는 노동조합이란 대충 짐작이 되시지요?) 거기에 대한 보충도 필요했구요. 좌우지간 음식만들기와 설겆이를 하루종일 하고나서 몸은 지치는데 그래도 오랜만에 만난 동기간에 이벤트 하나없이 보내기엔 섭섭하더군요. 그래서 동생들과 함께 집 근처에 있는 보드게임 카페에 갔습니다. 가장 젊은(?) 동생 한명만 보드게임카페에 가 본 경험이 있고 모두 처음이었습니다. 재미있더군요. 흐흐 게임이름은 잊어버렸지만 2시간동안 너무 재미있었습니다. 마지막에 제가 제안해서 숫자패를 하나씩 쥐고 가장 작은 숫자를 가진 사람을 뿅망치로 때리는 게임을 했는데 진짜 오랫만에 유쾌하게 웃었습니다. 전 역시 단순하고 유치한 게임이 체질에 맞는 듯. 그리고 근처 맥주집에서 맥주 한잔씩 하고. 오늘 아침에 밥먹고 다시 각자 갈길로 떠났습니다. 아마도 연말에 둘째 동생 생일이나 되야 다시 다같이 얼굴을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래서 명절휴가는 길어야 하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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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때문에..

처음 블러그라는 걸 만들고 이 블러그에 이름을 만들어주려고 생각했을 때만 해도 에~ 또, 일에 대한 넘치는 의욕을 주체할 수 없었던 상황이라 거창하게 써놓은 이름이 - 보육노동자의 힘찬 투쟁 - 발목을 잡는다.-_- 물론 앞으로도 보육노동자의 삶과 투쟁을 적어나갈 계획이지만 왠지 내가 써 놓고도 이 이름때문에 아무 글이나 쓰기가 어렵네. 누구 누구처럼 게시판 하나만 투쟁적이고(?) 선동적(?)이고 정치적(?)으로 만들어 놓고 나머지는 편안한 글 올릴 수 있게 블러그 이름을 지을 것을.. 쯔쯔쯔 하지만 또 어떤 면에서는 이 블러그는 내 무딘 감성과 게으름에 대한 자극이기도 하다. 내 블러그지만 들어 올때마다 부담감이 팍팍 느껴진다. 이런. 근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어차피... 내 블러그잖아? 누가 뭐라겠나? 내 맘대로 쓰는거지.. ㅎㅎㅎ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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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지로 나온 인어공주

인어공주를 보았다. 기억도 못할 먼먼 옛날에는 눈이 부시게 푸른 바다 속을 유연하게 가르며 헤엄쳤을 그 인어공주를 한때는 공주였던 그이를 보았다. 이제는 육지에 올라와 살아온 모든 방식과는 전혀 모습으로 가끔씩 목욕탕 물속에서 어설픈 자맥질 하고 시덥잖은 세상을 향해 퇴!퇴! 가래침도 뱉고 숨통을 조여오는 생존의 굴레를 향해 - 결코 깨어질 것 같지 않은 창살을 향해 목이 터져라 욕도 퍼붓는 한때는 갈래머리 수줍게 웃던, 분명 공주였을, 분명 바다와 가장 잘 어울렸을 그이를 보았다. 누구에게나 삶은 그리 만만하지 않겠지만 그래서 살아야한다는 절박함으로 한때 가졌던 소중한 것들을 하나 둘씩 내다버릴 때조차도 ..설레임, 기대, 희망, 숨 죽여 눈으로 쫓아 사라질때까지 보고싶은 애틋한 사랑... 무엇을 버리고 있는지 한번 돌아볼 여유없었겠지만 그래도 어느 날 문득 아직은 남은 것이 한개쯤 있다는 걸 깨닫고 혼자 피식 웃을 수 있다면, 그것이 우리네 삶의 고단함 잊게 하는 그리운 추억이라고 감히 말할 수 있겠지. 영화 "인어공주"를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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