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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3회 – 상위 10%에서 하위 10%로

 

 

 

1

 

1980년대

고교졸업자 중 상급교육기관으로 진학한 사람의 비율 (대학진학률) 평균 35%

전체 학령인구 중 고등교육기관 취학률(대학취학률) 평균 20%

전체 학령인구 중 4년제 대학 취학률 평균 13%

 

 

어딘가에서 우연히 보게 된 통계입니다.

이 수치를 보며 깜짝 놀랐습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당연히 대학에 가는 것으로 생각했던 저로서는 당시에 대학에 들어간다는 것이 생각만큼 보편적이지 않았다는 사실이 의외였습니다.

더군다나 서울소재 대학에 입학했던 저는 성적으로만 놓고 보면 상위 7~8%에 해당한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습니다.

 

그저 앞만 보고 달리며

나보다 공부 잘해서 소위 SKY대 들어간 친구들만 바라보다보니

제가 공부를 잘한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었는데

객관적 수치로 제 위치를 봤더니 의외로 높은 위치에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서 그 시절의 몇 가지 기억들이 떠올랐습니다.

 

 

2

 

대학에 입학해서 학기 초의 들뜬 분위기에 젖어 있을 때

신입생들에게 술을 잘 사주는 선배가 있었습니다.

몇 학번 위의 선배인지는 모르겠는데

선배가 술을 사준다니까 몇 번 끼어서 공짜 술을 얻어먹은 적이 있었습니다.

제 기억으로는 두 번 정도 술을 얻어먹었던 것 같은데

다른 동기들까지 얻어먹었으니 꽤 자주 후배들에게 술을 사줬던 것 같습니다.

준수한 외모에 인상도 그런대로 괜찮은 선배여서 인기가 좋았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그 선배가 가짜 대학생이라는 소문이 돌기 시작했고

그 소문과 함께 그 선배는 자취를 감췄습니다.

 

그리고 얼마 후

그 선배가 다른 과 신입생들과 어울려 술을 먹는 모습을 봤습니다.

물론 공짜 술을 얻어먹는 후배들은 ‘선배님 선배님’하면서 그 선배를 따르고 있었고

그 선배도 즐거워 보였습니다.

그러다나 저랑 눈이 마주쳤는데

그 선배는 살짝 저를 의식하더니 아무 일 없다는 듯이 눈을 돌리더군요.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참으로 미스터리한 인물입니다.

그 선배가 어떤 이유로 신입생들에게 술을 사줬는지는 모르겠지만

주위에서 그 선배로 인해 어떤 식으로든 피해를 봤다는 얘기는 듣지 못했고

그저 그가 ‘가짜 대학생’이라는 말이 돌기 시작하면서 모두들 그를 경계하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우리한테 어떤 피해도 주지 않고 오히려 공짜 술을 사주면서 즐거움을 안겨줬을 뿐인데

그가 ‘우리의 울타리에 들어올 자격이 없는 가짜’였다는 것 때문에 그를 경계한 것이었습니다.

그 누구도 알려주지 않았지만 우리들 머릿속에는 자연스럽게 그런 우월의식이 자리 잡고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3

 

사실 ‘가짜 대학생’ 행세는 제가 먼저였습니다.

입시에 떨어져 서울에서 재수생활을 할 때

주말이면 대학에 다니는 고향친구를 만나 외로움과 힘겨움을 달래곤 했습니다.

그 친구를 만나면서 자연스럽게 동기와 선배들과 어울리게 됐고

그들과 술도 먹고 어울려 놀기도 하면서

간접적으로 대학생활을 즐겨봤습니다.

 

그렇게 몇 번 어울리다보니 친해져서

그들이 활동하는 운동권 동아리에도 들락날락거리게 됐는데

그때 내 자신을 소개할 때

‘00대 입학했다가 그만두고 재수를 하고 있다’고 말을 하고 말았습니다.

괜한 자존심 때문에 그들이 다니는 대학보다 한 레벨 높은 대학에 입학했던 것처럼 거짓말을 했던 것이죠.

그리곤 별 문제없이 주말이면 그들과 어울려서 술도 먹고 운동권 문화도 접하며 재미있게 놀았습니다.

 

그렇게 지내다가 그해 연말 입시에 다시 떨어지고는

고향에 내려와서 삼수를 하며 다시 입시를 준비하던 때

도서관에서 같이 어울려서 즐겁게 지냈던 그때의 선배를 만났습니다.

반가운 마음에 꾸벅 인사를 했지만

그 선배는 경멸에 찬 눈으로 저를 바라보고는 그냥 가 버리더군요.

 

그때 깨달았습니다.

나는 가짜 대학생 행세를 하며 어울릴 수 없었던 이들과 어울렸던 것이고

그런 행동은 파렴치한 짓이었습니다.

내가 그들에게 아무런 피해를 주지 않았다는 것이 면죄부가 되지는 않았습니다.

 

 

4

 

어렵게 대학에 들어가서 학생운동을 열심히 했습니다.

그리고 민중 속으로 들어가 민중과 함께 하고자 학교를 그만뒀습니다.

나에게 주어졌던 기득권을 버렸더니 극빈층의 삶으로 연결되더군요.

신념 하나로 버티면서 아등바등 살았더니 차상위계층까지 올라갔습니다.

앞만 보면서 치열하게 살아왔는데 어느 순간 대열에서 밀려났고

낙오자가 된 저는 고향으로 돌아와서 농민이 됐습니다.

 

지난 삶을 가만히 돌아보면

기득권을 버리고 민중과 함께 하는 삶에는 성공한 셈입니다.

우월의식과 엘리트의식으로 무장해 자신보다 못한 이들을 얕잡아보는 삶을 버리고

민중의 건강함과 혁명성을 찾아 대중의 바다로 뛰어들었더니

여기저기서 무시당하고 버림받고 외면당하는 삶을 살아야 했습니다.

그런 것이 민중의 삶이더군요.

 

이번 방송 원고를 쓰면서

‘상위 10%의 삶을 살았다면 나는 지금 어떻게 살고 있을까?’

하고 생각해봤습니다.

IT기업에 취직해서 지금쯤 임원이 됐을까?

민중운동 하다가 복학한 후 정당 활동 하던 선배를 따라가서 한자리 차지했을까?

학연과 지연으로 얽힌 인맥을 활용해 문화예술계에서 적당한 지위를 갖고 있을까?

후배들과의 관계를 잘 관리하며 새로운 트렌드의 시장에서 적당히 자리 잡고 있을까?

이런 저런 현실가능 한 상상들을 해봤는데

그리 크지도 않은 밥그릇 지키려고 은근히 사람들 무시하고 경계하며 살아가는 모습이 보여서

모두 훌훌 던져버렸습니다.

 

여기저기서 무시당하고 버림받고 외면당하는 보잘 것 없는 삶이지만

나를 세상에서 가장 믿고 따르는 사랑이와 함께

해마다 도전과제를 던져주는 감귤나무와 씨름하며

텃밭에서 기른 채소와 과일로 만찬을 즐기는 이 삶이

너무도 자유롭고 편안해서 좋기만 합니다.

여러분도 민중의 바다 속으로 들어와 보시렵니까?

 

 

 

(최도은의 ‘불나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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