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글 목록
-
- 마농의 샘, 보는 이의 마음까지 경건하...
- 12/13
1
1년 동안 열심히 키워온 감귤이 병에 걸리고 말았습니다.
수확을 앞두고 상품성이 없어진 감귤을 따서 버렸습니다.
나무에 달린 감귤의 반이 넘게 버려졌습니다.
그나마 남아있는 감귤이라도 팔아보려 했지만 상태가 좋지 않아서 사려는 곳이 없었습니다.
할 수 없이 헐값에 가공용으로 팔아야 했습니다.
감귤농사 6년차인데 한 해도 탈 없이 넘어간 적이 없습니다.
방제를 잘못해서 병에 걸린 것이 두 번
수확량이 너무 많이 나와서 품질이 나쁜 경우가 두 번
열매솎기를 너무 과하게 해서 수확량이 심하게 줄어든 경우가 한 번
감귤재배의 기본이라는 방제는 아직도 미숙하고
나무에 가장 중요하다는 물 조절은 여전히 고민이고
해마다 하는 전정도 초급수준에서 벋어나질 못하고 있고
비료관리와 온도관리도 적정선을 찾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시행착오를 하면서 한 해 한 해 배워나가는 것이라 자위하기에는
데미지가 너무 큽니다.
누구한테 하소연도 못하고
속앓이만 하다가
수확을 마친 나무의 전정을 시작했습니다.
시원해진 나무는 왕성하게 새순과 꽃봉오리를 올려내고 있더군요.
그 모습을 보니 제 마음이 홀가분해져서
저와 나무에게 주문을 외웠습니다.
“다시! 시작해보자.”
2
몇 달 전 일본지하철에서 한 남자의 성추행 장면이 온라인에 공개 되서 국제적 망신을 샀던 일이 있었습니다.
그 기사와 사진을 보면서 또 한 번 가슴이 뜨끔해졌습니다.
예전에 혁명을 진지하게 논의하던 때
모두가 모여 유명인의 섹스비디오를 보며 낄낄거리곤 했습니다.
투쟁에 대한 회의를 진지하게 하고나서
마음에 맞는 이들과 함께 노래방에서 가서 도우미를 불러 품기도 했습니다.
여성문제에 대해 진지하게 논의하면서
성폭력을 휘두르고 도망가기를 반복하곤 했습니다.
간음한 여인을 끌고 가서 그 죄를 말하고 벌을 내려야하지 않겠냐는 사람들에게
예수는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쳐라”라고 했더니
사람들이 쭈뼛쭈뼛 거리다가 하나둘씩 사라졌다고 합니다.
저는 지금
죄를 짓고 끌려간 여인의 입장일까요?
쭈뼛거리다가 사라진 사람들의 입장일까요?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쳐라’며 말했던 예수의 입장일까요?
이런 생각을 진지하게 하며
방송 원고를 쓰고 있는 이때
어디선가 날카로운 돌멩이 하나가 날아와 제 머리를 찍어버립니다.
3
읽는 라디오가 다섯 번째 시즌으로 돌아왔습니다.
이번 시즌의 타이틀은 ‘다시!’입니다.
지난 시즌인 ‘사람을 사랑하며 살아가자’를 진행하며
세상을 향해 한발자국 더 나아가 사람들과 소통하며 사랑의 온기를 만들어가고 싶었지만
제자리에서 맴돌다 말았습니다.
그래서 다시 시작해보려고 합니다.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서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오롯이 제 힘으로 한번 해보려고 합니다.
젊었을 때처럼 무작정 세상을 향해 뛰어들 자신은 없지만
한발 뒤로 물러나 움츠러든 채 자신만의 아지트에 안주하지는 않으려합니다.
12년 전 ‘내가 우스워 보이냐?’라며 세상을 향해 당당하게 외쳤듯이
다시 세상을 향해 주눅 들지 않고 외쳐보려고 합니다.
물론
제가 아무리 지랄발광 개지랄을 떨어도 세상은 눈썹하나 까딱하니 않는다는 것을 잘 압니다.
그리고
제가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도와달라고 외쳐 봐도 찬바람만 쌩쌩 불어온다는 것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지금 있는 이 아지트가 얼마나 소중하고 편안한 곳인지도 너무도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편안함에 취해 의욕도 능력도 없는 그저 그런 중늙은이로 나이 들고 싶지 않기에
다시! 시작해보려 합니다.
이미 무모함을 상실해버려서 예전처럼 돈키호테가 되지는 못하겠지만
최소한 돈키호테와 같은 꿈을 꾸며 그를 따랐던 산초라도 되고 싶습니다.
이 몸부림의 결과
세상의 파도에 밀려 더 뒤로 물러나게 될지도 모르고
세상과의 소통은 고사하고 적응마저 제대로 하지 못하는 낙오자가 될지도 모르지만
그저 그런 중늙은이로 나이 들어가는 것 보다는 낫겠다 싶습니다.
이번 시즌이 어떤 방향으로 어떻게 흘러갈지 모르겠지만
읽는 라디오를 처음 시작했던 그때 그 마음으로 돌아가
다시 힘차게 나아가보겠습니다.
그런 의미를 담아 류금신의 힘찬 노래 ‘또 다시 앞으로’를 들으면서
읽는 라디오 다섯 번째 시즌 ‘다시!’를 당당하게 시작해봅니다.
댓글 목록
곰탱이
관리 메뉴
본문
다섯 번째 새로운 시작을 축하드립니다. 새로운 시작은 새로운 길을 열어나간다는 것인데, 엄청난 용기가 필요한 일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런 점에서 대단히 부럽기도 합니다.^^ 저는 새로운 시작은커녕 아직 끝도 맺고 있지 못한데 말이지요. 새로운 길에 가끔씩 와서 안부 인사 여쭙겠습니다.^^ 다시 한번 다섯 번째 시작을 축하드립니다!^^부가 정보
성민이
관리 메뉴
본문
새롭게 시작하는 길에 어김없이 반가운 발걸음이 와 닿았네요.이번 시즌은 색깔이 조금 강해서 지금까지와는 다른 질감이 느껴지실지 모르겠지만, 마음내키는대로 편한 발길 해주시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서로 접점을 찾아가는 즐거움을 느껴보죠.
부가 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