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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부모들과 대학 총장들이 닮은 점

한국의 부모들과 대학 총장들이 닮은 점
                    전경련 상임고문이 서강대 총장으로 된 사건에 부쳐


  전경련 하면 재벌과 대기업의 회장들이 연상된다. 재벌과 대기업의 회장이란 이윤 창출과 부의 축적에 있어 귀재들이다. 그러한 이미지를 가진 사람 중의 일인이 서강대학교 총장으로 초빙되었다.
  일반적으로 대학교가 내세우는 상징적 구호는 진리, 정의, 자유 등이다. 그 중에서도 진리 탐구가 가장 핵심일 것이다. 그런데 이 진리 탐구와 이윤 창출은 서로 조심스럽고 껄끄러운 관계에 있다. 그래서 여태까지 교수 출신의 총장들이 ‘기업의 CEO(최고경영자) 흉내’를 내는 경우는 더러 있었지만, 재계의 CEO가 직접 총장으로 선임된 사례는 별로 없었다. 그런데 서강대학교는 이 조심스런 관계를 과감하게 뛰어 넘고자 했다.
  서강대학교는 전통적으로 ‘예수회 소속 신부’ 중에서 총장을 선출했지만 이번에는 ‘가톨릭 시난을 가진 일반인’ 중에서 선출할 수 있게 규정까지 바꾸면서 전경련 부회장 경력의 손병두 전경련 고문을 새 총장을 뽑게 되었다. 저 유명한 슘페터의 말을 빌자면, 상당히 ‘혁신적’이요, ‘창조적 파괴’라고 할 수 있다.
  아니나 다를까, 서울 상대와 삼성그룹 비서실 출신의 손병두 총장은 내정되자마자 “앞으로 대기업들로부터 1천억 원 이상을 모금하겠다.”고 공언했다. 아마도 서강대 이사회는 ‘보람있다’는 듯, 크게 반겼을 것이다.
  그런데 사실 이런 현상은 결코 새삼스런 일이 아니다. 미국 유수의 대학들도 기업으로부터 기부금을 받거나 건물을 선물 받는 형식으로 도움을 받는 대신 기업에게는 인재를 주거나 ‘돈 되는’ 연구 결과를 발빠르게 공급하며 특정 기업의 이미지 제고에 노력을 해주는 ‘기브 앤 테이크’(주거니 받거니)가 일상화되어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한국도 연세대, 고려대 등의 경우에서와 같이 ‘CEO 총장론’이 득세하여 총장은 기업의 총수처럼 움직여야 대학을 ‘발전’시킬 수 있다고 보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마치 4-50대의 어머니들이 그 자식을 무슨 대학에 보냈는가를 통해 자신의 인생 성적표를 받게 되는 것처럼, 대학 총장들은 발전 기금을 얼마나 모금했는가에 따라 그 리더쉽 성적표를 받는 것으로 인식된다. 어머니들의 인생이 서글픈 것과 마찬가지로 대학의 현실 역시 서글프다. 그리고 이 두 가지 서글픈 현상은 결코 따로 노는 것이 아니라 서로 연관되어 있다.
  생각건대 대부분의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우리 머리 속에, ‘좋은 대학’을 나와 좋은 직장을 갖고 높은 지위를 얻어 출세하는 것이 인생의 성공이라 각인되어 있다. 이 때, 좋은 대학이란 투자를 많이 하여 그럴듯한 건물과 멋있는 캠퍼스를 갖고 있고 사회적으로 이름이 많이 난 교수들이 많으며, 또한 졸업생들의 사회적 인맥이 풍성하여 정치경제적 권력을 많이 갖고 있는 그런 대학이다. 이것이 이른바 ‘일류 대학’의 실체다. 그러니 자식이 일류 대학을 나와 선후배간에 서로 끌어주며 기득권을 더 많이 차지하게 될 것을 기대하는 것은 대부분의 부모들이 갖는 태도가 아닐까? 그렇게 되어야 자식도 행복할 거라고 믿고 또한 부모들도 남들로부터 사회적 인정을 받을 수 있다고 느끼는 것이다. 많은 경우 자본과 권력에 저항하는 운동가들조차도 자식만큼은 일류 대학을 나와 떵떵거리고 살 수 있기를 바란다.
  그런데 더욱 흥미로운 것은 그러한 ‘일류 대학’의 위상이 고정된 것이 아니라 치열한 경쟁 속에 놓여 있기에 대학들도 기업들처럼 ‘효율적인 투자’와 ‘이윤율 저하’를 고민해야 하고 서로 훌륭한 학생 고객을 더 많이 끌어오려고 피땀을 흘려야 한다는 점이다. 그렇게 훌륭한 학생들을 많이 배출한 대학은 그들이 사회에 나가 성공을 하면 많은 기부금을 내 놓는다. 그들의 이름이 모교의 건물이나 강의실에 새겨진다면 개인적으로 영광일 것이다. 예전에는 쑥스럽게 여겨지던 일들이 이제는 공공연히 일어난다. 나아가 리더 격인 총장에게는 일종의 ‘교육 기업’의 총수로서 투자 자금을 더 많이 확보하고 교수들에게 많은 보수를 주어 이름난 교수를 많이 확보하며 학교 전체를 좀 더 매혹적으로 꾸며 성적이 우수한 학생을 많이 확보함으로써 이윤율 저하(미달 사태)를 예방하는 일이 주요 과제다. 그러니 부모들이 자식을 일류대에 보내려는 강박증이나 대학들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돈을 모르겠다는 발상은 같은 뿌리를 갖고 있다. 즉 일류대학을 통한 출세와 성공이라는 뿌리를 우리가 공유하는 한, 부모들의 일류대학 강박증과 총장들의 발전기금 강박증은 지속될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대학 총장들은 돈 많은 기업들을 찾아가 기부금을 받아 오는 대신 명예박사학위나 건물에 그 기업(인)의 이름을 선사하게 된다. 그런데 거액의 기업 기부금은 과연 어디서 나오는 것인가? 그것은 수많은 노동 대중이 흘린 피와 땀과 눈물의 응어리가 아닌가? 그 토대 위에 기업과 대학은 서로 좋다고 맞장구치며 축배를 들 터이다.
  한편, 지금까지 기부금 모금은 총장 입장에서 정말 힘들고 하기 싫은 일이기도 했을 터이다. 진리 탐구를 하는 대학의 대표가 기업 총수들에게 아쉬운 소리를 한다는 것은 얼마나 자존심 상하는 일인가? 우리 선조들의 선비 정신이라면 ‘험, 턱도 없는 소리!’라고 하며 ‘내가 비록 밥을 굶더라도 바른 소리 할 터!’라고 했을 것인저.
  그런데 이제 재벌 총수 중의 총수가 대학 총장이 되었으니 그러한 껄끄러움마저 공중 분해시켜 버렸다. 경제관료 출신이 교육부총리를 하고 있는 현실의 연장선이자 그 완결판이다. 이제 대학과 기업은 노골적으로 돈을 요구하고 공공연히 그 대가를 요구할 것이다. 그리고 서강대가 첫 테잎을 끊었으니 다른 대학들도 줄을 이을 것이다. 오랜 시간이 지나면 대학인지 기업인지 모르게 될 지도 모른다. 마침내 ‘대학 기업’이라는 혼혈아가 탄생할 수 있다. 진리와 자유, 정의 따위의 구호는 구시대적, 낭만적 구호로 치부될 것이고, 수익과 출세, 성공 따위의 구호가 새 시대의 실질적 구호로 칭송될 것이다. 게다가 본고사, 고교등급제, 기여입학제, 교수간 경쟁 체제 도입 등 차별과 불평등에 기초한 교육 방식과 돈벌이 방식이 더욱 공고해질 것이다.
  그 어느 때보다도 남산골의 딸깍발이 같은 선비 정신, 그것도 통찰력 있는 이론으로 무장하고 현실을 냉철히 비판함과 동시에 풀뿌리 민중과 실천적으로 결합하여 현실 모순을 정면 돌파하려는 21세기형 선비들이 더욱 많이 필요한 시점이다. 한국의 대학, 대학인들이여, 냉철히 각성하라!***
  
* 강수돌(姜守乭):
  아침마다 부춧돌형 잿간에 똥을 누고 “똥아, 잘 나와서 고마워.”라 인사하며 하루를 시작하는 대학 선생입니다. 생산성이 높아 아이를 3명이나 낳았고 아이들에게 밥상에서 “밥이 똥이고 똥이 밥이다.”를 강조합니다. 노동-교육-경제-생명을 서로 연결된 고리 속에서 어떻게 풀어야 할지 고심하며 삽니다. 돈의 학문 대신 삶의 학문을 추구하고, 죽은 이론이 아니라 살아 움직이는 실천을 추구합니다.

* 경력:
  서울대 경영학과 졸업, 동 대학원 경영학과 석사,   독일 브레멘대학교 경영학박사(노사관계),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 역임,   미국 위스콘신대 노사관계연구소 객원교수,
  현재 고려대 경상대학 경영학과 교수.

* 저서:
      『지구를 구하는 경제책』, 봄나무, 2005.
      『나부터 교육혁명』, 그린비, 2003.
      『노사관계와 삶의 질』, 한울, 2002.
      『노동의 희망: 생동하는 연대를 위한 여덟 가지 아이디어』, 이후, 2001.
      『작은 풍요: 삶의 자율성 회복을 통한 기업과 사회의 재구성』, 이후, 1999.
      『경영과 노동: 사회생태적 경영을 위한 밑그림』, 한울, 1997.
  역서: 『세계화의 덫』, 영림카디널, 1997.
        『노동사회에서 벗어나기』(공동), 박종철출판사, 2000.
        『팀신화와 노동의 선택』(공동), 강출판사, 19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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