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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에게 소프트웨어를!
개인의 이익이 아닌 공개 소프트웨어(free software)의 개념에 고무된 저항적 프로그래머 그룹은 과연 마이크로소프트(MS)의 컴퓨터 통제를 교란시킬 수 있을까?
찰스 만(Charles C. Mann)
번역 : 최용환(다른과학 편집위원)
미구엘 드 이카자(Miguel de lcaza)는 멕시코시티에 있는 멕시코 국립대학의 핵공학과에서 컴퓨터 네트워크 관리자로 일하고 있다. 네트워크 관련 일을 하면서 "나에게 좀더 많은 여유시간을 달라"고 말한다. 그 시간은 전자우편(e-mail)에 답을 하고, 작은 프로젝트를 수행할 시간이다. 그가 생각하기에 요즘 컴퓨터에 쓰는 시간들은 '정말로 대단한 것'이다. 이카자는 그놈(GNOME)프로젝트를 조정하고 있다. GNOME 데스크탑 프로젝트는 마이크로소프트왕국의 근간을 이루고 있는 윈도를 능가할 수 있는 컴퓨터시스템을 개발하고자 하는 선도적인 노력이다.
여기에 관계된 프로그래머들은 GNOME 데스크탑은 어떠한 것보다 빠르고, 강력하고, 덜 다운될 것이라고 말한다. "컴퓨터를 향한 이 급진적 행보는 가장 유용하고, 훌륭한 것을 만들어 낼 것이다"라고 썬(SUN Microsystems) 프로그래머였던 맥보이(Larry McVoy)씨는 말한다. 그리고 GNOME은 인터넷에서 무료로 다운로드 가능하게 할 것이다.
세계에서 가장 지배력있는 회사들 중 하나인 MS에 도전하는 이 작은 그룹의 성격이 조금은 모호해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GNOME 프로젝트는 확실한 목적을 갖고 있다. "그들은 MS로부터 데스크탑을 되찾아 올 것을 결정하였다"라고 '새로운 해커 사전(The New Hacker's Dictionary)'의 편집자인 공개 소프트웨어 전도사 레이몬드(Eric S. Raymond)는 말한다. 그의 생각으로는 이 프로젝트는 성공할 수 있다. 그는 GNOME이 소프트웨어 세상을 좀더 나은 곳으로 이끌 수 있다고 확신하고 있다.
어떤 이유로 GNOME은 더 크고 자금력이 풍부한 조직들(애플사와 같은)도 실패했던 일을 l지자들이 내놓는 두 가지 이유는 이렇다.
첫째 GNOME은 어느 한사람에 의해서 시작된 것이 아니다. 이는 리눅스(Linux, 'LINN-uks ')라고 불리는 빠르기와 확장성, 효율성으로 유명한 운영체제에서 운용되도록 되어있다. 리눅스는 인터넷 사업자와 같은 작고 상업성 농후한 네트워크나 대학교 실험실 컴퓨터에서부터 미국 우정국(US Postal Service)와 파고(Well Fargo)와 같은 거대한 조직체에 이르기까지 전세계적으로 2천만에 이르는 컴퓨터 시스템에서 돌아간다. 리눅스는 해마다 40%씩 늘어가는 사용자를 기반으로 점차 시장점유율을 높여 반MS 운영체제의 토대를 이루고 있다.
지금은 20개가 넘는 작은 컴퓨터 회사들에서 리눅스를 운영체제로 장착한 컴퓨터들이 팔리고 있지만 가정에서는 거의 찾아 볼 수 없다. 그 이유는 리눅스가 기술적으로 탁월하지만 사용자가 사용하기에는 편하지 않기 때문이다. 사실 처음 리눅스를 인스톨해보면 리눅스는 '가장 복잡하고, 전적으로 타이핑을 강요하는 운영체제 중의 하나'라는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사용자는 알기 힘든 "awk" "grep" 등과 같은 명령어들을 직접 입력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직관적인 포인트-클릭(point-and-click)인터페이스를 제공함으로써 "GNOME은 내 아내, 어머니, 할아버지가 쉽게 사용할 수 있는 운영체제가 될 수 있을 것이다"라고 레드햇(Red Hat Advanced Development Laboratories)의 프로젝트 멤버인 펄브라이트(Michael Fulbright)는 말한다. 일단 사람들이 훌륭한 소프트웨어를 사용하는 것이 어떤 것인가를 알게 된다면, 다시 윈도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라고 리눅스 지지자들은 주장한다.
두 번째 GNOME이 성공할 수 있는 큰 이유는 리눅스와 같이 GNOME도 '공개 소프트웨어(free-software)' 또는 '공개 소스(open-source)' 운동의 산물이라는 것이다. GNOME은 공짜로 얻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소스코드 - 소프트웨어 회사들이 자신들만의 왕관인 양 생각하는 내부적인 명령어들 - 또한 누구나 복사할 수 있고, 변형시킬 수 있다. 소스코드를 어느 한 회사의 통제에서 풀어줌으로써 GNOME 프로젝트는 수백 명의 프로그래머들이 같이 일하게 할 수 있다. 아무리 거대한 MS라 할지라도 전세계의 통일된 능력을 능가할 수는 없기 때문에, 소스가 공개된 소프트웨어는 경쟁에서 이길 수 있을 것이라고 공개 소프트웨어 지지자들은 주장한다. "뭔가 좋은 어떤 것을 만들어 낸다면 결국 사람들은 그것을 사용하게 될 것이다"라고 리치몬드에 있는 픽사 애니메이션 스튜디오(Pixar Animation Studios)에서 일하는 공개 소프트웨어 프로그래머 페렌즈(Bruce Peren)는 이야기한다. "GNOME 은 미래를 위한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멕시코시티의 이카자는 "GNOME은 재밌고 정말 좋은 의미의 해킹"이라고 말한다.
공개된 코드(Liberated Code)
GNOME, 리눅스 그리고 공개소프트웨어 운동이 동일한 출발점을 가진다고 본다면 그 시작은 제록스(Xerox)가 최초의 레이저 프린터 중 하나를 MIT에 있는 인공지능연구소(Artificial Intelligence laboratory: AI Lab)에 기증한 1979년의 어느 날일 것이다. 그 프린터는 자주 고장을 일으켰고 인공지능연구소의 리처드 스톨만(Richard Stallman)은 제록스에게 프린터를 제어할 수 있는 코드를 제공해 줄 것을 요구했다. 스톨만의 계획은 프로그램을 수정해서 프린터가 다운되면 프린트가 나오길 기다리는 사람들의 스크린에 반짝이는 경고 메시지를 보여 줄 수 있도록 하는 것이었다. 이렇게만 된다면 프린터는 빨리빨리 복구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수정작업을 하기 위해서 스톨만은 프린터 프로그램의 소스 코드가 필요했다. 다른 사람의 코드를 빌리고 수정하기도 하면서 함께 연구하는 학구적인 분위기의 인공지능연구소에서 일하는 프로그래머인 그에게 이러한 요청은 별로 유별난 것이 아니었다. 게다가 이전에 제록스사는 똑같은 문제가 있던 프린터의 소스코드를 그에게 준 적이 있기도 했다. 그러나 이번에 제록스사는 이 요청을 거부했다. 회사는 소스코드의 판권을 독점했다(Copyright)는 것이었다. 스톨만은 소유권이 프로그램을 더 좋게 향상시키려는 그를 가로막고 있다는 사실에 화가 났다. 그는 제록스사가 프로그램을 독점했고 황금률(Golden Rule)을 위반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제록스는 혼자가 아니었다. 소프트웨어 산업이 점점 커가면서 실리콘 밸리는 수많은 인공지능연구소의 인재들을 빼가기 시작했다. 이 프로그래머들이 소프트웨어회사에서 일할 때 코드는 저작권이 생기며 더 이상 공유될 수 없고 향상될 수도 없는 것이라는 사실을 스톨만은 알게되었다. 저작권이 프로그래밍 사회를 파괴하고 있다고 스톨만은 결론지었다.
1984년 스톨만은 공개 소프트웨어 재단(Free Software Foundation)를 창설했다. 재단의 주요 목적은 대부분의 큰 컴퓨터 네트워크에 이용되는 유닉스(Unix)의 소스 코드를 사용하지 않으면서 유닉스와 같은 향상된 운영체제를 개발하는 것이었다. 유닉스는 1969년 벨연구소(Bell Labs)의 두 연구원에 의해서 개발되어 IBM이나 컴팩(Compaq), 썬 등 12개의 다른 버전으로 사용되고 있었다. 스톨만은 새로운 버전을 GNU라고 명명했는데 이는 'GNU is Not Unix'의 준말이다. 그러나 혼란을 막기 위해 그는 이것을 'guh-new' 라고 발표했다. GNOME은 'guh-nome'이라고 발음되며 'GNU Network Object Model Environm- ent'의 준말이다.
GNU의 도전은 대단한 것이었다. 운영체제란 두 숫자를 더한다든지, 정보를 하드디스크에 옮긴다든지 하는 일에 필요한 프로그램들과 그러한 일을 직접적으로 하드웨어(키보드, 모니터, 마이크로 프로세서 등등)에 전달하는 방식을 말한다. 그러나 윈도를 운영한다거나 프린터나 기타 장치들과 통신하는 등의 특정한 작업을 수행하는 수많은 보조 프로그램들이 없다면 그 운영체제는 무용지물이 되고 만다. 효과적인 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해서 GNU 프로젝트는 이러한 모든 프로그램들을 만들어 내야 했다. 페렌즈는 "이것은 창고에서 비행기를 만드는 일에 비유될 만한 것이다"고 말한다. 사람들은 이것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 일을 스톨만보다 덜 뛰어난 사람이 담당했다면 불가능했을지도 모르겠다.
MIT를 중심으로 한 GNU 프로젝트는 희미한 불빛, 눈부신 모니터들, 밤샘, 중국식 야참 등으로 채워진 괴짜천국(Geek Heaven)이었다. 그 중심에 낮에는 사무실의 간이침대에서 새우잠을 자고 밤늦도록 코드를 분석하는 긴 머리에 턱수염을 기른 스톨만이 있었다. 그의 모든 코드는 카피레프트(copyleft)되었다. 다른 사람들이 또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그들의 수정에 똑같은 수정을 가할 수 있도록 한다면, 사용자들은 누구나 자유롭게 소프트웨어를 바꿀 수 있었다. 스톨만은 카피레프트가 그들 자신의 도구를 이용하여 소프트웨어 독점자들에게 대항하는 방법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90년대 초반까지 GNU 프로젝트는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범용으로 사용 가능한 여러 가지 프로그램들을 만들어 내긴 했지만 GNU 운영체제의 커널(Kernel:운영체제의 핵심적인 부분)을 만들어내지 못했다. 그 이유중의 하나는 스톨만이 유닉스의 커널을 복제하지 않고 GNU 시스템의 기초를 카네기 멜런(Carnegie Mellon)대학에서 개발한 진보적이고 경험적인 커널로 선택한 것이다. 스톨만은 새로운 커널을 개발한 몇 안되는 사람중의 한명이었고 이 일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거의 유일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혼자서 많은 코드를 타이핑하는 것이 애초부터 무리였고 결국 포기하게 되었다. 몇 년간의 고통은 키보드와 씨름하기 힘들게 만들었고 커널을 개발하기 위한 작업은 중단되었다. 스톨만은 MIT 학생들을 고용해서 계속해 나가려고 노력했지만 얼마안가 기계적으로 컴퓨터 코드를 번역하는데 염증을 느껴 그만두게 되었다.
아무도 한쪽으로 치우친 스톨만을 설득하지 못했다. 페렌즈는 "스톨만은 극좌파적 성향을 띠는 인물이다. 근본적으로 비즈니스에 대해서 적대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고 회상한다.
가능한 작은 운영체제(The Little Operating System that Could)
1991년 헬싱키 대학의 21살 대학생 토발즈(Torvalds)는 결코 뛰어난 프로그래머가 아니었다. "난 내가 모르는 것에 대해서는 전혀 알지 못한다." 그러나 그는 유닉스가, 마치 질질 새는 펜으로 쓰기를 강요하는 것과 같은 MS의 MS-DOS 운영체제보다 충분히 우위에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토발즈는 프로그래밍을 원했지만 수없이 많은 명령어들로 괴로워해야 했다. 또 그의 4메가의 메모리를 갖춘 386급의 컴퓨터는 유닉스를 돌리기에 역부족이었다. 그러나 그는 형편없는 소프트웨어를 받아들이는 것을 거부했다. DOS를 무시하고 그의 선생님들이 준 코드 뭉치들을 잘게 쪼게 가며 그의 숙제들을 해 나갔다. 예상치 못하게 토발즈는 유닉스의 커널과 비슷한 무언가를 얻어냈다. GNU 프로젝트가 필수적인 프로그램들을 만들어 놓았기 때문에 그는 커널을 그것들에 부합하도록 변형했다. 이게 어찌된 일인가? 그는 완전한 운영체제를 만든 것이다.
이것은 유닉스의 유연함과 안정성을 가졌고, 성능이 그리 좋지 않은 기종의 컴퓨터에서도 아주 유용했다. 그는 그의 운영체제를 'Freax' 라고 불렀다. 그 이름이 세련되지 못하다고 생각한 그의 친구들이 그 운영체제의 이름을 바꿔 부르기를 리눅스(리눅스)라 하였다.
인간적인 면에서 보면 스톨만과 토발즈는 거의 정반대라고 할 수 있다. 스톨만은 빌게이츠를 골탕먹이기 위한 범국가적인 캠페인을 제안하고 밤마다 그의 긴 머리칼을 물어뜯어 가며 밤을 새우는 괴팍한 성격의 소유자인 반면 토발즈는 공손하고 유순한 개인적으로 일정한 직업을 가진 평범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 두 사람은 소프트웨어의 소유권에 대해 반대한다는 점에서 의견을 같이 한다. 토발즈는 스톨만의 카피레프트에 동참했고 리눅스를 온라인 상에 올려 아무나 다운로드 받을 수 있도록 했다. 다른 사람이 리눅스를 좀더 향상시키면 그 역시 그 결과물을 인터넷에서 얻을 수 있었다. 1991년 한 사람의 사용자가 사용할 수 있는 운영체제가 가능해 지고 1995년에는 휴렛패커드(HP)와 디지털사(Digital)에서 만들어진 컴퓨터 등에서도 운영될 수 있도록 수정을 거듭하였고 50만의 사용자들이 생기게 되었다.
"모든 일은 적절한 시기에 진행되었다." 컴팩사의 기술부문 마케팅 매니저로 있는 리눅스의 대가 홀(John Hall)은 말한다. "PC의 가격이 하락하고 그 성능이 향상되면서 부유하지 못한 나라에 사는 사람들도 386급이나 486급의 컴퓨터를 가질 수 있게 되었다." 이러한 새로운 분위기는 컴퓨터 과학이 스스로 발전되어 나가는 것을 가능하게 했고 개발도상국도 그들의 능력에 맞게 인터넷을 통한 리눅스의 개발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잡을 수 있게 되었다. 홀은 "어느 날 갑자기 컴퓨터 과학의 성과물들이 레드몬드나 워싱턴에서 나오지 않게 될 가능성이 생겼다"라고 말한다.
GNOME 프로젝트의 리더인 이카자의 이야기는 위의 사실을 입증해 주고 있다. 1991년 18살 멕시코 국립 대학의 대학생이었던 때 GNU 프로젝트를 알게 되었고 즉시 이것의 파일관리 프로그램에 관한 연구하기 시작했다. "나는 소프트웨어가 너무 좋아서 그들에게 무언가를 되돌려 주고 싶었다." 곧 이어 리눅스가 등장했고, GNU와 그것을 연결하여 썬 워크스테이션(Sun SPARC Workstation)에 적용시켰다. "내가 그 프로젝트에 참가하기 시작하자 많은 사람들이 나에게 좀더 향상된 결과물들과 버그 수정, 새로운 형태들을 보내주기 시작했다." 아무도 그가 미국사람이 아니란 것, 대학을 아직 끝마치지도 못했다는 것을 개의치 않았다. (단 미국정부는 캘리포니아에 있는 코발트 네트워크(Cobalt Networks) 라는 컴퓨터 회사에서 그를 고용하려 했을 때 비자발급을 거부했다.)
이카자와 같은 수많은 프로그래머들이 리눅스를 위해 일했고, 유틸리티를 추가하고 버그를 수정하고 설명서를 만들고, 성능을 향상시켜 다른 컴퓨터 시스템들에 적용시켜 나갔다. 아주 놀라운 속도로 새로운 버전들이 쏟아져 나왔다. 어떤 때는 일주일도 못가서 새로운 버전이 만들어지기도 했다. 각각은 전세계 사람들에 의해서 다운로드 되어 작업이 진행되었다.
토발즈는 급속도로 진전되는 프로젝트에 놀라면서 자신은 커널을 관리하는 데 주력하였다. 사람들은 여러 가지 부분들을 유기적으로 연결하는 일에 관심이 많았다. 토발즈는 결국 전체 코드 중 자신의 것은 5%도 안될 정도가 되었다고 말한다. (그는 지금 트랜스메타(Transmeta)라는 실리콘 밸리에 있는 칩 디자인 회사에서 근무하고 있다.)
공개 소프트웨어의 옹호자인 레이몬드는 리눅스의 비약적인 발전을 보면서 소프트웨어 업계의 변화를 예감했다. 그는 어느 에세이에서 다음과 같이 비유했다. '대성당과 시장판', 즉 리눅스 이전의 소프트웨어들은 마지막 버전이 완성되어 공개될 때까지 코드를 만드는 고립된 프로그래머 팀에 의해서 '대성당'과 같은 곳에서 만들어져 왔다는 것이다. 그 반면 리눅스는 독립적인 프로그래머들의 조화되지 않은 흐트러진 상태들이 '시장판'에서 집대성된 것이었다. 그리고 리눅스는 결코 끝이 있을 수 없었다. 일반적인 사용자들은 운영체제의 부분적인 성공적 '단편'을 사용하고 프로그래머들은 그들이 수정하거나 추가해야할 무언가를 발견하는 한 계속해서 그것들을 바꾸어 나갈 것이다.
시장판에서 소프트웨어는 훨씬 쉽고 더욱 효율적이며 성공하기 쉽다고 레이몬드는 믿는다. 소스 코드가 모든 사람에게 공개되어 있기 때문에 똑같은 문제를 두 번 풀어야 하는 일은 결코 일어날 수 없다고 말한다. 반면 상업적인 소프트웨어 개발자들은 같은 연구를 반복하도록 자주 강요당한다. "이것은 거의 자원의 범죄적 낭비이다." 예를 들어 만약 한 회사가 프로그램에서 바로 전자우편으로 데이타를 가지고 오는 방법을 개발했다면 경쟁사는 그 방법을 사용할 수 없으며 그것을 다시 자체 개발해야 한다. 그들은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서 똑같은 일을 하는데 있어서 전혀 다른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것이다. 소스 공개를 지지하는 사람들은 그러한 결과는 점진적인 성과물을 만들어내는 데 있어서 소모적인 경쟁만 자초할 뿐이고 결국은 제대로 작동되지 않는 불완전한 소프트웨어만을 만들어 내게 된다고 주장한다.
게다가 공개 소스 소프트웨어는 보다 완벽하게 테스트될 수 있다. 디지털사에서 운영체제를 연구하는 홀에 따르면, 아무리 큰 회사라도 몇몇의 사용자들에 의존하여 그들의 운영체제를 실제적으로 테스트 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토발즈가 주장하듯이 공개 소스 프로그래머들은 "하나의 버그를 수정하는 것이 그 버그와 관련된 수많은 프로그램들을 동작하지 못하게 할 지도 모른다"는 사실에 대해서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만약 MS가 윈도98을 수정해서 퀵켄(Quicken)이나 워드퍼펙트(Word -Perfect)와 같은 프로그램에서 어떠한 일이 일어날지 알아내는 일은 쉽지 않을 것이다. 반면 공개 프로그램에서 버그들은 소스 코드가 누구에게나 제공될 수 있기 때문에 빨리 수정될 수 있다. 지난 5월에 공개된 소프트웨어 신뢰성 테스트에 있어서도 위스콘신대학의 일곱 명의 컴퓨터 과학자들은 GNU와 리눅스 프로그램들이 저작권이 있는 비슷한 프로그램들 보다 월등히 좋은 프로그램들이라고 결론지었다.
공개 소스 지지자들은 리눅스/GNU가 사용자에게 유리하며, 특히 비즈니스 차원에서 이점이 있다고 말한다. MS와 같은 거대한 회사에서 권장하는 프로그램들을 억지로 받아들이는 대신, 기업정보시스템부서가 그들 회사 요구에 정확히 부합하는 소프트웨어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공개 소스를 사용하면 필요에 따라 프로그램을 만들 수 있기 때문에 공개 소프트웨어는 비즈니스계에도 널리 퍼져있다. 세가(Sega)사는 비디오게임을 개발하는데 리눅스를 사용하고 있고 디지털 도메인(Digital Domain), 카메론(James Cameron)이 감독한 영화 '타이타닉(Titanic)'의 특수효과 제작에 이를 사용하였다. 미국 우정국은 RAF Mail 이라는 문자인식 소프트웨어를 이용해서 편지들을 배달하는데, 이 프로그램도 리눅스로 돌아가는 상업적인 프로그램이다. 넷스케이프사와 인텍사는 지난 9월 그들이 가장 큰 상업적 리눅스 보급회사인 레드햇에 투자했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리눅스는 소비자 시장에서는 거의 사장되어 왔다. 리눅스가 직관적이지 못한 채로 남아 있는 한 -토발즈가 표현했듯이 '해커에 의한 해커를 위한 프로그램' - 이것을 사용하는 일은 괴짜들에게 한정될 것이다. 이러한 점은 몇몇 리눅스 지지자들에게는 불만족스러운 일이다.
세계 지배(World Domination)?
리눅스를 대중화시키는 분명한 방법은 윈도나 맥킨토시와 유사한 포인트-클릭 데스크탑(point-and-click desktop)을 제공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문제는 리눅스를 개발한 사람들의 관심사가 아니었다. 대부분의 프로그래머들은 마우스 클릭보다 명령어를 타이핑하기를 더 좋아한다. 왜냐하면 전자보다 후자가 컴퓨터를 보다 정확하게 제어할 수 있기 때문이다. 토발즈 스스로도 '보기 좋은 그래픽 환경'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이 없다고 말한다. 실제로 토발즈는 리눅스가 하나의 통일된 환경에서 잘 기능할 수 있을 지에 대해서 확신하지 못했다. 그러나 1997년 8월에 이카자가 발표한 그래픽 사용자 환경(Graphical User Interface : GUI)으로 리눅스를 만들어 보자는 시도인 GNOME 프로젝트를 전적으로 환영하였다. "나는 MS를 벌벌 떨게 하고 리눅스가 세계를 정복하는 것에 관해서 농담처럼 이야기했다." 최근에 리눅스 컨벤션에서 'World Domination 101' 세미나를 수행한 토발즈는 "일반 사용자를 위해 리눅스를 쉽게 만든다면 아마도 그런 일이 생길 수도 있을 것이다"고 말했다.
GNOME 의 제안자들은 몇 가지 걸림돌에 봉착했다. 첫 번째는 리눅스 데스크탑 프로젝트가 이미 존재한다는 것이다. 독일에 기반을 둔 KDE(K Desktop Environment)라는 데스크탑이 공개 소스 사회를 강하게 위협하고 있다. 이상적인 기업체를 향한 난해한 논쟁의 한 예로써 'KDE 데스크탑이 결정적으로 오염되었느냐, 아니냐'로 공개 소스 사회가 뜨겁게 달구어졌던 것을 들 수 있다. KDE 데스크탑은 트롤 테크놀로지(Troll Technology)라는 노르웨이 회사에서 만든 코드를 포함하고 있는데 이것의 소유권에 관한 유무가 모호했다는 것이다. 대답은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카자와 많은 리눅스 지지자들은 GNOME으로 방향을 옮기게 되었다.
프로젝트의 시작 첫해에 150명이 넘는 사람들이 GNOME 개발에 참여했고, 그 중에 약 20여명은 전일제로 매달렸다. 레드햇사는 7명의 프로그래머들을 GNOME을 위해서 전일제로 일할 수 있도록 해 주었다. 물론 이 정도 인원은 윈도의 새로운 버전을 만들어 내기 위해 일하는 프로그래머 군단에 비교하면 너무나 미미하다. 반면에 GNOME 프로젝트의 FAQ ( Frequently -Asked-Question) 파일 관리자인 루이스(Todd Graham Lewis)는 "우리들은 그들처럼 짜증스럽게 일할 필요가 없다"고 말한다. "윈도98 개발에 투여되는 한시간은 15분의 작업 효율성을 뜻한다. 나머지 45분은 도스, 윈도3.1 그리고 윈도95와의 호환성을 체크하는데 허비된다." 그러나 GNOME 개발에 투여되는 한시간의 작업은 바로 한시간의 효율성이다. 부분적으로는 이러한 이유로 해서 프로젝트는 빠르게 진행되었다. 버전 1.0은 빠르면 1999년 초에 http://www. gnome.org에서 다운로드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이 프로젝트는 사용자가 직접 데스크탑 자체를 구성하는 것이기 때문에 결과를 예측하는 것은 쉽지 않다. 즉 어떠한 표준의 외형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윈도는 당신이 변화시킬 수 있는 일련의 컬러와 폰트의 집합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그것이 당신이 할 수 있는 전부이다. 우리는 당신이 기초부터 모든 것을 만들 수 있도록 할 것이다"라고 레드햇사의 GNOME 프로그래머 하이츨러(Carsten Haitzler)는 말한다.
어설프게 데스크탑을 구성하는 것에서 헤매고 싶지 않은 사용자들은 미리 준비된 여러 개의 '소재(themes)' 들 중에서 선택할 수도 있다. 현재 젊은 여성 프로그래머들에 의해서 만들어진 소재들 중 대부분은 공상과학 소설의 표지와 비슷하지만 말이다. 사람들은 나의 데스크탑이 Babylon 5에 나오는 한 장면 같다고 말한다며 하이츨러는 자랑한다.
GNOME 프로젝트는 존재하는 어떠한 환경에서도 잘 동작하도록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MS도 어떤 부분에서는 배울 점이 있고 우리는 그것들을 배우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이카자는 말한다. 동시에 GNOME 프로젝트는 윈도의 불편한 부분들은 피해 나가려고 한다. GNOME 사용자들은 '시작' 버튼을 클릭해 컴퓨터를 끄지 않을 것이며 윈도 작업표시줄과 씨름할 필요도 없을 것이라고 이카자는 단호하게 약속한다. 프로그램을 스크린에 띄우기 위해 윈도 사용자들은 작업표시줄을 클릭하고 널려있는 아이콘 중 하나를 더블클릭 해야 한다.
이카자는 GNOME이 보다 논리적인 환경을 제공할 것이라고 말한다. 데스크탑 위에 아이콘들을 흩어 놓는 대신 사용자들은 문서들을 판넬(panel) - GNOME 버전에서의 작업표시줄 - 위에 끌어 놓을 수 있다. 또 스크린 위에 여러 개의 판넬을 열 수 있다. 각각의 판넬은 겉모습을 다르게 할 수 있다. 해골들이 하품하는 아이콘을 가진 둠(Doom)을 흉내낸 소재로 된 패널 같은 경우처럼, GNOME은 눈요기감으로도 좋을 것이다.
만약 그것이 눈요기감으로만 그치고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면 처음 컴퓨터를 접하는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는 충분하지 않을 것이다. 리눅스의 가장 큰 약점 중 하나는 운영체제와 함께 돌아갈 수 있는 가정용, 사업용 소프트웨어가 상대적으로 부족하다는 점이다. 오피스 관련 프로그램과 게임을 만드는 회사들은 리눅스 상에서 돌아가는 제품을 잘 만들지 않고 있는데 ID소프트웨어(ID Software)와 코렐사(Corel)는 예외적이다. ID소프트웨어는 인기 있는 오락게임 퀘이크(Quake)와 둠(Doom)의 리눅스 버전을 선보였고, 코렐사는 '리눅스용 워드퍼펙트'를 출시하였으며 나머지 오피스 관련한 리눅스 버전의 소프트웨어도 만들 계획이라고 발표하였다.
서로간의 간극을 극복하기 위해 GNOME과 KDE는 스프레드쉬트와 워드프로세서를 개발하기 위한 공개 소프트웨어 프로젝트를 시작하였다. 초기 테스트 버전은 올해 봄에 나올 예정이다.
MS는 리눅스에 대응하는 방법들을 벌써부터 준비중이다. 그러나 루이스(Lewis)는 공개 소스 소프트웨어가 가지는 한가지 부정할 수 없는 경쟁력을 강조한다. "MS는 경쟁자들의 수입이 줄게 만들어 독보적인 자리에 군림해 왔다. 그러나 그러한 방법으로 그들은 우리를 죽일 수 없다. 왜냐하면 우리는 어떠한 수입도 없기 때문이다. 공개 소프트웨어 운동은 'Night of the Living Dead'과 같다. 우리는 그들과의 싸움을 계속해 나갈 것이다."
레이몬드는 덧붙인다. 리눅스 해커들이 좋아하는 간디의 인용구가 있다.
"처음에 그들은 당신을 무시하고 비웃을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당신과 싸울 것이다. 그러면 당신은 승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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