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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생한 꿈을 보다!?

생생한 꿈을 보다!?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교육위원 오주환

많은 사람들이 새로운 세상을 만들길 원한다. 더 이상 착취하지 않고도 평화롭고 자유롭게 살아갈 수 있는 그런 세상을. 그러나 그 모습이 잘 상상이 되질 않는다는 사람들도 의외로 많았다. 그때마다 내가 예를 들어 말하기를 좋아하던 것 중의 하나는 이런 것이었다.

“어딘지 볼일을 보러가야 할 때가 생기면, 길가에 서있는 자동차나 자전거를 그냥 아무거나 타고 가서는 그 차나 자전거를 근처에 그냥 세워 놓는다. 물론 이 차는 내 차가 아니다. 그렇다고 나와 무관한 남의 차도 아니다. 그저 우리들의 차인 것이다. 그리고 볼일을 본다. 돌아올 때는 눈에 띄는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또 다른 차나 자전거를 타고 돌아온다. 그리고 역시 도착한 곳 근처에 세워 놓는다. 물론 엔진을 시동하는 차의 열쇠는 그대로 꽃아 놓고, 자전거의 경우에도 잠금 장치는 필요치 않다. 누가 가져가지 않겠냐고? 왜? 가져간다면 그 것은 그 차나 자전가가 필요해서 타고 갔다는 이야기이니 상관없다. 자기 집으로 가져가 버리면 어떡하냐고? 왜? 가져가서 뭐할 건데? 길가에 어디에나 자기가 타고 싶으면 언제나 타고 갈 수 있는 게 있는데 뭐 하러 그걸 집으로 가져가서 좁은 마당을 차지하게 만들까? 언제나 필요할 때 쓸 수 있는데...”

이쯤에서 어떤 사람들은 그러면 참 좋겠다고 한다. 어떤 사람들은 또 이런 질문을 한다. 좋기는 하겠지만 그럼 차가 고장 나면 수리는 누가 하냐고. 기름이 떨어지면 그건 누가 넣냐고. 이 질문에 답하기 전에, 난 어제 본 TV프로그램의 한 부분을 이야기하고 싶다. ‘차량을 소유하지 않는다. 차량이 필요하면 차량을 신청해서 신청한 장소에서 차량을 타고 목적지에 도착하면 그냥 약속한 장소에 놓아둔다. 사용료는 낸다. 부유해도 차를 자주 쓸 필요가 없는 사람들은 이렇게 하는 게 비용이 덜 든단다. 다만 차로 자신을 뽐내려는 생각만 접으면 된단다.’ 나의 상상과 일치되는 부분이 많다. 그러나 약간의 어쩌면 매우 중요한 차이가 있다. 사용료를 내기 때문이다. 그래도 기술적 개념은 매우 유사하다. 이곳은 새로운 세상과 거리가 먼 현재의 미국이었다. 또 다른 장면, ‘자전거로 도시 내를 이동한다. 이동하다가 자전거로 가기엔 다소 먼 거리를 가려고 버스를 타려면 자전거를 길가 사거리 모퉁이에 어디나 세워놓고 버스를 탄다. 내려서는 다른 자전거를 탄다. 요금은 내지 않는다.’ 이곳은 독일이었다. 이 경우는 내가 말한 것과 거의 같다. 상상이 아니다. 현실이다.

앞에서 말하던 이어진 질문에 나는 이렇게 답한다.
“차가 고장 나면 차가 고장 났다고 종이에 서서 눈에 잘 띄게 붙여 놓는다. 가능한 내가 아는 정보를 꼼꼼히 써넣는다. 어떤 증상을 보이는지에 대해, 그리고 내가 그 증상을 발견한 일시에 대해... 그러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차를 타지 않을 것이고 그 옆에 있는 다른 차를 이용할 것이다. 그러나 일부의 사람들은 차량에 대해 잘 아는 사람이 있을 것이고 차를 수리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 이들이 이 차량을 고쳐서 놓을 것이다. 고치고 나면 언제 고쳤으니 이젠 타도 좋다고 써 놓고 갈 것이다. 그러면 다음엔 그 차를 또 다른 사람이 탈 것이다. 주유소에 가서 기름을 넣어도 돈을 내지 않는다. 주유소에서 돈을 받지 않기 때문이다. 주유소에 기름이 떨어지면? ... (지면 관계상 여러분들의 상상에 맡긴다)”

물론 이런 조건은 모두가 자유롭게 살아가며, 하고 싶은 즐거운 노동만을 할 때 가능하다. 그러나 이중의 일부, 즉 앞부분에서 말한 것은 새로운 세상이 아닌 나라에서 이미 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참으로 신기하게 느껴졌다. 차량은 요즘 시대에선 경제적 부의 수준을 나타내주는 그 사람의 이름표나 표식 같은 역할을 하는 물건이 되어 있다. 그래서 별로 자주 차를 쓰지 않는 사람도 돈이 많으면 고급차를 사고, 반면에 차를 매우 자주 써야 되고 하루 중 운전하는 시간이 매우 많아서 그래서 안전장치가 잘되어 있는 차가 꼭 필요한 그런 사람은 오히려 돈이 없어 경차를 타야 한다. 그러나 차량을 소유하지 않고도 차량이 필요할 때 사용하는 방법이 생겨났다. 자전거를 함께 사용하는 방법이 생겨났다. 상상이 부분적으로나마 이미 현실화되고 있었다. 또 한편 부분적으로라도 끊임없이 생활의 곳곳 여러 영역에서 현실화되었으면 좋겠다. 그러나 난 이런 부분적인 것을 넘어서 결국 전면적으로 새로운 세상에 대한 사람들의 상상이 모두 현실화되길 바란다. 그리고 가능하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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