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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제5공화국’과 야만의 시대

드라마 ‘제5공화국’과 야만의 시대



요즘 드라마 ‘제5공화국’이 인기입니다.
김재규의 박정희 암살사건에서부터 시작해서 12.12쿠데타와 서울의 봄을 지나 광주항쟁과 삼청교육대,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 등으로 이어지는 굵직굵직한 격동의 역사는 정말 파란만장합니다.

후삼국의 혼란 속에서 고려를 창건하기까지의 과정을 그린 ‘태조 왕건’도 재미있었고, 고려말의 혼란 속에 새로운 조선왕조를 창건했던 이성계와 그의 아들 이방원의 권력쟁탈 과정을 그린 ‘용의 눈물’도 재미있었습니다. 그리고 시대드라마의 전통을 자랑하는 MBC는 이승만 시대를 다룬 ‘제1공화국’과 박정희 시대를 다룬 ‘제3공화국’도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제5공화국’은 남다르게 다가옵니다.
‘태조 왕건’이나 ‘용의 눈물’에는 지배세력의 권력투쟁 속에 민중들은 엑스트라로만 등장할 뿐이었지만, ‘제5공화국’에는 지배세력의 권력투쟁과 함께 민중들의 고통과 저항이 최소한 조연급으로는 등장합니다. ‘제5공화국’에는 지배세력의 권력장악을 위해 어떻게 민중들을 억압했는지가 드러납니다.
‘제1공화국’과 ‘제3공화국’에도 약하게나마 민중들에 대한 탄압과 억압이 나타나기는 하지만 ‘제5공화국’처럼 현실적이지 않습니다. 당시 권력의 핵심에 있었던 사람들이 죽은 다음에 만들어진 시대드라마는 그저 역사드라마로 다가오지만, 드라마 속의 주인공들이 두 눈 시퍼렇게 뜨고 살아있는 시대드라마는 생생한 정치드라마로 다가옵니다.

그 동안 이래저래 제5공화국의 탄생과정에 대한 책이나 영화 등을 보면서 나름대로 알고 있었다고 생각했었는데, 이번에 드라마 ‘제5공화국’을 보면서 제대로 알지 못했던 세세한 사실들까지 설명되고 있어서 역사공부를 새롭게 하는 기분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실존하는 인물들의 특성을 제대로 살리면서도 독특한 케릭터를 만들어내는 중견급 배우들의 열연을 보면서 드라마로서의 매력에도 푹 빠져들고 있습니다. 특히, 광주항쟁과 삼청교육대를 다루는 내용에서는 완전히 드라마에 빠져 버려서 눈물을 흠뻑 흘리면서 보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처참하게 사람들이 죽어갔고, 그에 맞서 수많은 이들이 총을 들고 싸웠는데도 세상은 그 사실을 제대로 알고 있지 못했습니다. 너무도 억울하게 삼청교육대로 끌려가서 개 같은 취급을 받으면서 죽어가도 세상은 모르고 있었습니다. 군대가 언론을 통제하고, 주변을 봉쇄하면 그런 끔직한 일들이 알려지지 않고 진압될 수 있었던 1980년은 정말 야만의 시대입니다.
전두환, 노태우, 정호용, 허삼수, 허화평 등이 권력을 장악하기 위해서 어떠한 희생도 두렵지 않았던 그 야만의 시대에 사람들은 침묵하거나, 개처럼 두들겨 맞거나, 총을 들고 싸우다가 죽어야 했습니다. 그들의 권력장악을 위한 시나리오와 그들간의 권력암투 속에서 민중들은 몰아붙이고 정신을 개조해야 할 무지한 이들이었습니다.
그렇게 매주 토요일과 일요일 밤에 편안하게 누워서 야만의 시대를 돌아봅니다.

군사정권 하에서 모진 탄압을 받은 김영삼과 죽음의 고비까지 넘긴 김대중이 대통령을 거친 이 나라는 분명히 많이 변했습니다.
언론이 극도로 통제되는 나라에서 인터넷으로 모든 것이 실시간으로 퍼져나가는 세계화된 나라로 변했습니다.
노조활동 하려다가 삼청교육대로 끌려가는 공포의 나라에서 노조활동 하다가 비리사건으로 구치소로 끌려가는 개혁의 나라로 변했습니다.
‘군인이 주인인 나라’에서 ‘자본이 주인인 나라’로 엄청나게 변했습니다.

월요일이 되면 다시 일상으로 돌아옵니다.
울산에서 기자활동을 하고 있는 저는 매일 같이 투쟁하는 노동자들을 찾아다닙니다.
50대의 건설플랜트 노동자들이 화장실과 식당을 지어달라는 요구를 하면서 장기간 파업을 하고, 경찰과 맞서 쇠파이프로 무장해서 격렬한 가두투쟁을 벌입니다. 그리고 언론은 일제히 이들을 폭도로 몰아붙입니다.
졸지에 거리로 내몰린 대덕사 조합원들은 현대자동차 앞에서 천막을 치려다가 봉고차 위로 훨훨 날아다니는 현대자동차 경비들에게 남녀를 가리지 않고 개처럼 두들겨 맞습니다.
어디선가 ‘변화와 혁신’을 위해 회사에서 주최하는 군사훈련에 참가했던 노동자가 심장마비로 죽었다는 기사도 보았고, 회사의 탄압으로 정신질환에 시달리는 노동자들이 산재승인을 내도 불승인 받고 있다는 기사도 보았습니다.
많은 이들이 컴퓨터 앞에 앉아서 클릭 몇 번으로 그 기사와 사진을 보면서 분개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광주항쟁의 마지막을 다루었던 ‘제5공화국 제19부’를 인터넷에서 다운 받아서 여러 번 보고 있습니다.
도청을 접수 하는 것으로 시작해서 마지막까지 총을 들고 싸우다가 죽어갔던 이들과 진압성공 소식에 환호하는 군부의 모습으로 19부는 끝납니다. 그리고 다른 편의 경우는 드라마 말미에 다음 회 예고편을 보내지만, 19부에서는 광주항쟁에 대한 핵심 내용을 다시 편집에서 보여줍니다.
그중에 저는 아직도 시민군 대변인인 윤상원의 최후의 기자회견 모습을 보면서 분노의 눈물을 흘립니다.

우리의 죽음은 저들의 야만성을 증거 할 것입니다.
그리고 역사는 기록할 것입니다.
언젠가 우리가 다시 살아날 것을...
우리는 바로 이 땅의 민주주의라는 이름으로 분명히 다시 살아날 것입니다.

주5일제가 확산되는 이 시대에 주말에 드라마로 느끼는 분노와 주중에 인터넷으로 느끼는 분노가 다른 것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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