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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우자동차 '정리해고 통지서', 그 후 ① *****
** 생일날 수갑 찬 모습을 남편에게 '들킨' 해고자의 아내 **
지난 2월 17일 허미경(35) 씨의 남편은 대우자동차 1750명 '정리해고' 대열에 섰다.
아침에 만난 집배원이 부지런히 우편물을 배달하고 있어 "다 돌리는 거냐?"고 물었다. 남편이 근무하던 설비개선부 '직장'이 "사장이 전사원에게 사과문을 보내니 그냥 받아라"는 말을 들은 터였다. "다 보내는 게 아니다. 정리해고통지서다." 잠시 후 집에 돌아온 허 씨는 그 집배원의 방문을 받고 '정리해고통지서'를 수령했다. 믿기지 않았다. 그냥 눈물만 났다.
14년 동안 청춘을 바쳐 일한 곳에서 남편이 '정리'되는 아픔에 어찌할 바를 모르다가 허 씨는 "그냥 앉아 있을 수가 없어서", "가만히 있으면 속에 열불이 터질 것 같아서" 3월 8일 새벽 부평공장 동문근처로 갔다.
남편의 일자리를 돌려달라는 구호가 적힌 피켓을 목에 걸고 대여섯명 남짓한 사람들과 함께 동문 건너편 신호등에 서 서 있었다. 경찰, "아줌마, 여기 서 있으면 잡아간다." 허미경 씨, 피켓을 벗어 손에 말아쥐고 신호등을 건너려고 서 있는데 전경이 신호등을 조작해 계속 빨간불이다. 이 때 한 여경이 신호등을 무시하고 건너와 상급자에게 묻었다.
"실어요?" 상급자, 고개를 끄덕끄덕. 전경들이 차에 싣기 위해 허씨를 들었다. 저항했다. 주춤하는 순간, "그냥 실어! 무조건 실어!" 허씨는 전경들에 다시 들렸고 여경(허 씨가 나중에 다른 사람한테 들으니 계양경찰서 여성소년계 이 아무개라고 한다)은 뒤에서 머리채를 잡았다. 계양경찰서에 들렸다가 서부경찰서에 도착하니 아침 8시나 됐을까.
허씨는 난생 처음 피의자조서라는 걸 작성하고 서부경찰서 지하보호소라는 곳에서 '대기'했다. 그리고 밤 10시 무렵 유치장에 들어가 9일 아침을 맞았다. 유치장에 있던 어떤 아가씨가 화장실 가고 싶다고 거듭 요구하자 차가운 유치장 바닥에 깔아놓은 담요를 빼앗았다.
경찰은 연신 "죄를 지었으면 조용히 뉘우치는 모습을 보여라!", "양심이 있어야지, 죄 지은 주제에 이것저것 다 챙길려고 해?"하며 윽박 질렀다. 그리곤 화장실 가고 싶다고 요구한 그 아가씨는 말대꾸했기 때문에 면회를 중지한단다. 사실 여부를 떠나 조금도 유치장에 있는 사람들을 생각하지 않는 파렴치한 발언들이었다.
아침 9시 무렵. 남편이 면회를 왔다고 한다. 면회하러 가자며 수갑을 채우려고 한다. 허씨는 "내가 무슨 중죄인이냐? 수갑차고는 남편 못만나겠다"고 항의했다. 10분 정도 지났을까. 훈방이라고 한다.
허미경 씨, 지하보호소에서 나가는 데 형사가 갑자기 수갑을 채웠다. 훈방이란 말을 거짓이었다. 손을 앞으로 모은 채, 텔레비젼뉴스에서 나쁜 사람들 잡았다고 나오던 그 모습 그대로다. 허씨는 지난 밤 조사 받던 사무실로 들어섰다. 남편이 소파에 앉아 있었다. 남편이 수갑을 찬 모습을 봤다. 울었다. 허씨도 울었다. 형사가 바로 수갑을 풀어주기는 했다.
9일이 허미경 씨 생일이었다.
그날 다른 곳에서도 연행된 해고자 가족들에게 수갑을 채운 채 면회를 한 사실이 인터넷에 올라온 모양이다. 허씨가 "내가 무슨 죄인이길래 수갑을 채웠냐?"고 항의하다 수사계로 걸려온 통화내용을 들으니 온통 수갑채운 이야기다. 허씨가 보기에 전화하는 사람들 대부분이 기자 같았다. 허씨는 9일 12시에 서부경찰서를 나왔다.
13일 산곡성당에서 만난 허씨는 "앞으로는 정리해고니 뭐니 하는 피해를 안 당했으면 좋겠다"며 "기자들이 우리 절절한 심정을 얼마나 아는지 모르겠다"고 퉁을 놓았다.
15일 저녁 7시 인천 가정동 대우사원아파트에서는 '일터를 찾자'는 주제로 문화제를 연다. 바로 대우 가족대책위(회장 정순희)가 힘내서 싸우자고 다짐하는 자리다.
***** 대우자동차 '정리해고', 그 후 ② *****
** 경찰 상주, 노조사무실 폐쇄 **
1750명이 정리해고 통지서를 받아든 지 26일 째. 지난 7일 다시 조업이 재개 후 일주일 이상이 지났지만 대우자동차 부평공장은 여전히 '비정상'이다.
부평역에서 대우자동차 부평공장에 이르는 도로 곳곳에 진압봉을 하나씩 들고 지나가는 행인을 쏘아보는 전경들과 마주친다.
부평역에서 부평공장으로 향하는 큰 길 옆에 있는 민주당 지구당, 은행 앞에는 어김없이 전경들이 진을 치고 있고, 부평역 마그넷 쪽으로 나가는 출구에도 전경들이 양옆으로 늘어서 있다. 부평역 광장 로터리 쪽에는 적게는 11대, 많게는 21대까지 전경버스들이 도로에 늘어 서 있고 역으로 통하는 모든 골목, 지하도마다 전경들이 어김없이 지키고 서 있다.
노조사무실 문 용접
부평공장 내 노조사무실은 '원천봉쇄' 됐다. 노조사무실로 통하는 모든 통로가 폐쇄됐다. 프레스부에서 일하는 한 조합원은 "외부에서 노조사무실로 통하는 문이 용접되어 있다. 식당에서 노조사무실로 통하는 복도와 건너편도 막아 버렸다"고 전한다.
차체 2부에서 일하는 또 다른 조합원은 "12일 대의원이 노조에서 제작한 유인물을 가지고 들어가다가 '공장'에게 걸려 모조리 빼앗겼다"고 전한다. '공장'은 현장 상급자를 지칭하는 용어로 밑으로 직장, 조장 등이 있다. 또 "지난 주 출근할 때 들키지 않고 유인물을 가지고 들어간 조립 2부 대의원이 유인물을 배포하려 했으나 회사에서 동원한 용역들에 의해 순식간에 수거됐다"고 밝혔다. 회사측이 "공장 내에서 노조의 합법적인 활동을 완전히 가로막고 있는 상태"다.
"자리 비우는 대의원 적어내라"
프레스부에서 일하는 조합원은 "'대의원이나 평소에 노조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던 동료들이 자리를 비우면 적어내라'고 압박한다"고 밝히고, 차체2부 조합원은 "공장·직장들이 노조집행부가 있는 산곡동 성당에도 가지 말고 조용히 지낼 것을 종용한다"며 괴로움을 토로했다.
회사는 또 용역을 고용해 조합원들을 감시하고 나섰다. 부평공장에서는 용역을 고용했다. 고등학교를 이제 막 졸업했거나 군대를 갓 제대한 것으로 보이는 용역들은 식당 등 노동자들이 많이 모이는 곳에는 어김없이 나타나 "조합원들을 감시"한다. 심지어 지난 주에는 "서너명만 모여 있어도 '무슨 이야기하느냐'고 은근히 압력을 가하기도 했다.
또 "전경이 4인1조를 이뤄 공장 내 중심도로를 순찰하기도 했다"고 전했다. 노동자들은 출근길부터 심리적으로 위축된다. 차체2부에서 일하는 조합원은 "출근 때 이용하는 정문, 서문, 남문에 가드레일을 쳐놓고 양쪽에 용역들이 늘어서 있다. 두 명씩 한꺼번에 들어갈 수도 없고 한 명씩 한 명씩 비표를 보이고 들어간다. 하루 시작부터 기선을 제압당한 느낌이다"고 심경을 털어놨다. 또 "출근 때 '공장'들이 문 옆에 서 있다가 부서 대의원을 용역에게 찍어준다. 12일 유인물도 그렇게 뺏긴 것이다"고 밝혔다.
경찰 상주, 노조원 출입 통제
부평공장으로 통하는 모든 출입문은 전투경찰에 의해 봉쇄되어 있다. 차체2부 조합원은 "전경버스가 정문 안 대로에 9대, 주차장에 6대, 하치장에 20여 대가 상주하고 있"고, "전경들은 운동장 옆 식당에서 숙박을 해결하다 14일에 구식당으로 숙소를 옮겼다"고 전했다.
애써 산곡동 성당에 있는 노조집행부나 정리해고 이야기를 꺼내지 않던 현장도 부평공장 폐쇄 이야기로 술렁이고 있다. 부평공장을 폐쇄해야 한다는 컨설팅회사의 의견이 발표된 것 때문이다. 더욱이 회사측이 최근에 발행한 「한마음」에도 "필요하다면 뼈를 깎는 심정으로 또 정리해고를 할 수도 있다"고 공공연히 밝히고 있다.
프레스부 조합원은 "공장폐쇄든 정리해고든 조만간 다시 인원을 감축할 것"이라며 "1750명 정리해고도 정상화를 위해서 한 것이라기보다는 어떻게 GM에 매각할 수 있을까만 생각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 조합원은 "지금 뾰족한 수는 없다"며 "하루빨리 조직력을 복원해서 싸우는 길 밖에는 없다"고 강조했다.
** 대우자동차 '정리해고', 그 후 ③ **
***** 파괴되는 모성, 신음하는 아동 *****
정리해 고된 대우노조원과 그 가족들 가슴에 한이 서리고 있다.
정리해고 반대투쟁에 참가하던 대우자동차 차현호(33, 엔진부) 노조원의 부인 이옥선 씨가 유산을 했다. 이씨는 16일 배가 아파 병원에 가서 초음파 검사를 받은 끝에 유산됐다는 진단을 받고 이날 수술을 했다. 이 씨는 임신 5주였다.
가정동 5거리 연세산부인과 김완기 원장은 "애기집이 자궁 맨 밑에 걸려있다"며 유산이라고 진단하고 이 씨에 대한 수술을 마쳤다. 수술 후 김 원장은 이 씨의 남편 차 씨에게 "신체적·정신적 고통이 원인이 됐을 가능성이 많다"고 밝혔다.
이 씨는 부평공장 '조업재개일'인 지난 7일 아침 8시 30분 경 백운공원에서 부평공장 출근을 저지하다가 6∼7명의 전경들에게 팔, 다리, 머리카락은 물론 가슴까지 잡혀 끌려갔다. 이 씨는 이 때 "상의와 속옷이 목까지 올라가 가슴이 그대로 다 드러나 사진기자들과 경찰들이 지켜보게 돼 극도의 수치심을 느꼈다"고 밝혔다.
또 '대우자동차 정리해고반대 가족대책위'(아래 가족대책위) 정순희 회장은 "우리들이 '이 씨는 임산부다. 제발 거칠게 다루지 말아라'고 여러 번 얘기했지만 경찰은 막무가내였다"고 밝혔다. 정 회장은 "임신초기라서 많이 배려했고, 7일 백운공원에도 나오지 않기를 바랬지만 이 씨가 우리들의 만류를 듣지 않았다"고 전했다. 정 회장은 또 "이 분함을 말로 표현할 수가 없다. 받은 만큼 되돌려 주고 싶다"고 토로했다.
이씨 남편 차 씨는 "지난 14일에야 아내의 임신사실을 알았다"면서 "아내가 정리해고 통지서를 받은 이후 경황이 없어 그 동안 말을 못한 것 같다"고 밝혔다. 차 씨는 이어 "가족대책위에서 7일 이후 성당에도 나오지 못하게 적극 만류해 그 동안 격한 행동도 자제해 왔다"며 "단순한 가정사가 아니라 부평공장 해고자와 그 가족에게 가해진 폭력의 결과다"라고 강조했다.
또 '정리해고 통지서'를 받은 정환희 노조원의 아들이 평소 앓던 심장판막증세로 16일 밤 병원에 입원했다. 정 씨의 부인 서정심(28) 씨는 3남 효진(4) 군과 함께 지난 7일 아침 8시 30분 경 인천 백운공원 앞에서 "진료카드를 꺼내 보여줬어도 전경이 방패로 아이를 밀어 놀라게 했다"고 밝혔다.
서 씨는 또 "효진이가 그 때 놀란 이후 자다가도 자지러지게 울고 몸서리를 쳤다"며 "남편이 '정리해고 통지서'를 받지 않았다면 치료를 해 볼 요량이었는데…"라고 울먹였다.
한편 대우자동차 노동조합 김창곤 쟁의교육부장은 "'정리해고 통지서'를 받은 것만으로도 엄청난 충격이다. 거기다 임산부라고 아무리 말해도 다른 사람과 똑 같이 대하는 것은 사실상 살인행위"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 쟁의교육부장은 이어 "두가지 사례 말고도 오랫동안 임금을 제대로 못받아 아이를 맡길 곳도 없는 사람들이 많아 눈물을 머금고 아이들을 데리고 나온다"며 "정리해고는 더 존중받아야 할 모성과 아동의 존재마저 위협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심보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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