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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보호법이 '독점'하려는 것
수능시험이 끝났다. 거리마다 술을 마시려는 수험생과 단속반과의 숨바꼭질이 벌어졌다고 한다. '이런 날 아이들도 한잔 하고 싶겠지'라고 말하는 어른이 있다면 청소년 보호에는 관심 없는 사람일까? 이날 밤 수험생 자녀에게 술잔을 건네준 부모가 있다면 몰지각한 부류에 해당하는 것일까?
청소년에게 유익한 것과 유해한 것 사이에는 셀 수 없고 잴 수 없는 변수가 있다. 그런데 그 변수에 대한 판단을 일부 기성세대가 자기 취향만으로 독점하려 든다면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청소년보호법은 '청소년보호'라는 명목으로 기선을 제압한 후 그에 대한 반론과 다른 판단을 배제하고 있다. 또한 청소년위원회는 그러한 판단의 독점권자이다.
'청소년 유해약물, 유해물건, 유해매체물'이 청소년보호법의 공격대상이며, '제지, 제한, 규제, 구분, 격리' 등이 그 공격방법이며, 그 조종간을 쥔 것은 청소년보호위원회다. 여기서 우리는 '청소년보호'를 가장한 '표현물 규제'를 생각지 않을 수 없다. '청소년의 성적욕구를 자극하는 것, 반사회적인 것, 비윤리적인 것' 등 청소년보호법이 내건 모호한 기준에 걸려들기는 너무도 쉽기 때문이다.
청소년보호라는 명목은 강력하다. 혼란스럽고 위험하기 짝이 없는 현 사회로부터 청소년을 보호해야 한다는 생각에 동조하지 않을 부모와 교사가 어디 있으랴. 그러나 함정은 바로 여기에 있다. 우리는 '격리·유배'로써 청소년이 정작 누려야 할 권리로부터 청소년을 '배제'시키는 전근대적 사고에 묶여있지는 않은가. 청소년은 매여있는 보호의 대상이 아니라 보호·보장·신장돼야 할 권리의 활동적인 주인이다.
우리가 정작 해야 할 일은 청소년에 대한 노동착취, 성적착취를 방지하는 것이며, 청소년에 대한 복지의 확충과 청소년 자신이 참여할 수 있는 문화활동의 육성이다. '청소년보호'로 포장된 '음란물 규제'가 정작 우리의 관심을 빼앗고 있지는 않은가 성찰해야 한다. 몇 개 음란물을 압수하고 사법적 판단을 내린다고 해서 청소년이 보호되는 게 아니라는 것을 청소년보호위원회 자신들이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본인들은 그 정도만으로 '보람'을 느낄지 모르지만 당신들의 '보람찬 하루 일' 때문에 창작열을 식히고 있는 예술인들과 정말 보호받아야 할 것을 보호받지 못하는 청소년들이 있다는 것을 생각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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